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인물 - 이 세계] 3대째 옹기굽는 영덕 백광훈 옹기장

  • 남두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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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6-05-28 07:56  |  수정 2016-05-28 07:58  |  발행일 2016-05-28 제8면
54년 옹기장이의 내공…정성 느낀 고객 전국서 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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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덕 유일의 옹기장인 백광훈씨가 작업장에서 옹기 제작에 온 힘을 쏟고 있다. 첫 작업인 옹기 바닥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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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개라는 도구를 이용해 형태를 잡아가는 타름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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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채와 방망이를 이용해 옹기형태를 잡아가는 타름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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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성된 옹기를 아들과 함께 건조실로 옮기는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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옹기에 새겨넣은 영덕옹기 표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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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덕 오촌리에서 조부와 부친에 이어 3대째 전통 옹기만을 굽는 백광훈 옹기장(67). 그는 “옹기를 만들 때가 가장 행복한 시간”이라며 웃는다. 경북에서 옹기업이 가장 성행한 영덕의 마지막 전승자인 백 옹기장은 2003년 경북도 무형문화재(제25-나호)로 지정됐다.


영덕지역 마지막 옹기 전승자
옹가지·시루·새우젓독 등 40종
일년에 단 한번 15일동안 구워
김장 대목 하루 20시간씩 작업
“가업 잇겠다는 외아들 대견해”



옹기는 삼국시대부터 음식물의 저장용구, 주류 및 장류 발효 도구 등으로 다양하게 사용됐다. 영덕의 옹기제작은 300년 전부터 전승돼 왔다. 40여년 전만 하더라도 30여기의 옹기굴(가마)이 있었으나 현재는 백 옹기장의 것이 유일하다. 그가 만드는 전통옹기로는 독, 뚜껑, 옹가지, 시루, 새우젓독, 단지, 버지기, 너리기, 소주고리, 설장군, 누불장군, 툭바리(뚝배기), 버리 등 약 40종이 있다. ‘대두’라고 불리는 큰 독(130~140ℓ)부터 토종꿀 단지용(0.7ℓ)에 이르기까지 크기와 모양이 다양하다.

백 옹기장은 지품면 오천1리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나 어릴 때부터 할아버지, 아버지가 옹기 만드는 것을 보면서 자랐다. 그는 초등학교를 졸업하던 해인 13세 때부터 형을 따라 옹기를 배우기 시작했다. 돈을 벌어야 했기 때문이다. 옹기 만드는 일에 뛰어든 어린 그를 가장 괴롭힌 것은 ‘연기’였다. 하루에 20시간씩 일해야 하는 작업장 내부는 추위를 견디기 위해 피워놓은 모닥불의 연기로 꽉 차 숨조차 쉴 수 없었던 것. 특히 추석을 쇠고 나서부터 설날까지는 옹기장이에게는 놓칠 수 없는 김장대목이기에 매일 새벽 4시부터 밤 12시까지 일하는 것은 물론 밤을 꼬박 새우는 날도 수없이 많았다.

24세가 되던 해 청송에서 옹기를 잘 아는 지금의 아내와 결혼한 후 1남3녀를 두고 한동안 순탄한 생활을 했지만 오래가지 않았다. 1970년대 플라스틱 제조회사들이 ‘옹기에는 인체에 나쁜 화공약품이 사용된다’고 주장해 그를 포함한 많은 옹기장이들이 타격을 받은 것이다. 10여년 전부터는 옹기 만드는 일도 기업화돼 대량생산·대량판매 시스템이 구축되기 시작했다. 가내 수공업 형태인 백 옹기장도 경쟁력을 잃어 2~3명 있던 일꾼을 모두 내보내고 혼자 힘으로만 만들어야 했다. 그러나 옹기에 대한 그의 고집과 정성이 입소문을 타면서 현재는 그의 옹기를 찾는 고객의 수요를 충당하지 못할 정도다. 대구, 울산, 부산 등지에서 상당수 고객이 제발로 찾아 왔다.

백 옹기장은 1년에 단 한 번만 옹기를 가마에 굽는다. 이 때문에 무려 15일 동안 쉬지 않고 직접 불을 지핀 12통의 가마 앞을 지켜야 한다.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한 재래식 제조법으로, 가마에 불을 때서 서서히 굽기 때문에 견고함이 다르다. 그는 자신의 제품에 문제가 있다면 어디든지 달려가 직접 반품해 준다. 실제 사례는 많지 않았지만 그만큼 옹기에 자신감을 가지고 있다. 백 옹기장은 “돈 벌 생각에 많이 만드는 것보다 정성껏 적게 만들어 파는 게 낫다”며 “내가 만든 옹기는 수백년이 지나도 변하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기자가 찾은 옹기작업장에서 그는 온 힘을 쏟아가며 부채와 방망이 모양의 기구를 사용해 바닥치기와 타름타기를 하고 있었다. 연신 땀을 흘리며 작업하던 그는 기자의 질문에 제대로 답하기 어려울 만큼 작업도구와 온몸을 이용해 때리고 누르며 옹기를 빚고 있었다.

칠순을 바라보는 나이다보니 힘에 부쳐 그만두고 싶을 때가 많지만 지금은 든든한 후계자가 있어 즐겁게 작업한다고 했다. 후계자는 다름아닌 외동아들 민규씨(34)로 3년 전부터 본격적으로 옹기제작 기술을 전수하고 있다. 너무 힘든 일이라 물려주기 싫었지만 민규씨는 대학시절 옹기와 관련된 전공을 택해 이론적인 공부까지 마쳤다. 백 옹기장의 눈에는 아직 갈 길이 멀지만 가업을 이으려는 민규씨가 대견스럽다. 며느리, 어린 손주 2명과 함께하는 즐거운 생활도 덤으로 얻었다.

백 옹기장은 “힘든 일을 피하는 요즘 젊은이와 비교하면 믿음직스럽다. 최고의 옹기를 만들려는 의지가 대견하다”고 믿음을 보였다. 민규씨는 “주위에서 옹기제작의 힘든 과정을 모르고 나를 부러워 할 때도 있다”면서 “가업을 계속 잇고 싶은 생각뿐”이라고 밝혔다.

전통 대포와 칸 가마 축조기술까지 보유하고 있는 백 옹기장. 그에게는 아들이 전통기법을 따르는 훌륭한 옹기장이로 성장하는 것을 지켜보는 것만 남았다.

글·사진=남두백기자 dbnam@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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