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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선과 창] 어둠은 열정의 놀이터
'어둠은 빛을 이길 수 없다.' 성경 구절에서 파생된 이 경구는 본질을 호도하는 사건이나 시국을 성토할 때 즐겨 쓰인다. 정의와 불의를 단순히 빛과 어둠에 빗댄 말에 지나지 않지만, 어둠이 주는 다층적 의미를 생각한다면 저 말이 꽤 불편하게 들린다. 가차 없이 파편화하고 무력화시킬 만큼 어둠은 지는 이미지일까. 몸과 마음이 한 가지이듯 빛과 어둠도 떼어서 생각할 수 없다.빛 앞에서 지옥인 경우도 허다하고, 어둠 속에서 천국인 경우도 흔하다. 모든 빛은 어둠 속에서 태어난다. 뒤뜰 없는 앞뜰은 효율 낮은 반쪽 정원에 지나지 않고, 물 없는 분수대는 허울 좋은 장치에 그치고 만다. 이것은 이기고 지고의 문제가 아니라 상호 보완적이다. 백번 양보해 빛이 어둠을 이겼다 치자. 반짝이는 보석이 될지 빛 좋은 개살구가 될지는 누구도 알지 못한다. 사전에서 어둠을 '어두운 상태 또는 그런 때'라고 정의한다. 불의나 부정의 낌새가 없는 담백한 뜻풀이다. 어둠의 속성은 악이나 불의보다 준비와 역경과 더 잘 어울린다. 어둠 속의 열정, 보이지 않는 곳에서의 피땀 등의 예시 구절이 말해주지 않는가. 간절함이나 절실함 역시 빛이 아니라 어둠을 먹고 산다. 어둠 속에서는 선택의 여지가 없다. 의지만 있다면 목표한 바로 곧장 안내받을 수 있다. 두려움과 불안이 있을지언정 그 막막함이 한 우물을 파게 만든다. 그곳에서는 빛을 그림과 동시에 자기 성찰을 가능케 하는 힘이 생긴다. 차곡차곡 성실하게 암중모색의 의미를 체화할 수도 있다. '빛보다 어둠이 숭고한 사상을 더 많이 만들어 낸다'는 명제가 참이 되는 순간이다. 새해다. 각 신문사의 신춘문예의 턱을 넘은 작가들이 수십 명 탄생했다. 축하와 동기부여의 의미로 찬찬히 그들 면면을 살펴본다. 하나같이 어둠이 빛을 쉬게 하는 그 시간을 잘 견뎌냈다. 그들에게 어둠은 꽃 피우는 준비 기간이었다. 빛의 시간을 유예한 채, 어둠 속에서 시간을 벼리고 벼렸다. 언제 끝날지도 모를 그 동굴에서 다채롭고 입체적인 자신만의 캐릭터들과 동고동락했다. 신문사들이 원하는 당선자의 요건은 수십 년째 한결같다. '젊고 패기 넘치는'이 빠지지 않는다. 이 말이 육체적인 의미로 한정되는 것이 아님이 얼마나 다행인지. 결기 우뚝한 채로 어둠의 시간을 연마한 모든 예비문학도는 젊고 패기 넘칠 준비가 되어 있다. 실제 다양한 이력의 당선자들이 그 사실을 증명해준다. 예외 없이 이번에도 청춘의 발랄함 못지않게 중년 이후의 진중함을 지닌 등단자들도 제법 보인다. 특수한 여건에 있는 경우나 고령의 등단자에게 마음결이 닿는 건 어쩔 수 없다. 나는 어둠을 연민하는 사람인 데다, 그들의 열정이나 패기가 '어두운 상태 또는 그런 때'를 오랫동안 친구로 삼았음을 상상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제 빛의 길이 열린 것일까. 안타깝게도 신문 지면을 장식한 대부분의 당선자는 반짝하고 사라지고 만다. 너무 쉽게 빛의 시간을 동경한 나머지 자신이 건너온 어둠의 강물을 잊어버리기 때문이다. 많이 쓰고 오래 쓰는 자가 살아남는다. 참신한 패기의 기준은 의외로 간단명료하다. 어둠을 마다치 않고 숙성할 수 있는 끈기가 전부이다. 이는 스스로를 단속하는 말이기도 하다. 쓰는 자에게 최대 강적은 잠깐의 빛 뒤에 오는 오랜 침묵이다. 빛과 어둠이 한 몸인 걸 안다면 빛의 쓰레기더미보다 어둠 속 원석에 집중할 일이다. 음지에서 음흉한 일을 하면 공공의 적이 되지만, 열정을 다하면 반기는 손님이 된다. 어둠 없는 빛의 발산이 어디 있을까. 어둠은 빛을 빛이게 하는 맞춤형 쉼터이자 치열한 놀이터다.김살로메 <소설가>김살로메 소설가
[정성화의 자연과 환경] 인구 80억, 세계를 구할 과학기술
UN은 2022년 11월15일 세계 인구가 80억명을 돌파했다고 발표하였다. 세계 인구가 20, 30, 40, 50, 60, 70, 80억명을 돌파한 시기가 1925, 1959, 1974, 1987, 1999, 2011, 2022년임을 회상하면, 매 10억명씩 증가하는 기간이 지금까지는 줄어드는 추세였다. 앞으론 세계 인구의 전반적 성장률이 둔화해 향후 10억명이 늘어 90억명이 되는 시점은 15년 뒤인 2037년이고 2086년경 104억명의 최고점을 찍은 후 2100년까지는 큰 변화가 없을 것으로 예상되었다. 우리나라를 포함한 많은 나라는 저출산으로 인해 '인구 절벽'의 위기 상황에 놓여 있기도 하지만 앞으로 60여 년간은 세계 인구가 계속 늘어날 것으로 예측되고 있는 것이다."세계 인구 80억명은 인류 발전의 새로운 이정표이다. 보건 분야의 발전에 경탄한다"고 안토니우 구테흐스 유엔 사무총장이 말한 것처럼 세계 인구 80억명은 기념비적인 사건이지만, '인구 폭발'은 식량부족, 지구온난화에 따른 이상기후, 환경오염, 생물다양성 손실 등의 전 지구적인 많은 문제를 야기할 수 있다. 한편 현재 지구가 수용 가능한 인구는 대략 44억명 정도이므로 지구가 2개 정도 필요한 셈이고 환경과 자원 측면에서는 인구가 너무 많고 우리는 후세의 자원을 가불하여 산다고도 할 수 있다.약 200년 전인 1798년에 토머스 맬서스는 '인구론'이란 저서에서 "인구의 자연적 증가는 기하급수적이나 식량은 산술급수적으로만 증가한다"며 인구의 증가에 따른 식량부족 외에 빈곤, 기아, 전쟁, 전염병 등의 다양한 문제점을 경고하였다. 그러나 다행히 비료와 농약 등의 개발로 식량 생산이 매우 크게 늘어 현재까지는 식량의 위기는 크지 않다. '사이언스히어로즈닷컴(www.scienceheroes.com)'에서는 '생명을 많이 구한 과학자', 즉 훌륭한 기술 개발로 인류를 구원한 역사적인 기여를 한 과학자 순위를 발표하고 있는데, 독일의 과학자 프리츠 하버와 카를 보슈는 질소 비료의 원료인 암모니아 합성법을 개발하여, 23억명의 생명을 구한 기여로 공동 1위로 평가되고 있다. 또한 현재 세계 인구의 약 절반은 합성비료가 없었다면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할 정도로 하버와 보슈의 기여는 매우 큰 것으로 볼 수 있다. 하버와 보슈의 암모니아 합성법처럼 현재의 인구증가로 인한 다양한 문제를 해결할 새로운 대단한 기술도 언젠가는 출현, 인류를 구하지 않을까 기대한다. 예를 들면, 핵융합 혹은 인공태양 기술이 상용화되어 에너지 걱정이 없는, 인구 증가가 부담이 되지 않는 미래가 오길 새해를 맞으며 기원해 본다.경북대 화학과 교수경북대 화학과 교수
[이하석의 발견과 되새김] 버려진 책들은 어디로 쌓이나
-쌓이는 책책이 골칫거리가 되어 가는 듯하다. 언젠가 평론가와 지리산의 한 카페를 방문한 적이 있는데, 그 주인이 백두대간을 혼자서 주파한 여성이라 화제가 됐다. 그녀가 그 사실을 쓴 책을 우리에게 한 권씩 선물했다. 평론가는 받는 걸 주저했다. 당연히 고마워하며 받을 줄 알았는데, 주저하는 까닭을 묻자 그가 내게 귓속말을 했다. "집에 책이 많아서 골친데, 그 위에 또 한 권을 얹어야 하는 부담 때문에…."일 년 전 많은 책들을 도서관에 기증했는데(도서관 기증이 10여 년 동안 몇 번이나 이루어져, 다 합치면 수천 권은 되리라!), 그새 또 책들이 쌓였다. 주로 시집들이다. 매일 부쳐오는 책들과 잡지들이 두세 권씩은 된다. 그게 쌓이니 그새 시집들만도 수백 권이 되는 것이다. 받는 즉시 책장을 넘기며 일별하고, 눈길이 가는 책들은 몇 번씩 읽기도 한다. 그다음 쌓아두고는 한숨을 쉬는 것이다. 책을 보내주는 저자들에게는 고마움을 느끼지만, 책들이 쌓인다는 게 여간 부담스럽지 않다. 결국 또 기증할 데를 찾게 된다. 책벌레란 소리를 들을 정도로 독서에 엄청나게 몰두했던 때가 있었다. 1960~70년대에는 학생 신분임에도 불구하고 서점과 헌책방들을 뒤지며 책을 사 모으는 게 취미가 되다시피 했다. 당시 나오기 시작한 문고본들을 포켓에 꽂고 다니며, 읽기에 여념이 없었지. 책을 모으다 보니 자연스럽게 서재의 꿈을 꾸게 되었지. 결혼 후 겨우 집을 얻고, 작지만, 그 집의 한 방을 글을 쓴다는 핑계로 차지해 서재를 꾸미던 그 흡족함. 그랬던 것이 이제는 책이 짐이 된다니, 이 무슨 모순인가? 나만 그런 게 아니다. 주변에서 책들을 처리하는 문제로 대부분 골치를 앓는다는 소리를 듣는다. 많은 교수들이 정년퇴임 후 가장 큰 문제가 책 처리라고 한단다. 감당이 안 되는 중요 자료들의 처리가 난제 중의 난제란다. 어떤 교수는 연구실 밖에 책을 쌓아 두고 학생들이든 누구든 필요하면 가져가라 했지만, 가져가는 이들은 극소수였다고 털어놓는다. 도서관마다 책들을 받기를 꺼려, 그중 상당수가 폐지로 나가기도 한단다. 어쨌든 책의 쓰임새와 더불어 욕망과 기대가 현저하게 줄어들고 있는 추세다. "뉴미디어·전자출판 실용화로방대한 자료 인터넷으로 검색문학·책의 시대 종언 예견에도책은 사라지지 않고 발전·진화새 멀티미디어의 등장과 함께지식의 기본적 그릇으로 존재"-도서관들책들을 버리는 데도, 도서관들은 왜 이리 많아지기만 할까?나는 책들을 묶어서, 승용차에 바리바리 싣고 도서관으로 간다. 다행히 시집들을 흔쾌히 받아준다고 했기 때문이다. 안동 시내 들기 전 남선면 놉실로의 농촌으로 빠져 잠시 달리면, 노암마을의 논들 가운데에 '시집작은도서관 포엠'이 있다. 코밑과 턱에 성글게 수염을 기른 피재현 시인이 운영하는 도서관이다. 차를 마시며 도서관 운영에 대해 듣는다. 그동안 전국에서 책을 보내오는 문인들이 더러 있었단다. 그러나 상시 이용자들은 적은 모양이다. 농촌 구석에 이색 도서관이 생긴 건 멋진 일이지만, 그 일에 호응하는 이들은 많지 않은 것이다. 그럼에도 이런 도서관들이 생기는 건 얼마나 다행스러운 일인가? 시든 소설이든 장르에 따라, 또는 전공별로 특수한 도서관이 있어서, '버려지는 귀중한 전공서적들'을 수합하여 요긴하게 쓰이는 것은 바람직한 일이다. 전국적으로 그런 도서관들이 많이 생긴다. 안동만 해도 작은 도서관이 14개나 된다. 개인 도서관이 대부분이지만, 공설도 있다. 그중 가장 인기 있는 도서관은 어린이 대상 도서관이다. 특히 그림책 도서관이 인기란다. 농촌 마을을 들렀을 때 도서관이 있는 걸 보면 괜히 기분은 좋다. 책이 사라지는 현실에서 이처럼 도서관들이 늘어나는 건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책의 향수책이 버려지는 건 일찍이 예견됐다. 이건 물론, 내가 책을 버리는 문제와는 전혀 다른 문제다. 2000년을 앞두고 많은 문예지들은 문학의 전망을 우려하는 기획을 통해 책의 시대의 종언을 우울하게 예언했다. 대구 계명대서 열린 문학의 전망 관련 세미나에서 나도 토론자로 참여했는데, 발제는 물론 토론에서도 온통 우울한 전망뿐이었다. 책의 시대의 종언은 뉴 미디어, 곧 인터넷의 발전 탓이다. 컴퓨터를 이용한 전자출판이 나타나더니, 점차 상업적으로도 호황을 누리기 시작한다. 정보의 검색도 엄청나게 이루어진다. CD-ROM에 데이터를 내장한 각종 사전이 나오고, 검색전용의 단말기도 시판된다. 전자출판이 실용화된다. 이러한 뉴 미디어 시대가 올드 미디어의 대표적인 책을 도태시킨다고 보는 것이다. 지하철을 타면 승객들 대부분이 휴대폰을 들여다보면서 뭔가를 읽고 있다. 휴대폰의 정보를 뒤적이는 저런 건 어떤 독서의 모습인가? 그래, 나 역시 글을 쓸 때는 책이나 도서관 이용보다는 우선 인터넷의 엄청난 정보에 의존하는 경우가 많다. 책을 버리는 이가 많다고 했는데, 사실 대부분의 논문들이 인터넷에서 검색이 가능하니, 굳이 가지고 있을 필요가 없단다. 조선왕조실록의 방대한 자료들을 서재에 두면 '폼'은 나지만, 실제로는 인터넷 검색이 가능하기에 굳이 가지고 있을 필요가 없다는 식이다. "새로운 전달 미디어가 출현할 때마다 책의 시대가 끝나리라는 우려가 있어 왔다. 그러나 그때마다 책은 사라지지 않았고 오히려 새로운 미디어와 함께 더욱 발전해왔다"는 반론이 제기되기도 한다. 새로운 미디어가 책의 생명력을 더 강하게 한다는 게다. 멀티미디어 시대가 도래하면 어떻게 될까? 그에 따른 책의 형태와 제작 과정, 그리고 유통의 변화가 나타나겠지만, 여전히 지식의 기본적인 그릇의 역할을 할 것이란 전망도 있다.어쨌든, 우리 같은 족속들에게 계속해서 쌓이는 책들은 책의 운명과 상관없이 골칫거리다. 아파트 문화에 적응하다 보니, 잦은 이사가 부담되고, 책을 쌓아둘 공간이 없어지기 때문일까? 책이 아니어도 인터넷을 뒤적이며 읽는 그 정보 캐기가 무한정이기 때문일까? 그런 가운데서도 제대로 된 서재에서 '만권서'에 싸여 독서삼매에 빠진 이들도 여전히 존재한다는 사실에 우리는 고개를 숙이며 격려를 보낸다.시인시인
[3040칼럼] 인간의 활동, 기술 그리고 지구 환경의 미래
최근의 디지털 기기는 사용자 맞춤의 기사를 우선적으로 보여주는 기능이 연동되다 보니, 필자는 지금도 폐플라스틱 등이 야기하는 환경 문제 등을 여러 형태의 기사로 접하였다. 1967년 개봉한 영화 '졸업'에서 대학을 갓 졸업한 더스틴 호프만에게 아버지의 친구는 엄청난 미래 성장 아이템인 것처럼 '플라스틱'을 언급한다. 편안하고 윤택한 삶의 매개체로 우리 삶에 매우 친밀한 플라스틱은 가볍고 튼튼하여 운송 과정의 경량화로 환경에 도움이 되는 것으로 평가받았지만, 지금은 환경 오염 논의에서 빠지지 않는다. 안타깝게도 디지털 활동 역시 상당량의 탄소 발자국을 남기며 환경에 영향을 준다. 더구나 디지털 세상은 사용자의 접속을 오래 유도하기 위한 산업으로 급변하고 있으니, 탄소 발자국은 자연스레 더 길어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친환경일 것만 같았던 여러 기술의 실상을 깨닫고 보면, 지구 환경의 미래에 대한 고민은 더 깊어질 수밖에 없다.전기차 산업에 대한 기대와 더불어 일반인에게도 매우 친숙해진 리튬이온전지에 대한 연구개발은 1980년대까지 거슬러 올라가지만, 이와 관련된 특허출원 건수는 2000년대 초반을 기점으로 폭증한다. 이 무렵은 국내기업에 의해 휴대용 MP3플레이어가 세상에 처음 등장하였고, 홀로 즐기는 개인적 여가에 대한 가치가 새롭게 주목받은 시기라 할 수 있다. 이후 외형과 내적 콘텐츠가 급변한 휴대용 전화기가 컴퓨터의 기능을 일부 흡수하고, 온라인 활동의 주된 출입구가 되면서 정보기술(IT) 산업은 새로운 전기를 맞이한다. 이와 궤를 함께하며 2010년을 기점으로 에너지 저장과 관련된 기술의 특허출원은 비약적으로 증가세를 보이기 시작하는데, 이는 친환경 에너지 기술에 대한 관심을 반영한다. 즉 디지털 세상을 넓혀온 IT와 환경기술(ET)은 에너지 기술에 대한 의존성이 매우 크다고 볼 수 있다. 값싸고 눈에 쉽게 띈 덕분에 환경오염의 상징이 된 플라스틱도 석유 자원에서 근거함을 본다면, 인간 삶의 윤택함은 화학 기술을 기반으로 하는 에너지 산업의 규모와 비례한다. 현재까지 2차전지 관련 특허 출원은 국가별 현시기술우위지수로 보면 일본을 앞질러 우리나라의 전지 산업에 대한 집중도는 전 세계에서 가장 높은 것으로 평가된다. 즉 우리 기업들이 반도체에 이어 차세대 먹거리에 집중 투자하고 있음을 나타낸다. 하지만 다양한 기술의 집약체로 IT와 ET혁명을 주도하는 반도체와 전지 산업은 불행히도 채굴 및 생산과 폐기에서 상당한 환경 오염을 유발하고 있음을 주목해야 한다.인류의 역사는 다수의 만족을 위한 이념으로 민주주의라는 형태를 도출하였다. 그리고 1900년대 중반까지 세계전쟁과 심각한 불황 등을 겪으면서 지구 공동체의 조율을 위해 다양한 결정 의사기구가 등장하였다. 그 과정에 기술혁명은 산업의 발전과 의료 혜택의 확장으로 폭발적인 인구 증가세를 유도하였다. 각국이 환경 문제를 논의할 때, 다양한 핑곗거리를 찾지만, 간단히 보면 환경 오염 문제는 인간의 활동과 비례하며 이는 자본주의 시스템의 근간이 되는 경제 문제와 직결된다. 모든 활동은 에너지를 요하고, 어떤 형태로든 부산물을 내놓게 된다. 불행히도 완전히 친환경적이면서 편안한 기술은 쉽게 완성되기 어렵다. 기술이 야기한 환경 문제를 다른 기술로 해결하려는 접근법의 유효성이 명확하게 보이지 않는 지금, 불편함을 감수하는 삶의 형태에 대한 고민과 실천이 환경에 더 빠른 가시적 효과를 줄 것이다. 박치영<DGIST 에너지공학과 교수>박치영 DGIST 에너지공학과 교수
[시시각각(時時刻刻)] 'CES 2023'이 우리에게 주는 메시지
매년 1월 초 라스베이거스에서는 세계 최대 IT·가전 전시회인 CES가 열린다. CES는 새해 초에 기술 혁신의 방향성을 제시한다는 측면에서 IT 기술 종사자뿐만 아니라 전 세계인의 이목이 집중되는 중요한 행사이다.CES 2023에는 174개국의 2천400여 개 기업이 전시에 참여하였고 약 12만여 참관객이 관람하였는데, 이는 팬데믹 발생 이후 최대 규모로 진행된 것으로 코로나 이전 대비 70~80% 수준 규모로 회복되었다. 특히 이번 CES 2023은 단골 아이템인 가전·모빌리티를 넘어 신성장 동력으로 꼽히는 메타버스, 로보틱스, 인공지능(AI), 클라우드 등 다양한 차세대 기술의 볼거리뿐만 아니라 새로운 사업 기회의 단초를 제공하였다.그렇기 때문에 국내외 주요 기업의 CEO를 비롯한 경영진이 CES 방문을 잊지 않으며, 그들은 CES에서 글로벌 기술과 제품 트렌드 파악은 물론 비즈니스 협력과 미래 전략을 공유한다. 우리나라는 삼성전자, LG전자를 비롯하여 대기업, 중소기업, 스타트업 총 550여 개 기업이 참가하였는데 이는 미국 다음으로 참가기업 수가 많은 것이었다. CES를 주최하는 미국 소비자기술협회(CTA)가 시상하는 'CES 혁신상' 620여 개 중 한국 기업이 139개를 수상하는 쾌거를 이루기도 하였다. 대구·경북에서도 44개 업체와 더불어 홍준표 대구시장, 이달희 경북도 경제부지사, 이강덕 포항시장 등이 방미단을 이끌고 참여했다. 대구시는 '대구공동관'을 꾸려 대구테크노파크, 로봇기업진흥협회와 함께 대구 알리기에 나섰고, 포항시는 기존 경북관, 포스텍관과 함께 '포항관'을 통해 포항기업 홍보에 나섰다.대기업, 중소기업, 스타트업을 막론하고 기업 및 경영진의 CES 2023 참가 목적은 최신 IT 트렌드 파악을 통해 미래 성장 동력을 발굴하고 잠재 고객 및 시장을 선점하려는 데에 있다. CES 2023에는 한층 진화한 모빌리티, 인공지능(AI), 메타버스 신기술이 소개되었다. 예를 들면 구글은 음성명령만으로 차량을 제어하고 구동하는 자동차 운영체제 '안드로이드 오토'를 구현했고, 니콘은 광학기술 기반 로봇을 선보였으며, 삼성전자는 스마트싱스 스테이션을 통해 스마트 홈 건설을 위한 초연결 시대를 제안하였다. 이렇듯 CES 참가 기업들이 세상에 없던 새로운 기술을 선보이게 된 것은 코로나 팬데믹과 경기 불황에도 불구하고 기술 개발 및 연구에 지속적인 투자를 한 결실인 것이다. 대부분의 기업은 경기 불황이 오고 경제 상황이 어려우면 투자를 축소하고 기술 개발 및 연구를 소홀히 하는 경향이 있다. 사실 경기 침체가 온다고 하더라도 시장 변화 속도가 늦춰지는 것도 아니고, 글로벌 경쟁이 덜 치열해지는 것도 아니다. 오히려 경기 침체기에는 실용의 신기술로 무장하여 경기 침체의 강을 건너고 초격차 기술을 개발하는 역발상이 필요한 것이다. 경기 침체기에 기업이 기술 개발과 연구에 대한 적극적인 투자를 하기 위해서는 정부의 지원이 필수적이다. 정부는 신기술 육성을 위하여 우선적으로 다른 나라에서 허용되고 있는 원격의료나 프롭테크 등 기술에 대한 규제를 혁파하여야 하고, 동시에 세제, 금융 분야 지원을 통해 경쟁국 기업들과 대등한 여건에서 기술 개발 및 연구에 투자할 수 있는 기업환경을 조성하여야 할 것이다.박윤하 <우경정보기술 대표>박윤하 우경정보기술 대표
[박재열의 외신 톺아보기] 우간다 대통령 부자
우간다라고 하면 우리는 엽기적 독재자였던 이디 아민을 떠올린다. 그를 쫓아내고 또 학살정치를 편 자가 밀턴 오보테이고, 이 오보테를 쿠데타로 축출하고 1986년부터 현재까지 37년째 독재하고 있는 자가 요웨리 무세베니 대통령이다. 이제 6선 대통령이다. 그는 연임과 나이 제한이 있던 헌법을 뜯어고쳤고 지난번 대선에서는 야당 후보를 감금하고 당선되었다. 그도 이제 78세에 접어 들다 보니 권력을 아들에게 물려주고 싶다.그 아들이 좀 엉뚱하다. 무후지 카이네루가바(48) 육군대장인데 아버지는 그가 스펙을 쌓도록 많은 기회를 만들어 주었다. 문제는 아들이 너무 가볍게 트위터에 생뚱맞은 글을 올려 국민을 실망시키는 데 있다. '내가 아버지의 대통령직을 승계하도록 하겠다.' 아버지가 변명해야 했다. '내가 곧 제대하고 출마를 하겠다.' 아버지는 '그런 일 없다. 8년 후에야 제대시킬 것'이라고 했다. 아들이 또 느닷없이 푸틴을 지지한다고 하여 국민이 술렁이자 그것은 그 녀석의 독단적 생각일 뿐이라고 또 둘러대야 했다. '케냐의 수도를 점령해 버리겠다.' 아버지는 케냐 국민에게 손이 닳도록 사과를 해야 했고 아들을 육군 사령관직에서 끌어내렸다. 그러면서 별을 하나 더 달아 대장으로 승진시키고 생일잔치를 호화판 국빈만찬 급으로 베풀었다. '제발 트위터 그만 내려놓고 다른 나라 내정간섭 하지 말라.' 아들은 콧방귀를 뀌었다. '어느 누구도 내 트위터를 뺏을 수 없으며 대통령은 꼭 되고 말 테다.' 그래도 아버지는 헌법을 적당히 주무른 뒤 의회에서 제 아들을 대통령으로 선출해 주길 바란다. 우간다엔 여태 이디 아민이 사라진 적이 없다. 경북대 명예교수·시인박재열 (경북대 명예교수·시인)
[단상지대] 혼자가 익숙한 세상, 함께 살기를 말하기
혼자 할 수 있는 것은 많아도 혼자 살 수 있는 사람은 없다. '혼자'라는 단어를 아주 자연스럽고 다양하게 사용하고 있는 요즘, '함께 살기, 공동체'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공동체의 사전적 의미는 생활이나 행동 또는 목적을 같이하는 집단을 뜻한다. 개인이 아닌 여럿이 같은 생각을 갖고 같은 방향으로 생활해 가면서 더불어 사는 세상을 만들어가자는 것이 공동체의 본질이다. 나의 가치관이 내 생활에서 실천되고 나아가 공공성으로 확산되기를 바라는 사람들이 대화나 사건을 통해 만나면서 창조적 공동체가 형성된다. 한 사람의 일상적 삶의 변화로 시작해서 그가 속한 공동체에 선한 영향력이 퍼져나가고 결국 구성원들의 삶의 질이 높아지며 함께 잘 살 수 있는 공동체를 이루게 된다. 그런 의미에서 공동체는 여럿이 어울려 살아가는 아주 구체적인 삶 자체이다. 공동체성을 강조하는 훌륭한 의견들은 많겠지만 시민단체 활동가의 입장에서 바라는 우리 지역의 공동체성을 높이는 실천적 행동 몇 가지를 제안하고자 한다. 첫째, 자신을 비롯한 모든 생명을 귀하게 여기고 존중하며 긍정적인 피드백을 통해 존재 자체를 존중하는 가치관을 확고히 한다. 나도, 너도, 모두가 그냥 존재하는 인생이 아니다. 언젠가는 삶의 여정에서 빛을 내는 소중한 존재이다. 둘째, 나와 다른 사람과의 관계가 연결되는 의사소통 과정에서도 겸손함이 필요하다. 다양한 생각에 대해 옳고 그름을 판단하는 것이 아니라 상대에 대한 인정과 수용이 있는 대화로 의사소통할 때 언어폭력과 갈등을 조정할 수 있다. 셋째, 자신의 입장에서 다른 사람을 배려하는 것은 진정한 배려가 아니다. 내가 하는 입장이 아닌, 그것을 받아들이는 사람의 입장에 서는 역지사지(易地思之)의 활동이 진정한 배려이다. 넷째, 기후위기의 시대임을 감안하여 대중교통 이용을 조금씩 늘리고 제한된 자원을 지속 가능하게 활용하며 함께 자원을 사용하는 삶을 산다. 아나바다에 참여하고 제로웨이스트숍을 이용하는 것, 탄소중립을 실천하는 첫걸음을 시작해 보자. 다섯째, 예절을 지키고 양보하는 마음으로 공동체의 약속과 규칙을 지킨다. 일상의 약속과 규칙을 지키지 않으면 불편하고 손해를 보는 누군가가 생기기 마련이다. 여섯째, 시간을 내어 자신이 가진 재능과 지식, 물질을 자원해서 나누는 자원봉사활동은 이웃과의 연결망을 더 단단하게 묶어주는 아름다운 삶의 방식이다. 일곱째, 자기 주도적인 선택과 활동도 필요하다. 그런데 이웃을 지지하고 협력하는 활동이야말로 조화롭게 살아가는 방식이다. 여덟째, 보살핌과 협동을 통해 변화를 일으키는 기부 실천을 들 수 있다. 내가 직접 할 수 없는 일을 대신하고 있는 단체를 후원하면서 세제 혜택까지 받을 수 있다. 소액 기부부터 시작하자. 아홉째, 내가 있는 곳을 누군가를 맞이하고 소소한 일상을 나누는 환대의 공간으로 만들어보자. 지금 이 순간, 그 누군가가 들어올 수 있도록 인정, 신뢰, 격려, 희생, 나눔 등이 있는 환영받고 환영하는 자리가 될 수 있게 각자의 방식으로 만들고 초대하자. 마지막으로 공동체성을 높이는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실천하는 힘이다. 나부터 실천하는 노력이야말로 공동체의 변화를 불러오는 씨앗이 되고 바람이 된다. 함께 살아가기보다는 나 혼자 잘 살면 되는 각자도생이 팽배한 사회이다. 그럴수록 방향을 바꿔 함께 사는 '살 만한' 모습으로 삶의 양식을 바꾸는 공동체성이 회복되기를 바란다. 최윤정 (대구YWCA 사무총장)최윤정 (대구YWCA 사무총장)
[송재학의 시와 함께] 김경인-여름의 할 일
올여름의 할 일은 모르는 사람의 그늘을 읽는 일느린 속도로 열리는 울음 한 송이둥글고 오목한 돌의 표정을 한 천사가뒹굴다 발에 채고이제 빛을 거두어땅 아래로 하나둘 걸어 들어가니그늘은 둘이 울기 좋은 곳고통을 축복하기에 좋은 곳 김경인-여름의 할 일 그늘은 오래전부터 시인들에게 매혹의 소재였다. 서정과 사유의 주름을 모두 가진 질료이다. 올여름의 할 일은 모르는 사람의 그늘을 읽는 일이라고 생각할 때, 모르는 사람과 그늘이 번갈아 읽는 이의 가슴에 들어와 서늘하게 자리 잡는다. 그늘은 천사가 행사한 일이라는 구절 때문에 나의 그늘을 생각하는 사이에 그늘은 내면성을 획득한다. 천사가 빛을 거두어 생성된 그늘의 캐릭터는 상처를 입은 자와 상처를 위로하는 자의 공유 면적이면서, 고통이 왜 필요한가라는 지점이 머무는 곳이다. 상처와 고통이 반드시 우리에게 필요하다는 운명을 생각한다면 그늘은 생을 위한 시공간이다. 시인송재학 (시인)
[여의도 메일] 칠곡할매글꼴이 쏘아올린 새로운 지방시대
"여한이 없심니더."지난 12일, 대통령 연하장에 사용된 '칠곡할매글꼴'로 유명해진 김영분, 권안자, 이원순, 이종희, 추유을 할머니 다섯 분과 윤석열 대통령의 만남이 성사됐다.평균 연령 80세를 훌쩍 뛰어넘는 할머니들이 '성인문해교실'에서 처음으로 한글을 배우고, 이를 보존하기 위해 4개월간 각각 2천장에 달하는 종이에 손수 글씨를 써가며 연습한 자랑스러운 결과물이다. 할머니들의 글씨는 한컴오피스·워드 등에 정식 탑재됐고 국립한글박물관은 글꼴을 휴대용 저장장치에 담아 유물로 영구 보존하기로 했다. 필자 역시 칠곡할매글꼴을 지역주민뿐 아니라 많은 국민께 선보이기 위해 어르신들의 글꼴로 2020년 12월 의정보고서를 제작했었는데, 이제 칠곡할매 어르신들의 손글씨는 단순히 글자를 뛰어넘어 문화유산으로서 기록되고 있는 것이다.할머니들의 손글씨를 보존하기 위해 시작된 프로젝트가 지역의 문화관광자원으로 개발·활용되는 사례를 보면서, 대구·경북 지역의 국회 예결위 예산안등조정소위 위원으로서 2023년도 예산안 심사 당시 중점을 둔 부분들이 생각났다. 지역 숙원사업 해결은 물론 미래먹거리 창출을 위한 신산업 발굴과 이를 통한 지역경제 활력 제고에 초점을 맞췄다.윤석열 정부는 역대 정부 중 처음으로 대통령직인수위원회에 지역균형발전특위를 설치했고, 대통령 또한 첫 공식 국무회의에서 "어느 지역에 살든 상관없이 국민 모두 공정한 기회를 누려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철우 경북도지사(대한민국시도지사협의회 회장) 역시 "지방시대의 성공은 지방소멸을 넘어 지방 전성시대를 열어 지방 정주시대를 여는 것"이라고 말했다.여기에서의 핵심은 '진정한 지역 주도 균형발전 시대'를 열자는 것이다. 지자체가 스스로 고유한 특성을 살릴 수 있도록 지원하자는 것이다. 지역특화산업 발굴·육성으로 양질의 일자리를 창출하고, 지역사회의 자생적 창조역량 강화를 통해 지역 맞춤형 경제 생태계를 조성해야 한다.이에 예산소위 위원으로서 필자는 영일만 횡단구간 고속도로와 문경~상주~김천선 연결철도 건설 기본계획 수립 등 SOC 분야 예산확보로 하드웨어 구축뿐 아니라, 각 지역의 특성이 결합된 미래먹거리 발굴을 위한 신규사업에 초점을 맞췄다. 첨단 농기계 실증 랩 팩토리 조성과 양봉바이오 치유산업 혁신밸리 조성 및 국립참외연구소 건립을 위한 타당성 조사, 낙동강 문화권 에코 뮤지엄과 한류 메타버스 전당 조성, 심해과학연구센터 건립 등이 대표적인 사례이다.물론 이러한 성과에도 불구하고 아쉬움은 있다. 재정자립도가 취약한 지방 도시가 자체적으로 고유한 특성을 살려 산업으로 발전시키기 위해서는 선제적으로 국가 재정을 투입할 필요가 있지 않겠나. 그런데 부처의 지방 이양 사업으로 분류되었거나 민간에서 추진해야 한다는 논리로 국비 지원은 불가하다는 재정 당국을 예산안 심사 과정에서 설득하는 작업은 쉽지 않은 일이었다.그러나 지역이 주도하는 지방시대를 열지 않으면 대한민국은 재도약할 수 없다. 지역 혁신을 통해 역동적인 대한민국을 만들어야 하고, 그 시작은 지역 특성에 맞는 신산업 발굴이다. 필자는 올 한 해 새로 추진 예정인 지역 미래먹거리 사업들이 차질없이 추진될 수 있도록 대구·경북 지역 국회의원들과 꼼꼼히 점검해 나가면서, '함께 잘사는 지방시대 원년'을 만들기 위해 최선을 다할 것이다. 정희용 국회의원 (국민의힘)정희용 국회의원 (국민의힘)
[아침을 열며] 교육정책은 일관성이 있어야 한다
아이를 잘 키우는 일은 모든 가족의 가장 중요한 관심사이면서 어떤 부모라도 소홀히 하지 않는 일이다. 성장에 필요한 양육 여건을 마련하는 일은 물론이고 여러 기회를 보장하면서 사회성을 키우고 규율을 전수하는 일에 이르기까지 어느 하나 가벼이 해도 될 일은 없다. 아이를 잘 키우는 일은 개별 부모만의 관심사도 아니다. 아이 하나를 키우기 위해서는 온 마을이 나서야 한다는 말이 있다. 아이를 잘 키우는 일이야말로 가족, 학교, 사회, 국가가 함께 힘을 모으고 모두 노력해야 할 힘든 과업이다.아이를 잘 교육하고 훌륭하게 성장시켜 건강한 사회 구성원으로 만드는 일은 여간 힘든 일이 아니다. 아이를 뒷바라지할 넉넉한 물질적 여건을 비롯하여 안정된 가정환경, 바람직한 또래 관계, 우수한 교육환경, 우호적 사회환경 등이 필요하다. 아이에게 안정된 생활 여건을 마련하고 잘 보살피면서 훌륭하게 성장시키는 일에 있어서는 다른 어떤 주체들보다 부모의 역할이 가장 우선하여 강조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특히 아이 교육에 있어서 부모의 역할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경향이 강하다.특히 아이의 안정적 성장에는 부모의 일관성이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 정서적으로 안정된 부모-자녀 관계와 물질적으로 풍족한 여건 속에 아이들은 다양한 시도를 하며 성장한다. 이때 일관성은 아이에게 안전감과 자기 확신을 주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 일관성 있는 부모는 아이에게 부모가 원하는 바와 원하지 않는 바를 명확히 인식하게 하며 상황이 바뀌어도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 예측할 수 있게 해준다. 일관성 있는 양육이 정서적으로 안정되고 합리적으로 행동하는 주체적인 아이를 만든다.한 가정에서 아이를 잘 키우는 일 못지않게 중요한 일은 국가의 교육이 바로 서는 일이다. 한동안 어수선하던 교육 정책이 다시 안정적으로 추진되기 시작하였다. 작년 새 정부 출범 이후 교육부 장관을 임명하기까지 여러 논란이 있었고 새 장관이 섣부른 정책으로 여론의 뭇매를 맞고 조기 낙마하는 혼란을 거치면서 정부의 교육 정책이 상당 기간 표류한 일은 여러모로 아쉽다. 이주호 장관이 취임하면서 교육부가 새 정부의 교육 철학을 담은 정책을 착착 발표하고 있는 것은 환영할 일이다.교육부 예산이 늘어나고 새로운 정책이 발표되었다. 교육부 발표를 보면 기존에 추진되어온 정책을 이어받거나 고도화한 정책도 있고 새 정부 국정철학에 맞춰 새로 추진하는 정책도 있다. 재정 지원 계획도 촘촘하게 마련되어 있다. 일부 정책을 둘러싸고 현장의 볼멘소리도 있고 사안에 따라 반발도 있지만 재정 지원을 앞세운 정책에는 어떻든 적응하는 것이 현장이다. 정부가 추진하는 정책은 기존 정책과 맥락이 닿아 있든 아니든 재정 지원과 연계되어 있으니 교육 일선에서 어떻게든 실천될 것이다.교육 현장에서는 대통령이 선출되거나 교육부 장관이 임명되면 교육 정책이 어떻게 바뀔지 깊은 관심을 가지는 일이 연례행사가 되었다. 일선에서는 교육부가 발표하는 정책을 꼼꼼하게 살펴보면서 나름의 대응책을 마련하여 적응할 것이다. 대통령의 국정철학과 장관의 교육관에 따라 정책이 다시 수립되는 일은 필요하고 불가피하겠지만 백년대계라 하는 교육에서 정책의 근간이 곧잘 흔들리고 현장에서 우왕좌왕하며 적응하는 일은 여러모로 생각해볼 일이다. 긴 안목으로 지속되는 일관성 있는 정책을 염원해본다. 박순진 <대구대 총장>박순진 (대구대 총장)
[윤성은의 천일영화] 다시, 슬램덩크를 관람하는 우리의 자세
평일 저녁, 샐러리맨 복장을 한 관객들이 무리 지어 12세 관람가 애니메이션 상영관의 객석을 채운다. 마스크로도 가릴 수 없는 주름과 걸걸한 목소리를 가진 이 중년 관객들은 한껏 들떠서 영화가 시작되기만을 기다린다. 상영 중에는 곳곳에서 감탄사가 터지고, 영화가 클라이맥스로 치달으면 훌쩍이는 소리도 들린다. 극장 불이 켜지면 붉어진 눈시울을 애써 감추며 나오는 사람도 드물지 않다. 지난 4일 개봉한 '더 퍼스트 슬램덩크' 상영관의 풍경이다. '아바타: 물의 길'과 설 연휴 개봉작 틈새에 잠시 개봉했다가 곧 OTT에서 만나게 될 줄 알았던 애니메이션이 6일 만에 50만명의 관객을 불러모으며 좌석판매율 1위를 찍었다는 사실은 새삼 세월을 무색하게 만드는 '명작'의 존재감을 느끼게 한다. 90년대에 십대를 보낸 이들 중, '슬램덩크'와 얽힌 추억 하나쯤 없는 사람은 드물 것이다. 영화에 대한 기사나 리뷰에 어김없이 원작과 관련된 에피소드가 등장하는 것도 슬램덩크가 필자들이 가장 감수성 충만하던 시절의 아이코닉한 문화콘텐츠였기 때문이다. 십대들의 놀거리가 한정적이었던 시절, 우리는 슬램덩크를 읽으면서 덩크슛을 꿈꿨고 열정과 의지를 배웠으며 승부의 세계를 맛보았다. 부모님을 졸라 신상 농구화를 신고 학교에 오는 아이는 그날의 스타가 되기도 했다. 슬램덩크를 좋아한다면 성적도, 취향도, 성별도 중요하지 않았다. 누가 어떤 캐릭터를 응원하든 존중받았고, 어떤 결말을 예상하든 귀 기울였다. 이 만화책 앞에서 우리는 평등하고 민주적이었다. 그러나 추억팔이 말고도 영화에서 할 이야기는 많다. 원작자이자 '더 퍼스트 슬램덩크'를 연출한 이노우에 다케히코는 농구신의 속도감과 박진감을 표현할 만한 기술이 충분히 발전할 때까지 기다렸다고 언급한 바 있다. 1억2천만 부가 팔린 베스트셀러가 극장판으로 만들어지는 데 26년이나 걸린 이유이기도 하다. 그의 목표대로 러닝타임 내내 산왕공고와의 대결을 보여주는 이번 영화는 실제 농구 경기를 보는 듯한 선수들의 움직임과 경기장 내의 사운드를 구현해냈다. 물론 슬로 모션이나 사운드 소거로 보다 극적인 연출을 한 부분도 있지만 기본적으로 거칠면서도 빠르게 진행되는 농구의 묘미를 충분히 살린 작화가 돋보인다. 바뀐 주인공에 대해서도 의견이 분분하다. 엉뚱하고 다혈질이지만 바로 그런 모습 때문에 독자들을 웃기고 울렸던 강백호 대신 영화에서는 북산고의 포인트 가드, 송태섭이 주인공을 맡았다. 이노우에 감독은 영화는 영화로서 독립적으로 받아들여지길 바라며 팀에서 가장 키가 작고 반항기가 다분한 송태섭으로 무게 중심을 옮겼다. 영화에는 원작에 없는 송태섭의 가정사가 경기 장면 중간중간에 삽입된다. 경기 장면과 대비되는 느린 속도감의 플래시백이 영화에 몰입하는 것을 방해하기도 하지만, 캐릭터 구축과 '슬램덩크' 시리즈에서 중요하게 다뤄지는 성장의 모티브를 놓치지 않으려 했던 작가의 의도를 읽을 수 있다. 강백호와 함께 사랑받았던 다른 캐릭터들의 뒷이야기가 아쉽기는 해도 산왕공고와의 경기에서 꼭 이기고자 하는 송태섭의 심리와 열망에 공감하기에는 충분하다. 30·40대 관객들에 이어 이제 레트로 문화에 관심이 많은 10대와 20대도 '더 퍼스트 슬램덩크' 상영관을 찾고 있다. 90년대 가요에 대한 관심이 그랬던 것처럼, 슬램덩크 열풍도 세대 간의 장벽을 허물고 소통과 교감의 장을 열어주길 바란다.<영화평론가>윤성은 영화평론가
[경제와 세상] 희망의 해부학
미국의 한 병원에서 중상을 당해 생사의 기로에 놓였던 10대 소년의 실제 이야기다. 그날 처음 나온 한 자원봉사자가 이 소년의 기록을 보고 나서 병상 옆에 앉아 엉뚱하게도 의식이 있는지 모를 이 소년의 귀에 대고 중학교 2학년 과정 영문법의 동사변화를 조곤조곤 설명하기 시작했다. 소년이 알아듣는지 확인할 수 없었지만 이 사람은 포기하지 않고 며칠 동안 열심히 가르쳤다. 그런데 기적 같은 일이 일어난다. 의사들이 회복 가능성이 희박하다고 진단을 했던 이 소년의 상태가 점점 나아지기 시작한 것이다. 몇 주가 지나면서 상태가 정상으로 돌아오고, 얼굴의 붕대를 풀던 날 소년에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 물었다. "사실 저는 의사 선생님들의 표정을 보고 자포자기하고 있었는데, 이 형이 들어와서 다음 학기 영어 시간에 배울 동사변화를 가르치며, 제가 나중에 학교에 돌아가서 이것을 모르면 따라가기 힘들 것이라 하더군요. 그때 저는 놀랐고 또 확신했죠. 의사 선생님들이 내가 나을 수 있다고 판단했나 보다! 그렇지 않고서야 심하게 다친 나에게 다음 학기 영어를 가르쳐 줄 리가 없지! 그때부터 마음이 가벼워지고 희망이 생기기 시작했어요." 하버드 의대 혈액종양학 교수 제롬 그루프먼은 수많은 암환자를 겪으며 환자의 희망이 치료하는 데 매우 중요한 요소가 된다는 점을 발견하고 베스트셀러 '희망의 힘'을 쓰게 된다. 지난해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1998년 외환위기 이후 가장 높은 5.1%를 기록한 가운데 2023 신년에도 오름세가 이어질 것으로 전망된다. 글로벌 경제의 성장 둔화 상황에서 미국을 비롯한 주요국 중앙은행의 통화정책 기조에 따라 국제금융시장의 변동성이 확대되고, 우크라이나 전쟁 양상에 따라 국제 원자재 가격이 급등락할 수 있으며, 글로벌 공급망 재편과정에서 중국의 방역 조치 완화 및 팬데믹 상황 변화가 글로벌 경제에 미치는 영향도 예단하기 어려운, 전례가 드문 불확실성이 계속되면서 결코 쉽지 않은 한 해가 될 것으로 판단된다. 인간에게 불을 훔쳐다 준 프로메테우스의 제수씨 판도라가 제우스가 준 상자를 열었을 때 튀어나온 가난과 굶주림, 질병과 고통이 온 세상을 흔드는 모습이 생각날 지경이다. 하지만 판도라의 상자 바닥에는 인간이 갖가지 어려움에 시달릴 때도 극복할 힘을 주는 '희망'이 남아 있었다. 요즘 학계를 풍미하는 행동경제학의 창시자 허버트 사이먼은 인간의 행동이 완전히 합리적일 수 없다는 것을 '제한된 합리성' 개념으로 설명하고, 의사결정에 있어서 전통 경제학이 전혀 고려하지 않는 희망과 같은 감정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주류 경제학의 기본 뼈대가 되는 기대효용이론은 결과가 불확실한 상황에서 경제 주체는 결과에 대한 효용 기대치에 따라 합리적인 판단을 내린다는 이론이다. 그러나 행동경제학자들은 "사람은 합리적인 기대치가 아니라 변화에 반응한다"고 믿는다. 희망은 더 나은 현실을 만들고자 하는 욕구를 낳고, 그 욕구는 변화를 만든다. 희망은 막연하지만 변화는 구체적이다. 프랑스 대혁명이나 미국 독립전쟁 등 인류사를 획기적으로 바꾼 사건들은 민중의 희망과 현실 개선 욕구, 변화가 이끈 결과들이다.경제 전망은 인간의 합리적인 행동을 바탕으로 한 예측일 뿐이다. 반도체나 자동차가 어려우면 바이오와 친환경에너지를 비롯한 신산업 육성과 노동개혁, 규제개혁과 같은 변화로 지금의 어려움을 이길 수 있다. 이환위리(以患爲利)라는 말은 고난을 오히려 기회로 삼고자 하는 우리의 희망이자 경제가 위기 때마다 오히려 한 단계씩 성장해 온 원동력이었다.권 업 객원논설위원권 업 객원논설위원
[광장에서] 환경보전과 경제성장의 조화
2023년 계묘년(癸卯年) 새해가 밝았다. 정부는 새해가 되면 어김없이 부처별 업무계획을 발표한다. 지난 3일 환경부도 주요업무 추진계획을 발표했다. 더 나은 환경을 통해 삶의 질은 높이고 성장동력은 키우는 것이 목표다. 동 계획에서는 미래가치, 경제활력, 민생안전을 추진과제로서 제시하였다. 미래가치는 탄소중립 이행, 순환경제 실현 등이다. 민생안전은 물, 미세먼지 관리 등 전통적인 이슈를 고도화하는 것이다. 그런데 '경제활력'이라는 키워드가 눈에 띈다. 전통적인 환경산업을 녹색 신산업 분야로 확대하는 것이다. 녹색 신산업을 육성하는 것을 넘어 수출까지 한다고 한다. 3대 녹색 신산업분야는 탄소중립, 물, 자원순환이 해당된다. 이는 전통적인 환경부의 어젠다가 아닌 것으로 보인다. 환경보전과 경제성장의 조화를 추구해야 하는 정책으로 보인다. 한국에서의 환경보전과 경제성장의 관계는 역사가 길다. 한국은 1960~70년대 급격한 산업화, 공업화의 시기를 겪었다. 그 결과 눈부신 경제성장을 이루었다. 그 과정에서 환경오염사고로 인한 환경보전이 주요한 이슈가 되었다. 대구·경북도 구미 국가산업단지 등 관련 환경오염의 문제가 이슈 된 바 있다. 대표적 사례로는 1991년의 낙동강 페놀 오염사건이 있다. 국민이 환경문제에 대한 인식과 자각을 높이는 계기가 되었다. 그렇다면 환경보전과 경제성장의 조화는 가능한가. 무엇이 중요한가. 환경보전과 경제성장은 동시에 이루어야 할 목표이다. 그러나 상반된 것이라 달성이 쉽지는 않다. 전통적으로 환경보전은 규제의 영역이다. 과거에는 환경오염을 관리하기 위한 규제 중심의 정책이 주로 시행되었다. 현재에는 환경오염 외에 다양하고 복잡한 환경문제가 발생하고 있다. 이에 대응하기 위해 법과 정책도 세분화, 체계화되었다. 예컨대, 환경부 소관 법률만 70여 개 이상이 있다. '환경오염피해구제법' 등 구제 관련 법이 제정되었으나 여전히 관련 법령은 대부분 규제로 작동되고 있다. '경제활력'을 위해서는 전통적인 규제 중심으로는 한계가 있다. 반면에 전통적으로 경제성장은 산업부 등의 영역이다. 지난해 12월에 산업부에서도 업무계획을 발표했다. 동 계획에서는 전방위 수출확대, 산업 활력 회복, 에너지 안보와 시스템 혁신, 국익 우선 통상을 정책방향으로 제시하였다. '산업 활력 회복' 관련 내용을 보면 투자 활성화를 위한 방안 등이 있다. 예컨대, 규제개선 및 인허가 신속 지원 등이다. 환경부의 정책방향과 상충되는 측면이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결론적으로 지속가능성이 중요하고, '지속가능한 경제 성장'을 지향해야 한다. '지속가능발전 기본법'에 의하면 '지속가능한 경제 성장'이란 지속가능한 생산·소비 구조 및 사회기반시설을 갖추고, 산업이 성장하며 양질의 일자리가 증진되는 등 경제 성장의 산물이 모든 구성원에게 조화롭게 분배되는 것을 말한다. 최근에 탄소중립이 글로벌한 환경 이슈가 되었다. 탄소중립은 반드시 달성해야 하는 목표다. 다만 탄소중립에 매몰된 정책은 지양해야 한다. 한국의 상황을 고려하면 더욱 그러하다. 철강, 자동차, 화학 등 제조업의 비중이 약 30%에 달한다. 주요 선진국(G5) 평균의 약 2배에 이르는 수준이다. 이에 더해 고금리, 고환율, 저성장의 3중고에 직면해 있다. 국가의 경쟁력 및 지속가능성에 대한 고려가 필요하다. 지금부터 머리를 맞대고 미래의 지속가능한 성장전략을 고민해야 할 때이다.김도형 <법무법인 화우 환경규제대응센터장>김도형 법무법인 화우 환경규제대응센터장
[더 나은 세상] 인연
사람들 사이뿐만 아니라 사건에도 인연이 있는 것 같은데, 이른바 '대구 어린이 황산테러 사건'이 내게 그런 사건이다. 1999년 5월 대구 효목동의 어느 골목길에서 신원미상의 남자가 지나가던 여섯 살 어린이에게 황산을 들이붓고는 사라졌다. 피부에 닿으면 몹시 위험한 화학물질은 아이의 두 눈과 입 안, 식도를 태우고 장기까지 손상시켰고, 결국 아이를 숨지게 했다. 지방에서 일어난 끔찍한 사건에 전국의 관심이 쏠렸고, 대규모 수사본부가 차려졌지만 경찰은 끝내 범인이 누구인지 찾지 못했다. '태완이'라는 아이 이름이 알려진 건 사건 발생일로부터 16년이나 지나서였다. 상상도 못 할 일로 아이를 잃은 부모는 누가 무슨 이유로 아이에게 그런 끔찍한 일을 저질렀는지 밝혀 달라고 호소를 했다. 이에 마음이 움직인 사람들이 태완이 어머니와 함께 살인죄에 공소시효를 없애는 형사소송법 개정운동을 벌여서 2015년 7월 마침내 개정법안이 국회를 통과하였다. 개정 형사소송법은 아이 이름을 따 '태완이법'이라고 불렀는데, 안타깝게도 그 사건에 대한 공소시효가 완성된 후여서 정작 태완이 사건은 태완이법 적용을 받지 못했다. 사건 당시 나는 신문기자였지만 사회부 소속은 아니어서 취재단 끄트머리에도 끼어보지 못했다. 법이 통과될 당시 나는 변호사였지만 그 법 개정에 조금도 관여한 바가 없다. 다만 사건 당시 동기 기자들이 동부경찰서에 차려진 수사본부를 분주히 오가며 취재하는 것을 본 기억이 선명해 법이 통과되었다는 뉴스를 조금 관심 있게 보았을 뿐이다. 그렇게 별 인연이 없었던 사건을 두 번이나 내 책에 쓰게 되었으니 아무 인연 없던 사건이 특별한 인연이 된 셈이다. 처음은 변호사가 되어 쓴 첫 책 '변론을 시작하겠습니다'에서였다. '장발장법'이라 불리던 상습절도범 가중처벌 조항에 얽힌 내 변론 이야기를 '태완이법' 인연에 빗대어 풀었는데, 그 꼭지를 어떤 편집자가 읽고는 법이 되어 우리 곁에 남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엮은 책에 대한 집필 제안을 해 왔다. 책('이름이 법이 될 때'라는 제목으로 출간되었다)을 쓰면서 20여 년 전 사건이 일어난 곳을 가보았다. 강산이 두 번이나 변하는 세월이 지났는데도 그곳은 별로 바뀐 게 없어 그 골목길만은 마치 세월이 정지된 것 같았다. 반면 아들 이름을 딴 법이 만들어졌지만 정작 아들의 억울함은 풀지 못한 태완이 엄마는 젊은 아이 엄마가 아니라 머리가 희끗희끗해진 연세가 되셨다. 책이 나온 직후 책을 보내드리겠다고 다시 연락드렸더니 서점에서 사보겠다고, 그게 옳다고 고집을 피우시고는 며칠 뒤에 사서 읽은 책 소감을 문자로 보내주셨다. "보다 더 많은 분께 이름이 법으로 명명된 사연들이 알려졌으면 좋겠어요. 세상의 나쁜 일은 타인에게만 일어나는, 남의 일이 아닌 언제든 나의, 우리 가족의 일이 될 수도 있다는 인식을 가졌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그 문자 하나에 책 쓸 때 한 고생이 다 녹았다. 별 인연이 없는 사건이 특별한 사건이 될 수도 있다. 삶이 신비로운 이유는 언제, 어떻게 그런 일이 일어날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정혜진 <변호사>정혜진 변호사
[돌직구 핵직구] 홍준표 시장만으론 안 된다
지난 대통령선거 당시 호남권에서 뜨거운 이슈였던 광주시 복합쇼핑몰 건설이 드디어 성사단계로 접어든 듯하다. 신세계그룹이 지난해 12월29일 리조트와 쇼핑몰을 포함한 16만평 규모의 '그랜드 스타필드 광주' 건립 제안서를 제출하자, 광주시는 즉각 이 사업계획의 원본을 홈페이지를 통해 공개했다.얼마나 기뻤던지 강기정 시장은 기자회견을 열어 "대한민국 넘버원 관광 랜드마크로 만들겠다"고 기염을 토했다. 지역 언론들도 "17년 숙원의 동력이 마련됐다"고 반색했다. 하남이나 고양의 스타필드보다 더 큰 국내 최대규모의 복합리조트가 광주시에 들어서면, 3만여 명의 고용 유발효과와 22조7천억원의 경제적 효과가 기대된다는 것이 신세계 측 설명이다.계묘년(癸卯年) 벽두부터 이웃 광주시를 홍보하려는 것은 아니다. 얼마 전 중단된 대구신청사 부지 매각 건이 안타깝고 답답해서다. 빚더미에 앉은 대구시가 신청사 건립 예정지(4만7천여 평)의 절반가량을 민간에 매각, 랜드마크 상업시설을 유치하려 했으나, 부지 매각을 반대하는 시의회로부터 제동이 걸린 일이다.하지만 격앙된 시의원들과 달리 대구시민은 오히려 냉정했다. 한 언론사의 여론조사 결과 응답자의 절반이 "재정 개선 때까지 산격동 청사를 활용하자"고 답했다. 대구시 계획처럼 일부 부지 매각에 찬성하는 응답이 22%, 빚을 내서라도 빨리 짓자는 답은 15%였다. 만약 신청사 부지의 절반에 '신세계 스타필드 대구'가 들어서서 1만여 명의 대구 청년이 일자리를 얻고, 10조원의 경제적 효과를 일으킨다고 했다면 과연 어땠을까. 그대로 시의회는 무조건 반대만 할 수 있었을까. 수만 명이 몰리는 스타필드가 입점되면 두류공원 주변의 땅값이 오히려 더 치솟지 않았을까."해보기는 했어?"라고 일갈했던 정주영 현대그룹 회장의 말처럼 대기업 투자를 유치하려는 노력은 1도 않고, 빚내서 용산 대통령실 절반만 한 대구시청을 지어내라는 건 무모한 억지가 아닌가.이미 대구시 채무가 2조3천700억원에 달해 해마다 400억원 이상의 이자를 물어내야 할 판인데, 이 엄청난 빚은 대체 누가 갚는단 말인가. 대구의 미래세대 청년은 도대체 무슨 죄를 지었나. 청년이 결혼 않고 아이를 낳지 않는 이유가 다 있다. 얼마 전 강원도가 지급보증한 레고랜드 PF 관련 어음에 디폴트(채무불이행) 선언을 하자 대한민국 전체 금융권이 휘청거린 사태를 벌써 잊었는가. 1997년의 외환위기도 결국 빚을 못 갚아 연쇄적으로 커진 거대한 국가재난이었다. 건실한 일본도 한 지자체가 파산, 혹독한 구조조정을 겪은 사례가 있지 않은가.스타필드만 해도 그렇다. 이미 삼성전자와 기아자동차 공장에 한전공대까지 꿰찬 광주는 아직도 배가 고픈데, 지역내총생산(GRDP) 꼴찌인 대구는 왜 이리 배가 부른가.요즘 홍준표 대구시장이 여의도로, 광주로, 미국 라스베이거스로 동분서주하는 모습을 지켜본다. 홍 시장의 지론대로 공무원은 주민의 공복(公僕)이니, 대구시장은 250만 대구시민의 대장 머슴 격이다. 얼마든지 부려 큰 성과를 내도록 채근해야 한다.하지만 홍준표 시장 한 사람만으로는 절대 안 된다. 대구가 다시 굴기(굴起)하려면 지역 국회의원, 시의원, 구의원 그리고 공무원 모두가 달라져야 한다. 대기업에 투자를 요청하기 전에 대구시 공직자, 노조, 시민의 의식이, 마인드 자체가 바뀌어야 한다.강효상 <법무법인 대륙아주 고문>강효상 법무법인 대륙아주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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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져가는 대구경북 삶의 기록] 사람 소리 가득했던 '전통시장' 역사 속으로…주상복합·아파트 '빌딩숲'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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