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작업 40년:1981-2020전' 박휘봉 설치 조각가

  • 이은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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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0-06-03   |  발행일 2020-06-04 제17면   |  수정 2020-06-03
"구상이 재료로부터 시작되니 작업의 방향이 다른 사람과는 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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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치 조각가 박휘봉의 40년 작품세계를 조명하는 회고전이 열리고 있다. 대구문화예술회관에서 20일까지 열리는 '박휘봉 작업 40년:1981-2020전'이다. 작가의 시대별 작품 흐름을 한 자리에서 조망할 수 있도록 시대별 대표작품과 함께 아카이브 자료를 정리해 40여년간 이루어진 작업 활동의 역사를 시기별로 보여주고 있다. 


"주로 저는 재료적인 걸 가지고 구상을 합니다. 보통 작가들은 구상을 해서 거기에 맞는 재료들을 끌어 들이지만 나는 다르다. 구상한 걸 가져오기 때문에 금도 가져오고 돌도 가져오고 철판도, 스테인리스판도 가져온다. 재료로부터 시작되니 작업의 방향이 다른 사람과는 다르다. 앞으로 또 어떤 재료가 내 눈에 띌 지 모르죠."


40여년 그의 작업을 되돌아보면 늘 그랬다. 재료에 따라 주제가 정해지고 작업의 수준이 어떤 경지에 오르면 작업은 마무리된다. 그리고 또다른 재료를 찾아 새로운 시리즈를 다시 시작한다. 그렇게 지금까지 율-비상-도시인-이미지-폐철근 추상조각 등의 시리즈가 차곡차곡 쌓였다.


회화작품으로 두번의 개인전을 열며 교직과 작업을 병행하던 그가 1987년 조각으로 처음 연 개인전에서 선보인 것이 '율' 시리즈다. 인체의 볼륨감을 강조해 단순하고 리듬감있게 형상화한 작품이었다.
"율 시리즈를 끝낸 이후 어떤 작업을 할 것인가 고민하다가 한국미술사 도록 15권을 샀다. 한문이 너무 많아 두꺼운 옥편을 펼쳐놓고 찾아가며 뜻을 이해하여 공부했다. 거기서 천인(天人)을 만났다. 옷자락을 바람에 휘날리며 날아가는 천인을 주제로 새로운 시리즈 를 시작했다. 고구려 벽화 비천상을 현대적인 이미지로 속도감있게 표현한 '비상' 시리즈다. "


1994년 시작한 '비상' 시리즈는 1996년 막을 내렸다. 그는 늘 하나의 시리즈가 시작되면 최고의 경지까지 작업을 끌어올린 뒤 한 시리즈의 막을 내린다. 그 다음은 새로운 작업, 새로운 시리즈가 시작된다. 더 이상 새로운 것이 없기 때문이다. 그렇게 늘 새롭게, 새롭게 그의 작업은 이어져왔다. 


"1996년 비상 시리즈를 마친 뒤 또다른 시리즈를 찾아 고민하던 때였다. 3~4년간 무엇을 할 것인가라는 질문이 이어졌고 해답을 찾지 못했다. 우연히 길을 걷다가 구멍 뚫린 돌을 만났다. 마치 돌이 사람의 얼굴처럼 보였다. 뚫린 두개의 구멍에서 사람의 눈을 발견했다. 멍청한 눈, 영혼이 담겨있지 않은 눈이었다."


그는 그 눈에서 자신을, 우리를 보았다. 길바닥에 나뒹구는 돌은 돈도 없고 힘도 없는 서민들의 얼굴이었다. 소재를 다듬고 다듬어 끝까지 다듬어가던 기존의 조각을 버리고 이때부터 그는 돌에다 간단하게 파내고 구멍을 내는 새로운 작업 방식을 시도했다. 돌에 사람을 새긴 그의 '도시인' 시리즈다. 


최근 그의 관심은 돌에서 철근으로 옮겨졌다. 인물에서 자연물로 관심을 옮겨 꽃과 나무 같은 자연물을 페철근과 옥돌로 표현한 '이미지' 시리즈다. 작업은 단순한 형태의 재현에서 벗어나 폐철근 추상조각 설치작업으로까지 확대되고 있다. 기계를 사용하지 않고 직접 힘을 주어 철근을 자르고 구부리고 펴는 작업은 여든의 작가에게 쉬운 일은 아니다. 하지만 그의 작업은 여전히 청춘이다. 


"가족과 친구들은 이제 작업을 그만 하라고 한다. 하지만 이렇게 작업하는 것이 나의 삶이다. 세잔느가 붓을 입에 물고 죽었다고 하는데 나도 연구하고 공부하고 마지막까지 작업하는 사람으로 남길 원한다. 당분간 철근 작업은 계속될 듯 하다. 아직 아이디어가 너무 많다. 기존보다 굵은 12mm짜리 철근으로 작업을 해볼까 싶다."

글·사진 이은경기자 lek@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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