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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남타워] 기업 없는 지방화
지난달 29일 마감된 산업통상자원부 주관 '바이오 분야 국가첨단전략산업 특화단지' 공모에 전국에서 11곳이 신청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해 7월 반도체· 2차전지·디스플레이 분야 7개 국가첨단전략산업 특화단지 지정에 이은 추가 특화단지다.바이오 특화단지로 지정되면 기업 유치 등을 통해 첨단 바이오산업 주도권 확보가 가능해 경쟁이 치열하다.경북도도 지난해 바이오 국가산업단지로 선정된 안동과 연구개발 역량이 뛰어난 포항 두 곳을 묶어 바이오 특화단지 신청서를 냈다. 코로나19 백신 국내 1호 생산 기업인 SK바이오사이언스는 당시 생산을 맡았던 안동공장에서 6일 증설 착공식까지 가지며 경북(안동·포항)의 바이오특화단지 유치에 힘을 보탰다. 경북도는 지·산·학·연과 협업 네트워크를 구축하는 등 역량을 집중하고 있다.하지만 이 같은 노력에도 경북이 바이오 특화단지로 선정되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바이오뿐 아니라 모든 산업의 기반과 연구 역량이 집중된 수도권에서 이번 경쟁에 대거 뛰어들었기 때문이다.경기도에서만 수원, 고양, 시흥, 성남이 별도로 특화단지를 신청했을 뿐 아니라 인천까지 나섰다. 인천은 안동에 생산라인이 있는 SK바이오사이언스의 경기도 판교 연구소를 이전할 곳으로 거론되는 지역이기도 하다.윤석열 대통령이 취임 직후부터 '지방화'를 강조하고 있지만, 정작 정부는 지난해 경기도 용인을 반도체 국가첨단전략산업 특화단지로 지정하며 이 일대를 2047년까지 반도체 메가 클러스터로 구축하겠다고 밝히는 등 오히려 '지방화'에 역행하고 있다.정치권은 한술 더 떠 4월 총선을 앞두고 여야 모두가 평택·화성·용인·이천·안성·성남 판교·수원 등 경기 남부권을 '반도체 벨트'로 구축해 세계적인 반도체 생산기지로 만들겠다고 약속하고 있다.경북을 비롯해 대전, 강원, 충북, 전남, 전북 등 공모 신청 6개 지자체가 바이오 특화단지에 목을 매는 것은 수도권만 선호하는 대기업의 지방 유치 이유가 가장 크다.지방은 인구소멸로 국회의원 선거구조차 짜깁기를 하고 있는 상황이지만, 수도권 특히 반도체 벨트로 불리는 경기 남부권은 잇따른 기업 유치로 인구가 급증하면서 이번 총선에서 지역구가 17개에서 19개로 2곳이나 더 늘었다.경북의 경우 19대 총선에서 단독 선거구였던 상주는 20대에서 군위-의성-청송과 통합 선거구가 된 뒤 21대 때는 다시 문경과 한 선거구가 됐다. 20대 때 문경-예천과 같은 선거구였던 영주는 21대 때 울진-영양-봉화와 같은 선거구가 됐고, 울진은 이번 총선에서 생활권이 전혀 다른 의성 등과 같은 선거구로 묶였다.그럼에도 불구하고 산업부는 지난해 12월 바이오 특화단지 지정 공고를 내면서 신청 주체를 중앙행정기관과 특별시까지 포함시키며 수도권은 물론 서울까지 허용했다. 여기에 심사 기준으로 첨단전략산업 경쟁력과 인프라·인력 등 첨단전략산업 성장 기반 확보 가능성, 첨단전략산업 및 지역산업 동반 성장 가능성 등을 제시해 지방 지자체의 지정을 더욱 어렵게 만들고 있다. 경기도가 공모에 4개 기초지자체를 대거 신청한 것도 지방보다 심사 기준에서 유리하기 때문이다.바이오 특화단지는 국무총리 주재 국가첨단전략산업위원회 심의·의결을 거쳐 올 상반기 중 지정될 예정이다. 임성수 경북본사 부장임성수 경북본사 부장
[하프타임] 문화예술지원금, 독이 안 되려면
대구문화예술진흥원은 지난달 말 지역 문화예술지원 사업 선정 결과를 발표했다. 한 해 중 지역 문화·예술·관광의 컨트롤타워인 대구문화예술진흥원에 지역 예술인과 예술단체의 관심이 가장 쏠리는 순간이다. 매년 연초 지역 예술인들은 올해 펼치게 될 활동을 위해 관련 서류를 작성해 이 사업 공모에 지원한다. 이밖에 지자체의 지원으로 공연을 만드는 예술인들도 있고, 좀 더 발 빠른 이들은 한국문화예술위원회를 비롯한 중앙의 문화기관을 통해 지원을 받기도 한다.중앙·지역 문화 기관의 지원 사업은 수도권보다 작업 환경이 좋지 않은 지역 예술인들에게는 특히 단비와도 같다. 특히 코로나19로 공연이 취소되거나 연기되던 때에는 그 역할을 톡톡히 했다. 공모로 진행되는 사업은 선정 결과를 놓고 논란이 일기도 한다. 특히 과거에는 사업 선정 결과 발표를 놓고 불공정성 시비가 자주 일었다. 기자도 이러한 문제를 지면을 통해 여러 차례 지적하기도 했다. 공모가 아니어도 해당 예술단체의 선정 과정에 의문을 제기하는 목소리가 나오기도 한다. 최근에는 제도 개선이 조금씩 이뤄지며 불공정성 시비는 과거에 비하면 많이 해소되긴 한 것 같다. 다만 객관적인 평가가 어려운 예술의 특성상 그런 논란의 우려는 여전하다. 심사 문제 외에 중앙·지역 문화기관의 지원사업과 관련된 공연을 볼 때마다 늘 묻게 되는 질문이 있다. "지원 사업으로 무대에 오른 작품이 지역 문화 발전에 기여하는가"라는 것이다. 기자가 지원 사업으로 진행된 공연을 여러 차례 보면서 발견한 공통점이 있다. 지역 소재로 작품을 만들어 지역 문화 진흥에 대한 명분은 가져간다. 하지만 그 명분을 넘어서지 못하는 공연에 그친다는 것이다. 오히려 지원사업에 맞춰 작품을 만들다 보니, 연극·뮤지컬과 같은 작품의 경우 이야기 자체가 매우 인위적으로 만들어진다. 그런 이유로 하고 싶은 작품을 하지 못한다며 지원사업에 지원 자체를 하지 않겠다고 하는 예술인들도 있다.몇몇 예술인·예술단체들은 스스로 고민하지 않고 '우선 지원받고 보자'라는 생각으로 작품에 임하는 경향도 나타난다. 일부 단체의 경우, 이전에 자신이 무대에 올린 작품과 유사한 형태로 작품을 만들어 가며 사실상 '자기 복제'를 하기도 한다. 이러한 과정을 반복하다 보면 작품의 완성도는 더 높아지는 게 아니라 오히려 더 떨어지기도 한다. 이는 지역 문화 발전에 보탬이 되지 않기도 하지만, 지역 예술인·예술단체의 발전에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 또 이런 공연에 가보면 순수 공연 애호가보다는 지인, 동료 예술인들이 객석 대부분을 채우는 경우가 많다. 이렇기에 지원사업으로 무대에 오른 작품 중 실제 관객에게 인정받는 작품은 드물다.심사 과정의 공정성에 대한 보완은 여러 차례 이뤄진 만큼 이제 중앙·지역 문화기관 모두 지원 후 사후 평가에 관심을 가져야 할 때다. 지원금이 제대로 집행됐는지, 실제 예술인·예술단체가 지원사업을 통해 성장했는지를 평가해 지원 사업의 취지를 살리는 데 노력해야 한다. 예술인에게는 창작활동에 대한 간섭으로 느껴질 수 있지만, 세금으로 이뤄지는 지원사업이기에 이러한 절차는 당연히 필요하다. 예술인·예술단체가 지원사업을 바라보는 태도도 바뀌어야 한다. 지원 사업을 지원하기 전 자신의 창작 활동에 도움이 되는지를 우선순위로 고려해야 할 것이다. 최미애 문화부 선임기자최미애 문화부 선임기자
[동대구로에서] 꿈꾸는 도시와 꿈을 이루는 도시
어릴 적 무수히도 많은 프라모델을 조립했다. 미국산 전투기인 F-14톰캣부터 F-15이글, M1 에이브럼스 전차, 항공모함 등 군사용 무기는 물론 자동차나 오토바이 등을 주로 만들었다. 동네 문방구에서는 정밀한 모델을 구하기 힘들어 명절날 외가인 서울에 올라가서야 원하는 모델을 구할 수 있었다.프라모델은 조립으로 끝나는 게 아니다. 스티커를 붙이고 색을 입히는 작업을 거쳐야 하나의 작품으로 완성된다. 각색의 에나멜 도료가 회색 톤의 플라스틱 쪼가리에 도포돼야 비로소 생명력을 얻게 되는 것이다. 먼지나 진흙이 묻은 질감, 불에 그을린 모양까지 표현해 낼 때 느끼는 성취감은 해 본 사람만 안다. 지금도 서재 책장에는 수년 전 만든 프라모델 2기가 건재하다. 시너(thinner) 냄새와 함께 어린 날의 꿈을 떠올리게 하는 '프리덤 건담'과 '뉴건담'이 그 주인공이다.TV를 보는 게 오락의 전부였던 그 시절, 프라모델 조립과 함께 공상과학 만화는 설렘 그 자체였다. 2020원더키디, 녹색전차 해모수 같은 국산작품을 비롯해 기동전사 Z건담, 신세계에반게리온, 기동경찰 패터레이버, 공각기동대 등 로봇이 등장하는 애니메이션을 보고 있으면 마냥 행복했다.'누구나 가슴에 벼랑 하나쯤 품고 산다'는 장석주 시인의 말에 빗대자면 그 시절 가슴에 로봇 하나쯤 품고 살았는지 모른다.절대 올 거 같지 않았던 로봇과 함께하는 세상이 현실이 되고 있다. 건담 같은 거대 로봇의 출현은 시기상조일지 모르지만, 로봇은 이미 다양한 분야에서 활약 중이다. 산업용으로 국한하지 않고 점차 영역을 넓혀 일상에까지 파고든 상태다.특히 대구는 국내 첨단 로봇산업의 거점으로 거듭나고 있다. 2014년 한국로봇산업진흥원을 비롯해 지난해 국가 로봇테스트필드까지 유치하면서다. 이는 1990년대부터 발전한 자동차 부품 산업과 금속·기계 공업 역량이 뒷받침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어느덧 지역에는 로봇 관련 업체만 200여 곳이 넘는다. 더욱이 국가 로봇테스트필드는 정부의 '제4차 지능형 로봇 기본계획'에 포함된 데다 윤석열 대통령까지 관심을 표명한 터라 강력한 드라이브가 걸렸다. 지난 4일 대구를 찾은 윤 대통령은 "대구의 로봇과 미래 모빌리티 산업을 중점적으로 육성할 것"이라고 밝혔다.2족 보행 로봇을 비롯해 다양한 형태의 로봇이 일상에서 인간과 함께하는 미래 도시의 모습을 조만간 달성에서 볼 수 있을지도 모른다.정부의 관련 정책과 전망을 살펴보면 대구의 미래는 더욱 밝다. 정부는 국내 로봇산업 규모가 5조6천억원에서 2030년 20조원 이상으로 성장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6년 새 4배 가까이 성장이 가능하다는 판단이다. 또 같은 기간 국산화율이 44%→ 80%로 성장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이를 위해 핵심기술 확보는 물론 전문 인력 1만5천명을 양성하고 로봇 전문기업 150개를 육성하는 것이 목표다. 2030년까지 국내 제조·서비스업에 총 100만대의 로봇을 보급한다는 청사진도 내놨다. 정부의 강력한 뒷받침이 이뤄진다면 대구는 물론 국내 로봇산업은 성장 가도를 달릴 것으로 기대된다. 또 비수도권 최대 소프트웨어 기업 집적지로 성장 중인 수성알파시티와 시너지는 물론, 디지털 헬스케어·UAM(도심항공교통) 등 대구의 또 다른 첨단산업의 기반도 한층 탄탄해질 전망이다.대구는 이제 꿈꾸는 도시를 넘어 꿈을 이루는 도시로 나아가고 있다.박종진 정경부 차장박종진 정경부 차장
[자유성] 네이밍
기아자동차의 영문 로고인 'KIA'. 지금은 브랜드 인지도가 높아져 오해가 많이 사라졌지만, 네이밍(naming·이름 짓기) 초창기 때 미국 시장에선 적잖은 논란을 일으켰다. 'KIA'가 미국에선 'Killed in Action'의 약자로 전쟁 중 사망한 군인, 즉 전사자를 뜻하기 때문이다. 왠지 찝찝한 마음에 한때 미국 소비자들(특히 참전 군인 가족)이 구입을 꺼렸다는 얘기가 전해진다. 그럼에도 기아차는 끊임없는 기술 개발을 통해 미국에서 자동차 브랜드 신뢰도 '베스트 10'에 올랐다. 현대자동차도 비슷한 곤욕을 치렀다. 영문 이름인 'HYUNDAI'. "휸다이?" "현다이?" 과거 한때 외국인에겐 발음하기조차 어려운 이름이었다. 정작 문제는 단어 가운데 'DAI'였다. '죽다(die)'를 연상시켜 미국인들에게 거부감을 줬다. 독일 차 'BMW'는 비싼 차 값 때문에 'Broke My Wallet(지갑털이)'이라는 놀림을 받기도 했다. 이처럼 네이밍은 제품과 기업의 운신에 적잖은 영향을 미친다.정치적 결사체인 정당의 이름도 마찬가지다. 당명은 정체성·방향성을 집약한 것으로 당의 성패를 좌우하기도 한다. 최근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의 '조국신당' 명칭 사용이 불가능하다고 결론 남에 따라 신당 측이 당명을 '조국혁신당'으로 결정했다. 이름 '조국(曺國)'이 아닌 일반명사 '조국(祖國)'을 넣는 것은 가능한 데 따른 것. 이렇든 저렇든 유권자 뇌리엔 조 전 장관의 당으로 각인될 게다. 당의 장기적 확장성은 둘째 문제다. 오로지 총선만을 겨냥한 당명인 셈이다. 한철 팬덤(fandom)에 기댄 사당(私黨)의 한계를 벗어나기 어려울 것 같다. 이창호 논설위원
[자유성] 연두색 번호판
차량번호판의 숫자나 색깔·글자에는 각종 정보가 담겨 있다. 번호판 개편에 따라 태극 홀로그램과 함께 KOR가 표시된 차량을 기준으로 보면 맨 앞의 숫자 세 자리는 승용차·승합차·화물차·특수차 등을 구분한다. 중간에 있는 글자는 비영업용·영업용(일반·택배·렌터카)과 같은 용도를 나타내며 마지막 네 자리 숫자는 차량 고유번호로 보면 된다. 색깔의 경우, 가장 흔하게 볼 수 있는 흰색은 일반 차량이다. 노란색은 영업용이며 하늘색은 전기차와 같은 친환경 차량에 부착된다. 올해부터는 연두색이 추가됐다. 8천만원이 넘는 고가의 법인차를 신규 또는 변경 등록할 때 의무적으로 부착해야 한다. 더불어민주당 양경숙 의원은 "연두색 번호판 제도는 고가의 법인 승용차 사적 이용 방지의 시작"이라고 의미를 부여하기도 했다. 물론 8천만원을 웃도는 국산 차도 있긴 하지만, 주로 고급 수입차를 법인 명의로 구입한 뒤 사적인 용도로 활용하고 유류비 등 세제 혜택을 누리는 '꼼수'가 잦다는 비판이 잇따랐기 때문이다.지난 1월 말 현재 연두색 번호판을 단 전국의 법인 차는 1천661대였다. 인천이 서울(169대)보다 정확히 2배인 338대로 가장 많았고 부산(307대)과 제주(193대) 순으로 집계됐다. 대구는 104대, 경북은 22대였다. 법인 상당수는 제도 시행에 앞서 지난 연말 고가의 수입차를 서둘러 구입한 것으로 보인다. 이는 2013년 이후 1월 판매량 가운데 올해가 11년 만에 최저치를 기록했다는 한국수입자동차협회의 집계가 뒷받침한다. '연두색 번호판'은 윤석열 대통령의 후보 시절 공약이기도 하다. 장준영 논설위원
[박재일 칼럼] '그린벨트'를 푸는 대통령들
그린벨트(Green Belt)법은 한때 부동산의 국가보안법이라 불렸다. 국가가 엄청난 제약을 부가한 땅이란 의미다. 말이 좋아 '푸른 그린'이지 실은 개발을 완전히 묶어버리는 제한구역(開發制限區域)이다. 그린벨트는 단순 짐작하듯이 국토 전역이 아니다. 대도시 주변에 한정됐다. 도시가 난개발돼 외곽으로 마구 뻗어 나가는 폐해(sprawling)를 차단하겠다는 취지였다. 1971년 서울을 시작으로 전국 13개 대도시(국토면적의 5.45%)에 적용됐다. 대구권의 경우 대구 도심을 마치 도넛처럼 완전히 둘러싸고 있다. 그린벨트 면적은 대구권의 절반을 넘는다.도시의 무분별한 팽창을 막고, 자연보전과 녹지 유지, 군사시설 확보란 명분에서 추진된 그린벨트는 '박정희 전 대통령의 국토 공간계획'의 작품이란 평가를 받는다. 그린벨트 제정 당시 박정희는 "현재 경제력과 재정 여건이 안돼 제대로 된 개발이 어려운 만큼 수십 년 뒤 우리 후손들이 여유로울 때 사용토록 개발을 유보하자"고 했다. 그렇다면 개발을 제한한 땅이라기보다 개발유보지역에 가깝다. 원래 영국 런던의 그린벨트를 벤치마킹했다는데, 현재 세계적으로 대도시 주변을 그린벨트화해서 성공한 사례는 대한민국이 거의 유일하다. 도시 주변이 그나마 푸르게 유지된 비결이다.그린벨트가 처음 도입될 당시, '푸르다'라는 근사한 말에 혹해서 대도시 외곽의 토착민들은 "내 땅도 포함시켜 달라"고 행정 관청에 부탁했다는 일화도 있다. 대구 인근 가창에서는 당시 권력 실세가 조상 땅을 그린벨트에서 제척해 엄청난 이익을 창출했다는 소문도 있다. 그린벨트의 70%는 사유지다. 당연히 사유재산권 논란이 일었다. 인접 지역은 도시화로 개발되는데 내 땅은 주택 하나 마음대로 지을 수 없었다. 팔리지는 않고 재산세만 냈다. 저항이 있는 것은 당연했다. 동대구역은 수십 년 전만 해도 전국 그린벨트 지역 주민들의 집합 장소였다. 그린벨트를 해제하라는 데모가 수시로 열렸다. 요즘 데모가 뜸한 이유를 대구시에 물어보니 수십 년간 민원이 폭주하면서 역대 정부가 그린벨트 정책을 틈틈이 완화하고 일부 지역은 풀어준 배경이 있다고 답했다.88서울올림픽을 기점으로 그린벨트는 조금씩 풀리기 시작했다. 경기장과 선수촌이 그린벨트에 지어졌다. 김대중 정권 때는 상당한 해제지역이 나왔고, 박근혜 정권 때도 일부 해제됐다. 재미있는 것은 문재인 정권 당시 수도권 아파트 용지 확보를 위해 해제를 시도했는데, 박원순 서울시장이 완강히 반대해 좌절됐다는 대목이다. 우파 국가주의자인 박정희가 만든 그린벨트를 좌파 운동가 출신이 보존을 외친 점은 '그린벨트 정치'의 아이러니다.윤석열 정부가 그린벨트 규제를 혁신적으로 완화하겠다고 발표했다. 이번엔 비수도권에 초점을 맞췄다. 대구 달성군의 미래자동차, 경주의 소형모듈 원전 단지를 비롯, 지역별로 특화된 국가산업단지 부지를 확보하고 일자리를 창출해 지방의 인구감소를 저지시켜 보겠다고 했다. 벌써 전국의 부동산 업계가 들썩인다. 일각에서는 총선용 규제 해제, 포퓰리즘 정책이라는 비판도 한다.그린벨트 제정 당시, 박정희는 반대파로부터 엄청난 비판을 받았다. 결국 50여 년 전 구축했던 제도를 후대 정권은 풀 수 있는 정책의 여유를 가지게 됐다. 누구는 규제란 고양이 목의 방울을 달았고, 그 뒤의 누구는 정책의 칼자루를 갖게 됐다. 그린벨트를 보면 국가가 운영되는 원리를 일면 느낀다.논설실장논설실장
[자유성] 춘란
실내에 들어서면 그윽한 향이 반길 줄 알았다. 전시회가 열린 체육관에는 아름다운 자태를 뽐내는 난(蘭) 꽃이 수백 송이가 넘었으니 난에 문외한인 나의 기대는 당연히 향기로움이었다. 봄을 맞아 지난 2~3일 '2024 경북난대전'이 열린 문경 온누리스포츠센터에는 경북의 내로라하는 난 동호인들이 출품한 난 500여 작품이 저마다의 자태를 뽐냈다. 하지만 향을 느낄 수 있는 품종은 개량종인 '석곡'과 중국 춘란인 '대부귀' 정도였다.한국 춘란은 고고한 품격을 지녔지만 그윽한 향은 없다. 향이 나는 동양란은 대부분 중국 춘란이라는 설명에 난에 대해 무지한 필자의 잘못을 새삼 깨달았다. 전시회를 준비한 전문가 수준의 동호인을 붙잡고 궁금한 점을 묻고 자세한 잎의 모양이나 무늬, 꽃의 형태와 색상, 희귀성의 이야기를 듣고 겨우 난초의 겉모습이나마 보게 됐다.난에 대한 찬사는 예전부터 많은 문인이 그림이나 글로 해왔다. 이번 전시회에서도 대회 관계자들은 '난의 아름다움은 그 자체로 삶의 아름다움'이라든지 '난과 함께하면 가슴을 짓누르던 번뇌도 저만치 물러난다'며 난에 대한 사랑을 노래했다.하지만 빠르게 변화하는 세상에 멈춤의 행위처럼 보이는 난 가꾸기나 동호인들이 갈수록 줄어드는 것이 아쉽다고 애호가들이 입을 모았다. 전시회 관람객도 거의 장년층 이상이다. 젊은 동호인도 없고 난을 거래하는 시장도 점점 규모가 작아진다고 한다. 치열한 경쟁 사회의 구조가 난을 감상하고 사랑할 마음의 여유가 없는 탓이다. 이러한 환경일수록 난과 같은 삶의 쉼표는 더 필요해 보인다. 남정현 중부지역본부 부장
[월요칼럼] 대구경북産 '메기'는 어떨까요
미꾸라지를 운송할 때 메기 한 마리를 넣으면 미꾸라지는 잡아먹히지 않으려고 이리저리 도망 다니기 바쁘다. 상황이 해제될 때까지 살기 위해 몸부림을 치기 때문에 도착해서도 생기를 유지한다. 이를 경영에 접목시킨 것이 흔히 말하는 '메기효과(Catfish Effect)'다. 만만찮은 상대가 출현했을 때 기존 기업들은 경쟁력 유지와 함께 시장에서의 지위를 잃지 않으려고 무던히 애를 쓴다. 건전한 경쟁은 소비자들에게 긍정적이고 득이 되는 방향으로 영향을 미친다. 품질 및 서비스 개선이나 가격 인하 등이 그렇다. 담합보다 경쟁이 바람직한 이유는 차고 넘친다. 특히 해당 분야가 철옹성 같은 구도를 꽤 오래 형성해 왔다면 메기의 등장은 새롭고 신선하다. 업계엔 긴장감을 불어넣고 소비자들에겐 선택지가 넓어지는 효과를 가져다주기 때문이다.정부는 지난해 7월 은행권에 '메기'를 투입하겠다는 방침을 밝혔다. 국민들이 보다 낮은 비용으로 더 나은 서비스를 받을 수 있도록 은행권 경쟁을 촉진하는 한편, 은행권 수익구조와 수익활용 전반에 대한 개선이 필요하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었다. 다양한 검토를 통해 마련된 방안 가운데 하나가 지방은행의 시중은행 전환이다. 은행업의 핵심은 예금과 대출이다. 전체 은행권 대출·예금의 70% 정도는 전국 영업망을 가진 5대 시중은행이 차지하고 있다. 시중은행들은 과점적 구조 아래 코로나로 늘어난 대출 규모를 기반으로 역대 최고의 수익을 달성했고 상당 부분을 성과급이나 배당으로 지급했다. 자본확충·벤처투자 등 미래를 위한 활용이나 국민들께 환원하는 부분이 기대치 이하라는 게 금융당국의 곱지 않은 시각이다. 또 비슷한 금리나 상품을 팔고 있어 국민들이 실질적 경쟁효과를 체감하는 데 한계가 있다는 점 등이 신규 플레이어의 진입 허용을 공식화한 배경으로 해석된다.이 같은 취지에 화답한 것은 대구은행이다. 현재로선 유일하다. 전국 최초의 지방은행인 대구은행은 금융위원회 발표 10여 일 만에 '시중은행 전환 TFT'를 구성할 정도로 발 빠르게 대응했다. 은행산업을 언제든지 경쟁자가 진입할 수 있는 경합시장으로 업그레이드하겠다는 정부의 취지는 마땅하고 시대정신에도 부합한다. 이와 관련된 명시적인 규정이 은행법령에 없고 과거 사례도 전무하기 때문에 당국의 심사숙고는 당연하다. 조만간 실시될 것으로 예상되는 심사는 엄격·투명하고 철저하게 진행돼야 한다. 다만, 정부가 먼저 방침을 천명하면서 강한 추진 의지를 수차례 보인 만큼 빠른 결론을 내는 것도 정책에 힘을 실어주는 요소가 된다.대구은행이 시중은행으로 전환되면 대구경북으로서는 반가운 일이다. 전국구 영업이 가능해지면서 규모의 경제를 달성하면 자금공급 확대에 따른 지역경제 활성화가 실현될뿐 아니라 대구은행의 경쟁력 강화로 이어지는 선순환 구조가 구축된다. 이는 지난해 11~12월 대구상의와 포항상의가 밝힌 입장과도 결을 같이한다. 대구은행 측은 일부에서 우려하는 본점 이전이나 지역 홀대는 터무니없는 이야기라고 일축한다. 최근 제4대 DGB금융그룹 회장으로 내정된 황병우 대구은행장은 지난해 1월 행장 취임 직후 시중은행 전환 밑그림을 그렸다. 대구경북을 본거지로 하는 '은행권 메기'를 자처하면서 새로운 활력을 모색하려는 그의 승부수가 어떤 시너지 효과를 낼지 궁금하다. 장준영 논설위원장준영 논설위원
[미디어 핫 토픽] 가황 '나훈아'의 은퇴 시사
가수 나훈아가 가요계 은퇴를 시사해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지난 27일 나훈아는 '고마웠습니다!'라는 제목의 편지를 공개했다. 편지에는 "마이크를 내려놓는다는 것이 이렇게 용기가 필요할 줄은 미처 생각지 못했다"면서 "박수 칠 때 떠나라는 쉽고 간단한 말의 깊은 진리의 뜻을 저는 따르고자 한다"고 했다. 이어 그는 "세월의 숫자만큼이나 가슴에 쌓인 많은 이야기들을 다 할 수 없기에 '고마웠습니다!'라는 마지막 인사말에 저의 진심과 사랑 그리고 감사함을 모두 담았다"고 했다.또 "긴 세월 저를 아끼고 응원해 줬던 분들의 박수와 갈채는 제게 자신감을 더하게 해줬고, 이유가 있고 없고 저를 미워하고 나무라고 꾸짖어 주셨던 분들은 오히려 오만과 자만에 빠질 뻔한 저에게 회초리가 되어 다시금 겸손과 분발을 일깨워줬다"고 했다.편지의 끝에는 '마지막 콘서트를 준비하면서'라는 문구가 있어 이번 공연이 그의 마지막 무대임을 시사했다.나훈아의 은퇴 소식을 들은 네티즌들은 "같은 시기에 태어난 게 너무 감사하다" "진짜 멋진 신념의 남자다. 너무 그리울 거 같다" "가황이 떠난다니 당분간은 그 자리를 대신할 사람이 없을 거 같다" 등의 반응을 보이고 있다.또 나훈아의 마지막 콘서트에선 '효도 전쟁'이 예고되고 있다. 나훈아의 무대를 볼 수 있는 마지막 기회인 만큼 역대급으로 치열한 '피케팅'이 예고되는 것. 직장인 정모(35)씨는 "부모님 모두 나훈아의 열혈팬이다. 은퇴 시사에 부모님이 아쉬움이 가득하다고 하셨다. 이전에도 어렵게 콘서트 티켓을 구했는데 이번에는 더 어렵지 않을까 싶다"면서 "마지막 콘서트인 만큼 부모님께 추억을 선물해 드리고 싶은 만큼 어떻게든 구할 계획"이라고 했다.나훈아는 1968년 '내 사랑'으로 데뷔했다. 이후 '사랑' '울긴 왜 울어' '홍시' '잡초' '고향역' 등 수많은 인기곡을 발매했다. 50여 년의 긴 세월 동안 '가황'으로 불렸다. 또 코로나19가 한창이던 2020년 KBS의 추석 특집 프로그램 '한가위 대기획 대한민국 어게인 나훈아'로 TV에 출연하며 나훈아 신드롬을 몰고 왔다. 같은 해 발표한 신곡 '테스형'으로 젊은이들을 사로잡기도 했다. 이후 최근까지 가창력과 에너지를 바탕으로 콘서트를 열어 팬들과 만나고 있다.이외에도 나훈아는 '트로트'라는 장르에 대한 폄하를 씻어내기 위해 노력한 가수로도 알려져 있다. '뽕짝' '트로트'라는 호칭이 아닌 '아리랑이라 호칭하기 운동'을 제안하기도 했다. 정지윤기자 yooni@yeongnam.com
[자유성] 영춘화
영춘화(迎春化)는 글자 그대로 봄을 맞이하는 꽃이다. 중국 원산으로 우리나라에서는 주로 관상용으로 남부지방에서 심었는데, 겨울이 따뜻해지면서 수도권에서도 재배된다. 잎이 나지 않은 상태서 노란색으로 피어서 무심코 보면 개나리로 여기기 쉬운데, 둘 다 물푸레나무과에 속하는 친척이지만 개나리는 개나리속, 영춘화는 물푸레나무속이라 뜯어 보면 다른 점이 많다.둘 다 잎이 나기 전에 꽃이 피는데, 영춘화가 더 작고 꽃잎이 6개로 꽃부리가 4개로 갈라진 개나리와 다르며 크기로 확연히 구분된다. 피는 시기도 개나리보다 빠르며 영춘화에서는 향기가 나지 않는다. 가는 가지가 여러 갈래로 2~3m 정도 크는데, 땅에 닿으면 그곳에서 뿌리가 나온다. 왕성한 발근력을 활용하여 번식도 꺾꽂이로 한다. 개나리와 가깝기는 영춘화보다 만리화다. 만리화는 색이 같은 노란색일 뿐만 아니라 꽃부리가 4개로 갈라지는 것도 개나리와 같다. 다만 만리화 꽃부리는 좁고 가파르다.영춘화가 피었다는 소식이 전국에서 거의 동시에 들려 온다. 포항·대구·서울 등지에서 가는 가지에 노랗게 핀 사진이 뉴스와 SNS를 장식한다. 영춘화의 개화기는 2~4월로 알려져 있는데, 이는 남부지역과 북부 지역이 꽃피는 시기에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요즘의 꽃소식은 남·북의 차이가 모호해지는 것 같다. 일찍 핀 꽃은 눈을 이고 있어 눈 속의 매화, 설중매(雪中梅)를 연상케 한다.영춘화의 꽃말은 '사모하는 마음, 희망'이라고 한다. 아직 아침 기온은 영하를 오르내리지만 절기(節氣)도 날씨도 봄이다. 새봄이 모든 이들에게 희망의 계절이길 기대한다. 이하수 중부지역본부 부장·나무의사
[박규완 칼럼] 이재명의 捨大就小(사대취소)
이철희 전 국회의원이 공천의 조건을 미국 프로농구 'NBA'로 풀어냈다. N은 노이즈. 즉 잡음이 없어야 한다는 뜻이다. 한데 민주당은 '파열음 만땅'이다. '현역불패' 기류의 국민의힘은 상대적으로 잡음이 적다. B는 밸런스다. 민주당의 내홍도 계파별 균형이 무너진 까닭 아닌가. 컷오프는 비명 일색, 단수 공천은 친명이 압도적이니 불공정 시비에 휘말릴 만하다. 국민의힘은 현역 의원과 친윤·'용핵관'의 밸런스가 주요 변수다. 대구경북의 물갈이 폭 역시 균형의 잣대로 적정화해야 한다. A는 어메이징한 인물을 상징하는데 여야 공히 유권자가 혹할 만한 신선하고 중량감 있는 후보는 보이지 않는다.공천 1라운드는 국민의힘 판정승이다. 여론도 여당 우세를 투영했다. '시스템 공천을 어느 정당이 잘했나'라는 질문에는 국민의힘 45.6%, 민주당 35.4%로 답했다. 대선 가상대결은 한동훈 46.4%, 이재명 40.2%였다.(데일리안·공정<주> 여론조사) 여론이 출렁거린 덴 이유가 있다. 민주당의 하위 20%에 대한 평가 기준은 오리무중이며, 비명 현역 의원을 뺀 정체불명의 여론조사가 살생부인 양 나돌았다. '친명 횡재' '비명 횡사'라는 요상한 조어는 계파 양극화를 부추겼다. 공관위는 존재감을 잃었다. 박용진 의원이 하위 10%? 똑같은 잣대라면 이재명 대표는 하위 몇 %에 포함될까.홍익표 원내대표는 논란의 여론업체 리서치디앤에이의 배제를 요구했고, 정필모 민주당 선관위원장은 사퇴했다. 전직 총리도 거들었다. 김부겸·정세균 전 국무총리는 "시스템 공천, 민주적 원칙, 객관성이 훼손되고 있다는 우려를 금할 수 없다"며 이재명 대표를 겨냥했다. 하지만 이 대표는 딴청을 피운다. "환골탈태 과정의 진통"이라거나 "시스템에 따라 경쟁력 있는 후보를 골라내고 있다"고 말했다. 환골탈태? 개악이나 무리수를 환골탈태란 단어로 치환할 순 없다. 경쟁력? KBS·한국리서치의 서울 동작을 여론조사에선 이수진 의원이 전략공천설이 나도는 추미애보다 경쟁력이 높았다. 임종석 컷오프는 이 대표의 당내 경쟁자를 솎아내려는 의도로 비친다.공천 전횡이나 농단은 예외 없이 선거 폭망으로 이어졌다. '진박 감별사' '옥쇄 들고 나르샤' 소동으로 리더십이 붕괴됐던 2016년 새누리당의 예상 밖 패배, 황교안 대표의 막장 공천과 공천관리위원회의 고무줄 잣대에서 비롯된 2020년 자유한국당의 수도권 참패를 반추해본다.위기십결(圍棋十訣)은 당나라 현종 때 바둑 고수 왕적신이 정리한 열 가지 바둑 요결이다. 위기십결의 다섯 번째 계명이 사소취대(捨小就大·작은 것은 버리고 큰 것을 취하라). 이재명의 친정체제를 위한 공천 무리수는 '사대취소'다. 국민의힘보다 앞서가던 민주당 지지율이 역전당하고 정권심판론도 약화했다. "이 대표가 당을 친위대로 꾸리려다 더 많은 걸 잃을 수 있다."(이준한 인천대 교수).위기십결의 동수상응(動須相應·돌이 움직일 때는 주위의 돌과 호응해야 한다)은 다른 돌과의 연관성을 강조한 계율이다. 정당 공천도 마찬가지다. 민심과 호응하고 후보와 호응해야 하는데 민주당은 그러지 못했다. 어렵사리 '이재명 당'을 만들어봐야 총선 폭망이면 '말짱 도루묵'이다. 이재명의 대선 가도가 붕괴됨은 물론이다. 공천 불공정 시비를 의뭉스러운 말로 눙칠 때가 아니다. 행동으로 보여야 한다. 공관위에 전권을 주고 이 대표는 2선으로 물러나는 게 옳다. 아니면 '김부겸 비대위' 체제로 가든가. 총선 표심을 얻을 막다른 외통수다.논설위원
[자유성] 이순신 장군의 어록
역경과 풍파를 이겨내고 개천의 미꾸라지가 용(龍)이 되는 비법이 있다. 충무공 이순신 장군이 군령을 내리던 여수 고소대 비탈길에 새긴 국보 제76호 서간첩 어록의 11가지 생활신조를 실천하는 것이다. 몇 가지 어록을 추려보면 △집안이 나쁘다고 탓하지 마라(나는 몰락한 가문에서 태어나 가난 때문에 외갓집에서 자랐다) △머리가 나쁘다고 말하지 마라(첫 시험에서 낙방하고 서른둘의 늦은 나이에 과거에 급제했다) △좋은 직위가 아니라고 불평하지 말라(14년 동안 변방 오지의 말단 수비 장교로 돌았다) △윗사람의 지시라 어쩔 수 없다고 말하지 말라(불의한 직속 상관과 불화로 수차례 파면과 불이익을 받았다) △기회가 주어지지 않는다고 불평하지 말라(적군의 침입으로 나라가 위태로우면서 마흔일곱에 제독이 됐다) △조직의 지원이 없다고 실망하지 마라(스스로 논밭을 갈아 군(軍) 자금을 만들어 스물세 번 싸워 모두 이겼다) △윗사람이 알아주지 않는다고 불만을 품지 말라(끊임없는 임금의 오해와 의심으로 모든 공을 뺏기고 옥살이를 했다) △자본이 없다고 절망하지 말라(열두 척의 낡은 배로 133척의 적을 막았다)이다.옛 선현들은 파란만장 인생 역정 끝에 안빈낙도(安貧樂道)를 맞는다고 했다. 500년이 지나도록 변함이 없는 충무공의 생활신조를 가슴에 품고 죽기 살기로 노력하면 승천할 수 있다. 우리 사회에서 개천에서 용이 나는 일은 하늘의 별 따기 정도로 어려운 것은 아닌 만큼 스스로 만들어야 한다. 어렵고 힘든 시기에 굴하지 않고 자기역량을 마음껏 펼쳐 개천에서 용이 되는 살맛 나는 세상을 만들어가자. 개천 미꾸라지가 용이 되는 그날까지. 백종현 중부지역본부 부장
[영남시론] 누가 리스크인가
22대 국회의원을 뽑는 선거가 40여 일 앞으로 다가왔다. 국민의힘과 더불어민주당의 공천 작업도 마무리에 한창이다. '비명횡사, 친명횡재'. 민주당 공천의 후폭풍은 요란하다. 내부의 자중지란은 목불인견이다. 친명 인사 중심의 불공정 사천(私薦) 논란이 거세고 공천에서 배제된 비(非)명계 의원들은 탈당 대열에 줄을 섰다. 현역 평가 및 여론조사 기관 선정에 공정성 시비가 불거지고 비명계가 경선에서 불리한 하위 20% 안에 포함된 것으로 드러나면서 공천 시스템에 대한 불신도 커지고 있다. 진영은 사분오열되고 당은 쪼개질 위기까지 왔지만, 민주당은 무신경하다. 객관적이고 뚜렷한 표심 이동에도 관심이 없는 듯하다. 윤석열 대통령의 낮은 지지율만 믿고 총선에서 이길 것이라 철석같이 믿는다. 공천을 통해 보여주려는 민주당의 비전은 무엇인가. 지난달까지만 해도 이재명 대표는 '151석 다수당'이 민주당의 총선 목표라고 했다. 그 목표는 여전히 유효한가. 당의 색깔을 확실한 '이재명당(黨)'으로 바꾸는 게 우선 순위는 아닌가. 지금의 공천 파동이 불러올 나비효과를 민주당은 알지 못하는 듯하다. '현역 불패, 친윤 불패'. 국민의힘은 한동훈 비상대책위원장이 내세운 시스템 공천을 통한 잡음 없는 공천을 자랑한다. 공천은 새로운 인재를 영입하고 부적절한 인물을 탈락시켜 당이 앞으로 무엇을 어떻게 하겠다고 유권자에게 후보를 통해 제시하는 과정이다. 시스템 공천이 필요한 이유도 유권자들이 원하는 국회의원 후보를 내세우기 위해서다. 21대 국회 4년에 대한 유권자 평가는 냉혹하다. 현역 의원에 대한 교체 요구가 유례없이 높다. 한국갤럽의 조사에 따르면 더불어민주당 지지자의 60%, 국민의힘 지지자의 53%가 현역 의원이 아닌 다른 사람이 당선되길 원했다. 나이, 지역, 지지 정당, 정치 성향과 상관없이 대다수 유권자가 현역 교체를 원하고 있다. 하지만 현재까지 여당 지역구 의원 컷오프는 한 명도 없다. 경선에서도 현역 의원은 거의 승리하고 있다. 공천룰은 현역에게 유리하고 신인이 새롭게 등장할 여지는 많지 않다. 여당 공천의 현역 교체율은 역대 최저 수준이 될 것으로 보인다. 21대에는 현역 45%가 공천을 받지 못했다. 친윤 주류를 포함한 중진과 현역 의원 대부분이 살아남으면서, 희생도 혁신도 없는 무감동 공천이 되어버렸다. 더불어 변화와 책임도 함께 사라졌다. '오로지 잡음 없는 조용한 공천'의 배경엔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에 대한 특검법과 대장동 50억 클럽 의혹 특검법 등 이른바 쌍특검법의 재표결이 있다. 국회는 오늘 본회의를 열고 앞서 윤석열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한 쌍특검법 재표결에 나설 예정이었다. 본회의에서 이탈표가 발생하는 사태를 우려해 현역 의원들의 불만을 최소화하는 것을 공천 우선 목표로 삼은 것이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김건희 여사 방탄용 공천'이라는 말이 괜히 있는 것은 아니다.유권자는 안중에도 없고 오직 각자의 밥그릇만 챙기는데 온갖 꼼수를 동원하는 저들을 보고 있자니, 정치는 무엇이며 민주주의란 또 무엇인가라는 질문만 회의적으로 떠올리게 된다. 결국엔 유권자의 몫일 것이다. 꼼꼼하게 후보를 검증하고 정밀하게 정책을 비교하여 표로 심판하는 것. 난장판이 된 정치판을 넋 놓고 바라볼 일이 아니다. 이은경 (한국스토리텔링 연구원장)이은경 (한국스토리텔링 연구원장)
[영남시론] 미래 포항의 운명을 짊어져야 할 '포씨 3형제'
최근 포항에서는 김성근 포스텍 총장의 '포씨삼형제론(浦氏三兄弟論)'이 화제가 되고 있다. 그는 지난해 말 '포항의 미래'라는 주제로 개최된 한 포럼에서 이 이야기를 처음 꺼냈다. 이후 지역사회에서 공감이 확산됐고 포스코그룹의 새 회장이 내정된 뒤 더욱 설득력을 얻으면서 자주 회자되고 있다. '포씨삼형제'는 '포항시'를 비롯해 '포스코(포항제철)'와 '포스텍(포항공과대학)'을 가리킨다. 김 총장은 포항에는 '포항시' '포스코' '포스텍'이라는 삼 형제가 살고 있으며, 장남은 1949년 시(市)로 승격된 포항시, 둘째는 포스코(1968년 창립) 그리고 막내는 포스텍(1986년 설립)이라 칭했다. 큰 형님인 '포항시'는 시민들의 삶과 먹거리를 책임지고 있다. 또 둘째인 '포스코'는 돈을 벌어서 지역에 기여하는 글로벌기업 역할을 하고 있으며 '포스텍'은 두 형의 배려 속에서 성장한 국내 '빅5' 대학으로 포씨 가문의 미래를 책임지는 막중한 책임감을 갖고 성장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의 '포씨삼형제론'은 삼 형제가 힘을 합쳐야 포항의 미래를 담보할 수 있다는 현실을 명쾌하게 표현하고 있다. 너무나 간결하고 함축적이어서 이의를 제기할 포항사람은 없을 것 같다. 인구가 50만명 아래로 떨어져 위기를 맞고 있는 포항의 재도약을 실현할 수 있는 주체가 이들 삼 형제라는 것이다. 김 총장은 삼 형제가 포항의 부흥뿐 아니라 지방붕괴 또는 지방소멸의 저지선 역할을 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6·25전쟁 당시 포항이 낙동강 방어선의 최후 보루 역할을 한 역사적 사실이 소환된다.지난해 7월 '2차전지 특화단지'에 선정된 포항은 요즘 '철강도시+2차전지도시'로 탈바꿈하면서 '제2의 영일만 기적'을 꿈꾸고 있다. 실제로 에코프로 등 지난해 7조4억원 규모의 역대 최고 투자유치 실적을 일궈내면서 기대에 한껏 부응하고 있다. 지금은 포스텍 의대 설립에 사활을 걸고 있다. 하지만 줄어드는 인구가 제일 큰 걱정거리로 다가오고 있다. 둘째 형인 포스코는 2022년 태풍 힌남노 침수피해를 성공적으로 복구했지만 중국발 철강제품 공급과잉과 국내 건설·부동산 경기 침체 등으로 경영환경이 녹록지 않다. 신사업으로 추진 중인 2차전지도 전기차 수요 둔화로 변동성이 커지고 있다. 재계 순위 5인 포스코그룹은 삼성·현대·LG·SK 등의 4대 그룹과 달리 본사를 포항에 두고 있지만 이런저런 이유로 지역사회와 다소 불편한 관계에 있다. 포스코에서 잔뼈가 굵은 전직 포스코 사장이 새 회장으로 내정된 만큼 그에게는 하루빨리 맏형과 상생을 도모해야 하는 과제가 주어져 있다. 막내인 포스텍은 최근 언론의 스포트라이트를 받고 있다. 향후 10년간 1조2천억원에 이르는 투자계획이 발표됐기 때문이다. 이는 국내 대학 역사상 최대 규모이며 매년 1천200억원을 투자하겠다는 의지를 공개적으로 밝힌 것이다. 국내외 석학을 초빙하고 연구환경을 대폭 개선해 세계적 대학으로 키우겠다는 것이 목표다. 제2의 건학 프로젝트를 추진하겠다는 다짐이기도 하다. 김 총장의 각오는 남다르다. 그는 "이 돈을 받고 망치면 대역죄인이 된다"는 말로 비장함을 표현했다. 포항제철소 건립 당시 '실패하면 영일만에 몸을 던지겠다'던 박태준 포스코그룹 창업자의 우향우(右向右) 정신이 떠오르는 대목이다. '포씨삼형제'는 화려하고 활기찼던 시절의 영광을 다시금 누리고 싶은 포항시민들의 염원에 반드시 화답할 수 있도록 명심해야 한다. 마창성 동부지역본부장마창성 동부지역본부장
[동대구로에서] "저도 동생을 갖고 싶어요"
평범한 소시민이었던 선친은 약주만 드시면 자랑 삼아 하시던 말씀이 있었다.'딸·아들 구별 말고 둘만 낳아 잘 기르자'라는 정부의 인구정책의 선구자라는 것이다. 은근히 자식 욕심 있으셨지만 슬하에 1녀1남만 둔 것을 두고 '나라보다 먼저 가족계획을 실천했다'는 자기 위안을 하신 것이다.가족계획의 필요성이 처음 제기됐던 1960년대 인구 위기는 지금과는 반대 상황이었다. GNP 196위에 불과했던 당시 한국의 합계출산율은 6.2명이었다. 전쟁 이후 폐허 상태에서의 인구증가는 생존과 직결된 문제였다. 오죽했으면 당시 가족계획의 첫 표어가 '덮어놓고 낳다 보면 거지꼴을 못 면한다'라는 자극적인 문구였을까. 가족계획사업을 시작한 지 불과 20여 년 만에 출산율은 2.83명으로 떨어졌다. 또 2000년까지로 예정됐던 '인구증가율 1%대' 목표를 1988년에 조기 달성했으니 이 정책은 대성공을 거둔 셈이다. 하지만 정부 정책의 큰 성공은 정책 전환의 적기(適期)를 놓치는 결과를 낳았다. '좁은 국토에 많은 인구'라는 유통기한 지난 고정관념에 발목 잡혀 급변하는 상황을 인식 하지 못한 것이다.지난해 합계 출산율이 0.7명으로 떨어졌다. 국가 소멸 이야기까지 나올 정도로 공포스러운 수치다. 인구 폭발을 막았다고 샴페인을 터트리기도 전에 역풍을 맞고 있는 것이다. "저도 동생을 갖고 싶어요"라는 표어가 더 이상 우스갯소리가 아니게 됐다.이런 상황을 보는 외부의 눈길도 우려의 연속이다. 지난해 말 뉴욕타임스는 한국의 인구 감소가 14세기 유럽 인구의 절반 가까이 소멸시켰던 흑사병을 능가할 것이라 우려한 '한국이 사라지는가(disappearing)?' 칼럼을 게재했다. 또 미국의 한 대학교수는 공중파 방송에 나와 대한민국의 합계 출산율을 두고 "대한민국 완전히 망했네요, 와! 그 정도로 낮은 수치의 출산율은 들어본 적도 없어요"라는 반응을 보였다. 물론 이 교수의 반응에 더 놀란 건 우리였다.전문가라기보다 인플루언서에 가깝다는 평가를 받고 있긴 하지만 테슬라 CEO 일론 머스크도 한국의 저출산 추세가 계속되면 한 세대가 지나면서 매번 인구가 반 토막 날 것이라고 경고하기도 했다. 이처럼 인구 문제는 중장기적으로 대한민국의 존립을 좌우할 가장 중요한 변수로 떠올랐다. 한 나라의 국력은 경제력에서 나오고, 경제력은 일정 규모의 인구가 뒷받침이 돼야 가능하기 때문이다.헝가리에서 4명 이상의 자녀를 가진 사람은 평생 소득세를 면제해 준다. 이탈리아는 2명 이상의 자녀를 낳으면 세금을 모두 면제해 주는 방안을 심각하게 검토 중이다.우리나라에서 이런 혁신이 가능할까. 대답은 경북의 저출산 대책에서 찾을 수 있을 것 같다. 완전 돌봄과 안심 주거, 일·생활 균형, 양성평등을 핵심으로 하는 정책을 내놨다. 육아와 돌봄 부담을 줄이고 아이와 부모가 함께하는 시간을 늘려야 한다는 것이다. 결국 출산율을 올리기 위해서 삶에 대한 근본적인 인식 변화가 필요하다. 결혼과 출산 이후에도 자신의 행복을 추구할 수 있는 사회적 환경과 시스템이 필요하다는 인식을 공유해야 한다. 이철우 경북도지사가 꺼내든 마을 단위 공동체 육아와 24시간 돌봄이 혁신적인 이유다. 홍석천 경북부장홍석천 경북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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