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경숙의 실과 바늘 이야기] 아! 현기증 나는 봄이다

  • 임성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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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0-04-10   |  발행일 2020-04-10 제36면   |  수정 2020-04-10
꽃처럼 순수한 어린시절의 그리운 옷감 냄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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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경자 작 '藍乃(남내)의 초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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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문 양복보, (박물관 수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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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레의 '만종' 양복보. (박물관 수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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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자문 양복보. (박물관 수 소장)

노오란 개나리꽃 활짝 피었나 했더니 어느새 녹색 잎에 덮여가고 마당 앞 흰 목련 함박웃음으로 서 있는 걸 본 것 같았는데 작별 인사를 고할 겨를도 없이 빈 가지만 남았다. 박물관 앞 동백꽃 한 그루도 어느결에 저 혼자 피었더니 툭툭 떨어져 내렸다. 순정한 마음들이 상처받으면 저리 미련 없이 툭 세상을 등질까 두렵다. 지난 저녁 휘몰아친 바람에 동대구로의 벚꽃 잎들은 달리는 자동차의 바퀴 아래로 눈처럼 분분하게 뒹굴었다. 이별도 이별답게 충분히 아프고 슬퍼할 시간이 필요한데, 서둘러 왔다가 가는 이 봄은 현기증이 난다. 고즈넉하고 달콤한 봄 길을 걷고 싶었다. 빈 몸으로 서 있던 겨울 나뭇가지에서 어쩌면 저리도 고운 연둣빛들을 토해내는지 찬찬히 들여다보고 싶었다. 그리고 매화와 벚꽃은 검은 등걸의 어디에 그리도 여리고 고운 잎들을 숨겼다가 피워 내었는지 알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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벚꽃잎 화관 쓴 고요한 침묵 속 여인
절제된 색감 천경자 作 '남내의 초상'
어릴적 그리움 담아 표현한 바느질감
日 유학시절 이삭줍기 수로 우수 성적

할머니집 곱게 수놓인 양복보 십자수
규방 아녀자들이 지어낸 순수한 기원

색이라고 이름 지어 부를 수 없는 저 맑은 숨결들이 가지마다 환하게 드리우고 있다. 그 꽃그늘은 순결한 면사포처럼 우리의 검은 머리 위로 드리워져 그 아래서는 모두 두 손을 가슴에 모으게 된다. 꽃잎과 꽃잎이 가지 위로 겹쳐지고 그 사이로 바라보이는 아득한 하늘 사이로 바람이 노래를 한다. 소중하고 고귀하고 성스러운 그 무엇들은 우리가 가 닿을 수 없고 경계 지을 수 없는 그 어떤 순간에 존재하고 있는 것임을 보여준다. 떨어진 꽃잎들을 다시 주워서 흩뿌려 보지만 방금 눈앞에서 팽팽한 바람의 그네를 타고 오선지의 악보처럼 펼쳐진 교향곡을 더 이상 들을 수는 없다.

그 꽃들을 화관처럼 쓴 여인들을 천경자 화가는 많이 남겼다. 그중에서도 '藍乃(남내)의 초상'이라고 명명된 한 점의 그림은 화관을 쓴 여인 중에서 가장 절제된 색을 보인다. 허공의 공허를 꿰뚫는 영롱하고 깊은 눈의 여인은 벚꽃 잎 몇 개의 화관을 쓰고 고요한 침묵 속에 있다.

그랬다. 그녀는 꽃이 주는 영원한 생명력과 찰나의 죽음이라는 그 동시적인 수레바퀴들을 평생의 화두로 생각했는지 모르겠다. 알 듯도 하고 모를 듯도 한 '藍乃(남내)'의 눈빛 속에 숨겨진 비밀의 코드가 무엇일까 궁금해 그녀의 수필집을 읽어 내렸다.

"…추석이나 설, 제삿날이 돌아오면 애들은 좋아 죽는다. 어머니 따라 포목상에 가는 재미, 옷감무늬 보는 것도 재미려니와 짜치 조각에서 옷 고름감 자르고 댕기 감 뜨는 여유 있는 광경을 보는 것이 즐거웠다. 싱거 재봉틀 언저리 방안 가득 색색으로 비단 조각 흩어져 있는 것, 아름다웠다. 새로 나온 보일루, 오빠루, 조제트, 하부타해, 청국미인도표 붙은 옥양목, 옥당목(玉唐木), 누르스름한 광목 냄새, 그리운 옷감 냄새를 사계절 맡고 어린 시절을 보냈다. 또 '문화자수'가 유행해 나는 밀레의 그림 '이삭줍기'를 수놓아 갑(甲)을 맞았다."-천경자의 '내 슬픈 전설의 빛깔' 중에서-

이처럼 화가의 어린 시절 풍경 속에는 지금은 사라진 옷감의 명칭들이 그리운 이의 이름처럼 반갑게 글의 행간을 뛰어나와 안긴다.

"…뽀수한 눈두덩 때문에 눈이 작아 동자만 반짝거리고 노리끼리 숱 없이 길어 난 머리털을 가진 나. 그 머리에는 헝겊 조각에 곱게 수놓아 접어 작은 댕기 조랑조랑 매주고 까치저고리 만들어 입혀 안고 다녀도 애기 예쁘단 소리 들은 적 없어 섭섭했던 어머니였다."

글을 읽으면서 조랑조랑 매 준 작은 댕기들의 귀여움이 연상되고 까치저고리(까치설빔으로 입는 어린아이용 색동저고리)의 화사한 모습이 그려지는데, 그 고운 자태에도 예쁘단 소리 들을 수 없었다는 표현에서 웃음이 새어 나왔다. 흩어진 바느질감의 풍경들이 내 어린 시절과 오버랩되어 1920년생과 1960년생의 간극은 사라지는 듯했다. 그런데 마지막 구절이 읽히지가 않았다.

"…또 문화자수가 유행해 나는 밀레의 그림 '이삭줍기'를 수놓아 갑(甲)을 맞았다."

그것은 밀레의 '이삭줍기'를 자수로 놓았고, 그 성적이 '갑'이라는 것이다. 당시 밀레의 그림과 같은 명화들을 수놓는 분야를 '문화자수'라 명명했다. 그녀는 글의 배경이 되는 1940년대 동경여자미술전문학교를 재학하였고, 당시에 이러한 문화자수가 유행했음을 알 수 있다.

그녀는 어렵게 부모의 반대를 무릅쓰고 일본으로의 유학을 결심하였고, 1944년 동경여자미술전문학교(현 조시비 미술학교)를 졸업했다. 그때 나이가 20세였다.

동경여자미술전문학교는 당시 한국 사회를 이끌었던 신(新)여성들의 양성소나 마찬가지였고 한국의 근대자수를 이끌었던 사람들이 대거 양성된 학교였다.

1913년 나혜석을 시작으로 1945년까지 180~200여 명의 한국인이 동경의 여자미술학교에 재적했다. 대부분이 자수과 전공이었으며 이들은 졸업 후에 여학교 교사나 이화여대 또는 숙명여대의 교수로 재직했다. (김철효 '근대기 한국 자수미술 개념의 변천')

이 학교가 1900년대 설립된 배경은 수출산업이었다. 당시 일본에서는 서양으로의 수출 자수가 외화 획득의 주요 상품이 되어 외국인의 취향에 맞는 사실적인 표현 능력을 갖춘 직인들을 양성하는 것이 필요했다. 따라서 이 학교는 자수과를 중심으로 섬세한 자수 기법을 중점적으로 가르쳤다. 그 외에 서양화과 일본화과 등을 갖추고 있었고, 현재 이 대학에는 20여 점의 한국 학생의 자수작품이 남아있다. 그 작품들의 면면을 보면 풍경 중심의 사실적 표현으로 배경까지 모두 수로 빽빽하게 메웠다. 또 하나의 경향은 천경자의 글에서 보이는 것처럼 '문화자수'의 유형이다.

천경자의 유년을 따라 내 어린 시절로 걸어 들어가 보면 밀레의 '이삭줍기'가 나의 유년에도 있었다. 섬세한 서양화 풍으로 수놓았던 문화자수 '밀레의 만종'이 한국적인 의상으로 바뀌어 수놓아진 양복보(洋服褓) 십자수가 그것이다. 보라색을 사용하여 저녁 무렵의 시간임을 표현해 원작에 못지않은 고요한 시간을 따뜻하게 표현한 십자수였다. 어린 시절 종종 대구에서 할머니 댁으로 보내졌던 나는 방학 내내 구들목 이불 속에서 흰 옥양목 위에 수놓아진 이 십자수들을 자주 보았다. 그 속에는 할아버지의 옷들이 잘 손질되어 들어가 있었다.

이 양복보에는 기능성과 함께 장식성도 갖추었는데, 그 표면에 좌우명으로 삼을 만한 글귀나 염원을 담은 길상적인 문양들을 수놓았다.

그중에는 '衣着行路(의착행로)' '無難千里(무난천리)'라고 수놓은 글귀가 있다. '이 옷을 입고 가심에 천리길이라도 어려움 없으시기를 기원한다'는 글을 읽으면 먼 길을 다녀오거나 외출할 남편에게 따로 당부 인사를 할 필요가 없었을 법하다. 이것은 고전에도 없는 문장인데, 규방의 아녀자들이 만들어낸 순수한 기원을 담은 문장이다.

벚꽃 분분한 봄날 밤 저 글귀처럼 모든 이의 무사함을 기원하며 달빛을 걸어두고 수를 놓아야겠다. 박물관 수 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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