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덤을 남기지 말라,
나는 바다의 용이 되겠다
경주시 문무대왕면 봉길리 해변. 새벽부터 사람들이 두 손을 모으는 이 바다 가운데, 봉분도 석물도 없이 바위와 물결만 남은 자리가 있다. 삼국통일을 이룬 문무왕이 “재물을 허비하고 백성을 수고롭게 하지 말라”며 화장을 명하고 동해 어귀의 큰 바위 위에 잠든 곳, 문무대왕릉이다. 죽어서도 나라를 지키겠다는 왕의 뜻이 천 년을 건너 오늘의 기도와 포개진다.
바다로 돌아간 왕과 바다에서 건너온 왕, 불이 식어 돌이 된 해안과 솔숲이 품은 포구 —
경주의 동해는 천 년의 시간을 품고 오늘도 밀려온다.
경주시 문무대왕면 봉길리 해변. 새벽부터 사람들이 두 손을 모으는 이 바다 가운데, 봉분도 석물도 없이 바위와 물결만 남은 자리가 있다. 삼국통일을 이룬 문무왕이 “재물을 허비하고 백성을 수고롭게 하지 말라”며 화장을 명하고 동해 어귀의 큰 바위 위에 잠든 곳, 문무대왕릉이다. 죽어서도 나라를 지키겠다는 왕의 뜻이 천 년을 건너 오늘의 기도와 포개진다.
봉길리에서 대종천을 거슬러 오르면 빈 절터에 동·서 삼층석탑만 남은 감은사지가 있다. 왜구를 막으려 문무왕이 짓기 시작했으나 끝을 보지 못했고, 아들 신문왕이 ‘은혜에 감사한다’는 뜻으로 완성했다. 금당 아래에는 바다의 용이 된 아버지가 드나들도록 비워둔 공간이 남아 있다. 언덕 끝 이견대에서 신문왕은 용을 보았고, 그 대나무로 만든 피리 만파식적은 온갖 파도를 잠재웠다 전한다.
감포읍 대본리, 아이들이 날마다 동해를 보며 ‘문무정신’을 노래하던 대본초등학교가 있던 자리. 학생이 줄어 문을 닫은 교정에 문무대왕 해양역사관이 들어섰다. 실감영상실에 앉으면 벽과 바닥이 온통 바다가 되어 신라의 배가 물길을 가른다. 문무왕이 지키려 한 바다가, 신라인이 세상으로 나아간 바다가, 그리고 오늘 다시 돛을 올린 한 사람의 바다가 이곳에서 하나로 이어진다.
왕릉과 탑이 천 년을 말하는 도시에서, 양남면 읍천항을 지나면 시간의 눈금이 전혀 달라진다. 뜨거운 용암이 흐르다 식으며 쩍쩍 갈라진 주상절리의 해안이다. 곧게 선 것, 옆으로 누운 것, 한 점에서 부채처럼 퍼진 것 — 바위는 움직이지 않지만 그 안에는 한때 이곳을 흐른 불의 방향이 남아 있다. 읍천항에서 하서항까지 이어지는 파도소리길은 해안의 굴곡을 따라 걷는, 경주에서 가장 오래된 길이다.
소나무 사이로 몇 걸음 들어가면 파도 소리보다 솔잎 밟는 소리가 먼저 들린다. 곰솔이 바닷바람과 모래를 걸러주는 관성솔밭해변, 그 북쪽에는 황새바위와 할매바우가 지키는 수렴항이, 남쪽 끝에는 경주와 울산이 갈리는 지경해변이 있다. ‘관성(觀星)’은 별을 본다는 뜻. 낮에는 나무 사이로 바다를, 밤에는 나무가 비워둔 자리로 별 하나를 본다.
양남면 나아해변. 알에서 태어나 궤에 담긴 채 바다를 건너와 신라 제4대 왕이 된 석탈해의 이야기가 남은 곳이다. 설화의 주인공은 대개 왕이 되는 아이지만, 나아의 바닷가에 오래 서 있으면 낯선 배를 처음 발견한 사람이 떠오른다. 이상한 배를 보고도 돌아서지 않고, 길흉을 알 수 없는 궤를 열어 아이에게 먹을 것과 머물 곳을 내준 아진의선. 한 아이의 긴 항해는 누군가 그 궤를 열었을 때 완성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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