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맨입으로 안되지” 與野대치 기름부은 정세균 의장 음성파일

  • 이영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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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6-09-27   |  발행일 2016-09-27 제3면   |  수정 2016-09-27
정치권 내년 대선 앞두고 기선잡기 대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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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대 국회가 김재수 농림축산식품부 장관의 해임건의안 처리 과정을 두고 극한의 갈등에 빠졌다. 이번 국회 첫 국정감사가 열린 26일 국회 상임위의 국정감사는 야당 단독으로 열리거나 아예 열리지 않는 사태가 발생했다. 이러한 국회 상황을 반영하듯 서울 여의도에서 바라본 국회 앞 신호등에 빨간불이 켜져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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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수 농림축산식품부 장관 해임건의안 의결과 관련해 새누리당이 강력히 반발하며 모든 의사 일정을 보이콧하면서 국정감사 첫날인 26일부터 곳곳에서 파행을 빚고 있다. 26일 국회에서 열릴 예정이던 국회 미방위의 미래창조과학부 등 11개 기관에 대한 국정감사에서 야당 의원들이 새누리당 소속인 신상진 위원장과 의원들을 기다리고 있다. 오른쪽은 비어 있는 위원장석과 새누리당 의원석. 연합뉴스

김재수 농림축산식품부 장관의 해임건의안을 둘러싼 여야 간의 강경대치가 정세균 국회의장의 중립성 위반 논란까지 겹치면서 한층 증폭되고 있다. 특히 양측의 날선 대치의 이면에는 여소야대(與小野大)의 달라진 정치지형에서 이번에 밀리면 내년 대선까지 끌려다닐 수 있다는 속내가 작용하고 있어 어느 지점에서 극적인 타결점을 마련할 수 있을지 앞이 보이지 않는 상황이다.

“세월호나 어버이연합 중 하나 내놓아야”
해임안 처리과정서 의장석 대화 녹음돼
새누리 “직무집행금지 가처분 신청 검토”
야권 “갈등 풀려는 의도…중립위반 아냐”


◆“김재수 해임안 가결은 날치기”

국감일정은 물론 향후 국회일정까지 잠정적으로 전면 ‘보이콧’을 선언한 새누리당은 26일 헌정 사상 초유의 국회의장 형사고발까지 추진하는 초강수를 준비 중이다.

새누리당은 우선 이번 사태를 ‘날치기’로 규정했다. 정 의장이 자신의 ‘친정’인 더불어민주당과 야합해 국회법을 무시하고 김 장관 해임건의안을 상정, 야당 단독으로 표결 처리했다는 것이다.

지난 23일 국회 본회의에서 대정부질문이 아직 끝나지 않았는데도 자정을 앞두고 정 의장이 일방적으로 질문을 중단시킨 데다, 곧바로 24일 본회의를 다시 열어 해임안을 상정하는 과정에서 여야 간 협의를 거치지 않았다는 게 새누리당 주장이다.

격앙된 새누리당에 기름을 부은 것은 정세균 의장의 “세월호나 어버이연합 (청문회) 둘 중 하나 내놓으라는데 안 내놔, 그래서 그냥 맨입으로 그래서 그냥은 안 되는 거지”라는 발언이다. 23일에서 24일로 넘어가는 자정 무렵 김재수 장관의 해임건의안 본회의 통과 당시 정세균 의장이 국회의장석 마이크가 켜진 상태에서 대화를 나눈 것이 녹음되어 공개된 것.

새누리당은 정치적 중립성 의무를 진 정 의장이 야당과 ‘작당’해 불순한 정치적 목적을 달성하려 했다고 성토했다. 김도읍 원내수석부대표는 26일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정 의장을 국회 윤리위원회에 제소하고, 직권남용 혐의로 형사 고발하는 방안도 검토 중이라고 밝혔다. 김 수석부대표는 “정 의장에 대한 직무집행 금지 가처분 신청을 법원에 제출하는 것도 검토하고 있고, 헌법재판소에 권한쟁의 심판을 청구하는 등 취할 수 있는 모든 조치를 취하겠다”고 말했다. 새누리당은 정 의장이 문제의 발언을 할 당시의 본회의장 상황을 촬영한 원본도 확보할 계획이다.

◆정 의장 “맨입으로 안되지” 음성파일 공방

이에 대해 정 의장은 “야당이 해임건의안 제출을 결의한 상황에서 물러설 수 있는 걸(명분을) 줘야 하는데, 새누리당이 요지부동이라 협상의 여지가 없었던 것 아니냐”며 “여야 간에 협상을 통해 해결하길 바랐던 것”이라고 해명했다. 해임건의안을 야당이 요구해온 세월호나 어버이연합 청문회와 연계시키는 구상을 새누리당이 거부하는 과정에서 비롯되었다는 설명이다. 그러나 이달 초 ‘국회 개회사 파동’ 이후 한 달도 안 돼 이런 사태가 일어났다는 점에서 앞으로 중립적 임기 수행에 대한 의구심은 쉽게 가시기 어려울 듯 하다.

두 야당은 정 의장에 대한 새누리당의 비판에 대해 ‘택도 없는 소리’라며 적극 옹호했다.

더불어민주당 우상호 원내대표는 “세월호나 어버이연합을 야당이 받고, 여당이 불리한 해임건의안을 처리하지 않도록 권유하는 것은 오히려 조정자(국회의장) 역할로 중립 위반이 아니다”라고 말했고, 국민의당 박지원 위원장은 “갈등을 풀어보려고 노력했다고 평가한다”면서 “의장이 그러한 협상을 하는 것이 정치”라고 반박했다.

◆여야 강경대치 부른 ‘김재수 해임안’ 왜 나왔나

더불어민주당이 중심이 되어 김재수 농림축산식품부 장관에 대한 해임건의안이 제출된 데에는 일차적으로는 김 장관이 취임 전날인 지난 4일 모교인 경북대 동문회 모바일 커뮤니티에 야당 단독으로 치러진 국회 인사청문회에 대해 다소 격한 속내를 털어놓은 것이 ‘발단’이다. 김 장관은 이 글에서 “시골 출신에 지방학교를 나온 이른바 ‘흙수저’라고 (나를) 무시한 것이 분명하다”고 항변했다. 그는 “명예를 실추시킨 언론과 방송, 종편 출연자를 대상으로 법적인 조치를 추진하겠다”고도 했다. 김 장관은 자존심 회복 차원으로 날린 ‘항변’이 외부로 알려지자 “적절하지 못한 행동이었다”며 곧바로 사과했다.

해임건의안 표결을 앞두고, 국회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 간사를 맡아 인사청문위원으로 김 장관을 검증했던 국민의당 황주홍 의원이 일종의 ‘양심 선언’을 해 눈길을 끌기도 했다.

황 의원은 23일 자신의 블로그에 글을 올려 “청문회 당시 자신과 같은 당 정인화, 김종회 의원의 견해는 ‘약간의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그 정도면 장관으로서 적합하다고 본다’는 것이었다고 소개하며, 지난 1일 인사청문회 당시 제기된 △어머니 의료보험 의혹 △전세 특혜 △대출금리 특혜 등 김 장관에 대한 의혹이 해소됐다고 판단했다”고 밝혔다.

이어 황 의원은 “보다 본질적인 문제는 청문회에서의 내용이 해임건의의 대상이 되지 않는다는 데 있다”며 “국회법에 따르면 국회가 청문회 결과를 놓고 할 수 있는 일은 경과보고서를 채택하거나 하지않는 일뿐이며, 헌법에 보장된 해임건의는 임명돼 직(職)을 수행하고 있는 자에 대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임명된 이상, 이후에는 김재수 장관의 ‘업무적 하자’에 대해서만 해임건의를 할 수 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이영란기자 yrlee@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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