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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혁의 남자의 취미] 캘리그래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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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인터넷뉴스팀기자
  • 2016-1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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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의 숲에서 힐링하다

독자분들께 드리는 새해인사

학창시절 내내 글씨로 빠지지 않던 터
마흔, 겁없이 ‘손으로 그린 문자’ 독학
의욕만 앞서 오래잖아 맛본 좌절·후회

‘글씨는 마음에서 비롯돼야…’란 깨침
모난 마음·생각 비우며 다시 줄긋기부터
차차 힘 빠지며 머리까지 맑아지는 체험

글씨가 예쁜 소년이 있었다. 엄마는 소년을 위해 매일 저녁 연필 다섯 자루를 깎았다. ‘샤파’라 불리던 연필 깎는 기계가 귀하던 시절이었다. 정성이 담긴 연필을 함부로 쓸 수 없던 소년은 글자마다 최선을 다했다. 국민학교 내내 연필을 사용했던 소년의 글씨는 또래보다 차분하고 안정적이었다.

중학생이 된 어느 날, 소년은 사촌 누나의 일기장을 몰래 훔쳐본다. 내용보다 글씨체에 마음을 빼앗긴다. 여고생의 예쁜 글씨는 보는 사람의 심장까지 뛰게 만들었다. 글씨를 따라 쓰다 보니 연습장 몇 권이 쌓였다. 여드름투성이가 된 고등학생 소년은 친구의 연애편지까지 대필하는 수준으로 성장했다.

대학에 입학한 소년을 눈여겨보는 이가 있었다. 다름 아닌 학생회 선전국 선배였다. 밥 한 끼, 술 몇 번 얻어먹고 코가 꿰였다. 대자보 글씨에서 시작해 현수막 붓글씨까지 모든 걸 전해 받았다. 친구들이 집에 가는 주말에도 지하에서 페인트와 시너를 섞었다. 졸업 때까지 만든 현수막과 대자보를 합치면 교정을 가득 채우고도 남을 정도였다.

남자의 취미, 이번 주제는 캘리그래피다. 손으로 그린 문자, 혹은 손으로 쓴 아름답고 개성있는 글자체를 말한다. 요즘 캘리그래피는 주변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다. 각종 광고나 드라마 제목부터 일상의 소품에 이르기까지 딱딱한 인쇄체가 오히려 어색할 정도다. 그러니 나이 마흔 넘어서까지 유행에 휘둘릴 필요가 있을까, 반문하는 분도 계실 것이다.

그렇다. 예쁨, 아름다움과는 거리가 먼 사십대의 아저씨. 소녀적 감수성이라고는 털어서 나오는 먼지만큼도 소유한 적 없는 뻣뻣한 여러분에게 캘리그래피라는 취미를 추천하려니 나 또한 멋쩍은 게 사실이다. 허나, 캘리그래피의 매력을 솜솜 뜯어보다보면 당신에게서 의외의 반전 매력을 발견할지 모른다.

어깨가 결리고 손발은 조금씩 굳어가지만 마음은 아직도 청춘이 아니던가. 썰렁한 아재개그로 주변에 괜한 적을 만들지 말고, 이번 기회에 캘리그래피를 통해 스타일리시한 이미지로 변신해 보는 건 어떨까? 어디 가서 방명록 쓸 때 눈치보고 주저하던 분들이라면 더더욱 용기를 내어 보길 바란다.

사실, 나는 캘리그래피를 쉽게 보고 만만한 마음으로 접근했다. 7년이라는 기나긴 대학 생활 동안 매직과 붓을 손에 달고 살았고, 어디 가서 글씨는 빠지지 않는다는 얘기를 고막이 반질거릴 정도로 들어왔던 터였다. 붓이고 펜이고 쥐어만 준다면 한 번의 휘두름으로 작품이 나올 줄 알았다. 책 몇 권 읽고 독학으로 시작했다.

결과는 당연하게 좌절이었다. 대충 쓴 듯 보이는 글씨체도 흉내내기 어려웠다. 재료의 특성을 파악하는 것은 부차적인 문제였다. 글씨는 마음에서 비롯되어야 하는 것인데, 의욕이 심성을 가렸다. 종이 위에 갈겨 적는다고 다 글씨가 되는 게 아니었다. 팔에 어찌나 힘이 들어가는지 한 시간쯤 연습하자, 손목이 아려왔다.

초보자들이 혼자서 캘리그래피를 배우기 좋은 책 몇권.
이걸 왜 시작했을까, 라는 후회가 밀려왔다. 차분히 앉아 생각해 봤다. 이 나이 먹고 누구에게 잘 보이려고 글씨를 쓰는 것인가? 아직도 세상의 기준이 내가 아닌 타인의 시선인가? 거대한 철학이 아니더라도 아름다운 글씨는 아름다운 이에게서 나오는 게 아닌가. 내 속의 모난 마음이 획을 비뚤게 하고, 머릿속의 울퉁불퉁한 생각들이 글씨를 거칠게 만들고 있었다.

며칠이 지나고, 붓펜을 다시 들고 줄긋기를 시작했다. 가로 세로 줄을 긋고, 원을 그리고 물결을 그리는 동안 처음 글씨를 배우는 유아기로 돌아가고자 했다. 머리와 마음을 비우고, 무아의 상태로 단순한 작업에 열중했다. 서서히 손에 힘이 빠지면서 획의 두께가 일정해지고, 흔들림 없는 매끈한 선이 나오고 있었다.

캘리그래피를 독학으로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는다. 캘리그래피를 업으로 삼거나 이미 그 분야에서 고수의 경지에 오른 분들께는 미리 양해의 말씀을 드린다. 이제 겨우 입문 단계에 있으면서 캘리그래피를 논한다는 자체가 부끄럽기 그지없다. 그럼에도 몇 달째 마음만 먹고 문턱을 넘어서기 힘들어하는 분들을 위해 동병상련의 마음으로 몇 자 적어본다.

우선, 캘리그래피는 나와 대화할 수 있어서 좋다. 가족이 잠든 늦은 밤, 종이를 마주하고 앉으면 그 어떤 방해도 없다. 선을 긋고, 글씨를 쓰다보면 얽매인 세상에서 살며시 빠져나온다. 격한 감정, 서운한 감정, 행복한 감정들이 종이 위에 녹아내린다. 여러 감정이 고스란히 쌓인 연습지를 보며 나를 읽는다. 이만큼 정직하게 나를 드러내는 시간이 어디 있을까? 캘리그래피는 내 안을 비추는 촛불과도 같다.

둘째로, 캘리그래피는 부담이 없어서 좋다. 다 쓴 이면지와 필기구만 있으면 언제 어디서든 즐길 수 있는 취미다. 신문지면 어떻고, 싸구려 볼펜이면 어떠랴. 시간적, 공간적, 물질적 제약에서 이처럼 자유로운 취미도 드물다. 초기 투자를 위해 아내에게 굽실거릴 필요가 전혀 없는 당당한 취미인 거다. 글씨 좀 예쁘게 써보겠다는 순수한 마음가짐 하나면 지금 당장이라도 시작할 수 있다.

셋째로, 캘리그래피는 나눌 수 있어서 좋다. 편지나 엽서에 아름다운 글씨를 적어 누군가에게 선물한다면 받는 이는 분명 감동할 것이다. 조금 더 정성을 들여 머그컵이나 컵받침 등을 만든다면 더할 나위없는 선물이 된다. 세상에 단 하나뿐인 작품. 주는 이도 행복하고 받는 이도 행복한 미덕이 캘리그래피에 담겨 있다.

이제 막 캘리그래피와 연애를 시작한 내게 단점이 보일 리 없다. 그녀는 잊혀가던 사춘기적 감수성을 되살려주고, 바쁜 일상에 휴식을 주며, 지친 영혼을 치유해준다. 글자 하나하나에 마음과 정성을 담아 적어 내려가다 보면, 신기하리만치 머리가 맑아짐을 느낀다. 나는 오늘도 글자의 숲으로 걸어 들어간다. 거기서 글자가 뿜어내는 피톤치드에 몸을 맡기고 지친 심신을 달랠 것이다.

칼럼니스트 junghyuk2@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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