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 “원망보다는 모든 게 내탓…자책감 느낀다”

  • 이영란
  • |
  • 입력 2018-03-24 07:34  |  수정 2018-03-24 08:14  |  발행일 2018-03-24 제3면
구속 수감되던 날
20180324
구치소行// 뇌물 수수와 비자금 조성 등 혐의로 구속영장이 발부된 이명박 전 대통령이 23일 서울 강남구 논현동 자택에서 나와 서울동부구치소로 가기 위해 차에 오르기 전 측근과 가족들을 향해 손을 흔들고 있다. 연합뉴스

이명박(MB) 전 대통령은 구속수감 되기 전 모든 것을 내려놓은 듯 담담한 모습으로 마지막 인사를 했다고 측근들이 23일 전했다. 이 전 대통령은 구치소 수용자 신분으로 약 10㎡(3평)넓이 독거실(독방)에서 구속 후 첫 밤을 보냈다. 수용자번호(수인번호) ‘716’이 부여된 것으로 전해졌다.

이 전 대통령은 전날 저녁 구속영장 발부를 예상한 듯 서울 논현동 자택에서 양복을 갖춰 입고 측근들을 맞았다. 이 전 대통령 자택에는 이명박정부 시절 청와대 참모진 등 50여 명이 모였다.

친필 작성 입장문 심경 토로
“함께 일했던 사람들과 가족
내 구속으로 고통 덜었으면
언젠가 나의 참모습 되찾고
할 말 할 수 있으리라 생각”

10㎡크기 독방서 첫 밤 보내


이 전 대통령은 이 자리에서 “여러분의 명예에 금이 가게 해서 미안하다”며 “잘 대처하고 견딜 테니 각자 맡은 위치에서 잘해달라”고 인사를 했다. 이 전 대통령은 구속영장이 발부됐다는 뉴스를 접하자 “이제 가야지”라고 말했다. 이어 측근들과 일일이 악수를 하면서 “우리 정부가 나름대로 최선을 다해서 일했는데 나 한 명 때문에 여러분들이 힘들어졌다”며 “내가 미안하다. 면목이 없다”고 언급했다.

이 전 대통령은 대학(고려대) 시절 학생운동을 하다 ‘내란선동죄’ 혐의로 구속된 경험을 이야기하면서 “54년 만에 80이 다 돼서 감옥에 가는 것”이라는 말도 했다고 한 측근이 밝혔다. 그러면서 “내 심정이 이것이다. 차분하게 대응하자”면서 페이스북에 올린 글을 읽어 내려갔다. 이 전 대통령은 전날 새벽 친필로 3장 분량의 입장문을 미리 작성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 글에서 이 전 대통령은 법원의 구속영장 발부와 관련해 “지금 이 시간 누구를 원망하기보다는 이 모든 것은 내 탓이라는 심정이고 자책감을 느낀다”고 밝혔다.

이어 이 전 대통령은 “지나온 날을 되돌아보면 기업에 있을 때나 서울시장, 대통령직에 있을 때 나름대로 최선을 다했다고 생각한다”며 “특히 대통령이 되어 ‘정말 한번 잘해 봐야겠다’는 각오로 임했다”고 회고했다. 다만 이 전 대통령은 “과거 잘못된 관행을 절연하고 깨끗한 정치를 하고자 노력했지만, 오늘날 국민 눈높이에 비춰보면 미흡한 부분이 없지 않았다”고 자인했다.

이 전 대통령은 “재임 중 세계 대공황 이래 최대 금융위기를 맞았지만, 대한민국은 세계에서 가장 모범적으로 위기를 극복했다”며 “위기 극복을 위해 같이 합심해서 일한 사람들, 민과 관, 노와 사, 그 모두를 결코 잊지 못하고 감사하고 있다. 이들을 생각하면 송구한 마음뿐”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지난 10개월 동안 견디기 힘든 고통을 겪었다”며 “가족들은 인륜이 파괴되는 아픔을 겪고 있고, 휴일도 없이 일만 했던 사람들이 나로 인해 고통받는 것을 생각하면 잠을 이룰 수가 없다”고 현재의 심정을 토로했다.

이 전 대통령은 “내가 구속됨으로써 나와 함께 일했던 사람들과 가족의 고통이 좀 덜어질 수 있으면 좋겠다”며 “바라건대 언젠가 나의 참모습을 되찾고 할 말을 할 수 있으리라 기대해 본다. 나는 그래도 대한민국을 위해 기도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글을 읽은 뒤 이 전 대통령은 가족들을 한 명씩 끌어안은 뒤 오열하는 아들 시형씨에게 “왜 이렇게 약하나. 강해야 한다”라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자유한국당 권성동·장제원 의원과 이동관 전 청와대 홍보수석 등 측근 20여 명은 자택 밖으로 나와 검찰 측 호송차량 옆에 도열해 이 전 대통령을 배웅했다. 김윤옥 여사는 이날 외부에 모습을 보이지 않았고, 아들 시형씨는 발을 동동 구르며 눈물을 흘렸다.

이영란기자 yrlee@yeongnam.com

기자 이미지

이영란 기자

기사 전체보기

영남일보(www.yeongnam.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사회인기뉴스

영남일보TV





영남일보TV

더보기




많이 본 뉴스

  • 최신
  • 주간
  •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