中企 주 52시간제 시행 최대 1년6개월 미뤄져

  • 구경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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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9-12-12 07:31  |  수정 2019-12-12 08:16  |  발행일 2019-12-12 제3면
정부, 경영계 요구 사실상 수용...1년 계도기간 부여
20191212
이재갑 고용노동부 장관이 11일 오전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주52시간제 현장 안착을 위한 보완대책’을 발표한 후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연합뉴스

정부가 내년 1월부터 주 52시간제가 적용되는 50~299인 기업에 대해 최대 1년6개월의 계도기간을 부여하기로 했다. 주 52시간제 위반 행위에 대한 단속을 유예하는 것으로 사실상 주 52시간제 시행이 연기된 셈이다. 주 52시간제 시행준비가 덜 된 기업들은 일단 한숨을 돌리게 됐다. 반면 노동계는 정부에 노동시간 단축 의지가 있는지 의심하며 크게 반발하고 나섰다.

50∼299인 기업 시행준비에 한숨 돌려
300인 이상 기업에도 최장 9개월 부여

특별연장근로 ‘인가 사유 확대’ 도마에
대·중소기업 노동 양극화 심화 우려도
노동계, 법적대응 방침…헌법소원 검토


◆사실상 1년6개월 유예

이재갑 고용노동부 장관은 11일 정부서울청사에서 브리핑을 갖고, “내년 1월부터 주 52시간제 적용 대상인 50∼299인 기업에 대해 1년의 계도기간을 부여한다”며 “계도기간 동안 법위반이 적발될 시 최대 6개월의 시정기간이 부여된다”고 밝혔다.

당초 노동부는 50∼299인 기업 중에서도 50∼99인 기업에 대해서는 최장 1년6개월의 계도기간을 부여하는 방안을 검토했으나, 일괄적으로 1년의 계도기간을 부여하기로 했다. 50∼299인 기업에 주 52시간제 시행을 위한 준비 기간을 1년 더 준 셈이다.

작년 3월 개정된 근로기준법은 법정 노동시간 한도를 주 52시간으로 제한하며 사업장 규모에 따라 단계적으로 이를 시행하도록 했다. 이에 따라 대기업을 포함한 300인 이상 기업은 작년 7월부터 주 52시간제 시행에 들어갔고 노동시간 제한의 특례에서 제외된 업종의 300인 이상 기업은 올해 7월부터 시행하고 있다.

50∼299인 기업은 내년 1월부터 주 52시간제가 적용된다. 중소기업에게 더 많은 준비기간을 준 것이다. 게다가 이날 조치로 준비 기간을 1년6개월 더 늘려준 셈이다. 정부는 300인 이상 기업에도 최장 9개월의 계도기간을 부여했다.

정부가 계도기간을 준 것은 경영계 요구를 일정 부분 수용한 결과다. 경영계는 근로기준법개정을 통해 주 52시간제 시행 자체를 미룰 것을 요구했다.

◆특별연장근로 인가 사유도 확대

노동부는 이번 시행규칙 개정을 통해 주 52시간제의 예외를 허용하는 특별연장근로인가 사유를 확대한 것도 논란이 되고 있다.

노동부는 이날 △인명 보호와 안전 확보 △시설·설비의 장애·고장 등 돌발 상황에 대한 긴급 대처 △통상적이지 않은 업무량의 대폭 증가 △노동부가 국가 경쟁력 강화와 국민 경제 발전을 위해 필요하다고 인정하는 연구개발 등도 인가 사유에 포함하기로 했다.

이에 따라 △응급환자 구조·치료 △갑작스럽게 고장이 난 기계 수리 △대량리콜 사태 △원도급의 갑작스러운 주문으로 촉박한 납기를 맞추기 위해 일시적인 연장근로 초과가 불가피한 경우 등에도 특별연장근로를 쓸 수 있다는 게 노동부의 설명이다.

현행 근로기준법은 ‘특별한 사정’이 있는 기업이 노동부의 인가와 노동자의 동의를 받아 특별연장근로를 쓸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관련 시행규칙은 특별연장근로를 사용할 수 있는 사유로 자연재해, ‘재난 및 안전관리기본법’에 따른 재난, 이에 준하는 사고로 명시하고 있다.

주 최대 68시간의 노동이 가능했던 과거에는 특별연장근로를 쓰는 기업이 거의 없었지만, 작년 7월 300인 이상 사업장의 주 52시간제 시행 이후 특별연장근로 사용은 급증하는 추세다.

노동부는 지난 8월 일본의 수출 규제 조치로 관련 부품·소재 국산화 등에 나선 사업장에 대해 특별연장근로를 허용했고, 9월에는 아프리카돼지열병(ASF) 방역 활동을 하는 사업장에도 이를 허용했다. 이는 일본의 수출 규제 조치 등이 재해와 재난, 혹은 이에 준하는 사고에 해당한다는 시행규칙 해석에 따른 것으로, 시행규칙 자체를 개정한 결과는 아니다.

특별연장근로 인가 사유 확대가 대·중소기업의 노동 조건 양극화 심화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노조 조직률이 높은 대기업은 노조가 반대하면 특별연장근로를 쓰기 어렵지만, 중소기업은 노조 조직률이 낮아 특별연장근로의 활용이 쉽기 때문이다. 노동계는 특별연장근로 인가 사유 확대를 위한 시행규칙 개정에 대해서는 법적 대응에 나설 방침이다. 특별연장근로 인가 사유에 경영상 사유를 포함하는 것은 특별연장근로를 ‘특별한 사정’이 생긴 경우로 제한한 근로기준법의 취지에 맞지 않는다는 게 노동계의 주장이다. 노동계는 정부가 추진 중인 시행규칙 개정이 행정권 남용을 통한 기본권 침해의 소지도 있다고 보고 헌법소원을 제기하는 방안도 검토 중이다.

구경모기자 chosim34@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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