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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체장의 생각:長考] 정부 인구정책에 따른 시너지 효과 창출
미용실과 약국 등 생활에 꼭 필요한 가게가 하나둘씩 사라지고 60대가 제일 젊다는 말이 더는 우스갯소리가 아니다. 수도권을 제외한 전국 대부분이 인구감소지역으로 선정되면서 지방소멸이 국가의 존립을 위협하고 있다.예천군 역시 2015년 인구가 4만4천명으로 최저점을 찍으며 위기감이 최고조에 달했으나 경북도청 유치로 신도시가 형성되면서 드물게 인구가 증가하는 곳이 되었다. 그러나 신도시를 제외한 다른 곳은 여전히 저출생과 고령화의 문제를 안고 있으며 신도시 역시 1단계 개발 이후 인구 증가가 둔화되었다.이에 예천군은 보다 선제 대응으로 '아이와 부모가 모두 행복한 예천, 아이 낳고 키우기 좋은 예천' 만들기를 우선 과제로 삼아 행정력을 집중해 왔다.물론 국가 존립을 위협하는 인구감소의 문제가 한두 군데의 지자체 노력으로 간단히 해결할 수 있는 문제는 아니지만, 지방소멸의 위기를 이겨내기 위한 지자체의 자구책들이 중앙정부의 정책과 시너지 효과를 일으킬 수 있도록 그 어느 때보다 적극적인 행정을 펼쳐야 한다고 생각한다.예천군이 저조한 출산율에도 불구하고 공공산후조리원을 건립하는 이유도 이와 맥락을 같이한다. 출산 친화적인 환경이 먼저 조성되어야 출산 장려가 효과를 볼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와 함께 예천군은 출산장려금을 확대 지급하고 있으며, 아이의 성장 과정에 따라 발생할 수 있는 돌봄 공백을 메우기 위한 다양한 돌봄센터 역시 꾸준히 늘려오고 있다.또 아이사랑안심케어센터나 복합커뮤니티센터 등 지역 거점 시설의 운영 역시 아이와 청소년을 대상으로 하는 프로그램을 늘려 아이를 낳고 키우기 좋은 환경을 조성해 가고 있다. 교육 인프라 확충과 일자리 창출을 위한 다양한 사업을 추진해 인구 유출을 막고 장기적으로 출생률 상승으로 이어지도록 추진하고 있다.최근에는 '교육발전특구 시범지역 지정'에 공모해 선정되었고, 안동대와 경북도립대가 공동으로 기획· 추진해 선정된 '글로컬대학 30 사업' 역시 교육 분야의 격차를 해소하며 청년층의 유입을 유도하게 될 것으로 기대된다.공사 중인 경북형 클라우드데이터센터 건립에 발맞춰 공공임대형 지식산업센터를 건립하고 지식첨단 산업단지를 조성해 일자리 창출을 위한 기반을 다지고 있으며 이는 앞으로 예천지역 인구 유입의 중요한 요소가 될 것이 분명하다.그리고 지역 발전의 원동력인 청년층이 안정적으로 예천에 정착하고 성장할 수 있도록 '인구청년정책팀'을 신설해 일자리, 주거, 복지, 사회참여 등 4개 분야의 사업을 지원하고 있으며 최근엔 자발적인 청년회가 만들어지며 적극적인 분위기가 형성되는 효과를 보고 있다.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인구감소와 지방소멸이 국가의 존립을 위협하고 있다는 사실을 함께 인식하는 것이라 생각한다. 최근 경북도가 저출생과의 전쟁을 선포함에 따라 예천군 역시 저출생 극복 성금 모금 캠페인을 추진해 효과를 배가시키기 위한 노력을 하고 있으며, 앞으로도 한두 가지 사업의 성공에 의존하지 않고 끊임없이 새로운 전략과 사업을 발굴해 갈 것이다. 다른 지역 역시 적극 행정으로 인구감소와 지방소멸에 대응하기 위한 노력을 펼치길 바라며 모두의 노력으로 저출생과 인구감소의 위기를 극복하는 날이 하루라도 빨리 당겨지길 기대한다. 김학동 예천군수김학동 예천군수
[단상지대] 시민참여형 캠페인에 관심을
찬 바람과 '밀당'하던 봄이 포근하게 일상에 스며드는 4월이다. 겨우내 움츠렸던 가지들은 연한 색으로 갈아입고 잘게 부서지는 햇살 아래 고운 빛으로 싱그러움을 뿜어내기 시작한다. 주말마다 꽃이 좋고 바람이 좋은 곳을 찾아다니는 것도 좋지만 지금 누리고 있는 자연이 주는 축복을 다음 세대도 누리기 위해서 펼쳐지는 환경 캠페인에도 관심을 가지고 참여할 것을 권유한다.4월22일은 '지구의 날'이다. 1969년, 미국의 해상 원유 유출 사고를 계기로 미국에서 시작하였고 이후 환경 문제에 대한 관심과 행동을 촉구하기 위해서 전 세계가 기념하고 있다. 올해 대구에서도 지구의 날 대구위원회와 지속가능발전협의회에서는 기후위기가 심각함에 따라 환경 이슈를 홍보하고 체험을 통해 시민에게 전달하기 위해 플라스틱 없는 지구, 'NO Plastic is Fantastic' 'No plastic, No CO2' 'Say "NO" to plastic'을 주제로 오는 20일(토) 수성못 상화공원에서 대구시민생명축제를 진행한다. 탄소중립을 실천하는 걷기와 자전거 행진에 참여할 수도 있고 환경이슈별 전시관을 둘러보며 체험관에서는 다양한 활동을 경험할 수 있다. 작년까지는 중앙로 일정 구간에 24시간 동안 차 없는 거리를 조성하였고 지구의 날 캠페인의 상징이 되었었다. 올해는 부득이하게 공간이 변경되어 벌써부터 아쉬움의 목소리가 크지만 가족단위의 시민들이 잊지 않고 찾아주기를 기대한다. 지구의 날과 관련하여 자원순환은 자원의 효율적인 사용과 재활용, 재사용을 통해 자원의 소모를 최소화하고 지구환경을 보호하는 의미에서 매우 중요한 주제인데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아나바다운동이 가정에서 실천할 수 있는 대표적인 사례이다. 한국YWCA가 1990년 바른 삶 실천운동의 한 영역으로 아껴쓰기, 나눠쓰기, 바꿔쓰기, 다시쓰기를 생활화하기 위하여 시작한 실천적 생활 운동이다. 아나바다운동은 교육적인 가치도 지니고 있는데 물건을 공유하고 함께 사용하면서 아이들은 협력과 공유의 중요성을 배우고, 다른 사람들과 함께하는 가치를 이해할 수 있다. 또한 기존의 물건을 재활용하고 새로운 용도로 활용하는 것을 장려함으로써 창의성과 혁신력을 키울 수 있으며, 자원의 다양한 활용 방법을 탐구할 수 있다. 자원을 절약하고 환경을 보호하는 메시지도 전달할 수 있다. 물품을 구매하고 판매하는 과정에서 경제적인 가치를 배울 수 있다. 가격 협상, 예산 관리, 소비의 가치 등을 경험하며 경제 개념을 익힐 수 있다. 가족단위로 참여하는 자원순환의 장으로 '대구YWCA 카부츠 벼룩시장'을 소개한다. 이는 차량을 이용하여 주차장이나 공공장소에서 개인들이 물건을 사고팔 수 있는 시장이다. 주로 가정용품, 의류, 도서, 장난감 등이 거래되며, 저렴한 가격에 좋은 물건을 찾을 뿐 아니라 사회적 상호작용과 지역 사회 간의 연결을 촉진한다. 사람들이 모여 물건을 사고팔면서 소통하고 교류함으로써 지역 사회의 활성화와 사회적 연대감을 형성하게 되는 것이다. 또한 사용하지 않는 물건을 판매하여 수익을 얻을 수 있고, 저렴한 가격에 다양한 물건을 구매할 수 있기 때문에 이는 경제 활동을 촉진하고 지역 경제의 활성화에 기여할 수 있다. 볼 것도, 갈 곳도 많은 봄날, 초록별 지구가 주는 혜택을 다음 세대도 누릴 수 있도록 공유하고 협력하며 창의적인 활동이 가능한 환경캠페인에 참여해 시민의식이 높아지고 삶의 가치를 나누어 보는 4월이 되길 기대한다. 최윤정 (대구YWCA 사무총장)최윤정 (대구YWCA 사무총장)
[박재열의 외신 톺아보기] 노인과 황새
13년 전 튀르키예의 한 노인이 호수에서 그물을 올려 고기를 떼어내고 있었다. 그물이 부스럭거려 돌아봤더니 놀라워라, 하얀 깃털, 까만 끝동을 단 날개, 오렌지색 다리, 뾰족하고 긴 부리, 황새가 와 있지 않은가. 노인은 꿈에도 생각지 못한 손님이라 고기 한 마리 던져 줬더니 넙죽 받아 삼켰다. 또 줬더니 또 삼켰다. 노인은 그해 여러 번 이 새의 방문을 받고 식사를 대접하였다. 노인과 황새의 인연은 이렇게 시작되었다. 이 황새를 야렌이라고 불렀다. 야렌은 '아내' 나즐리가 있었다. 이들은 늦여름엔 남쪽으로 내려갔다가 그 이듬해 봄에 옛 보금자리와 노인의 배를 잊지 않고 찾아왔다. 황새는 일부일처제이나 남쪽으로 갈 땐 따로 간다. 그 이듬해 봄엔 정확히 옛 둥지로 돌아와 함께 새끼를 깐다.5년째 되는 해에 한 사진작가가 노인의 이야기를 보도했다. 올봄에 야렌이 13년째 찾아오니 지방방송은 야렌의 '귀향'을 크게 다루었다. 이들을 주제로 다큐멘터리, 동화를 만드니 이 노인은 유명인사가 됐다. 70세 노인과 17세 황새가 주연하는 영화까지 만들고 있다. 235명이 사는 이 조용한 마을이 관광지가 되었다. 올레 길을 내고 호수 옆에 카페를 열었다. 1980년대에는 41쌍이 둥지를 틀었으나 올해엔 네 쌍이 왔다. 야렌 부부의 보금자리는 노인 집 옆 전주 위에 있는데 지방정부에서 둥지 옆에 카메라를 설치하여 24시간 일반시청자들이 들여다볼 수 있도록 했다. 부부는 몸을 단장하고 목을 비틀고 부리로 딱딱 소리를 내고 둥지를 고쳐 짓고 사랑을 나눈다. 노인이 야렌! 하고 불러 부부에게 식사를 제공한다. 관광객들은 이 노인을 보면 반갑다고 놓아주지 않는다. 경북대 명예교수·시인박재열 (경북대 명예교수·시인)
[성현 생각] '사'랑을 '명'받다
인간은 다른 동물들과 다르게 아기로 태어나면 엄마의 젖을 먹고 자라기까지 많은 시간이 걸린다. 갓 태어난 아기는 부모나 보호자의 지속적인 보살핌이 없이는 결코 생존할 수 없다. 그러기에 인간이 생존하는 데 가장 근본이자 필수적인 요소는 사랑이다. 부모가 아이를 대하는 마음처럼 진정한 사랑에는 조건이 없고, 사회 공동체를 통해 많은 사람들의 지지와 사랑을 받으며 자라게 된다. 사랑으로 보호받고 사랑으로 성장한 우리에게 사랑은 사명이다. 도성현〈blog.naver.com/superdos〉
[아침을 열며] 벚꽃이 피고 지고 봄날은 짙어가고
계절은 완연한 봄으로 나아가고 있다. 주말 동안 벚꽃이 만개하고 꽃잎이 눈송이처럼 흩날리는 멋진 풍경이 연출되었다. 막 물오른 나무는 연한 새싹을 밀어내고 양지바른 언덕에는 때 이른 야생화가 고개를 불쑥 내밀고 있다. 지난겨울 유난히 바람이 심하고 날씨가 변덕스러웠어도 어김없이 봄이 때맞춰 오는 것을 보면서 해마다 이맘때면 문득 자연의 섭리에 마음이 겸허해지곤 한다. 봄의 생명력은 가히 감탄할 만하다.큰길에는 잘 자란 벚나무가 흐드러지게 꽃을 피웠다. 저렇게 많은 꽃을 약속한 듯 일시에 피워내니 신기할 따름이다. 나무들이 서로 소통한 듯 때를 맞춘다. 사람들이 모르는 말을 주고받는 게 분명하다. 단번에 피워내는 꽃의 양도 실로 엄청나다. 저렇게 많은 물질을 준비한 것이 참으로 놀랍다. 흐드러진 꽃송이 하나하나를 보면 그 많은 송이가 저마다 온전히 제대로 모습을 갖추어 피었다. 바쁘게 핀 듯해도 허투루 피지 않는다.주말 동안 상춘객이 넘쳐났다. 벚꽃은 유난히 짧은 기간 활짝 피었다 한꺼번에 흩날리며 떨어지는 꽃이라서 자칫 만개 시기를 놓치면 또 한 해를 기다려야 한다. 요 며칠 동안 강둑을 따라 핀 벚꽃길이며 대학 캠퍼스에 줄지어 꽃핀 벚나무 아래며 사람들이 삼삼오오 산책하며 사진 찍기에 여념 없는 장면이 연출된다. 필자도 봄놀이 삼아 산책을 나섰다. 주말 동안 번잡한 세상사를 내려놓고 잠시 여유를 갖고 싶었다.마침 집을 나선 김에 투표소에 들러 사전투표를 하기로 했다. 벚꽃 가득 핀 동네 길을 지나 큰길에 접어들면 길목마다 유권자를 현혹하는 현수막이 어지럽게 걸려 있다. 후보들의 소란스럽고 다소 과장된 유세가 가던 발걸음을 멈추게 한다. 선거 운동이 본격적으로 시작되며 우리 사회의 갈등과 분열이 민낯을 드러내고 있다. 지역을 대표하고 시민을 위해 일할 국회의원을 선출하는 선거를 보며 기대보다 우려가 큰 현실이 여러모로 아쉽다. 선거일이 다가올수록 세상이 더 어지럽고 두렵게 느껴진다. 유권자로서는 당혹감만 커진다.후보들이 저마다 지역을 발전시키고 국민의 민생을 위한 공약을 내세우고 있지만 정작 유권자의 이목을 붙잡는 것은 시끄러운 확성기와 꼴사나운 네거티브다. 방송에서는 비방과 흑색선전이 난무한다. 유튜브는 더 가관이다. 언젠가 했던 말과 글이 온통 까발려지고 연일 논란이 된다. 국민 눈높이에 맞지 않는 행동을 한 사람으로 지목되면 그 파장이 끝도 없다. 누가 더 나쁜 사람인가 경쟁하는 형국이다. 그야말로 소문이 만개하였다.벚꽃이 활짝 핀 길을 걸으며 봄이 오고 있음을 느끼고 싶어서 나선 길에서 선거 운동을 맞닥뜨리니 여러 생각으로 마음이 편치 않다. 아무리 그래도 맹렬한 봄 풍경은 혼탁한 세상사를 잠시 잊게 해준다. 계절은 변하는 대로 순응하면 되고 멋들어진 꽃은 피어난 그대로 감상하면 그만이다. 굳이 꽃마다의 과거나 미래를 캐묻거나 말하지 않는다. 가로수로 심어져 잘 가꾼 벚꽃도 좋고 앞산과 뒷산에 제멋대로 자란 야생 꽃도 나름대로 제멋이 있다.자연은 긴 겨울을 인내하며 봄을 준비하고 일순간 봄이 된다. 멋들어진 꽃이 피었다가 금방 떨어지는 장면은 해마다 겪는 일인데도 매번 경이롭게 보게 된다. 꽃이 피고 지는 일은 자연이 정한 이치다. 화무십일홍이라 하니 때를 놓치지 말아야 한다. 넘치는 상춘객들과 더불어 여유를 느껴 보자. 일순간 꽃이 지고 나면 연이어 나뭇잎이 새순을 내밀고 무성해진다. 세상사 아무리 번잡하고 우리를 어지럽게 해도 무심한 봄은 그렇게 깊어간다.박순진 대구대 총장박순진 대구대 총장
[하재근의 시대공감] 눈물의 여왕, 또다시 K드라마 신드롬
그동안 부진했던 tvN 드라마가 이번에 대박을 쳤다. 바로 박지은 작가의 신작 '눈물의 여왕'이다. 1회 방영 후 계속 상승하더니 8회 만에 시청률 16.1%를 찍으며 20%선까지 넘보고 있다. 한국갤럽이 3월19일부터 21일까지 조사한 '한국인이 가장 좋아하는 방송영상 프로그램' 순위에서 방송 2주 만에 1위에 오르기도 했다.해외에서의 반응도 심상치 않다. 지난 3일에 발표된 넷플릭스 글로벌 TOP10 시리즈(비영어) 부문에서 1위에 올랐다. 글로벌 OTT 콘텐츠 순위 서비스 플릭스패트롤의 차트에선 미국, 캐나다, 일본, 호주, 인도, 그리스, 터키, 사우디아라비아, 브라질, 멕시코, 아르헨티나 등 68개국에서 10위권에 진입했다. 또 다른 K드라마 열풍의 가능성이 엿보인다.박지은 작가와 김수현의 만남이다. 이 둘은 2013년 작 '별에서 온 그대'로 국제적 신드롬을 일으켰었다. 그 드라마로 인해 옥스퍼드 영어사전에 '치맥'이 공식 등재되기까지 했다. 옥스퍼드 사전 측은 치맥을 '맥주와 영어 단어에서 빌려온 튀긴 닭을 뜻하는 치킨의 합성어 … 프라이드 치킨과 맥주의 조합은 K드라마 '별에서 온 그대'를 통해 한국 밖에서 대중화됐다'고 설명했다.이 둘은 2015년 작 '프로듀사'로 다시 만났다. 이 작품은 드라마국이 아닌 예능국에서 제작한 시트콤 느낌의 드라마였는데도, 그해 KBS에서 방영된 미니시리즈 중 최고 히트작이 됐고 김수현은 연기대상까지 받았다.그렇게 성공가도를 달렸던 두 사람이 9년 만에 함께한 '눈물의 여왕'으로 또다시 국제 신드롬을 일으킬 분위기다. 이 작품에선 박지은 작가의 장기가 절묘하게 발휘됐다. 바로 관습을 적당히 뒤집는 감각이다. 기존 로맨스 드라마 장르의 관습을 뒤집기는 하는데, 모두 뒤집는 게 아니라 시청자들이 받아들일 만한 선을 정확히 잡아 딱 적당하게만 뒤집는다.보통 로맨스 드라마에선 결혼이 끝이다. 주인공들이 우여곡절 끝에 결혼에 골인하면 '사랑의 영원한 완성'으로 간주되며 이야기가 끝난다. 반면에 '눈물의 여왕'에선 결혼 3년 차 권태기에서부터 이야기가 시작된다. 남주인공의 소원이 이혼이다. 이런 로맨스물은 지금까지 없었다.보통 남주인공이 재벌3세 백마 탄 왕자인데 이 드라마에선 여주인공이 재벌3세다. 백마의 대체물인 헬기를 타고 상대를 만나러 오는 것도, 키스를 먼저 하는 것도, 미래를 약속하며 '나만 믿으라'고 상대를 안심시키는 것도 여주인공의 몫이다. 남주인공은 데릴사위로 처월드 눈칫밥을 먹으며, 독박 제사음식 준비로 신세한탄을 한다.이런 전복적 설정에 대해 미국 타임지는 "'눈물의 여왕'은 우리가 K드라마에서 흔히 기대하는 것을 비틀고 신선하게 접근한 드라마"라고 썼다. 포브스도 "많은 K드라마들이 '그리고 행복하게 살았습니다'로 끝나지만, '눈물의 여왕'은 그 지점에서 시작된다"라고 썼다.그런데 앞에서 설명한 것처럼 모든 관습을 다 뒤집지는 않았다. 여주인공만을 사랑하는 뛰어난 남주인공이 여주인공을 지켜준다는 관습은 그대로 구현했다. 이래서 '딱 적당히만' 신선한 작품이 된 것이다. 적당히 신선한 설정을 만들어내는 게 박지은 작가의 장기이면서 K드라마의 성공비결이기도 하다. 타임지가 "'눈물의 여왕'은 익숙한 요소와 참신한 요소를 결합"했다고 썼는데, 그렇게 익숙하면서도 참신하게 느껴지도록 장르의 관습을 적절한 선까지만 비트는 감각을 계속 보여준다면 K드라마 신드롬의 수명이 더욱 연장될 수 있을 것이다. 문화평론가하재근 문화평론가
[주진오의 한국현재사] 진정한 보수의 가치를 지키려면
"어떤 사람들은 늘 '이미 지나간 일 더 이상 이야기하지 말고 미래를 봐야 한다'고, '독재시대 통치자의 시비와 공과는 역사에 맡겨서 판단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경제가 훨씬 더 중요한데 왜 과거청산을 해야 하느냐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심지어 과거청산은 정치투쟁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물론 경제도 중요하지만 정의도 아주 중요합니다. 발전과 정의가 함께 존재하는 나라가 마땅히 우리가 추구해야 하는 것입니다. 과거청산은 투쟁이 아닌 화해를 추구하는 것입니다. 이것도 정부가 단호히 지켜야 하는 원칙입니다. 과거청산은 국민 여러분의 노력이 필요합니다. 온 국민이 과거를 당당하게 직면할 수 있어야 우리나라의 미래가 밝게 됩니다."위의 내용은 2017년 타이베이에서 열렸던 2·28 사건의 70주년 기념사에서 타이완의 차이잉원 총통이 했던 기념사의 일부인데요. 현장에서 연설을 직접 들으면서 타이완과 우리의 현실이 비슷하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우리 사회에도 경제를 내세우며 과거청산을 반대하고 독재자의 잘못을 은폐하고 오히려 찬양하는 논리도 있으니까요. 대륙에서 마오쩌둥에게 쫓겨 타이완으로 피신했던 장제스가 이끄는 국민당 정부는 일당독재 정권을 오랫동안 유지했습니다. 수많은 타이완 주민을 학살했던 1947년의 2·28 사건 이후, 계엄령을 실시하여 정치적 움직임을 원천 봉쇄했어요. 국민당 정부에 반대하는 민주인사들은 멀리 뤼다오라는 섬으로 보내어 인권을 유린했습니다. 1979년 타이완의 민주화 운동가들이 '메이리다오(美麗島)'라는 잡지사를 만들었어요. 그들은 처음으로 계엄철폐를 요구하는 시위를 벌였으나 무력으로 진압당하고, 관련자들이 군사재판을 받고 투옥되는 사건이 발생하였습니다. 이 사건의 관련자들과 그들의 변호인들이 대만 민주화 세력의 구심점이 되었고 이들이 1986년 민진당을 창당했어요. 1987년 마침내 계엄령이 해제되었고 총통 직선제가 도입되었습니다. 2000년에 치러진 선거에서 민진당의 천수이볜이 당선되어 처음으로 평화적인 정권교체가 이루어지게 되었어요. 이후 다시 국민당으로 정권이 넘어갔다가 2016년부터 민진당의 차이잉원이 다시 집권하고 재선에 성공하여 이번 5월로 8년 동안의 모든 임기를 마치게 됩니다. 우리는 단교하기 전까지 중국을 중공이라 부르는 대신 타이완을 자유중국이라고 불렀지요. 그러나 그 시절 자유중국에 자유는 없었고 사실은 일당독재 국가였습니다. 과거 우리의 독재자들도 자유민주주의를 수호한다고 외쳤지요. 하지만 그들의 자유는 종신독재로 귀결되었고, 반공을 내세워 자유와 민주주의를 압살했던 것입니다. 흔히 영남을 보수적인 지역이라고 하는데요. 보수란 전통과 원칙을 중시하고 도덕과 명예를 소중히 여기며, 나라를 위해 책임 있게 행동하는 집단을 일컫는 것입니다. 영남의 선비들이 의를 위해서라면 목숨을 걸고 부당한 권력에 맞섰으며, 국권을 빼앗은 일본에 대해 자결과 의병으로 맞섰던 것이야말로 진정한 보수의 면모라고 할 수 있지요. 권력에 굴종하거나 부정부패와 독재로 기득권을 유지하려는 세력은 사실 보수의 기준에 부합하지 않습니다. 영남은 가장 많은 항일지사를 배출했고, 독재를 무너뜨린 4·19 혁명의 도화선이었던 2·28 민주운동의 고장입니다. 이런 분들이야말로 진정한 보수라고 할 수 있지요. 물론 기념관을 만드는 것도 필요하지만, 그러한 자세를 이어받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상명대 역사콘텐츠 학과 명예교수주진오 (상명대 역사콘텐츠 학과 명예교수)
[더 나은 세상] 사무실 이웃 까치
몇 주 전 일이다. 내가 일하는 사무실 건물 남쪽 끝 방을 쓰는 동료가 보여줄 게 있다며 자기 방으로 와 보란다. 동료는 햇살이 너무 잘 들어 컴퓨터 화면이 잘 안 보인다고 내려둔 창문 롤스크린 줄을 마치 비밀 문을 여는 것처럼 조심스럽게 당겼다. 창문 밖으로 나뭇가지가 삐죽삐죽 뻗쳐 있는 게 보였다. 롤스크린을 다 올리자 5층짜리 건물 4층 높이에 수직으로 걸린 간판 옆으로 수많은 나뭇가지가 얼키설키 그러나 탄탄하게 엮인 모습이 드러났다. 처음엔 감이 오지 않았다. 창문 밖으로 목을 빼고 보면 좀 더 잘 보일 것 같은데, 이 건물 창문은 환기를 위해 15도 정도만 열리게 돼 있어 그럴 수도 없었다. 한참을 보는데 마침 까치 한 마리가 간판 뒤쪽으로 살짝 넘어가더니 시야에서 사라진다. 어머, 그럼 저건, 까치집? (나중에 알고 보니 까치집 입구가 간판 뒤쪽에 있었다) 세상에나. 건물 외벽과 간판 사이 공간에 까치가 집을 지었다. 동료 방에서는 까치집 한쪽 면만 보이기에 위에서 내려다보면 전면이 다 보일까 해서 건물 옥상에 올라가 봤는데 옥상 벽이 높아 아래가 보이지 않았다.(안전을 위해서는 그 정도 높이는 필수겠지). 건물 밖으로 나가 이쪽저쪽으로 둘러봤지만 까치집이 높아 잘 안 보이는 건 마찬가지였다. 평소 동물에 별 관심이 없는 나지만, 아무런 접착제도 없이 벽과 간판 사이 빈 공간에 나뭇가지들만으로 어떻게 저리 안정된 요람을 만들 수 있는지 너무 신기해서 까치에 '급관심'이 쏟아졌다. 그날 이후 시간만 나면 까치와 까치집 관련 동영상을 찾아보곤 했다. 헌신적인 다큐 감독들이 찍은 영상들은 나의 궁금증을 기대 이상으로 해소해 주었다. 까치는 집을 짓는 데 약 1천개 정도의 나뭇가지를 쓴다고 한다. 인간처럼 운반 도구가 있는 것도 아니니 한 번에 하나씩 적어도 천 번 이상은 오간다는 얘기다. 까치집 입구는 까치 한 마리가 날개를 완전히 접고 몸을 홀쭉하게 만든 상태로 들어가야 할 정도로 작다. 입구를 좀 넓게 만들면 드나들기 편할 텐데 하는 생각을 하다가, 아하 다른 침입자를 막기 위한 방책임을 금세 깨닫는다. 까치집 외관은 나뭇가지만으로 엮여 있어 거칠지만, 안쪽은 진흙과 보드라운 풀을 짓이겨 안락하고 포근하게 만들어 집이 2중 구조다. 동물 중에서 탁월한 건축가 수준이라고 한다. 까치는 1~2월 겨울에 집을 짓고, 봄에 알을 낳고 부화한 뒤 새끼가 둥지를 떠나면 그 집을 다시 쓰지 않는다고 한다. 알을 낳아 부화하는데 18일, 새끼가 둥지를 떠나는데 22~27일, 도합 40~50일을 위해 그렇게 열심히 집을 짓는다. 그동안 동영상 등으로 쌓은 지식에 의하면 까치는 지금 이 무렵 알을 낳았을 가능성이 크다. 동료는 아직 새끼 까치 소리는 안 들리지만 까치 부부가 둥지에 더 자주 드나드는 것 같다고 전했다. 한창 부화 중일까. 설렌다. 새끼 까치 소리를 듣는 날을, 마침내 둥지를 떠나는 아기 까치들을 마주할 행운이 올까. 세상은 점점 더 각박해지는 것 같지만, 까치는 수백 년, 아니 수천 년을 저렇게 집을 짓고 알을 낳고 부화시켜 새끼를 키우며 살아왔다. 생각해 보니 자연과 생명은 관심을 가지고 들여다보기만 하면 평소 잊고 있던 경이로움을 안겨줄 준비가 항상 되어 있었다. 해마다 오는 봄이지만 새순이 돋고 꽃이 피면 매번 새삼스러운 감탄을 자아내지 않는가. 올해는 까치의 이웃이 되기까지 했으니 이 봄에 뭘 더 바라랴 싶다.정혜진 변호사정혜진 변호사
[길형식의 길] 실내 스포츠의 성지 '대구실내체육관'
1971년 4월, 대구에 당시 동양 최대 규모의 실내체육관이 준공되었다. 바로 대구실내체육관이다. 총부지 5천549평에 대구 건축의 전설 후당 김인호가 건축을 맡았다. 예산은 37억원으로 70%는 시민들의 성금으로 모였다. 지금은 관중석이 3천847석이지만, 개관일인 4월13일 경향신문 기사에 따르면 최대 1만4천500석을 수용할 수 있을 정도의 대형규모였다.비록 한국 최초는 아니지만 대구에도 드디어 서울의 장충체육관 못지않은 지붕 있는 운동장이 생긴 것이다. 당시 대한민국은 부산, 인천, 대전, 전주 등 전국적으로 실내체육관 준공 붐이었다. 시설 난으로 허덕이던 실내 스포츠는 그 후로 활기를 띠기 시작했다. 지방 경기 개최도 원활해졌다. 스포츠 강국으로서의 도약이었다.고단했던 시절, 대구실내체육관에서 개최된 각종 스포츠 명경기로 시민들은 울고 웃으며 버틸 수 있었다. 1970년대에는 박치기왕 김일이 4개국 국제프로레슬링 대회를 개최했고, 거인 레슬러 박송남과 안토니오 이노키의 NWF 헤비급 타이틀전 또한 대구에서 이루어졌다. 1970~80년대에는 유제두, 홍수환, 장정구, 유명우 등의 세계적인 복싱 타이틀전 경기들도 있었다. 1990~2000년대에는 농구 리그 KBL이 출범하고 동양 오리온스의 홈구장으로 사용되며 명실상부 대구 스포츠의 부흥을 이끌었다.스포츠뿐만이 아니다. 지금은 엑스코나 대구스타디움이 대신하지만, 대중음악 공연 또한 활발했다. 미국 밴드 '더 벤처스', 영국 밴드 '둘리스'가 내한 공연을 하기도 했다. 조용필, 산울림, 민해경 등의 국내 가수들의 콘서트도 있었다. 정치와도 떼려야 뗄 수 없었다. 한때 대구에서 열린 전당대회는 모두 이곳에서 열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이다. 반세기 동안 여러모로 지역과 함께하며 견뎌내 온 것이다.영광만 가득할 것 같았던 대구실내체육관도 세월이 지나고 노후화되며 그 빛을 잃었다. 현재 지역 연고팀 한국가스공사 페가수스가 이곳을 홈구장으로 사용 중인데, 이젠 놓아주어야 할 때다. 선수에게도 시민에게도 낙후된 시설의 경기장은 고통이다. 역사성과 상징성을 지켜나가되 생활체육인들을 위한 실내 스포츠 경기장으로만 운영되었으면 한다. 과거 부실한 인프라를 이유로 야반도주한 오리온스의 연고지 이전에 시민들은 큰 상처를 입은 기억이 있다. 더는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일은 없어야 한다. 현재 대구 연고 프로 스포츠팀들은 성적과 관계없이 연일 매진 행렬 중이다. 지지부진한 새로운 농구경기장의 건립이 시급하다.거리활동가거리활동가
[돌직구 핵직구] 숨어 있는 장관, 배신하는 여당
미국도 그렇지만, 전직 대통령은 국가 원로로서 현실정치에 초연한 것이 바람직하다. 하지만 문재인은 달랐다. 자신의 과거 민정수석을 공개 지지한 데 이어 지난 1일에는 옛 지역구 부산 사상구를 직접 찾아갔다. 그는 현 정부를 극렬히 비난하면서 세 야당을 응원했다. 하지만 문재인이 기자 앞에서 "칠십 평생에 이렇게 못하는 정부는 처음 본다. 무지·무능·무도하다"라고 말한 대목에선 실소(失笑)가 나온다. 그런 현 정부의 대통령을 서울중앙지검장, 검찰총장으로 파격 발탁해 소위 적폐수사에 이용한 사람이 누구인가. 비리투성이 조국 전 장관을 수사하려던 검찰총장을 찍어내려다 민심의 역풍을 맞아 정권을 반납한 사람이 대체 누구인가.필자가 '자만하면 총선 진다'는 칼럼을 쓴 것이 지난 3월6일자 신문이었다. 그때 "국민의힘이 150~160석으로 절반을 넘길 것"이라고 떠벌린 여당 후보에 대해 제발 꿈 깨라고 경고했던 글이었다. 하지만 여당에는 불행하게도, 이 경고는 한 달 만에 현실이 되고 있다.지금 여권 일각에선 매우 비관적인 총선 예측들이 나오고 있다. 막판에 보수언론의 지원으로 보수층이 결집해 130석을 거둔다고 해도, 범야권에 과반을 빼앗긴다면 여당은 패배하고 여소야대 국회는 재현되는 것이다. "나는 억울하다"라고 아무리 외쳐도 한동훈 비대위원장은 집으로 돌아가 변호사 개업을 해야 한다.과연 지난 한 달 사이 무슨 일이 있었는가. 3월4일부터 이종섭 전 국방부 장관의 호주대사 임명, 법무부의 출국금지 해제(8일), 이 대사 출국(10일) 등 일련의 사건들이 불과 6일 만에 숨 가쁘게 이루어졌다. 이는 대통령의 수사 개입을 은폐하려는 의도가 아니냐는 야권의 거센 비판을 일으켰고, 정부와 여권의 무기력한 대응 속에 이 대사는 21일 전격 귀국해 결국 3월29일 사임한다. 한국 외교사의 큰 오점이요 망신이었다. 이 와중에 기름을 부은 사건이 바로 14일 황상무 시민사회수석의 언론인 테러 발언이었다. 황 수석의 발언은 "이 대사 임명 논란은 좌파가 놓은 덫"이라는 대통령실의 시각이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KBS 출신 대통령 수석이 MBC 등 비판적 언론을 설득하려다 도리어 전 언론의 반발로 사퇴한 것이 지난 3월20일의 일이었다.이런 일련의 사건들이 거짓말처럼 벌어졌고, 한동훈의 등장으로 희석되었던 '정권심판론'이 다시 불붙기 시작한 것이다.조국이 지난 2월 문재인을 만나 총선출마를 밝힐 때만 해도 반신반의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하지만 이 대사와 황 수석 사건을 거치면서 조국은 '정권심판론'의 화신처럼 정치적 괴물로 커져 갔다.불과 한 달 사이 정치 상황이 이처럼 급변한 데에 윤석열 대통령의 책임론을 얘기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러나 대사 임명에 대한 결제를 상신한 외교부 장관의 책임이나 의료대란을 막지 못한 보건복지부 장관의 실책은 별로 말하지 않는다. 대통령이 대파를 들 동안 물가를 관리해야 할 경제부처 장관들은 어디에 있었는가. 하루를 해도, 장관은 대통령을 대신해 책임지라고 있는 자리다.야권의 공격을 막아야 할 여당 의원들은 도리어 대통령을 공개적으로 비난하고 나섰다. 보수 정객들의 고질병인 '배신의 정치'가 다시 도지고 있다. 여권의 자중지란 속에 치러지는 이번 총선의 결과는 과연 어떠할까. 자못 궁금하고, 한편으론 걱정이다. 강효상 (법무법인 대륙아주 고문)강효상 (법무법인 대륙아주 고문)
[시시각각(時時刻刻)] 한 도시 1천개의 이야기
아라비안 나이트는 여인들에 대한 불신을 가진 왕이 신혼 첫날 밤을 보낸 후에 왕비를 처형하는데 현명한 새 왕비 세에라쟈드가 매일 밤 이야기를 통해 왕국 처녀들의 목숨과 본인의 목숨을 구한 이야기이다. 1천1일 동안 총 280여 가지의 다른 이야기를 했다고 한다. 리퀴드 폴리탄은 액체를 의미하는 리퀴드(liquid)와 도시를 뜻하는 폴리탄(politan)의 합성어로 액체처럼 유연한 도시를 말하는데, 최근 인구 감소 시대에 들어 사람들이 정주하는 기존의 '고정된 도시'에서 다양한 구성원이 머무르고 연결되고 잠시 체류하는 '유연한 도시'로, 도시 패러다임의 변화를 얘기하기 위해 트렌드코리아 2024에서 올해 트렌드 중 하나로 소개했다. 사실 우리보다 먼저 지방 소멸이 진행된 일본에서는 2018년 관계 인구, 교류 인구의 경제적 가치를 계산해 발표한 적이 있다. 정주 인구 한 명이 사라짐으로 발생한 경제적 가치의 손실을 외국인 8명(숙박), 내국인 관광객 25명(숙박), 내국인 당일 관광객 81명이 오면 메울 수 있다는 발표이다. 정주 인구의 중요성은 말할 필요도 없지만, 인구의 데드 크로스가 발생한 지금, 관계 인구, 교류 인구를 늘릴 방법에 대해서도 고민해야 할 시점이다. 어떻게 할 것인가?첫째는 한 도시 여러 개의 다른 이야기가 필요하다. 한 도시 하나의 이야기는 너무 뻔하다. 최근 서울에서는 신당동이 MZ 세대 핫플이 되면서 힙당동으로 불린다고 한다. 신당동은 조선시대 무당의 신당이 많아 그렇게 불렸었는데, 이 동네의 유래나 분위기에 젊은이들이 관심을 가지고 몰리면서 힙당동이 되었다는 것이다. 성수동, 경리단길, 인사동, 연트레인, 힙지로 등등 서울에는 다양한 유래와 이야기에 기반한 다양한 동네들이 있다. 각각의 이야기는 각각의 사람들을 모으고, 다른 이야기는 사람들을 다시 방문하게 만든다. 독립 소상공인의 도시로 유명한 미국 포틀랜드에도 50여 개의 다른 상권이 네트워크로 모여 하나의 포틀랜드를 구성한다고 한다. 한 도시 다른 이야기들이 필요하다.둘째는 콘텐츠 생태계를 만들어야 한다. 어떻게 다양한 이야기를 만들 것인가와 관련된 이야기이다. 최근 파묘 장제현 감독의 인터뷰가 생각난다. 그는 파묘 시나리오를 만든 게 아니라 만난 것이라고 얘기했다. 2년간 무당, 장의사 등을 따라 다니면서 이 이야기를 만났다고 얘기했다. 외부의 청년들을 데려와 지역의 가치와 만나게 하라는 것이다. 연인원 10만명이 방문하는 문경 화수헌의 성공 비결도 오래된 한옥의 가치를 부산 청년들이 만나 발굴했기에 가능한 이야기이다. '뷔자데'라는 말은 익숙한 것을 낯설게 보기를 말한다. 민간 콘텐츠 생태계를 활성화해 익숙한 가치들을 낯선 청년들의 눈으로 만나게 해 다른 이야기를 만들어야 한다. 1천개의 다른 눈은 1천개의 다른 이야기를 만들어 낼 것이다. 셋째는 브랜딩의 중요성이다. 도시 브랜딩은 단순한 장소에서 그 도시를 목적지로 바꾸는 기능을 한다. 사람들이 살고 싶고, 일하고 싶고, 방문하고 싶은 목적지 말이다. 미국 텍사스 오스틴은 원래 도시 중간에 6th 스트리트 라는 라이브 뮤직 바가 몰려 있는 거리가 있고, 여기에서 출발해 '세계 라이브 뮤직의 수도'라는 브랜딩을 했다. 오스틴에는 250여 개의 라이브 바가 있고, 방문객들은 이 바들을 만나고 탐험하기 위해 며칠씩 도시에 머무른다. 브랜딩은 점처럼 떨어져 있는 도시의 이야기들을 연결선으로 면으로 만들어 방문객을 숙박으로 바꾸는 힘이 있다. 매일 밤 다른 이야기들이 세에라쟈드의 생명을 구했듯이, 하나의 도시 1천개의 다른 이야기는 도시를 구할 것이다.전창록 대구대 초빙교수전창록 대구대 초빙교수
[3040칼럼] 그릿 : 운동선수의 재능과 노력
성공한 선수와 그렇지 못한 선수에는 어떠한 차이가 있을까에 대한 질문은 스포츠과학자 또는 스포츠에 관심 있는 사람들에게는 흥미로운 주제가 아닐 수 없다. 때때로 메시와 같이 축구 생태계를 파괴하는 범접할 수 없는 재능을 목도하게 되는 우리는 역시, 재능이 제일 중요한 요소라는 생각을 하기도 한다. 그러나 정말 재능이 성공을 결정하는 핵심 요소인가? 성공을 결정짓는 더욱 강력한 힘이 있는가?심리학자 앤젤라 더크워스는 재능이 성공에 필수요소이긴 하나 충분조건이 되지는 않으며, 뛰어난 성취는 뚜렷한 목표와 열정을 가진 끊임없는 노력이 성공의 열쇠라 강조하고 있다. 그러한 장기적 목표를 향한 지속적 열정과 노력을 그릿(Grit)이라 정의하고 있으며, 스포츠에서 성과와 성공을 이끌어내는 핵심적인 역할을 한다고 하였다. 운동선수는 경쟁상황에 성과를 즉각적으로 보여주어야 하는 극심한 부담감에 노출되어 있으며, 최고의 경기력을 발휘하기 위해 자신의 한계를 뛰어넘는 강도 높은 훈련을 매일매일 이겨내야 하는 숙명을 가지고 있다. 따라서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운동선수에게 그릿은 무엇보다 중요하다. 그러나 여전히 우리는 재능의 영역에 대한 기대와 찬양의 끈을 놓지 못하는 것은 왜일까?더크워스는 유명한 철학자 '니체'의 말을 인용하며 편향적인 기대 현상을 통해 그 이유를 설명하고 있다. "모든 완전한 것에 대해 우리는 그것이 어떻게 생겨났는지 묻지 않는다. 대신 우리는 마치 그것이 마법에 의해 땅에서 솟아난 것처럼 현재의 사실만을 즐긴다." 인간의 본성이라 할 수 있는 허영심과 자기애가 천재를 숭배하게 조장하는 것이다. 즉, 특출난 선수와 자기자신을 비교할 때 자신의 초라함은 내가 컨트롤 할 수 없는 영역에서 일어나는 것이기 때문에 어쩔 수 없다는 자기방어기제가 재능을 경배하게 만든다. 예로 전통적인 축구 강호인 독일 팀과 브라질 팀을 비교해 보자면, 선수들이 팀으로서 강도 높은 훈련을 통해 강력한 팀을 구성하고 좋은 성과를 내는 독일 팀과 자유분방하며 개인의 번뜩이는 재능을 바탕으로 하는 브라질 팀의 경기 중 우리는 대부분 브라질 팀을 선호하는 경향이 있다. 이러한 것은 선수 선발에 있어서도 종종 나타난다. 동일한 스펙을 가지고 있는 두 후보가 있다고 한다면, 대부분 재능이 우수한 선수를 선발하게 된다. 물론 재능이 우수하고 그릿이 충만한 선수는 'only one' 최고의 선수가 될 수 있다. 그러나 앞서 말한 것처럼 노력이 없는 재능의 실패 사례를 우리는 무수히 많이 보아왔다. 반면, 탁월한 재능이 부족하더라도 최고의 노력을 겸비하고 발전해 나아가는 선수는 'only one'은 어려울지라도 최고 수준의 그룹에 속할 가능성은 충분하다. 즉, 재능이 있는 자는 노력이 없다면 실패할 가능성이 존재하지만, 약간의 재능이 부족하더라도 노력하는 자는 성공할 가능성이 더욱 높다는 것을 의미한다. 다만, 재능과 마찬가지로 그릿이 성공을 불러오는 만능열쇠는 아니라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한다. 그릿이 모든 분야에서 최대한의 노력이 담보된다면 반드시 성공한다는 막연한 희망의 메시지로 남기보다는 명확한 목표설정과 자신에 대한 정확한 성찰이 필요하다. 자신이 잘못된 길로 가고 있다는 것을 확인한다면 그 길을 수정할 수 있는 과감한 용기와 결단은 재능, 노력과 더불어 성공에 매우 중요한 요소일 것이다.이재무 경북스포츠과학센터장이재무 경북스포츠과학센터장
[민병욱의 민초통신] 개와 사과의 추억
국민이 대표자를 선출해 국가 의사와 정책을 결정케 하는 정치적 대의제(代議制)에 대한 루소(JJ Rousseau·1712~1778)의 비판은 신랄하다. 그는 저 유명한 '사회 계약론'에서 "영국의 인민들은 스스로 자유롭다고 생각하지만 그건 큰 착각"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그들이 자유로운 것은 오직 의회의 의원을 선거하는 기간뿐이다. 선거가 끝나는 순간부터 그들은 다시 노예가 되고, 아무런 가치도 없는 존재가 되어버린다"라고 주장했다. '인민' '자유'와 '노예' 그리고 '선거'를 병치해 서술한 이 문장이 주는 인상은 너무나 강렬해 3세기가 흐른 지금까지 민주주의와 선거를 얘기할 때마다 인용되고 있다.'대의제 정치하에서 국민은 선거 때만 가치 있는 존재'라는 루소의 말에 동의하든 말든 우리는 요즘 정말로 '주인'이 된 듯한 착각에 빠지곤 한다. 4·10총선 유세 현장에 가보면 맨땅에 엎드려 큰절하는 '머슴'의 모습을 보는 게 전혀 낯설지 않다. 여당 후보들은 "그동안 우리가 잘못했다. 앞으로 정말 잘하겠다"라며 사과하느라 여념이 없다. 심지어 한 후보는 죄수를 실어 나르던 옛 함거(檻車)의 쇠창살 안에 삭발하고 올라 "윤석열 정부에 대한 분노와 심판의 마음을 잘 안다. 시민 여러분 마음을 헤아리지 못해 죄송할 뿐"이라며 눈물을 흘리는 모습도 보인다. 오만 독선 불통으로 치달으며 상처받은 국민을 다독이긴커녕 부아만 돋운 정부에 브레이크를 잡는 역할을 다하지 못했다는 자성이다.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은 여기서 한 발 더 나간다. 그는 "저희는 국민이 요구하면 다 듣는다"라고 유세하고 다닌다. 언론인 회칼 테러를 들먹여 방송사를 겁박한 황상무 대통령 시민사회수석을 '끝내' 사퇴시켰고, 해병대 채 상병 순직 사건 수사 외압 피의자로 출국금지 대상자인 이종섭 전 장관을 호주대사로 발령내 출국시킨 것을 '결국은' 불러와 물러나게 했다고 내세운다. '인사권자의 완강한 뜻'을 자신의 건의로 굽혔고 선거 후에도 이처럼 국민 목소리에 복종하겠다는 것이다. 국민 다수가 대통령 잘못을 지적할 때도 궤변으로 변명하며 옹호에 급급했던 게 엊그젠데 이제는 국민 목소리만 귀담아듣겠노라고 자세를 낮추는 모양새다.정부와 여당이 한 몸이 아닌 양 선을 긋는 이런 행태는 사실 충분히 예견됐던 일이다. 보장된 임기가 3년 남은 윤석열 대통령과 달리 당과 국회의원 후보들은 당장 '국민의 표가 곧 목숨'이다. 지지율이 바닥을 치고 있는 대통령에 기대어 있을 이유도, 여유도 없다. 오히려 정부 여당이 사는 길은 "윤 대통령이 국민 앞에 무릎 꿇고 사과하는 것이며 내각과 대통령 참모들이 총사퇴하는 것"이란 말까지 나올 지경에 이르렀다. 이미 정치권 일각에서 '탄핵'이니 '탈당' '하야' 단어가 나돌았던 만큼 앞으로 본투표까지 남은 일주일 또 어떤 요구가 분출할지 아무도 모르는 상황이 됐다. 두말할 나위 없이 이 현상은 윤 대통령이 자초한 것이다. 그는 "특검을 거부하는 자가 범인"이란 말을 만들어내고도 자기 부인에 대한 특검법안은 특권으로 거부했다. 입버릇처럼 외던 '공정'과 '상식'은 순식간에 사라졌다. 경제는 곤두박질, 물가는 천정부지, 민생은 최악인데도 '이념'을 앞세워 '전 정권 탓'을 하고 '편 가르기' '내 편 심기'에 골몰했다. 대형 참사 책임도 수족은 감싸고 유족의 진상규명 요구는 '정치공세'로 내몰았다. 야당과 대화는 거부하고 검사가 범죄자 대하듯 다그치며 적대시했다. 국회의원이건 누구건 대통령에게 싫은 소리 한마디 할라치면 '입을 틀어막아' 끌어냈다. 언론이 잘못을 지적하면 되레 갖가지 제재를 덮어씌웠다.그래서일 것이다. 윤 정부 2년 만에 한국은 "민주화에서 독재화로 전환이 진행되는 국가"라는 불명예를 얻었다. 스웨덴의 '민주주의 다양성 연구소(V-Dem)'는 2024 연례 보고서에서 "한국의 자유민주주의 지수는 2019년 0.78점(18위), 2020년과 2021년 0.79점(17위)을 기록하다 윤 정부가 들어선 2022년 0.73점(28위)으로 떨어졌고 지난해 0.60점, 47위로 추락"했다고 밝혔다. 또 한국을 "언론의 대정부 비판이 위축된 20개국 중 한 곳"으로 지목하며 "표현의 자유, 언론의 자유가 침해받는 일이 가혹한 독재 국가만의 일이 아님"을 알게 된다고 꼬집었다. 더욱 참담한 것은 "한국처럼 영향력 있는 글로벌 강국의 독재화는 다른 국가에 영향을 미쳐 독재화 물결을 가속화할 수 있다"며 한국발 독재의 전염 우려까지 내놓았다는 점이다. 최단시일에 민주화를 이루어 세계 경제 강국으로 우뚝 섰다는 자부심이 일거에 무너져내린 것이다.사실 외국의 평가는 몰라도 국내 불만은 다소나마 누그러뜨릴 수 있는 기회가 윤 대통령에게 없진 않았다. 국민의힘 비대위에서 대통령 부인 사과 요구가 나왔을 때, 또 2월 KBS 대담 때 대통령이 완곡하나마 '사과 의향'을 비쳤더라도 상황이 이렇게 번지지 않았을지 모른다. 300만원 명품 가방을 받은 명백한 사실을 '몰카 함정'으로만 몰아치고 '부인과 다툼 한번 없었다'고 웃어넘긴 순간 국민의 마음은 돌아올 수 없는 다리를 건넜다고 봐야 하지 않을까. 그렇게 유야무야 얼버무리는 사이 황상무, 이종섭 사건이 터졌고 그마저 엉거주춤, 더 이상 용서할 수 없는 분노를 샀다는 얘기다.치열한 선거 판세로 여당 내 위기감이 고조될수록 어떤 형태든 대통령이 사과, 사죄해야 한다는 요구는 더 많이 분출될 것이다. 또 전혀 마음에 없는 말뿐인 사과는 안 하느니만 못하다는 얘기도 나올 것이다. 일각에선 벌써 대선 후보 시절 윤 대통령이 마지못해 한 '사과'와 바로 SNS에 올린 '사과 먹는 개' 사진의 일화를 떠올리기도 한다. 당시 윤 후보는 "전두환 전 대통령이 쿠데타와 5·18만 빼면 정치를 잘했다는 분도 있다. 호남분들도 그런 이야기를 하는 분이 꽤 있다"고 말해 엄청난 반향이 일었다. 처음엔 말뜻이 왜곡 전달됐다면서 사과를 거부하던 윤 후보는 이틀 만에 사과하면서도 집에서 키우는 강아지 토리에게 '인도 사과'를 주는 사진을 게시, "사과는 개나 주라는 뜻 아니냐"란 더 큰 논란을 불렀다.짧더라도 뒤끝 없고 진심 어린 사과를 하라는 주문을 윤 대통령은 오래전부터 받아 왔다. 나는 다른 건 몰라도 독재화의 길로 들어섰다는 지적과 언론 자유 침해에 대한 사과만은 정말 진지하게 해주면 좋겠다.한국언론진흥재단 전 이사장한국언론진흥재단 전 이사장
[단상지대] '우리'와 '그들'이라는 말
영국 유학시절의 일이다. 필자는 영국이 유럽연맹을 탈퇴한 브렉시트의 모든 과정을 몇 년간 지켜보면서 '우리(us)'와 '그들(them)'의 경계에 대해 더욱 깊이 골몰하게 되었다. 2016년 영국 브렉시트 찬반 국민투표 결과 이후, 브렉시트를 지지했던 당시 영국총리 테레사 메이(Theresa May)는 같은 해 보수당 전당대회에서 이렇게 말한다. "당신이 세계 속의 시민이라고 믿는다면 당신은 아무 곳에도 속하지 않는다." 이 연설에 대한 영국시민들의 찬반 양분 현상이 고조되면서 '우리'와 '그들'의 경계 유무를 주제로 한 영국 시민 사회와 지식인들 사이에 많은 토론이 이루어졌다. 브렉시트 투표 결과의 반작용으로 다양한 문화적 이벤트도 영국 곳곳에서 일어났다. 2019년 6월 요크 아이디어 페스티벌에서는 작곡가, 연주자, 수학자들을 초대하여 '수학과 음악의 말도 없고 그림도 없는 형식'이라는 포럼이 진행되었다. 논의의 요지는 어떻게 음악과 수학의 추상적 구조가 서로 연결되고, 창의성과 예술적 상상력의 요소들을 공유하는지에 대한 거였다. 결국 이는 곧 서로 다른 학문 간의 경계가 허물어지면서 학제 간 연구나 융복합적인 학문의 시대로 우리 사회가 진입해 가고 있음을 말해 준다. 터키계 영국 소설가이자 정치 평론가인 엘리프 샤팍(Elif Shafak)은 이렇게 말한다. "우리는 그림을 그리는 나침반처럼 살고 있다. 드로잉 나침반의 한쪽 다리는 매우 안정적이고 고정되어 있으며, 한 곳에 뿌리를 둔다. 한편 다른 쪽 다리는 그 주위에 크고 넓은 원을 그린다." 우리는 현재에 머무르는 장소뿐만 아니라 동시에 다른 장소에도 존재하기 때문에, 세계의 시민이 되어 경계를 넘어 타인과의 연결과 소통을 통해서 좀 더 다원적이며 유동적인 태도를 가질 필요가 있다. 물론 시민의 조건에는 자신이 속한 국가와 여권이 필요하다. 필자의 경우 한국 여권을 소지하고 있지만, 오랜 기간 해외에서 생활하며 다듬어진 생각과 행동을 하는 나는 한국인인가, 아니면 글로벌한 세계의 시민인가? 음악과 수학이 서로 다른 영역이지만 수(數)라는 추상적인 의미 구조에 경계가 없는 것처럼 그리고 인문학을 포함한 모든 전공 학문이 절대로 홀로 존재할 수 없는 것처럼, 모든 것은 모든 것과 분리되면서도 이어져 있다. 음표와 음표 사이에 음악이 존재한다든가(드뷔시), 스스로를 세계인이라고 자처한 작가(무라카미 하루키)의 경우도 같은 맥락이다. 차이와 동일성, 모순의 일치와 불일치 사이에 비로소 참된 진리와 창조, 성장이 있다. 윤재석 경북대 인문학술원장은 최근에 인문교양도서 '생활인문학 3'을 발간하며 "(인문학은) 연령과 계층 그리고 지역의 경계를 넘어 가치 있는 삶의 여정을 동행하는 길"이라고 말한다. 예술도 이와 다르지 않다. 이분법적 사고와 체계를 넘어서 타인과 연결하고 가장 정성스럽게 소통하는 방식으로서 예술은, 사회적 가치와 효용성으로서 보다 새로이 기능할 필요가 있다. 선거가 다가오면서 각 진영에서는 협화음과 불협화음 사이에서 '우리'와 '그들'의 경계를 더욱 뚜렷하게 구분하며 외친다. 이항대립의 논리를 부정하고 해체주의를 언급한 데리다의 경우나 시(是)와 비(非) 어느 하나에 치우치지 않는 선불교의 '즉비(卽非)'는 어떤 의미를 갖는가? 우리와 그들은 어떻게 분리되며 또 어떻게 이어져 있는가? 숲길을 걸으면 모든 게 화음이다.임진형 음악인문학자·대구 챔버페스트 대표임진형 음악인문학자·대구 챔버페스트 대표
[박재열의 외신 톺아보기] 하버드대학의 책 한 권
하버드대학 도서관에 사람가죽으로 장정한 책이 한 권 있었다. 1934년에 그 도서관에 들어온 '영혼의 운명'이라는 책이었다. 이 책의 첫 주인은 프랑스 의사였으며 그는 그 책이 '인간영혼에 관한 것인 만큼 인간가죽으로 감쌀 가치가 있다'라고 생각하여 자신이 근무한 병원에서 죽은 한 여인의 등에서 채취한 피부로 그 책을 장정하였다. 그는 그런 내용을 쪽지에 적어 책에 끼워 뒀었다. 2014년에야 이 대학이 그 장정을 펩타이드 질량 지문분석법을 적용해보니 인간피부가 틀림없었다. 이런 '인피(人皮) 제본술'이 유행한 것은 19세기 의사들 사이에서였다. 죄인을 사형보다 더한 극형을 하기 위해 그의 피부를 뜯어내거나, 개인장서용으로, 죄인의 고백기록을 쌀 목적으로, 가족이나 연인에게 남길 책의 장식용으로 당사자의 인피를 뜯어내는 경우가 있었다.하버드대학의 한 단체가 문제제기를 하고 그 책의 장정을 떼어내어 프랑스에 고이 묻어줄 것을 총장에게 요구하였다. 대학이 그 유해 일부를 떼어냈으며 앞으로 그것을 엄숙하게 처분하겠고, 피부를 뜯긴 여인의 인격을 존중하지 못했음에 대해 사과하였다. 한 연구단체가 인피 장정이라는 책 50권을 조사해 본 결과 18권엔 정말 인피가 사용되었고 13권은 동물가죽임이 밝혀졌다. 하버드대학은 또 3년 전에 이 대학과 박물관 설립에 노예제도와 식민주의가 어떻게 이용되었는가를 되돌아보고, 학문적 탐구로 인해 사자와 인간에 대한 존경심이 무시된 데 대해서도 사과하였다. 더불어 박물관 등에 보관하고 있는 2만 점의 인간의 해골, 모발, 골편, 치아 중에 노예제도와 식민주의와 관련된 것은 법령에 맞게 관리하겠다고 하였다.경북대 명예교수·시인경북대 명예교수·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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