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산책] 우주 식량의 맛

  • 이은경
  • |
  • 입력 2019-12-02 08:21  |  수정 2020-09-09 14:38  |  발행일 2019-12-02 제23면
20191223_010230811540001i1.jpg
오전 1시 정각에 편의점 문이 열렸다. 손님이 아니라 K의 친구다. “폐기 내놔.” “폐기?” “편의점 알바가 폐기도 몰라? 유통기한 지난 음식!” K는 따로 챙겨둔 바구니를 꺼냈다. “신입치곤 일 잘하네. 어디 보자, 도시락 1개, 우유 2개, 오오 식빵 좋아. 이거면 일주일은 견디겠다.” K의 친구는 편의점 심야 알바 전임자인데 최근 잘나가는 웹툰 작가 작업실로 들어간 후 알바를 그만뒀다. “뉴스 봤어? 김환기 작품 경매가?” “132억원이라며? ‘우주’라는 작품.” “나도 추상화나 그릴까? 검은 캔버스에 점 하나 찍으면 칼 세이건의 ‘창백한 푸른 점’ 오마주지 뭐. 윽 이게 뭐야?” K가 남긴 콜라를 마시던 친구가 얼굴을 찡그렸다. “김빠진 건데 그냥 마셔. 우주 식량이라 생각하고.”

실제로 우주 콜라는 탄산 함량이 적다. 콜라를 마시고 트림을 하면 지구에서는 중력이 있으니까 가스만 나오는데 우주에서 트림을 하면 콜라도 같이 뿜어 나올 수 있기 때문이다. 우주선 안에는 민감한 부품들이 많아서 과자 부스러기도 금지되는 마당에 끈적한 음료수가 둥둥 떠다닌다면 그야말로 재앙이다. “뭘 먹든 우주에서 먹으면 맛이 끝내주겠다.” “뭘 먹든 우주에선 맛을 잘 못 느껴서 간을 세게 해야 해. 게다가 처음 우주로 올라가면 속이 울렁거려서 밥도 잘 못 먹어.” “우주 식량도 전투 식량하고 비슷하게 생겼어?” 친구의 질문에 K는 치약을 들어보였다. “처음엔 이렇게 생긴 것을 짜 먹었지.”

우주 식량은 유리 가가린이 처음 먹었다. 1961년 보스토크 1호를 타고 인류 최초로 지구 상공을 돌 때 고기가 든 튜브와 초콜릿 튜브를 짜서 먹었다. 70년대에는 비닐 백에 든 음식을 물에 불려 먹을 수 있는 방식으로 발전했고 지금은 프랑스의 일류 셰프인 알랭 뒤카스가 최고급 레스토랑 못지않은 맛의 음식을 우주로 보내고 있다. 식판은 평평한 대신에 음식이 든 팩은 찍찍이로 그릇은 자석으로 고정시켜 둔다. “지금은 어떻게 만드는데?” “마트 가서 장보고 요리하는 건 똑같아. 그 후 건조기에 넣고 수분을 뺀 다음 진공 포장을 하지.” “아하, 핫바처럼 말이지?” 그때 술에 잔뜩 취한 손님이 편의점 문을 밀면서 소리쳤다. “하빠!” “예?” “하빠!” 어리둥절하는 K 대신에 친구가 핫바 하나를 카운터로 갖고 왔다. “1천500원입니다. 손님!” “단골손님이야?” K가 속삭이며 물었다. “응 근데 이제 큰일 났다 우리.” 창가에 앉은 손님이 핫바 껍질을 까기 시작했다. “술은 취했지만 핫바 먹는 게 뭐가 문제야?”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손님은 핫바를 마이크 삼아 고래고래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벼얼비치 허러넌! 다리럴 건너어~”김영준
기자 이미지

이은경 기자

기사 전체보기

영남일보(www.yeongnam.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문화인기뉴스

영남일보TV





영남일보TV

더보기




많이 본 뉴스

  • 최신
  • 주간
  •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