[월요칼럼] 혈세 1조3천억을 날리려는 대구 정치인들

  • 김진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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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9-11-25   |  발행일 2019-11-25 제31면   |  수정 2019-11-25
[월요칼럼] 혈세 1조3천억을 날리려는 대구 정치인들
김진욱 편집국 부국장

대구시가 1조3천억원의 세금을 공중으로 날리려고 한다. 대구시는 내년도 정부 예산에 ‘경부선 대구도심통과구간(서대구역 예정지~동대구역 14.6㎞ 구간) 지하화 건설 용역비 35억원’을 꼭 포함시키려 한다. 대구도심을 통과하는 경부선을 땅속에 묻는 사업을 시작하겠다는 의미다. 이는 지상화를 위해 지난 10여년 동안 1조3천억원을 투입해 만든 시설물을 무용지물(無用之物)로 만드는 것이다. 그런데도 어떤 공론화 절차도 거치지 않고 추진되고 있다. 그 이면에 정치인이 있고, 총선이 있다.

경부선의 대구도심 통과 방식을 지하로 할 것인지, 지상으로 할 것인지에 대한 논쟁은 1990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KTX 개설 계획을 세우면서, 어떤 방식으로 대구도심을 통과할 것인지에서 시작됐다. 이후 대구시의 입장은 지상화와 지하화를 수차례 왔다갔다했다. 둘다 장단점이 있어, 어떤 결정도 모두를 100% 만족시킬 수 없다는 걸 보여주는 것이다. 지상화냐 지하화냐는 대구 사회를 집단 대결로 내몰았던 이슈이기도 했다. 2004년 봄, 대구 서구주민 1만6천여명이 지상화해 달라고 요구하니, 2만1천900명은 지하화해 달라고 집단민원을 제기했다.

우여곡절끝에 대구시는 2004년 11월, 철로변 주변정비사업을 전제로 지상화해달라고 정부에 건의했다. 이에 따라 정부는 2006년에 지상화로 결정했다. 이후 투입된 돈이 1조3천억원. KTX 본선 개설 공사비로 6천400억원, 철로변 주변정비 사업비로 6천600억원이 투입됐다. 철로변 주변정비 사업은 경부선때문에 대구 도심이 단절되고, 철로변이 슬럼화되는 것을 최소화하기 위한 조치였다. 즉 지상화의 단점을 보완하는 공사였다. 철로변 주변정비사업의 마지막 공사인 북구 태평로 건널목 공사는 올해말 끝난다. 한편에서는 지상화공사를 하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지하화를 추진하고 있는 것이다.

지하화가 다시 표면화된 것은 2016년 총선때 새누리당(현 자유한국당) 대구시당이 공약으로 내놓으면서다. 이후 새누리당은 대구시를 압박했고, 결국 대구시는 1억8천만원을 들여 대구경북연구원에 용역을 맡겼다. 대구시가 용역을 발주할 무렵, 대구시의 한 간부는 필자에게 이런 말을 했다. “박근혜정부의 실세인 친박 국회의원들이 강하게 지하화를 요구하니, 대구시가 경청한다는 시늉이라도 해야 한다.”

2017년 10월, 대구경북연구원은 지하화를 장기과제로 돌린다는 용역결과를 발표했다. 당시 대구경북연구원 관계자는 나에게 “친박 의원들의 의지가 강하니, 대놓고 안된다고 할 수는 없었다. 그래서 장기과제라는 말로 돌려서 지하화 반대 입장을 밝힌 것”이라고 했다.

그런데 내년도 정부 예산 반영을 요구하는 상황까지 왔다. 자유한국당뿐 아니라 지금은 더불어민주당 대구시당까지 지하화 용역비가 예산에 반영되도록 거들겠다고 한다. 내년 총선을 앞두고 지하화가 다시 공약으로 나올 수도 있다.

나는 지하화되는 것을 걱정하지는 않는다. 지하화에 드는 비용이 8조원이 넘는다. 정부가 받아들일 리가 없다. 대구시의 요청에도 불구하고, 정부가 예산안에 용역비를 반영하지 않은 것만 봐도 그렇다.

내가 걱정하는 것은 대구가 조롱거리가 될 것 같아서다. 지상화해 달라고 해서 1조3천억원을 투입해 들어주니, 이제와서 지하화해 달라는 대구시. 이 때문에 대구의 합리적 요구마저 황당한 요구로 취급받을까봐 염려된다. 또 막대한 혈세를 낭비하자는데도 아무런 이견이 없는 도시로 비쳐질까 걱정이다.

지하화를 주장하는 인사들은 지상개발로 지하화에 드는 비용을 충당하면 된다는 주장도 한다. 대구시가 K2 공군기지 이전 비용을 후적지 개발비용으로 충당해야 해 난개발 우려가 높은데, 경부선 지상마저 비용마련을 위해 개발하자는 발상이 놀랍다.

지하화하자는 인사들은 현재 대구를 이끌어 가는 사람들이다. 그들중 몇몇은 내년 총선을 통해 또다시 대구, 나아가 우리나라를 이끌어가려 한다. 내년 4월 총선, 대구시민이 심각하게 고민해야 하는 시간이 다가오고 있다. 김진욱 편집국 부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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