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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혜숙의 여행스케치] 포항 구룡포읍 삼정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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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뉴미디어부기자
  • 2019-0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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습하지도 건조하지도 않은 덕장 속 수천마리 꽁치들의 번지점프

꽁치의 몸을 세로로 갈라 덕대에 걸쳐 놓는다. 삼정리 과메기 덕장. 11월에서 1월에 생산되는 과메기가 가장 시장성이 좋고 가장 고소하다고 한다(작은 사진).
삼정3리 포구. 삼정리에는 1리와 3리 두 개의 포구가 있다.
삼정리(三政里)는 구룡포의 이름난 과메기 덕장이다. 덕장의 7할은 비어 있다. 과메기들은 전국의 어딘가로 떠났다. 3할은 여전히 맹렬한 햇빛과 습하지도 건조하지도 않은 바람 속에 있다. 세로로 쪼개진 채 널린 가지런한 몸, 그 몸들 사이로 바다는 수없이 많은 조각으로 깨어지고, 바람이 들락거리고, 햇살이 머문다. 어떠한 신음소리도, 어떠한 반항도 없다. 킁킁, 어떠한 비린 내음도 없다. 그들에게 다가갈 때마다 알아차릴 수 있다. 인기척 없이옥상에서, 문간에서, 또는 어디선가에서 덕장을 지키는 눈초리들을.

신라시대 삼정승이 살았다는 삼정리
바다와 가장 가까운 청동기 취락지
맑고 달 밝은 밤 신선이 노닌 관풍대

1월중 가장 고소한 과메기 덕장 빼곡
청어 생산량 크게 줄어 꽁치로 대체
꼬리지느러미, 하늘 향해 V자 외쳐

사선으로 역동적·입체적인 주상절리
화산폭발·용암분출 순간 시간 멈춘듯
단애 너머 은빛반달 구룡포해수욕장


◆삼정리

삼정리는 신라 때 삼정승이 살았다는 마을이다. 삼정승이 날 만큼 지세가 좋다는 이야기도 있다. 10여 년 전 삼정리 일대에서 기원전 7세기 청동기 시대의 유적이 발견된 적이 있다. 주거지 60여 곳과 묘 78기, 돌칼, 돌도끼 등의 석기와 700여 점 토기 등 상당한 규모였다. 유적은 해안에서 200m 정도 떨어져 있어 국내에서 발견된 청동기 시대 취락지 중 바다와 가장 가까웠다. 청동기시대 사람들이 미리 터를 잡았을 만큼 좋은 땅이었나 보다.

삼정1리는 ‘범진(凡津)’으로 삼정해변이 펼쳐진 곳이다. 해변의 북쪽 가장자리 마을 동쪽에서 흘러온 계곡물이 바다와 만나는데 옛날에는 자주 범람해 범진이라 불렀다. 2리와 3리가 마을이 시작된 삼정이다. 두산백과에는 ‘노적바우’라는 자연부락이 있다고 하는데, 노적바위는 석병리 두일포 초입에 위치한다. 삼정과 석병의 경계 지점이다. 어쩌면 옛날에는 노적바위가 삼정리에 있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2리에는 관풍대(觀風臺)라는 소나무 울창한 바위섬이 있다. 마을 사람들은 삼정섬이라 부른다. 바람 맑고 달 밝은 밤이면 신선이 놀았다고 전한다. 지금 섬에는 횟집 하나가 들어서 있고 관풍교로 연결되어 왕래가 자유롭다. 관풍이란 바람을 보는 곳, 모로 누운 소나무들이 바람을 보여준다.

삼정3리는 삼정리에서 가장 고즈넉한 어촌의 분위기를 가졌다. 삼정리 어느 곳에서나 과메기 덕장을 찾을 수 있지만 그 중에서도 3리의 덕장은 가장 집중적이고 장한 모습으로 펼쳐진다. 어느 집 앞 덕장은 과메기로 가득 차 있다. 또 어느 집 앞 덕장은 대개 텅 빈 가운데 두 개의 덕대만이 의연히 가득하다. 그 하늘에 커다란 종이 새가 펄럭인다. 고양이에게 생선을 맡긴 듯하지만, 새의 비행은 ‘과메기는 내가 지킨다’는 결의에 가득 차있다. 과메기는 보통 10월부터 이듬해 3월까지 생산된다. 그 중 11월에서 1월에 생산되는 과메기가 가장 시장성이 좋고 가장 고소하다고 한다. 지금이다.

과메기는 원래 청어가 주 재료였다. 청어의 눈을 꼬챙이로 꿰어서 말렸다는 관목(貫目)에서 유래하는데 ‘목’을 구룡포 방언으로 ‘메기’라 하여 과메기가 되었다. 청어는 가난한 선비들이 쉽게 사 먹을 수 있을 정도로 생산량이 많고 값이 싸 ‘선비를 살찌우는 생선’, 즉 ‘비유어(肥儒魚)’라고 불렸다. 정약전은 ‘자산어보’에 ‘청어가 알을 낳으려고 해안을 따라 몰려오는데 수억 마리가 대열을 이루어 바다를 덮을 지경’이라고 했다. ‘신증동국여지승람’에는 ‘해마다 겨울이면 청어가 제일 먼저 영일현으로 몰려오는데 잡은 청어는 나라에 먼저 진상하고 난 후 각 고을에서 청어를 잡기 시작한다. 잡히는 청어가 많고 적음에 따라 그 해 풍년을 점쳤다’고 한다. 영일현이 포항이다. 동해안을 따라 북쪽에서 내려오던 청어떼가 포항 앞바다에서 제일 먼저 잡히는데 그 때가 제일 통통하게 살이 오른 맛난 청어라는 이야기다.

지금은 청어 생산량이 크게 줄어서 꽁치로 과메기를 만든다. 이제는 관목하지도 않는다. 꽁치의 몸을 세로로 갈라 덕대에 걸쳐 놓는다. 수천마리 꽁치들의 번지점프다. 하늘을 향한 꼬리지느러미가 승리의 V를 외친다. 과메기를 먹을 때는 반드시 마늘과 함께 먹어야 한단다. 마냥 좋기만 한줄 알았는데 과메기에는 비타민B1을 파괴하는 물질이 있다고 한다. 내숭지든 앙큼지든 독기 한줌은 지니고 살아야겠지.

바닷가에서 부부가 덕대를 씻고 있다. “그건 아까 씻은 거야.” “아니야. 아직 안 씻은 거야.” “거참 씻은 거라니까.” 수더분한 부부의 옥신각신에 고요한 마을이 들썩인다. 기어코 덕대는 씻기고, 씻긴 덕대들은 수두룩이 모여 맑은 땀을 송송 흘리고 있다.

◆삼정리 주상절리

구룡포 삼정리 주상절리. 방사형, 부채꼴 등 다양한 방향의 절리가 관찰되지만 사선이 가장 우세하다.

삼정해변을 지나 남쪽으로 향하면 길은 서서히 상승하면서 수직으로 떨어지는 단애 아래로 비경을 드러낸다. 삼정리 주상절리 지대다. 희미한 길의 흔적을 디디며 벼랑을 내려간다. 둘러봐도 내려가지 말라는 표지는 없었다. 거친 암석의 해안에서 주상절리를 바라본다. 아물아물 내려다보는 것과 정면으로 보는 것과는 역시 차이가 있다. 보다 역동적이고 입체적이다. 지금 막 화산이 폭발하고 용암이 하늘을 가른다.

신생대 제3기, 6천500만 년 전부터 170만 년 전 사이의 어느 날, 이곳에서 화산이 폭발했다. 분화구를 박차고 튀어나온 용암이 흘러 넘쳤고, 시간이 지나면서 용암은 굳어 바위가 되었다. 용암이 굳으면서 수축에 의해 생겨난 암석의 틈이 절리(節理)다. 기둥 모양으로 발달하면 주상(柱狀)절리, 나무판과 같은 모양으로 발달하면 판상(板狀)절리라고 부른다. 대개 주상절리는 하늘로 솟은 직선 모양이 많지만 삼정리 주상절리는 분출의 순간 시간이 멈춘 듯 사선이다. 청동기 사람들도 삼정승도 바로 이 순간에 있었을 것이다.

단애 너머 남쪽은 바다가 한입 베어 먹은 은빛 반달, 구룡포 해수욕장이다. 삼정 해변에는 아무도 없는데, 구룡포 해수욕장엔 사람들이 제법 많다. 나들이 온 삼대가 해변을 거닌다. 머리가 검은 할머니가 허리를 굽혀 조개껍질을 찾는다. 지나가버린 소녀시절이 거기에 있다는 듯 열심이다. 따뜻했다.

여행칼럼니스트 archigoom@naver.com

☞여행정보

20번 대구포항고속도로 포항IC로 나가 구룡포 방향 31번 국도로 간다. 구룡포항을 통과해 929번 지방도를 타고 구룡포해수욕장 방향으로 간다. 해수욕장 북쪽 끝 언덕부터 삼정리다. 언덕 아래에 삼정리 주상절리가 펼쳐져 있다. 주상절리에서부터 북향하면 삼정1리, 2리, 3리가 차례로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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