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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요칼럼] 울릉도 지원 특별법 통과 그 이후
2024년 새해 첫날 오후, 기상청은 일본 노토반도의 강진으로 동해안에 지진해일이 관측될 것이라고 예보했다. 이에 따라 강릉, 포항 등 동해안 지역에 지진해일이 도착할 예상 시각과 높이가 TV로 보도됐다. 그러나 지진해일의 영향을 가장 먼저 받는 울릉도의 도착 예상 시각과 높이는 보도되지 않았다. 당시 비상대기를 하며 노심초사했던 울릉군 공무원들 입에서는 "울릉도는 대한민국 땅이 아닌 것 같다"는 자조 섞인 탄식이 나왔다. 생각해 보면 울릉도에 대한 우리의 관심은 독도에 비해 매우 낮다. 대한민국이 독도를 실효적으로 지배하고 있는 원천이 울릉도인데도 말이다. 그래서 필자는 작년 12월20일 국회를 통과한 '울릉도·흑산도 등 국토 외곽 먼 섬 지원 특별법'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 새삼 생각하게 된다. 정부가 관심을 갖고 울릉도의 발전과 주민 삶의 질을 높일 수 있는 특별한 지원을 할 수 있게 됐으니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이 법은 김병욱(포항남구-울릉) 의원이 대표발의한 '울릉도·독도 지원 특별법안'이 우여곡절 끝에 서삼석(전남 영암-무안-신안) 의원이 대표발의한 '국토 외곽 먼 섬 지원 특별법안'과 합쳐져 탄생한 것이다. 그 과정에서 북한의 연평도 포격 도발로 마련된 '서해 5도 지원 특별법' 수준의 직접적인 주민지원책을 담지는 못했다. 또 흑산도를 비롯한 육지에서 먼 섬도 함께 지원하는 법이 됐다. 울릉만을 위한 특별한 법을 기대했던 주민들 입장에서는 서운할 수 있다. 하지만 특별법 통과는 울릉도 역사를 새로 쓸 만큼 값진 성과다. 원안을 고집했다면 국회를 통과하지 못해, 또다시 먼 훗날을 기약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울릉도·독도 지원 특별법은 2013년에 이병석 의원이, 2016년에는 박명재 의원이 발의했지만 정부의 반대로 통과하지 못해 자동 폐기됐다. 이 때문에 김병욱 국회의원은 지난해 3월 발의를 할 때 관련 부처와 사전 협의를 거쳐 지원 가능한 부분 중심으로 법안을 만들었다. 이번에 못 담은 지원안은 훗날 법률 개정을 통해 담을 심산이었다. 법률은 제정하기가 어렵지, 개정하는 것은 상대적으로 쉽기 때문이다. 특별법은 정부가 공포한 날로부터 1년 뒤 시행된다. 정부가 공포 절차를 밟고 있어 내년 초에는 특별법에 따른 지원이 시작될 것이다. 특별법이 시행되기 전까지 앞으로의 1년은 울릉도의 미래를 위해 매우 중요한 시기다. 특별법에 따라 행정안전부는 울릉도 종합발전계획을 수립하게 된다. 이 과정에서 경북도와 울릉군의 의견을 수렴한다. 이철우 경북도지사는 울릉도를 싱가포르처럼 발전시키겠다고 밝힌 바 있어 특별법 통과는 이 도지사의 의지에 불을 지폈다. 무엇보다 울릉군의 자체 플랜이 중요하다. 당초 법안과 달라진 특별법을 감안하고, 급변하는 시대 상황에 맞는 자체 계획안이 이른 시일 내로 나와야 한다. 이젠 법안을 통과시킬 때와는 다른 에너지를 모아야 할 때다. 특별법 통과는 척박한 정주 환경에서 벗어나려는 울릉 주민들의 간절함이 이뤄낸 결실이다. 지금부터는 간절함을 미래 발전을 위한 역동성으로 승화시켜야 한다. 이를 위해 남한권 군수와 공경식 군의회 의장 등 울릉도를 이끄는 인사들은 지역사회의 역량을 결집시켜야 한다. 그러면 울릉도는 다시 사람이 모이는 섬, 싱가포르 같은 명소가 될 것이라고 필자는 믿는다.김진욱 경북본사 총괄국장 김진욱 경북본사 총괄국장
[자유성] 선택과 집중
일본 홋카이도의 유바리시(市)는 탄광 도시로 폐광 이후 무리한 재정투자로 시 자체가 파산한 곳이다. 유바리는 세계에서 가장 비싼 멜론으로도 유명한데 그해 생산된 첫 경매에서 상징적으로 형성되는 가격이 어마어마하다. 가장 높은 가격은 2016년 2개들이 한 상자에 300만 엔이었다. 일반 소비자가 구매할 수준은 아닌 것이다. 농가들의 사기를 높이고 유통업자의 과시욕이 더해진 결과로 알려졌다. 경북 문경도 유바리와 비슷한 폐광도시이자 오미자로 이름난 곳이다. 도시 파산이라는 전철을 밟지 않은 큰 차이가 있지만, 오미자나 사과로 살아가려는 노력은 같다. 문경시가 지역 특산품인 사과와 오미자를 선택과 집중이라는 전략으로 성장시키기로 했다. 이달 초 전략작목연구소를 만들어 전문가들을 포진했다. 이름값을 넘어 문경의 농산물을 명품화하는 전략기지로 만들겠다는 의지다. 문경 사과 가운데 가장 유명하고 경쟁력이 뛰어난 품종이 감홍이다. 문경시는 감홍을 명품화시켜 5㎏들이 한 상자에 30만~40만원을 받을 수 있도록 목표를 세웠다. 일반 사과 한 상자에 3만~4만원인 것에 비하면 무려 10배 가까이 비싼 가격이다. 한 상자에 10개가 들어가면 사과 하나에 3만~4만원이니 결코 싼 값은 아니다. 한창 오미자가 인기를 끌던 때 문경 전통장작가마로 구운 도자기에 백두대간 고산에서 채취한 자연산 오미자를 토종꿀이나 석청에 발효시켜 병당 500만원 이상 받는 초고가 제품을 상징적으로 만들어보자는 제안도 있었지만 현실화하지는 못했다. 문경 사과나 오미자가 선택적인 집중으로 명품으로 거듭나기를 기대한다. 남정현 중부지역본부 부장
[미디어 핫 토픽] 칼국수 모른다해서 사과한 아이돌과 떡볶이에 희비 갈린 재벌…이거 맞나
뉴진스의 민지가 '칼국수 발언'에 대해 사과했다. "칼국수 발언이 논란이 돼 사과했다"는 이 말이 이해가 되지 않았다. '칼국수 발언'이 뭐길래 사과를 했을까.전말은 이렇다. 작년 1월 웹툰작가 이말년의 유튜브 채널 '침착맨' 라이브 방송에서 칼국수 관련 이야기가 나오자 민지는 "칼국수가 뭐지"라며 혼잣말을 했다. 이 장면이 포착돼 일부 네티즌들은 "칼국수를 모르는 것이 아이돌 콘셉트일까"라며 불편한 기색을 드러냈다. 민지는 한국인이다. 아무리 생각해도 한국인이 칼국수를 모를 수가 있겠냐는 의문은 들 수 있다. 민지도 같은 답을 내놓았다. '칼국수 발언' 1년이 지난 시점 라이브 방송에서 "제가 칼국수를 모르겠어요? 칼국수 종류가 얼마나 많은지, 뭐가 들어가는지, 어떤 재료가 들어가는지 다 알고 계세요?"라고 했다.이게 다시 또 화를 불렀다. 결국 사과를 했다. "편식이 심해 칼국수를 먹어본 적이 없어 칼국수의 종류와 맛을 생각하다 저도 모르게 '칼국수가 뭐지?'라는 혼잣말이 나와 버렸다. 혼잣말이라 오해가 생길지 몰랐고, 명확한 해명을 하고 싶었으나 이미 엎질러진 물인 것 같기도 하고 시간이 지나면 잠잠해질 거로 생각했다"라고. 그러면서 "미숙한 태도로 실망시킨 점을 반성한다"고 했다.반대인 경우도 있다. 떡볶이와 어묵을 잘 먹어서 화제가 된 재벌. 삼성전자 이재용 회장은 작년 12월 윤석열 대통령, 재벌 총수들과 함께 부산의 한 시장에서 떡볶이를 먹었다. 이 회장이 맛있게 분식을 먹는 모습에 네티즌들은 환호했다. 그러나 김동관 한화그룹 부회장에겐 야유가 쏟아졌다. 젓가락으로 접시를 휘적거리다 곧바로 내려놓는 모습이 영상에 담겼기 때문이다. "재벌이라 떡볶이 같은 건 입맛에 안 맞나 보다"라는 유의 댓글이 이어졌다. 그러나 전체 영상에선 김 부회장이 떡볶이를 맛있게 먹는 모습이 담겼고, 접시를 내려놓는 장면은 후반부의 아주 잠깐이었다.최근 배우 이선균 사망에 대해 프랑스 언론은 "한국 사회에서는 공인에게 높은 도덕성을 요구하고 있다"는 지적을 했다. 프랑스 일간지 리베라시옹은 "이선균을 비롯해 많은 영화인의 경력이 도덕성을 재단하는 것에서 산산조각이 났다"고 보도했다. 칼국수를 모른다고 해 사과한 아이돌과 떡볶이 덕에 호감을 얻고 떡볶이 탓에 오해를 받은 재벌들. 어떤 면에서 '공인'인 아이돌을 비롯한 연예인과 유명인들, 이들에게 너무 과도한 잣대를 들이미는 것 아닐까 생각이 든다. 한국에서 유명인으로 사는 건 참 힘들어 보인다. 박준상기자 junsang@yeongnam.com아이돌 그룹 뉴진스의 민지가 '칼국수가 뭐지'라고 말했다 사과까지 하게 됐다. 유튜브 캡처윤석열 대통령이 지난해 12월6일 부산 중구 깡통시장에서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 등 기업 총수들과 떡볶이 등 분식을 시식하고 있다.왼쪽부터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 조현준 효성그룹 회장, 윤 대통령, 구광모 LG그룹 회장, 김동관 한화그룹 부회장, 정기선 HD현대 부회장. 연합뉴스
[자유성] 청렴도
경북 구미시는 청룡이 꿈틀거린다는 갑진년 새해를 씁쓸하게 시작했다. 국민권익위원회의 지난해 종합청렴도 평가에서 3등급을 받아 한 단계 추락하는 초라한 성적표를 받았기 때문이다. 지난달 29일 국민권익위원회가 발표한 2023년 종합청렴도 발표에서 구미시의 청렴 체감도와 청렴 노력도는 4등급과 2등급을 받아 종합 청렴도는 3등급에 그쳤다. 2016~2018년 3년 연속 5등급을 받은 시는 2019년 3등급으로 뛰어올랐으나 2020~2021년에 4등급으로 떨어졌다. 김장호 구미시장이 지휘봉을 쥔 2022년에는 2등급으로 급상승하는 성과를 올렸다. 한층 탄력을 받은 구미시는 1등급을 목표로 종합청렴도 향상에 잣대가 될 20여 개가 넘는 방안을 앞세워 고삐를 당겼다. 결과는 백년하청(百年河淸·백 년을 기다려도 황하의 흐린 물은 맑아지지 않는다)이었다. 2019년 수준인 3등급으로 되돌아갔기 때문이다. 1년간의 자정 노력과 청렴 의지를 곱씹어 봐야 할 대목이다. 꼴찌가 아닌 중간이라고 항변할 수도 있으나 그것은 독설이다. 구미시민은 2년간 낙제점을 받은 외부청렴도 평가에는 합당한 이유가 있다고 생각한다. 낮은 청렴 의식, 폐쇄·권위주의적 인사 관행, 학·지·혈연을 잣대로 편 가르기와 줄 세우기, 한 건으로 점수 따기 등의 탓으로 여기고 있다. 2021년 지방선거로 갈가리 찢긴 민심을 봉합하지 못한 것도 한몫을 했다. 아무리 뛰어난 행정 능력을 갖춘 선장이라도 직원들의 청렴 없이는 인정받기 어렵다. 작은 소리도 귀 기울여 누구나 선뜻 다가설 수 있는 리더십 전환이 필요한 시점이다. 42만 시민과 구미시의 미래를 먼저 생각하는 배려 행정이 청렴도 상승의 지름길이다. 백종현 중부지역본부 부장
[박규완 칼럼] 국민의힘, 良貨로 물갈이 할 수 있을까
# 인조 반정의 재해석 인조는 무능했다. 외교를 몰랐고 손자병법에 적시된 선승구전(先勝求戰)의 지혜도 없었다. 기울어가는 명나라의 썩은 동아줄만 잡고 있다가 두 번의 호란을 자초했다. 온 강토가 전화(戰禍)에 휩싸였으니 백성들의 고초야 오죽했으랴. 인조는 무도했다. 자신에게 반목하는 신하를 거친 언사로 능멸하기 일쑤였다. "자식을 죽이고 신하를 죽이는 것은 군부(君父)의 권한"이라고도 했다. 인조는 용렬했다. 소현세자의 독살을 사주하고 며느리 강빈, 강빈의 친정 부모형제, 손자들을 기어이 죽음에 이르게 했다. 반정(反正)은 '바른 상태로 돌아가게 한다'는 뜻이다. 이럴진대 인조 반정을 반정이라고 할 수 있을까. 차라리 명나라와 후금 사이에서 균형 외교를 펼친 광해군의 치세가 더 나았을지 모른다. # 높은 '물갈이 지수' 공천의 시간이 왔나 보다. 민주당이 공관위를 가동했고 국민의힘은 16일 공천 룰을 발표했다. 여느 총선처럼 4·10 선거의 화두도 '물갈이'다. 일단 민심이 요구하는 현역의원 물갈이 지수는 높다. 한국일보-한국리서치 신년 여론조사에서 응답자의 62%가 '지역구 의원 교체를 원한다'고 답했다. 인적 쇄신은 정책 쇄신보다 유권자에게 주는 임팩트가 크다. 인적 쇄신 효과와 높은 물갈이 지수는 공관위의 컷오프 본능을 자극한다. 아마도 잔뜩 칼을 벼리고 있을 듯싶다. 국민의힘 총선기획단이 제시한 물갈이 비율은 '20% 플러스 알파'. 보수 성지 영남권은 물갈이 핫 플레이스다. 선거 때마다 '내리꽂기'가 횡행했다. 21대 총선 땐 대구경북 의원 60%가 교체됐다. 불출마를 포함한 수치다. # 현역 교체가 승리 방정식? 역대 총선에선 물갈이 폭이 큰 정당이 대체로 승리했다. 18·19·20대가 그랬다. 하지만 21대 총선은 달랐다. 민주당보다 더 많은 현역의원을 교체했던 미래통합당(현 국민의힘)이 참패했다. '묻지마 물갈이'가 승리 방정식은 아니라는 얘기다. 당시 미래통합당의 공천 파동이 거셌다. 당 대표와 공관위원장의 사천과 막장공천이 언론을 도배했고, 공천 결과가 번복되면서 '호떡 공천'이란 조어까지 등장했다. 물갈이 질도 나빴다. 국회 입성 후 일부 초선은 '윤위병(윤석열+홍위병)'으로 전락했다. # 양지 좇는 '윤심' 후보들 대통령실 출신 인사 30여 명이 여당 텃밭에서 출마를 준비 중이다. 대구경북이 9명, 부산경남 7명, 서울 강남권 3명 남짓이라고 한다. 인요한 혁신위원장이 영남권 다선 의원들의 험지 출마를 권유한 게 불과 두 달 전이다. 한데 대통령실 출신은 양지만 좇는 모양새다. 여론도 우호적이지 않다. 현 정부 고위직의 총선 출마에 대해 59%가 '부정적'이라고 응답했다. 현역의원 교체를 원하면서도 '용산'의 참모 내리꽂기는 경계하는 민심이 읽힌다. 전략 공천, 단수 공천이 공천 파행의 뇌관이 될 수 있다는 의미다. '악화가 양화를 구축(驅逐)하는' 물갈이는 최악의 시나리오다. 정실(情實)이 규범을 훼손하는 공천은 배척돼야 마땅하다. 인조 반정은 군주 교체의 실패 사례에 속한다. 정조쯤 되는 현군을 옹립했더라면 조선의 명운이 달라졌을 터다. 국민의힘 공천도 반정(反正)의 의미를 살릴 수 있는 물갈이여야 한다.논설위원 논설위원
[영남타워] 총선 앞 섣부른 미디어 규제 우려된다
제22대 국회의원 선거(4월10일)가 80여 일 앞으로 다가왔다. 각 당에서는 국민의 선택을 받을 참신한 후보찾기에 노력하는 한편 당 차원의 선거공약 마련에도 고심을 하고 있다. 4년 주기로 치러지는 국회의원 선거(총선)는 국민을 대표할 의원을 뽑는다는 점에서 정당 입장에서는 대통령 선거 못지않은 비중을 갖고 있다.총선을 앞둔 정당은 공약개발에 당력을 집중하고 있다. 선거구별 후보의 경쟁력도 중요하지만 정당 차원의 공약은 민심을 크게 좌우할 수 있다는 점에서 그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공약 하나, 공약성 구호 한마디가 표심을 흔들어 제1당의 위치를 차지하기도 하고, 총선에 패하거나 제2당으로 추락하는 원인이 되기도 한다. 총선 공약은 국민 다수의 민심을 얻기 위한다는 면에서 기본적으로 포퓰리즘적 요소가 있다. 하지만 그 자체가 나쁘다고 할 수 없다. 정당이 유권자의 기대와 가치를 대변한다는 점에서 자연스러운 정치행위로 볼 수 있다. 각종 규제, 이익집단의 기득권 고수, 행정편의주의, 대기업 중심 정책 등으로 사회적 약자들의 목소리를 잘 대변하지 못하고 있는 우리나라 현실에서 선거공약은 그나마 민심을 반영하려고 노력할 수밖에 없어 사회변화의 중요한 전기가 되기도 한다. 우리나라의 짧지 않은 민주화 과정에서 선거를 통한 정책변화가 사회 혁신을 추동하는 중요한 계기가 됐음을 부정할 사람은 별로 없을 것이다. 하지만 선거과정에서의 공약이 다 긍정적인 것만은 아니다. 특정 이익집단을 대변하는 내용이 선거 공약화되고 이후 선거 승리를 바탕으로 국가정책으로 채택돼 사회에 악영향을 미치는 사례도 있다. 선거 승리에 집착한 나머지 재정수요를 감당하지 못할 정도의 공약을 내세웠다가 결국은 유야무야하는 '공약(空約)'도 많다. 세대 간 갈등을 촉발하는 공약, 국가시스템에 부정적 영향을 미치는 공약, 특정지역만을 위한 공약도 선거 때마다 단골메뉴다. 분권이나 지방자치 확대·지역균형발전처럼 선거 때마다 주요 공약으로 채택되지만 선거가 끝나면 여야 모두 나 몰라라 하는 공약도 여전하다.이런 공약들이 해묵은 선거 양상이라면 최근 10~20년 사이 우려할 만한 상황은 미디어에 대한 공약이다. 말이 좋아 공약이지 속내는 미디어 장악을 위한 규제라고 보는 것이 정확할 듯싶다. 과거의 돈선거, 지지자 동원 선거가 이제는 미디어 선거라고 할 만큼 양상이 변하면서 정당들이 미디어를 자신들에게 유리하도록 하기 위해 선거철이 되면 어김없이 공약으로 포장해 규제와 간섭을 하려 한다.신문과 방송은 물론 포털과 미디어 관련 단체, 기구 등에 대한 간섭과 규제로 선거국면을 유리하게 조성하기 위한 대책에는 여야가 따로 없다. 그만큼 미디어의 영향력이 강해지고 선거 판세에 미치는 영향력이 큰 만큼 선거가 거듭될수록 미디어 장악을 위한 정당들의 수법은 갈수록 교묘해지고 있다.미디어를 통해 이득을 보겠다는 그 자체가 한심하다는 생각이 들지만 더 우려스러운 점은 이로 인해 미디어 발전을 저해할 수 있다는 점이다. 글로벌 경쟁시대에 국제경쟁력을 강화할 수 있는 미디어정책이 중요한데 당리당략에 눈멀어 국내 미디어 생태계를 파괴하는 우를 범할까 걱정된다. 2007년 대선국면에서 선거 영향력을 두려워해 국내 UCC에 대한 과도한 규제를 시행했다가 결국은 국내 동영상 시장을 유튜브에 통째로 넘겨준 가슴 아픈 기억을 되풀이하지 않기를 바란다. 박종문 편집국 부국장박종문 편집국 부국장
[취재수첩] 4·10 총선에 대한 斷想
선거철만 되면 고향이 만만해지는가. 아니면 이미 선거철이 되기 전부터 고향이라고 만만하게 생각한 것일까. 수도권에서 자칭 잘나간다는 동향인들은 고향을 정말 그런 시각으로 바라보는 것일까. 궁금하다. 역대 선거판을 돌이켜보면 이 같은 궁금증이 일 수밖에 없다.필자만의 생각은 아닐 것이다. 눈치가 보여서 또 이해관계가 얽히고설켜서 서로 말을 안 할 뿐이지 지역에서 생활하는 토박이들은 이 같은 생각에 상당수가 공감하지 않을까 싶다.또 선거철만 되면 회귀(回歸)해 고향발전을 외치는 인사들은 진심으로 고향 발전을 꿈꾸는 것일까. 아니면 자신의 정계 진출이나 출세의 발판으로 고향 민심을 이용하려는 것일까. 선거 때마다 이 같은 궁금증은 반복되고 있지만, 지금껏 속 시원한 답을 찾지 못하고 있다. 어쩌면 뻔히 알면서도 필자 스스로 모르는 척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역대 선거 때 만난 회귀 인사들에게 잘나갈 때 무엇을 했는지를 물으면 모두가 어마어마한 일들을 해냈다고 자랑할 것이다. 정작 그 어마어마한 일들에 대해 토박이들은 모르고 있다는 게 안타까운 일이지만 말이다.궁금한 게 또 있다. 선거 때면 그렇게 아침저녁으로 얼굴을 내밀던 사람들이 선거 후엔 온다 간다는 말도 없이 종적을 감췄다. 그들은 정말 고향 발전을 꿈꾸긴 했던 것일까. 단지 자신의 출세를 위해 잠깐 집 떠나 고향에서 타향살이한 것일까. 본인만이 그 답을 제대로 알고 있을 것이다.80여 일 앞으로 다가온 4·10 총선이 궁금해진다. 안동-예천 선거구를 중심으로 이미 여러 명의 후보자가 출사표를 던졌거나 하마평에 오르내리고 있다.후보자들에 대한 얼토당토않은 소문과 억측이 난무하고 있다. 하지만 이번 총선에서만큼은 유권자들도 진정으로 고향을 위해 일할 후보인지, 수도권으로의 역(逆)금의환향(錦衣還鄕)을 위한 발판으로 삼으려고 하는지 한 번 정도는 꼼꼼히 살펴봤으면 하는 마음이다.고향을 위하는 마음은 고향이 만만해 보일 때 생길 수 있는 게 아니다. 스스로 고향을 위대하게 생각하고, 고향인인 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할 때 나올 수 있다. 고향 발전도 고향을 위하는 마음이 간절해야 가능하다. 그런 진정성 어린 마음가짐이 있어야 중앙 무대에서도 가시적인 성과를 기대할 수 있다. 선거가 끝나면 민심 이반 등으로 고향은 상당 기간 고통을 겪는다. 고향을 생각하는 마음이 조금이라도 있다면 이번 총선에서는 자신의 출세를 위해 고향의 순수한 민심을 이반하거나 이용하지 않았으면 한다.피재윤기자〈경북부〉피재윤기자〈경북부〉
[자유성] 트럼프의 귀환
현대 정치사에서 도널드 트럼프만큼 드라마틱한 인물도 드물다. 사실, 돈은 많지만 정치경력이 전혀 없는 70세 노인이 불쑥 선거에 출마해 미국 대통령이 되는 건 거의 불가능하다. 더구나 그 사람이 재벌가 '금수저' 출신인 데다 독불장군이라면 더욱 그렇다. 하지만 트럼프는 그걸 가능하게 만들었다. 주된 비결은 백인우월주의를 자극하는 것이었다. 노동자를 비롯한 미국 중·저득층 백인들은 "위대한 미국 재건"을 외친 트럼프에 열광했다. 그의 트레이드 마크인 막말과 좌충우돌 행동도 큰 문제가 되지 않았다. 오히려 그건 기존 정치에 식상함을 느끼던 사람들에게 파격과 신선함으로 다가가는 효과를 냈다. 더욱 놀라운 건 트럼프가 4년 공백을 딛고 대통령에 재등극할 가능성이 높다는 점이다.트럼프는 지난 16일 아이오와주(州) 코커스(당원대회)에서 경쟁 후보들을 모두 압도적 표 차이로 따돌렸다. 공화당 대선 후보를 선출하는 첫 경선지에서 압승을 거두며 재선고지를 향한 순항을 예고한 것. 이 같은 기세라면 트럼프가 공화당 대선 후보가 돼 본선에서 조 바이든 대통령과 역사적 재대결을 벌일 공산이 크다. 두 사람이 맞붙으면 어떻게 될까. 최근 미국 내 여론조사를 보면 트럼프 승리를 예상하는 쪽이 훨씬 많다.트럼프 대세론에 변수는 있다. 사법리스크다. 그는 현재 미국 내 여러 법원에서 2020년 대선 결과 뒤집기 시도 등 수많은 혐의로 기소돼 있다. 트럼프의 대선 후보 자격 박탈 가능성마저 거론된다. 미국 법원의 판단에 트럼프와 미국, 나아가 전 세계의 앞날이 요동치게 됐다. 허석윤 논설위원
[동대구로에서] 신생아 1명당 현금 1억원을 일시불로 주자
지난해 70대 이상 인구가 20대 인구를 넘어섰다는 통계는 가히 충격적이다. 초등학교 입학을 앞둔 6세 아이들은 사상 처음으로 30만명대로 주저앉았다고 한다. 이대로 가면 50년 후엔 1천500만명이 사라진다. 총인구는 3천600만명대(통계청 예측)로 쪼그라들어 50년 전(1970년, 3천200만명대) 수준으로 되돌아간다는 것이다.2073년이 되면 2천500만명대(국회 입법조사처 보고서)로 줄어들 것이란 더 암울한 전망도 최근 나왔다. 경북도는 인구감소 속도가 전국에서 가장 빨라 53만명대로 급감할 것으로 예측됐다. 현재 경북도 인구(255만명)의 20% 수준인데, 거의 소멸에 가까울 정도다.대구도 65세 이상 인구가 전체 19.6%를 차지하고 있다. 20% 이상이 기준인 '초고령사회'에 진입하는 건 시간문제다.그동안 인구 정책은 '백약이 무효'였다. 연간 50조원이 넘는 저출산 대응 예산을 쏟아 부어놓고도 7년 연속 전 세계에서 가장 아이를 적게 낳는 나라라는 오명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2022년에만 51조7천억원을 투입했다. 그해 태어난 아이는 24만9천명이었다. 산술적으로 아이 한 명당 2억1천만원의 저출산 예산을 지원한 셈인데, 그러고도 출산율 세계 꼴찌를 막지 못했다는 것이다.십수년 전 '공중부양'을 한다던 한 대선 후보가 내건 공약 중 하나가 '결혼하면 1억원, 출산하면 3천만원을 준다'는 것이었다. 당시만 해도 허무맹랑한 공약으로 치부됐으나, 지금은 재조명되고 있다.당장 인천시가 올해부터 태어난 아이는 만 18세가 될 때까지 총 1억원을 지원한다. 충북 영동군도 아이 낳아 키우면 1억2천만원까지 주는 '1억원 성장 프로젝트'를 시작했다.저출산 극복 대책으로 '현금지원'은 실제 성과로도 나타나고 있다. 지난해 전국 17개 시·도의 출생아 증감률을 살펴봤더니, 충북도만 1.5% 올랐다. 다른 16개 시·도 모두 내려갔는데, 유일하게 충북도만 신생아가 전년 대비 117명 늘어난 것이다. 충북도는 지난해부터 태어난 아이에게 5년간 현금 1천만원을 주는 정책을 펴고 있다. 김영환 충북도지사는 "현금 지원만큼 확실한 게 없다"고 단언했다.'출산과 경제력'은 최근 온라인도 뜨겁게 달구고 있다. 연초 소셜미디어(SNS)에 '가난하면 아이 낳으면 안 된다'는 주장에 '너무 무례하다고 생각한다'는 반박 글이 급속히 확산했다. '가난의 대물림 방지'라는 출산 반대론에 '삶 자체가 축복이자 기쁨'이라는 출산 옹호론이 맞서면서 MZ세대(1980~2010년생)를 중심으로 '갑론을박'이 벌어지고 있다.많은 젊은 직장 여성들은 힘겨운 육아 때문에 아이 낳기를 꺼린다. 요즘 출산 휴가는 직장에서 눈치를 보지 않아도 되지만, 낳은 아이는 누가 어떻게 키우나. 분윳값부터 어린이집·유치원비 등 돈 들어갈 곳이 한두 군데가 아니다. 초등학생 때부터 시작해 고교까지 빼먹을 수 없는 학원비에다 대학 등록금은 또 어떡하나. 결국 따지고 보면 '돈 문제'다.작년에 신생아 1명당 2억원이 넘는 예산이 투입됐다는데, 이참에 아예 현금으로 일시불로 주면 어떨까. 아이가 태어난 날 그 절반인 1억원을 부모 계좌에 쏴 준다면 출산에 대한 생각이 달라질 것이다. '머니 머니' 해도 '머니'가 최고 아닌가.진 식 사회부장진 식 사회부장
[자유성] 지진해일
새해 첫날 일본에서 발생한 강진(규모 7.6)의 여파가 우리나라 동해안에도 확인됐다. 이번 지진 발생지점인 이시카와현 노토반도와 마주 보고 있는 강원 묵호항과 울진 후포항에서는 각각 85㎝, 65㎝ 규모의 지진해일(쓰나미)이 발생했다. 국내에서 지진해일이 발생하기는 30년 만에 처음이다. 1940년, 1964년, 1983년, 1993년에 지진해일이 관측됐으며 모두 일본발(發)이었다. 이 가운데 1983년의 지진해일은 강원 묵호항에서 파고가 2m가 넘어설 정도로 위력이 대단해 5명의 사상자를 냈다. 지금까지 유일한 인명피해 기록으로 남아 있다. 이번 동해안 지진해일의 높이는 지진해일주의보(0.5m 이상 1m 미만) 발령 기준에 해당한다. 지진해일은 해저에서 지진이 발생하거나 화산이 폭발해 해수면이 요동치면서 발생하는 파도를 말한다. 통상 높이가 0.5m를 넘어서면 해안 저지대가 침수될 수 있어 대피해야 한다. 경우에 따라 0.2∼0.3m 높이에서도 피해가 발생해 주의가 요구된다. 동해안 주민들은 지진해일 이후 보름이 지났지만 일본에서 여전히 여진이 이어지고 있어 추가 발생을 걱정하는 분위기다.지진 전문가들은 일본 서해발 지진해일은 동해안 도달까지 통상 1시간30분~2시간 정도 걸리지만 동해 해저에서 발생하면 10~20분 만에 덮칠 수 있다고 경고한다. 국내 건설된 원전은 모두 10m 지진해일까지 견딜 수 있도록 설계·건설돼 있다. 그러나 최근 전 세계적으로 재앙에 가까운 기후변화가 잦은 만큼 안심할 수 없는 상황을 맞고 있다. 정부와 행정당국은 지진에 편중된 안전대책을 이제 지진해일로까지 확대해야 할 것 같다. 마창성 동부지역본부 부장
[자유성] 베켄바워
분데스리가(Bundesliga). 독일 프로축구 1부 리그를 일컫는다. 1970~80년대 일요일 낮 국내 안방극장에 분데스리가 경기가 녹화 중계된 적이 있다. 국내에 유일하게 소개된 외국 프로축구였다. 당시 분데스리가는 유럽 프로축구의 선두주자였다. 지금 최고의 리그인 프리미어리그(잉글랜드)를 비롯해 프리메라리가(스페인)·세리에A리그(이탈리아)도 분데스리가의 위상엔 미치지 못했다. '카이저(황제)'로 불린 프란츠 베켄바워와 게르트 뮐러·한지 뮐러·파울 브라이트너·위르겐 그라보브스키·베른트 횔첸바인 등 유명 선수의 이름이 아직도 귀에 익어 있다. 그 기라성 같은 리그에 대한민국의 차범근도 뛰었으니 국내 축구팬들의 관심은 실로 대단했다. 차범근은 몇 해 전 인터뷰에서 "독일에서의 선수 생활은 사느냐, 죽느냐의 싸움이었다. 정말 기계처럼 뛰었다"고 했다. 조금의 실수도 용납되지 않는 분데스리가에서 훌륭하게 선수 생활을 마감한 그는 충분히 존경받을 만하다. 지금의 손흥민(토트넘 홋스퍼)이 칭송을 받는 것도 같은 이유가 아니겠나.분데스리가는 한때 침체를 거듭해 잉글랜드는 물론 스페인·이탈리아 리그에도 밀리는 처지가 되기도 했다. 아직 옛 명성을 완전히 회복하지는 못했지만 그 전통만큼은 결코 무시할 수 없다. 2006년 독일 월드컵 이후 분데스리가는 부활의 날개를 펴기 시작했다. 여기엔 은퇴 후 지도자·행정가로 변신한 베켄바워의 역할이 지대했다. 최근 세상을 떠난 베켄바워에 대한 추모 열기가 축구팬 사이에서 식지 않고 있다. 그는 생전 "강한 자가 이기는 것이 아니라, 이기는 자가 강한 것"이라고 했다. '버티는 자가 이기는 것'이라는 요즘 시대에 곱씹어 볼 만한 그의 명언이다. 이창호 논설위원
[박재일 칼럼] Faction Politics(파벌정치)와 제3지대
정치적 동물, 인간은 친소 관계에 따라 무리를 이룬다. 본능이다. 리더와 무리로 구성된 파벌(派閥·Faction Politics)은 그래서 정치의 속성이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정치세계의 보편화된 현상에 가깝다. 파벌이 커지면 정당이 되고, 정당이 분화되면 파당 혹은 파벌이 된다. 파벌정치는 동양, 특히 일본과 한국에서 유별난 것으로 정평이 나 있다. 일본의 정치를 알려면 정당 역사는 껍데기이고, 그 속살인 파벌의 계보를 알아야 실체에 접근할 수 있다. 일본인들이 한국을 '사색당파(四色黨派)'로 날이 지샌, 이게 비록 조선 시대 역사였지만, 그런 나라로 떡칠한 것은 아이러니다. 아무튼 한국도 일본만큼은 아니라도 독특하고도 질긴 파벌정치의 역사가 있다.오늘의 더불어민주당은 과거 민주계에서부터 김대중의 동교동계, 김영삼의 상도동계로 분화됐다. 전당대회 때마다 소규모 파벌로 나눠진 것까지 다 합치면 셀 수도 없는 계파가 존재해 왔다. 근래 들어와서는 친노·친문이 득세했고, 작금의 민주당은 이재명계냐 아니냐로 분류된다. 탈당한 이낙연 전 대표는 "저급한 언동이 횡행하는 1인 정당"으로 맹공했다. 이재명계 패거리와 한 지붕 아래 살 수 없다는 선전포고인 동시에 민주당 내 이낙연계의 분리다. 앞서 탈당한 '원칙과상식' 의원들도 크게 보면 파벌의 분화다.국민의힘도 파벌정치의 역사가 있다. 거슬러 올라가면 공화당계-김종필계에서부터 군부정권의 핵심 파벌 민정계가 있었고, 여기다 김영삼계가 3당합당으로 건너오면서 한 축을 형성했다. 이명박-박근혜의 '친이 친박 전쟁'은 클라이맥스였다. 급기야 친박, 진박으로 세분화하면서 권력은 붕괴됐다.4·10총선을 앞두고 정치권이 그야말로 4분5열, 4쪽이 나고 5개의 대열로 줄이 섰다. 여야 공히 전직 당 대표가 이탈한 전례 없는 구도가 탄생했다. 미래, 혁신, 제3지대, 플랫폼 정당이란 아름다운 이름이 붙은 정파를 내세우지만 파벌이란 분석 도구로 보면 그 속성과 한계도 알아차릴 수 있다. 이낙연의 딴살림이 당내 대권전쟁에서 잉태됐듯이, 국민의힘 전 대표 이준석의 분화도 비슷하다. 당 대표 권력 박탈에 항거한 그는 '양두구육, 칼잡이의 아집'이란 표현으로 윤석열 대통령을 겨냥했고, 일종의 소파벌이라 할 윤핵관을 진압하지 못해 반성한다며 탈당했다. 물론 이준석의 이탈에는 기성세대에 저항하는 세대 전쟁의 요소가 엿보인다. 그가 총선에서 파벌을 넘은 근사한 당을 재건할지는 두고 봐야 하겠지만, 당장은 '젊은 세대 이준석계의 태동'이라 하는 것이 맞겠다.더 크게 보면 집권당 국민의힘은 어쩌면 '윤석열-한동훈계'를 탄생시킬지도 모른다. 중앙집권적 한국정당의 역대 공천과정 메커니즘을 상기해 보면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다. 그렇다고 파벌이 마냥 나쁘다는 뜻은 아니다. 뭉치고 흩어지는 것은 정치의 본질이고, 전체주의를 지향하지 않는 다음에야 정치는 우후죽순 다양성을 먹고 자란다. 당장 이낙연·이준석도 가능성은 둘째로 치고 제3지점에서 뭉치자고 하지 않는가.파벌에는 느슨한 연대, 폭력조직을 방불케 하는 위계도 가능하다. 다만 그 연대와 위계를 지탱하는 출처가 중요하다. 정치자금, 학연, 지연의 요인은 약해지고, 신념과 가치, 국가관, 경제·사회·복지 정책의 공유에서 출발한다면 이상적이다. 그렇지 않고 권력을 나누지 못해 분파 전쟁에 나선다면 그건 시간 낭비이자 나라와 국민에게 불행을 보태는 길이다. 이낙연 전 대표의 탈당을 놓고 민주당 내 한 인사가 "그건 배신이자 난동이다. 배신은 처단해야 하고 난동은 제압해야 한다"고 했다. 살벌한 그 말이 실행된다면 최악의 파벌정치 서막이 될 게다. 논설실장논설실장
[자유성] N잡러
공식 등에서는 임의의 자연수 또는 정수를 흔히 N(n)으로 쓴다. 실생활에서도 N은 각자 계산을 뜻하는 신조어 'N빵'을 비롯, 'N수생' 'N포세대' 등으로 자주 소환된다. N잡러(job+er) 역시 4차 산업혁명과 주 52시간 근무제 등 근로환경의 시대적 변화에 따라 생긴 개념이다. 한 사람이 두 가지 이상의 일이나 직업에 종사할 때 그렇게 부른다. 본업이 있지만 경제적인 목적이나 자아실현·취미생활을 위해 자신의 시간과 노력을 들이며 바쁘게 산다는 공통점이 있다.이들 가운데 생계형 N잡러의 삶은 대부분 팍팍하다. 한국노동연구원이 조사한 지난 5년(2018~2022)간 두 가지 이상의 일자리가 있는 취업자 비중은 평균 2%였다. 통계에 잡히지 않은 경우까지 합친다면 훨씬 더 많을 것으로 추정된다. 연구원이 작성한 보고서 '복수 일자리 종사자의 현황 및 특징'에 따르면 단독 일자리 종사자에 비해 일은 더 많이 하면서 수입(시간당)은 상대적으로 더 적었던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주업과 부업의 전반적인 근로여건이 좋지 못하고 불안정하기 때문으로 풀이된다.경기침체와 함께 고물가가 지속되면서 근로시간 및 실질소득 감소에 따른 N잡러의 증가세는 이어질 전망이다. 특히 복수 일자리 종사자 가운데 가장(家長)으로 볼 수 있는 가구주의 비중이 70%에 육박하고, 자영업자 비중도 40%를 넘어섰다. 여성 비율도 2017년 40.7%에서 2022년 46.1%로 높아졌다. 생계형 N잡러가 늘어날 수밖에 없는 구조라면 실태파악과 함께 이들을 위한 안전망도 필요해 보인다. 장준영 논설위원
[월요칼럼] 꿈속의 가상세계
중국 전국시대 사상가인 장자(莊子)가 어느 날 제자에게 이런 말을 했다. "내가 지난밤 꿈에 나비가 돼 꽃 사이를 날아다녔는데 내가 나인지도 몰랐다. 그렇다면 내가 나비가 된 꿈을 꾼 것인가? 아니면 나비가 내가 된 꿈을 지금 꾸고 있는 것인가?" 장자의 '제물편'에 나오는 호접몽(胡蝶夢) 이야기다. 알다시피 장자가 강조한 건 나비가 아니다. 자면서 꾸는 꿈속 세상처럼 현실의 삶도 꿈일 수 있음을 알려 준 것이다. 수많은 성현들의 가르침도 이와 비슷하다. 세상은 꿈과 같고, 이슬과 같고, 안개와 같다고 했다. 인생이 실제보다 환영에 가깝다는 것. 그럴 듯도 싶다. 자면서 꾸는 꿈도 그때는 너무 현실 같다. 그게 꿈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깨어나 보면 모든 게 신기루였다. 꿈에선 나조차도 따로 존재한 것이 아니었다. 다른 사람과 사물, 풍경처럼 그냥 꿈속의 '한 장면'이었을 뿐이다. 그렇다면 현실세계는 다를까. 어쩌면 우리는 눈 뜬 상태로 꿈을 꾸는 건 아닐까.인생이 꿈이라는 건 수긍하기가 쉽지 않다. 오감으로 체험하는 물질세계가 너무나 생생하지 않은가. 불교에선 색즉시공(色卽是空)이란 말로 물질의 실체가 없음을 설파하지만, 과학적 사고로 무장한 사람들에겐 그저 귀신 씻나락 까먹는 소리다. 하지만 그 '과학적 사고'란 게 사실 한물간 것이다. 근본부터가 잘못됐다. 현대의 양자역학은 '색즉시공'을 과학적으로 증명한다. 이중슬릿 실험이란 게 있다. 역사상 가장 충격적이고 아름다운 실험으로 꼽힌다. 결론만 요약하면 이렇다. 빛과 전자는 실험자들이 지켜보면 입자, 그렇지 않으면 파동으로 움직인다. 전자는 물질의 최소 단위다. 즉 물질이란 입자이면서 동시에 파동이란 것이다. 두 상태를 구분 짓는 건 오로지 '관찰'이라는 행위다. 이른바 '관찰자 효과'다. 이를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었던 아인슈타인의 유명한 말이 있다. "내가 달을 보지 않으면 달은 없는 것인가?" 양자역학자들의 대답은 "사실상 그렇다"이다. 우주 만물은 텅 빈 상태로 인간이 의식할 때만 현현(顯現)된다는 것이다. 현실세계의 실재성을 부정하는 건 양자역학자만이 아니다. 세계 최고 갑부 일론 머스크도 시뮬레이션 우주론을 믿는다. "이 세상이 가상현실이 아닐 확률은 10억분의 1"이라고도 했다. 하지만 사람들은 시큰둥하다. 대부분 "그래서 뭐?"라는 식이다. 어쩌면 당연하다. 행복하게 사는 게 중요하지 가상세계이면 어떻고 아니면 어떤가. 그래서 인류는 또 하나의 멋진 가상세계를 만들고 있다. 유발 하라리가 말한 '호모데우스(신적인 인간)'의 전능으로 디지털 유토피아를 창조 중이다. AR, VR, 홀로그래피 기술을 통합한 '메타버스(3차원 가상세계)'가 대표적이다. 게임에서 출발했지만 지금은 사회·경제·문화 등 거의 모든 영역에서 현실세계와 유사한 활동이 이뤄진다. 사람들은 머지않은 미래에 메타버스에서 더 오래 살게 될지도 모를 일이다. 가상세계의 또 다른 한 축은 AI(인공지능)이다. AI의 진화 속도는 너무 빨라 겁이 날 정도다. AI는 인류에게 풍요와 즐거움을 주지만 한편으론 위협적인 존재다. 가짜뉴스와 범죄에 악용되기도 한다. 어쨌건 AI는 이미 인간을 뛰어넘었다. 신이 되는 건 인간이 아니라 AI일 것이란 예측도 많다. 꿈속에서 펼쳐지는 또 하나의 꿈(가상) 세계, 그 미래가 궁금하다. 허석윤 논설위원허석윤 논설위원
[자유성] 작심(作心)
우리나라 성인 가운데 절반 이하가 세계보건기구(WHO)가 권고한 만큼의 신체활동을 하지 않는다는 뉴스가 있었다. 성인의 경우 전 세계 72%가 권고량만큼 운동하는 데 비해 한국은 실천율이 2021년 기준 47.9%에 그쳐 세계 평균보다 크게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 2015년 58.3%에서 6년 새 10.4%포인트 하락했다.나이가 들수록 운동의 필요성을 체감한다. 속칭 '삐끗'하거나 '삐걱'거리는 등 건강에 이상 신호를 느끼면 병원치료나 각종 약물보다 운동을 통한 신체활동이 근본적인 대책이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그래서 강변 산책로나 도시 주변의 운동 시설, 농촌의 논둑길에도 나이 든 장년층이나 노년층이 아침저녁으로 운동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건강한 삶은 모두의 희망이다. 매년 새해 소망 중 건강이 가장 많은 것은 당연한 이치다. 세계보건기구의 분석에서도 나왔지만, 한국인의 희망과 실천 사이의 괴리는 갈수록 사이가 벌어지고 있다. 신년 계획에 '매일 운동'을 화두로 삼지만, 며칠을 못 넘기는 경우가 허다하다. 작심삼일(作心三日)이라는 말이 진리처럼 들리는 이유다.금주나 금연처럼 중독성 강한 행동을 멈추는 것은 힘들지만 운동은 일상생활에서도 쉽게 실천할 수 있다. 다만 용기를 내지 않았거나 귀찮음을 떨쳐내지 못했을 뿐이다. 세계보건기구는 "신체활동이 줄어들면서 다양한 질환의 원인이 돼 전 세계에서 한 해 약 76조원이 의료비용으로 지출되고, 사망자가 늘어 20조원의 생산성 손실이 발생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이러한 분석이 아니라도 자신을 위해 운동하자는 작심(作心)이 삼일마다가 아닌 매일 필요하다. 남정현 중부지역본부 부장
의료대란으로 번진 의대 증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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