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산책] 막걸리 유감(有感)

  • 이은경
  • |
  • 입력 2019-12-12 08:08  |  수정 2020-09-09 14:34  |  발행일 2019-12-12 제23면
[문화산책] 막걸리 유감(有感)
최덕수<대구도시철도공사 차장>

연말 모임에는 술이 빠질 수 없다. 옛말에 술은 ‘백약의 으뜸(酒爲百藥之長)’이라 했고, 반면 ‘백독의 근원(百毒之源)’이라고도 했다. 좋은 술도 알맞게 마셔야 약이 된다. 프랑스에 포도주, 독일에 맥주, 스코틀랜드에 스카치위스키가 있듯이 한국에는 서민들과 친숙한 막걸리가 있다.

필자가 모시는 선생님은 30여년 전부터 불로막걸리 마니아이다. 필자도 뒤따라 마시다 보니 여름에는 제조일로부터 3일, 겨울에는 5일째 막걸리가 맛있다는 나름의 기준을 가질 정도가 되었다. 그런데 우리가 애호하는 불로막걸리가 언제부터인가 맛이 변하기 시작했다. 이제는 유통기한이 10일이던 것이 30일로 늘어났다. 급기야는 불로동에서 만들어지던 불로 쌀막걸리는 청도의 주소로 생산되고 있어 놀라움을 금할 수 없다. 좀 거창하게 말하자면 대구의 정체성이 흔들려버렸다. 이미 대기업에서 만드는 막걸리들이 다양한 맛과 홍보 전략으로 사람들의 입맛을 사로잡고 있다. 그리하여 무한기술로 개발되는 타지역의 우수한 막걸리, 무아스파탐 막걸리 등에 불로막걸리는 자리를 다 양보하였다.

한때는 글로벌화로 모두 세계로 나아가야 한다고 외쳤지만, 나무가 자기의 뿌리를 벗어나서 살 수 없는 것처럼 우리의 삶도 지역의 기반을 벗어날 수 없는 것이다. 그런데 대구를 대표했던 불로 막걸리가 맛이 변하여 대구의 막걸리 마니아들에게 아쉬움을 주는 상황은 심히 유감스럽다. 말이 나왔으니 말이지 어찌 막걸리뿐이겠는가. 지역의 여러 가지 일들이 안방을 지키지 못하고 외지에 밀리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예를 들어 지역의 대표적 서화가 석재(石齋) 서병오 선생의 경우도 그렇다. 근대 초 팔능거사(八能居士)로 이름을 날린 석재 선생은 시·서·화에 뛰어난 ‘삼절(三絶)’로 꼽히는 인물이다.

석재는 활동영역이 국내뿐만이 아니었다. 중국을 왕래하면서 손문, 제백석 등 당대의 거목들과 교유했다. 그의 작품은 대구경북의 사찰과 서원 등에 편액·주련으로 남아 있을 뿐 아니라 전국 곳곳에 산재해 있다. 그는 많은 작품을 남겼으나 아직 작품을 전시할 기념전시관 하나 대구에 없다. 수년 전부터 매년 석재작품 기념전시회가 열리고 있을 뿐이다.

모든 지자체가 자기 지역의 콘텐츠를 발굴해 알리는 경쟁의 시대인데, 훌륭한 우리 지역 서화가의 작품을 소수의 사람만이 향유하는 것은 매우 아쉬운 일이다. 막걸리 맛은 되살리는 노력에 따라 곧 회복될 수 있을지 모르나, 예술품은 한 번 사라지면 영원히 없어지는 것이다. 타 지역의 사람들이 대구에 와서 그 작품을 구경할 수 있는 석재 기념관 하나 없다는 것은 대구의 수치이다. 막걸리 마시면서 해보는 생각이다. 최덕수<대구도시철도공사 차장>

기자 이미지

이은경 기자

기사 전체보기

영남일보(www.yeongnam.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문화인기뉴스

영남일보TV





영남일보TV

더보기




많이 본 뉴스

  • 최신
  • 주간
  •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