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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남타워] '저출생과의 전쟁'에 희망을 걸어본다
아인슈타인은 '미친 짓이란 똑같은 일을 반복하면서 다른 결과를 기대하는 일'이라고 정의했다. 그는 또 "어제와 똑같이 살면서 다른 미래를 기대하는 것은 정신병 초기 증세"라고도 했다.정부는 지난 15년간 출산율을 높이기 위한 정책 예산으로 380조원이나 쏟아부었지만, 합계출산율은 0.7까지 곤두박질쳤다.2015년 43만8천명이던 출생아 수는 8년 연속 급감하며 반 토막 나 지난해 11월까지 출생아 수가 21만3천572명으로 역대 최저치를 기록했다. 1970년 100만명에서 2002년 50만명으로 줄어드는 데 32년 걸렸던 것과 비교하면 심각 수준을 넘어선다.정부의 막대한 예산 투입에도 1970년 관련 통계 집계 이후 처음으로 연간 출생아 수 8년 연속 감소라는 새로운 기록도 쓰였다.UN 세계인구전망에 따르면 2100년 우리나라 인구는 2천106만명까지 떨어질 것으로 분석됐다. 2019년에 제시됐지만 우리 정부의 대책은 헛바퀴만 돈 셈이다.보다 못한 지방정부가 '저출생과의 전쟁'을 선포했다. 경북도는 지난 18일 올해 첫 업무보고에서 '저출생 극복 대책'을 발표하며 이철우 도지사가 '전쟁'이라고 명명했다. 올해 도정(道政)의 모든 역량을 '아이 낳기 좋은 경북' 만들기에 올인하겠다는 것이다.이 도지사는 전쟁에 앞서 패착으로까지 평가받는 정부의 저출산 극복 대책의 실패 원인부터 찾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출산 관련 정책 입안자들에게 예산 집행부터 결과까지 모든 통계 수치를 소상히 밝히라고 했다.합계출산율이 2.1명 밑으로 떨어지면 '저출산'이다. 한국은 이미 1983년 신생아 수가 76만명 이하로 줄어들면서 출산율이 2.06명으로, 인구감소가 예견됐다. "그때 저출생과의 전쟁을 시작했어야 했다"고 안타까움을 토로한 이 도지사는 "지금이라도 도시 면적이 몇 ㎢이고, 단위 면적당 몇 명이 모여 사는 게 적당한지, 그렇다면 저층 주택은 어느 정도 필요하고 고층 아파트는 어느 정도 지으면 좋겠다는 그림이 정책 입안자들의 머릿속에는 이미 그려져 있어야 한다"고 지적했다.신혼부부들의 살 집과 양육이 핵심이라고 분석한 이 도지사는 저출생과의 전쟁은 아이디어 싸움이라며 경북에서 뭘 해결해 줄 수 있는지를 먼저 파악해 도민들이 체감하는 정책을 만들어 내야 한다고 강조했다.이를 위해 전문가 의견, 해외 사례, 정부 정책, 경북 정책, 시·군 정책 다 모아 좋은 것만 취해 각 부서에 맞게 고쳐 다시 전(全) 부서에서 종합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 도지사는 이를 다시 초단기-단기-장기-초장기 시기별로 계획 세워 추진, 1년 후 도민들의 입에서 "아기 낳아 키우기 편해졌다"는 말이 나올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강력한 지시를 내렸다.경북도가 저출생과 전쟁에서 승리한다면 우수 정책 등은 전국으로 확산된다. 경북도 슬로건인 '경북의 힘으로 새로운 대한민국'을 만드는 것이다. 이 도지사는 경북도청 공무원들에게 "역사를 창조한다는 각오로 일해 달라"고 당부했다. 경북도의 저출산 극복 정책이 똑같은 일을 반복하는 '미친 짓'이 아닌, 대한민국 '희망의 짓'이 되기를 기대해 본다. 임성수 경북본사 부장임성수 경북본사 부장
[자유성] 인동덩굴
인동(忍冬)덩굴은 겨울을 견뎌낸다는데서 이름이 유래했다. 감기와 종기를 치료하는 효험이 있는 이 식물을 동의보감은 '겨아사리너출(겨우살이덩굴)'이라 표기하고 있다.우리나라와 중국·일본 등지에 넓게 분포하며 인동초·금은화·통령초 등 여러 이름을 가지고 있다. 금은화는 꽃잎의 색깔을 보고 붙인 이름이다. 꽃은 6~7월에 피는데, 무성하게 피어있을 때 보면 흰 꽃과 노란 꽃이 함께 달려 있다. 이는 처음에는 흰색으로 피었다가 점차 노란색으로 변하기 때문이다. 이를 보고 금은화라 부르게 된 것이다. 금은화는 인동덩굴 전체를 의미하기보다는 한방에서 약으로 쓰는 꽃봉오리나 갓 피어난 꽃을 지칭한다. 1천500여 년 전에 중국 허난성에서 널리 재배된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따뜻한 그 지역에서는 겨울을 견디는 데 무리가 없었을 것으로 보인다.동아시아 원산인 인동덩굴은 아메리카와 오세아니아 등지에서도 조경용으로 널리 재배됐다. 그런데 왕성한 번식력으로 재배지를 벗어나 급속히 번지는 바람에 미국과 뉴질랜드 등에서는 이를 유해식물로 지정하고 있다.인동덩굴은 서양에서 허니서클(Honeysuckle)이라 부를 정도로 꿀을 많이 분비하여 향이 짙고 꽃이 아름다우며 물체를 오른쪽으로 감고 올라가는 성질이 있다. 이 때문에 관상용, 특히 터널형 조경을 하는 데 많이 쓰인다. 이렇게 인동덩굴은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데, 인동(忍冬)이라는 말과 달리 잎이 모두 떨어지고 앙상한 줄기만 남았다면 그 지역이 인동덩굴이 상록수로 겨울을 나기에는 추운 곳이라는 의미다. 이번 겨울은 추위다운 추위가 없어서 웬만한 곳에서는 줄기 끝에 붙어 있는 잎 몇 장은 볼 수 있을 것이다. 이하수 중부지역본부 부장·나무의사
[동대구로에서] 당신은 반려동물을 키워선 안 된다
"1월24일이 생일이야. 케이크 준비해야지". 지난주 딸아이의 갑작스러운 통보에 뒷골이 살짝 서늘해졌다. 누구의 생일을 놓친 걸까? 순간 수많은 이들의 얼굴이 주마등처럼 스쳐갔지만 답을 찾지 못하고 되물었다. "누구?"이윽고 돌아온 답에 안도감이 아닌 허탈함을 느꼈다. 생일 주인공이 지난해 한 달간 임시 보호했다가 분양 보냈던 강아지여서다. '쿠키'란 이름이 생긴 이 강아지는 지인에게 분양돼 전원의 삶을 즐기고 있다. 보더콜리종의 특성상 한적한 시골에서 키우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판단 아래 어렵게 분양자를 찾았다.딸아이의 성화에 못 이겨 반려동물 생일케이크를 검색하자 관련 아이템들이 쏟아져 나왔다. 유기농 수제 케이크부터 각종 파티용품에 각양각색의 선물까지. 가격도 만만찮았다. '펫코노미(Petconomy)'란 용어가 괜히 등장한 게 아님을 몸소 경험한 순간이었다. 반려동물 돌봄을 위한 시장 규모가 4조원대에 달한다고 한다. 반려인 1천만명 시대, 전국 동물병원 수는 소아과의 2배가 넘었고 관련 시장 규모는 육아용품 시장을 추월할 거란 전망까지 나오고 있다.격세지감이다. '반려동물 양육을 위한 사전의무교육제도 도입에 관한 연구'(2019년)에 따르면 동물을 대하는 사회적 인식은 국민 소득수준에 따라 변한다. 통상 GNP 1만달러에 반려동물 문화의 시작, GNP 2만달러에는 반려동물 문화 발전, GNP 3만달러에는 동물의 인격화로 진행된다고 한다. 급속한 경제 발전을 이룩한 한국에서도 동물의 위상이 덩달아 높아지고 있다. 개 식용 금지법(개 식용 목적의 사육·도살 및 유통 등 종식에 관한 특별법)이 국회를 통과한 것 자체가 국내 반려동물 문화의 변화상을 대변한다.하지만 권리가 신장하면 반드시 책임도 커져야 한다. 국내 반려동물 문화는 여전히 여러 부분에서 성숙하지 못함을 드러내고 있다. 불법 번식장, 동물유기·학대, 물림 사고, 소음 발생 등 해결해야 할 숙제가 많다. 반려동물로 인한 다양한 문제가 발생하고 사회적 비용도 꾸준히 늘어나고 있다. 국내 반려동물 문화는 이젠 성숙한 단계로 넘어서야 하는 시점에 와있다.이를 위해선 무엇보다 교육이 필요하다. 가정과 학교에서 사회화 과정을 거치고, 운전하기 위해 자격증을 얻는 것과 같은 이치다.독일에선 반려동물 양육을 희망할 경우, 가족 전원이 일정 기간 총 3회에 걸쳐 기본상식과 방법을 배운다. 특히 니더작센주에선 모든 반려동물 소유자는 2차에 걸친 필기·실기 시험을 통과해야 키울 수 있다. 일본 역시 반려동물을 양육하기 위해선 입양부터 등록까지 까다로운 절차를 거쳐야 한다. 이들 국가의 정책에는 '반려동물과 함께 살아가는 법을 배운다는 것'에 시사점이 있다. 알면 비로소 보인다.사전 교육 이후에도 교육은 지속돼야 한다. 평생교육의 하나로 반려인들이 언제든 다양한 솔루션을 받을 수 있는 환경이 구축된다면 반려동물로 인한 사회적 문제는 분명 줄어들 것이다. 2021년 서울 광진구에서 '반려인 사전교육 이수' 시범사업을 벌인 이후 서울, 부산, 대전 등 자치단체에서 반려동물 양육 상담 교육을 운영한 바 있다. 강좌 수, 대상 인원은 적지만 분명 의미 있는 노력이다. 앞으로 민간과 공공부문에서 반려동물 관련 다양한 교육과정이 개설되고 많은 반려인들이 그들과 '함께 사는 법'을 알아가길 기대해 본다.박종진 한국스토리텔링 연구원장박종진 한국스토리텔링 연구원장
[자유성] 개천에서 용(龍) 나기
'개천에서 용 난다'란 속담은 맨손으로 성공한 사람을 일컫는 말이다. 가진 것이 없어서 배우지 못한 부모가 어렵고 힘든 삶을 살아도 자식이 똑똑하면 부모의 신분이나 재력을 한순간에 바꿀 수 있을 정도로 성공을 이룬다는 뜻이다. 비슷한 말로 ‘개똥밭에 인물 난다’가 있다. 물고기가 변해 최고 권력의 상징인 용이 된다는 ‘어변성룡(魚變成龍)’도 어원은 같다. 수천 년 전부터 우리 민족의 가슴 속에 살아온 용은 봉황과 더불어 아주 친숙한 상상의 동물이다. 선조들은 예로부터 용을 왕이나 위인에 비유했다. 태몽이 용꿈이면 귀한 인물이 된다고 믿었다. 정확한 문헌은 알 수 없으나 정몽주, 이이, 이몽룡도 용꿈으로 태어났다고 한다. 삼국지에서 최고의 전략가로 유명한 제갈공명은 무명시절에는 누워 있는 용이란 뜻을 가진 와룡(臥龍) 선생으로 불렸다. 현대 사회는 용이 될 수 있는 물은 마르고 개천은 허물어졌다고 한다. 더는 개천에서 용이 날 수 없다는 말이다. 현대 자본주의 사회에서 용꿈은 내려오는 속담일 뿐이라고 단정한다. 안타까우면서 무서운 혹평이다. 누구든지 열심히 노력하면 개천에서 용이 날 수 있어야만 살맛 나는 세상이다. 이런 세상이 만들어져야만 자신만의 꿈을 가진 젊은이가 역량을 마음껏 발휘할 수 있다. 60년 만에 돌아온 갑진년 푸른 용띠 해는 11개월이나 남았다. 비록 용띠 해에 태어나지는 않았으나 용의 해를 사는 모든 국민이 푸른 용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개천에서 용이 나고, 개똥밭에서 큰 인물 나고, 물고기도 용이 될 수 있는 세상이 부럽다. 백종현 중부지역본부 부장
[취재수첩] 미움받을 용기
국내 한 정치인이 쏘아 올린 '노인 무임승차' 문제가 뜨거운 감자로 떠올랐다. 이준석 개혁신당 대표는 국내 대표적인 교통복지 정책인 65세 이상 노인 지하철 무임승차 제도의 폐지를 선거공약으로 내세웠다. 혹자는 '미래세대를 위한 꼭 필요한 변화'라며 박수 쳤고, 다른 이는 '갈라치기·패륜 정치'라고 손가락질했다. 이번 공약이 나라의 미래를 걱정한 입바른 소리인지 고도의 정치공학적 셈법인지는 알 수 없다. 다만, 정치인에게 불문율처럼 여겨졌던 '노인'을 감히 건드린 것만으로도 그의 용기에는 박수를 보낸다. 대중교통 적자의 근본적인 원인은 수송원가보다 운임이 낮아서다. 현재 대구도시철도 1인당 운송원가는 3천800원이다. 그간 원가의 3분의 1 수준(1천250원)으로 지하철을 탔으니 곳간이 남아날 리 없다. 작년 도시철도 수송인원(1억4천여만 명) 중 65세 이상은 3천800여만 명(27%)이었다. 단순 계산으로 이들이 모두 기본요금을 냈다면 약 482억원의 수익이 발생한다. 작년 도시철도 적자액(2천851억원)의 20%가량이니 결코 적잖은 액수다. 다만, 이는 노인 무임승차를 통해 얻는 사회적 편익을 모두 무시한 결과다. 이동에는 시간과 비용이 든다. 이동에 드는 시간·돈보다 목적지에 이르는 효용성이 더 클 때 이동하게 된다. 바꿔 말하면 교통 비용이 목적 효용성을 넘어서면 이동하지 않는다는 얘기다. 교통비용 상승은 사회적 약자의 사회경제활동을 위축하는 결과를 낳는다. 이동권 저하로 인한 건강 및 우울증 문제, 교통사고 등도 고민해야 한다. 그럼에도 이번 논란이 교통 복지에 대한 환기 효과로는 충분해 보인다. 현시점에서 노인이 과연 사회·경제적 약자인지는 고민해 볼 여지가 있다. 제도가 시행될 당시(1984년)만 해도 65세 이상 인구는 전체의 4% 수준이었지만, 현재는 20%에 육박한다. 지자체·기관이 감당할 수준을 아득히 넘어섰다. '65세'가 노인과 비노인을 구분하는 기준으로 적합한지도 의문이다. 패러다임 전환이 필요한 시점이다. 보편적 복지와 선택적 복지는 옳고 그름이 아닌 가치판단의 영역이다. 대구시는 지난 13일 7년 만에 대중교통 요금인상을 단행했다. 그동안 인상 요인은 차고 넘쳤음에도 '고양이 목에 방울 달기'처럼 다른 지자체들과 치열한 눈치게임을 펼쳐야만 했다. 먼 미래보다는 눈앞의 표나 비난 여론이 더 두려웠기 때문이다. 물론 이해는 간다. 이준석 대표의 '미움받을 용기'가 새삼 대단해 보이는 이유다.이승엽기자(사회부) 이승엽기자(사회부)
[자유성] 장마당 세대
지난해 12월 북한에서 한국 드라마와 영화를 유포한 10대 청소년들이 공개 처형됐다는 보도가 있었다. 북한식 '공포정치'가 얼마나 극악한지를 보여준다. 근래 들어 북한 당국은 한국 대중문화 유입을 차단하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사상 교육과 단속만으로는 통제가 안 되자 잔혹하게 처벌하고 있는 것. 한국 영화나 드라마를 보다가 걸리면 본인뿐 아니라 가족까지 길게는 10년 넘게 노동교화소에 수감된다. 하지만 이 같은 공포정치도 한류 열풍을 막지는 못하는 모양이다. 탈북민들 증언에 따르면 현재 북한 청년들은 스마트폰을 비롯한 온갖 기기를 동원해 한국 음악과 영화, 게임을 즐긴다고 한다. 북한 내 한류의 중심에는 '장마당 세대'가 있다. 최악의 식량난이 덮친 '고난의 행군 시기'를 겪으며 자란 20~30대가 여기에 해당한다. 이들은 국가 배급을 제대로 받지 못하고 유년기부터 시장(장마당)을 친숙한 생활공간으로 삼았다. 국가의 부재와 시장 경제를 경험한 만큼 이들의 사고는 기성세대에 비해 자유롭다. 더구나 카세트테이프, 비디오테이프 등을 통해 한국 문화를 가까이 접했고, 최신 IT 기술을 빠르게 습득하는 능력도 지니고 있다.북한이 최근 통일 불가론을 띄우며 교육사업 강화에 나선 건 장마당 세대에 대한 사상 통제가 어려워진 게 주된 요인이다. 이들은 드라마와 영화를 통해서 한국의 실상을 많이 알고 있으며 동경하고 있다. 실제로 지난해 국내에 입국한 북한이탈주민 196명 중 절반 이상이 20~30대였다. 우리의 MZ세대에 해당하는 장마당 세대가 북한 변화의 원동력이 되고 있다. 허석윤 논설위원
[월요칼럼] 잃어버릴 30년, 저출산·고령화의 늪
일본 닛케이지수가 최근 3만5천~3만6천 선을 넘나들고 있다. 버블경제가 한창이던 1990년 이후 무려 34년 만이다. 물론, 고물가에 내수 회복도 미진한 상황이어서 일본 경제가 부활의 신호탄을 쏘아 올렸다는 평가가 아직 이른 측면은 있다. 그러나 수출 중심의 대기업 실적이 개선되고 외국인 투자가 증가하는 등 '잃어버린 30년'으로 통칭되는 긴 침체기를 벗어나기 시작했다는 기대감이 반영된 것은 분명해 보인다. 그렇다면 지금 우리 경제는 어떤가. 불행하게도 잠재성장률 하락 등 30여 년 전 일본의 거품경제 붕괴 당시 상황과 많이 닮았다는 진단이 잇따르고 있다. 답습하지 않으려면 체질 개선과 함께 돌파구를 찾아야 하는데 위정자들의 고민이나 위기의식은 항상 기대치를 밑돈다. 안일하기 그지없다. 곳곳이 지뢰밭이다. 여기저기서 적신호가 켜지고 경고음이 울리고 있다. 현시점에서 국가미래는 잿빛이고 경제도 탄력을 잃은 지 꽤 됐다. 누가 봐도 예사롭지 않은 상황인데 권력 쟁탈 외엔 별다른 관심이 없다. 특히 올해는 오는 4월 총선이 예정돼 있어 민생은 한동안 구석에 처박혀 있을 가능성이 짙어지고 있다. 늘 그렇듯 나라걱정은 언제나 국민들의 몫이다. 국가 차원에서 고령화 속도가 빨라지고 저출산이 심화되면 미래를 위한 선택지는 한정적일 수밖에 없다. 더구나 민간부채가 심각한 수준으로 접어들었고 자본의 생산성마저 하락세라면 쓸 수 있는 카드는 극히 제한적이다. 고령화는 산술적 예측이 가능했음에도 불구, 대책이 변변치 못해 묵은 현안으로 남아 있다. 저출산의 경우 사회학자나 인구학자 등 전문가들이 오래전부터 줄기차게 알람을 울렸지만 결과적으로는 우이독경이었다.통계청의 장래인구 추계에 따르면 생산연령인구(15~64세)는 2022년 3천674만명에서 2030년 3천417만명, 2040년 2천903만명으로 급감할 전망이다. 생산연령인구가 1% 줄어들 때마다 국내총생산(GDP)은 0.59%씩 줄어든다는 것이 한국경제연구원의 설명이다. 가장 아픈 지표는 합계출산율(한 여자가 가임기간(15~49세)에 낳을 것으로 기대되는 평균 출생아 수)이다. 지난해 12월 뉴욕타임스는 칼럼을 통해 세계 최저 수준(2022년 0.78명)을 기록 중인 한국의 사례를 다루면서 '흑사병 창궐'로 인구가 급감한 14세기 중세 유럽을 소환, 비상한 관심을 모으기도 했다. 2024년에는 0.6명대까지 떨어질 가능성이 있다는 우울한 예측도 나와 위기감은 더욱 증폭되고 있는 상황이다.급격한 인구감소는 생산·투자·소비를 벼랑 끝으로 내모는 도미노의 첫 단계다. 어떻게든 대책을 세워야 한다. 일부에서는 이미 골든타임을 놓쳤다고 비관하지만, 그래도 아직 손쓸 시간이 남아있다는 게 상당수 전문가들의 견해다. 오로지 권력 쟁취를 위한 끝 모를 편 가르기와 극단의 대결은 큰 틀에서 보면 무의미하다. 조개와 도요새의 싸움을 뜻하는 방휼지쟁(蚌鷸之爭)의 승자는 조개도, 도요새도 아닌 어부였다. 아이를 낳으라고 강요하거나 일정 금액 또는 혜택 등을 앞세우는 따위의 대책은 하수 중의 하수가 택하는 미봉책에 불과하다. 여·야가 인구증가를 위한 대책의 방향과 질을 두고 지금처럼 가열하게 싸운다면 없던 해법이 나타날지도 모를 일이다. 성장동력이 꺼지면 시쳇말로 말짱 도루묵이다. 장준영 논설위원장준영 논설위원
[자유성] 너무 더딘 검찰수사
인재(人災)로 밝혀진 포항지진의 책임을 가리는 검찰 수사가 너무 더디다. 2019년 11월 포항지열발전소와 사업 주간사인 넥스지오를 압수수색하며 시작된 수사는 4년이 훌쩍 넘었지만 결론이 나오지 않고 있다. 이 때문에 검찰의 늑장수사를 비판하는 포항시민들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시민들은 "정부조사단과 감사원 감사 그리고 법원의 민사 재판(1심) 결과까지 나왔는데 검찰은 아직도 수사 중입니까"라며 어이없어하는 분위기다. 늑장 수사에 대해 검찰은 "기록 양이 방대하고 피해자 특정 등 더 들여다볼 것들이 있다"고 해명한다.서울중앙지검에서 수사를 하는 동안 포항지진 정부조사연구단은 2019년 3월 지진이 인근 지열발전소에 의해 촉발됐다고 결론을 내렸다. 또 감사원도 2020년 4월 포항지진에 앞서 전조 격으로 3.1 규모의 지진이 발생했지만 산업통상자원부는 유발지진 여부 확인과 지진위험도 분석 등 안전조치를 취하지 않았다고 발표했다. 특히 발전소 건설 컨소시엄은 지열발전사업으로 인한 유발지진일 가능성이 높다는 사실을 산업부 등에 보고해 그 위험성을 충분히 인지하도록 했어야 함에도 불구, 이를 이행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법원도 지난해 11월 포항시민들이 국가 등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 소송에서 지열발전과 지진의 인과관계를 인정한 뒤 원고 1인당 200만~300만원의 위자료를 지급하라는 판결을 내렸다. 이처럼 포항지진을 들여다본 정부 기관들이 모두 결이 비슷한 결과를 내놓고 있으나 유독 검찰만 아직 매듭을 짓지 못하고 있다. 방대한 수사량 때문에 아직 수사가 덜된 것인지, 아니면 정부 책임이 워낙 커서 발표를 못 하는 것인지 궁금할 따름이다. 마창성 동부지역본부 부장
[하프타임] 공연장 존재의 이유는 관객
연초가 되면 클래식·뮤지컬 공연 팬들은 행복한 고민에 빠진다. 공연장과 기획사에서 연간 공연 계획을 발표하기 때문이다. 이들은 발표된 공연 계획을 바탕으로 날짜를 맞춰보며 한 해의 관극 계획을 세워나간다. 이때는 공연을 보는 기쁨 못지않은, 앞으로 내가 볼 공연에 대한 기대가 차오른다. 물론 그와 함께 다소 가벼워질 지갑도 잠깐 걱정하지만…. 그 순간만은 걱정보다는 행복한 마음이 더 앞선다. 통상 클래식 공연은 공공 공연장을 중심으로 1년 계획을 발표한다. 규모가 큰 클래식 공연 기획사는 직접 연간 공연 계획을 발표하기도 한다. 뮤지컬 제작사에서도 올해 공연될 뮤지컬 라인업을 알린다. 일부 공연은 캐스팅도 공개해 기대감을 높인다. 대구에서도 공공 공연장이 잇따라 연간 계획을 내놓고 있다. 출연진이나 공연 콘텐츠의 세부 내용은 차이는 있지만, 유사한 흐름도 나타난다. 개별 공연장만 놓고 보면 가장 큰 흐름은 공연장마다 다양한 장르의 공연을 배치했다는 것이다. 기초문화재단이 운영하는 공연장의 경우 특정 장르에 특화된 것이 아닌 다양한 장르의 공연을 위한 다목적 공연장이 대부분이다 보니 어쩌면 당연한 현상이다. 물론 대구 전체로만 놓고 보면 특정 장르에 편중되어 있다는 느낌이 없진 않다. 대구의 어느 곳에서 살든지 다양한 공연을 접할 수 있다는 점에서 보면 긍정적인 현상이다. 상대적으로 공연 횟수가 적었던 공공 공연장들도 최근 몇 년간 공연의 양적인 면도 보완해나가고 있다. 그 과정에서 적지 않은 관객이 객석을 채우면서 시민들의 문화에 대한 욕구를 체감하기도 한다. 올해부터 본격적으로 활동하게 되는 대구시립예술단 소속 예술단체의 신임 예술감독들이 예술단이 상주하는 공연장 외에도 다른 지역 공연장에서 공연을 자주 펼치겠다는 계획을 밝히면서 기초지자체 공연장에서도 시립예술단의 공연을 이전과 비교해 자주 볼 수 있게 됐다. 반면, 이 과정에서 개별 공연장의 정체성은 다소 희미해지는 분위기도 감지된다. 각 공연장만의 독창적인 콘텐츠를 찾아보기는 어려워진 것이다. 일부 공연장 공연의 경우, 다른 공연장과 유사한 콘셉트의 공연도 있다. 특정 기초 지자체 소속 공연장이라고 해서 그 지역민들만 공연장을 찾지 않는다는 점을 고려하면 아쉬운 부분이다. 일각에선 최근 대구 지역 공연장마다 지역 예술인보다는 유명 예술인들의 공연이 부쩍 많아지면서, 지역 예술인이 설 자리가 없다는 얘기도 나온다. 대중적인 공연에는 관객이 몰리지만, 상대적으로 비인기 장르 공연에는 관객이 적은 양극화 현상도 두드러지고 있다. 물론 이 모든 것은 대구만의 고민은 아닐 것이다. 특히 코로나19라는 긴 터널을 빠져나온 이후 공연계가 공통으로 가진 숙제다. 코로나로 미뤄졌던 공연들이 본격적으로 쏟아져 나오고, 일부 마니아를 제외한 관객은 괜찮은 공연을 선택적으로 보려고 하는 상황이다. 이 시점에서 중요한 것은 무엇보다도 관객에 대해 분석하고 이를 반영해 공연을 계획하는 것이다. 지역에서도 공연에 대한 만족도 조사가 전혀 이뤄지지 않는 건 아니다. 하지만 이를 좀 더 체계적으로 추진해 공연장의 방향성을 설정하는 데 활용해야 한다. 한정된 관객을 놓고 서로 경쟁하기보다는 대구 내 공연장들이 이를 위해 협력하는 것도 필요하다. 공연장은 무엇보다도 관객이 찾아올 때 생명력을 얻기 때문이다.최미애 문화부 선임기자 최미애 문화부 선임기자
[이재윤 칼럼] 구심력이 강하면 원심력도 강해진다
#주류 교체의 시간=22대 총선은 최소 4파전이다. 주요 정파만 따져도 그렇다. 왜 이렇게 확전됐을까. 이번 선거는 보수 대 진보 대결만이 아니다. 보수 대 보수, 진보 대 진보의 싸움이 동시에 펼쳐지고 있다. 그 요체는 진영별 '주류 교체의 싸움'이다. 국민의힘, 더불어민주당은 윤석열 당, 이재명 당으로의 진화를 거듭하고 있다. '공천 전쟁'이 내부 주도권 싸움의 클라이맥스다. 구심력이 강할수록 원심력도 강해진다. 조일수록 흩어지는 분열의 피크 타임, 그 절정의 시간을 지나고 있다.#비민주적 알고리즘=너무 세게 조였다. 한동훈 사퇴를 요구한 건 지나친 악력 행사다. 이준석은 '약속 대련'이라 했지만, 실전일 가능성이 크다. '기획'이라면 '윤-한' 듀오가 펼친 경이로운 '싱크로나이즈드 무대'에 찬사를 보낸다. 검검신공(檢劍神功)이란 일세의 비전술로 강호를 평정한 것도 모자라 설마 짜고 친 게 사실이라면 윤석열 사단은 만인을 속이는 절대심법마저 습득한 지략의 천재, 최고의 갬블러, 사마의의 화신, 마키아벨리즘의 권화(權化)라 칭할 만하다. 사실이어도 불행이고 사실이 아니어도 불행이다. 대통령이 가장 큰 피해자? 그렇다. 명분·세력·타이밍에서 밀렸고 이미지·리더십·민심을 잃었다. 이준석은 나갔고 김기현, 김무성의 조짐도 심상찮다. 보수 텃밭 'TK 민심'도 변했다. TK의원들이 모여 한동훈을 살짝 비토하려 했다가 흐지부지된 건 '변화한 민심' 때문이다. 국민의힘은 머잖아 '한동훈 당'이 될 것이다. 임기 절반도 안 지났는데, 절대 권력을 나눠 가지는 불가능의 변검술이 무탈하게 시전될까. 용산 터를 봤다는 관상가가 "썩은 고기를 통째로 먹어 치워 강을 정화한다"고 한 전투력 갑(甲) '악어상(相)'에 대한 해석이 새삼 회상된다.민주당 사정도 피장파장이다. 비명계 최종윤이 불출마 선언하며 "우리가 하는 건 정치도 민주주의도 아니다"라고 자성했다. 이낙연의 경우 분당급 이탈이다. 청년 당원의 탈당 러시는 심각한 수준이다. 사당화 논란이 멈추지 않으면 추가 탈당을 막을 수 없다. 이재명을 금강불괴로 만드는 만독불침의 주문이 민주당의 오랜 가치와 비전을 허물고 있다. 서로 악마화하다가 둘 다 악마를 닮고 있다. 멀쩡하던 이들이 어느 날 광인(狂人)으로 돌변하는 세태가 비감하다.친윤·친명의 역주행. 트럼프가 홈그라운드 텍사스에서, 바이든이 표밭 캘리포니아에서 목숨 걸고 싸우는 격이다. 선거를 이기는 것보다 이 당을 내 당으로 만들겠다는 의지가 더 강하다. 가야 할 곳 '중도'는 점점 멀어진다. 지지층만 강화하는 알고리즘은 민주주의 원리와 맞지 않는다.#역설(逆說)=순도 100% '윤심 당' '이재명 당'을 만들 욕심인가. 두 사람 다 선거에서 멀어질수록, 그립의 힘을 뺄수록 당의 승률은 높아진다. 22대 총선의 패러독스다. 치열한 주류 교체의 싸움은 혁신 공천을 망쳤다. '혁신'은 '내 편 심기'의 이어동의(異語同意)와 진배없다. 거짓 혁신보다 '통합'이 더 효과적이다. 지금이라도 뭉치면 이기고 흩어지면 진다. 어설픈 봉합이어도 당정 갈등을 삼일천하로 끝낸 건 다행이다. '한'이 굴복하면 총선을 지고, 이기면 '윤'의 레임덕이다. 이재명은 자신이 공천권을 다 행사하더라도 비대위만큼은 김부겸 같은 이에게 맡기는 게 현명하다. 김부겸은 "난 설거지만?" 하지 말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짐을 지는 건 어떤가. 논설위원논설위원
[미디어 핫 토픽] 직장인 '도시락 열풍'
"점심값 부담이 크다. 국밥도 1만원대인 시대다. 후배와의 점심 약속을 잡기도 부담스럽다."직장인들의 점심값 부담이 커지고 있다.한국소비자원 가격 종합포털 '참가격'에 따르면, 지난달 대구 지역의 냉면 가격은 1만417원, 김치찌개 백반은 7천150원, 비빔밥은 9천367원, 김밥은 2천833원을 기록했다. 전년 같은 기관과 비교 시 냉면은 약 3.3%, 비빔밥은 약 7.5%, 김치찌개 백반은 약 2.5%, 김밥은 약 6.2% 상승했다.일반 식당보다 상대적으로 저렴하다는 구내식당 역시 가격이 오르고 있다. 지난해 구내식당 식사비 소비자물가지수는 116.01이다. 전년 대비 6.9% 상승했다. 해당 수치는 구내식당 식사비 관련 통계가 발표된 2001년 이후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다.치솟는 외식가격을 줄이고자 직장인들 사이에선 '도시락' '도시락 모임' 등 열풍이 불고 있다. 정모(여·34)씨는 "지출을 줄이기 위해선 밖에서 사 먹는 횟수를 줄이는 수밖에 없다. 가장 먼저 생각한 방법이 점심 도시락"이라면서 "하루 이틀도 아니고 매일 밖에서 사 먹어야 하는 상황에선 어쩔 수 없는 선택이다. 퇴근 후 도시락 준비는 힘들지만 지출을 줄이기 위해선 어쩔 수 없다"고 했다.직장 동료들과 '도시락 모임'을 한다는 김모(여·35)씨는 "지출 비용에 점심이 차지하는 부분이 상당히 크다 보니 직장 동료들과 일주일에 적어도 2번은 도시락을 가져오기로 했다"면서 "도시락 관련 레시피도 공유하고 서로 챙겨올 반찬을 의논하기도 한다"고 했다.도시락 열풍에 유튜브·인스타그램 게시글 등 관련 SNS도 인기가 커지고 있다. 25일 기준 인스타그램에는 직장인 도시락 관련 게시글이 47만여 건이 올라와 있다. 유튜브에서도 도시락 관련 영상들이 수십만의 조회 수를 기록하고 있다.이러한 상황에 정부는 '착한가격업소' 이용 시 할인받을 수 있는 카드를 늘리고 배달 할인이 가능한 쿠폰을 지급하는 등 '착한가격업소 이용 활성화를 위한 업무 협약식'을 개최했다. 또 앞으로 지방지차단체와 협력해 올해 말까지 업소를 1만개로 확대하겠다고 밝혔다.외식 물가에 대한 부담을 줄이기 위해선 더욱 다양한 정책들이 마련되어야 한다. 하루빨리 안정적인 물가 흐름이 이어져 직장인들의 부담이 줄어들 수 있는 상황이 찾아오길 기대한다. 정지윤기자 yooni@yeongnam.com
[자유성] 얼음물 입수
최근 TV 예능 프로그램에서 축구 국가대표 조규성(덴마크 미트윌란 )이 한겨울 호수에 풍덩 뛰어드는 장면이 소개됐다. 그는 "일주일 두 차례 건강 유지를 위해 얼음물에 입수한다"고 했다. 실제 적잖은 운동 선수들이 근육 회복 등 체력 관리를 위해 얼음물 목욕을 즐기고 있다. 이른바 '극저온 치료법'이다. 연구 결과에 따르면 얼음물 목욕은 지방 연소는 물론 체내 염증 감소, 면역력 강화, 운동 능력 개선 등의 효과가 있다고 한다. 세계적 보디빌더인 크리스 범스테드도 일주일 3~4차례 아침에 일어난 뒤 얼음물 입수를 하고 있다. 그는 "얼음물에 뛰어들면 뇌가 깨어나는 느낌"이라고 했다. 심리적 효과도 크다는 얘기다. 그래서인지 예로부터 정신력 강화를 위해 얼음물 입수를 하는 운동 선수도 많았다. 과거 우리나라 프로야구단에선 우승이나 탈꼴찌를 위한 각오를 다지기 위해 동계훈련에서 얼음물 입수를 빼놓지 않았다. 한때 태평양 돌핀스를 이끈 김성근 감독의 일화는 유명하다. 1989년 오대산 전지훈련에서 선수 전원에 강제로 얼음물 입수를 시켰다. 효험을 본 것인지 같은 해 시즌, 태평양은 사상 첫 3위에 올랐다. 올해 71세인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최근 얼음물에 입수했다. 십자가 모양의 얼음물 수영장에 입수해 성호를 그으며 세 차례 앉았다 일어났다를 반복했다. 러시아 정교회 연례 의식에 따른 것이다. 해마다 어김없이 행해왔다. 러시아 언론에선 고령으로 종종 건강 이상설에 휩싸이는 푸틴의 건재를 과시하는 행위로 포장해 보도한다. 정교회에 따르면 얼음물 입수가 건강 도모는 물론 '죄를 씻는다'는 의미도 담고 있다. 그가 얼음물에 뛰어들면서 '전쟁을 일으킨 죄'를 생각했을까. 이창호 논설위원
[박규완 칼럼] 권력 독과점 카르텔 깨야
재러드 다이아몬드 UCLA 교수는 문화인류학자, 진화생물학자이자 스테디셀러 '총·균·쇠' '문명의 붕괴'를 저술한 논픽션 작가다. 한국과도 친밀하다. 성균관대 석좌교수로 재임했으며 한글을 세계에서 가장 과학적인 문자라고 극찬했다. 유럽의 비교우위를 '분권'이란 키워드로 풀어낸 통찰력은 다이아몬드만의 지적 근력이다. 오늘날 50여 개국의 유럽은 과거 수백 개의 정치 단위가 할거했다. 구조적 경쟁체제였다. 그 결과 정치제도·과학·산업·문화 등 각 분야에서 다른 대륙보다 앞선 발전을 일궈냈다. 르네상스와 산업혁명이 유럽에서 태동한 게 우연이었을까. 다이아몬드는 "분열과 분권이 유럽의 융창을 추동했다"고 분석했다. 통섭의 대가다운 혜안이다.우리나라는 압도적 집권(集權)국가다. 행정권 등 국정운영의 포괄적 권력은 대통령에 집중돼 있고 정치권력은 거대 정당, 자본권력은 재벌기업들이 과점하는 양상이다. 카르텔이 따로 없다. 분권은 이미 글로벌 트렌드다. 빅테크 애플은 분권기업의 벤치마크다. 애플은 CEO 팀 쿡이 독단으로 정책 결정을 하지 않는다. 디자인 총괄, 소프트웨어 개발, 마케팅 등 부문별로 의사결정권자가 나뉘어 있는 사실상 집단지도체제다. 블록체인의 키워드도 정보공유와 분권이며 NFT(대체불가토큰) 역시 소유권의 분점 아닌가.대한민국 헌법 78조와 104조의 공무원 임면권은 대통령 권한의 백미다. 대법원장 및 대법관, 헌재소장 및 헌재 재판관, 국무총리와 장·차관, 검찰총장, 국가정보원장, 방송통신위원장, 300여 개 공공기관장에 대한 임명권을 갖는다. 사정권력과 여론의 '원격 조종'이 가능하다. 사면권, 법률안 거부권, 행정입법권도 법에 명시된 대통령 권한이다. 득표율은 중요하지 않다. 0.73%포인트 차(差)면 어떠랴. 윤석열 대통령은 특히 거부권의 효용성을 쏠쏠하게 누리는 편이다. 취임 후 4번, 법안으로는 7번째 거부권을 행사했다. 역대급이다. 제왕적 권력에 대한 제동장치가 필요하다.자본권력은 더 많은 중소기업과 벤처기업, 스타트업이 나눠 가져야 한다. 거대 양당이 독과점하는 의회권력도 분화해야 운영의 묘가 살아난다. 캐스팅 보터 역할을 할 제3당이 등장하면 길항정국의 물꼬가 트일 것이다. 정당 민주화도 시급하다. 우선 중앙당의 힘을 이완해야 한다. 당 대표가 공천권과 당직 인사권을 전횡하는 관행은 독재시대의 유물이다. 하향식 공천은 보스정치, 계파정치의 흑역사다. 시스템 공천을 제도화하고 민의를 제때 수렴하는 개방·분권의 디지털 정당으로 거듭나야 한다. 4·10 총선이 의회권력 분점과 정당 민주화의 분수령이 되길 기대한다.공화국(republic)의 어원은 '공적인 것(res publica)'이란 라틴어다. 공화(共和)의 사전적 의미는 '여러 사람이 공동으로 일함' '두 사람 이상이 공동으로 정무를 시행함'이다. 의역하면 공적 권력 나누기다. '주권이 국민에게 있다'는 민주(民主)와 맥락이 같다. 민주공화정을 실천하는 길이 분권이라는 얘기다.유럽의 분열과 분권이 유럽 번영의 엔진이었다면 대한민국의 권력 분점이 정치·경제 발전을 추동한다는 공식도 유효하다. 대통령의 무소불위 권력을 비롯해 입법권력, 자본권력의 민주적 분화가 절실하다. 윤 대통령과 한동훈 국민의힘 비대위원장의 충돌도 권력 독과점 행태가 빚은 신파 아닌가. 민주주의의 요체는 견제와 균형이다. 권력 카르텔을 깨야 견제와 균형이 가능하다.논설위원박규완 논설위원
[영남타워] '포항 효과'를 기다린다
'스페인 빌바오' 하면 '구겐하임미술관'이 떠오르고 연이어 '도시 재생'이란 단어가 뒤따라 붙는다. 빌바오는 문화주도형 도시재생의 성공사례로 전 세계가 벤치마킹에 나서고 있다.빌바오의 성공스토리를 안다면 당연한 일이다. 빌바오는 인구 34만명 정도의 그리 크지 않은 도시다. 현재는 철강, 항공산업, 전기·IT 산업 등 다양한 산업이 발전했지만 철강산업이 중심이 돼 성장한 도시였다. 하지만 빌바오의 발전을 이끌었던 철강산업이 쇠퇴하면서 도시도 쇠락했다. 먹구름 낀 잿빛 공업도시를 되살려낸 것은 구겐하임재단이 1997년 연 구겐하임미술관 분관이었다.구겐하임미술관은 전시품만 아니라 뉴욕 본관을 비롯해 독특한 외형을 지닌 미술관의 건축으로도 유명하다. 빌바오 분관 역시 세계적인 건축가 프랑스 게리가 디자인해 7년여에 걸쳐 만든 건축물로 시선을 끌었다. 미술작품을 보기 위해, 여기에 더해 미술관의 건축을 보기 위해 전 세계에서 관광객들이 몰려들었다. 여기서 문화적 도시재생을 상징하는 '빌바오 효과'라는 말이 나왔다. 미술관이 생기기 전인 1995년 연간 2만5천명에 불과하던 관광객은 2018년 무려 93만명 이상으로 급증했으니 그럴 만도 하다.이즈음에서 경북 포항이 떠오른다. 포항은 빌바오와 여러 측면에서 닮았다. 특히 철강산업을 중심으로 성장했던 포항의 산업생태계와 유사하다. 경북의 작은 어촌에서 출발해 인구 50만명이 넘는 대한민국 대표 철강도시로 성장한 포항이 철강산업 쇠퇴로 위기를 겪는 점도 오버랩된다. 지난해 포항 인구가 50만명 아래로 떨어졌다. 인구가 50만명이 안되면 시 행정권한이 축소되고 대외적인 위상이 하락하기 때문에 포항은 2년의 유예기간에 인구 50만명을 넘기기 위해 몸부림치고 있다.하나의 산업으로 도시가 발전하는 시대는 지났다. 이제 포항 발전을 위해선 산업 다변화로 새 출구를 찾아야 한다. 포항이 2차전지, 수소, 바이오산업 등 산업 재편에 행정력을 총동원하는 이유다.포항시는 떨어지는 도시경쟁력을 살릴 다른 방안으로 문화도시에 눈을 돌렸다. 이미 다양한 TV드라마 촬영 유치를 통해 포항 곳곳을 관광 명소화하는데 성과를 내고 있다. 특히 청하면은 드라마 '갯마을차차차'의 글로벌 열풍으로 해외 관광객의 발길이 이어지면서 '한류 관광 핫플레이스'로 거듭났다.최근에는 포항시가 매년 여는 스틸아트페스티벌을 세계 수준의 비엔날레로 전환하기로 했다. 2012년부터 개최한 이 행사를 2년마다 여는 비엔날레로 바꾸는 방식을 검토하는 것이다. 스틸아트페스티벌은 산업도시 포항이 문화도시로 전환하는 의미를 담은 상징적인 문화행사다. 시는 10여 년간 열면서 행사가 어느 정도 자리 잡은 만큼 국제도시 포항의 위상을 확립하고 철과 예술, 기술과 문화, 도시와 사람을 연결하는 세계적 수준의 비엔날레로 만드는 게 목표다.여기에 포항의 대표축제인 국제불빛축제도 힘을 보탤 것으로 보인다. 불빛축제는 문화체육관광부의 문화관광축제로 선정돼 이미 그 가치를 인정받았다. 일련의 포항시 움직임을 보면 포항의 계획이 뜬구름 잡는 것만은 아닌 듯하다. 특히 포스텍 등의 유능한 인재, 바다를 낀 지리적 이점 등에서 빌바오보다 확장성이 더 클 수 있다. '포항 효과'라는 말이 통용되는 시대를 기다린다. 김수영 경북부장김수영 경북부장
[동대구로에서] 탑도그와 언더도그
'언더도그'의 사전적 의미는 패배자나 낙오자, 또는 희생자, 약자 등으로 풀이할 수 있다. 이른바 '개싸움'에서 위에 있는 개(Top dog)가 우위를 점하고, 아래에 있는 개(Under dog)는 열세를 보인다는 데서 유래한 말로 알려져 있다. 1948년 미국 대선 당시 여론조사에서 뒤지던 해리 트루먼 민주당 후보가 토머스 듀이 공화당 후보를 제치고 당선되면서부터 널리 사용됐다.사람들은 누가 봐도 상대가 되지 않을 것 같은 '약자'가 '강자'를 쓰러뜨릴 때 환호한다. 여기에 '언더도그'가 열악한 환경을 극복하고 이런 결과를 이뤄냈다는 비하인드 스토리까지 더해지면 감동은 배가 된다. 스포츠에서 언더도그의 의외성이 가장 빈번한 종목을 꼽으라면 축구를 들 수 있다. 월드컵에서는 예상 밖 선전으로 축구팬을 열광시킨 언더도그 팀이 드물지 않게 배출됐다. 1966년 런던월드컵에서 당시 세계 최강이던 이탈리아를 꺾고 8강에 오른 북한이나 1990년 이탈리아월드컵에서 디에고 마라도나가 이끄는 아르헨티나를 꺾는 파란을 연출하며 8강까지 올라 '아프리카 돌풍'을 일으킨 카메룬이 대표적이다. 미국월드컵에서 이전까지 단 1승도 거두지 못하던 불가리아가 4강에 오른 것, 그리고 다음 대회인 프랑스월드컵에서 첫 출전한 크로아티아가 루마니아·독일을 차례로 이기고 4강에 오른 것도 언더도그 사례로 꼽힌다.특히 언더도그의 반란을 제대로 일으킨 경우가 2002년 한국이었다. 당시 공동 개최국이던 한국은 조별리그에서 만만찮은 전력의 폴란드와 포르투갈을 이기며 16강에 오른 데 이어 이탈리아와 스페인이라는 우승 후보를 제물로 4강에 오르며 한국 축구의 위상을 드높였다.이후 한국은 월드컵 원정 승리와 2010·2022 월드컵 16강 진출, 아시안게임 연속 우승 등을 이루고 세계 축구계의 무시 못할 강자로 올라섰다. 이른바 언더도그에서 탑도그가 된 것이다. 이런 위상을 가장 잘 보여주는 것이 이번 2023 AFC 카타르 아시안컵이다. 손흥민·이강인·김민재·황희찬 등 빅리그에서 뛰는 해외파 선수들을 중심으로 '역대 최강'이라는 평가를 받으며 일본·호주·이란 등과 함께 우승후보로 꼽히고 있다.하지만 축구공은 둥글었다. 한국은 조별리그에서 요르단에 끌려 다니다 겨우 무승부에 그치면서 조1위 확보에 실패했다. 일본도 이라크에 패하면서 결승전에서나 볼수 있을 것으로 기대됐던 한일전이 16강전으로 앞당겨질 수도 있는 상황을 맞이했다.언더도그 신세에서 벗어났지만 언더도그의 희생양이 된 것이다. 잉글랜드의 축구 전설 게리 리네커는 1990년 "축구는 단순한 경기이다. 22명이 90분 동안 공을 쫓아다닌 후 결국 독일이 이긴다"고 말했었다. 탑도그 독일 축구에 대한 감탄의 말이다. 하지만 28년 후 한국과 독일의 경기를 보고 난 후에는 "축구는 단순한 게임이다. 90분간 22명이 공을 쫓는데, 독일이 더 이상 항상 이기지 않는다"라고 패러디했다. 축구의 의외성을 되새긴 말이다.탑도그로 성장해 언더도그 출현의 희생양이 될 수 있는 한국 축구의 성장은 분명 즐거운 일이다. 하지만 실수는 한 번으로 족하다. 실수가 반복되면 실력이 된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홍석천 (체육부장 겸 NFT 팀장)홍석천 (체육부장 겸 NFT 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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