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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성] 대학통합
학령인구 감소로 문을 닫는 초중등학교가 늘어난다. 대학도 신입생의 급격한 감소로 구조조정이나 폐교로 치닫는 경우가 흔하다. 특히 지방의 대학이나 전문대학의 생존환경은 심각하다. 입학 철이 되면 대학교수들은 고등학교로 달려가 신입생 유치에 온갖 능력을 동원해야 한다. 신입생 충원율이 대학 사활의 척도가 되기 때문이다.최근 숭실대와 전문대학인 문경대가 지역산업 맞춤형 인재양성이라는 캐치프레이즈를 내걸고 손을 잡았다. 두 대학이 통합을 향한 행보를 시작했다. 통합 제안은 대학 당사자가 아니라 의외로 신현국 문경시장이었다. 서울 밖의 캠퍼스가 없는 숭실대는 문경시가 제시한 통합안에서 발전 방향을 찾았고, 상황이 더 어려운 문경대는 생존을 위해 피할 수 없는 선택이었다. 시도야 어쨌든 두 대학의 통합은 상생의 효과를 거둘 것으로 보인다. 문경시 자료에 따르면 2025년까지 숭실대와 문경대를 통합해 의료·건강·스포츠 분야를 특성화하고 K-콘텐츠 등을 접목한 글로벌 캠퍼스를 운영할 계획이다. 이면의 뜻을 읽자면 의과대학이 없는 경북 북부지역에 의료계열 학과를 신설하고 국군체육부대 등과 연계한 스포츠와 건강 분야를 강화하겠다는 말이다. 대학의 통합도 쉽지 않고 의과대학의 신설은 더욱더 어렵겠지만 불가능한 이야기는 아니다. 문경시와 숭실대는 통합의 시너지와 다양한 인맥, 지역공동체의 열렬한 지원을 바탕으로 계획을 추진할 작정이다. 인구소멸 위기에서 살아남으려는 문경시민들의 비장한 각오는 응원군이 될 것이다. 남정현 중부지역본부 부장
[박규완 칼럼] '무능 리더십'의 장기집권
#1 군왕의 리더십을 얘기할 때 으레 등장하는 인물이 세종과 정조다. 또 고려 하면 창업자인 왕건과 광종, 공민왕 정도만 인구에 회자되지만, 11대 왕 문종은 '고려의 세종대왕'이란 수식(修飾)이 아깝지 않은 현군이다. 양전보수법을 제정해 전답의 세율을 정하고 녹봉제를 시행하는 등 내치 기반을 다졌으며, 대외적으론 조정의 진면목을 발휘했다. 북변에 침입한 동여진을 토벌한 후엔 회유책으로 평정했다. 송나라와 친선을 도모하고 선진문화를 수입해 당나라 현종 시대에 버금가는 고려의 문화 황금기를 열었다. 이를테면 '조율의 리더십'이다. 고려사는 "문종 재위 땐 창고에 곡식이 쌓였고 집집마다 살림이 넉넉하였으며 나라는 부유했다"고 기술하고 있다. 학문을 좋아하고 서예에 능했으니 문종(文宗)이란 묘호가 절묘하다. 대각국사 의천이 문종의 아들이다.#2 '경영의 신'이란 타이틀이 어울리는 경영자, 리더십의 특장(特長)을 고루 갖춘 지도자라면 잭 웰치를 빼놓을 수 없다. 잭 웰치 리더십엔 속도, 혁신, 단순함, 자신감 등이 공식처럼 따라붙는다. 강력한 구조조정으로 침몰 직전의 거함 GE(제너럴 일렉트릭)를 살려냈으며 4천% 성장이라는 기적을 일궈냈다. 왜 글로벌 기업과 대학들이 잭 웰치의 '경영 코드'와 '혁신 기법'을 신봉하고 연구했을까.잭 웰치가 '위기극복 리더십'의 표상이었다면 이병철 삼성 창업자의 리더십 요체는 '미래 통찰'이다. 1983년 이병철의 반도체 사업 진출 선언은 한국 기업 100년사의 퀀텀 점프 순간이었다. 2020년 전경련이 실시한 국민여론조사에서 6·25 전쟁 발발 후 70년간 우리 산업사의 최대 업적으로 삼성의 반도체사업 진출(64.2%)을 꼽았다. 미래학자 토머스 프레이는 "지혜로운 지도자는 미래를 읽어 현재의 결정을 내린다"고 말했다. 과대망상증이란 비아냥을 들어가며 반도체 투자를 결단한 이병철의 경영철학이 바로 '미래 읽기'다. #3 경질된 클린스만의 리더십은 아예 '색깔'이 없다. '무전술 방임' 축구였으니 말이다. 무능, 불성실, 무책임의 조합이라고나 할까. 한데 클린스만 선임을 주도한 정몽규 대한축구협회장은 계속 자리를 지킨다? 자가당착이며 꼬리 자르기 아닌가. 사퇴는커녕 내년 초 4연임에 도전할 거란 말이 나돈다. 불감청 고소원? 정몽규 회장의 리더십은 클린스만을 빼닮았다. 무능, 무책임에 독선과 불통을 더했다. 기자들의 질문을 회피하고, 쓴소리하는 김판곤을 국가대표감독선임위원장 자리에서 밀어냈다. 김판곤 전 위원장의 말은 구구절절이 옳다. "대표팀 감독 선임보다 중요한 게 운영과 관리다. 훈련과 경기에 대한 리포트를 받아 피드백을 줘야 한다. 시스템이 작동해야 한다." 정 회장은 시스템을 무너뜨렸다. 정몽규 체제 11년간 축구협회는 행정·경영·외교에서 뒷걸음쳤다.무능한 지도자의 장기집권은 최악의 시나리오다. 우리가 대통령 5년 단임을 헌법으로 못 박은 이유이기도 하다. 세종이나 고려 문종 치세의 5년은 너무 짧겠지만 연산군 치하라면 5년이 길디길다. 3연임만으로도 정몽규 회장의 분에 넘친다. 영화 '친구'의 대사가 불현듯 떠오른다. "고마 해라. 마이 무따 아이가".논설위원논설위원
[영남타워] 2천명 증원 근거 밝혀라
전공의와 의대생, 의사들은 의대 정원 증원을 무작정 반대하는 게 아니라고 한다. 증원은 하되 속도를 조절해 달라는 것이다. 현재 3천58명에서 65%(2천명)를 한꺼번에 늘린다면 여러 부작용이 우려된다는 것이다. 한 의대생은 "5천원인 짜장면값을 갑자기 8천원으로 올리면 어느 누가 납득하겠느냐"고 했다.정부가 10년 후 의사 1만명 안팎이 부족할 것이라며 매년 2천명씩 늘려야 하는 이유로 공언하고 있지만, 그 근거는 모호하다. 정부는 한국개발연구원(KDI·2021년), 신영석 고려대 교수(보건대학원·2019년), 홍윤철 서울대 교수(예방의학과·2020년)의 연구를 근거로 삼았다고 한다. 하지만 이들 연구 보고서 어디에도 2035년에 의사 1만명가량이 부족하니 내년부터 5년간 2천명씩 의대생을 증원해야 한다고 못 박은 내용은 없다. 정부의 누군가가 자의적으로 해석해 2천명을 도출한 게 아니냐는 의구심이 든다. 이들 보고서는 '소아과' '산부인과' 등 기피 과목에 대한 유인책과 농어촌 등 의료 인프라가 부족한 지역의 공공의료 확충 방안을 핵심으로 다뤘다. 서울대 홍 교수도 21일 뉴스 채널에 출연해 "지역 간 의료 불균형에 관한 보고서인데, 빠져 있어 아쉽다"고 했다.무엇보다 정부 스스로도 얘기하는 27년 만의 의대 증원이라는 국가적으로 중차대한 정책을 펴면서 연구용역 하나 수행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기껏 내세운 게 수년 전 KDI와 대학 교수진이 발표한 연구자료뿐이다. 이마저도 저자로부터 의대 증원의 근거로 삼을 수 있는지 불명확하다는 소리를 듣고 있다.그런데도 정부는 대통령까지 나서 "2천명 증원은 최소한의 확충 규모"라며 물러설 뜻이 없음을 천명했다. 대통령은 보고받는 입장이어서 그렇다 치고, 보건복지부 실무진은 어떤 근거로 2천명으로 결정했는지 국민 앞에 소상히 설명해야 한다.의대 교육도 문제다. 상식적으로 생각해도 기존 정원의 65%를 단번에 증원하는데 교육에 차질이 없다고 하는 말을 곧이곧대로 믿을 수 있나. 정부는 1983년 서울대 의대 한 학년 정원이 260명(현재 135명)이었다며 의학교육의 질이 저하될 것이라는 우려를 일축했다. 40년 전 교육 현장을 지금과 동일시하는 발상 자체가 난센스다. 1980년대엔 초등학교(당시엔 국민학교) 교실도 60명 넘는 학생이 수업을 들었다. 현재는 평균 21.5명이다. 30명만 넘어도 '콩나물시루'에 비유한다. 교육부는 그동안 학급당 학생 수가 OECD 평균보다 높다며 지속적으로 이를 줄여왔다. 다 교육의 질을 높이기 위한 정책이었다. 그런데 의대 증원에 대한 명분으로 80년대 대학 정원을 거론하고 있으니 '쯧쯧'이란 소리가 절로 나올 수밖에.의료계도 양보할 것은 양보해야 한다. 국민의 건강과 생명을 볼모로 집단행동을 하는 건 절대 용납될 수 없다. '정부는 의사를 이길 수 없다'는 소리는 오만의 극치다. 그렇다면 '의사가 국민을 이길 수 있나'. '강 대 강' 국면에 기름만 붓는 격일 뿐이다.대한의사협회, 병원협회 등 기성 의사들이 나서 정부와 협의 테이블에서 마주해야 한다. 350명 증원 카드로는 국민을 설득할 수 없다. 이대로 가면 의료계도 내상이 불가피하다. 젊은 의사들을 다치게 할 순 없지 않나. 진식 사회부장진식 사회부장
[동대구로에서] 히포크라테스 가르침 외면한 정부와 의사
"나는 환자의 건강과 생명을 최우선으로 고려할 것이다."하얀 가운 입고 의사로서 첫발을 내디딜 때 다짐하는 히포크라테스 선서 중 일부다. 대다수 의사는 희생·봉사·장인정신이 담긴 이 선서를 읽던 그 날의 뜨거운 가슴을 기억한다. 히포크라테스는 고대 그리스가 가장 융성했던 페리클레스 시대 의사다. 또 '의학의 아버지'라고도 불린다. 왜 그럴까. 이유는 단 하나. 그가 나타난 이후 사람들이 질병을 대하는 태도가 달라졌기 때문이다. 당시 그리스인은 질병에 대해 신이 내린 벌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병을 치료하려면 신전에서 반드시 기도해야 한다고 믿었다. 한마디로 신전이 병원이었던 셈이다. 지금 생각하면 어처구니가 없다. 히포크라테스는 질병은 신의 노여움이 아니라, 인체 내부와 외부 환경이 변화해 발생하는 것으로 이를 올바르게 하면 병도 낫게 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질병의 생각 자체를 완전히 바꾼 것이다. 만약 그가 아니었다면 어쩌면 우리는 여전히 신에게 병을 낫게 해달라고 기도하고 있었을지도 모른다.그가 남긴 의학적 지식은 후대에 구전과 저술로 전해졌다. 책에는 질병을 증상에 따라 자세히 구분한 것뿐만 아니라 각 질병의 치료 방법 및 의료 윤리의 기초 등이 담겨 있어 오늘날에도 높게 평가되고 있다. 그러나 이 책은 그가 쓴 게 아니다. 책은 히포크라테스가 남긴 지식에 당대 알려진 모든 의학 관련 지식을 덧붙여 만들어낸 것이다. 그는 자신의 연구뿐만 아니라 잘못된 진료 결과까지 모두 남겨 후세에 큰 도움을 줬다. 자신의 잘못을 숨기지 않고 기록한다는 것은 참 어려운 일인데 말이다.요즘 의과대학 정원 증원 문제로 나라가 시끄럽다. 사실 의대 정원 증원은 윤석열 정부 이전부터 검토하다 의료계 반발로 무산된 정책이다. 윤 대통령은 필수의료진 부족 사태를 해결할 방법의 최우선 방안으로 의대 정원을 연간 2천명씩 10년 동안 총 2만명 늘리겠다는 해법을 내놨다. 최근 '응급실 뺑뺑이'와 '소아청소년과 개점 질주' 등 직·간접적으로 경험한 국민 상당수가 필수의료진 확충 필요성을 그 어느 때보다 공감하는 여론도 뒷받침됐다.하지만 일선 의사의 반발은 달라지지 않았다. 이들은 의대 정원 증원이 필수 의료진 확충의 근본적 해결책이 아니라고 판단한다. 아주 극미한 낙수효과를 기대할 수는 있겠지만 되레 인기 진료과목 의료진 경쟁만 부추기고, 의대 교육환경은 악화하고, 건강보험 재정만 더 축나고, 이공계 인재를 의대로 흡수하는 역효과가 더 크다는 게 논리다. 사실 큰 틀에선 양쪽 말이 틀린 말은 아니다. 단지 풀어가는 과정이 아쉬울 뿐이다. 소통과 설득의 기본은 '경청'이다. 상대 생각과 우려·불안을 먼저 듣고 이해한 뒤, 설명하고 조율하면서 납득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근데 현 정부 소통 방식은 주먹구구식에 가깝다. 의사들은 환자의 고통과 불편을 덜어내며 질병을 치료하고 생명의 소중함과 고귀함을 실천하는 도덕적 의무가 있다. 반면 의료 기관을 경영하고 유지하고자 이익을 산출하고 비용을 절감하며 사업체를 운영하는 경영인의 모습도 있다. 한 손에는 히포크라테스 선서를 하고, 한 손으로는 계산기를 두드리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현실이다. 이제라도 정부는 의사들이 히포크라테스 선서를 되새길 수 있도록 소통하고, 의사들도 좀 더 세련된 방법으로 접근하는 게 어떨까 싶다. 그게 진정으로 국민을 위한 길이다.강승규 사회부 차장강승규 사회부 차장
[영남시론] 구미 돋우는 구미아시아육상선수권대회
"지금까지 본 국제스포츠대회 중 대구가 가장 뛰어났다." "최근 5차례 열린 세계육상대회 개최도시 중 대구가 가장 준비가 잘됐다." 자크 로게 전 IOC(국제올림픽위원회) 위원장과 라민 디악 전 IAAF(국제육상경기연맹) 회장이 각각 2011대구세계육상선수권대회가 끝난 후 대구시를 치켜세운 말이다. 당시 옐레나 이신바예바, 우사인 볼트 같은 세계적 육상스타의 참가도 관심을 끌었지만, 세계육상대회 사상 첫 선수촌을 제공한 데다 서포터스와 자원봉사자 등 적극적인 시민참여 덕분에 내외신 기자로부터 대구대회가 성공적이었다는 평가를 받았다. 요즘도 대구스타디움을 지날 때면 우사인 볼트의 시그니처 포즈를 형상화한 조형물과 대회 마스코트인 살비(삽살개)를 보면서 당시를 회상하곤 한다.재작년 12월24일 경북 구미시가 인구가 10배나 많은 중국 푸젠성 최대도시 샤먼을 제치고 제26회 아시아육상선수권대회를 유치해 47억 아시아인을 놀라게 했다. 한국에선 1975년 서울, 2005년 인천에 이어 기초자치단체로는 구미가 처음으로 대회를 치르게 됐다. 지금껏 이 대회를 네 차례나 가져간 일본도 도쿄, 후쿠오카, 고베 등 대도시에서 개최했고, 중국도 베이징, 우한에서 그리고 뉴델리, 도하, 방콕, 자카르타, 쿠알라룸푸르 등 이름만 들어도 아시아 각 나라를 대표하는 메가시티에서 열렸다. 대한민국 중소도시 구미가 유치에 성공한 건 다윗이 골리앗을 이긴 것과 진배없다.구미시는 내년 5월27일부터 31일까지 아시아 45개국, 45개 종목에 1천200여 명의 선수단이 참가할 것으로 예상하고 지난달 24일 조직위원회를 꾸렸다. 이에 앞서 오는 5월10일부터 13일까지 제62회 경북도민체전이, 8월25일부터 31일까지 제32회 한·중·일 주니어종합경기대회가 구미에서 열린다. 이는 김장호 구미시장의 열정과 추진력에다 산업도시에서 문화·체육도시로 거듭나려는 구미시민의 간절한 염원이 이룩해 낸 쾌거다. 대구가 2003하계유니버시아드대회와 세계육상선수권대회를 성공적으로 치러내면서 도시브랜드 가치를 올렸듯이 구미도 아시아육상선수권대회를 통해 도약할 것이다. 구미시는 내년 대회의 모토를 기존 시설 인프라를 활용한 경제대회, 스포츠로 하나 되는 화합대회, 구미의 문화를 아시아에 알리는 문화대회, 모두가 즐거운 안전대회로 잡았다. 이에 덧붙여 완벽한 경기시설과 매끄러운 경기 진행, 매너 있는 관중과 꽉 찬 관중석, 깨끗하고 아름다운 도시경관, 쾌적하고 편안한 숙소, 따스한 자원봉사와 적극적인 시민참여, 풍성한 문화행사와 관광, 친절하고 위생적인 식당, 독특하고 기발한 홍보 전략 수립 등이 필요하다.대구세계육상선수권대회는 아쉽게도 한국 선수 가운데 한 명도 메달을 획득하지 못했지만, 구미대회는 메달을 딸 가능성이 높다. 지난해 열린 중국 항저우아시안게임에서 한국은 3개(은1, 동2)의 메달을 가져왔다. '스마일 점퍼' 우상혁과 비웨사 다니엘 가사마, 나마디 조엘진, 배건율 등은 대한민국 남자 육상의 유망주이며 한국 장대높이뛰기 간판 진민섭도 기대주다. 최근 전성기를 맞은 한국수영처럼 한국육상도 구미아시아육상선수권대회를 발판 삼아 세계로 발돋움하기를 기대한다. 박진관 중부지역본부장박진관 중부지역본부장
[자유성] 진상 시산제
지난 일요일 오전 10시쯤 상주시 중동면 회상나루관광지 낙동강 변 주차장에 대구 번호판을 붙인 대형버스와 승합차가 도착했다. 버스 앞 머리 전광판에는 'OO산악회'라는 글자가 반짝이고 있었다. 버스에서 등산복 차림을 한 50~70대 수십 명이 나와 트렁크에서 접이식 테이블과 상자 등 여러 물건을 내리더니 강변에 제단을 꾸렸다. 'OO산악회 시산제'라는 현수막을 걸고 제단 양 옆에는 태극기와 산악회 깃발을 세워놓았다. 7~8명은 옥색 두루마기와 건(巾)을 착용했다. 강물을 향한 시산제(始山祭)는 1시간 넘게 이어졌다. 회상나루 관광지 관리인들이 "관광지 주차장에서 이런 행위는 하면 안된다"고 안내했으나 "제만 지낼 것이니 양해해 달라"며 강행했다. 제(祭)가 끝나자 여러 개의 테이블에 술과 음식을 놓고 먹기 시작했다. 다시 관리인들이 제지하자 짐을 챙기더니 그곳으로부터 2.5㎞ 정도 떨어진 상주농협중동지점 앞 마당에서 다시 술판을 벌였다. 뿐만 아니다. 같은 날 상주시 사벌국면 경천대 관광지 주차장에서는 3개 산악회가 시차를 두고 시산제를 지낸 후 술판과 화투판을 벌였으며, 고성방가까지 이어졌다. 경천대 관리인들은 이들이 음식 찌꺼기를 함부로 버리고 토사물까지 남긴다고 불만을 나타냈다. 설날 이후 첫 휴일인 지난 주말부터가 시산제 시즌이다. 시산제는 한해의 안전산행을 기원하고 먼저 간 산우들을 추모하는 제사의식이다. 경건한 자세가 필수다. 산에는 한 발짝도 올라가지 않은 채 버스 옆에서 제사를 지내고 술판을 벌이는 행위는 진상 그 이상일 수 없다. 시산제는 시작부터 마무리까지 경건하게 진행돼야 한다. 이하수 중부지역본부 부장
[자유성] 500원 식당의 기적
2022년 8월 경남 창원시 진해구 한 사회적협동조합은 "학교 급식이 중단되는 여름과 겨울 방학 기간에 아이들이 굶지 않고 밥을 먹을 수 있도록 하겠다"라는 뜻으로 점심 한 끼라도 배부르게 먹을 수 있도록 500원 식당 운영을 시작했다. 애초 한 푼도 받지 않고 무료 급식을 생각했으나 아이들이 공짜 밥을 얻어먹는다는 생각에서 이용을 꺼릴 것을 우려해 500원을 받기로 했다. 매주 4일간 제공하는 식단은 일반 음식점에서 최소 6천500원 이상 부담해야 먹을 수 있는 가격으로 짰다. 식당 운영 초기에는 지자체에서 1천만원을 지원받았으나 어느 날 보조금이 사라지면서 문을 닫을 위기에 놓였다. 다행히 조합은 후원자 수소문 끝에 인근 신협의 도움으로 운영을 이어갔다. 이 같은 사연이 입소문으로 퍼지면서 후원 물품과 성금이 쏟아졌다. 어느 식육점 사장은 "아이들이 고기를 매우 좋아할 것 같다"며 돈가스용 고기를 무료로 제공했다. 기업체와 개인 후원자의 후원금은 5천만원을 훌쩍 넘겼다. 500원 식당 운영비 3년 치와 맞먹는 금액이다. 이곳을 찾는 아이들은 영양은 넘치면서 값이 싼 점심을 마음껏 먹을 수 있게 됐다. 아무런 거리낌 없이 500원을 내고 식당을 찾는 아이들의 표정도 한층 밝아졌다는 반가운 소리도 들린다. 아이들이 낸 밥값은 어려운 사회단체에 재기부해 기부 원칙의 선순환 구조를 만들었다. 참으로 다행스럽고 고마운 일이다. 유엔이 선진국으로 인정한 지 2년이 넘은 우리나라 아이들이 끼니를 걱정하는 것은 참으로 부끄럽다. 500원 맛집이라는 신선한 아이디어를 내고 실천한 의인(義人)에게 감사의 인사를 전한다. 백종현 중부지역본부 부장
[하프타임] 모두가 비슷한 것에 '올인'하는 사회
"인생을 살면서 누구의 눈치를 보랴. 인생을 이끌어 가는 것은 어느 누구도 아닌 나 자신이다."종교가 없는 기자는 몇몇 작가들의 책을 나름의 지침서처럼 끼고 다니며 한 번씩 꺼내 읽는다. 새해에 마음을 강하게 먹어야 할 땐 일본 작가 마루야마 겐지가 쓴 책을 읽는데, 그 책 가장 앞부분에 나온 문구다.겐지 선생은 사회의 이해관계에 지나치게 마음을 쓰는 '개인'들에 대해 안타까움을 표한다. 작가는 '득실'을 따지지 않는 인생이야말로 빛나는 인생이라 역설한다. 그런데 그런 인생이 쉽지만은 않으니 문제다. 쉽다면 책 속의 글이 되지도 않았겠지.이달 초 교육 담당으로 자리를 옮긴 후 가장 먼저 마주한 이슈는 바로 '의대 정원 증원'이다. 정확히는 의대 정원 확대가 입시 등 교육계 전반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취재를 해야 했다. 역시나 입시는 사회 변화에 정말 민감한 영역이었다. 정부가 2025학년도 대학 입시부터 의대 정원을 2천명 늘리겠다고 발표하자 다양한 관측과 전조 현상이 잇따랐다.당분간 의대 쏠림이 심화하고 이공계 이탈 현상이 발생할 수 있다는 분석이 교육 및 입시업계에서 나왔다. 이는 지방대에도 연쇄적으로 크고 작은 영향을 미칠 것으로 전망됐다. 의대 입시에 대한 높아진 관심은 곳곳에서 감지된다. 지역 한 입시학원에도 정부의 의대 정원 증원 발표 이후 의대 입시 관련 문의가 20~30%가량 증가한 것으로 알려졌다.그렇다면 왜 그토록 의대 진학을 희망하는 사람들이 많은 걸까. 모두가 적성 때문에 특정 학과나 직업을 희망하는 것이 아니라면, 그 배경에 다른 이유도 있을 터. 의대 입시에 관심이 있는 이들에게 질문을 던지니 여러 이유가 거론됐다. 그중 대구의 한 중학생 학부모가 한 답변이 인상 깊었다. "다른 쪽에서 희망을 찾을 수 없으니 모두 비슷한 것을 갈망한다." 그는 과거 IMF 사태 이후를 떠올려보라고 했다. 그때 많은 청년들이 교사, 공무원 등 안정된 직종에 몰려든 이유가 무엇이겠냐고. 학과 및 직업 선택은 사회 분위기와 가치관, 불안, 모순을 반영할 수밖에 없는 것이라고 했다. 그 학부모의 말대로, 1997년 발생한 IMF 사태는 남녀노소 많은 국민에게 직간접적인 영향을 미쳤다. IMF 외환위기 당시 기자는 어린 나이였지만, 사회 변화상이 트라우마처럼 기억 속에 남아있다. 갑자기 '꿈'이나 '희망' '적성' 같은 것이 사치스러운 단어가 됐다. 거대한 사회의 위기와 변화 앞에서 인간은 약하디 약한 존재였다. 개인은 온전히 한 개인으로만 행복할 수 없었다. 사람들은 조금이라도 더 안정적인 직업을 찾아 높은 경쟁률 속에 자신을 내던져야 했다. 그 강렬한 기억은 오랜 시간이 지난 지금까지도 우리의 의식과 무의식을 지배하고 있다고 본다. 그때 사회의 비정함을 목도하고 경쟁에 내몰린 사람들이 부모가 돼 아이를 낳아 기르고 있으니 말이다. 세상의 모든 일은 쉽게 일반화하기 힘들고, 또 그래서도 안 된다. 다만, 어떤 과열된 현상에 대한 진단과 치료, 변화에 대한 노력은 계속돼야 한다. 사람들이 다른 쪽에서 희망을 찾지 못해 모두가 비슷한 것에 '올인'하는 사회, 그건 개인의 잘못이 아니라 사회의 문제라고 생각한다. 그에 대한 원인 분석과 적절한 처방이 이뤄져야 한다. 그래야 자라나는 세대는 세상 눈치 좀 덜 보고, 진정 자신이 원하고 잘할 수 있는 공부와 직업을 선택할 수 있지 않겠나.노진실 사회부 차장노진실 사회부 차장
[박재일 칼럼] 나의 운동권 친구
대학 1학년때 우연찮게 들어간 동아리가 '갈무리'였는데 일종의 운동권 서클이었다. 1980년대 사회과학 서클이 대충 그랬지만, 처음 읽고 토론한 책이 '해방전후사의 인식'이었다. 이승만을 굉장히 뭉개고 좌파 운동가들의 역사성을 드러내는 책이었는데, 난 이승만이 그렇게 폄훼할 인물인가 하고 반문했던 기억이 있다. '8억인과의 대화'도 접했는데 대략 중국 공산혁명에 대한 호의적 로망을 그렸다 할까.30여 명의 학과 동기 중 진짜 데모하던 운동권 친구가 몇 있었다. 그중 A가 2학년 겨울방학에 같이 공부하자며 건넨 책이 생각난다. 일본 서적인데 친구는 원서를 그대로 읽었고, 난 번역본을 보는데 내용은 이렇다. 인류 발전사는 '원시공동체-농경사회-봉건사회-자본주의-공산주의'로 최종 귀결된다고 규정했다. 프롤레타리아 혁명은 그래서 정당하고 필연적이다.A는 그 엄혹한 군사정권 시절 이른바 '삐라'를 뿌리고 교정에 상주하던 경찰에 잡혀갔다. 1년여 감방에 있었다. 20대 초반에 감옥이라니. 그를 생각하면 지금도 아련하다. 졸업 무렵인가 교정에 나타난 그는 '사면복권장'을 들고 왔다. 난 그날 '부채의식' 같은 것에 사로잡혔다. 그로부터 십여 년이 흘렀을까. 어느 날 동기회를 했는데, 그에게 근황을 물었다. 그는 '감정평가사'가 됐다고 했다. 신기했다. 왜 자본주의 최첨병 직업을 택했냐고 하니 "나도 먹고살아야지" 하고 응답한 기억이 난다. 모임을 하면 나는 그의 옆에 앉기를 좋아한다. 그는 천문학이나 인문학까지 굉장히 박식하다. 들을 것이 많다. 얼마 전 모임에서는 마지막까지 남았는데, 비가 부슬부슬 내린 그날 택시를 타고 가면서 나를 중간인 역삼역에 내려줬다. 그는 모든 게 성숙해 있다.한동훈 국민의힘 비대위원장이 한국의 운동권 정치인들을 '이 나라의 진짜 기득권 카르텔'이라며 선전포고를 했다. 총선 제1호 공약이다. 운동권 출신은 국민의힘에도 있지만, 더불어민주당에 집중 포진해 있다. 160여 명의 민주당 의원 중 절반에 육박하는 70여 명이 운동권이다. 30대에 국회에 입성해 3선·5선의 다선의원도 수두룩하다. 국회 밖 외곽에 포진한 운동권 집단은 거대한 성전이 돼 있다.1970년대까지 고전적 운동권은 '절차적 민주화'에 집중했지만, 이후 갈수록 좌파 마르크시즘적 원론에 심취하고 친북 요소까지 가미했다. 미 제국주의 식민지론, 제3세계 종속이론에다 김일성 주체사상을 신봉한 부류까지 등장했다.운동권 사람들과 대화를 해보면 종종 벽을 느낀다. 친구 A처럼 이념을 넘어 천문학이든 인문학이든 시야를 넓힌 흔적이 없다. 유통기한이 지난 이념의 화법을 21세기 오늘에 들이민다고 할까. 그 순간 난감함이 엄습한다. 한동훈의 지적처럼 사골 우려먹는 전관예우를 떠올린다. 카를 포퍼나 막스 베버 책을 보면 한국 좌파 운동권의 지향점이 전체주의 성향에 접목됐다는 것을 쉽게 알 수 있다. 생업에 몰두하는 많은 국민들은 사실 그런 배경을 알기는 어렵다. 이승만 평전 영화가 이 시점에서 새삼 주목받는 배경일 게다.운동권은 청산될 수 있는 것일까? 난 청산이라기보다는 소멸이라 말하고 싶다. 한국의 치열했던 거리의 정치, 데모의 숱한 현장은 이미 역사 속으로 사라지고 있다. 일본의 적군파도, 프랑스의 학생운동도, 이란 총학생회의 인질극도 다 한때였다. 대한민국도 이제 그들을 떠나보낼 시대가 온 것 같다. 물리적 세월의 흐름을 거역할 정치집단은 없다. 지적 지평선을 넓힌 성숙한, 진짜 운동권 친구가 그립다.논설실장논설실장
[자유성] 촉법소년
지난해 10월 충남 논산에서 중학생 A군이 40대 여성을 성폭행한 사건이 있었다. A군은 퇴근하던 여성을 초등학교 교정으로 끌고 가 마구 때리고 성폭행했다. 그것도 모자라 여성 신체를 촬영하고 소변을 받아먹게 하는 등 엽기적인 행각까지 벌였다. 우발적 충동도 아니었다. 범행 장소를 물색하는 등 치밀하게 준비한 정황도 드러났다. 1심 법원은 "A군의 죄질이 극히 불량하다"면서도 미성년자라는 이유로 징역 장기 10년, 단기 5년을 선고했다. 피해자가 평생 안고 가야 할 상처에 비해 형량이 너무 가볍다는 여론이 높다. 그나마 피해자 입장에선 A군이 15세였다는 게 다행이다. 두 살만 어렸으면 촉법소년에 해당돼 더 경미한 처벌에 그쳤을 것이기 때문이다.촉법소년은 범죄를 저지른 만 10세 이상 14세 미만 청소년을 일컫는다. 소년법에 따라 사회봉사나 소년원 송치 등 보호 처분에 처한다. 형사 처벌을 안 받는 탓인지는 몰라도 촉법소년은 갈수록 늘고 있다. 경찰청 통계에 따르면 최근 5년간 촉법소년 수는 6만6천명에 달했다. 범죄 유형은 절도(49.5%), 폭력(24.5%)이 다수를 차지했지만 A군 같은 강간·추행(3.7%)도 적지 않았다. 특히 방화, 강도 등 과거에 드물던 강력범이 증가하고 있고, 살인범도 11명이나 됐다.촉법소년들 대부분은 자신이 처벌받지 않는다는 사실을 잘 안다. 대단한 특혜인양 떠벌리고 악용하기도 한다. 우리 사회의 인식 변화가 필요하다. 단지 나이가 조금 어리다고 흉악범조차 처벌하지 않는 건 정의가 아니다. 촉법소년 상한연령을 현실에 맞게 낮춰야 한다. 허석윤 논설위원
[월요칼럼] 지방시대?
윤석열 대통령은 '불통'이라는 평가를 받지만 민생토론회는 자주 가지는 편이다. 수도권에서만 열 차례 열었다. 그런데 앞으로는 비수도권을 돌며 민생토론회를 이어갈 것이라고 한다. 테마는 국정과제로 내세운 '지방시대'다. 윤 대통령의 첫 행선지는 부산이었다. 지난 13일 열린 11번째 민생토론회에서 윤 대통령은 부산시민이 반길 만한 선물 보따리를 풀었다. 산업은행 조속 이전을 비롯해 글로벌 허브도시 특별법 제정, 북항 재개발 등을 약속했다. 이를 두고 야당은 '총선용'이라고 비판하지만 어쨌건 윤 대통령이 '지방시대' 정책 행보를 이어가고 있으니 지방사람 입장에선 나쁠 게 없다. 과거 대통령들과 달리 뚜렷한 국정 어젠다가 없는 윤 대통령에게도 '지방시대'가 성공만 한다면 꽤 괜찮은 업적이 될 것이다.윤 대통령은 지역균형발전이 절실한 이유도 제대로 짚었다. 이날 윤 대통령은 "우리나라 면적이 일본의 4분의 1, 미국의 100분의 1인데 서울과 수도권 일부를 제외하면 그 좁은 땅마저 제대로 못 쓰고 있다. 이처럼 과도한 수도권 집중이 저출산의 원인이 되고 있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일자리-인재-생활 환경을 연계한 '지방시대 3대 민생패키지' 정책을 통해 합계출산율을 1.0으로 끌어올리겠다고 했다. 윤 대통령은 검사 시절 지방근무를 한 적은 있지만 서울에서 태어나고 자랐다. 서울 출신 첫 대통령이 수도권 집중 폐해를 거론한 것 자체가 고무적이긴 하다. 하지만 거기까지다. 수도권 집중에 대한 해법에 현실성이 결여돼 있다. 정부가 구현하려는 '지방시대' 청사진에 따르면 앞으로 지방은 '상전벽해' 수준으로 발전한다. 감격스럽긴 하지만 사실 큰 기대는 없다. 나랏돈을 얼마나 쏟아부어야 그게 가능하겠나. 백번 양보해서 설사 '지방시대'에 근접했다고 치자. 그러면 수도권 집중이 완화될까? 그래서 합계출산율이 쑥쑥 오를까? 지난달 윤 대통령은 "올해부터 본격적인 수도권 GTX(광역급행철도)시대를 열겠다"고 선언했다. 수도권에서 서울 도심까지 GTX를 촘촘히 연결해 30분대 출퇴근이 가능토록 하겠다는 것. 물론 극심한 교통난에 시달리는 수도권 주민들은 박수 칠 일이다. 하지만 수십조 원대의 막대한 비용 외에도 심각한 부작용이 뒤따를 것이다. 무엇보다 수도권 GTX는 지방소멸을 앞당기는 촉매제가 될 가능성이 농후하다. 근거 없는 얘기가 아니다. 예전 KTX 사례만 봐도 알 수 있다. '전국 1일 생활권'으로 지역균형발전이 달성되기는커녕 정확히 그 반대가 됐다. KTX는 수도권 집중의 '급행열차'다. GTX는 이보다 더할 것이다. 조만간 서울과 수도권은 GTX노선을 따라 개발 붐이 일고 '교통지옥' 없이 더 살기 좋은 곳이 된다. 안 갈 이유도 더 사라진 셈이다. 청년층을 중심으로 지방 인구를 흡수하는 '빨대효과'가 강력해질 게 뻔하다. 이게 끝도 아니다. 한술 더 떠 국민의힘은 서울영토 확장에 나서고 있다. 김포 등 인근 위성도시들을 대거 편입해 '서울메가시티'를 만들겠다는 것. 아무리 총선용이라지만 해도 너무 한다. 국정을 책임진 여당이 망국적인 수도권 집중을 선동하는 게 과연 정상인가. 정부여당은 지방도 살리고 수도권도 더 키우겠다고 한다. 정말 그런 신묘한 방법이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하지만 '서울민국' 체제하에서는 언감생심이다. 수도권 집중을 늦추는 데는 '뭘 하는 것'보다 '하지 않기'가 더 낫다. 서울확장 같은 '삽질'부터 멈춰야 하는 이유다. 허석윤 논설위원허석윤 논설위원
[자유성] 의사과학자
임상과 공학 두 가지 영역에 대한 전문 지식과 경험을 갖춘 의사이자 과학자를 우리는 의사과학자라고 부른다. 필자가 3~4년 전까지 생각해 왔던 의사과학자는 환자를 진료하지 않고 질병의 원인을 찾고 치료 방법을 개발하는 사람이다. 임상에 무게가 더 실려 있다. 요즘은 공학에 더 비중이 실리는 의사과학자가 연상된다. 카이스트와 포스텍이 의사과학자 배출을 위해 과학기술의학전문대학원 설립을 추진하면서부터다. 몇몇 공학자는 의사과학자가 5차 산업혁명을 주도할 것이라고 예측한다. 5차 산업혁명은 의학과 과학이 융합해 인간이 신의 영역, 즉 영생(永生)에 도전하는 형태로 나타날 것이라는 게 이들의 주장이다. 이스라엘 출신의 세계적인 역사학자 유발 하라리가 자신의 저서 '사피엔스'에서 과학기술이 발전하면 인간(Homo)은 스스로 신(Deus)이 되려 한다며 표현했던 '호모 데우스(Homo Deus)'와 같은 맥락이다. 5차 산업혁명이 우주항공산업에서 나타날 것이란 주장도 있지만, 필자는 의학과 공학의 융합으로 인공장기가 보편화되는 시대가 5차 산업혁명 시대라는 주장에 동의한다. 과학기술 발전 추세로 볼 때, 의사과학자가 지금보다 더 많이 배출돼야 하는 것은 시대의 흐름이다. 그 시작은 의대 정원을 늘리는 것이다. 정부가 내년에 의대 정원을 2천명 늘리기로 했기에 과기의전원 설립이 가능해졌다. 이를 통해 정부는 의사과학자 배출 비율을 현재 의대 졸업생의 1.6%에서 선진국 수준인 3%로 확대할 방침이다. 의대생 증원을 반대하는 의료계의 주장이 와닿지 않는 이유 중 하나는 의사과학자 배출을 막고 있기 때문이다. 김진욱 논설위원
[미디어 핫 토픽] 선택을 줄이는 '그' 회색티
페이스북의 창업주인 마크 저커버그를 검색하면 십중팔구는 회색 티셔츠를 입은 모습이 나올 것이다. 청문회 등 일부 특정한 시간이나 장소를 제외하면 대부분 회색 티셔츠 차림의 저커버그를 볼 수 있다. 세계에서 가장 부자 중 한 사람인 저커버그가 옷을 살 돈이 없어서 회색 티셔츠만 입진 않을 것이다. 부자는 절약을 많이 한다는데, 돈이 많지만 옷에 쓰는 돈을 줄이려고 그런 것일까? 그것도 아니다. 저커버그가 입는, 이 아무 무늬도 없는 회색 티셔츠는 '브루넬로 쿠치넬리'라는 고급 브랜드의 제품으로 한화로 40만원 정도 한다.돈이 없어서 돈을 아끼려고 그런 것이 아니라면 이유는 뭘까. 조금 비약이 있지만, 한마디로 딱 하면 '생각하기 싫어서'라고 할 수 있다. 저커버그는 미국 CNBC와의 인터뷰에서 "날마다 어떤 옷을 입을지, 아침에 뭘 먹을지 고민한다. 이런 작은 결정에 에너지를 쓰고 싶지 않다"며 "중요한 일 외에는 의사결정을 적게 하고 싶다. 그래서 가급적 생활을 단순하게 만들기 위해 노력한다"고 말했다. 이 인터뷰를 보고 출근하기 전 '오늘은 뭘 입을까. 셔츠를 입을까. 그렇다면 넥타이를 할까. 넥타이는 무슨 색이 좋을까'를 공들여 선택하고, 운동 삼아 수영장에 가기 전 '어떤 수영복과 어떤 수모와 어떤 물안경을 가져갈까' 생각하는 스스로가 바보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넓은 선택의 폭은 행복한 고민일 때도 있다. 그러나 너무 많은 선택지는 오히려 거슬린다. 여러 선택지 중 딱 하나만 골라야 한다면 불편한 감정이 스멀스멀 올라오기도 한다. 짜증스럽기까지 하고 이 선택권을 버리고 싶다.4·10 총선이 두 달도 남지 않았다. 우리 지역구 출마자도 서너 명은 될 것이고 비례대표까지 하면 엄청나다. 사실 유권자 대부분은 이미 마음을 정했다. 선택지가 많지만 쉬운 선택이다. 정당을 보고 표를 던지는 이도 있을 것이고, 친분이나 이익을 위해 가까운 이를 고를 수도 있다. 그러나 정말 이렇게 쉬운 선택을 하는 게 옳을까. 공약을 뜯어보고 믿음직한 나라의 일꾼을 뽑는 일이 이렇게 쉬운 게 정상일까. 최근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따르면 이번 총선의 투표용지는 50㎝를 넘길 것으로 보인다. 처음으로 준연동제가 적용된 4년 전 총선은 48.1㎝였다. 이번에 용지의 길이가 늘어난 이유는 위성정당이 더 생긴 탓이다. 48.1㎝ 안에서 선택해야 했다면 올해는 선택의 폭이 2㎝ 더 늘어난 셈이다. 선택지는 늘어났지만 선택하고 싶은 후보나 정당을 하나씩 고르는 것은 여전히 어렵다. 이 고민, 행복하지 않다. 박준상기자 junsang@yeongnam.com페이스북 창업주 마크 저커버그. 회색티를 즐겨 입는다. 인터넷캡처페이스북 창업주 마크 저커버그의 옷장. 인터넷캡처4년 전 비례대표 투표용지. 48.1cm로 올 총선이 치뤄지기 전, 현재까진 가장 긴 투표용지로 기록됐다. 영남일보 DB
[자유성] 외국인 축구 용병
프로축구 포항 스틸러스가 과거 '포항제철 돌핀스'라는 간판을 걸고 활약한 적이 있었다. 1983년 슈퍼리그(지금의 K리그) 출범 때다. 당시 구단주인 고(故) 박태준 포스코 명예회장의 축구 사랑은 각별했다. 그는 국내 프로축구 최초로 외국인 용병을 영입한 장본인이다. 프로축구 원년 우승을 위해서였다. 수소문 끝에 찾아낸 용병은 브라질인이었다. 당시 협력 관계에 있던 브라질 제철회사에 축구단이 있다는 사실을 알고 요청한 것. 그리하여 포항 유니폼을 입게 된 이들은 세르지오와 호세였다. '축구 황제' 펠레의 나라에서 왔으니 박 회장을 비롯한 구단 관계자와 팬들의 기대감은 하늘을 찌를 정도였다. 하지만 낯설고 물설은 한국 땅에 적응하기란 결코 쉽지 않았다. 세르지오는 14경기, 호세는 5경기에 출장했지만 둘 다 한 골도 넣지 못했다. 결국 돌핀스는 5개 팀 가운데 4위에 그치며 브라질 용병을 돌려보내고 말았다. 최근 잉글랜드 국가대표 출신 제시 린가드가 프로축구 K리그 FC서울에 입단했다. 그는 잉글랜드 축구 명문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출신의 세계적 플레이어다. K리그의 수많은 전·현 외국인 축구 용병 가운데서 네임밸류로는 단연 톱이다. 그는 왜 세계 유수의 리그를 제쳐두고 K리그를 선택했을까. 개인 사업 확장 등 여러 설이 돌고 있지만 축구 선수로서의 절박감이 컸기 때문이다. 최근 몇 년간 계속된 부진으로 임대 이적을 거듭하다 클럽을 찾지 못하는 지경까지 이르렀다. 그는 "하루빨리 그라운드에 돌아와 뛰고 싶다. 한국에서 꿈을 이루겠다"고 했다. 부디 한국에 잘 적응해 오래도록 축구 팬들에게 즐거움을 안겨주길 바란다. 아울러 올 시즌 '대팍'에서 대구FC 스타 세징야와의 한판 대결도 기다려진다. 이창호 논설위원
[영남타워] 책방 6.6개 vs 편의점 88개
시집전문 책방 창업교실이 열린다고 합니다. 쇼핑몰이나 카페, 벤처 창업교실은 종종 들어봤지만, 책방 창업교실은 생소합니다. 다소 생뚱맞은 창업교실은 지난해 대구 앞산 카페거리에 문을 연 시집전문 독립서점 '산아래 시(詩)'에서 열립니다. 시간은 오는 17일 오후 2시입니다.이미 기사로 알려진 것처럼 산아래 시 책방지기는 일흔의 은퇴자입니다. 시집을 펴냈지만 서점 매대는 물론 구석진 책꽂이에조차 자리를 잡지 못한 수많은 지역 시인들의 시집을 산아래 시에서 만날 수 있습니다. 펜으로 꾹꾹 눌러 쓴 그의 결심들도 책방 곳곳에서 볼 수 있습니다. 뿐만 아닙니다. 산아래 시에서는 꼭 책을 사지 않아도 됩니다. 건성건성 시집을 펼치다 마음에 드는 시의 구절을 만나 위로를 받고 가면 그걸로 만족하는 책방입니다. 시인과 독자를 섬기는 책방지기의 마음 씀씀이가 더 와닿는 그런 곳입니다. 이번 창업교실 강좌도 일흔의 책방지기가 맡습니다. 남들은 일을 접는 나이에 기어코 책방을 차린 그의 창업 노하우를 들을 수 있는 기회입니다. 왜 시집만 파는 책방을 열었는지에 대한 창업 배경은 물론 운영의 차별화, 홍보전략, 초기 투자 예산 등 책방창업의 A부터 Z까지 전할 예정입니다. 은퇴 후 동네책방을 차리는 것이 꿈인 필자 역시 기대가 됩니다.책방지기가 보내 온 창업교실 홍보 포스터를 보면서 이번 행사의 '슬로건'에 오래 시선이 머물렀습니다.'세상에 詩를 뿌리자!'이 슬로건에는 산아래 시 책방지기의 '담대한 꿈'이 담겨 있습니다. 가끔 책방에 들를 때면 그는 늘 "한 집 건너 생기는 카페나 골목골목 들어서는 편의점처럼 크고 작은 책방들이 우리 주위 여기저기에 늘어나면 좋겠다"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책방들이 저마다 먹고살 만큼 돈벌이도 되는 세상, 책이 '많이 팔리고' '많이 읽히는' 그런 세상이 열리길 바란다"고 덧붙입니다. 그가 쓴 단행본 '일흔에 쓴 창업일기'에도 이 문구가 나옵니다.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 지역 서점 수는 인구 10만명당 평균 5.3개입니다. 대구는 6.6개, 경북은 6.5개입니다. 전국 평균을 웃돌긴 하지만 초라한 수준입니다. 반면 공정거래위원회가 발표한 지난해 전국의 편의점 수는 5만2천여 개에 달합니다. 대구는 2천100여 개입니다. 대구 인구가 237만명이니 인구 10만명당 편의점은 88개 정도 됩니다.6.6 대 88, 동네책방이 편의점처럼 증가하려면 지금보다 10배 이상은 늘어나야 합니다. 참 어려운 일입니다. 불가능할 수도 있습니다. 편의점은 그래도 '돈'이 될 수 있으니 골목골목 늘어나지만, 동네책방은 돈 벌기가 만만치 않습니다. 늘어나기는커녕 문을 닫는 책방이 더 많은 게 현실입니다현실은 막막하지만, 산아래 시 책방지기의 담대한 꿈은 귀해 보입니다. 골목골목 들어서는 작은 책방들이 우리 문화생태계에 새로운 동력이 되기를 바라는 그의 바람이 소중해 보입니다. 굽어진 골목에서 솟아나는 에너지는 우리 삶의 자양분이 되기 마련입니다. 그 에너지가 카페나 편의점보다는 책방이면 우리 삶은 더욱 다채롭고 융성해질 것이라 믿습니다. 문자로 지식과 정보를 전달하는 사회의 근간이 흔들리는 시대이지만, 클릭 한 번으로 편하게 책을 구입할 수 있는 시대이지만, 일흔 책방지기의 꿈을 응원하는 이유입니다.창업교실 참가신청은 010-3529-7227로 하면 됩니다.백승운 문화부장백승운 문화부장
의료대란으로 번진 의대 증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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