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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람] 이선영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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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수영기자 이지용기자
  • 2019-07-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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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각장애·비장애아동 함께 읽는 점자 동시집…스스로 詩 읽으며 감수성 키워”

지난해 말 점자 겸용 동시집 ‘아주 큰 부탁’을 낸 이선영 시인. 여든이 다 되어가는 나이에도 마치 소녀같은 그의 감성이 외모에서도 자연스럽게 드러난다. 이지용 기자 sajahu@yeongnam.com
이선영 시인이 펴낸 다양한 시집들.
최근 대구경북지역에서 시각장애 아동들도 읽을 수 있는 첫 점자 겸용 동시집이 나와 눈길을 끌었다. 이선영 시인(78)의 ‘아주 큰 부탁’(도서출판 일일사)이란 동시집으로, 장애인과 비장애인 모두 읽을 수 있는 점자 겸용 동시집이다. 초등학교 교사로도 15년간 활동한 이 시인은 “지역에서만이 아니라 전국적으로도 점자 겸용 동시집은 찾기 힘들다”며 “만드는 과정이 쉽지 않았지만 자라면서 동시집 한 번 읽지 못하는 시각장애 아동들을 생각하니 힘든 과정마저 즐거움이었다”고 했다. 여든을 코앞에 두고 지난해 첫 시집 ‘유리벽화’(도서출판 그루)를 낸 데 이어 점자 겸용 동시집까지 낸 이 시인의 창작열에 절로 감탄이 나왔다.

▶점자 겸용 동시집을 만드는데 따님이 큰 역할을 했다고 들었습니다.

“딸(정승원)이 우석대 직업재활과 교수로 있는데 책 ‘사랑의 수화교실’ 등을 만드는 등 장애인을 위해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우연히 딸이 ‘시각장애아동을 위한 동화집은 몇 권 있는데 동시집은 없는 것 같다’는 말을 듣고는 동시를 쓰는 사람으로서 점자 겸용 동시집을 만들어보는 것도 의미가 있을 것 같았습니다.”



이 시인은 1983년 ‘동서문학’을 통해 시인으로 등단했으며 1994년 ‘한글문학’에서 동시 신인상, 1995년 ‘아동문학평론’에서 동시 신인상을 받아 동시작가로도 활동하고 있다. 2002년 동시집 ‘꽃잎 속에 잠든 봄볕’, 2012년 ‘맞구나 맞다’를 펴냈으며 2011년 영남아동문학상, 2013년 한정동아동문학상을 받았다. 현재 대구아동문학회 부회장으로도 활동하고 있다. 그의 동시 중 ‘맞구나 맞다’ ‘유모차’ ‘바닷가 작은 학교’는 창작동요제에 출품되는 동요의 가사로 활용되기도 했다.



▶이번 시집을 펴내면서 어려움도 많았던 것으로 압니다. 그래도 보람이 컸다고 했는데요.

국내에서 잘 출간되지 않는 점자 겸용 동시집 ‘아주 큰 부탁’의 표지(위)와 내부.
“이 책은 2017년 대구문화재단 문화예술진흥사업 중 개인예술가 창작지원에 선정돼 제작되었습니다. 점자 겸용 책자는 일반책보다 만드는 공정이 복잡합니다. 그렇다보니 일반 시집보다 3배 정도의 제작비가 더 들어갑니다. 그래도 의미가 있는 책이다 싶어서 350권을 찍었습니다. 지난해 말에 펴냈는데 인터넷으로 100부 이상이 판매돼 용기를 얻었습니다. 또 표지의 시집제목 ‘아주 큰 부탁’을 큰 손녀(이수연)가 캘리그래피로 써주고 삽화의 상당 부분을 작은 손녀(이주연)가 그려주어서 시집에 남다른 애정이 갑니다. 온 가족이 함께 시집을 만들었다고 할 수 있지요.”

▶동시의 매력은 무엇이라 생각하는지요.

“동시는 언어의 감각과 시적 감수성을 키우며 자신의 마음을 표현하는 데 가장 좋은 방법이라 생각됩니다. 그래서 동시를 쓸 때 동시의 내재된 음률과 함축된 시적 아름다움을 통해 자기 표현을 쉽게 할 수 있도록 자연과 가족, 여기서 피어나는 사랑 등을 소재로 많이 써왔습니다. 이번 시집은 비장애인뿐만 아니라 시각장애가 있는 부모가 장애가 없는 자녀에게 동시를 읽어줄 수 있고 시각장애 아동이 타인의 도움을 받지 않고 쉽게 동시를 읽을 수 있도록 함으로써 정서회복, 나아가 가족간의 유대감 강화 등에 도움을 주고 싶었습니다.”

▶초등학교 교사로도 꽤 오랫동안 활동한 것으로 압니다. 초등학교 교사 때의 여러 활동이 시인으로서의 삶을 걷게 하는 원동력이 되었다고 했는데요.

“안동사범대학 졸업 후 고향인 안동에서 초등교사로 15년간 근무했습니다. 셋째를 낳고 난 뒤 육아 때문에 교직을 떠났지요. 학창시절 문예반 활동 등을 통해 자연스럽게 글을 쓰기는 했지만 교사로 근무할 때 아이들의 문예지도를 맡은 것이 결정적 역할을 했습니다. 첫 부임지가 월곡초등이었는데 오지였습니다. 아이들이 다양한 책을 접하기 힘든 상황이라 문예활동은 기대할 수 없었지요. 이런 아이들에게 꿈을 주고 싶어서 문예지도를 하게 되었고 그 당시 대구지역 여러 신문에서 ‘우리들의 글솜씨’ 등 학생들의 문예실력을 보여줄 수 있는 코너가 있어 아이들의 작품을 꾸준히 투고했습니다. 신문에 글이 나면 그 신문을 학교 게시판에 걸어두었지요. 신문에 실린 글을 쓴 아이들은 물론 부모들도 아주 좋아했습니다. 또 다른 학교와 편지 주고받기를 통해 글 실력을 쌓아가는 활동도 많이 했습니다. 이렇게 글을 쓰면서 변해가는 아이들을 보니 저도 글을 열심히 쓸 수밖에 없었습니다.”


83년 등단, 94년 동시 신인상…동시 창작 활동
장애인 위해 활동하는 딸 덕분 점자동시집 발간
일반책보다 제작비 3배 비싸고 공정도 복잡
어려움 많아도 100부이상 인터넷 판매돼 용기
가족과 삽화 등 함께 만들면서 의미있는 작업

교사 시절 아이들 문예지도, 시인 삶 원동력
지역 첫 시창작교실 문학아카데미 회장 활동
한국어린이문화운동단체 색동회지회장 역임
여든 앞두고 작년이어 올해 두번째 시집도 예정
홀로 7남매 키우신 어머니·가족 이야기 담아



▶지역의 첫 시창작교실이라 할 수 있는 대구문학아카데미 회장으로도 오랫동안 활동했습니다.

“자녀들이 어느 정도 성장해 시간적 여유가 생기자 전문적으로 시를 배우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글쓰기를 배우려 했지만 그 당시에는 가르치는 곳이 잘 없었습니다. 1987년 동아백화점 문화센터에 박주일 시인이 시창작교실을 개설했으나 얼마되지 않아 폐강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저와 뜻이 맞는 사람 몇 명이 모여 대구문학아카데미를 설립하고 박 시인이 지도교수를 맡고 저는 회장을 맡아 시창작교실을 운영했습니다. 교실을 구하지 못해 16번이나 교실을 옮겨다녔지요. 그래도 모두 글을 배우려는 열성이 대단했습니다.”

▶색동회 대구경북지회장으로도 활동했는데요.

“색동회는 문화운동과 인권운동을 전개한 한국 최초의 어린이문화운동단체입니다. 소파 방정환이 중심이 되어 1923년 창립하였으며 서울본부에서는 아동잡지를 내고 동화구연대회, 소파상 시상 등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1970년대 색동회에 가입해 회원으로 활동하다가 10여년 전 대구경북지회장을 맡았습니다. 회장으로 있으면서 색동회를 사회적기업으로 등록시켰습니다. 또 대구경북문학회와 연계해 어린이날 행사로 ‘어버이가 들려주는 옛이야기’ 행사를 열기도 했습니다. 현재 대구경북지회에서는 영남일보와 함께 동화구연대회를 매년 개최하고 있습니다. ”

▶시인으로서도 왕성한 활동을 보여주었습니다.

“동시를 쓰면서 시도 많이 썼는데 시집은 지난해 처음 출간했습니다. 그동안 습작을 해놓은 시가 많아 이들 중 엄선해서 올해 2번째 시집도 펴낼 예정 입니다. 대구문인협회 부회장, 대구여성문인협회 회장, 반짇고리문학 회장 등으로 활동했으며 현재 대구가톨릭문인회 부회장으로 있습니다. 19세 때부터 지금까지 시를 써오고 있는데 아직 그리 많은 시집을 내지 못한 것이 아쉽지만 시집 출간에 중점을 두기보다는 좋은 시를 쓰는 데 집중하고 싶습니다.”

▶시의 주된 주제가 가족에 대한 사랑이라고 했는데 특별한 이유가 있는지요.

“육아 때문에 직장을 그만두고 아이들을 키웠습니다. 교사라는 직업을 잃어버린 것도 있지만 시인으로서 제2의 인생을 살게 되었습니다. 이런 인생의 터닝포인트 역할을 해준 것이 아이들이었기 때문에 자연스레 가족을 소재로 한 글을 많이 쓰게 되었습니다. 습작을 꾸준히 해왔던 터라 작품이 꽤 많았는데 아동문학가인 최춘해 선생님이 대학노트에 쓴 제 습작을 보고는 책을 내보라고 해서 첫 동시집을 내게 되었고 이후 창작활동을 좀 더 왕성히 할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지금도 노트를 들고 다니며 영감이 떠오르면 언제나 글을 씁니다.”

▶지난해 펴낸 시집을 보니 어머니에 대한 사랑의 글이 특히 많은 것 같습니다.

“동시는 아무래도 자녀들과 관련한 소재가 많고 일반 시집은 제 인생에 큰 가르침을 준 어머니(송옥연)와 관련한 소재가 많습니다. 아버지가 일찍 돌아가셔서 7남매를 홀로 키우셨는데 어머니는 맏이인 저를 많이 의지하셨습니다. 어머니에게 저는 딸인 동시에 남편 같은 존재였지요. 그래서 어머니와의 사랑이 남달랐습니다. 이런 어머니와의 사랑이 저의 삶과 시 창작의 기반이 되었습니다. 어머니가 주신 사랑을 통해 ‘사랑이 세상을 바르게 하는 힘’이라는 사실도 깨닫게 되었습니다.”

▶어머니의 당부 말씀을 50여개나 모아두었다고 했습니다. 이것이 시의 바탕이 되었다는 말도 했는데요.

“어머니가 저에게 해준 말씀 중에는 그 자체가 시인 것이 많았습니다. ‘눈 없는 가지에도 봄 온 줄 알고 눈 뜨건만 눈 뜬 내 가슴엔 언제 봄이 오려는고’는 봄만 되면 떠오르는 어머니의 말씀입니다. 어머니는 또 이런 말도 하셨습니다. ‘사람은 그릇대로 사니까 기대하지 마라. 그 사람은 자신의 그릇만큼 최선을 다하니 네 그릇으로 판단하지 마라.’ 살아보니 어머니의 이 말씀이 너무 잘 맞았습니다. 어머니의 말씀을 메모해 두고 제 삶의 지침은 물론 시 창작의 원천으로 삼고 있습니다.”


인터뷰 당일에도 메모할 공책을 들고 나온 이 시인은 “이런 만남에서도 시적 영감은 살아날 수 있다”며 아직도 날이 서 있는 시인으로서의 근성을 보여줬다. 그 모습을 보니 문득 이 시인의 한 시구절이 떠올랐다. “시를 쓴다는 것은 외로운 고백 속에 새 우주를 낳는 창조의 깊은 기도다.” (시 ‘시를 쓴다는 건’ 중 일부)

김수영기자 sykim@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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