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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진우의 시대정신] '가족주의'의 역설
전통적 가족주의가 가족을 해체하고 있다. 도전적으로 들리는 이 말을 들으면 사람들은 대체로 고개를 갸우뚱거릴 게 틀림없다. 우리 문화에서는 모든 게 가족을 중심으로 돌아간다. 개인화의 물결이 드세고 개인주의가 이미 오래전부터 우리의 영혼을 잠식하고 있어도 가족주의는 여전히 끈질기게 우리의 삶과 사회를 통제한다. 식당에 가면 '이모'가 있고, 사랑하는 사람은 곧 '오빠'가 된다. 우리는 사람들의 관계를 가족의 관점에서 구성하려는 성향이 있다. 조금만 친해지면 나이의 서열에 따라 형이나 누나 그리고 동생으로 나뉜다. 사회는 이렇게 확대된 가족과 모르는 낯선 사람으로 구분된다. 공익과 공동선을 추구하는 국가마저 '큰 가족'으로 생각하니 정치적 지도자가 가부장처럼 군림하는 게 당연해 보인다. 유교 문화와 역사를 통해 형성된 이러한 성향은 일종의 제2의 본성처럼 원하건 원치 않건 디폴트로 작동한다.설날과 추석 같은 명절은 가족의 가치를 보전함으로써 가족 구성원의 유대와 친밀감을 강화하는 축제였다. 내가 여기서 과거 시제를 사용한 것은 명절 풍속도 많이 변했기 때문이다. 우리는 여전히 가족의 가치를 높이 평가하는가? 한때 우리는 서양의 개인주의를 비난하면서 우리의 고유한 가족주의를 자랑스럽게 내세웠다. 서양인들은 합리적이고 계산적이지만, 우리는 끈끈한 정이 있다고 의기양양하게 뽐내곤 하였다. 문화적으로 몽매한 이 말을 지금은 누구도 진지하게 받아들이지 않지만, 우리가 서양인보다 더 가족적이라고 믿는 편견은 여전히 강하다. 이러한 이데올로기는 이미 변화한 현실과 부딪히면 맥을 못 춘다. 가족은 이미 붕괴하고 소멸하기 때문이다. 혹시 이번 설날도 생각과 행동이 따로 논 심리전쟁의 장은 아니었을까? 결혼 얘기는 하지 않으리라는 작심에도 불구하고 속내가 드러나는 질문 같지 않은 질문으로 분위기를 불편하게 만들거나 기분 좋지 않은 싸움으로 끝나지 않았는가. 결혼은 언제 하니? 애는 가질 거니? 이런 질문은 언제부터인지 이미 터부가 되었다. 연애와 결혼, 출산을 포기한 '삼포세대'는 현실이다. 2023년도 여성가족부 통계에 의하면 1인 가구는 2022년도 34.5%에 달하고, 그것도 점점 더 늘어나는 추세에 있다. 결혼과 출산을 하지 않으면 가족이 붕괴하는 것은 당연하다. '가족'이 시나브로 사라지는데도 '가족주의'가 여전히 맹위를 떨치는 것은 쉽게 이해되지 않는 역설이다. 가족의 해체와 붕괴는 현재의 현실이고, 가족주의는 과거의 유산이다.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동아시아의 많은 지역에서는 결혼과 가족에 관한 법률과 사회적 관습이 새로운 현실에 뒤처져 있다. 변화한 현실에 맞게 법률과 제도를 개혁해야 하는데도 정부는 결혼과 출산을 장려하는 재정적 인센티브를 제공하는 것으로만 대응한다. 전통적인 가족을 되살려 인구 감소를 되돌리려는 핵가족 정책은 실패하였다. 변화된 사회환경에서 아이를 낳고 자녀를 양육하는 것을 어렵게 만드는 장애물을 제거하려면, 우리는 가족에 관한 생각을 바꿔야 한다.전통적인 가족 개념은 역사적으로 결혼한 이성애 부부와 그들의 생물학적 자녀가 한 지붕 아래 함께 사는 핵가족 구조를 중심으로 전개되었다. 가족은 부부를 중심으로 한 친족관계에 있는 집단이다. 이성이 아니면 결혼하지 못하고, 결혼하지 않으면 가족을 만들지 못한다. 21세기의 시대정신이라고 할 수 있는 개인화 추세와 개인적 성취에 대한 강조가 높아지면서 가족 구조가 다양해졌다. 주목할 만한 변화 중 하나는 편부모 가구, 자녀가 있는 동성 커플, 재혼을 통한 복합가족과 혼합가족 등 비전통적인 가족 형태의 증가이다. 보조 생식 기술의 발전과 대안적인 가족 형성 방법에 대한 사회적 태도의 변화로 인해 가족 구성의 범위가 더욱 넓어졌다. 입양, 대리모, 공동 양육 방식이 점점 더 널리 받아들여지면서 생물학적 친자 관계에 대한 전통적인 개념도 흔들리고 있다. 서구 선진국에서는 이처럼 다양한 대안적 가족 형태가 출현하고, 정부도 다양한 가족 형태를 수용하여 현대 가족의 변화하는 요구에 부응하는 유연한 정책을 펼치려고 노력한다. 문제는 사회의 변화에도 불구하고 변하지 않는 가족 개념과 가족 관계의 경직된 구조이다. 동아시아 국가에서도 가족의 다양성은 증대하고 있다. 맞벌이 가구가 늘어나고 이혼과 재혼도 늘어나고 있다. 대만에서는 동성 결혼과 동성 커플의 자녀 입양도 합법화됐다. 부유한 국가들로 구성된 OECD에서는 현재 40% 이상의 자녀가 혼외 출산으로 태어나는데 한국, 일본, 대만에서는 그 비율이 5% 미만이다. 이들 국가에서의 출산율 하락은 주로 결혼 감소의 결과이다. 이런 상황에서 전통적 가족만 고집하는 가족주의는 오히려 가족의 해체를 부추긴다.우리에게 결혼과 가족은 더 이상 필수가 아니라 경제적 여유가 있어야 달성할 수 있는 일이 되어가고 있다. 가족의 해체를 개인주의의 탓으로 돌리는 사람들이 적지 않지만, 사회적 불안과 갈등으로 초래된 가족 관계의 변화는 결코 개인의 승리로 이어지지 않는다. 왜 개인주의가 우리보다 먼저 발전하여 광범위하게 영향을 미친 서구에서는 합계출산율이 우리보다 훨씬 더 높은 것인가? 가족을 중시하는 것은 어느 문화나 똑같지만, 가족주의가 우리에게는 '가부장제'라는 제도와 동일시된 것이 커다란 이유 중 하나일 것이다. 우리가 전통적 가족을 강조하면 할수록 결혼과 출산을 어렵게 만드는 사회 구조는 깨지지 않기 때문이다.우리는 결혼과 출산이 이미 개인의 선택 문제가 되었다는 사실을 받아들여야 한다. 결혼을 이성애 커플로 제한한다면, 전통적 성 역할은 쉽게 바뀌지 않는다. 한국의 낮은 출산율이 페미니즘 탓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아이를 낳고 키우는 것이 전적으로 여성의 책임이라는 전통적인 생각을 고수하는 것이다. 많은 사람이 아이를 낳도록 하려면 개인이 그런 결정을 쉽게 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줘야 한다. 미혼 커플, 한 부모, 심지어 동성 커플도 가족을 꾸릴 수 있어야 한다. 그렇게 될 때까지 여성들은 아내와 어머니라는 전통적 역할에 계속해서 반대할 것이기 때문이다. 현대 가족의 변화하는 현실을 반영하지 못하는 전통적 가족주의가 오히려 가족 해체의 주범이라는 점을 인식하였으면 좋겠다.포스텍 명예교수이진우 포스텍 명예교수
[하재근의 시대공감] 한국계 로맨틱코미디의 아카데미 후보 지명
한국계 감독이 만든 로맨틱코미디 영화가 제96회 아카데미 시상식에 후보로 지명돼 화제다. 이미경 CJ ENM 부회장이 총괄 프로듀서를 맡고 CJ ENM과 미국 할리우드 스튜디오 A24가 공동으로 투자배급하는, 셀린 송 감독의 '패스트 라이브즈'다. 셀린 송 감독은 한국계 캐나다인인데 한석규-최민식 주연의 '넘버3'를 만든 송능한 감독의 딸이다.후보로 지명된 부문이 작품상, 각본상이라는 점도 놀랍다. 로맨틱코미디는 가벼운 오락물로 여겨지기 때문에 아카데미 작품상 감으로 거론되는 일이 별로 없다. 후보 지명만으로도 의미 있는 성과인 것이다. 셀린 송 감독은 자신의 장편 데뷔작인 이 작품으로 크리스토퍼 놀런, 마틴 스코세이지 등 거장들과 나란히 후보에 올랐다.이 사건이 주목 받는 또 다른 이유는 이 영화의 남주인공이 유태오이기 때문이다. 과거에 동양인의 역할엔 한계가 있었다. 무술을 쓰거나 우스꽝스러운 보조 캐릭터 정도가 동양인의 몫이었다. 특히 로맨스의 남주인공은 그 사회의 여성들에게 이상적으로 받아들여지는 인물이기 때문에 서구권에서 동양인이 맡기 어려웠다.동양에 대한 차별적인 시각이 분명히 있었고, 또 동양인 남성의 외형이 서구적인 기준에서의 섹시함과 거리가 있었기 때문이다. 동양인 중에서도 한국인이 그런 역할을 맡을 거라고 기대하기는 더욱 어려웠다. 우리가 좁은 의미의 동양이라고 하는 동아시아 황인의 나라들 중에서 한국의 존재감이 유독 약했기 때문이다. 중국, 일본은 우리보다 크기도 하거니와 이 나라들의 전통문화에 경외심이나 동경심을 품고 있는 서양인들이 많다. 반면에 한국은 그 존재 자체를 모르는 서구인들이 많았고, 알더라도 한국전쟁의 잿더미 정도로 인식하는 수준이었다.한국 남성이 주연인 로맨틱코미디가 미국에서 주목 받은 사건이 그래서 이례적이다. '패스트 라이브즈'에는 한국적인 정서뿐만 아니라 한국어 대사까지 많이 담겼는데 그런 영화가 아카데미 작품상 후보에 오른 것도 눈길을 끈다. '기생충'이 한국어 대사 영화로 아카데미 작품상을 받은 것에 이어 또다시 한국어가 미국에서 주목 받게 됐다.이 작품은 이미 제58회 전미 비평가협회에서 작품상을 받았고, 오는 18일 열리는 영국 아카데미 시상식에서도 남우주연상, 외국어영화상, 오리지널 각본상 후보에 올라 있다. 유태오는 관련 인터뷰에서 "동아시아 배우로서 무협이나 코미디 같은 장르에 기대지 않고, 로맨스 영화의 남자 주인공을 연기하고 인정받는다는 것은 정말 특별한 일"이라고 말했다.한류열풍으로 인해 한국의 위상이 급격히 상승했다는 것을 다시금 실감하게 하는 사건이다. 얼마 전 미국 드라마계의 아카데미상이라고 하는 에미상에선 한국계가 만든 한국계의 이야기 '성난 사람들'이 작품상, 감독상, 작가상, 남우주연상 등 8관왕에 올랐다.동양인, 특히 한국계는 미국 주류 사회에서 무존재감의 타자 정도로나 인식됐었는데 방탄소년단, '기생충' 등이 주목 받으며 천지개벽이 일어났다. 방탄소년단은 심지어 백인들의 우상 대우까지 받으며 새 시대의 '섹시한 남성'상으로 자리매김했을 정도다. 한국계의 위상이 달라지면서 김밥, 김치 등 한식도 뜬다. 물론 아직 완전히 서구사회의 주류가 된 건 아니지만 최근의 위상 상승 속도는 가히 기적적인 수준이다. 한류의 경쟁력이 계속 유지된다면 앞으로도 한국 국가브랜드 상승에 막대한 기여를 하게 될 것이다. 우리 국가가 대중문화산업 지원을 신경 써야 하는 이유다.하재근 문화평론가하재근 문화평론가
[주진오의 한국현재사] 동아시아의 설날, 왜 다른가?
오늘부터 대체휴일을 포함하여 나흘간 갑진년의 설 명절 연휴가 시작됩니다. 1월1일에 새해 복 많이 받으시라는 인사를 다 나누었는데, 한 달도 더 지나서 다시 새해 인사를 하고 있습니다. 대체 우리는 왜 그리고 언제부터 이중과세를 하게 된 것일까요? 전통적으로 동아시아 사회는 음력을 사용해 왔습니다. 조선 왕조도 물론 마찬가지였지요. 그런데 갑오개혁을 추진하던 개화정부가 근대화의 일환으로 1896년부터 태양력으로 바꾸게 되었습니다. 1896년의 1월1일은 음력으로 1895년 11월17일이었어요. 따라서 정부의 모든 공식기록에는 1895년 11월17일부터 12월31일까지가 완전히 비어 있습니다. 정부는 1896년 1월1일에 고종이 참석한 가운데 연회를 열고 각국 공사들을 접견하는 등 새로운 양력 새해 첫날의 모양새를 갖추려고 했어요. 일본은 메이지 5년인 1872년에 문명개화를 내세우면서 태음력을 폐지하고 태양력을 반포하였습니다. 따라서 일본에서는 음력 설날은 완전히 사라졌고, 오쇼가쓰라는 명칭으로 양력 1월1일부터 사흘 동안이 법정 공휴일이라고 해서 산가니치라고 하지요. 조선을 식민 지배하면서, 일본과 마찬가지로 음력을 없애려고 하였습니다. 일본과 동일한 설날 문화를 정착시키려 한 것이지요. 음력으로 지내는 설날을 구정이라고 하고, 양력 1월1일을 신정이라고 하면서 지키도록 강요했습니다. 조선인들은 이를 민족말살이라고 받아들여 거부감을 가지고 있었지만, 따를 수밖에 없었지요.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후에도 양력 설날을 유지해 왔으나, 구정을 공휴일로 지정해야 한다는 주장이 계속해서 제기되었어요. 1985년부터 민속의 날로 삼아 공휴일로 지정했고, 1989년부터는 설날로 부르기로 하면서 공휴일을 3일로 연장해 지금에 이르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이제 설날은 음력으로 지내기 때문에 더 이상 구정이라는 표현을 쓰지 않는 것이 좋겠어요. 북한은 음력이 사회주의 생활양식과 어긋난다는 이유를 내세워 인정하지 않다가 1989년에 비로소 공휴일로 지정했습니다. 오늘날 북한에서는 양력 1월1일을 설날이라 정하여 사흘 동안 공휴일로 지정했으며, 음력 1월1일은 휴식일이라 하여 하루만 쉬고 있어요.중국에서는 신해혁명 이후 손문 정부가 설날을 양력으로 옮기려고 하였으나, 국민들의 반발로 인해 다시 음력으로 돌아갔습니다. 지금도 중국을 비롯한 그 문화적 영향권에 있는 지역에서는 춘절이라는 명칭으로 짧게는 일주일, 길게는 한 달씩을 설 명절로 즐기고 있어요. 양력 1월1일은 하루만 법정 공휴일로 지정되어 있지만, 실제로는 사흘을 쉬는 경우가 많습니다. 지리적으로 근접한 동아시아의 세 나라가 각각 다른 형태의 설 명절을 지내고 있는 것입니다. 그 이유는 근대화의 과정이 서로 달랐기 때문이지요. 대체로 일본은 완전히 서양화를 추구하는 것으로, 중국은 전통을 중심으로 서양을 받아들이는 쪽으로 방향을 잡았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그 중간에서 전통과 근대가 병립하고 있는 경우를 보게 되는 것이지요. 전통이란 반드시 지켜야 하는 것이 아니라 현실을 살아가는데 불편한 요소가 있다면 바꾸는 것이 오히려 정상인 것입니다. 설날을 지내는 방식도 그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편리함에 따라 정하면 되는 것이지요. 독자 여러분, 갑진년에 건강하고 행복하시기를 기원합니다.상명대 역사콘텐츠 학과 명예교수주진오 상명대 역사콘텐츠 학과 명예교수
[더 나은 세상] 젊은 지인들의 부고가 남긴 숙제
결혼식장보다는 장례식장에 더 자주 갈 나이이긴 하지만, 최근 몇 개월 사이에 나보다 젊은 사람의 본인상 혹은 배우자상 부고를 연이어 들었다. 건강하게 잘 지내던 40대들의 갑작스러운 죽음이어서 그리 가깝지 않은 단순 지인인 나조차 너무 황망했다. 장례 후 유가족 소식을 들어 보니 고인들이 한창 일하는 나이에다 아무런 준비를 하지 못하고 떠나 정리할 건 많은데 어떻게 정리해야 할지 막막하다고 했다. 삶의 끝이 언제 어떻게 올지 알 수 없다는 건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이지만 막상 젊은 지인들의 부고를 들으면서 '나도 아무런 준비가 되어 있지 않은 상태에서 갈 수 있겠구나' 하는 당연한 명제가 현실로 다가왔다. 내가 죽은 뒤 남을 문제들을 평소에도 생각하면서 사는 동안 정리할 수 있는 일은 정리하고 준비해야겠다는 마음이 들었다. 그런 생각을 하고 있던 터에 우연히 접한 해외 뉴스가 오래 마음에 남았다. 미국 뉴욕시 아주 작은 아파트에 살던 어느 할머니가 평소 오페라와 발레를 너무 좋아해서 근 50년간 매일같이 공연장을 다니다 88세에 사망했는데, 사망 전에 거액을 예술 단체에 골고루 나눠 남긴 게 뒤늦게 알려져 관계자들이 깜짝 놀랐다는 내용이다. 늘 소박한 옷을 입고 버스와 지하철을 타고 공연장에 와 가격이 가장 저렴한 공연장 맨 위쪽 스탠딩 좌석에서 큰 쌍안경을 들고 공연을 관람하던 할머니를 공연 관계자들은 검소하면서도 열성적인 오페라 팬으로만 알고 있었는데, 그렇게 많은 돈이 있을 것이라고는 아무도 상상하지 못했다고 한다.(혹 궁금하신 분은 'Lois Kirschenbaum opera fan'으로 검색해 보시길.)이 뉴스를 들으면서 (왜 그분은 돈이 많은데도 좀 더 누리는 삶을 살지 않았을까 궁금한 것과는 별개로) 죽은 후 남겨지는 재산에 대한 생각을 많이 하게 되었다. 그분은 약 52억원의 재산 중 일부는 예술 관련 기관과 단체에, 나머지는 자신의 삶에서 한때 몸담거나 관여했던 기관에 남겼다. 모두 자신이 살아오면서 교류했던 단체 혹은 기관이었다. 자식이 없고 연락하는 가족도 없는 할머니는 허투루 돈을 쓰지 않고 평생 아껴 모은 돈을 모두 자신이 살아오면서 아끼고 사랑했던 삶의 현장에 남기고 떠난 것이다. 그 할머니처럼 거액의 유산을 남길 가능성은 전혀 없지만, 평범한 소시민으로 소액이라도 남길 가능성은 있고, 게다가 사망보험금은 보장되어 있다. 20대에 종신보험에 가입하면서 사망보험금 수익자를 '법정상속인'으로 적었다. 그런데 부모님은 다 돌아가셨고 배우자와 자녀가 없으니 굳이 법정상속인을 고집할 이유는 없을 것 같다. 금액은 크지 않지만 어느 단체에 기부한다면 삶을 마감하는 내게는 물론 해당 단체에도 의미가 크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사망수익자를 어떤 단체로 해야 할지 며칠을 생각했으나 아직 못 정했다. 평소 후원하는 단체는 몇 있지만, 그중 내 삶에서 가장 의미 있는 단체를 하나만 꼽으려니 어려웠다. 사망보험금 수익자를 변경하는 문제는 단순히 기부할 단체를 하나 고르는 것이 아니라 내 삶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단답형으로 말해야 하는 질문인 셈이다. 결정을 못 하겠다는 건 내 삶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아직 무엇인지 모른다는 뜻이기도 하다. 남은 삶은 그 질문에 대한 답을 찾아가는 과정이어야 하겠구나 싶다. 숙제가 하나 늘었다.정혜진 변호사정혜진 변호사
[길형식의 길] 대백 vs 동백, 숙명의 라이벌戰
더비매치. '동일한 지역을 연고지로 하는 스포츠 클럽 간의 경기'를 의미한다. 대표적인 더비로는 스페인 축구 리그 라리가의 레알 마드리드와 아틀레티코 마드리드의 마드리드 더비가 있다. 한때 대구에도 유통업계의 더비매치가 있었다. 바로 대구백화점과 동아백화점이다. 대구시민들 사이에 한때 유행했던 단어, 언뜻 보면 사자성어 같은 '대월동화'란 말이 있다. 대구백화점은 월요일 휴무, 동아백화점은 화요일 휴무란 뜻이다. 그만큼 이 두 백화점은 지역민들에게도 많은 관심과 사랑을 받았다. 숙명의 라이벌전은 고대 전쟁사를 방불케 할 정도로 치열했다. 대구상회로 시작했던 대구백화점이 1969년에 백화점을 개점했고, 1972년 화성산업이 모기업이었던 동아백화점이 개점하며 그 뒤를 이었다. 지역 유통업계 양대 산맥은 한때 대한민국 굴지의 대기업조차 굴복시킬 정도로 철옹성이었다. 70년대 서울 1등이던 신세계백화점도 야심 차게 대구에 진출했지만, 개점 3년 만에 도망치듯 폐점할 정도였다.장군멍군이었다. 동아백화점은 대구 최대규모의 동아쇼핑과 서울 쁘렝땅 백화점을 개점하며 지역 백화점 최초의 서울진출을 이뤘다. 이에 자극받은 대구백화점 또한 서울진출 시도와 동시에 대백프라자를 개점하며 맞불을 놓는다. IMF 경제위기를 무사히 이겨내고, 2000년대를 맞이한 두 회사는 주가 전쟁으로 엎치락뒤치락하던 중 새로운 위기에 봉착한다. 바로 롯데의 본격적인 대구 공략이 시작된 것이다. 두 회사는 위기의 순간 손을 맞잡고 굳건한 공조 체제를 유지했지만, 롯데의 대구 진출을 필두로 현대, 신세계까지 연달아 입성하며 큰 타격을 입었고, 그 과정에서 동아백화점은 이랜드그룹에 매각되었다. 신세계의 대구 재입성에 대항해 대구백화점은 대백 아울렛으로 맞불을 놓으며 마지막 승부수를 던지지만, 여러 악재가 겹쳐 실적은 사상 최악으로 치달았고, 결국 본점은 영업 중단을 하며, 현재는 프라자점만 운영 중이다. 대구 지역 백화점의 자존심이었던 두 맞수의 대결은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이들의 몰락은 여러 가지를 시사한다. 유통 빅3의 자금력을 바탕으로 한 공세도 공세지만, 지역 유통업계가 지역민들의 애향심과 과거 성공에 얽매여 소비 패러다임의 변화에 적응하지 못한 탓이 크다. 현재 국내 유통업계 구조상, 이 지역 유통 라이벌전은 다시 없을 전망이다. 스포츠 경기보다 더 재밌던 지역 라이벌전이 펼쳐진 그 시절이 더욱 그리운 것은, 두 기업이 건재하던 그때가 바로 대구의 르네상스였기 때문이 아닐까?길형식 거리활동가
[돌직구 핵직구] 한동훈에게 TK는 무엇인가
미국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의 별명은 '테프론'이었다. 테프론은 때가 잘 타지 않는 특수섬유로, 레이건은 온갖 정치적 공격에도 타격을 받지 않는 정치인이란 뜻이었다.지금 한동훈 국민의힘 비대위원장에게 이 '테프론'이란 별명을 붙여도 좋을 듯하다. 이재명 민주당 대표에 대한 영장이 기각되어도, 사법농단 혐의와 부당합병 혐의로 각각 재판받던 양승태 전 대법원장과 이재용 삼성그룹 회장이 1심에서 모두 무죄를 선고받아도, 검찰의 주역이었던 한동훈은 전혀 끄떡 없다. TK 지지층과 보수언론이 든든한 뒷배가 되어 주기 때문이다. 최근 영남일보와 TBC 의뢰로 에이스리서치가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대구시민들은 한동훈에게 60% 이상의 높은 지지를 보였다.물론 한동훈의 선전(善戰)에는 젊고 세련된 '엄친아' 능력의 영향도 크다. 다소 오글거리지만 '73년생 한동훈'(심규진 저)이란 책을 보자.저자는 그의 강점으로 "대통령과의 두터운 브로맨스 서사, 1970년대생의 젊음, 이준석처럼 어떤 말싸움에도 지지 않는 민첩한 언변, 오세훈처럼 신사 같은 매너와 태도, 홍준표와 같은 확고한 이념적 선명성과 대야 투쟁력을 모두 겸비하고 있다"고 썼다.한동훈을 부각시키려는 이 책이 국민의힘 비대위원장 취임(작년 12월26일) 엿새 전에 발간된 점은 한동훈 지지자들의 주도면밀함까지 엿보게 한다.어찌 되었든 4·10 총선을 불과 두 달여 앞둔 지금, 미우나 고우나 집권 여당의 유일한 희망은 바로 한동훈이다. 물론 그를 법무부 장관과 집권당 당수로 깜짝 발탁한 사람은 윤석열 대통령이지만, 자신을 키워준 대통령과의 한판 승부와 디커플링(차별화)을 통해 스스로 몸집을 불렸다. "눈에 넣어도 안 아픈 후배"라던 대통령은 "가장 아끼던 사람에게 바보같이 뒤통수를 맞느냐는 소리까지 들었다"고 했다. 어지러울 정도로 아슬아슬한 반전(反轉)의 결과, 한 위원장은 대권후보군에서 이재명 대표와 1, 2위를 다투는 동시에 태풍의 핵이던 이준석 개혁신당을 3%대 지지율로 주저앉히는 성과를 거두었다.한동훈 위원장은 지난 3일 경기도 김포에서 "목련이 피는 봄이 오면 김포는 서울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하루 전날에는 구리의 서울 편입도 공약했다. '서울메가시티' 정책을 추진하겠다는 것이다.어쩌면 이 공약은 크게 먹힐지도 모른다. 이명박 정부의 강북 뉴타운개발 공약처럼 부동산 가격상승을 바라는 수도권 주민들에겐 매우 솔깃한 제안이다. 이런 공약이 국가균형발전에 저해되는 악성 포퓰리즘이라는 것을 한 위원장이 모를 리 있겠는가. '이기는 총선'을 내세운 국민의힘으로선 열세인 수도권이 승리의 요체임을 본능적으로 잘 알기 때문일 것이다.그렇다면 TK는 한동훈에게 무엇인가. '집토끼' TK는 이번에도 짝사랑만 하고 끝나는 것인가.한 위원장은 TK에 대해 '정치적 출생지이자 당의 기둥'이라고 했다. 하지만 잘 나가는 수도권에는 현금을 던지고, 신음하는 TK에는 립서비스로 그쳐선 곤란하다. 더 이상 TK가 수도권에 비해 차별을 받지 않도록 시민들과 홍준표 시장이 원하는 개발정책들을 과감히 수용해 주기 바란다.양희은의 노래 제목인 하얀 목련은 경기 김포에는 4월 총선 때쯤 피지만, 남부지방인 대구에는 3월 초·중순이면 피리라. 백보를 양보해 목련이 지나고 팔공산에 단풍이 드는 올해 늦가을에는 TK에도 큰 변화가 오도록 한 위원장이 결단을 내려야 한다. 강효상 (법무법인 대륙아주 고문)강효상 (법무법인 대륙아주 고문)
[민병욱의 민초통신] 섬세해야 민주주의다
"김여사 논란과 이태원참사대통령사과로 문제 풀어야제대로된 사과 리더십 표상깨어진 관계 회복 시금석이번 대담 통해 솔직함 기대"정확히 30년 전, 1994년의 설날도 올해와 같은 2월10일이었다. 사흘 연휴 동안 무려 2천600만명이 귀성귀경길에 나서는 등 설 전후의 풍경 또한 올해와 닮은 데가 많았다.서민의 삶은 그때도 팍팍했다. 1월 장바구니 물가가 평균 30%나 올랐고 대중교통 등 공공요금 인상이 줄을 이었다. 도심에선 취임 1년도 안 된 대통령의 국정 무능을 비판하며 퇴진을 요구하는 시위가 연일 벌어졌다. 여야 정쟁도 끝없이 이어져 정치는 살얼음판 위에 선 꼴이었다. 북한의 NPT 탈퇴 후 남북관계 역시 최악 국면으로 치달아 결국엔 북의 '서울 불바다'론이 나오려던 시점이었다. 열차 전복, 항공기 추락, 페리 침몰 등 대형 사건 사고마저 잊을만하면 터져 나와 사회불안이 그 어느 때보다 높았다.물론 다른 점도 많았다. 무엇보다 손꼽을 건 30년 전 당시엔 대통령을 비롯한 정부의 국민에 대한 사과가 적잖았고 또 진솔했다는 점이다. 국민이 미처 생각하지 못한 부분도 정부 스스로 드러내며 사과와 치유를 약속하기도 했다. 설 직후 국회에서 국정보고 연설을 한 이회창 총리가 쇠락해가는 고향, 피폐한 농촌, 눈물짓는 농어민의 심경을 박두진의 시('벗에게')에 빗댄 것도 그 한 예다."여기, 마을마다, 옹기종기, 떠들썩하고 살던 사람들이, 어느 날, 하나도 없이 다 어디로 가버리고 … 그 볼이 귀여운 소녀 하나, 벙글대는 아가 하나 만나 볼 수 없고, 서로 따뜻이 만나면 잡고 흔들 손길 하나 없어, 너무도 혼자라 서러워질 수조차 없는 그런 날이 찾아온다면, 그대는 어쩌겠는가."그 전해 우루과이라운드(UR) 협상이 타결된 후 김영삼 대통령은 대국민 사과 담화를 발표했다. 전 국무위원이 배석한 가운데 TV로 생중계한 담화에서 대통령은 "직을 걸고라도 쌀시장 개방만은 막겠다고 한 약속(대선공약)"을 못 지킨 데에 고개를 숙였다. '죄송' '사과' '죄책감' 표현을 여섯 차례 반복했지만 성난 민심은 수그러들지 않았다. UR 대책을 위해 대통령 직속 기구로 새로 만든 농어촌발전위원들이 청와대 임명장을 받자마자 데모 현장으로 달려가 차량 방화 등 격렬 시위에 동참하는 사태까지 벌어졌다. 이런 판에 총리가 '사람들이 다 떠나고' '여자도 신생아도 없어' 서럽고 쓸쓸한 농촌 풍경을 농민들보다 더 아프고 섬세하게 그리며 나름의 대책을 내놓은 거였다. 국민을 위하는 섬세한 마음가짐에 야당도 더는 추궁할 말이 없었다.사실 문민정부는 그때 '사과 공화국' '사과 연속극'이란 비아냥을 듣고 있었다. "자고 나면 머리맡에 사과 한 개"라는 웃지 못할 농담도 돌았다. 그런데도 대통령, 총리는 물론 장관들이 직접 사과에 머뭇거리지 않았다. 물가 불안, 재산공개 부작용, 인사 실패에 작은 발언 실수까지도 적극적으로 나서 사과했다. "잘못이 있으면 즉시 사과하고 고치는 게 군인 정권과 문민정부의 차이"라고 대통령이 강조한 뒤 경향은 관습으로 굳어졌다. 4년 후 IMF 외환위기로 역대 최악 실패 정부로 전락했지만 김 대통령의 '진솔한 사과' 기조는 끝까지 변하지 않았다. 아들 김현철이 비리 의혹을 받을 때 "아들의 허물은 곧 아비의 허물이며 바르게 처신하도록 가르치지 못한 제 불찰"이라고 사과했다. 검찰총장이 그 아들을 구속할 사유를 찾기 어렵다고 하자 '어떤 방법을 써서라도' 당장 구속하라고 여러 차례 주문한 것은 유명한 일화로 남았다. (대통령이 별건 수사 등 압력을 직접적으로 검찰에 넣을 수 있느냐는 별개의 문제다.)그로부터 30년이 지났다. 윤석열 정부가 요즘 몇몇 사과를 둘러싼 문제로 큰 곤경에 처한 모습이다. 2022년 취임 후부터 불거진 갖가지 의혹과 비리·무례·실패·실수들이 어설프게 묻혀 있다 갑자기 한꺼번에 솟구쳐 오르는 양상을 보인다. 일이 터졌을 때 바로 사실을 밝혀 사과할 건 사과하고 책임질 건 책임지며 넘기면 됐을 일을 깔고 뭉개다 암 덩어리처럼 키우고 말았다는 얘기가 나온다. 위정자의 잘못이나 실수란 여론이 우세한데도 사과는커녕 피해자를 조롱하고 업신여기는 언행으로 본질 못지않게 곁가지를 키웠다는 지적 또한 적지 않다. 무엇보다 그런 오만의 독에서 나오지 않고서는 쉽사리 곤경을 벗지 못할 것이란 경고음이 심상치 않다.지금 윤 대통령의 발목을 잡고 있는 문제는 당장 두 가지로 압축된다. 입에 담기도 부끄러운 대통령 부인의 처신 문제와 이태원 참사를 둘러싼 대통령과 참모들의 정치적 행보가 그것이다. 물론 이 두 사안이 다른 본질에서 파생되었거나 상당히 변질된 부분이 있을지 모른다. 그러나 두 사안은 이미 그 이름 자체만으로도 정국에 미치는 파괴력이 엄청나게 커졌다. 그리고 여론은 이 사안들을 대통령이 솔직담백한 사과로 돌파하고 정치의 새 국면을 열어 나아가기를 바라는 것처럼 보인다. 당장 이것을 풀지 않고는 국정의 어느 한구석도 제대로 굴러갈 기미가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또 백번을 양보해 두 사안에 윤 대통령이 아무 잘못, 책임이 없다고 해도 그걸 밝히는데 나라 힘을 허비할 정도로 우리가 한가하지 않기 때문이다. 불황 고물가 쓰나미가 서민을 덮치고 북한은 연일 미사일을 쏘아대지 않는가. 대통령 부인이 몰래카메라에 찍히면서까지 받은 명품 백을 국가기록물로 지정해 대대손손 쳐다보며 얘깃거리로 삼을 여유가 어디 있단 말인가. 대명천지 서울 한복판에서 국민 159명이 압사하는 원시적 사고의 진실이 '정쟁거리' 한마디로 배척돼야 할 일인가.대통령은 일찍이 "국민은 언제나 옳다"는 대명제를 국민 앞에 밝힌 바 있다. 거기다 그동안 여러 여론조사에서는 국민의 70%가량이 두 사안을 대통령의 사과로 풀어야 한다는 응답을 내놓곤 했다. 이런 가운데 소통 전문가들은 "사과를 하게 되면 그때부터 모든 책임이 사과하는 사람에게 전가된다는 잘못된 인식이 사과를 기피하게 만든다"고 경고하고 있다. '한마디 사과가 백 마디 설득을 이긴다'라는 책의 저자 존 케이도는 "한때 사과는 약함과 패배를 시인하는 것으로 여겨져 기피의 대상이 되었으나 오늘날 사과는 강인함, 자신감, 인품, 투명성과 청렴함의 표현으로 인식된다"며 "제대로 된 사과는 자신감 넘치는 리더십의 표상이며 깨어진 관계를 회복하는 시금석, 개인적 성장을 위한 통로가 된다"고 말했다.윤 대통령은 7일 방송 대담을 통해 최근 여러 현안에 대한 입장을 밝힐 것으로 전해졌다. 용기 있게 솔직한 그러면서도 섬세한 리더십이 확인되기를 기대해본다.한국언론진흥재단 전 이사장한국언론진흥재단 전 이사장
[3040칼럼] 지방소멸 시대, 외국인 유치와 스포츠의 역할
그동안 대학 진학과 학위 그리고 학생들을 가르치며 내 고향 경북을 떠나 살아온 지 20년이 훌쩍 넘어 버렸다. 최근 안동에 위치한 경북스포츠과학센터로 이직하게 되면서 다시금 경북도민이 되었다. 안동은 대학생 때 한 번 방문 이후 처음이고, 4개월이 지난 지금도 조금은 어색함이 남아 있다. 그러나 수도권의 바쁜 일상에서 벗어나 조금은 여유롭고 평화로운 지방도시의 삶을 꿈꾸며 잘 적응해 나가고 있다.이주 후 최근 가장 많이 느끼는 점은 도시에 사람들이 붐비지 않는다는 인상이 계속된다는 것이다. 잠깐씩 부모님 뵈러 들렀던 김천에서도 가끔씩 느끼긴 했었지만, 실제 생활을 하게 되면서 우리나라의 인구감소 문제가 매우 심각함을 체감하게 된다. 특히 지방중소도시는 지방소멸이라는 매우 심각한 문제에 당면하고 있다는 것이 피부로 와닿는다. 실제로 산업연구원이 분석한 지방소멸지수를 살펴보면 전국 228개 시·군 중 지방 소멸 위기 지역은 총 59곳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전남 13곳, 강원 10곳, 경북 9곳 순으로 우리 경북도 역시 매우 심각한 수준에 있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이에 경북도에서도 '지방소멸 대응 종합계획' 수립을 통해 인구 소멸 위기를 극복하고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특히 그 노력의 한 축으로 외국인 유치를 통한 도내 인구의 파이를 확대시키고자 하는 방안이 주목받고 있다. 경북에서는 외국인공동체과를 신설해 외국인들에게 한국의 문화, 언어 교육에 힘쓰고, 비자 발급의 간소화 전략 등 다양한 외국인 유치 정책들이 준비되고 있다. 또한 대학과 같이 외국인 유학생 유치가 존폐와 관련되어 있는 문제로서 외국인 대학생 유치 전략에도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그러나 이와 같은 외국인 확대 정책은 외국인 증가에 대한 지역주민들의 수용과 사회문화적 변화 충격에 대한 대비는 부족해 보이는 것이 사실이다. 국제 이주를 통해 외국인들이 지역사회에 들어온다는 것은 단지 부족한 노동력을 보충하는 것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문화적 다양성이 유입되는 것이고 지역사회는 이러한 변화를 어떻게 받아들일지에 대한 성찰이 필요할 때라 여겨진다. 이러한 문화적 다양성의 인정과 상호 이해가 수반될 때 지역소멸 극복을 위한 외국인 유치정책이 진정 빛을 발할 수 있을 것이다. 따라서 많은 외국인의 유치를 통해 지역사회에 발생할 다양한 사회 문화적 충돌 과정에서 그것을 가장 효율적이고 생산적으로 변화시킬 수 있는 방법은 스포츠이다. 스포츠사회학자 임번장 교수는 스포츠는 사회 통합 창구 기능의 역할로서 인간의 행동에 대한 규제와 각종 사회 문제를 사회적 가치로 강화시키고 해결할 수 있는 가장 효율적인 방법 중 하나임을 강조했다. 특히 스포츠는 광의의 의미에서 전 세계 가장 유명한 대중문화이다. 스포츠는 만국 공통의 규칙으로 행해지며, 그러한 규칙 속에서 언어, 문화는 큰 장애가 되지 않는다. 또한 신체적 활동을 공유한다는 것은 개인의 유대감을 형성하는 것에 가장 큰 도움을 주며, 나아가 서로의 문화를 이해하고 발전적 문화 다양성 창출의 토대를 마련할 수 있을 것이다. 지방소멸 방지와 외국인 유입을 통한 사회, 문화적 충돌을 긍정적으로 해결하여 발전적 지역공동체를 형성하는 그 최전선에서 스포츠가 많은 역할을 담당할 수 있길 기대하며, 스포츠과학자로서 노력을 아끼지 않을 것이다.※외부 필진의 글은 본지의 편집방향과 다를 수도 있습니다.이재무 경북스포츠과학센터장
[시시각각(時時刻刻)] 특이점의 시대가 온다
지난 1월12일 세계 주식시장에 지각변동이 일어났다. MS가 애플을 제치고 시총 1위 자리에 오른 것이다. 이날 MS 시총은 2조8천870억달러(약 3천796조원)로 2조8천740억달러의 애플을 넘었다. 주식시장이 미래 가치의 반영이라면 이 사건을 애플로 대변되는 모바일 시대에서 MS로 대변되는 AI 시대로의 전환으로 해석하는 시각들도 많다. 사실 MS는 지난해 챗GPT를 개발한 오픈AI에 누적 130억달러(약 17조원)를 투자해 누구보다 빨리 전면적으로 AI 시대에 뛰어들었고, 시총 1위는 그 보상인 것이다.AI는 일반적으로 그 목적과 기술의 발전 정도에 따라 3가지로 구분된다. 약인공지능, 강인공 지능 그리고 초인공지능이다. 약인공지능은 특정 주제에서 주어진 일을 인간 의도에 따라 수행하는 인공지능으로 적용이 제한되어 있다는 의미에서 ANI(Artificial Narrow Intelligence)로 불리는데, 챗GPT를 포함한 오늘날 우리가 알고 있는 대부분의 인공지능이 여기에 속한다. 강인공지능은 인간의 모든 지적 작업을 기계가 수행할 수 있는 단계로 일반적 문제를 사고하고 해결할 수 있는 인간 수준의 인공지능으로, 범용적인 지적 능력을 갖췄다는 의미에서 AGI(Artificial General Intelligence)로 불리는데, 공상 과학 영화 'HER'나 아이언맨에 나오는 '자비스' 등이 여기에 해당된다고 볼 수 있다. 초인공지능은 ASI(Artificial Super Intelligence)로 인류 전체의 지능을 뛰어넘는 단계를 의미하는데, 터미네이터 '스카이 넷'이나 매트릭스에 나오는 인공지능이 여기에 해당된다고 볼 수 있다.특이점(Singularity)이라는 말은 원래 수학이나 물리학에서 그 개념이 존재했지만, 뇌공학자이자 구글의 인공지능 책임자였던 레이먼드 커즈와일(Raymond Kurzweil)의 저서 '특이점이 온다'가 2005년 베스트셀러가 되어 세계적인 논쟁을 불러일으키면서 유명해졌다. 커즈와일은 이 책에서 가까운 미래에 인공지능이 모든 인간의 지능을 합친 것보다 더 강력해지는 즉 초인공지능이 등장하는 시점을 특이점이라고 불렀다. 기술이 기하급수적으로 혁신을 계속하는 '수확 가속의 법칙(The Law of Accelerating Returns)'을 반복해 결국에는 AI가 인류의 지능을 초월하는 특이점이 곧 도래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 책에서 그는 특이점의 시대를 2045년 정도로 예측했었다. 이 특이점의 시대에 인류는 어떻게 될까? 매트릭스 영화에서처럼 인류는 인공지능의 에너지원으로만 존재하는 비참한 재앙에 직면하게 될까? 아니면 커즈와일의 주장처럼 영생을 누리고 풍요로워질 것인가? 실리콘 밸리에는 초인공지능의 탄생 자체가 기술적으로 가능하지 않다는 주장부터, AI 긍정론을 주장하는 빌게이츠, "침팬지가 인간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듯 우리가 인공지능을 이해하지 못한다"라는 비관론자 일론 머스크까지 논의가 활발하다. 중요한 것은 그들 각자는 믿음대로 준비를 하고 있다는 점이다. 커즈와일은 구글과 싱귤래러티 대학을 만들고, 일론 머스크는 사람 뇌에 마이크로 칩을 심어 인간 뇌의 용량을 무한대로 늘리려는 '뉴럴링크'라는 회사를 만들어 인공 지능의 위험에 대비하고 있다. 이 시점에 분명한 것은 누구도 특이점의 시대가 언제 올지, 그 시대가 어떨지 알지 못한다는 것이다. 다만 2020년 커즈와일은 "The singularity is Nearer"라고 특이점의 시대가 더 가까워졌음을 예언했고, 2024년 CES에서 우리는 일상이 된 인공지능을 목격하고 있다. 전창록 대구대 초빙교수전창록 대구대 초빙교수
[단체장의 생각:長考] '2025 APEC 정상회의' 경주가 최적지인 이유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인 경주의 불국사·대릉원에서 각국의 정상들이 한복을 입고 걸으며 현안을 나눈다면, 상상만 해도 정말 멋진 풍경이 아닙니까?” 2025년 11월 우리나라에서 개최하는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는 국격은 물론 외교·경제·문화를 전 세계에 선보이는 행사다. 대한민국의 정체성이 가장 잘 나타나는 곳이 바로 경북도와 경주시다. 경북도는 신라·가야·유교 문화 등 민족문화의 본산이고 호국충절의 고장이며 새마을·자연보호운동 등 국민정신 운동의 발상지다. 신라 천년의 고도(古都)로서 찬란한 역사와 전통이 살아 숨 쉬는 경주는 도시 전체가 유네스코 세계유산도시로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가장 한국적인 도시다. 현재 유치 의사를 밝힌 도시 가운데 경주는 유일한 기초자치단체로 소규모 지방 도시에서 열리는 정상회의는 APEC이 지향하는 '비전 2040'의 포용적 성장과 현 정부 국정 목표인 지방시대 균형 발전 가치 실현을 극대화할 수 있는 최적지다. 그간 APEC 정상회의 개최 도시 중 소규모 지방 도시인 멕시코 로스카보스(2002),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2012), 인도네시아 발리(2013), 베트남 다낭(2017) 등에서 성공적으로 개최한 사례를 보면 경주 유치의 당위성은 더욱 설득력이 커진다. 경주는 2014년 국제회의 도시로 지정됐다. 국제회의 도시 지정 이전부터 경주세계문화엑스포를 열어 국제문화 교류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선보였고, 2015년 경주화백컨벤션센터(경주하이코) 개관 이후 국제회의 도시로 꾸준히 성장해 마이스(MICE) 산업 도시로 성장해 왔다. 지난 수년간 다양한 분야의 대형 국제행사를 성공적으로 치른 경험으로 충분한 역량도 갖췄다. 특히 2022년 경주하이코를 중심으로 보문관광단지 일원 178만㎡가 비즈니스 국제회의 복합지구로 선정됐다. 또 경주는 주 회의장인 하이코를 중심으로 보문관광단지 전체를 APEC 정상회의를 위한 독립된 공간으로 활용할 계획이다. 보문관광단지는 숙박, 회의, 사무공간과 전시, 미디어센터 등 모든 주요시설을 가까운 거리에 배치할 수 있어 정상회의 안전성과 편의성 측면에서 최고의 환경을 제공할 수 있다. 국제적인 정상회의에서 절대 간과할 수 없는 부분이 바로 안전과 경호다. 수도권이나 대도시에 비해 경주는 각국 정상의 안전과 경호를 위한 입지적 조건이 최상이다. 정상회의가 열릴 경주 보문관광단지는 회의장과 숙박시설 등 모든 시설이 3분 거리 이내에 위치해 이동 동선이 매우 짧을 뿐만 아니라 다른 경쟁 도시와 달리 바다에 접해 있지 않아 해상을 봉쇄할 필요가 없다. 또 지형 특성상 호리병처럼 사면이 산으로 둘러싸여 경호 경비에 가장 최적화된 장소다. 여기에 경주는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역사문화관광 도시이며 첨단과학산업 도시로, 대한민국의 경제발전 경험을 공유할 수 있는 최적지이기도 하다. '2025 APEC 정상회의' 경주 유치를 위한 100만 서명 운동을 시작한 후 지난해 11월까지(85일간) 146만3천874명의 서명을 받는 놀라운 성과를 기록했다. 경북도·경주시는 현재 외교부의 공모 절차가 발표되지 않은 상황이지만, 개최 도시가 총선 후 4~5월쯤 결정되는 것을 고려해 서면 심사·현지 실사 준비에 행정력을 집중하고 있다. 경북도·경주시는 '2025 APEC 정상회의'를 반드시 경주에 유치해 경북도·경주시가 글로벌 도시로 나아가고, 지속 가능한 발전의 신성장 동력을 구축할 방침이다.주낙영 경주시장주낙영 경주시장
[성현 생각] 오래전부터 널 응원해
자신에게 주어진 삶이 버겁다고 느끼는 순간들이 있다. 터널을 지나듯 그 끝을 알 수 없는 어둠의 순간들은 두려움으로 다가와서 때로는 우리를 깊은 절망감에 사로잡힌 패배자로 만들기도 한다. 해낼 수 없을 것 같고, 견딜 수 없을 것 같은 나날들을 어찌어찌 견디며 걷다 보면 희미하게 새어 나오는 하나의 빛줄기를 발견하게 된다. 희망의 끝자락처럼 그 빛줄기는 가까이 갈수록 더 커지고 선명해지다 결국 터널의 끝을 만나게 된다. 그 순간 깨닫게 된다. 끝나지 않을 것 같던 절망의 순간을 끝까지 함께해 온 누군가의 응원과 기도가 미세한 빛줄기가 되어 우리와 함께하고 있었음을. '오래전부터 널 응원해.' 도성현〈blog.naver.com/superdos〉
[단상지대] 배려하기, 친밀하게 윤택하게
비바람이 몰아치던 어느 늦은 밤, 미국의 한 지방 호텔에 노부부가 들어왔다. 예약을 하지 않아 방을 잡기가 어려웠고, 밖은 비가 너무 많이 쏟아졌으며 시간은 이미 새벽 한 시가 넘어 있었다. 사정이 딱해 보였던 노부부에게 직원은 말했다. "객실은 없습니다만, 폭우가 내리치는데 차마 나가시라고 할 수가 없네요. 괜찮으시다면 누추하지만 제 방에서 주무시겠어요?" 직원은 기꺼이 자신의 방을 그 노부부에게 제공했다. 직원의 방에서 하룻밤을 묵고 아침을 맞이한 노인이 말했다. "어젠 너무 피곤했는데 덕분에 잘 묵고 갑니다. 당신이야말로 제일 좋은 호텔의 사장이 되어야 할 분이네요. 언젠가 제가 집으로 초대하면 꼭 응해주세요." 2년 후 그 호텔 직원에게 편지 한 통과 함께 뉴욕행 비행기표가 배달되었다. 자신의 방에 묵게 했던 노부부가 보내온 초대장이었다. 그는 뉴욕으로 갔다. 노인은 그를 반기더니 뉴욕 중심가에 우뚝 서 있는 한 호텔을 가리키며 말했다. "저 호텔이 마음에 드나요?" "정말 아름답네요. 그런데 저런 고급 호텔은 너무 비쌀 것 같군요. 조금 더 저렴한 곳으로 알아보는 게 좋겠어요." 그러자 노인이 말했다. "걱정 마세요. 저 호텔은 당신이 경영하도록 내가 지은 것입니다." 그 노인은 백만장자인 월도프 애스터(William Waldorf Astor)였고, 조지 볼트의 배려에 감동해 맨해튼 5번가에 있던 선친 소유의 맨션을 허물고 호텔을 세운 것이다. 변두리 작은 호텔의 평범한 직원이었던 조지 볼트는 그렇게 노부부에게 했던 마음 따뜻한 친절과 배려를 통해 미국의 최고급 호텔 '월도프 아스토리아'의 사장이 되었고 배려를 바탕으로 호텔을 성공적으로 경영했다. 배려가 생활 속에서 가장 많은 힘을 발휘하는 것은 바로 인간관계인데 윤택하게 하고 더욱 친밀하게 한다. 배려할 줄 아는 사람과 함께 있으면 즐거운 화제도 많아지고, 애정과 넓은 관심으로 늘 편하게 대해주기 때문에 마음의 문을 쉽게 열게 된다. 배려는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고 세상을 바꾸는 원동력 중의 하나로 존경심이나 포용, 관용, 애정, 사랑 등과 같은 방식으로 다르게 표현될 수도 있다. 배려하는 습관은 개인의 내적 성장에도 많은 도움이 된다. 에릭슨은 인간의 자아가 8단계를 거치면서 점진적으로 성장한다고 전제하면서, 각 단계마다 주어지는 특유의 과제와 위기를 성공적으로 해결했을 때 성격발달과 자아성장이 이루어진다고 주장했다. 그는 성인초기에 해당하는 6단계를 친밀성 대 고립감으로 정의하고, 이 시기의 가장 중요한 과제는 부모, 동료, 배우자 등과 좋은 인간관계를 발전시켜 친밀감을 형성하는 것이라고 소개하고 있다. 배려는 상대방에게 관심을 가지고 염려해주고 신경을 써주는 것이기에 배려받는 사람들은 고마워하며 친밀한 정을 나누려 한다. 이렇게 서로의 정이 오가면서 자연스럽게 친밀감이 형성되고 타인에 대한 애정도 갖게 되는 것이다. 성인중기에는 새로운 '또 하나의 생성'을 의미하는 생산활동에서 자신의 의미를 찾으려고 한다. 자녀의 원활한 성장을 돕고 직업을 통해 생산적인 활동에 참여하게 되는 데 만일 그렇지 못하면 사회 심리적으로 침체한다. 배려에 익숙해진다는 것은 이미 성숙을 향해 각 단계를 수행할 능력을 갖추어가고 있는 것이라 할 수 있다. 며칠만 지나면 가족들이 함께 모여서 정을 나누는 설날이다. 연휴 동안 만나고, 함께 시간을 보내게 될 가족, 지인들에게 내가 할 수 있는 배려의 말과 행동은 무엇인지 곰곰 생각해보게 된다. 올해에는 가정과 지역사회에서 남녀노소가 잘 어울려 살아가기 위한 배려의 언행과 정책, 활동이 더 많아지기를 기대한다.최윤정 대구YWCA 사무총장최윤정 대구YWCA 사무총장
[박재열의 외신 톺아보기] 파키스탄의 캥거루 재판
파키스탄은 2월8일이 총선일이다. 총선을 앞두고 이 나라는 전 총리 임란 칸(71)에 대한 여론이 뜨겁다. 법원이 바로 지난 화요일에 그에게 국가기밀 유출 혐의로 10년형을 내리더니 그다음 날에는 그가 공직에 있을 때 받은 선물로 이득을 취했다고 그들 부부에게 각각 14년형을 선고했다. 10년간 공직자 피선거권도 박탈했다. 남편은 현재 수감 중이고 아내는 가택연금 중이다. 피고도 변호사도 퇴장한 가운데 이뤄진 그들만의 판결이었다. 그 졸속 재판은 그를 이번 총선에 출마 못 하게 하려는 정치적 의도에서 빚어졌다. 그의 지지자들은 이 날치기 재판이야말로 '캥거루 재판'이라고 했다.칸은 아직도 한마디로 파키스탄의 전설이다. 그는 옥스퍼드를 나와 크리켓 국가대표선수로 활약하면서 파키스탄에 크리켓 월드컵 우승배를 안겨준 국민영웅이었다. 43세 때 21세의 세계굴지 부호의 딸과 결혼하면서 뜨거운 주목을 받았다. 두 번째 결혼은 미니스커트를 입는 유명 앵커우먼과 하였다. 현재 부인은 원래 그가 수피즘에 몰두하면서 만난 그의 종교 자문이면서 다섯 자녀의 어머니였다. 그녀는 신비한 능력이 있었고 자기와 결혼하면 그가 총리가 될 것을 예언했다고 한다.그는 2018년엔 정말 총리가 되어 이슬람의 가치를 중히 여기면서 구정치질서를 타파하려고 노력하였다. 탈레반에 대한 우호적 행보나 오사마 빈 라덴을 순교자라고 칭한 것은 단순한 실수가 아닐 듯싶다. 그러나 경제가 어려웠고 미국과는 소원했다. 결국 4년을 못 채우고 2022년 불신임으로 총리직에서 쫓겨났다. 파키스탄은 분리 독립 후 아직까지 총리가 되고 못 되는 것은 대부분 군부에 달려 있다.경북대 명예교수·시인경북대 명예교수·시인
[아침을 열며] 지금의 평화와 번영이 지속되기를 소망하며
우리 세대는 어릴 적에 역사에 관심이 많았다. 고대사를 읽으며 신화에 푹 빠져 상상의 나래를 펴기도 하고 중세 시대 영웅호걸의 모험과 서사에 마음 졸이며 여정을 함께 하기도 했다. 세계를 개척하고 제패하며 시대를 이끌어간 근현대 위인의 전기에는 심금을 울리는 감동이 있었다. 어린 마음에는 인류의 역사가 늘 분쟁이 잦고 전쟁은 길게 지속되는 데 반해 평화는 힘들게 찾아오고 짧게 끝난다고 생각하곤 했다. 그때마다 영웅과 호걸과 위인이 오랜 노력 끝에 만들어낸 아슬아슬한 평화에 안도하곤 했다.동양의 역사를 볼 때마다 일이백 년 사이 흥망을 거듭하는 왕조의 역사 속에 백성이 겪었을 고달픔이 못내 안타까웠다. 우리 역사에도 왕조는 1천년 또는 오백 년을 이어가도 평화는 그리 오래 가지 못했다. 오백 년 역사를 자랑하는 조선도 왜와 청의 침략으로 국토가 초토화되는 등 전란이 끊이지 않았다. 십자군 전쟁과 백년전쟁 등에서 보듯 서양에도 전쟁이 때때로 세기를 넘어 계속되었다. 오랜 전란의 소용돌이가 휩쓸 때면 일상이 파괴되고 피폐해진 세상 속에 생명은 헛되이 사라지고 고통은 심대하였다.연이은 전쟁 사이에 불안한 평화가 잠시 찾아오는 것이 우리 인간의 역사라는 생각은 필자가 우리 사회의 눈부신 발전을 직접 목도하면서 점차 바뀌게 되었다. 참으로 다행스럽게도 우리 세대는 전쟁을 직접 경험하지 않았다. 할아버지 세대가 일제시대를 견뎌왔고 아버지 세대가 6·25전쟁을 이겨낸 덕분이다. 6·25전쟁이 끝난 지 칠십 년이 지났다. 전쟁의 폐허 속에서 떨쳐 일어난 우리나라의 눈부신 발전을 직접 경험하고 보니 백 년이면 얼마나 더 풍요로운 세상을 만들 수 있을까 은근히 기대하게 된다.인류의 역사에서 평화 시대가 백 년을 이어가는 것은 대단한 일이다. 인류 전체가 존망을 걸고 벌인 두 차례의 세계대전이 끝난 지 채 백 년이 되지 않았다. 이차대전 이후 인류가 이룩한 문명은 눈부시다. 파괴적인 세계대전을 일으킨 인류가 지금 누리는 풍요와 평화는 놀랄 만하다. 백 년도 안 된 세월에 우리 대한민국이 만든 발전을 보면 더욱 경이로울 따름이다. 한반도에 인간이 거주한 이래 가장 번영을 누리는 때가 지금이고 현존하는 우리가 가장 잘사는 사람이다. 이제 대한민국은 세계 속에 당당한 선진국이다.하지만 세상이 마냥 오늘 같지만은 않다. 세계정세가 무섭게 요동치고 있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과 이스라엘의 가자 공습 등은 공들여 일군 일상과 평화가 언제든 쉽게 깨질 수 있다는 사실을 새삼 일깨워준다. 국제 사회에서 분쟁은 항상 존재해왔다. 국가마다 너나없이 자국 이익을 노골화하며 블록화되는 경향이 뚜렷하고 군비 확장과 재무장으로 나아가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무엇보다 걱정되는 일은 전쟁을 경험한 세대가 사라지면서 그런 시대의 고통과 비정함이 점점 잊히고 있다는 사실이다.한때 통일을 기대하던 남한과 북한의 관계가 빠르게 냉각되고 있다. 국제 사회 일각에서는 고조되는 긴장이 전쟁으로 이어질지 모른다는 전망까지 하고 있다. 자칫 평화는 짧고 전쟁은 긴 역사가 되풀이될까 두렵다. 우리 세대는 다행히 번영된 세상을 일구고 누릴 수 있었다. 다음 세대에 풍요로운 세상을 이어줄 책무가 우리에게 있다. 어린 시절 열광하던 영웅과 위인은 전쟁이나 난세를 배경으로 등장하였다. 그런 영웅과 위인이 필요하지 않은 평화와 일상이 백 년을 넘어 더 오래 지속되기를 소망해본다. 박순진 (대구대 총장)박순진 대구대 총장
[메디컬 窓] 지역의료 공백은 진행형, 적극적 관심과 정책 필요
필자는 대학병원에서 근무하고 있다. 제한적인 공간에서 제한적인 인간관계를 이어나가고 있어 대학병원 밖의 일에 대해 소식이 늦다. 그러나 반대로 제한된 공간에서 제한적인 인간관계 중 상당수가 의학관련 피교육자이다 보니 의과대학생 혹은 전공의와 사석에서 이야기를 할 기회가 많다. 피부로 와닿는 변화가 있으니 학생 중에는 타 지역 출신 학생이 늘어났고, 전공의 중에서는 대학병원의 교수로 남겠다는 사람이 줄어들고 있다. 이는 현재 진행형이며 지역의료의 상황이 앞으로 어떻게 변화할지를 보여주는 단편이다. 특히 필자는 다양한 형태로 의과대학생을 접하고 있다. 그중 선택실습을 끝내고 의사고시에 금방 합격한 학생 한 명으로부터 연락이왔다. 직접 만나 이야기를 들어보니 진로에 관한 내용이었다. 그 학생은 연고지가 대구가 아니었고, 형제가 없어서 부모님과 충분히 상의 후에 결정하는 편이 좋겠다고 조언을 하였다. 결국 그 학생, 아니 그 새내기 의사는 연고지에서 인턴을 하기로 결정했다고 연락이 왔었다.지금도 필수 실습을 오는 학생에게 간단하게 추후 진로에 대해 물으면, 타 지역에서 온 상당수의 학생이 고향으로 가겠다고 하고, 그중 많은 학생들이 수도권에서 온 것을 고려한다면 추후 지역에서 일을 하겠다는 의사가 줄어듦에 틀림이 없다. 더욱이 대구에 연고를 둔 학생도 적지 않은 수가 서울에서 수련을 받기를 원하고 있어 인력 유출이 가속화되고 있다. 한편, 전문의 취득 후 진로에 대해서는 크게 4개로 나눌 수가 있다. 대학병원에서 교수로서의 진로, 봉직의 그리고 의원 개원이다. 이외에는 의사관련 일을 바탕으로 한, 기자와 같은 다직역의 일이다. 현재 수련을 받고 있는 전공의에게도 진로에 대해 의견을 나누다 보면 봉직의를 우선 생각하고 있고, 다음으로는 개원을 염두에 두고 있으며, 대학병원의 교수는 마지막의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의과대학 교수가 진료, 교육, 연구를 포함한 다양한 일을 하면서 헌신하여 받는 유무형의 보상이 해가 갈수록 떨어지고 있다. 더욱이 교수의 빈 자리를 메꾸기 위해 진료계약직으로 근무하는 진료교수와 의과대학 교수의 보수 차이 또한 상당하여 현재 근무 중인 의과대학 교수들의 상대적 박탈감 또한 크다. 이러한 분위기를 발 빠른 MZ세대 전공의들은 너무나 잘 알고 있다.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지금까지 대책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공공의대, 지역의사제와 같은 제도가 제안되었다. 두 정책 모두 졸업 후 10년간 근무자리를 강제한다는 것인데 이에 대해 반발이 예상되며, 복지부에서도 이에 대해 의사가 자발적으로 남게 제도를 개편하겠다고 한다. 자연스럽게 정착을 할 수 있도록 대책이 필요하다. 그중 하나가 지역인재 선발의 비율을 늘려서 지역의료에 일을 할 새내기 의사를 늘리는 것도 방법이다. 그리고 지방 국립대병원의 의료진, 즉 의과대학 교수의 유출을 막기 위한 정책도 제시되었다. 2024년 1월에 국립대 교수 중 일부를 반드시 타 대학에서 뽑아야 한다는 규정을 폐지하였다. 또한 지방국립대의 기능을 극대화하기 위해 2023년 10월에는 인건비와 정원 관리와 같은 공공기관의 규제를 손을 보겠다고 하였다. 정책의 방향성이 맞다면 시일을 늦출 필요가 없다고 생각한다. 더욱 중요한 것은 지역사회가 직업에 관계 없이 살 수 있도록 매력적인 도시로의 변화이다. 중앙정부는 이에 대한 부분도 소홀히 하여서는 안 되겠다. 이종목 (대구시의사회 공보이사·경북대병원 신경과 교수)이종목 (대구시의사회 공보이사·경북대병원 신경과 교수)
의료대란으로 번진 의대 증원
의료개혁특위 "의료개혁 시기상 미룰 수 없는 과업…소통 통해 의견 좁힐 것"
경북대, 내년도 의대 입학정원 '155명' 조정에 대구경북 타 대학 결정도 관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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