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인터뷰] 장기진 애플애드벤처 대표

  • 노인호,황인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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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7-07-22 08:40  |  수정 2017-07-22 08:40  |  발행일 2017-07-22 제22면
“창업기업 발굴 왜 하냐고요?…흙수저 창업가들 나와 같은 아픔 겪지 않아야죠”
20170722
황인무기자 him7942@yeongnam.com

20일 대구콘서트하우스 앞 네거리. ‘대구시에서 관광효과가 뛰어난 2017년 스타가게를 찾습니다’라는 현수막이 내걸려 있었다. 관광효과가 뛰어난 골목상권, 전통시장의 우수한 가게를 ‘스타가게’로 선정·육성해 지역경제를 활성화하기 위한 것이다.

같은 날 장기진 대표(34)의 애플애드벤처. 대구 최초 공유형 사무실인 빅워크 스페이스가 있는 건물 1층은 4개월가량 비어 있다. 지난 3월 빅워크 스페이스가 문을 연 이후 2~3층 사무실이 손님들로 북적이자 편의점 등을 하겠다며 임대 문의가 이어졌지만 장 대표는 이곳을 비워두고 있다. 장 대표는 여기에 경북에서 나오는 식재료 직거래 매장을 만들고, 젊은 요리사들이 그 재료로 요리를 만드는 공유형 팝업 레스토랑을 만들 예정이다. 반응이 좋으면 프랜차이즈 형태로 독립시키는 테스트 장소로 활용하기 위해서다.

대구시가 기존의 스타가게를 찾아 나섰다면 장 대표는 없는 스타가게를 만들기 위해 있다. 이를 위해 수개월간의 임대료 수입도 포기한 채 제대로 된 식재료 구입 채널과 젊은 요리사를 구하고 있는 중이다.


“창업가로 나름 성공…또다른 창업가 발굴
사회에 좋은영향 미치게 돕는게 내 책무
변화하는 대구 생각하며 새 사업에 투자
거창한 것 보다 실생활 아이디어 찾아야

기업문화가 있는 기업 만드는데 최우선
올해 안 벤처캐피탈 론칭 큰 그림 그려”



“저는 창업해서 나름 성공했습니다. 창업가로 나와 같은 창업기업을 하나 더 낳는 것이 사회적 책무라고 생각합니다. 그것이 크든 작든 말이죠. 결혼을 해서 자식을 낳듯 기업가는 또 다른 기업가를 낳기 위해 노력해야 하고, 그 기업이 사회에 좋은 영향을 미칠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편안하게 먹고 살 만큼 돈도 벌었는데 왜 굳이 위험하게 창업 기업을 발굴, 투자를 하느냐”는 질문에 대한 장 대표의 답이다.

장 대표는 지역의 창업기업을 발굴해 적게는 수천만원, 많게는 수억원을 투자하는 것은 물론 스핀오프 형태로 자회사를 설립해 회사 직원이 대표로 독립할 수 있도록 돕고 있다. 대구 최초의 공유형 사무실인 빅워크 스페이스도 장 대표의 운전기사로 일했던 직원에게 사무실 관리 등의 업무를 익히게 한 뒤 장 대표가 엔젤투자자로 나서, 회사 대표로 독립시킨 것이다.

그가 창업에 관심을 가지는 이유는 간단하다. 자신과 같은 흙수저 출신의 창업자들에게 똑같은 아픔을 겪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다.

성공한 창업가라고 하면 명문대를 졸업했거나 한때 방황 한 후 정신을 차리고 다시 공부를 한 성공스토리 같은 것이 있을 법하다. 또 한 곳에만 죽어라 도전해 이뤄낸 이야기도 있기 마련이다. 하지만 장 대표에게 그런 건 없다.

야구 선수가 꿈이었던 장 대표는 중학교 1학년 때 야구선수로 활동했다. 100m를 11초대 초반에 끊을 정도로 빨랐다. 하지만 어머니의 극심한 반대로 대구중학교에서 대륜중학교로 전학하면서 방황을 시작했다. 같은 반 50여명 중 운동부를 제외하면 성적은 거의 꼴찌였다. 어머니가 인문계 고교만 들어 가라고 신신당부해 겨우 대륜고에 진학했다. 입학과 동시에 체대 입시를 준비한다는 핑계로, 오후 3시30분에 하교했다. 등록금이 없어 어머니가 현금서비스를 받는 것을 보고도 오락실을 계속 다녔다. 수학여행 한 번 간 적 없는 단체 생활 부적응자였다. 고등학교 3학년 6월쯤 운동부 출신 친구가 특기생으로 대학진학이 좌절된 이후 미친 듯이 공부하는 것에 자극을 받아 공부를 하기 시작했다. 그렇다고 명문대에 진학한 건 아니다. 성적에 맞춰 경산대 보건과에 진학했지만, 입학 후 첫날 단체기합을 주는 것에 항의해 대학에서도 왕따로 지냈다.

어려운 가정형편에 아르바이트를 해야 했다. 야구했던 경험을 살려 KBO에서 하는 심판교육을 받은 뒤 사회인 야구 심판을 했다. 2시간에 3만5천원, 하루 많이 벌 때는 24만5천원을 벌였다. 토·일요일 이틀 심판을 보면, 친구들이 한 달 패스트푸드가게에서 버는 만큼의 돈을 벌기도 했다. 2002년부터는 대리운전도 했다.

2003년 쇼핑몰을 만들어 부산 전통시장에서 키티 제품을 사와 팔기 시작했지만, 하나도 못팔고 문을 닫았다. 그러다 야구심판을 하다 알게된 지인의 소개로 인터넷 쇼핑몰 회사에 월 70만원을 받고 취직했다. 학교는 야간으로 돌렸다. 회사 콜센터에서 일하다 보니 쇼핑몰 전체 운영 시스템을 알게 됐다. 이후 환불 대신 포인트로 내주고, 클릭 수가 많은 제품을 전면에 배치하는 나름의 빅데이터 방식을 도입하는 등 마케팅홍보 시스템을 도입해 매출이 늘기 시작했다. 사장과 자신을 포함해 5명뿐이던 직원은 4년 만에 170명으로 늘었고, 3천만원이던 연 매출은 30억원으로 늘었다.

회사 매출은 100배 늘었지만, 장 대표의 월급은 3배도 채 늘지 않았다. 사장은 5% 내외의 회사 지분을 주기로 했던 약속도 지키지 않았다. 함께 회사를 키워온 자신을 외면했다는 생각에 회사를 박차고 나와 창업을 하기로 했다. 하지만 어머니는 월 200만원짜리 월급쟁이로 남아있길 원했다.

“창업을 할 때는 모두가 두렵습니다. 젊든, 나이가 많든 상관이 없습니다. 그러다 보니 부모들은 모두 적은 월급이라도 안정적인 노예(?)로 살길 바라죠. 저도 처음 창업할 때 많이 당했습니다. 하지만 제 뒤를 이어 창업하는 사람들은 저처럼 당하게 하고 싶지 않습니다. 마음과 돈 모두 가난하지 않게 하고 싶습니다.”

친구와 함께 창업, 경리직원 면접을 봤다. 2008년 창업 첫해 매출 50억원, 그다음 해 100억원, 3년째 300억원, 4년째 500억원 벌겠다고 했다. 모두 ‘사기꾼’이라며 돌아갔다. 하지만 장 대표는 애플애드벤처 창업 첫해 6천만원 매출을 올려 직원들에게 1천만원의 보너스로 줬다. 그리고 창업 만 1년 만에 59억원의 거래규모를 달성했고, 2년 만에 196억원을 기록했다. 창업 9년째인 현재 거래규모는 400억원 정도다. 2009년 국내 마케팅업계 최초로 기술보증기금 투자 유치에 성공했고, 2011년에는 최단 기간에 대구스타기업에 선정됐다. 2012년에는 대통령 소속 최연소 사회통합위원에 위촉되기도 했다.

이제 그는 세상을 놀라게 하고, 대구가 바뀌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새로운 사업과 창업 투자에 나서고 있다. 그리고 기업문화가 있는 기업을 만드는 데 공을 들이고 있다.

“나이가 더 들어도 사람과 만나 소통하고, 새로운 비즈니스를 이야기 하고 싶어요. 투자자로 돈을 내놓는 사람도 좋지만, 아이디어를 내놓을 수 있는 사람이 됐으면 더 좋겠어요. 이런 표현이 어떨지 모르겠지만 남자나, 여자나 멋진 이성을 보면 끌리는 것처럼 창업도 그렇습니다. 주어로 나를 두고 살아갔으면 좋겠어요. 거창한 아이디어, 기술이 필요한 게 아니라 실생활에서 바로 사용할 수 있는 것. 기술 개발형이라는 것은 언제나 바로 바뀌고 새로운 것들이 생겨 다시 새로운 기술이 금방 나타날 수 있는 만큼 당장 나한테 필요한 것에서 창업 아이디어를 찾았으면 좋겠어요.”

지금까지 스타트업 기업 등에 투자한 금액만 72억3천만원이 넘는 그는 지난 4월 ‘지분형 크라우드펀딩’ ‘공유형오피스’ 등 다양한 교육 프로그램 등을 통해 창업자를 지원하는 액셀러레이터(창업기획사)를 만들었다. 액셀러레이터는 창업 3년 미만의 스타트업을 발굴·육성해 투자까지 하는 민간회사다. 이제 그는 좀 더 체계적인 창업 투자를 위해 큰 그림을 그리고 있다. 올 해 안에 빅워크 인베스트먼트 벤처캐피탈을 론칭할 예정이다. 빅워크 액셀러레이터가 창업자를 지원하는 간이 매장이라면, 빅워크 인베스트먼트 벤처캐피탈은 백화점이라고 보면 된다. 액셀러레이터가 투자하고, 나중에 벤처캐피탈이 다시 투자해 창업기업의 스케일을 키워주는 민간주도형으로, 열심히 하면 기회를 가질 수 있는 여건을 창업 선배들이 만들어주겠다는 것.

장 대표는 “광고회사인 빅아이디어 연구소의 경우 2년 동안 3억원 정도 투자를 했다. 철저한 시장조사와 아이디어로 광고를 만들었는데 지역에서는 이런 것을 원하는 분위기가 아니었던 탓에 누적적자가 3억원 이상이 났다. 하지만 지금은 광고 오더가 넘쳐나고 있다. 이 회사가 지역 광고 시장을 변화시킨 것”이라며 “힘이 들더라도 긍정적인 변화를 위해서는 투자에 나서야 하고, 나는 앞으로 이를 해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끝으로 장 대표는 아이디어를 가진 창업자들이 대구를 떠나지 않는 환경을 만드는데 민관이 힘을 합쳤으면 좋겠다고 전했다.

장 대표는 “2014년 대구에서 시작한 호텔 예약 앱의 경우 1천만원으로 창업해 지난해 거래대금만 1천억원이 넘는 회사로 성장했지만, 지금은 본사를 서울로 옮겼다”며 “대구의 경우 성장하는 기업에 조금만 지원해주면 특혜라는 말이 나오니 다들 서울로 옮긴다. 애플이나 구글 같은 기업이 들어오면 산업트렌드가 바뀌고, 파생되는 파트너 기업이 더 많이 생기는 만큼 유치는 못하더라도 이런 기업인을 대구가 다 함께 키울 수 있는 분위기가 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노인호기자 sun@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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