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山寺미학 .18] 백흥암의 미학...“만추 단풍이 맑은 햇살에 빛난들, 정진하는 수행자에 비하랴”

  • 김봉규 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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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9-11-28 08:09  |  수정 2021-07-06 10:26  |  발행일 2019-11-28 제22면
20191128
백흥암에서 만남 스님이 백흥암 누각인 보화루에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눈 뒤 누각 바깥을 내다보고 있다.

자연과 어우러진 산사는 아름답다. 맑은 수행자들이 살고 있는 산사는 더욱 아름답다. 갑자기 가을 산사를 찾고 싶은 마음이 들어 팔공산 은해사로 향했다. 지난 7일 은해사에 들러 여기저기 둘러본 뒤 백흥암을 찾았다. 가 보고 싶었던 곳은 백흥암이었다. 여성 승려인 비구니들의 수행도량인 백흥암은 평소 일반인의 출입이 제한되는 사찰이다. 그래서 본사 사찰인 은해사의 주지 스님에게 부탁해 허락을 얻은 뒤 찾아갔다. 오후 1시40분쯤 백흥암에 도착했다. 조용할 줄 알았는데, 암자 앞에 차량이 몇 대 있고 일반인도 보였다. 몇 사람이 무와 배추 등이 담긴 용기를 들고 백흥암 누각인 보화루 아래와 샘물이 있는 곳을 오가고 있었다. 주지 스님이 있는지 물어보았다. 보화루 아래에 있는데 곧 나올 것이라고 했다. 잠시 있다가 보화루 옆으로 들어가 보화루 위로 올라갔다. 단풍이 한창인 앞산 풍경에 잠시 눈길을 보낸 뒤, 뒤로 돌아 백흥암의 중심 전각인 극락전을 바라보았다. 엄격함과 절제미가 느껴지는 극락전이 처마로 그 앞의 심검당 및 진영각을 껴안고 있는 듯했다. 극락전은 전면 3칸 규모의 작은 전각이다.

팔공산 은해사 비구니 수행도량
평소 일반인 출입 제한되는 사찰
스님과 보화루에 함께 올라 茶談
내면의 아름다운 기운이 느껴져


◆백흥암에서 만난 비구니 스님

스님들 좌선 공간인 심검당 마루에 올라 맞은편 진영각 기둥에 걸린 주련을 전체적으로 촬영하려고 하는데 스님 한 분이 극락전에서 나왔다. 진영각에는 추사 글씨로 전하는 주련 6개와 ‘시홀방장(十笏方丈)’ 편액이 걸려 있다. 시홀방장은 홀 10개를 이은 정도의 작은 공간을 일컫는 말로, 재가 수행자의 상징인 유마거사가 머물던 방을 지칭하는 말이기도 하다. 스님을 보고 찾아온 취지를 이야기하니, 주지 스님의 말씀을 듣고 기다리고 있었다며 극락전에 들어가 참배하고 둘러보라고 했다.

법당 안에 들어가니 불상과 불상 위의 닫집, 불상 좌대인 수미단, 탱화, 천장 등 하나하나가 눈길을 사로잡았다. 모두가 하나같이 수준 높은 솜씨에다 고색창연함이 묻어났다. 이 모든 것이 어우러져 만들어내는 장엄한 아름다움이 압도했다. 영화 ‘리큐에게 물어라’에서 “아름다움 앞에만 고개를 숙인다”고 했던 센노리큐도 이 법당에 들어서면 고개가 저절로 숙여지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다만 수 년 전 탱화가 도난당하는 사건이 있은 후 설치했다는, 문에 덧댄 쇠창살들이 눈에 거슬려 아쉬움을 던져 주었다.

스님에게 주지 스님과 차 한잔 할 수 있으면 좋겠다고 이야기하자, 주지 스님에게 전하겠다며 나갔다. 참배를 하고 법당 안을 찬찬히 둘러봤다. 보물로 지정된 수미단의 다양한 조각들을 비롯해 닫집의 용조각, 대들보에 달린 반야용선, 탱화 등을 살펴보았다.

잠시 후 돌아온 스님은 주지 스님이 일이 있어 급히 출타했다고 했다. 괜찮다고 말하고, 안 바쁘면 스님과 차 한잔 하며 이야기를 좀 나누고 싶다고 했다. 스님은 백흥암에 온 지 얼마 안돼 아는 게 없다고 했다. 하지만 재차 이야기하자, 그러자며 무슨 차를 좋아하는지 묻고는 차를 준비해 오겠다고 했다. 잠시 후 스님이 따뜻한 차를 준비해 오자 보화루에 함께 올라갔다. 긴 의자에 같이 앉아 차를 마시며 이야기를 나눴다.

스님은 출가한 지는 16년, 백흥암에 온 지는 5개월 정도 됐다고 했다. 백흥암이 정말 좋다는 스님은 수행 환경이 온전하게 유지되고 있는 백흥암에서 수행하는 큰 복을 누리고 있다고 했다.

개인적 수행 경험담을 이야기하고 조언을 구하자, 흔하지 않은 경험을 했다고 격려한 뒤 그 맑은 심신의 상태를 늘려가고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니 특히 계(戒)를 지키며 열심히 정진하라고 말했다. 계를 지키는 생활의 중요성과 함께 자신의 경험들을 들려주었다.

그리고 산사에 살면서 ‘산사 미학’으로 이야기할 만한 것으로 어떤 것을 이야기할 수 있겠느냐고 물었다. 그는 오염물을 배출하지 않는 친환경적 방식의 사찰 해우소가 어떠냐고 했다.

사찰들도 최근 들어 해우소(화장실)를 편리한 수세식으로 많이 바꾸고 있는데, 백흥암은 여전히 옛날의 친환경적 방식을 유지하고 있다. 처음에는 바닥에 쥐가 놀고 있는 것 등을 보며 놀라기도 하고 불편하기도 했다고 했다. 하지만 덕분에 주위 환경을, 지구촌을 오염시키는 공범이 되지 않고 있다는 점에서 마음이 편하다고 강조했다.

해우소를 예로 들어 이야기했지만, 산사에는 타락한 자본주의, 물질만능주의의 물결에 휩쓸리지 않고 소박함을 유지하고 있는 생활 방식이 많이 유지되고 있다. 그러한 삶의 가치와 중요성을 이야기하면서 공감을 나누기도 했다.

보화루에서 차를 마시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맑은 기운으로 충만해지는 것 같았다. 가을 햇살이 비쳐드는, 텅 빈 보화루가 지극히 아름답게 느껴졌다.

백흥암을 떠나기 위해 보화루를 내려왔다. 헤어지기 전, 이런 좋은 곳에서 수행할 수 있어서 좋겠다는 말을 건넸다. 스님은 복이 많다고 할 수도 있지만, 항상 부담을 느끼며 살고 있다고 답했다. 주위의 도움으로 수행하는 만큼, 항상 조금만 수행을 게을리 해도 응당한 과보를 받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며 수행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너무 심각하게 부담을 느끼지 말라고 하자, 부담을 느껴야 마땅하다고 재차 말했다.

그리고 백흥암 샘물 맛이 좋다며 물을 한 바가지 떠주며 맛보라고 했다. 정말 맛이 좋았다. 감로수라 할만했다.

◆맑게 정진하는 스님들, 산사 미학의 원천

백흥암에는 극락전 건물과 그 안의 수미단이나 탱화, 추사 글씨 현판 등 귀중한 문화재들이 많다. 이러한 문화재와 산사 풍경이 주는 아름다움도 크다. 하지만 무엇보다 그곳에서 수행에 몰두하는 스님들에게서 나오는 맑은 기운의 아름다움이 최고이지 않을까 싶다. 이야기를 나눈 스님뿐만 아니라 백흥암에 살고 있는 모든 스님들이 깨달음을 얻어 부처의 경지에 이르고자 정진하고 있을 것이고, 이런 데서 나오는 기운이 백흥암 미학의 뿌리이고 가지이며 꽃일 것이다. 수행에 매진하는 수행자들의 내면의 힘이 만들어내는 아름다움보다 더한 아름다움이 있을까.

백흥암을 나와 중앙암까지 올라갔다. 처음 가는 길이다. 만추의 단풍이 맑은 햇살에 빛나고 있었다. 스님과 이야기할 때 느낀 아름다움과는 다른, 기분을 들뜨게 하는 아름다움을 흠씬 누리며 가을 기운 속으로 빠져들어갔다.

백흥암은 30여년 전 육문 스님이 이곳에 자리를 잡으면서, 스님들의 수행 공간이 법당과 붙어있어 수행에 방해될 수 있다는 우려로 일찌감치 일반인의 산문 출입을 제한했다고 한다. 결제 기간에는 이곳 스님들은 매일 12시간씩 정진한다. 오전 3시30분 입선에 들어 5시까지 정진하고, 오전 6시 발우공양을 한다. 다시 7시30분에 오전 입선에 든다. 방선 후 점심공양을 한 뒤 오후 1시부터 정진이 이어진다. 일과는 밤 10시가 되면 마무리된다.

글·사진=김봉규 전문기자 bgkim@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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