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진문의 행복한 독서] 나는 나무에게 인생을 배웠다

  • 임성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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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9-11-29   |  발행일 2019-11-29 제38면   |  수정 2020-09-08
(우종영 지음·메이븐·299면·2019.9·16,000원)
“‘붉나무’가 곁에 있다면 삶을 포기하고 싶다는 말을 감히 할 수 없을 것”
[전진문의 행복한 독서] 나는 나무에게 인생을 배웠다

좋은 책을 한 권 읽고 나면 행복해진다. 마치 쾌적한 온도의 온천수에 몸을 담그고 상상의 나래를 한껏 펼칠 때처럼 푸근함을 느낀다. 최근에 읽은 이 책의 저자는 어려서 천문학자를 꿈꿨지만 색약 판정을 받고 다니던 고등학교도 그만둔 채 방황하다가 어느 원예농장에 들어가서 나무 키우는 일에 종사했고, 그 후 30년 경력의 ‘나무 의사’가 되어 아픈 나무와 죽어가는 나무를 살리는 거룩한 일을 한다.

체험 속에서 우러나온 그의 글 속에는 무엇보다 진정성이 담겨 있어서 좋다. 이 책 속의 ‘막 싹을 틔운 어린나무가 한동안 성장을 마다하는 이유’라는 글을 보면, 땅속의 뿌리 때문이라는 것이다. 작은 잎에서 만들어 낸 소량의 영양분을 자라는 데 쓰지 않고 오직 뿌리를 키우는 데 쓴다는 것이다. 눈에 보이는 생장보다는 자기 안의 힘을 다지는 데 집중한다는 것이다. 이것을 보고 저자는 “돌이켜 보면 암울하게만 여겼던 시간은 어쩌면 내 인생의 유형기가 아니었을까 싶다”고 적고 있다.

또 하나 ‘나를 놀라게 만든 어느 할아버지의 한마디’라는 글에는 정말 놀라운 이야기를 쓰고 있다.

어느 날 한 할아버지로부터 집 마당에 있는 모과나무 상태가 좋지 않으니 와줄 수 있느냐는 연락을 받았다는 것이다. 할아버지를 보자마자 그는 깜짝 놀랄 수밖에 없었다. 할아버지는 앞을 못보는 시각장애인이셨기 때문이다. 할아버지는 손으로 나무를 만져보다 대못을 발견하고 얼른 못을 뺐지만 상처가 많아 걱정이라고 했다. 저자가 시간은 걸리겠지만 치료하고 보살펴주면 살릴 수 있을 거라고 말하자 표정이 밝아졌다. “죄송한 말씀이지만 어르신은 어떻게 나무 상태를 그렇게 잘 알고 계세요? 혹시 누가 옆에서 가르쳐 준 건가요?” 저자가 이렇게 물었을 때 할아버지의 대답은 놀라웠다. “그걸 왜 몰라? 관심을 가지면 다 알게 되는 거지요.”

[전진문의 행복한 독서] 나는 나무에게 인생을 배웠다
<사>대구독서포럼 이사·전 대구가톨릭대 교수

이 대답에 대해 저자는 이렇게 쓰고 있다. “나는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너무 당연하고 옳은 말이기 때문이다. 나무의 상태를 볼 수 있는 눈이 있어도 관심이 없으면 나무가 다 죽어 가도 모른다. … 어떤 존재에 대해 관심이 없다는 것은 그것이 나에게 중요하지 않다는 말과 같다. 나에게 중요하지 않으니까 보고 있어도 보이지 않는 것이다.”

우리는 멀쩡하게 눈을 뜨고도 힘들고 아픈 이웃을 보지 못하고, 주위의 훌륭한 사람을 알아보지 못하고 지나지 않는지 부끄러워진다.

저자는 ‘무인도에 살게 된다면 데려가고 싶은 나무’란 글에서는 그 나무를 ‘붉나무’라고 밝히고 있다. 이름을 처음 듣는 이 나무를 그가 평생 함께할 반려 나무로 꼽는 이유는 수형이 아름답거나 목재 쓰임새가 유용해서가 아니었다.

그 붉나무는 “도시 어디든 아주 좁은 틈만 있으면 대체 어떻게 뿌리를 내렸는지 어느새 고개를 내민다. 하천 제방이나 도로 비탈면, 빈집의 마당, 오래된 보도블록 사이, 심지어는 축대의 빈틈까지 조금이라도 빈 공간이 있으면 슬그머니 발을 들여놓고는 시치미를 뚝 떼고 잘도 자란다”라는 것이다.

그는 이렇게 말하며 끝을 맺는다. “어느 외딴 곳에 떨어져 혼자 살아가야 할 때도 붉나무가 곁에 있다면 삶을 포기하고 싶다는 말을 감히 할 수 없을 것 같다. 더욱이 가을에 한가득 달리는 열매를 소금 대신 쓸 수도 있으니 평생을 곁에 두고 함께할 나무로 충분하지 않을까.”

평생 아픈 나무를 치료하고 죽어가는 나무를 살리면서 살아가는 ‘나무 의사’ 우종영씨, 그는 나무로부터 인생을 배우고 철학을 실천하는 눈이 밝고 마음이 따뜻한 사람이다. 지난 봄에 연둣빛으로 뾰족이 돋았다가, 그 뜨거운 여름을 잘도 견디더니 어느새 다갈색으로 물들어 가을의 가지 끝에 매달려 있던 나뭇잎을 간밤에 분 바람에 미련 없이 우수수 떨구어 스스로 놓으며 나목이 되어가는 나무. 나도 나무에게 인생을 배워야겠다.

<사>대구독서포럼 이사·전 대구가톨릭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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