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산책] 문(文)으로 만나는 사람들

  • 이은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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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9-11-28 08:12  |  수정 2020-09-09 14:39  |  발행일 2019-11-28 제23면
[문화산책] 문(文)으로 만나는 사람들
최덕수 <대구도시철도공사 차장>

연말이 다가오면서 모임이 많아진다. 이런저런 인연으로 맺어진 모임들이 우리 삶의 일부를 이루고 있다. 혈연, 지연, 학연에 따른 모임을 만들게 되면서 사람은 사회적 관계를 형성한다.

대부분의 모임이 친목이나 이해관계에 따라 생기고 없어지기를 반복한다. 그러나 세대를 넘어 70여년 이어지는 모임도 있다. 지난 주말 필자가 경남 사천에서 참석한 이이당계(二以堂契)가 그러한 모임이다.

이이당계는 유암(有菴) 이후림(李厚林·1893~1972) 선생을 존모하는 사람들이 1945년 결성한 유계(儒契)로, 74년째 이어지고 있다. 유암 이후림 선생은 일제 강점기에 전통교육을 고수하며 우리의 혼을 지키려고 애썼다. 당시 삼천포 경찰서에 연행되어 취조를 당하면서 전통식의 머리를 자르려하자, 지니고 있던 휴대용 칼로 목을 찔러 자결을 시도하였다. 유혈이 낭자하게 되자 저들이 취조를 중단하였다. 그 후 더 이상 사천지역 지사들을 박해하지 못하였다. 학당에서 전통교육을 계속하니 학생들이 일본인이 세운 개화 학교 학생 수보다 늘어났다. 일제는 헌병을 앞세워 선생에게 개화 학교 교사로 취임하라고 협박하다 거절하자 강제로 학당을 철폐했다. 그러한 선생의 정신을 지금까지 이어가면서 모임을 하는 모습은 매우 감동적이다.

유계는 굳이 분류하면 학연에 따른 모임이지만, 덕이 높은 선생을 숭모하는 사람들의 모임이다. 옛 학자들은 모임의 목적을 이름으로 표현하였다. 문(文)을 통해 벗을 모으고, 벗을 통해 자신의 인격을 돕는다. 이러한 ‘이문회우(以文會友) 이우보인(以友輔仁)’ 정신을 표현한 ‘이이회(二以會) ‘보인회(輔仁會)’ 등이 대표적인 경우다. 스승의 높은 덕을 존경하는 의미의 ‘이지회(二止會)’란 이름도 있다. ‘시경’에서 인용된 말로 ‘높은 산을 우러러보며 큰 길로 가도다(高山仰止 景行行止)’라는 글에서 두 지(止)자를 취하였다. 유계는 존경하는 스승을 숭모하는 목적에 맞게 모임 때마다 스승의 사당을 봉심하고 선생의 글을 읽고 토론하며 서로의 인격을 수양하는 시간을 갖는다.

경남 합천 초계면의 태동서원에서 모임을 갖는 이지회도 그러한 유계 중 하나이다. 이지회는 추연(秋淵) 권용현(權龍鉉·1899~1988) 선생을 숭모하는 사람들의 유계이다. 생전에 ‘이 시대 마지막 선비’라고 불렸던 선생은 시류를 따르라는 주위의 권고에 ‘전통의 학문을 지키는 사람도 있어야 한다’며 전통 유학자의 길을 고집했다. 말년에는 후학들이 건립한 태동서사에서 많은 제자들을 배출했다.

모임이 많아지는 연말을 맞아 의미 있는 모임을 한번 생각해 보았다.최덕수 <대구도시철도공사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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