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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우석의 電影雜感 2.0] 한국영화 100년을 빛낸 영화감독 - ⑨ 이경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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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인터넷뉴스부기자
  • 2019-1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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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습적 문법 비트는 ‘괴랄스러움’…공고히 구축한 ‘이경미 월드’

‘미쓰 홍당무’(2008)
‘비밀은 없다’(2016)
‘아랫집’(2017)
넷플릭스 오리지널 영화 ‘페르소나’
이경미 감독은 10대 시절 영화감독이 아닌 연극배우를 꿈꿨다. 당연히 대학 진학도 연극영화과를 희망했으나 정작 연극연출가였던 부친의 반대에 부딪혔다. 막강한 반대를 꺾을 수 없다고 판단한 그는 아무 대학이나 가서 연극을 계속하겠다는 심정으로 입학원서를 부친에게 넣어달라고 부탁했단다. 당시 러시아와 수교를 맺던 시기라 그런지 부친은 러시아어과에 원서를 접수시킨다. 그렇게 한국외국어대 러시아어과를 마치고 3년 동안 해운회사를 착실히 다니던 이경미는 수능시험을 다시 볼 필요가 없다는 장점에 끌려 한국예술종합학교 영상원에 들어가게 된다. 이곳에서 그는 여고생의 동성애적 감정을 그린 ‘거짓말’과 연애의 동상이몽을 간파한 ‘기억’, 배우 박해일을 캐스팅한 ‘오디션’ 같은 단편들을 차례로 내놓았고, 2004년에 만든 ‘잘돼가? 무엇이든’으로 제6회 서울국제여성영화제 최우수상과 관객상, 제3회 미쟝센단편영화제 비정성시부문 최우수작품상, 제2회 아시아나국제단편영화제 대상을 휩쓴다. 이 영화를 통해 그에겐 영화의 스승이라 할 박찬욱 감독과의 인연도 시작된다.

‘잘돼가? 무엇이든’은 회사 경리 일을 하는 지영과 희진이 주인공이다. 입사 4개월에 접어드는 지영은 먼저 입사한 나이어린 동료 희진이 못마땅하다. 사장이 자신을 신뢰하는 게 자랑스러워 희진은 그가 시키는 탈세조작에 열성적이다. 거래처를 반씩 나눠 세금조작을 하기로 해놓고 몰래 지영의 몫까지 손대는 일도 생긴다. 사장은 같은 장부에서 더 많은 탈세를 한 희진을 칭찬한다. 둘의 갈등을 폭발 직전까지 몰고 가는 영화는 “싫다는 감정에는 삶을 달리게 하는 에너지가 있다”는 연출의도처럼 꿈과 환상, 현실을 뒤섞어 보여주다 두 주인공이 기묘한 우정에 도달하며 끝을 맺는다.

미쟝센단편영화제 심사위원 자격으로 이 작품을 처음 본 박찬욱은 당시 이경미에게 만약 단편 말고 장편영화를 찍는다면 무슨 이야기를 하고 싶냐고 물었고, 이경미는 ‘잘돼가? 무엇이든’의 희진이 주인공인 이야기를 하고 싶다고 답했다. 그의 재능을 믿은 박찬욱의 제안으로 이경미는 곧 모호필름에서 함께 일하게 된다.


배우 박해일 캐스팅, 단편 ‘오디션’
‘잘돼가? 무엇이든’영화계 시선집중
영화의 스승 박찬욱과도 인연 시작

가장 주목할 데뷔작 선정‘미쓰 홍당무’
예상치 못한 지점 이끄는 ‘비밀은 없다’
12년만에 이영애 스크린 소환‘아랫집’
넷플릭스 옴니버스‘페르소나’ 참여
관객·평단 극단적 호불호의 독특함



현장경험을 꼭 해보고 싶었던 그는 박찬욱 감독의 ‘복수 3부작’의 마지막 편인 ‘친절한 금자씨’(2005)의 스크립터를 맡으며 본격적으로 일하기 시작한다. 이 작품으로 감독이 현장에서 자기가 원하는 걸 어떻게 취하는지에 관해 배운 이경미는 박찬욱과 충무로 중견 스태프들의 지원 속에서 첫 번째 장편영화 데뷔작을 준비하게 된다.

‘미쓰 홍당무’(2008)는 박찬욱이 연출이 아닌 제작으로 이름을 올린 첫 번째 작품으로(이후 그는 봉준호의 ‘설국열차’를 비롯해 몇 편의 영화를 거침없이 제작한다) 시도 때도 없이 얼굴이 빨개지는 안면홍조증에 걸린 29세 러시아어 교사 양미숙을 주인공으로 내세운 캐릭터 코미디 영화다. 배우 공효진이 연기한 양미숙은 ‘잘돼가? 무엇이든’에 나왔던 지영의 집요함과 희진의 뻔뻔함이 한데 모인 것처럼 보인다. 안면홍조증뿐 아니라 촌스러운 패션에 신경질적인 말투와 호전적인 성격으로 사람들에게 따돌림을 받는 인물이지만 오랫동안 짝사랑해온 동료 교사의 사랑을 얻기 위해 불철주야 노력하는 인물이다. 온갖 콤플렉스와 착각으로 똘똘 뭉친 주인공은 피부과에서 연애상담을 하고 옷깃만 스쳐도 자신을 좋아한다고 착각하고, 쓸데없이 학교운동장에서 삽질을 하는 등 예상치 못한 돌발행동을 일삼지만 이경미는 끝내 그녀를 사랑스러운 여자로 만들고 만다.

그해 한국영화계에서 가장 주목할 만한 데뷔작으로 신인감독상을 3번이나 수상했음에도 흥행 성적이 신통찮아서였는지 이경미는 차기작을 내놓기까지 8년이란 시간을 기다려야 했다. ‘미쓰 홍당무’ 이후 ‘여교사’라는 제목의 시나리오를 쓰던 그는 박찬욱 감독의 제안으로 ‘여교사’의 서브 플롯을 발전시켜 차기작을 구상한다. 시놉시스 단계에선 ‘불량소녀’라는 제목이었고 크랭크인 당시엔 ‘행복이 가득한 집’이라는 반어적인 제목으로 알려졌던 ‘비밀은 없다’(2016)는 국회 입성을 앞둔 정치인 부부가 선거기간 동안 끔찍한 사건에 휘말리게 되는 이야기를 그린 영화로 스릴러 영화를 기대했던 관객들을 계속해서 예상치 못한 지점으로 이끈다. “한국 스릴러의 많은 관성을 찢어버리고, 자매애와 모성애의 틀마저 구겨버리고, 그 틈으로 억압된 것들을 복권시킨 붉은 비명 같은 영화”(김혜리)라는 평가를 이끌어내며 천편일률적으로 평준화되고 있는 충무로의 기획영화들 속에서 감독의 개성이 왜 중요한지 증명해낸다. 한국 영화계에 보기 드문 참신한 성취를 이뤘음에도 개봉 2주 만에 종영되며 전작보다 참패했지만 지금도 계속 재평가가 이어지고 있다.

2017년 한국영화계에서 활동하는 개성 강한 10명의 영화감독들이 단편영화를 제작하는 과정을 관찰 예능 방식으로 그린 JTBC ‘전체관람가’에서 이경미는 ‘친절한 금자씨’를 함께 했던 배우 이영애를 무려 12년 만에 스크린으로 소환해 ‘아랫집’(2017)을 내놓는다. 아랫집에서 올라오는 담배 연기로 고통 받는 한 여자의 이야기를 독특한 발상으로 풀어내 ‘이경미 월드’를 공고히 한다.

올해 4월 이경미는 넷플릭스 오리지널 영화 ‘페르소나’에 참여한다. 가수이자 배우인 아이유에게 영감을 받은 4명의 영화감독들이 그녀를 기용해 전혀 다른 캐릭터와 이야기를 선보이는 옴니버스 영화였다. 여기서 ‘러브 세트’(2019)를 연출한 이경미는 아이유를 배우 배두나와 맞붙여 테니스코트 위에서 불꽃 튀는 승부를 벌이며 아빠의 애인을 질투 어린 시선으로 바라보는 딸과 호락호락하지 않은 아빠의 애인을 퀴어 서사로 풀어낸다.

괴이하고 악랄하다는 말로 ‘괴랄(怪辣)하다’는 표현은 이경미의 작품들을 설명하는데 많이 쓰인다. 내놓는 작품마다 관객과 평단의 호불호가 극단적으로 갈리는 이유는 장르의 관습적인 문법을 비틀어 예상치 못한 독특한 이야기를 내놓기 때문일 것이다. 갈수록 1천만 영화만 찾아 헤매는 충무로의 을씨년스러운 나날 속에서 그가 자신의 개성을 지키기 어려울까 두렵다.

독립영화감독·물레책방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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