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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춘호기자의 LP로드] LP맨 외길 김상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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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춘호기자
  • 2019-08-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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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생 꿈이던 개인 음악감상실서 나만의 사운드로 튜닝한 명곡 대장정

김상훈씨가 가장 아끼는 명반 중 하나인 1961년 조지셀이 지휘한 클리블랜드 교향악단의 베토벤 교향곡 9번 실황음반(영국 컬럼비아사).
고교 1학년 때 한 라디오 음악프로그램에서 흘러나온 드보르자크의 음악에 매료돼 하이파이 LP맨 외길을 살아오고 있는 김상훈씨. 그는 평생의 꿈으로 음악감상실을 갖춘 새로운 집을 갖고 싶어했는데, 그걸 2년전 성사했다. 생업이 주는 팍팍함과 고단함도 감상실에 들어오는 순간 말끔히 증발해버린다.
LP맨은 그 누구보다 디지털세상에 잘 적응하고 있다. 나름 탄탄한 경제적 기반도 갖고 있다. 그렇지만 의외로 자신의 여유로움을 사치스럽게 소비하지 않는다. 자신한테 맞는 오디오시스템, 그리고 자기 취향의 뮤직라인에 걸맞은 음반을 다양한 버전으로 수집하게 된다. 오디오도 음반도 무궁무진하다. 동서양 음악장르도 너무나 복잡다단하다. 클래식도 파가 나눠진다. 어떤 이는 작곡가별로, 또 어떤 이는 동일 작곡가의 다양한 연주자별 음반을 수집해 비교분석하면서 감상한다. 한 음의 스펙트럼과 깊이, 그리고 색깔까지 파고든다. 자기만의 사운드를 찾기 위해 어떤 이는 평생 음향기기를 여러 방식으로 튜닝한다. 이번에 만난 LP맨은 김상훈씨(48). 참 다부져 보이는 첫인상이다. 구릿빛 표정, 솔직히 그가 말끝마다 다정다감한 웃음을 내비치지 않았다면 그가 LP맨이라 여기지 못했을 것 같았다. 20대 후반 사업가의 길로 들어선 그는 자기만의 꿈의 음악감상실을 갖춘 집을 갖고 싶어했다. 2017년 8월 꿈을 이룬다.

대구 동구 용계동에 있는 그 집을 찾았다. 2층은 거실, 3층은 33㎡(10평) 남짓한 감상실. 여기로 오기 전 그의 감상실은 중구 동인동 한편에 있었다. 15년 역사를 가진 하이파이클럽 대구경북방 회원들과 공유했다. “개인적인 공간에서 명반을 재현한다는 게 생각보단 제약이 많습니다. 일정 수준 이상의 오디오가 필요하고 일정 수준의 볼륨이 필요합니다. 그게 확보가 돼야 연주회장의 감동을 재현해 낼 수 있습니다. 아파트는 꽤 불리하겠지요. 주거공간 공사보다는 최적의 감상실 구축이 몇 배 더 힘들었습니다.

◆고1부터 클래식에 심취

그는 이미 고등학교 1학년 때 대중음악이 아니라 클래식에 심취된다. 카세트테이프 시절이었다. 첫 충격은 어느 날 밤 우연히 접한 심야 라디오 프로그램인 ‘윤상의 디스크쇼’에서다. 7분40초짜리 드보르자크의 현악 4중주(아메리카) 2악장이었다. 특히 후반부 첼로 선율에 반해버린다. 다음날 동구 신기동 근처 레코드숍에 가서 그 음반을 사게 된다. 이어 CD시절이 시작됐을 때 베토벤 9번 합창곡을 접한 뒤부터 자기만의 ‘명곡 대장정’이 시작된다.

현재 CD 3천장, LP 3천장을 갖고 있다. 그렇게 많은 수는 아니다. 하지만 음반 수는 그렇게 의미가 없다. 양보다 질이다. 어디서나 살 수 있는 음반은 그의 욕망을 결코 충족시키지 못한다.

그는 시세표를 참조하면서 툭하면 국내외 의미있는 음반을 경매를 통해 매입한다. 음반 구매 방법은 새로 나온 신보는 국내 음반사이트(yes24, 교보문고)를 이용한다. 해묵은 음반은 해외 경매사이트를 통해 낙찰받는다. 최근엔 LP 생산이 급증해 좋은 음원 구하기가 훨씬 수월해졌다. 하지만 꼭 소장하고 싶은 희소성 있는 음반은 잘 나오질 않는다. 있더라도 좋은 상태 음반을 골라내기도 쉽지 않다. 길게는 3년 이상 기다려서 겨우 장만하기도 한다. 같은 곡도 다른 방식으로 듣는다. 그러다 보니 브람스 1번 교향곡과 베토벤 9번 합창교향곡은 무려 다른 버전을 30장 갖고 있다. 베토벤을 너무 좋아해 그의 작품은 거의 다 망라해 소장하고 있다.

감상실 한 편에 이런저런 클래식 전문서적이 보인다. 예당출판사에서 나온 5개국으로 번역된 ‘음악용어사전’, 시리즈물로 출간된 명곡해설집. 소파 옆에는 그가 읽다 덮어둔 리스트가 보인다. 그가 이탈리아 출신 명 피아니스트인 미켈란젤리가 연주한 베토벤 피아노협주곡 5번 ‘황제’의 2~3악장을 살포시 펼쳐보인다.


일정수준 이상 오디오와 볼륨 시스템
주거공간 공사보다 어려운 음악감상실
위치부터 설계까지 고민하면서 작업

7분40초 드보르자크 현악4중주 2악장
고교시절 심야라디오서 접하며 충격

택시 알바로 첫 마련한 AR 턴테이블
공간 채워주는 스피커 ‘웨스트민스터’
중후한 클래식 선율, 눈부신 울림 만끽

양보다 질 우선 CD 3천장·LP 3천장
베토벤 9번합창곡 다른버전 30장 소장
카세트테이프 시절부터 분류하는 습관
커버마다 제품 상태·구입시기 등 메모



◆택시 알바하며 음반 사 모아

“처음 오디오를 산 것이 21세 때입니다. 로저스(Rogers) 스피커와 AR 턴테이블을 샀는데, 당시 택시 알바를 해서 시스템을 샀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하루 18시간씩 운전해서 돈을 벌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합승이 용인되던 때라 돈을 많이 벌 수 있었는데, 1993년 한 달 알바로 180만원을 벌었다.

“이후 LAMM 파워앰프 등 여러 오디오를 사고 들었지만 개인적으로는 탄노이 스피커 ‘Westminster SE’에 크게 만족하고 있습니다. 스피커를 선택하는 요소 중 가장 중요하게 여긴 것은 밀도감인데, 저에게는 청취 공간을 채워줄 수 있는 대형 스피커가 필요했습니다. 웨스트민스터는 방안을 채워주는 느낌이 참 좋았습니다. 청취 공간만 허락되면 이보다 좋은 스피커는 없다고 봅니다.”

그는 웨스트민스터를 절묘하게 잘 구동해주는 국내에서 만든 웨이버사 앰프(Waversa V-Power Amplifier)를 선택하게 된다. 하이파이클럽의 웨이버사 대구 시청회 때 자신의 사무실을 빌려준 것이 인연이 돼 웨이버사 제품을 처음 접하게 된다. 웨스트민스터 옆엔 보통 매킨토시가 애용되는데, 그는 새로운 방식을 찾은 것이다.

턴테이블도 두 종류를 사용한다. 하나는 모노톤으로 녹음된 걸 잘 재현해내는 영국제 가라드 301, 다른 하나는 교향곡, 오페라 등 대편성 음악을 잘 표현해주는 영국제 린(LINN)을 세팅했다. CD플레이어는 꽤 비싼 스위스제 CH프리시전(Precision D1)을 사용한다. 하지만 웬만하면 잘 사용하지 않는다. LP사운드의 눈부신 울림을 잘 알기 때문이다.

“CD는 절대 LP를 따라갈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맛이 없고 밋밋합니다. 간이 안 된 음식을 먹는 느낌이라고 해야 할까요.”

그가 더 구체적으로 설명해 준다. “아무래도 정보량의 차이가 아닌가 생각합니다. LP는 CD보다 2배 이상 많은 정보량을 갖고 있다보니 배음을 아주 잘 표현해 줍니다. LP를 듣다가 CD를 듣게 되면 상대적으로 경질이기 때문에 잘 듣지 않게 됩니다. 재미있는 점은 디지털 마스터링이 도입됐을 당시의 LP와 CD와 달리, 아날로그 마스터링 시절에 나온 음반은 둘의 음질 차이가 엄청납니다. 제가 생각할 때 이는 1950~60년대 아날로그로 마스터링 된 음반들이 최근에 다시 디지털로 리마스터링 하는 과정에 2만㎐ 이상의 정보들이 사라진 탓이라 봐요.”

◆옥션 LP 구입 감각

그의 LP 커버마다 제품의 상태와 가격, 구입시점 등이 잘 메모돼 있다. 그는 음반 분류에 무척 신경을 쓴다. 왜냐하면 분류가 잘되면 사장되는 음반이 없는데, 잘못하면 사 놓고 한 번도 안 듣는 경우가 허다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분류하는 습관을 카세트테이프 살 때부터 들이기 시작했다고 한다.

흥미로운 사실은 LP를 지금도 계속 사고 있지만 장수는 3천여장을 유지한다. 그 이유는 잘 안 듣는 음반은 주위 분들에게 판매하거나 선물로 주고, 자주 듣고 좋아하는 음반들로만 재구성한 탓이다.

그는 하드웨어(오디오)보다 소프트웨어(음악)를 더 중시한다. “그동안 제가 원하는 소리가 나지 않았기 때문에 기기를 바꾸며 많은 고생을 했죠. 지금은 오디오적인 만족도가 높기 때문에 LP를 컬렉션하면서부터는 음악에만 집중하고 있습니다.”

기계보다 더 중요한 것은 공간이라 생각한다. “이 집도 오디오 때문에 지은 겁니다. 배선 하나하나, 콘센트 하나하나, 위치부터 설계까지 직접 고민하면서 준비했습니다. 접지공사도 아주 예민하게 했습니다.”

요즘 나오는 음반들은 녹음 기술이 좋아져 실연에 가까운 소리를 내어준다. 하지만 50~60년대 음반의 맛이 느껴지지 않는다. “저는 그 이유가 연주자의 기량에서 나온다고 봅니다. 클래식의 전성기는 50~60년대라 보는데, 당시에는 재능 있는 사람들이 클래식 시장에 진출해 큰 부와 명예를 얻을 수 있는 시대였죠. 그래서 많은 사람이 클래식에 몰렸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클래식 시장이 축소되어 그만한 인적 자원을 확보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한국만 봐도 음악적 재능을 가지고 있는 천재일지라도 의대나 법대 같은 곳에 더 몰리잖아요.”

그는 음악감상을 통해 연주자의 현주소도 감지할 수 있게 됐다. “클래식이라는 것이 과거에 있던 음악을 계속 반복할 수밖에 없죠. 살아 있는 사람들과의 경쟁뿐만 아니라 죽은 사람의 음반과도 경쟁을 해야 합니다. 그래서 그런지 요즘 연주자들이 공연장에서 너무 억지를 부리는 것 같아요. 경쟁자들과 싸워 살아남기 위해 무리수를 두는 것으로 추측됩니다. 1년에 20회 정도 연주장에 가서 들어보면 만족스러운 연주가 10%가 채 되지 않습니다. 대부분 과격하게 제스처를 취하다 보니 눈은 즐겁지만 귀는 좀 고통스럽습니다.”

그가 인터뷰 말미에 아끼는 명반 한 장을 끄집어 낸다. 헝가리 출신 지휘자 조지 셀(Georges Szell)이 미국 클리블랜드 교향악단을 맡아 베토벤 교향곡 9번을 연주한 걸 영국 컬럼비아사가 1961년 음반으로 만든 것이다. 음반 레이블에 은색줄이 홀로그램처럼 장착돼 있어 일명 ‘블루실버’로 불리기도 한다.

그가 또 한 장의 음반을 소개한다. 그 음반이 출시될 무렵 첼리스트 파블로 카잘스가 미국 백악관 연주에서 연주한 ‘Song of bird ’. 고향에 대한 그리움 때문에 두 번 울먹거린 그 소리까지 녹음됐다. 86세의 카잘스는 스페인내전 때 등장한 프랑코 독재정권을 피해 해외로 망명 중인 상태였다. 카잘스는 이제 가고 없지만 음반 속에서만은 살아 있었다. 그도 음악의 그 신비한 힐링파워로 하루를 론칭한다.

글·사진=이춘호기자 leekh@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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