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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규완 칼럼] 선거철 공약·정책 행간 읽기
# "목련 피는 봄 오면 서울 편입" 수도권 표심이 간절했나 보다. 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이 지난 3일 김포시를 찾아 "목련 피는 봄이 오면 김포는 서울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포·구리 등을 서울로 편입시키는 '메가 시티' 구상은 지난해 10월30일 김기현 대표가 발표하며 시동을 걸었다. 국민의힘은 뉴시티 특별위원회를 꾸리고 김포와 구리를 편입하는 두 개의 특별법을 발의했다. 하지만 딱 거기까지였다. 뉴시티 특위는 지난해 12월19일 활동을 종료했고 특별법은 상임위에 상정조차 되지 않은 채 폐기 수순에 들어갔다. 그런데 이걸 재활용하겠다? 꽃피는 봄까지 성과를 낸다? 실현 가능하겠나. 김포 서울 편입은 국회 입법 사안인 데다 국민의힘 당내 일각의 반대 의견이 만만찮다. 선거용 정치공학을 감성적 언어로 포장한 느낌이다. 한 위원장은 경기도 분도를 함께 추진하겠다고 밝혔는데 김포·구리·남양주 등 주요 도시를 빼면 경기북도는 쭉정이 신세로 전락한다. 이준석 개혁신당 대표는 "둥근 사각형 같은 정책"이라며 형용모순의 상황을 비꼬았다. # '노인을 위한 나라는 있다?' 노인을 위한 나라는 있다. 단 선거철에만. 고령층 표심을 겨냥한 '실버 공약'이 꼬리에 꼬리를 문다. 정부여당이 요양병원 간병비 급여화 방안을 제시하자 민주당은 이에 더해 '경로당 주 5일 무상점심'을 공약으로 내걸었다. 국민의힘은 다시 무상점심을 주 7일까지 확대해 나가겠다고 약속했다. 문제는 재정이다. 간병비에 건강보험을 적용하면 연간 최대 15조원의 재원이 투입돼야 한다. 올해 적자로 돌아서는 건보 재정을 감당할 수 있을까. 양당이 '실버 공약'에 목매는 까닭은 따로 있다. 4·10 총선에서 투표 가능한 18세 이상 인구 4천436만명 중 60대 이상이 1천395만명(31.4%)으로 20·30대 1천277만명(28.8%)을 앞질렀다. 이번 총선은 국민의힘·민주 양당의 사활이 걸렸다. 일단 '지르고 보는' 공약이 넘쳐나는 이유다. 예컨대 민주당의 '결혼·출산·양육 패키지' 저출생 대책엔 한 해 28조원이 들어가야 한다. # 단골공약 도심 철도 지하화 지난달 25일 정부가 '교통분야 3대 혁신전략'을 발표했다. 광역급행철도(GTX) 노선 연장과 신설, 철도 지하화 등에 134조원을 투자하겠다는 원대한 복안이다. 도심 철도 지하화는 선거철 단골공약이다. 이번에는 현실화할 수 있을까. 변수는 천문학적 비용이다. 정부는 철도 지하화 사업비를 65조원, 민주당은 80조원으로 추산한다. 민자 유치로 이 돈을 마련해야 한다. 지상 개발의 수익성이 관건인데 역 주변을 제외하면 거의 선형 부지다. 비수도권에서 민자 조달 방식의 철도 지하화는 '미션 임파서블'에 가깝다. # 유권자 리터러시 키워야 맹랑한 공약에 유권자들이 농락만 당할 순 없다. 공약·정책에 대한 리터러시를 키워야 한다. 이를테면 '지르고 보는' 공약 대처법이다. 검증 키워드는 '실현 가능성'. 재원조달 방안을 면밀히 살피고 법 개정 사안인지도 따져봐야 한다. 선거철 단골공약도 경계해야 한다. 구체적 재원 대책이 없다면 사탕발림 립서비스일 가능성이 크다. 법 개정이 필요한 공약은 여야 합의가 필수다. '재건축 패스트트랙'만 해도 도시정비법·주택법 등 10여 개 법안을 고쳐야 순항할 수 있다. 금방 실현되는 양 들뜰 일이 아니다.논설위원 논설위원
[자유성] 청소년 우울증
지난달 15세 중학생(A군)이 배현진 국회의원을 돌덩이로 마구 폭행한 건 미스터리한 사건이다. 단독 범행인지, 구체적 범행 동기가 무엇인지가 아직 드러나지 않았지만, A군이 제정신이 아니라는 건 분명하다. 경찰조사에서 A군 스스로도 정신질환(우울증)이 있다고 주장했는데, 거짓말은 아닐 것이다. A군은 초등학생 때부터 이상 행동을 보였다. 친구를 상대로 괴롭힘과 폭력, 성희롱, 스토킹을 일삼았다고 한다. 그런 공격 성향에 더해진 비뚤어진 정치 신념이 극단적 행동으로 이어졌을 가능성이 높다. 물론 A군이 저지른 짓은 용서받기 힘들지만 처벌만이 능사는 아니다. A군처럼 심각한 우울증을 앓고 있다면 치료가 우선이다. 그게 재범 방지에도 효과적이다.'마음의 병'을 앓는 청소년들이 갈수록 늘고 있다. 정부 통계에 따르면 우울증 진단을 받은 10대 청소년은 2018년 2만8천여 명에서 2022년 4만6천여 명으로 늘었다. 4년 만에 무려 60% 이상 증가한 것이다. 또 우울증을 호소하는 청소년 정신건강 상담 건수도 연간 수십만 건에 이른다. 이에 더해 남에게 숨기는 우울증 특성을 감안하면 통계에 잡히지 않은 청소년 환자가 더 많을 수도 있다. 최근 10대의 자해·자살 시도가 급증하는 것도 우울증이 원인이다.청소년 우울증은 단지 본인과 가족만의 문제가 아니다. A군처럼 공격·충동 성향이 밖으로 발현되면 사회를 위협하는 범죄가 된다. 정부 차원의 대책이 요구되는 이유다. 무엇보다 성 학대, 폭력, 마약 등 청소년 정신 건강을 좀먹는 SNS 저질 콘텐츠 규제부터 필요해 보인다. 허석윤 논설위원
[하프타임] 대구 '달성군'이라 쓰고, '영어교육 1번지'로 읽는다
1816년 영국 맥스웰 함장의 글씨가 최초 영어 접촉이다. 당시 조선에는 영어를 할 줄 아는 사람이 전무했고, 결국 그를 돌려보냈다. 이보다 앞선 1797년 영국 해군 브로턴 프로비던스호가 조선에 상륙했다. 당시 알파벳을 처음 접한 조선 한 관리는 조정에 "붓을 줘 쓰게 했더니 모양새가 구름과 산과 같은 그림을 그려 알 수 없었습니다"라고 망연자실했다. 헌종(조선) 12년(1846년),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가 조선에서 선교 활동 중 체포됐다. 마카오에 유학하며 가톨릭 사제로 교육받은 그는 라틴어·중국어·프랑스어·스페인어를 자유롭게 구사할 수 있었고, 영어도 가능했다. 입말로 구사했다는 기록은 없지만, 적어도 영어를 읽을 수 있었던 것은 분명하다. 영국산 세계 지도 1장을 번역했단 기록이 남아 있기 때문이다. 조선 일부 관료들은 김대건을 대단한 인재라고 판단해 활용하고자 했다. 허나 여러 사정이 겹친 끝에 결국 사형에 처해지면서 물거품이 됐다. 36년 후, 고종(대한제국)이 미국과 수교를 결정했을 때도 영어를 할 줄 아는 사람이 없었다. 그 후 영어는 고종의 관심에 따라 후원을 받기 시작했다. 1885년 조선에는 최초 관립영어 학교인 '육영공원'이 설립됐다. 미국에서 유능한 교사를 초빙해 가르쳤다고 한다. 이내 조선에는 영어 열풍이 몰아쳤다. 고종 황제는 육영공원으로 행차해 영어시험을 감독하기까지 했다. 심지어 황태자에게도 개인 선생을 붙여 영어 과외를 시킬 정도였다.현재도 영어교육은 부모 마음을 무겁게 하는 걱정거리 중 하나다. 더 나은 영어교육 환경을 찾아 도심과 국외로 떠나는 학부모들도 적지 않다. 저출생과 지역 인구감소에까지 영향을 미치는 영어교육에 대해 대다수 지자체는 예산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손을 놓고 있다. 하지만 대구 달성군은 과감하고 실용적인 영어교육 사업으로 타 지자체의 선례가 되고 있다. 군은 지난해 전국 지자체 중 최초로 어린이집 영어 교사 전담배치 사업을 시작했다. 지역 영유아들이 재미있게 영어를 배우고 다양한 외국 문화를 경험할 수 있도록 기획한 활동이다. 단순한 주입식 교육이 아닌 놀이 및 어린이집 행사와 연계한 흥미로운 학습을 제공하는 것이 목표다. 사업은 시행 첫해부터 학부모들로부터 인기를 얻었다. 올해는 172개 어린이집 4천200여 명이 참여하고 있다. 이와 함께 원어민과 함께하는 영어 캠프와 국외 캠프를 여는 등 지역 학생들에게 영어 공부를 시켰다. 영어교육 사업은 달성교육재단이 직접 담당해 전문성을 더했다. 달성교육재단은 기존 달성장학재단에 교육, 진로 진학, 도서관 업무를 더해 지난해 새롭게 출범한 기관이다. 입시상담과 진로 진학 컨설팅 등을 체계적으로 이끌며 지역 청소년 고등교육과 대입에도 든든한 컨트롤타워 역할을 하는데 충분해 보인다. 영어는 교육 현장에선 '누가, 어떻게 가르치느냐'가 무엇보다 중요하다. 한국인 대부분이 초·중·고교에서 10년 넘게 영어를 배우지만 영어로 소통하는 데 어려움을 느낀다. '입시 영어' 위주로 단어와 문법을 외우고 어려운 지문을 해석하는 데만 집중한 탓이다. 수준이 천차만별인 아이들을 한자리에서 가르치는 것도 한계로 지적된다. 이렇다 보니 중간에 포기하거나 필요할 때 다시 학원에 다녀야 한다. 현재 달성군은 미래를 위한 가장 확실한 투자는 교육이라는 점을 너무나 잘 숙지하고 있다. 그래서 맞춤형 교육을 적극적으로 벌이고 있는 것이다. 이는 시대에 맞는 올바른 군정 방향이라고 본다.강승규 사회부 차장강승규 사회부 차장
[동대구로에서] DGB차기 회장, 내부출신 한시적 행장 겸직 필요
DGB금융그룹 차기 회장 선임 레이스의 종착역이 보인다. 설 연휴가 지나면 1차 후보군(7명)에서 2차 후보군(2~3명)이 추려진다. 차기 회장 내정자 이름은 이달 말쯤 접할 수 있다. 이 레이스를 보면서 2018년 2월을 전후로 굵직한 비위행위가 잇따라 터져나와 그룹 기반이 뿌리째 흔들렸던 모습이 떠올랐다. 지방 금융의 가장 밑바닥까지 드러났었다. 그 DGB금융이 6년 만에 다시 갈림길에 섰다. 그때와 지금은 상황이 다르다. 6년 전엔 만신창이가 된 주력 계열사 '대구은행발(發) 사태'를 수습할 특급 소방수를 갈구했다. 올해는 지방은행의 시중은행 전환이란 역사적 호사(好事)를 이끌어 갈 안정된 리더십을 찾는다. DGB 역사상 가장 혼란기 때 외부서 긴급 수혈된 하나금융지주 부사장 출신인 김태오 현 회장의 등판은 성공적이었다. 외부 전문기관을 참여시켜 가동한 CEO 육성프로그램, 사외이사 중심으로 재편된 그룹 지배구조는 단연 국내 금융권 중 최고라는 찬사를 받는다. 지방은행의 취약점이던 '디지털·글로벌 금융'에도 강한 드라이브를 걸었다. 현재 차기 회장 1차 후보군에 오른 이들의 면면은 화려하다. 이름만 대면 알 만한 시중은행장 출신, 고향만 TK일 뿐 경력 대부분을 서울서 보낸 이른바 '서울TK'들이 군침을 흘린다. 뚜렷한 대주주가 없는 금융사 특성상 정치적 외풍도 작용할 수 있다. 스펙은 화려할지 몰라도 기존 정책의 연속성을 담보하긴 어렵다. 자신의 색깔을 강제로 입혀보려는 시도가 있을 것이다. 지역 특유의 보수적 정서에 대한 면역력도 약할 수 있다. 차기 회장의 대구은행장 겸직카드도 고민해야 한다.일각에선 은행발 각종 금융사고로 그룹이 타격을 받는다며 회장의 은행장 겸직을 이야기하고 한다. 이 같은 시각은 은행 중심적 사고에 기인한 것이다. 이자 장사시대는 이제 운신의 폭이 좁다. 비이자수익 창출비중이 중요해졌다. 증권·생명·캐피털·자산운용사 등 비은행권의 비중은 점점 커진다. 더욱이 대구은행은 시중은행이 되면 사이즈는 더 커진다. 영업범위가 넓어진다는 얘기다. 그룹 전체업무를 총괄할 회장이 덩치가 커진 은행장 업무까지 맡긴 사실상 어렵다. 실제 그룹 내 대구은행 비중도 점점 작아지는 추세다. 지난해 3분기 기준 대구은행의 누적 당기순이익 비중은 그룹 내에서 68.9%다. 비은행권 비중이 31%나 되는 셈이다. 요즘 각 금융그룹 내 부회장도 사라졌다. 회장 대신 비은행권 계열사를 관리하기가 힘들어졌다. 다만 DGB 차기 회장은 한시적 은행장 겸직이 필요해 보인다. 시중은행 전환 후 조기 안착하려면 일정 부분 의사결정에 일관성이 있어야 한다. 회장과 은행장의 의견이 다르면 속도를 내기 힘들다. 호남·강원·충청 중 어느 지역부터 먼저 지점을 낼지부터 막힐 수 있다. 디지털 고객 선제 확보 후 지점 출점을 해야 한다는 의견이 나올 수 있다. 지역사회 공헌활동의 범위와 규모에도 온도차가 날 수 있다. DGB금융 경영철학 및 지역 정서에 대한 이해도가 높은 내부인사가 차기 회장을 맡고, 적어도 내년 말까지는 은행장을 겸직하는 게 합리적이다. 단순한 시중은행 전환이 아니다. 지방(대구)에 기반을 둔 전국구 은행의 등장이다. DGB금융에 요구되는 것은 지역정서를 잘 아는 안정된 리더십이다.최수경 정경부장최수경 정경부장
[자유성] 사외이사
대주주와 사내 경영진을 감시·견제해야 할 기업 사외이사들의 호화 해외출장이 논란이다. 경찰은 포스코 그룹이 2019년 중국에 이어, 지난해 캐나다에서 개최한 해외 이사회 때 사외이사들이 호화출장을 다녀왔다는 의혹을 놓고 최근 수사에 착수했다. 또 세계 5위, 국내 1위 담배 업체인 KT&G도 코로나 팬데믹 기간이었던 2020∼2021년을 제외하고 2012년부터 거의 매년 한 차례씩 수천만 원을 들여 사외이사 해외 출장을 진행한 것으로 확인됐다.두 회사의 공통점은 2000년대 초반 민영화가 이뤄진 주인 없는 회사(소유분산기업)이고, 현재 신임 회장 또는 사장 선임 절차가 진행되고 있다는 것이다. 포스코 그룹의 최정우 회장은 3연임에 실패했고, KT&G 백복인 현 사장은 4연임에 나서지 않겠다고 밝힌 후 이들 회사의 사외이사 '호화 출장'이 느닷없이 불거졌다. 포스코 그룹과 KT&G 안팎에서는 사외이사들이 후임 회장 또는 사장 선임에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어 이를 견제하기 위한 외부의 입김이란 시각이 지배적이다.KT&G 이사회는 사내이사 2명과 사외이사 6명 총 8명으로 이뤄지는데, 사외이사들은 차기 사장 후보군을 추리고 심층 면접을 진행하는 지배구조위원회·사장후보추천위원회를 구성한다. 포스코도 7명의 사외이사들이 'CEO 후보추천위' 위원 자격으로 회장(CEO)을 선임할 수 있는 권한을 갖는다. 가진 권한에 비해 사외이사의 역할은 이사회에서 '거수기'에 불과하다는 현실적 비판이 만만찮다. 정치 외풍에 흔들리지 않겠다는 취지를 반영해 도입한 사외이사 권한에 대해 고민해야 할 때가 된 것 같다. 마창성 동부지역본부장
[자유성] 플랜 75
오는 7일 국내 개봉되는 일본 영화 한 편이 머릿속을 무겁게 한다. 제목은 '플랜 75'(하야카와 치에 감독). 인터넷 검색을 통해 미리 시놉시스를 살펴봤다. 충격적이다. 영화의 배경은 초고령화 문제가 심각해질 대로 심각해진 가까운 미래의 일본 사회다. 영화 속에서 일본 정부는 '플랜 75'라는 정책을 시행하고 있다. 75세 이상의 국민이 죽음을 선택할 경우 정부가 준비금 10만엔을 비롯해 상담·장례 서비스까지 지원해 준다는 것이다. 즉 '75세 안락사법'이다. 초고령화시대 노인복지 재정 부담이 갈수록 커지고, 사회 전반에 노인 혐오 분위기가 퍼지자 고령 인구 감소를 위해 내놓은 고육지책이다. 주인공인 독거 할머니 미치는 호텔 청소부로 일하다 해고를 당한다. 일을 하지 않으면 당장 먹고살기가 어려운 처지다. 재취업에 실패해 결국 밥까지 굶게 된 그가 '플랜 75' 신청서를 쓰게 된다는 스토리다.이 영화는 사회의 열외(列外)가 돼 가는 노인들의 모습을 리얼하게 그리고 있다. '죽음을 권하는 사회'가 결코 소설 속에나 나올 법한 이야기가 아니라는 경고다. 감독이 전하는 메시지는 인간의 존귀함보다 효율성을 더 중시하는 현 사회에 대한 통렬한 비판이다. 하지만 2022년 일본에서 개봉된 뒤 현지의 반응은 섬뜩하다. 일부 젊은 층 관객은 "플랜 75가 더는 손 놓고 있을 수 없는 초고령화 문제에 대한 해법일 수도 있다"고 했다. '태어날 때는 선택할 수 없었지만, 죽을 때는 원할 때 죽을 수 있다'라는 영화 속 대사가 상념에 잠기게 한다. 이 영화가 일본만의 이야기일까. 역시 초고령화 사회를 눈앞에 둔 대한민국에도 가볍지 않게 다가오는 주제다. 국내 관객의 반응은 어떨지 자못 궁금하다. 이창호 논설위원
[월요칼럼] 떠날 때를 안다는 것
스포츠가 감동을 주는 것은 혜성 같은 플레이어의 등장과 활약만도 아니다. 정점에 있던 스타들의 아름다운 은퇴도 있어서다. '코리안 특급' 박찬호가 존경했다는 미국 프로야구(MLB)의 '레전드' 루 게릭(1903~1941). 1939년 여름 어느 날, 그는 양키 스타디움에서 코끝 찡한 은퇴 선언을 한다. 그때 나이 36세, 훗날 '루게릭병'으로 불린 근위축성 측색경화증 진단을 받고 나서다. 그는 "원치 않은 '중단'이지만 나는 세계에서 가장 행복한 행운아다. 후회스럽지 않은 삶을 살았기 때문"이라고 했다. 관중들은 기립 박수로 쾌유를 기원했다. 은퇴 연설 2년 후 그는 세상과 작별했다. 선수 시절 '홈런왕' 베이브 루스의 그늘에 가렸지만 MLB 역사에선 루스보다 더 존경받은 그였다. 얘기한 김에 사례 하나 더. 대한민국 축구 팬으로서 한때 아쉬웠던 순간이 있었다. 2014년 박지성의 은퇴였다. 축구 선수로서는 아직 뛸만한 나이(33세)의 은퇴에 무척 섭섭했던 기억이 있다. 정작 그는 "조금의 후회도 없다. 팬들의 사랑에 힘입어 영광과 행복을 누렸다"며 팬들에 대한 존경심을 나타냈다. 지금 생각해보니 그는 현명한 사람이었다. 미련 없이 떠날 때를 알았기 때문이다. 정치도 마찬가지다. 들어갈 때와 나갈 때를 아는 게 중요하다. 15·16·17대 국회의원을 지낸 김용갑(국민의힘 상임고문)씨가 떠오른다. 자칭 '원조 보수'로서 입바른 소리를 잘했다. 그런 그가 2008년 총선을 앞두고 정계 은퇴를 선언해 화제를 모았었다. "3선이면 국회의원에게 환갑이다. 박수칠 때 떠난다. 난 이제 자유인이다." 껄껄껄 웃으며 밝힌 은퇴의 변은 두고두고 회자됐다. 가히 '은퇴의 정석'이라 할 만하다. 작금 우리 정치판에서 물러날 때를 아는 정치인이 과연 몇이나 될까. 찾아보기가 드물다. 너도나도 '선수(選數) 쌓기'에 안달이다. '이 좋은 걸 왜 그만둬'다. 종합선물세트 같은 특권·특혜에 맛 들인 탓이리라. 입법 활동도, 지역구 관리도 그저 면피 수준으로만 하면 되고. 선수를 쌓을수록 타성에 빠지는 게 어찌 보면 당연하다. 총선을 앞둔 일부 초선 의원의 용퇴도 이런 정치 문화에 염증을 느낀 탓도 있을 게다. 20대 국회의원을 지낸 조훈현 국수(國手)는 "남들이 아무리 좋다 해도 나한테 안 맞으면 그만이다. 안 맞는 옷 벗고 돌아오니 이제 살겠다"고 했다. 그의 눈에 비친 여의도는 비상식이 득세하는 세계였던 것이다.모든 다선 의원을 '노욕(老慾)의 화신'으로 폄훼할 뜻은 없다. 다선의 관록이 국사를 논하고 정부를 견제하는 데 효과적일 때가 많다. 지역구 발전에도 플러스가 될 수 있다. 다만 4선, 5선을 하고도 성에 차지 않는 듯 '묻지마 다선'을 기도하는 건 옳지 않다. 더욱이 국회에서 존재감도 없었고, 시쳇말로 '농땡이'까지 쳤다면 말이다. 제22대 총선이 60여 일 앞으로 다가왔다. 사실 '아름다운 퇴장'을 기대하기엔 촉박한 시간이다. 다선 의원들은 공천 여부가 결정될 때까지 버틸 모양새다. 하지만 표심(票心)의 기본 속성은 '변화'임을 부인할 수 없다. 고인 물이 꿈쩍도 하지 않는다면 변화를 기대할 수 없다. "지금 물러나는 게 대표팀을 위해서도, 나를 위해서도 가장 좋은 결정이다." 박지성의 은퇴 변이다. 누가 봐도 용퇴가 필요한 정치인이 있다면 곱씹어 볼 만하다. 참, 김용갑 전 의원 말마따나 '3선이면 환갑'이라 했는데, '요즘 환갑은 청춘'이라며 항변할 수는 있겠다.이창호 논설위원이창호 논설위원
[조진범의 시선] 제3지대는 없다(?)
제3지대의 운명이 불확실하다. 존속과 멸망을 알 수 없다는 의미다. 국민의힘을 뛰쳐나간 이준석 대표가 이끄는 '개혁신당'과 더불어민주당 탈당파가 추진하는 '개혁미래당'이 제3지대의 중심이다. 개혁미래당은 이낙연 전 민주당 대표와 비명(비이재명)계 의원들의 연합이다. 총선에서 성공할 수 있을까. 또 총선이 끝나고도 살아남을까. 아니, 당장 이질적인 두 집단이 하나로 묶일 수 있을까. 불투명하기 짝이 없다. 제3지대의 전망을 어둡게 하는 여론조사 결과도 나왔다. 4일 한국갤럽에 따르면 개혁신당과 '이낙연 신당'의 지지도는 각각 3%로 조사됐다.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조) 합쳐도 6%다. 지지 정당이 없는 무당층 21%보다 한참 모자란다. 국민의힘과 민주당을 지지하지 않는 무당층을 끌어오지 못한 모습이다. 최근 영남일보 여론조사에서 TK(대구경북) 일부 지역 개혁신당 지지도는 9~17%였다. 지난해 12월부터 국회의원 선거구별로 여론조사를 진행하고 있는데, 개혁신당이라는 당명이 정해지기 전 '이준석 신당'으로 조사했을 때 지지도가 상대적으로 높았다. 이준석 대표의 인지도가 더 높다는 점을 감안 하면 개혁신당의 지지도는 더 떨어질 가능성이 있다. 아마 이낙연 신당도 비슷한 전철을 밟을 것이다. 홍준표 대구시장은 일찌감치 제3지대 성공 가능성을 낮게 봤다. "어느 정당이든 제3지대 정당들이 주목받기 어렵다. 한국정치사상 가장 극렬한 진영 대결이 가시화될 것이다"라고 했다. 홍 시장의 전망이 설득력 있게 다가온다. 양향자 의원과 함께 '한국의희망'을 창당했던 최진석 새말새몸짓 이사장은 아예 "제3지대는 없다"고 단언했다. 한국의희망은 개혁신당과 합당했고, 최 이사장은 한국의희망을 탈당했다. 최 이사장은 "새 정치를 하겠다고 하면서, 자신들이 혐오한다는 구시대 정치의 방법을 그대로 쓰고 있다"고 지적했다. 한국의희망에서 오히려 절망한 셈이다. 홍 시장과 최 이사장의 분석은 결이 다르지만, 틀렸다고 볼 수 없다. 유권자들도 이미 지지하지 않는 정치 세력을 악마화하는데 익숙해져 있다. 정치권이 일방적으로 전달하는 '상대의 악마화'를 싫어하면서도 받아들인다. 이성적으로 못마땅해 하면서 감정적으로 동조하기 일쑤다. 스스로 증오 정치의 토양이 된 셈이다. 지난해 한 여론조사가 이념 사회를 뒷받침한다. 조선일보와 케이스탓리서치가 실시한 '이념 갈등' 조사에서 '정치적인 성향이 다른 사람과 식사 또는 술자리가 불편하다'는 응답이 40.7%에 달했다. '정치적 성향이 다른 사람과 본인 또는 자녀의 결혼'에 대해서도 '불편하다'가 43.6%였다. 지지 정당이 다른 사람과 결혼 관계를 맺는 게 '불편하다'는 응답은 20대에서 49.3%나 됐다. 이념 대결이 생활 깊숙이 파고들었다고 봐도 무방하다. 이런 상황에서 제3지대는 진영 대결을 벗어날 수 있는 돌파구가 될 수 있을까. 쉽지 않다는 인상을 준다. 개혁신당과 민주당 탈당파는 새로운 가치보다 '빅텐트'를 만드는데만 잔뜩 신경을 쏟고 있다. 권력을 잡기 위해 정략적 접근에 치중하는 꼴이다. 원래 몸 담았던 집단을 향해 비난의 화살도 마구 쏘아댄다. '양당 정치 타파'를 내세우고 있는데, 권력 투쟁에서 밀려난 인사들의 처절한 몸부림으로 보이기도 한다. 제3지대 정당들도 고민이 많을 것이다. 이상과 현실의 간극이 클수록 더 그렇다. 그럼에도 대안 세력이 되고자 한다면 '새 정치'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질 필요가 있다. 기존 정치를 비판하는 것만으로는 결코 안된다.<편집국 부국장>조진범 편집국 부국장
[미디어 핫 토픽] 한동훈의 셀카
국민의힘 한동훈 비상대책위원장의 '셀카'는 그의 트레이드 마크가 됐다. 윤석열 대통령의 어퍼컷처럼 한 위원장에겐 셀카가 상징적 액션이다.윤 대통령은 2022년 국민의힘 대통령 후보 시절 '어퍼컷' 퍼포먼스를 펼쳤다. 20년 전인 2002년 월드컵을 이끌어 4강 신화를 이룬 히딩크 감독을 떠올리게 했다. 히딩크 감독의 어퍼컷이 국민을 열광시킨 것처럼 윤석열의 어퍼컷도 지지자들의 환호를 받았다.한 위원장이 비대위원장이 되기 전인 지난해 11월 대구를 방문한 당시 한 법무부 장관은 지지자들과 많은 셀카를 남겼다. 사인을 해주며 지지자의 휴대전화로 직접 셀카를 찍느라 열차를 놓치기도 했다. 이렇게 지지자와 함께한 게 3시간. 국민의힘 충북도당을 찾은 지난달 4일에도 비슷한 풍경을 보였다. 또 애플의 아이폰을 사용하는 한 위원장이 인재로 영입한 삼성전자 고동진 전 사장과는 미리 준비한 삼성 갤럭시 휴대전화로 셀카를 찍으며 상징을 부여하기도 했다.한 비대위원장의 셀카 행보가 공격받기도 한다. 지지자의 자녀와 셀카를 찍으면서는 '아동학대'라는 가짜뉴스가 돌았다. 최근 김철근 개혁신당 사무총장은 CPBC 라디오 '김혜영의 뉴스공감'에서 "셀카 찍는다고 그렇게 한다고 해서 민심이 움직이지 않는다"고 말했다. 말은 그렇게 했지만 개혁신당 이준석 대표 역시 2022년 대선 기간 중 '사진 찍고 싶으면 말씀 주세요'라는 후드티셔츠를 만들어 입고 다녔다.국민의힘 인사들도 한 위원장과 함께 한 컷에 담기고 싶은 모양새다. 한 위원장이 지지자들과 사진을 찍는 것은 '동료시민'과의 작은 연대일지도 모른다. 한 위원장과의 투 샷은 여당 인사들에겐 보통 인증샷을 넘어 미리 확보해야 할 소중한 준비물일지도 모른다. 그 사진들은 곧 플래카드와 선거 포스터의 일부로 쓰이지 않을까 싶다.이런 와중에 최근 윤 대통령과 한 위원장의 불화설·사퇴요구설 등이 언급됐다. 봉합국면을 보이지만 여권 총선 출마자들은 혼란스럽기만 하다. 친윤(親尹)으로 어필해야 할까 친한(親韓)으로 어필해야 할까.휴대전화의 카메라 기능이 날로 발전하면서 사진은 흔해졌다. 그럼에도 사진은 개인에게 소중한 추억이다. 아니, 사진이 흔해져서 잘나가는 사람과의 투 샷은 너도 나도 지참해야 하는 필수품이 된 걸까. 누군가에겐 추억이 되고 누군가에겐 홍보수단이 된다. 어떨까, 한동훈과의 사진은. 이 사진들, 남겨야 할 자료일까 숨겨야 할 약점일까. 박준상기자 junsang@yeongnam.com
[자유성] 고령자 운전면허 반납
이미 2017년 고령 사회로 진입한 우리나라는 내년쯤 초고령 사회로 접어들 것으로 예상된다. 운전면허 소지자의 고령화 역시 피할 수 없는 추세다. 본격적인 '마이카시대'로 돌입하면서 면허 취득 붐이 일었고 수십 년 세월이 흐른 만큼 고령 운전자의 증가는 필연적이다. 이런 가운데 고령 운전자와 연관된 교통사고가 늘면서 사회적인 이슈로 떠올랐다. 실제로 2021년 교통사고 사망자 2천916명 중 709명(24.3%)은 65세 이상 운전자 관련 사고였던 것으로 분석됐다.고령 운전자의 교통사고 증가 원인으로는 시력·청력 저하를 비롯해 반응속도가 느려지고 판단력·주의력이 떨어지는 것을 꼽을 수 있다. 예전과 같지 않다는 생각이 들거나 그런 경험을 했다면 자신은 물론, 타인을 위해서라도 운전능력을 냉정하게 점검한 뒤 면허 반납 여부를 고민해야 한다. 현재 도로교통공단은 만 65세 이상 운전자를 대상으로 교통안전교육을 권유하고 있고 만 75세 이상일 경우 교육 이수를 의무화하고 있다.대구시자치경찰위원회 등이 지난해 12월 설문조사를 실시한 결과, 대구시민 10명 중 8명 이상은 고령 운전자 면허반납 제도의 필요성을 인정한 것으로 나타났다. 만 70세 이상 어르신이 면허를 반납하면 지자체별로 다르지만 통상 10만~20만원 상당의 교통카드나 지역화폐를 지급한다. 하지만 반납 혜택에 큰 메리트가 없는 데다, 반납 이후 이동에 따른 불편이나 고립감 등도 상당해 반납률은 저조한 실정이다. 정책 효과와 참여율을 높이기 위해서는 인식개선과 함께 보상확대가 요구된다. 장준영 논설위원
[하프타임] 가장 어두운 터널을 지나는 대구 부동산
최근 대구 부동산시장 관련 뉴스는 온통 부정적인 소식을 알리는 헤드라인 일색이다.'미분양 무덤'이라는 수식어는 이미 익숙한 문구가 돼 버렸다. 대구 미분양 아파트 사업장에서 할인 분양과 페이백 등 미분양을 해소하기 위한 각종 고육지책을 이어가고 있다. 심지어 지난해 대구에는 분양 저조 영향으로 장기전세 임대로 전환하는 등 분양 승인을 취소한 단지가 3곳이나 된다. 지난달엔 대구 동구 신천동에 아파트·오피스텔을 건립할 계획이던 한 시행사가 주택건설사업계획승인을 자진해 취소 신청하기도 했다.공매 절차를 밟는 사업장도 있다. 지난해 11월 말 1천400억원대 부동산 PF(프로젝트파이낸싱) 대출 만기 연장에 실패한 대구 수성구의 후분양 아파트 '빌리브 헤리티지'는 공매에 들어갔고 1·2차 입찰에서 모두 유찰됐다.부동산·건설 경기 침체에 일감이 줄어들면서 지역 건설업체들은 존폐 위기로 내몰리고 있고 각종 관련 업종에도 고스란히 그 부정적인 영향을 받아내고 있다.지난해 대구에 신규 분양 물량이 사실상 전무해 분양대행·광고대행·인테리어업·설계회사 등 지역의 분양 관련 업체들은 1년간 개점 휴업상태였다. 대구지역의 공인중개사무소도 지난해 매일 2곳 이상이 사업을 접거나 중단하는 상황이고, 가구 매출도 크게 줄었다는 전언이다.올해도 지역의 부동산·건설 시장 전망은 밝지 않다.고금리·고물가·경기 침체 영향으로 국민들의 체감 살림살이가 팍팍해지면서 지역 주택시장의 매수 심리가 크게 얼어붙는 모습이다. 부동산 PF 부실 위험도 지역 부동산시장의 뇌관이 될 수 있다. 금융당국이 PF 대출 옥석 가리기에 나선 만큼, 사업성이 낮은 브리지론과 본PF 대출의 경우 부실이 정리될 것으로 점쳐진다. 대구는 미분양 위험이 높은 지역이라 그 타격이 더 클 수 있다.또한 올해 공사장 인부들의 일거리도 급감할 것으로 우려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작년에는 그나마 이전에 수주받은 공사가 있어 버텼지만 올해는 지난해 뚝 끊어진 일감의 직격탄을 맞을 것으로 예상되는 까닭이다.지역의 한 건설사 임원은 올해 지역 부동산 시장에 대해 가장 캄캄한 터널을 지나가고 있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분양시장에 한파가 부는 가운데, 후분양과 미분양 아파트 단지들은 입주 시점이 도래했을 때 PF대출 상환을 해야 하는데 이때 미분양 물량을 털기 위해 강도 높은 할인 분양으로 발버둥치는 상황이 발생할 것이고, 사업성이 낮은 사업장이 정리되는 등 혼란이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고 했다.부동산·건설 산업은 서민경제와 지역 및 국가경제 전반에 미치는 영향이 클 뿐 아니라 다른 산업에 비해 연관 산업과 고용에 미치는 파급효과도 지대하다.지역 부동산업계 일각에서는 무주택자·1주택자에 대한 대출규제 완화, 법인의 취득세·종부세 완화, 다주택자 취득세 완화, 준공후 미분양 주택에 대한 양도소득세 5년 면제 등과 같은 지방 미분양 물량을 해소할 만한 보다 실질적인 대책이 필요하다고 호소하고 있다. 수도권 부동산시장에만 몰입하지 말고 지역의 사정을 고려한 부동산 시장의 연착륙 방안을 고민해야 한다.박주희 정경부 차장박주희 정경부 차장
[박규완 칼럼] 권력게임
로마 공화정 말기만큼 다채로운 서사가 있는 시공(時空)도 드물다. 권력의 속살을 헤집으려면 로마 공화정을 톺아보라는 말이 나올 법하다. 정략과 결탁, 음해와 배신, 권모와 살육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지며 권력의 알파와 오메가를 시전한다. 시대의 역사는 카이사르 일대기와 겹친다. 타고난 정치가이자 군사전략가 카이사르는 인맥 형성과 혼맥 줄타기에 능했다. 청년시절 민중파 대표 격인 칸나의 딸과 결혼했으며, 아내가 먼저 죽자 귀족세력의 지지를 받는 벌족파 수장 술라의 손녀와 재혼했다. 카이사르는 크라수스, 폼페이우스와 손을 잡고 원로원의 견제를 넘어 집정관에 오른다. 1차 삼두정치의 시작이다.카이사르는 집정관을 지낸 후 갈리아 총독으로 부임한다. 그는 켈트족을 복속시키며 7년 만에 갈리아 지역을 정복했다. 하지만 폼페이우스를 자기편으로 끌어들여 로마 군권을 확보한 원로원 귀족세력이 카이사르에게 군대를 해산하고 단신으로 로마로 돌아오라고 명한다. 무장해제하고 죽으러 오라고? 귀족들과의 협상이 불발되자 카이사르는 자신의 부대를 이끌고 로마로 진격한다.카이사르가 장악한 로마는 그의 1인 천하였다. 달력(율리우스력)을 만들고 통화개혁을 하고 시민권을 확대했다. 하지만 권력 독주에 대한 귀족세력의 불만이 커져 갔다. 급기야 카이사르는 원로원 회랑에서 14명의 귀족들에 둘러싸여 살해당한다. 당시 카이사르가 신음하며 뱉은 말 "브루투스 너마저"는 배신의 은유다. 로마는 2차 삼두정치가 펼쳐지고 옥타비아누스와 안토니우스는 로마 패권을 놓고 전쟁을 벌인다. 최종 승자는 옥타비아누스. 그가 초대 황제에 등극하며 로마 공화정이 막을 내린다.권력은 비정하다. 천륜의 경계를 넘나든다. 중국 유일의 여성 황제 측천무후는 왕권 찬탈을 위해 자식을 죽였으며, 패륜군주 수양제는 부친 수문제를 살해했다. 토사구팽도 권력의 공식이다. 한(漢) 고조 유방은 천하통일 후 창업의 주역 한신을 제거했고, 명나라 태조 주원장은 개국공신 이선장 등을 역모로 몰아 죽였다. 조선의 태종도 즉위 후 가신과 외척을 사정없이 척결하면서 팽(烹)을 통해 왕권을 강화했다. 권력게임은 동서고금을 막론한다. 윤석열 대통령과 한동훈 국민의힘 비대위원장의 충돌 역시 흥미로운 서사로 치닫는다. 어김없이 권력의 속성을 노정한다. 우선 친윤의 구심력 약화가 눈에 띈다. 초선 50명이 벌떼같이 달려들어 나경원 당 대표 후보를 주저앉히던 지난해 1월의 기세와는 사뭇 다르다. 원조 '윤핵관'도 잠잠하다. 대구경북 의원들은 신중한 스탠스다. '용산 사람들'과 일전을 벌여야 할지 모르는 상황에선 방관이 최선의 모드일 수 있다. 윤·한의 1차전 평가는 대체로 '한동훈 판정승'이다. 윤 대통령은 일단 내상을 입었다. 윤·한 충돌 후 부정적 여론이 5%포인트 오른 63%였다.(한국갤럽) 진정한 승자는 김건희 여사라는 시각도 있다. 여전히 '김건희 성역'이 건재하다는 이유에서다. 서둘러 봉합했지만 게임은 끝나지 않았다. '김건희 리스크'와 공천 뇌관은 상존한다. '절대 변수'가 남아 있는 셈이다. 카이사르는 루비콘 강을 건너며 "주사위는 던져졌다"고 말했다. 불가역적이라는 의미다. 윤·한 대척도 불가역적이다. 권력게임은 요지경이다. 장삼이사의 호기심을 자극한다. 정석도 없다. 윤 대통령과 한 위원장의 2차전, 3차전이 그래서 궁금하다.논설위원논설위원
[자유성] 저지방 우유
얼마 전 서울 강남에 사는 여성을 만났다. 손자 재롱을 보는 재미로 사는 할머니였다. 그녀는 친구들과의 대화 내용 중 재미있는 게 있다며 들려줬다. 아이가 태어나면 부모는 그 아이가 천재인 줄 알고 아인슈타인 우유를 먹인다. 하지만 자라면서 천재가 아님을 깨닫고 서울대학이라도 보내야 한다면서 S 우유로 바꿔 먹인다고 한다. 점점 크면서 Y 대학 이름이 붙은 우유로 바꾸고 이마저도 어렵다고 판단하면 K 대학 우유를 선택한다. 더 자라서 수도권 대학 진학도 힘들다고 생각하면 지방대학은 보내지 말자며 선택한 우유가 저지방 우유라는 우스갯소리였다. 수도권에 사는 사람들은 지방 대학에 다니는 것이 비용이 더 들 수도 있지만, 근저에는 지방을 낮춰보는 심리가 깔려 있다. 심하게는 지방 소재의 잡다한 대학이라는 뜻의 '지잡대'라는 비속어까지 만들어질 정도다.이러한 현실에 갈수록 감소하는 학령인구는 지방대학의 생존을 위협하고 있다. 특히 전문대학들은 신입생 충원이나 교수진을 꾸리기도 힘들어 학과 자체가 폐지될 위기를 맞기도 한다. 경남의 한 전문대학 간호학과는 교수 절반이 사표를 냈지만, 새로운 교수 지원자가 없어 학과가 존폐 기로에 놓였다. 재단 등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이 대학의 처지가 다른 대학에도 발생할 여지가 많다는 것이 더 문제다.많은 자치단체가 지역의 대학을 살리기 위해 예산을 지원하고 있다. 작은 지자체일수록 지역에서 차지하는 대학의 비중이 크기 때문이다. 대학은 자치단체뿐 아니라 지역민 모두가 관심과 지원을 보태야 건재한다. 지방 대학의 존립이 어려우면 지역 소멸 위기는 더욱 커질 수밖에 없다. 남정현 중부지역본부 부장
[영남타워] '저출생과의 전쟁'에 희망을 걸어본다
아인슈타인은 '미친 짓이란 똑같은 일을 반복하면서 다른 결과를 기대하는 일'이라고 정의했다. 그는 또 "어제와 똑같이 살면서 다른 미래를 기대하는 것은 정신병 초기 증세"라고도 했다.정부는 지난 15년간 출산율을 높이기 위한 정책 예산으로 380조원이나 쏟아부었지만, 합계출산율은 0.7까지 곤두박질쳤다.2015년 43만8천명이던 출생아 수는 8년 연속 급감하며 반 토막 나 지난해 11월까지 출생아 수가 21만3천572명으로 역대 최저치를 기록했다. 1970년 100만명에서 2002년 50만명으로 줄어드는 데 32년 걸렸던 것과 비교하면 심각 수준을 넘어선다.정부의 막대한 예산 투입에도 1970년 관련 통계 집계 이후 처음으로 연간 출생아 수 8년 연속 감소라는 새로운 기록도 쓰였다.UN 세계인구전망에 따르면 2100년 우리나라 인구는 2천106만명까지 떨어질 것으로 분석됐다. 2019년에 제시됐지만 우리 정부의 대책은 헛바퀴만 돈 셈이다.보다 못한 지방정부가 '저출생과의 전쟁'을 선포했다. 경북도는 지난 18일 올해 첫 업무보고에서 '저출생 극복 대책'을 발표하며 이철우 도지사가 '전쟁'이라고 명명했다. 올해 도정(道政)의 모든 역량을 '아이 낳기 좋은 경북' 만들기에 올인하겠다는 것이다.이 도지사는 전쟁에 앞서 패착으로까지 평가받는 정부의 저출산 극복 대책의 실패 원인부터 찾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출산 관련 정책 입안자들에게 예산 집행부터 결과까지 모든 통계 수치를 소상히 밝히라고 했다.합계출산율이 2.1명 밑으로 떨어지면 '저출산'이다. 한국은 이미 1983년 신생아 수가 76만명 이하로 줄어들면서 출산율이 2.06명으로, 인구감소가 예견됐다. "그때 저출생과의 전쟁을 시작했어야 했다"고 안타까움을 토로한 이 도지사는 "지금이라도 도시 면적이 몇 ㎢이고, 단위 면적당 몇 명이 모여 사는 게 적당한지, 그렇다면 저층 주택은 어느 정도 필요하고 고층 아파트는 어느 정도 지으면 좋겠다는 그림이 정책 입안자들의 머릿속에는 이미 그려져 있어야 한다"고 지적했다.신혼부부들의 살 집과 양육이 핵심이라고 분석한 이 도지사는 저출생과의 전쟁은 아이디어 싸움이라며 경북에서 뭘 해결해 줄 수 있는지를 먼저 파악해 도민들이 체감하는 정책을 만들어 내야 한다고 강조했다.이를 위해 전문가 의견, 해외 사례, 정부 정책, 경북 정책, 시·군 정책 다 모아 좋은 것만 취해 각 부서에 맞게 고쳐 다시 전(全) 부서에서 종합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 도지사는 이를 다시 초단기-단기-장기-초장기 시기별로 계획 세워 추진, 1년 후 도민들의 입에서 "아기 낳아 키우기 편해졌다"는 말이 나올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강력한 지시를 내렸다.경북도가 저출생과 전쟁에서 승리한다면 우수 정책 등은 전국으로 확산된다. 경북도 슬로건인 '경북의 힘으로 새로운 대한민국'을 만드는 것이다. 이 도지사는 경북도청 공무원들에게 "역사를 창조한다는 각오로 일해 달라"고 당부했다. 경북도의 저출산 극복 정책이 똑같은 일을 반복하는 '미친 짓'이 아닌, 대한민국 '희망의 짓'이 되기를 기대해 본다. 임성수 경북본사 부장임성수 경북본사 부장
[자유성] 인동덩굴
인동(忍冬)덩굴은 겨울을 견뎌낸다는데서 이름이 유래했다. 감기와 종기를 치료하는 효험이 있는 이 식물을 동의보감은 '겨아사리너출(겨우살이덩굴)'이라 표기하고 있다.우리나라와 중국·일본 등지에 넓게 분포하며 인동초·금은화·통령초 등 여러 이름을 가지고 있다. 금은화는 꽃잎의 색깔을 보고 붙인 이름이다. 꽃은 6~7월에 피는데, 무성하게 피어있을 때 보면 흰 꽃과 노란 꽃이 함께 달려 있다. 이는 처음에는 흰색으로 피었다가 점차 노란색으로 변하기 때문이다. 이를 보고 금은화라 부르게 된 것이다. 금은화는 인동덩굴 전체를 의미하기보다는 한방에서 약으로 쓰는 꽃봉오리나 갓 피어난 꽃을 지칭한다. 1천500여 년 전에 중국 허난성에서 널리 재배된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따뜻한 그 지역에서는 겨울을 견디는 데 무리가 없었을 것으로 보인다.동아시아 원산인 인동덩굴은 아메리카와 오세아니아 등지에서도 조경용으로 널리 재배됐다. 그런데 왕성한 번식력으로 재배지를 벗어나 급속히 번지는 바람에 미국과 뉴질랜드 등에서는 이를 유해식물로 지정하고 있다.인동덩굴은 서양에서 허니서클(Honeysuckle)이라 부를 정도로 꿀을 많이 분비하여 향이 짙고 꽃이 아름다우며 물체를 오른쪽으로 감고 올라가는 성질이 있다. 이 때문에 관상용, 특히 터널형 조경을 하는 데 많이 쓰인다. 이렇게 인동덩굴은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데, 인동(忍冬)이라는 말과 달리 잎이 모두 떨어지고 앙상한 줄기만 남았다면 그 지역이 인동덩굴이 상록수로 겨울을 나기에는 추운 곳이라는 의미다. 이번 겨울은 추위다운 추위가 없어서 웬만한 곳에서는 줄기 끝에 붙어 있는 잎 몇 장은 볼 수 있을 것이다. 이하수 중부지역본부 부장·나무의사
의료대란으로 번진 의대 증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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