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주, 시간을 품고 미래를 잇다 ⑥
영남일보 인터랙티브 기획

다시 태어나는
상주읍성 북문

2024년 8월, 차가운 아스팔트 아래에서 역사의 파편이 쏟아져 나왔다.
1912년 일제에 헐린 상주읍성 ‘북문터’가 100여 년의 침묵을 깨고 그 실체를 드러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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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텨온 요새의 시간1385년 완성 ~ 1912년 철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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日서 돌아온 옛 엽서2014년 도쿄 고서점가서 발견
0억원
북문 복원 사업비2021년부터 투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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過去 · THE PAST
피와 땀으로 쌓아 올린 500년

“경주가 가장 크고,
상주가 그 다음이라”

大邑

상주의 뿌리는 천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경상도’의 ‘상(尙)’이 바로 상주다. 고려의 문인 이제현이 극찬했듯, 상주는 영남 11개 지역을 포괄하는 계수관(界首官)으로서 막강한 위상을 떨쳤다. 조선 태종 8년에는 경상감영이 경주에서 상주로 옮겨오기도 했다. 1380년 왜구가 7일간 관아와 민가를 불태우자, 상주인들은 1381년부터 직접 돌을 날라 1385년 웅장한 읍성을 완성했다.

1385년
상주읍성 완성
(1381년 착공)
상위 5위
경상도 29개 읍성 중
손꼽히는 규모
11개 지역
계수관으로
포괄한 영남 고을

성벽이 부서지고
연못이 메워졌다

1912

500여 년을 버텨온 상주의 심장은 1912년 일제의 ‘읍성 철거령’으로 도려내졌다. 표면적 명분은 ‘도시화’였으나, 1910~1918년 측량된 지적도를 보면 철거된 노른자위 땅의 소유주가 대부분 일본인이었다. 견고했던 성벽 자리엔 미나리꽝과 일본인 가옥이 들어찼다. 1929년 ‘상산지’는 “예전의 성이나 연못이 있던 곳을 이제 다시 기억할 수 없다”고 한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