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도 속 육지 문화를 찾아서(1)- 육지 여행가의 로망 그 섬에서 '놀멍쉬멍'

  • 이춘호
  • |
  • 입력 2020-05-22   |  발행일 2020-05-22 제33면   |  수정 2020-05-22
뚜벅이족 찾는 오월의 가파도 청보리밭
마라도 짜장면과 쌍벽 이루는 해물짬뽕
제철 맞은 자리돔으로 맛보는 자리물회
예술의 섬 야심찬 계획 '가파도 프로젝트'
2020052201000598900023421
2012년부터 현대카드와 제주도청이 손을 잡고 일본의 대표적 예술 섬으로 불리는 규슈의 가고시마처럼 만들기 위해 론칭한 '가파도 프로젝트' 덕분에 5월이면 청보리밭 투어를 위해 수만명의 육지 여행가들이 제주도를 찾는다.
가파도 1
2018년쯤 1단계 밑그림이 나온 가파도 프로젝트 덕분에 가파도 여객선 부두에 가파도 터미널이란 세련된 콘크리트 구조물이 들어서게 된다.
나는 지금 전남 완도군 청산도 청보리와 단짝을 이루는 제주도, 그 섬 속의 섬으로 불리는 가파도(加波島), 그 중심부에 있는 해발 20m 남짓한 소망전망대에 서 있다. 남쪽으로 고개를 돌리면 대한민국 최남단 마라도, 정면에는 한라산과 산방산, 그리고 제주도 올레 중 가장 황홀한 풍광을 만끽하게 해주는 포인트 송악산, 여기에 대정읍 추사 유배지를 감싸주는 단산의 연봉, 코발트 빛 바다에 종이배처럼 떠 있는 형제섬이 하나의 그림엽서처럼 다가선다. 사방이 바다이고 바람이고 청보리의 일렁거림, 그리고 온통 햇살이다. 청보리가 그 틈바구니를 파고들며 '미음완보(微吟緩步)' 중이다.

보리밭 사이 관광객이 풀잎처럼 지나간다. 일망무제~. 바다의 파랑과 청보리의 누런빛, 바람의 투명함, 오렌지빛·빨강·그린·분홍 등 원색의 옴팡기와집 35채가 해변에 따개비처럼 오종종히 어깨를 기대고 앉아 있다. 손가락으로 액자를 만들어 그 안으로 보니 거의 몬드리안 그림 수준이다. 섬 전체가 포토존이다.

가파도해물짬뽕
가파도 해물짬뽕. 어른 주먹만 한 뿔소라, 제철에는 문어도 올라간다.
아는 사람은 알지만 아직 많은 이들이 모르는 섬, 거기가 또한 가파도다. 관광객은 제주도에 많은 섬(65개 정도)이 있다는 걸 모른다. 고작 마라도 정도에만 시선이 머문다. 차츰 우도, 가파도, 추자도, 비양도, 차귀도, 형제섬, 범섬, 새섬, 문섬, 지귀도 등이 있다는 걸 알게 된다.

5월엔 '북새통 섬'으로 돌변한다. 절정으로 치닫는 청보리밭 투어를 위해 육지에서 온 뚜벅이족 수만 명 탓이다. 6군데의 민박집은 동이 난다. 그 섬에서만 먹을 수 있는 해물짬뽕은 이맘때 더 불티나게 팔려나간다. 6년 전 문을 연 가파도 '원조해물짬뽕' 때문이다. '짜장면 시키신 분'이란 멘트를 앞세운 방송인 이창명의 광고 때문에 유명해진 마라도의 짜장면처럼 이 섬을 '짬뽕 섬'으로 만들어주었다. 이 섬을 벗어나면 그 맛을 만날 수 없다. 그래서 기를 쓰며 먹고 가려 한다.

이맘때가 제철인 자리물회의 재료가 되는 제주산 자리돔 어로의 시작점도 가파도다. 지금은 서귀포 보목항이 제주 자리물회의 메카로 번창했다. 참고로 관광객은 '어진이네 집', 하지만 토박이는 '김부자 집'을 애용한다. 토박이들은 육지에서 유행하는 고추장 들어간 달짝지근한 물회를 싫어한다. 오직 된장물회를 편애한다. 여기선 식초보다 '빙초산'을 더 즐겨 넣고 먹는다. 참고로 추자도도 제주 흑돼지구이와 찰떡궁합인 제주 멜(멸치)의 본산이기도 하다.

가파도는 제주도 서남쪽 끄트머리 모슬포에서 남쪽으로 약 5㎞ 떨어진 섬. 배로 불과 20여 분. 모슬포 운진항에서 매일 여객선이 오간다. 느릿하게 걸어도 1시간 정도면 섬을 일주할 수 있다. 빌려주는 2인 1조 자전거도 매력적이다. 제주 사람들은 섬 속의 섬에 가봐야 진짜 제주 냄새를 맡아볼 수 있다고 말한다. 가파도 주민들은 여객선 선착장과 가까운 북쪽의 상동마을과 남쪽 포구의 하동마을에 몰려 산다. 두 마을을 잇는 길이 바로 제주올레 10-1코스(4.3㎞)다. 워낙 관광객이 밀려오기 때문에 섬에 내린 사람은 2시간 남짓 머물다가 나가는 배를 타야 한다.

주민 145명, 그 중 15명은 외지에서 온 사람이다. 가파초등은 매년 1명 정도 졸업을 한다. 이 섬에는 전주가 없다. 2010년부터 탄소제로 섬으로 만들기 위해 2대의 풍력발전기, 그리고 태양광으로 전기를 건져낸다.

2020052201000598900023424
제주도의 대표적 물회로 알려진 자리물회.
이제 가파도는 토박이의 목소리보다 육지의 문화적 실험공간으로 변하고 있다. 2012년부터 6년 이상 현대카드가 제주특별자치도청과 손을 잡고 가파도 자체를 일본 규슈 가고시마(兒島)처럼 예술의 섬으로 만들 야심한 사업을 추진했다. 바로 '가파도 프로젝트'다. 모슬포 옆 운진항에서 출발한 여객선이 닿는 선착장 앞에 노출콘크리트조 표정의 모던한 '가파도 터미널 카페'가 보인다. 사람들은 설치미술품 같은 이 터미널 앞에서 다들 셔터를 누르고 간다. 국내외 예술가와 문학가, 인문학자 등이 거주하며 문화 활동을 할 수 있는 '가파도 아티스트 인 레지던스(Aritist in Residence)' 역시 이 사업 때문에 빛을 볼 수 있었다. 본관과 2개 별관으로 구성된 가파도 레지던스는 작가들의 개인 숙소와 작업공간, 갤러리, 테라스 등으로 꾸려졌다. 그리고 마을회관 등도 갤러리 겸 세미나 공간으로 둔갑시켜 놓았다.

하지만 다음 그림을 그리려고 하는데 진도가 잘 안 나가고 있다. 토박이와 외지인, 그리고 제주도, 현대카드 사이에 틈이 생긴 탓이다. 조합원과 비조합원 사이에 미묘한 입장 차이. 이 진통도 결국 육지의 욕망과 섬의 욕망이 제대로 된 교집합을 찾기 위한 장고(長考)랄 수 있을 것이다.

글·사진 = 이춘호 기자 leekh@yeongnam.com

영남일보(www.yeongnam.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위클리포유인기뉴스

영남일보TV





영남일보TV

더보기




많이 본 뉴스

  • 최신
  • 주간
  •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