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주의 영화] 집 이야기

  • 윤용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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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9-11-29   |  발행일 2019-11-29 제42면   |  수정 2019-11-29
가족과 함께한 소중함…추억하고 꿈꾸는 공간
20191129

직장 근처에서 혼자 서울살이를 하고 있는 은서(이유영). 여섯번째인지, 일곱번째인지 반복되는 이사를 멈추고 정착할 새 집을 찾고 있지만 결정이 쉽지 않다. 결국 집을 구할 때까지 아버지가 살고 있는 인천 고향 집에 잠시 머물기로 한다. 24시간 출장 열쇠를 전문으로 하는 아버지 진철(강신일)은 이혼 후 가족들이 떠나버린 집에서 혼자 살고 있다. 예상치 못하게 아버지와 단 둘이 지내게 된 은서. 은서는 고향 집에서 지내는 동안 잊고 있었던 가족의 흔적들을 마주하게 되고, 진철은 은서를 통해 조금씩 닫혔던 마음의 문을 열기 시작한다.

‘집 이야기’는 모두가 추억하고 꿈꾸는 공간으로서의 집에 주목한다. 한때는 한 집에 모여 살았지만 여러 이유로 제각기 다른 집에 뿔뿔이 흩어져 살게 된, 특별할 것 없는 은서네 가족 이야기를 통해서다. “제가 찾는 집이 아닌 것 같네요.” 은서는 정착할 새 집을 찾아 점심시간마다 공인중개사와 함께 빈 집들을 둘러보지만 쉽게 결정을 내리지 못한다. 은서가 찾아 다니는 회사 근처의 레지던스와 오피스텔은 살면 너무 편하지만 어딘가 차갑고 쓸쓸하다. 엄마의 말처럼 “떠나라고 만든 집” 같다.


가족이 떠나 버린 집에서 마음 닫고 사는 아버지
고향집에 잠시 머물기로 한 딸 통해 채워진 따뜻함


서른 살의 은서는 신문사 편집기자다. 그래서일까. 머무는 집보다는 떠나는 집에 익숙해져 있고, 마음둘 곳을 잃어버린 요즘의 젊은 세대임에도 여전히 아날로그적인 감성에 치우쳐있다. 영화는 그런 은서의 감정과 시선을 통해 누구나 하나씩 간직하고 있는 집에 대한 향수와 가슴 뭉클한 정서를 이끌어낸다. 인생이 만남과 이별의 반복이듯 우리가 사는 공간인 집과 그 공간을 채우고 비웠던 사람에 대한 이야기를 담는다.

많은 것들이 사라져가고 있는 시대에 ‘집 이야기’는 오래된 것들, 사라져가는 것들을 가만히 어루만진다. 열쇠가게가 달린 마당 좁은 은서의 고향 집엔 시간이 멈춘 듯 아날로그 오브제들이 가득한데, 이는 은서가 오랫동안 잊고 지냈던 가족의 흔적을 발견하는 순간이다. 영화를 연출한 박제범 감독은 “아날로그라는 것이 단순히 느리고 불편하고 손이 많이 가는 것 같지만 그것만의 정서가 있다고 생각했다”며 “시대가 지나면서 변화해 온 집, 가족에 대한 이야기와도 잘 맞는다”고 말했다.

24시 출장 열쇠가게를 운영하는 진철은 밤낮으로 손님의 전화를 기다리며 폴더폰을 손에서 놓지 않는다. 누군가의 문을 언제든 달려가 열 준비가 되어있지만, 정작 가족에게는 마음의 문을 굳게 걸어잠근 채 살아가고 있다. 그런 아빠의 집에서 은서는 방황하고 있는 자신의 삶의 열쇠를 찾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부모와 자식, 다양한 세대가 생각하는 가족과 집에 대한 담론을 탄탄한 연출과 배우들의 섬세한 내면 연기로 담백하게 담아낸 작품이다. (장르:드라마 등급:12세 관람가)

윤용섭기자 yys@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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