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문시장 ‘정적’ 한일로 ‘함성’…주말 대구 두 모습

  • 서정혁,박병일,김형엽,이현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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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6-12-05 07:37  |  수정 2016-12-05 08:45  |  발행일 2016-12-05 제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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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소 저녁시간대라면 야시장으로 활기가 넘쳤을 대구 서문시장은 관광객의 발길이 끊긴 조용한 곳으로 변했다. 박병일기자 park10@yeongnam.com

서문시장

4지구 화재로 손님 크게 줄어
야시장까지 문 닫아 적막감만


대구 중구 한일로 일대와 서문시장. 같은 대구, 같은 중구의 지척 거리에 위치한 두 곳은 주말인 지난 3일 저녁 너무나 대비됐다. 박근혜 대통령 퇴진을 촉구하는 집회가 열린 한일로는 생동감 넘쳤다. 수만 개의 촛불이 대구 도심을 환하게 밝혔고, 시민들의 함성은 12월의 한기마저 몰아냈다. 반면, 서문시장은 시민들의 사랑을 받았던 야시장마저 불이 꺼진 채 정적이 감돌았다. 지난달 30일 화마가 할퀴고 간 뒤 아직 씻어내지 못한 생채기를 고스란히 안은 채….

이날 오후 6시, 제5차 대구시국대회가 열린 중구 한일로 특설무대 주변. 두꺼운 외투와 손난로 등으로 무장한 시민들은 저마다 촛불을 들고 한 자리씩 차지하고 앉았다. 자리를 마련하지 못한 이들은 주변 인도에서 촛불과 손피켓을 들고 집회에 동참했다. 거리를 가득 메운 2만5천여 명(집회 측 추산)의 참가자는 특설무대에서 흘러나오는 노래를 따라 부르며, 연신 ‘박근혜 퇴진’을 외쳤다. 외국인 참가자도 눈길을 끌었다. 미국 캘리포니아에서 왔다는 A씨(27)는 “미국에서의 시위는 보통 폭력사태를 동반하는데 촛불을 들고 평화적으로 행진하는 한국인들을 보며 감동을 느꼈다”며 “한국인들이 포기하지 않고 집회를 이어나갔으면 한다”고 말했다.

오후 7시, 거리행진이 시작됐다. 한일로에서 출발해 3.5㎞가량 떨어진 수성구 범어동 새누리당사까지 가는 행진은 선발대와 후발대로 나뉘어 2개 방향으로 진행됐다. 행진이 시작되자 집회 참가자 수는 3만5천명으로 불었다. 50개의 횃불이 선발대를, 7m 크기의 고래 모형 풍선이 후발대를 이끌었다. 대열이 지나갈 때마다 시민들은 차에서 경적을 울리며 응원했다. 인근 식당가에서 식사를 하던 시민들도 거리로 나와 함께 ‘박근혜 퇴진’을 외쳤다. 도심에 자리한 아파트에서도 응원이 이어졌다. 행진대가 아파트 앞을 통과할 때 주민들은 창문을 열어 촛불을 흔들며 시위에 힘을 보탰다. 오후 8시30분쯤 새누리당 대구시당·경북도당에 도착한 집회 참가자들은 자유발언을 이어갔다. 8시48분엔 30초간 촛불소등 퍼포먼스도 선보였다. 일부는 집회가 끝나고 해산하는 과정에서 당사를 향해 계란을 던지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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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일 오후 대구 국채보상로에서 열린 ‘박근혜 퇴진 5차 대구시국대회’에 참가한 시민들이 박 대통령의 퇴진을 촉구하고 있다. 이현덕기자 lhd@yeongnam.com

한일路

박 대통령 퇴진 시국대회 열려
촛불 든 시민들로 생동감 넘쳐


하지만 같은 시각, 679개의 점포가 하루아침에 잿더미로 변한 서문시장의 모습은 적막감 그 자체였다. 오후 6시쯤 서문시장엔 칼국수·어묵 등을 파는 몇몇 가게만 영업 중이었다. 손님도 손에 꼽을 정도였다. 칼국수 가게를 하고 있는 박모씨(여·45)는 “서문시장에 사람들이 제일 많이 붐비는 때가 주말인데 4지구에서 불이 난 뒤로 손님이 3분의 1 수준으로 확 줄었다”고 푸념했다. 한 시간이 지나자 그나마 문을 열고 있던 가게들도 하나둘씩 영업을 끝냈다. 점포들이 문을 닫는 오후 7시를 전후로 야시장 가판이 들어와야 하지만 아무런 움직임도 없었다.

야시장을 기대하고 온 관광객들도 아쉬움을 나타냈다. 부산에서 온 관광객 이모씨(33)는 “야시장이 안 하는 줄 모르고 왔는데 어둡고 적막해 안타깝다. 인터넷으로 보던 모습과 완전히 달라 놀랐다”고 말했다. 오후 8시가 되자 시장은 어둠 속으로 완전히 빠져들었다. 자원봉사 부스와 상황실을 제외하곤 인적이 드물었다. 찬바람까지 불었다. 2지구 주차빌딩 전광판엔 200면이 넘는 주차공간이 남아있다고 알리고 있었다.

2지구 건너편에서 30년 넘게 이불장사를 한 허경순씨(여·60)는 “주말인데도 손님을 10여 명밖에 받지 못했다. 불이 난 뒤로 물건을 사러 온 사람보다 화재 현장을 구경하러 오는 사람들이 더 많은 것 같다”며 “2지구가 서문시장에서 유동인구가 제일 많은데 하루아침에 이렇게 썰렁하게 변하니 안타깝기 그지없다”고 말했다.

서정혁기자 seo1900@yeongnam.com
박병일기자 park10@yeongnam.com
김형엽기자 khy0412@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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