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칼럼] 좋은 게 마냥 좋지만은 않다

  • 원도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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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9-12-09   |  발행일 2019-12-09 제31면   |  수정 2019-1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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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도혁 논설위원

‘외화내빈(外華內貧)’. 겉은 화려하지만 속은 빈약한 상태를 지칭하는 말이다. 생김새와 겉차림은 훌륭하지만 대화를 나눠보거나 어울려 보면 교양·상식의 얕은 밑천이 금방 드러나는 사람이 해당된다. 사람 뿐 아니라 화려한 외관과는 달리 실속이 없거나 오히려 불편을 주는 사태가 우리 생활 주변에 적지 않다.

인도와 차도의 경계석, 보도와 자전거도로 경계석은 주로 매끈한 대리석으로 시공돼 있다. 보기 좋고 맑은 날에는 별 이상이 없다. 하지만 비나 눈이 오면 상황이 달라진다. 이 대리석은 궂은 날 아주 미끄럽다. 자칫 잘못 디뎠다가는 미끄러져 뒤로 발라당 뒤집어지기 십상이다. 당해 본 뚜벅이족들은 눈·비가 올 때 이런 매끈한 도로 경계석을 밟지 않으려고 애쓰느라 진땀이 날 정도다. 차량으로 이동하는 구청장·군수 등 기관단체장들은 이런 사실을 잘 모를 것이다.

달콤한 우물이 먼저 마르고, 좋은 나무가 먼저 베인다고 했다. 좋은 물맛 때문에 사람들이 너도나도 퍼가면 단우물은 금세 바닥을 드러낼 수밖에 없다. 곧게 큰 재목도 마찬가지다. ‘굽은 나무’가 선산을 지키는 이치다. 송곳이 여러 개 있다면 가장 날카로운 것이 가장 먼저 무뎌질 것이다. 여러 자루의 칼 중에서도 날이 가장 잘 서 있는 칼이 먼저 상하게 돼 있다. 그 잘 뚫리는 송곳과 잘 드는 칼을 다들 선호하기 때문이다.

밀림의 무적자 코끼리의 치명적인 운명을 상아가 결정한다면 아이러니가 아닌가. 실제로 코끼리는 그 멋지고 강력한 무기인 상아로 인해 밀렵꾼에게 불태워지는 고통을 당한다. 상아가 엄청 비싼 보물이기 때문에 죽임을 당하는 것이다. 만약 상아가 없었다면 사자·호랑이도 맞닥뜨리길 꺼리는 코끼리는 자연수명을 누렸을 것이다.

사람에게도 이런 이치는 적용된다. 돈 많고 미모까지 갖춘 젊은 여성을 배우자로 선택한 사람이 의외로 일찍 불행해진 경우를 어렵잖게 보게 된다. 배우자로부터 받은 심한 스트레스로 암에 걸려 세상을 떠난 경우도 있었다. 복권에 당첨되면 일생 최고의 기분을 만끽할 것이다. 막강한 자금력으로 하고 싶은 일을 마음대로 할 수 있으니까. 하지만 복권 당첨자를 몇년 뒤 추적해 보니 대다수가 더 불행해져 있더라는 조사 결과도 이미 나와 있다. 도박으로 폭삭 망했거나 부부 간 이혼하는 경우가 많고, 형제 자매 간 다툼으로 원수가 되는 등 거금으로 인한 부작용이 심각하더라는 것이다. 물론 당첨자가 그 거금을 잘 사용하지 못한 탓이다. 돈의 주인이 되지 못하고 돈의 노예가 됐기 때문이다. 이처럼 좋은 게 마냥 좋은 결과로 귀착되지는 않는다.

유대인의 지혜서에 나오는 다윗왕의 반지에 ‘이 또한 잊혀지리라’라는 문구가 새겨져 있다고 한다. 전쟁에서 승리로 환호할 때 교만하지 않게 하고 반대로 큰 절망으로 낙심할 때도 좌절하지 않고 다시 일어설 수 있도록 주문한 글귀이다. 세공인이 지혜의 왕자 솔로몬에게 요청해 받은 글귀이다.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는 군자의 요건에 ‘호운(好運)을 만났다고 해서 지나치게 좋아하지 않고, 악운을 만났다고 해서 지나치게 괴로워하지 않는다’는 말을 넣었다.

올해 대유행하고 있는 A형 간염의 경우는 위생이 항상 최선은 아님을 말해준다. 올해 11월 셋째주까지 감염자가 1만7천148명에 달해 지난 7년간(2012~2018) 누적 환자수 1만6천710명보다 많다고 한다. ‘대유행’이라는 용어를 쓸 수 있는 규모다. 그런데 국립암센터 연구진은 이 간염이 2009년 대유행때 취약층에 대한 접종 누락 및 방치로 10년 지난 현재 대유행이 예고됐다고 분석했다. 이 A형 간염은 1960년대 이전 출생자까지는 자연 감염에 따른 면역력이 생겼기에 별 문제가 없었다고 한다. 이후 1970년 이후부터 1990년대 출생자들은 위생수준 향상으로 오히려 면역 획득이 줄었다는 것이다. 위생이 좋아졌는데 도리어 면역력이 나빠졌다는 것은 ‘위생의 역설’에 다름 아니다. 좋아 보이는 것이 항상 좋은 쪽으로 작용하지 않는다는 사실은 이 오묘한 세상 이치를 되새기게 한다.

원도혁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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