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생법안 볼모 비판 아랑곳…패트법안 원천봉쇄 의도

  • 정재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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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9-11-30   |  발행일 2019-11-30 제3면   |  수정 2019-11-30
한국당, 필리버스터 카드 꺼낸 이유는
“최대 지연” 강경투쟁 기류 반영
유재수 검찰수사 시간벌기 해석도
여론 살피며 민생법안 처리할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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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어린이 교통사고 피해자 부모 기자회견에서 고 김태호군의 어머니(왼쪽 둘째)가 눈물을 흘리고 있다. 스쿨존에 과속카메라 설치를 의무화하는 내용의 도로교통법 개정안, 일명 ‘민식이법’은 이날 본회의에서 처리될 예정이었으나 개회가 지연되면서 본회의 통과가 불투명해졌다. 연합뉴스

자유한국당이 패스트트랙(신속처리안건) 법안에 맞서 29일 ‘필리버스터(무제한 토론)’를 꺼내든 것은 법안 상정 자체를 원천봉쇄하기 위한 것이다.

당초 정치권은 한국당이 선거법 개정안과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 설치 법안의 본회의 상정에 맞춰 필리버스터를 시작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선거법은 이미 부의됐고 공수처 법안은 12월3일 자동 부의를 앞두고 있어, 공수처 법안 부의 이후 열리는 본회의에서 필리버스터에 나설 것으로 예상됐다.

이날 국회 본회의에서는 대구경북 지역의 숙원 법안인 ‘포항지진특별법’을 비롯해, 어린이 교통안전 강화를 위한 일명 ‘민식이법’(도로교통법 개정안), 사립유치원 회계투명성 강화를 위한 ‘유치원 3법’ 등 주요 ‘민생 법안’이 처리될 예정이었다. 때문에 이날 필리버스터를 진행할 경우 ‘민생은 신경쓰지 않고 정쟁에 몰두한다’는 비판에 직면할 것이 불보듯 뻔한 상황이었다. 실제로 한국당 내에서도 전날 의총까지 민생법안들에 대한 필리버스터를 놓고 반대 여론이 만만치 않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같이 비판이 예상되는 상황에도 불구하고, 한국당이 필리버스터 카드를 조기에 꺼내든 이유는 패스트트랙 법안의 상정 자체를 막아야 한다는 위기감에 따른 것으로 보인다. 한국당 관계자는 “패스트트랙 법안의 상정 자체를 못 하도록 하기 위해서는 국회의장이 예상하지 못했을 때 필리버스터를 시작해야 했다”며 “토론이 종결되지 않으면 국회의장이 패스트트랙 안건을 상정할 수 없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대구의 한 초선 의원도 영남일보와의 통화에서 “패스트트랙 법안을 막아내는 것이 당의 최우선 목표”라며 “시간을 최대한 지연시키는 것도 좋은 전략이라는 것이 당내 공감대를 얻은 것 같다”고 말했다.

또 최근 패스트트랙 대응을 놓고 당내에서 ‘협상파’와 ‘강경 대응파’로 나눠진 상태에서, 강경 대응이 필요하다고 주장한 의원들이 힘을 얻었다는 분석도 나온다. 황교안 대표가 단식을 중단했지만, 패스트트랙 법안에 대해서는 강경 투쟁이 필요하다고 밝힌 만큼 당내에서도 강경 기류가 강해져 ‘조기 필리버스터’를 택했다는 설명이다. 이외에도 유재수 전 부산부시장 등에 대한 검찰 수사를 살펴보기 위해 ‘시간 끌기’에 나섰다는 해석도 있다. 검찰이 유 전 부시장 수사에 가시적인 결과물을 내놓을수록 공수처 설치를 반대해온 한국당의 대국민 여론전이 힘을 받을 것이기 때문이다.

한국당의 남은 과제는 ‘국민 여론전’이 될 것으로 보인다. 정기국회가 끝날 때까지 필리버스터를 이어나갈 경우, 실생활에 시급한 법적·제도적 장치를 미뤄지게 했다는 비난을 살 수 있다. 당장 내년도 예산안의 법정시한(12월2일) 내 처리도 어려워져, 준예산 집행이 벌어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이를 의식한듯 한국당은 국회 본회의를 열어 민식이법 등 민생법안을 처리한 뒤 필리버스터를 열자고 한발 물러섰다. 나경원 원내대표는 이날 기자회견을 자청해 “민식이법 등 주요 민생 법안은 애초 필리버스터 대상 법안에 포함되지 않았다”며 “민생 법안을 먼저 처리하고 필리버스터 기회를 보장해 달라는 것이 저희의 입장”이라고 밝혔다. 나 원내대표는 또 “우리는 모든 법안을 필리버스터할 필요가 없다. 일부 철회하겠다고 주장한 사실을 분명히 말씀드린다”며 “그럼에도 민주당은 필리버스터를 철회하지 않으면 민생법안을 처리할 수 없다고 한다. 이런 적반하장이 어디 있는가”라고 민주당에 화살을 돌렸다.

정재훈기자 jjhoon@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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