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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望九, 트럼펫만 들면 아직도 설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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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춘호기자
  • 2017-05-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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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여년 트럼펫 인생으로 일관한 여든한 살의 유차목씨. 한때 교향악단 단원에서부터 훗날 뒷골목 악사 생활까지 모두 경험한 지금, 어느덧 트럼펫과 동일체가 된 것에 큰 만족을 한다.
노을이 묻은 서녘. 꼭 ‘트럼펫’ 같다. 트럼펫을 불면 갑자기 숙연함과 애잔함, 고혹스러움 같은 게 묻어난다. 그 소리 속엔 한없는 울림의 주름이 숨어 있다. 1954년에 소개된 영화 ‘길(La Strada)’의 주제곡. 난 그 감동을 아직까지 잊을 수가 없다. 트럼펫으로 연주하지 않고 다른 관악기로 주제곡을 연주했다면 그 감동은 분명 격감했을 것이다. ‘취침나팔’로 트럼펫을 대신할 악기가 또 있을까.

젊을 때부터 불던 트럼펫을 난 아직도 품고 있다. 60여년의 세월이 흐르는 사이, 음악판의 동지들도 거의 세상을 떠나고 없다. 요즘 청춘의 열기로 가득한 막강한 실력의 다양한 뮤지션이 각종 무대를 독점해버렸다. 나 같은 늙은 연주가가 설 자리도 거의 없다. 그럼 난 ‘추억의 트럼피터’. 아니다. 아직도 ‘현역’이지. 지역 음악계의 한자리를 묵묵히 지킨다. 이 나이에도 연주생활을 하는 건 지역에선 내가 유일한 것 같다. 열정과 설렘이 없다면 굳이 트럼펫을 불 이유가 있을까. 난 아직도 트럼펫 앞에선 스무 살.

내 이름은 유차목. 트럼피터를 위해 태어난 이름 같다. 대구 남구 대명동의 허름한 원룸에 혼자 살고 있다. 올해 여든한 살. 4남매를 낳았다. 내 유전자를 비교적 닮은 둘째 딸(수영)만 생각하면 가슴이 먹먹하다. 미국 텍사스주립대에서 재즈를 전공하고 뉴욕에서 재즈피아니스트로 활동하던 중 뇌출혈로 마흔한 살에 ‘불귀의 객’이 되고 말았다. 막내(지원)는 현재 기타리스트로 교회음악을 개척하고 있다.

일어나면 남산동에 ‘유차목 작곡연구실’이라 적힌 가요교실 같은 사무실로 나간다. 중년에 든 수강생 10~20명이 매주 목요일 오후 2시 노래를 배우러 내 사무실에 온다. 그들이 노래를 부를 수 있게 피아노로 반주도 해준다. 늘그막에 왜 그런 일을? 생계가 넉넉지 않아 그런 것이다. 최근에는 경상감영공원 근처에 연습실을 갖고 있는 ‘마칭밴드’(단장 이병형)의 트럼피터로 매주 토요일 오전 10시부터 2시간 남짓 연습을 하고 그들에게 음악적인 의견도 준다. 대구트럼펫앙상블과 한울림윈드오케스트라 멤버로 움직인다. 나머지 시간은 오로지 트럼펫만 생각하며 산다. 아직도 청바지에 머플러, 그리고 헌팅캡 차림이다. 뱃살도 없고 하체 라인까지 살아 있다. 그래서 그런지 다들 내가 팔순이란 사실을 거의 눈치채지 못한다.

◆ 낙제의 삶…음악으로 지우다

일본 야마구치현에서 태어났다. 내가 세상에 태어났을 때 미국 주도의 재즈는 절정기를 맞았고 태평양을 건너 우리나라까지 전해졌다. 난 빅밴드 시절의 영웅이었던 루이 암스트롱과 프리재즈 시절의 마일즈 데이비스의 각기 다른 트럼펫 소리를 곧잘 비교해서 듣는다. 루이의 트럼펫은 ‘햇빛’ 같고 마일즈의 트럼펫은 너무 무표정해 ‘달빛’ 같았다.

광복 직후 8세 때 일본에서 전북 전주로 간다. 전주국민학교를 졸업하고 부산으로 왔다. 부산 대동중 시절에는 축구, 야구 등 운동에 매진했다. 부산 해동고에 들어갔다. 중학교 때 운동을 했기 때문에 학업에 지장이 있었다. 밴드부에 자진해서 노크했다. 아무래도 음악이 좋은 호구지책일 것 같았다.

고교 1학년 여름방학 때 열흘간 합숙했다. 합숙비 조로 쌀을 두 되씩 가져가야 하는데 그것조차 빌려 내야 할 정도로 가난했다. 그 합숙기간이 내 인생에선 가장 소중한 시기였다. 강대관이란 선배를 만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루이 암스트롱이 1963년 4월 내한해 서울 워커힐호텔에서 공연할 때도 불려갔을 정도다. 그는 훗날 대한민국 재즈 1세대의 대표적 트럼피터가 된다. 선배는 트럼펫이 어떤 악기인지, 호흡은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정말 쉽고도 명쾌하게 알려주었다. 그와 함께 재즈 화성악에 대해서도 정보를 주었다.

‘음악을 하면 집구석이 망한다’는 사실. 그걸 알면서도 무작정 그 길을 갈 수밖에 없는 ‘형극(荊棘)의 길’. 음악을 평생의 도반으로 품고 살려면 숱한 고난과 고뇌를 감내해야만 한다. 음악은 양지의 자식이 아니고 음지의 자식이다. 그늘을 먹고 자란 꽃 같은. 그러니까 음악은 음악(音樂)이 아니라 ‘음악(陰樂)’인지도 모른다. 취미로서의 음악이 아니라 삶 자체가 음악이 되기 위해선 팔자가 좀 기구해야 되고….
글·사진=이춘호기자 leekh@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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