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응상의 ‘천 개의 도시 천 개의 이야기’] 포르투갈 포르투<하>

  • 임성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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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0-06-19   |  발행일 2020-06-19 제36면   |  수정 2020-06-19
트램 차창 밖 느릿하게 바뀌는 올드타운…대항해시대 돌려 놓은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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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줄레주 외벽이 인상적인 산투 알폰소 성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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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게에서 나타(에그타르트)를 만드는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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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르투 골목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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볼사궁과 엔리케 왕자의 동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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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 루이스 1세 다리에서 바라본 포르투 도우루강 풍경.

다음날은 도우루 강변의 리베리아 광장에서 여행을 시작했다. 갖가지 방식으로 이 도시를 즐기고 있는 광장 사람들의 모습은 생동감이 넘쳤다. 광장을 가로질러 볼사(Bolsa)궁으로 향했다. 볼사궁은 19세기의 건축물로, 포르투갈의 신고전주의 양식을 대표하는 건축물 가운데 하나다. 포르투 무역협회가 세운 건물로, 현재 증권거래소로 사용되고 있다. 볼사궁 내부에는 스페인 그라나다의 알람브라 궁전을 모델로 한 '아랍의 방'을 비롯하여 '황금의 방' '심판의 방' 등이 화려함을 자랑한다. '국가들의 안뜰'이라고 불리는 건물 중앙의 안마당에는 19세기에 포르투갈 왕국과 무역을 하던 여러 나라의 상징 문양들로 장식되어 있다.

특히 관심을 끈 것은 궁 앞에 우뚝 서 있는 엔리케 왕자의 동상이었다. 항해왕으로 불린 그는 대항해시대를 연 인물이다. 볼사궁 주위에는 그의 역사 유적이 많았다. 볼사궁 앞 엔리케 왕자의 동상이 늠름하게 서 있는 광장은 '엔리케 왕자 정원'으로 불린다. 광장 건너편에는 엔리케 왕자가 태어난 곳이라는 '왕자의 집'(Casa do infante)도 있다. 지금은 포르투의 역사를 한곳에서 살필 수 있는 역사박물관으로 사용되고 있다. 엔리케 왕자는 주앙 1세의 아들로 태어났지만 권력 욕심 없이 탐험과 교육 사업에 헌신하였다. 그는 탐험가들을 후원해 아프리카 서부의 항로를 개척했을 뿐 아니라 포르투갈 최남단의 사그르스 곶에 '왕자의 마을'(Vila do Infante)을 만들어 조선소와 항해술, 지도제작법 등을 가르치는 학교를 세우기도 했다. 아울러 코임브라대학에도 천문학 강좌를 개설하는 등 포르투갈의 해양 진출을 뒷받침했다. 이처럼 엔리케 왕자는 대항해시대의 문을 열어 포르투갈을 융성시켰을 뿐만 아니라 유럽의 식민지 개척을 시작하게 만든 사람이었다.

도우루 강변 볼사궁, 항해왕 엔리케왕자 동상
조선·항해술·지도제작 교육, 식민지 개척 선도
바로크 양식으로 화려한 장식 상프란시스쿠 교회
낡은 건축물·시간의 두께가 쌓인 골목과 사람들

청색그림 그려진 고상한 벽면 산투 알폰소 성당
수녀원서 남은 계란 노른자로 만든 에그타르트
에펠탑 연상 동 루이스 1세 다리 랜드마크 역할
달콤한 향이 오래 남는 명물 포트와인 같은 도시


볼사궁 옆에는 14세기에 세워진 상프란시스쿠 교회가 있다. 이 교회는 포르투갈의 고딕 양식을 대표하는 건축물 가운데 하나이지만, 내부는 바로크 양식으로 화려하게 장식되어 있다. 출입구가 있는 정면 외벽의 크고 정교한 꽃 모양의 둥근 장미창은 당시 고딕 양식의 전형을 보여준다. 15~16세기에는 프란체스코회를 후원했던 여러 귀족 가문들이 저마다 교회에 예배실을 만들어 화려하게 장식했다. 그 가운데 '세례 요한의 예배실' 역시 엔리케 왕자가 열었던 대항해시대의 부유함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곳이다.

문득 엔리케를 꿈꾸게 했던 대서양 바다가 보고 싶었다. 상프란시스쿠 교회 앞에서 1번 트램을 탔다. 이 트램은 도우루강을 따라 서쪽 대서양까지 왕복했다. 세월의 흔적이 가득한 차체와 빛바랜 나무 의자는 나의 감각을 순식간에 대항해시대로 돌려놓았다. 느릿느릿 바뀌는 차창 풍경과 금속성의 덜커덩거리는 소리, 그리고 멎을 때마다 눈에 들어오는 낡은 건물과 트램을 오르내리는 노인들이 나의 시간 감각을 계속 묶어두었다.

그러고 보면 이 도시의 진면목은 이름난 관광명소가 아니라 시간의 두께가 쌓인 골목과 그곳의 사람들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휘적휘적 발길 닿는 대로 다니기로 했다. 사실은 사람이 보고 싶은 것이었다. 그럴 때 꼭 가보는 곳이 로컬 시장이다. 포르투의 가장 대표적인 시장은 볼량시장이다. 포르투 여행의 마지막 날, 여행의 기점으로 삼았던 이 시장은 아쉽게도 개축하느라 문을 닫았다. 시장을 끼고 북쪽으로 나오니 인상적인 성당이 눈에 들어왔다. 산투 알폰소 성당이었다. 네거리 한 모퉁이를 차지한 조그만 성당의 외벽 역시 흰색 바탕의 청색 그림이 그려진 고상한 아줄레주 벽을 갖고 있었다. 내부 역시 외부의 소담스러운 모습을 닮아 있었다. 몇십 개 정도의 좌석만 가진 소박한 공간이었다. 등이 굽은 할머니 한 분이 간절히 기도를 드리고 있었다. 낯선 이방인을 경건하게 만드는 찰나의 그림이었다. 그 순간 이곳은 바티칸의 어느 장소보다 성스러웠다.

다시 남쪽으로 방향을 잡고 조금 걷다 보니 인터넷에서 명성을 얻고 있는 나타(에그타르트) 전문점이 보였다. 나타는 리스본의 제르니모스 수녀원에서 처음 탄생했다고 한다. 수녀들이 수녀복을 빳빳하게 하기 위해 계란 흰자로 풀을 먹였는데, 남은 노른자를 어디에 사용할까 고민하다가 나타를 만들었다고 한다. 에스프레소와 나타 한 세트가 1.2유로(약 1천700원)였다. 우리나라 커피 값을 떠올리면서 만족감이 배가되었다. 각자 두 세트를 먹으며 느긋하게 여유를 부렸다. 나를 더욱 행복하게 만든 것은 방문 목록 앞 순위에 올려놓았던 마제스틱 카페가 바로 맞은편에 있다는 사실이었다. 조앤 롤링이 해리포터 1편을 집필한 곳으로 알려진 카페였다. 내부는 고급스러운 가구와 샹들리에로 장식되어 있었다. 해리포터에 등장하는 장소 묘사가 이 카페의 영향을 받았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시 비 오는 거리를 추적추적 걸었다. 골목이 꺾일 때마다 바뀌는 새로운 풍경들이 자꾸 걸음을 재촉했다. 주황색과 파스텔톤이 어우러진 건물의 색감도 나의 눈을 황홀하게 했다. 비 오는 날씨 때문에 한풀 꺾인 아줄레주 타일의 원색 톤은 더욱 정겨웠다. 언덕 아래 강변에 도착하니 지나왔던 건물들이 다시 옷을 갈아입은 듯 새로운 모습으로 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강을 오가는 배와 강 건너 신시가지가 어울려 만드는 풍경도 그림 같았다.

강변 산책로를 따라 천천히 걸으며 동 루이스(Dom Luis) 1세 다리로 향했다. 루이스 1세 때인 1886년에 건설되어 붙은 이름이다. 이 다리는 2층 아치형의 철교로 너비 8m 높이 85m이며, 상층 길이는 385.25m, 하층 길이는 172m다. 이 다리는 첫인상부터 에펠탑을 연상시킨다. 그도 그럴 것이 이 다리를 설계한 벨기에 건축가 테오필레 세리그가 에펠탑을 설계한 에펠의 조수였단다. 건립 당시에는 세계에서 가장 긴 아치형 철교였으므로 포르투의 랜드마크 역할을 했다. 아래에는 자동차가 다니고, 위쪽에는 트램이 다니고 있다. 다리 1층과 2층에서 보는 풍경이 다르므로 두 곳 모두 걸어봐야 한단다. 먼저 2층 다리를 통해 강을 건너기로 했다. 강변에서 푸니쿨라를 타고 2층 다리 입구에 내리니 중세에 건설된 페르난디나스(Fernandinas) 성벽을 배경으로 오렌지 나무가 늘어서 있었다. 다리로 들어서니 포르투 올드타운의 또 다른 모습이 마음을 흔들었다. 다리 중간에 서서 멍하니 눈을 거둘 수가 없었다. 트램이 지나면서 내지르는 금속성의 바퀴 소리를 듣고서야 다시 걸음을 옮겼다.

다리 건너 강변 절벽에 위치한 세라도필라 수도원은 동 루이스 다리와 함께 포르투 올드타운을 가장 잘 조망할 수 있는 곳이다. 특히 수도원 전망대는 지대가 높을 뿐 아니라 동 루이스 다리를 함께 조망할 수 있었다. 차가운 철교 너머로 펼쳐진 올드타운은 가장 극적인 모습으로 눈앞에 나타났다. 모르는 사이에 탄성이 나왔다. 일몰명소로 소문난 이곳에서 붉은 석양 대신 비에 젖은 포르투를 만났다. 이 광경 하나로 사흘 내내 비 뿌린 이 도시의 하늘도 말끔히 용서되었다. 보지 못한 이곳의 일몰은 다시 와야 할 핑계로 적당하다.

강 건너 빌라 노바 데 가이아(Vila Nova de Gaia) 지역은 와인 생산의 중심지다. 포트(Port) 혹은 포르투(Porto) 와인이라 불리는 이곳의 와인은 프랑스의 샴페인처럼 상표가 보호되고 있을 정도로 전 세계적으로 유명하다. 강변에는 각자의 이름을 내건 와이너리가 줄지어 있고, 그 앞에는 와인을 운반하는 목선 라벨로(Rabelo)가 흔들거리며 그림 같은 풍경을 만들고 있었다.

나는 예약한 와이너리에서 투어를 했다. 포르투의 명물 포트와인은 발효 중인 와인에 브랜디를 첨가한 주정 강화 와인이다. 와인 대부분이 이곳에서 영국·프랑스 등지로 수출되었기 때문에 '포트와인'이라는 이름이 생겼다. 장기간 수송해야 했으므로 와인의 변질을 막기 위해 브랜디를 첨가하였던 것이다. 그래서 포트와인의 알코올 도수는 보통 20도에 달하며, 와인의 잔도 매우 작다. 나는 품종과 연수가 다른 다섯 종류의 포트와인을 시음했다. 금방 얼굴이 붉게 달아올랐지만 쌉쌀하면서도 달콤한 향이 오래도록 입안에 머물렀다.

며칠 만에 이 도시와 정이 들어 버렸다. 무엇보다 사람을 밀어내지 않는 낡고 허술함이 좋았다. 어려서부터 화려하고 깔끔한 부잣집 친구 집에 놀러 가면 괜히 불편해서 일찍 자리를 뜨곤 했다. 이 도시는 내가 살았던 집처럼 낡고 허술했다. 그래서 마음 편했던 것 같다.

나에게 새겨진 포르투라는 도시의 이미지는 그곳의 사람들과 함께 만들어진 것 같다. 희미한 등불 아래 안경을 들어 올린 채 책에 빠져있는 작은 서점의 노신사나 사람 좋아 보이는 얼굴을 하고 빙그레 웃음 짓는 시장 아주머니가 오래도록 그리울 것 같다.

리스본이 행정수도라면 포르투는 경제수도의 역할을 해왔다. 그러나 지금의 포르투는 경제와 관련된 어떤 수식어도 어울리지 않는 것 같다. 포르투갈의 경제난 탓일 것이다. 그러나 이 도시의 특별함, 특히 세월이 만들어낸 장소감은 무엇으로도 대체할 수 없을 것이다. 대구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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