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규완 칼럼] 섣부른 정책의 부메랑

  • 박규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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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9-12-05   |  발행일 2019-12-05 제30면   |  수정 2019-12-05
4대강 사업·부동산 대책 등
섣부르고 잘못된 판단으로
역대정부마다 부메랑 맞아
무릇 정책은 불편부당하고
꼼꼼한 사전검증이 필수다
[박규완 칼럼] 섣부른 정책의 부메랑
논설위원

1991년 1월. 43만의 미군을 포함한 34개국 다국적군 68만명이 페르시아만에 집결했다. 부여된 임무는 ‘사막의 폭풍작전’. 쿠웨이트를 침공한 이라크를 응징하기 위해서였다. 대규모 공습으로 이미 초토화된 이라크는 지상군이 투입된 지 나흘 만에 항복했고 전쟁은 싱겁게 끝났다. 1차 걸프전의 전말이다.

2차 걸프전은 달랐다. 2003년 3월, 미·영 연합군은 이라크 바그다드로 진격해 사담 후세인의 24년 철권통치를 종식시켰다. 하지만 미국이 이라크 침공의 명분으로 내세웠던 대량살상무기나 테러조직과의 연계는 끝내 입증하지 못했다. 미국의 이라크 침공이 무장테러집단 IS(이슬람국가) 발호의 동인(動因)이란 점도 뼈아프다. IS는 미국의 후세인 정권 축출 후 이라크 권력 공백을 틈타 일어난 수니파 반란군이다. 미국이 신중했더라면 IS는 태동되지 않았고 수많은 생명이 IS에 희생될 이유도 없었다.

딘 애치슨 미 국무장관은 1950년 1월 미국의 태평양 방위선에서 한반도를 제외시켰다. 그 해 6월 북한이 남침을 감행했고 미군 5만명이 한국전쟁에서 산화했다. 2016년 6월 브렉시트 국민투표를 실시한 영국은 3년 넘게 혼돈이 지속되고 있다. 미국의 이라크 침공과 ‘애치슨 라인’ 후퇴, 영국 브렉시트 딜레마는 정치 지도자의 섣부르고 잘못된 판단이 얼마나 큰 재앙을 부를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극명한 사례다.

국내에서도 정책 오류의 부메랑을 맞는 경우가 허다하다. 영남권 신공항 백지화가 대표적이다. 김해공항 확장 미봉이 향후 어떤 혼란을 부를지 종잡기 어렵다. 부산·울산·경남이 불쑥 던진 가덕도 신공항 재추진 카드는 언제든 영남지역 갈등으로 발화될 뇌관이다. 대구통합공항 이전과 맞물리며 신공항 해법은 갈수록 난해해지는 형국이다. 박근혜정부의 정치적 복선(伏線)이 깔린 어설픈 봉합의 결과다.

이명박정부의 4대강 사업 역시 환경영향평가와 공론화를 제대로 거치지 않은 대가가 가볍지 않다. 해묵은 녹조·수질 논쟁이 계속되는 데다 보(洑) 철거와 존속으로 갈리는 여론 분열도 심각하다. 당시 이명박 대통령이 TV에 나와 로봇 물고기로 수질 오염을 막을 수 있다고 주장하던 장면을 생각하면 헛웃음이 나온다. ‘클린 디젤’도 명백한 정책 실패다. 2009년 이명박정부는 이산화탄소 배출량이 적다는 이유로 경유차에 대해 주차료 할인 등 각종 혜택을 주는 ‘클린 디젤’ 정책을 펼쳤다. 결과적으로 미세먼지의 주범 경유차를 장려한 꼴이 됐으니 딱한 노릇이다.

경실련에 따르면 문재인정부 출범 후 서울 아파트가격이 평당 3천415만원에서 5천51만원으로 올랐다고 한다. 17번의 부동산 대책이 약발을 받지 않았다는 방증이니 현 정부의 정책 헛발질은 비난받아 마땅하다. 하지만 2014년 박근혜정부가 LTV(주택담보인정비율), DTI(총부채상환비율) 등 부동산 규제를 대폭 완화한 게 가격 급등의 불씨가 됐음은 부인하기 어렵다.

문재인정부는 설익은 정책 남발이 많다. 일단 질러놓고 보는 특유의 조급함이 고질에 가깝다. 최저임금 인상과 주 52시간제의 획일적 시행이 그렇고, 여러 문제점이 불거지는 탈원전 정책을 밀어붙이는 것도 우려스럽다. 지난달 28일 발표한 교육부의 ‘대입 공정성 강화 방안’도 마찬가지다. 공정성 확보와 공교육 정상화 어느 한 쪽도 만족시키지 못하는 어정쩡한 안이다. 16개 대학 정시 확대와 학생부종합전형의 비교과 활동 폐지 정도로 공정성이 담보될 수도 없거니와 국·영·수 문제풀이 중심의 과거로 회귀될 가능성이 농후하다. 어차피 부작용 없는 완벽한 제도는 없다. 수시든 정시든 고소득층이 유리하다는 점도 인정해야 한다. 폐해를 최소화하는 장치를 마련하는 게 정부의 역할이다. 백년대계 교육정책이 위정자 지시에 의해 급조돼선 곤란하다. 무릇 정부정책은 불편부당해야 하며 꼼꼼한 사전 검증이 필수다. 정치공학이 개입되거나 불순한 동기에서 비롯된 정책은 부메랑으로 돌아올 개연성이 크다. 이미 확인된 경험칙(經驗則)이다.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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