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산책] ‘상상’할 때

  • 이은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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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9-12-03 08:17  |  수정 2020-09-09 14:37  |  발행일 2019-12-03 제2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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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응규(EG뮤지컬 컴퍼니 대표이사)

원 소스 멀티 유즈(OSMU)는 검증된 하나의 소재를 통해 다양한 장르로의 전환으로 각광받고 있는 전략이다. 뮤지컬 산업 또한 완성도가 높은 원작의 활용을 통해 이러한 전략을 적지 않게 사용하고 있다. T.S. 엘리엇의 시 ‘지혜로운 고양이가 되기 위한 지침서’를 차용한 뮤지컬 ‘캣츠’, 가스통 르루의 ‘오페라의 유령’을 차용한 뮤지컬 ‘오페라의 유령’, 빅토르 위고의 ‘레미제라블’을 차용한 뮤지컬 ‘레미제라블’, 푸치니의 ‘나비 부인’을 차용한 뮤지컬 ‘미스 사이공’과 같은 빅4 뮤지컬만 보더라도 가장 상업적으로 성공한 OSMU를 기반으로 한 각색(Adaptation)의 사례로 손꼽을 수 있다.

이와 같은 작품들은 검증된 문학작품의 골격을 그대로 가지고 각색되기 때문에 작품의 완성도를 보장받을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실패에 따른 위험부담을 줄일 수 있게 되는 장점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너도 나도 쉽게 접근할 문제도 아니다. 탄탄한 원작에 기대어 재창조된 콘텐츠라는 점에서 원작과 비교 대상이 될 수 있고 무대예술이라는 제한적 특성 때문에 원작이 담고 있는 상상력을 무대화하는 과정에서 많은 도전자들이 자본의 부족이라는 핑계로 두 손을 들 때가 많기 때문이다.

문학작품을 그대로 차용하는 전략과 달리 이야기를 한번 비틀어 성공한 작품도 있다. 대표적으로 뮤지컬 ‘위키드’를 들 수 있는데 스티븐 슈워츠가 작사·작곡한 이 작품은 2003년 뉴욕 브로드웨이에서 초연한 이후 토니상·그래미상 등 세계 유수 시상식에서 수많은 트로피를 석권한 브로드웨이 역사상 최고의 블록버스터 뮤지컬이다. 이 작품의 특징은 문학작품의 뼈대를 그대로 차용한 각색이 아닌, 프리퀄(Prequel)이라는 점에 있다. 원작의 숨겨진 이야기를 다루는 이른바 속편에 해당되는 이야기를 ‘프리퀄’이라고 하는데 뮤지컬 ‘위키드’는 소설 ‘오즈의 마법사’의 배경과 인물들만 차용했을 뿐 원작에서 보이지 않는 숨겨진 이면을 다루고 있다. 오즈에 떨어진 ‘도로시’의 이야기로 전개되는 소설과는 달리, ‘도로시’가 오즈에 떨어지기 전의 이야기를 들려주며 원작 소설과 연결한다.

“왜 도로시는 초록마녀에게 잡혔을까” “왜 초록마녀는 구두에 집착할까” “뇌 없는 허수아비와 용기 없는 사자, 양철 나무꾼은 어쩌다가 저렇게 되었을까” 작곡가와 작가의 단순한 질문에서 비롯된 대단한 상상력이다.

저작권이 소멸된 문학작품을 각색한 작품들은 이미 많고 일찌감치 큰 성공을 거두었다. 뮤지컬 ‘위키드’는 빅4 뮤지컬에서 했던 ‘각색’의 개념과 더불어 작가의 창조적인 상상력이 더해진 대표적인 뮤지컬로서 소위 안전빵을 추구하는 프로듀서와 창작자들에게 좋은 영향력을 끼치리라 생각한다.

자, 그렇다면 양손의 집게손가락을 관자놀이에 가져다 대고 미간을 찌푸리며 한번 외쳐보자.

“상상!”

 

이응규(EG뮤지컬 컴퍼니 대표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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