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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나은 세상] 피아노 학원 발표회서 마주친 어느 조손 가정
3월 개학 직전 토요일엔 내가 다니는 동네 피아노 학원에서 발표회가 있었다. 학원생들이 지난 1년간 연습한 곡 중 하나를 선택해 연주한다. '연주'라고 했지만 사실은 '재롱잔치'에 가깝다. 부모들의 입장에서는 아이의 성장을 확인하고 격려해주는 날이고, 학원 입장에서는 고객들인 학부모들을 초대해 나름의 성과를 보여주는 홍보의 자리다. 그 학원의 거의 유일한 성인 수강생인 나는 재롱을 떨 나이도 아니고 중년 자녀의 재롱을 받아줄 부모님도 안 계시지만, 발표회 프로그램 구색 맞추기 차원에서 참가해 제일 먼저 순서를 마치고 구석진 자리에서 마음 편하게 발표회를 감상했다. 평소 그랜드피아노가 놓인 곳이 무대이고, 그 앞으로 문 입구까지 서너 줄로 의자를 놓았는데 의자는 일찍부터 꽉 찼고 서 있는 학부모들도 많았다. 그리 넓지 않은 학원에서 설 자리도 확보하지 못한 이들이 복도까지 서 있었다. 관객들을 죽 훑어보다가 어떤 할머니 한 분에게 눈길이 갔다. 대개 부모가 같이 오거나 부모 중 한 명만 온 경우에는 다른 자녀나 친한 친구 등 함께 온 경우가 많은데 유독 그 할머니는 혼자였다. 다들 약간은 상기되고 들뜬 얼굴인데 할머니는 매우 긴장된 표정으로 가끔씩 마른 침을 삼키고 있었다. '혹시, 어제 본 그 애 할머니?' 발표회 전날 발표곡 마지막 점검을 받기 위해 학원에 갔을 때 마침 지도를 받고 있던 중학생 남자아이가 있었다. 피아노는 꽤 잘 치는 편이었는데 태도가 좀 시큰둥해 보였다. "○○야, 틀려도 괜찮으니까 자신있게 쳐. 틀린 데서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지 말고 안 틀린 척하고 계속 치면 돼. 알았지? 그리고 내일은 제발 추리닝 입지 마. 교복 단정하게 입고 와야 해." 남자애는 듣는 둥 마는 둥 하는지 대답을 하지도 않고 짐을 챙기고 신발을 신었다. 학원 문을 나서는 애 뒤통수를 향해 선생님은 다시 소리를 쳤다. "꼭 교복 입고 와." 내가 지나가는 말로 "쟤, 중2병인가 봐요?" 했더니 선생님이 정색을 한다. "쟤, 엄청 많이 좋아진 거예요. 부모가 이혼하고 할머니랑 둘이 살아요. 수업료는 아버님이 매달 보내 주시는데…. 되게 불안한 애였는데, 음악을 좋아해서 학원에 열심히는 나오거든요." 그 할머니가 눈에 들어온 때부터 나는 그 애 순서만 기다렸다. 걔는 다행히(?) 단정하게 교복을 입고 나왔다. 다른 애들 때와 달리, 그 애가 연주할 때 폰으로 사진을 찍거나 동영상을 찍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할머니는 처음에는 그 애가 피아노 치는 걸 애틋한 눈빛으로 보다가 이내 고개를 숙였다. 손수건으로 눈물을 훔치던 할머니는 손자 연주가 끝났을 때에도 끝내 고개를 들지 못하고 훌쩍이고 계셨다. 나는 연주를 마치고 인사하는 그 애를 향해 환호성을 지르고 손바닥이 불이 날 것처럼 박수를 쳤다. 그 애는 할머니를 봤을까? 아이는 대기실로 갔고, 할머니는 다음 순서가 되자 조용히 자리를 뜨셨다. 남들은 다 흥겨워하는 날인데 나만 서러운 그런 날이 있다. 남들이 즐거워한다는 사실이 나의 서러움을 더 크게 만든다. 상황은 다 다르지만 살다 보면 그런 날을 누구나 한 번쯤 겪기 마련이라는 걸 그 애도 크면 알게 되겠지. 지금처럼 음악이 그 애에게 위로가 되기를, 내년 이맘때 그 애와 할머니를 다시 볼 수 있기를 바라본다.정혜진 변호사정혜진 변호사
[길형식의 길] 도원동의 어제, 오늘 그리고 내일
남북조시대의 중국 시인 도연명의 작품인 도화원기(桃花源記)에서 유래된 단어 무릉도원(武陵桃源). 복숭아꽃이 만발한 낙원, 아름답고 평화로운 별천지를 의미한다. 대구에는 이 무릉도원에서 유래된 두 개의 도원동이 있다. 바로 중구의 도원동과 달서구의 도원동이다.달서구 도원동의 1994년 택지지구개발 당시, 도원지구가 아닌 옆 동네 대곡동의 이름을 딴 대곡지구가 되어버린 것은 중구 도원동 홍등가의 나쁜 이미지 때문이라는 설이 있을 정도로 '자갈마당'은 시민들에게 부정적인 이미지로 뿌리 깊게 박혀 있다.중구 도원동 자갈마당은 일제강점기의 잔재이다. 홍성철 작가의 저서 '유곽의 역사'에 의하면 1908년 일제의 거류민들에 의해 야에가키초가 만들어진 것이 그 시초라고 한다. 자갈마당의 유래는 여러 설들이 있지만 여성들이 도망을 치는 것을 막기 위해 자갈을 깔아놔서 자갈마당이 되었다는 설이 가장 유력하다.1996년에는 대구시의 관광산업 육성 방안으로 도원동 일대를 합법적 성인 위락지구로 조성하는 계획을 발표하기도 했다. 물론 각계각층의 거센 반발로 무위로 그쳤다. 서울 청량리, 부산 완월동과 함께 전국 3대 홍등가로 알려진 이곳은 2004년 성매매 방지 특별법이 시행되며 쇠락 일로를 걷기 시작했다.100년 역사의 자갈마당 폐쇄는 쉽지만은 않은 여정이었다. 2019년 업주들의 거센 저항을 뚫고, 모든 업소가 영업을 중단하며 본격적인 철거 작업이 이뤄졌고, 현재 주상복합단지가 건설되고 있다. 도시재생의 일환으로 전국 최초로 성매매 업소 한가운데에 예술 전시관 자갈마당 아트스페이스를 개관하며 1년 6개월간 작가들의 전시가 이루어지기도 했다. 시민들의 갈망대로 자갈마당은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시대의 흐름에 따른 당연한 결과였다. 한 가지 아쉬운 건 흔적조차 남아있지 않은 채 완전히 초기화되었다는 것이다. 도시는 어제와 오늘 그리고 내일이 쌓여 가는 역사적 공간이다. 비록 부끄러운 역사지만, 뒤늦게라도 자갈마당을 기억할 수 있는 작은 한편의 공간이라도 조성되었으면 한다.우린 지역 예술가, 주민 등과 힘을 모아 문화 재생과 치유 공간으로 탈바꿈한 전주 선미촌을 참고할 필요가 있다. 선미촌도 자갈마당과 마찬가지로 대표적인 홍등가였다. 이전의 잘못을 되풀이하지 않도록 기록하고 기억하는 것. 네거티브한 문화유산의 존재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다. 현재를 꿰뚫고, 이상향의 미래, 즉 무릉도원으로 나아가기 위한 기준과 방향을 제시하는 일종의 나침반이기 때문이다.길형식 거리활동가길형식 거리활동가
[돌직구 핵직구] 총선, 자만하면 진다
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의 공개 경고는 시의적절했다. 자당(自黨) 소속 장성민 후보가 MBN 방송과의 인터뷰에서 "국민의힘은 150~160석으로 절반을 넘길 것"이라고 말하자 한 위원장은 즉각 "근거 없는 전망을 삼가라"며 낙관론을 차단했다.장성민은 여야를 넘나드는 특이한 경력의 소유자다. 동교동계의 막내로 DJ 정부 때 청와대 국정상황실장을 지낸 실세였지만, 지난 대선에선 국민의힘 후보로 나온 뒤 윤석열 대통령의 측근으로 화려하게 변신했다.하지만 그는 대통령실에서 부산 엑스포 유치를 추진하면서 "투표 당일 초박빙의 승부가 펼쳐질 것"이라고 호언장담했다가 크게 망신을 당했다. 엑스포 유치 결과가 29대 119의 참패로 드러나자 본인 스스로 사과했다.과거 김대중 대통령은 그를 두고 "장성민은 좋게 쓰면 약이고, 나쁘게 쓰면 독이 되는 사람"이라고 평한 적이 있다. 장성민이 현 정부에는 약인지 아니면 독인지 윤 대통령의 생각이 궁금하다.비록 장성민의 섣부른 낙관론이 아니더라도, 최근 들어 여권과 선거 전문가들 사이에서 여당의 총선승리 전망이 커지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여당의 총선승리 전망은 집권 여당이 잘해서라기보다 거대 야당이 잘못하고 있는데서 힘을 얻고 있다. 민주당의 공천극은 가히 목불인견(目不忍見)이다. 총선 승리를 위한 공천이라기보다 '이재명의 민주당'을 만들어 차기 대선에서 승리하면 족하다는 의미로 읽힌다.지난 4일까지 단수공천 된 현역의원 62명 중 41명이 친명계로 분류돼 '친명횡재·비명횡사' 공천이 현실화되고 있다. 게다가 임종석, 홍영표 등 이재명 대표의 정치적 경쟁자들을 공천 과정에서 모두 쳐내고 있다. 마치 지난 총선 당시 홍준표 의원 등에 칼을 휘두른 자유한국당 황교안 대표의 막장 공천극을 연상케 한다. 여당의 총선승리 전망은 여론조사상 수치의 변화로 뒷받침되고 있다. 2월 말 리얼미터 조사에서 국민의힘은 민주당을 오차 범위 밖에서 앞질렀다. 특히 여당의 열세 지역인 서울에서 48.0%대 31.5%로 크게 앞섰다. 불과 1주일 전만 해도 국민의힘은 서울에서 뒤처져 있었다. 국민의힘의 서울 약진은 지난 총선에서 49석 중 8석에 그쳤던 서울 의석을 20석 이상 늘릴 수 있을 거라는 낙관적 전망을 낳고 있다.하지만 총선 한 달 전 여론조사를 총선 결과로 점치는 것은 아직 성급하다. 이준석의 개혁신당과 김건희특검법을 저지하기 위한 여당의 '현역·중진 불패' 공천, 낮은 대통령 지지율과 견고한 정권 심판론도 변수다.경제도 안 좋다. 부동산경기가 부진한 데다 미국, 일본의 주식시장이 활황을 보이는데도 한국은 예외다. 대통령이 전국을 누비고 다니지만, 포퓰리즘 공약의 효과는 제한적이다.임종석이 탈당을 포기하는 등 민주당의 공천 갈등도 차츰 진정되고 있다. 여기에 이준석, 이낙연, 조국 등 반윤(反尹) 정당들의 연합 공세와 좌파 일각의 막판 네거티브 공격도 거셀 것이다. 이번 4·10 총선의 본격적인 싸움은 3월 하순 후보 등록 이후 전개된다. 총선의 윤곽은 4월 초 마지막 여론조사에서 드러날 것이다.목련이 피는 4월에 여당이 총선에서 승리할 가능성은 있다. 하지만 적어도 이 시점에서의 낙관론은 자칫 자만(自慢)을 불러 화를 자초할지도 모른다. 여든 야든 자만하면 선거에서 지는 법이다. 강효상 법무법인 대륙아주 고문강효상 (법무법인 대륙아주 고문)
[민병욱의 민초통신] 정당 병정을 키우려는가
20세기 미국 정치학자 오스틴 래니는 민주제 국가 국회의원들의 의정 생활 유형을 두 가지로 분류했다. 첫 번째가 '정당 병정'(政黨 兵丁· Party Soldier) 유형. 영국 하원의원들이 그 대표적인 예로 당의 엄격한 규율에 얽매여 당의 지도부가 지시하는 대로 의회에서 투표하도록 압력을 받는다고 했다. 독자적인 판단과 권능은 거의 없이 상관의 명령에 무조건 따르고 돌진하는 군대의 병사와 같다는 것이다. 이와 대조적으로 미국의 의원들은 당의 규율이 느슨한 덕에 자유롭게, 때론 지도부의 요청을 거스르면서까지 투표하는 재량권이 있다며 '독립 활동가' 유형으로 분류했다.두 유형의 행태에 대한 설명도 재미있다. 의원내각제인 영국의 하원의원들은 대부분 '장관직을 갖지 못한 평의원'들로 그들이 성공하는 유일한 길은 '지도자의 눈에 들어 장관에 지명되는 것'이라고 보았다. 야심이 있는 평의원들은 자신이 '장관감'이라는 확신을 지도부에 심으려고 행동 하나하나를 조심하니 당론과 다른 표결을 하는 것은 언감생심일 터이다. 오히려 의회 토론에서, 또 언론 인터뷰를 통해 자당 입장을 홍보 대변하고 상대 당에 예리한 질문과 비판을 퍼붓는 전투력을 보임으로써 총리 내각 등 지도부 눈에 들기 위한 병정 역할을 해낼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장관 지명도 안 되고 내세울 만한 투표기록도 미미한 평의원들은 유권자 지역구민과의 관계에서는 서비스맨 역할에 더 충실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반면 미국의 의원들은 정치 생명이 본선거에 앞선 지역구의 예비선거(primary election) 지명에서 시작한다. 중앙당 지도부는 그 결과에 대해 변경 권한이 없으며 의원들이 의회 표결에서 당 정책에 반해 투표하더라도 효과적으로 제재할 권능도 없다. 때로는 의원들이 '지도부의 거수기' 역할을 거부하고 독립성을 보이는 것이 지역 예비선거 및 본선거의 매력적인 득표 요인으로 작용하기도 한다. 같은 당 '명찰'을 단 대통령이나 유력 대통령 후보의 뜻과 다른 정치 행태를 보이면 언론 주목을 받아 선거구에 이름이 더 날리는 효과도 있다. 정치 성패가 거의 전적으로 지역구민의 판단에서부터 시작하는 만큼 지역 사정에 맞춰 자신의 정치적 위치와 보폭을 설정하고 독립 활동가로서의 면모를 키워나간다는 것이다.다분히 미국적 시각에서 미국의 기준에 맞춘 듯한 이 분류는 최근 들어 많이 퇴색했다. 영국 하원에서도 당론과 다른 표결을 하는 의원이 많으며 미국서도 '지도자의 강아지' 역할을 자처하는 의원이 적지 않다. 특히나 영국인의 눈으로 보면 최고 입법기관 국민대표를 특히 표결과 관련지어 '정당 병정'이라고 조롱하듯 분류하는 게 영 언짢을 수 있겠다. 그래선지 요즘 영미권은 물론 국내 정치학자들도 정당 병정이란 용어를 쓰거나, 영국 하원의원들이 바로 그런 유형이라고 비유하는 일을 삼간다. 그런데 희한하지 않은가. 21세기도 4분의 1이 훌쩍 지나고 있는 지금 2024년 대한민국에서는 국회에서의 표결을 비롯, 지도부에 대한 충성도를 바탕으로 정당 병정을 추려내고 또 새로 키워나가는 듯한 모습을 보인다. 제22대 국회의원 선거를 앞둔 여야당의 공천작업이 바로 그 모습이다.공천 파동을 넘어 가히 내전(內戰) 수준에 이르러 '비명횡사' '친명 횡재'라는 신조어까지 탄생시킨 민주당 경우가 딱 그렇다. 한 달 전 처음 공천작업에 들어갈 때부터 당 안팎에선, 작년 두 차례 '국회의원 (이재명) 체포동의안' 당시 반란 표를 던진 '반명' 의원들을 철저히 솎아낼 것이란 설이 분분했다. 2023년 2월 1차 국회 표결에선 최소 11명, 9월 2차 표결에선 최소 29명의 민주당 의원이 체포 가(可)표를 던졌다. 부결된 1차나 가결된 2차 표결에서의 각 기권 무효표까지 합치면 매번 근 40명이 당과 이재명 대표의 입장에 반하는 투표를 한 것이었다. 이들이 바로 '반명' '비명'이다. 일관되게 이 대표 체포에 반대한 사람들이 '친명'임은 물론이다.체포동의안 표결은 무기명 투표로 이루어졌지만 누가 가표를 던졌는지는 대충 윤곽이 그려졌다. 그들은 대부분 지난 문재인 정권 시대의 민주당 주류, '친문'일 것으로 짐작됐다. 일부는 미디어 출연을 통해 이재명 체제의 문제점을 신랄하게 꼬집거나 자신이 체포동의안에 가표를 던진 것을 자랑삼아 흘리기도 했다. 당연히 친명은 친문 등 구주류를 싸잡아 비난했고 당내 갈등 반목은 비등점에 이르렀다. 그리고 그사이 공천 시즌이 다가왔다. 지도부로서는 '시스템과 원칙'을 내세워 '합법적 쇄신의 칼'을 들 수 있게 된 것이다. 피가 흐르고, 일부는 당을 떠나고, 또 일부는 아예 정강 정책 등 지향 이념마저 완전히 다른, 어제까지 비난해 마지않던 상대 쪽으로 자리를 옮기지만 지도부는 요지부동이다. 국회 표결로 드러났던 당의 분할은 어느 방향으로 갈지도 모르는 채 현재진행 중이다.그렇다면 국민의힘은 사정이 다를까. 현역 의원 탈락이 거의 없어 잡음이 적고 감동도, 쇄신도, 활력도 없는 3무 공천이라는 말을 하지만 민주당처럼 '국회 표결과 지도부 충성도'를 중심으로 본다면 '보은 공천' '답례 공천'이 승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국민의힘 의원들은 지난해 12월 이른바 '김건희 특검법' 표결 때 전원 회의장을 빠져나가 일사불란하게 반대 의사를 밝혔다. 반대자 전원이 퇴장하고 재석 전원이 찬성하는 이 극명한 표결은 다시 윤석열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해 재의에 부쳐졌고 지난 2월 말 국회에서 부결됐다. 그사이에 진행된 공천에서 국민의힘 현역들은 거의 다 재공천됐다. 국민의 60~70%가 특검에 찬성한다는 여론조사 결과도 나왔으나 공천 시즌 의원들은 절대로 당 의견에 거스르지 않았다.당 대표가 직접 영입해 국민 앞에 자랑한 총선 예비후보가 김건희 여사를 마리 앙투아네트에 비유해 대통령실과 당 관계가 한때 껄끄러워진 적도 있었다. 그러나 대표가 대통령에게 '눈 맞으며 기다려 90도 인사'를 한 이후 김건희란 이름은 당내에선 슬금슬금 자취를 감추기 시작했다. 2월 초 대통령이 TV 대담을 통해 김 여사가 명품 파우치를 받은 것은 '공작에 당한 것'이라고 규정한 뒤부터 그와 다른 소리 의견을 입 밖에 낸 의원은 한 명도 없었다. 그런 그들에게 재공천이란 은전이 주어졌다는 얘기는 그냥 추측일 뿐인가.각 당의 공천을 보며 국민대표가 정당 병정들로 채워질지 모른다는 불안감이 짙게 드는 요즘이다.민병욱 한국언론진흥재단 전 이사장민병욱 한국언론진흥재단 전 이사장
[3040칼럼] "팀 응집력, 스포츠팀의 핵심요소"
지난 2월은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에 대한 이슈가 모든 정치, 경제 이슈를 덮어 버릴 정도로 시끄러운 한 달이었다. 대한민국 역사상 최고의 스쿼드를 자랑하는 우리 국가 대표팀에 대한 기대가 컸던 만큼 실망도 크게 다가왔다. 더욱이 우리 국민들이 믿고 있던 최고의 선수 두 명의 불화가 아시안컵 실패에 영향을 미쳤다는 사실은 많은 이들에게 큰 충격을 주기에 충분했다. 스포츠 상황에서 구성원 간의 응집력은 무엇보다 중요하다. 팀 응집력이 높을수록 팀원들은 서로에게 더욱 높은 신뢰를 가지게 되고, 이는 효과적인 협력을 가능하게 한다. 특히 경기 중 팀원들 간의 자유로운 소통과 협동은 전략을 세우고 실행하는 데 있어 차이를 이끌어 내는 중요한 요인이 된다. 즉 스포츠 팀에서 효과적인 경기력을 발휘하고 뛰어난 성과를 거둘 수 있기 위해서 강력한 팀 응집력이 뒷받침되어야 한다. 스포츠 현장에서 팀 응집력에 부정적 영향을 미치는 주요 요인을 살펴보면, 팀원들 간의 의사소통 부족, 역할 분담의 불균형, 리더십의 부재를 주요 요인으로 볼 수 있다. 이번 대표팀의 사례를 살펴보면 이러한 모든 요소가 종합적으로 작용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먼저 팀원 간의 효과적인 의사소통의 부족은 서로 간의 오해를 유발하고, 팀원 개인 간의 불화로 이어져 팀 응집력에 부정적 결과를 가져오게 되었다. 보다 세부적으로 살펴보면 팀원들 중 특정 성원 간의 너무 깊은 개인적 관계가 형성되어 있어 특정 그룹을 형성하여 팀원들 간의 전체적인 응집력을 감소시키는 현상을 유발하게 된 것으로 보인다. 두 번째로는 역할 분담의 불균형이 팀 응집력에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이번 대표팀을 살펴보면 손흥민 선수와 이강인 선수와 같은 주요 선수에 대한 많은 기대치와 역할론에 대한 선수 개인이 가진 지나친 부담은 다른 팀원들 간의 협업 효율성을 저해했을 것으로 판단된다. 훌륭한 팀은 주요 선수의 능력치에 의존하기보다 팀 내 성원들의 명확한 역할 인식과 협동이 중요한 요소가 된다. 그러나 팀 내 슈퍼스타에 대한 높은 의존도는 자신의 역할 인식에 모호성을 유발하여 전반적 팀 전력의 저하에 영향력을 미친다. 마지막으로는 리더십의 부재에서 오는 문제점이 이번 대표팀에서 가장 컸다. 팀에서 강력하고 효과적인 리더십이 부재할 경우 팀원들은 목표에 대한 방향성을 잃고 응집력이 약화될 수 있다. 이는 팀원들 간의 의사 소통의 문제, 목표 달성에 대한 동기부여 감소에까지 영향을 미치게 된다. 이번 아시안컵 대표팀 감독에 대한 많은 문제점이 사전부터 제기되었던 것은 사실이다. 특히 많은 언론에서 감독의 경기 전략 및 전술의 부재에 대한 의문점을 지속적으로 언급해왔다. 그러나 이번 사태에서 나타난 것과 마찬가지로 감독은 리더로서 하나의 팀으로 만드는 것에 실패한 것이 가장 큰 패착으로 나타나고 있다. 즉, 훌륭한 리더의 조건 중 팀 내 문제 해결과 의사결정, 커뮤니케이션은 무엇보다 중요하다. 이번 축구 국가대표팀 사례를 통해 훌륭한 리더의 중요성과 개인의 능력보다 팀의 응집력이 얼마나 중요한 성공의 요소인가를 확인할 수 있었다. 개인의 능력이 무엇보다 강조되는 현대 사회에서 함께 나아가기 위해 팀의 중요성을 다시 한번 느끼게 되었으며, 이를 반면교사 삼아 앞으로의 우리 대표팀 성공을 기대해 본다.이재무 경북스포츠과학센터장이재무 경북스포츠과학센터장
[시시각각(時時刻刻)] "지은, 그거 알아요"
이제 곧 봄이다. 봄은 청춘의 계절이다. 지난 2월 말에 아들의 대학 졸업식을 갔었다. 그날은 맑고 따뜻했다. 교정에서 본 청년들은 모자를 던지기도 하고 삼삼오오 모여 사진을 찍으며 즐거워 보였다. 요즘은 대부분 재학 중 군대를 갔다 오니 그들 대부분은 지난 16년간의 익숙한 학생이라는 역할을 떠나 이제 사회에서 전혀 새로운 역할을 맡을 것이다. 그날 나의 졸업식과 그 후 처음 사회에 나왔을 때가 겹쳐 생각났다. 그때 내가 가졌던 앞날에 대한 조심스러움, 막막함, 약간의 두려움이 기억난다. 물론 과거 우리 때보다는 이제 세상으로 나아가 거친 항해를 시작하는 청춘들에게 참고할 동영상, 블로그 그리고 멘토들이 많지만, 그래도 나의 경험을 말해주고 싶다. 첫째는 새로운 역할에서 요구하는 배역을 '연기'하라고 말해주고 싶다. 우리 사회는 연기라는 말에 거부감을 가진다. 그러나 연기야말로 가장 빨리 익숙해지고 배우는 길이다. 연기에는 두 가지 종류가 있다고 한다. A라는 인물을 연기할 때 '어차피 나라는 배우가 A를 연기하는 것이니 A를 나라는 사람에 맞게 해석해서 연기한다'는 서사적 연기론이 있고, '나를 지우고 A와 완벽히 동화해야 한다'는 메소드 연기론이 있다. 배우 김명민은 메소드 연기의 달인으로 유명하다. 이순신의 전 생애를 다루는 불멸의 이순신에서 목소리 톤을 20~50대 연령대별로 4단계로 나누어 준비했고, 극 중 이순신이 총상을 입은 뒤에는 부상 당한 왼쪽 어깨를 상대적으로 내리고 다녔고, 또한 원작(칼의 노래) 책을 페이지가 떨어질 때까지 읽으며 당시 이순신이 느꼈을 고뇌와 책임감을 이해하려 애썼다고 한다. 시작하는 청춘으로 역할에 몰입한 메소드 연기를 펼치라고 얘기해 주고 싶다.둘째는 주어진 역할이 무엇이든 '정성'을 다하라는 것이다. 얼마 전 누군가는 인생은 '독고 다이'라고 내가 주인공인 나만의 연극 무대를 만들라고 얘기했지만, 우리 대부분은 이 새롭게 시작하는 연극 무대에서 주인공이 아니고 교사 C, 경찰 F로 우리의 역할은 미미할 것이다. 그러나 그 미미한 역할을 멋지게 해내고 그 역할로 인해 연극 전체가 빛날 때, 더 큰 다음 역할로 승급할 것이다. "작은 일도 무시하지 않고 최선을 다해야 한다. 작은 일에도 최선을 다하면 정성스럽게 된다. 정성스럽게 되면 겉에 배어 나오고 겉에 배어 나오면 겉으로 드러나고 겉으로 드러나면 이내 밝아지고 밝아지면 남을 감동시키고 남을 감동시키면 이내 변하게 되고 변하면 생육된다. 그러니 오직 세상에서 지극히 정성을 다하는 사람만이 나와 세상을 변하게 할 수 있는 것이다." 중용 23장의 이야기이다. 작은 일에 최선을 다하는 사람에게 큰일도 할 기회가 생긴다. 셋째는 나와 같이 일하는 사람들에게 '그때그때' 고마움을 표현하라는 것이다. 개인적으로 나는 그 일을 잘 못 했다. 최근 탕웨이가 아이유에게 보낸 손편지가 잔잔한 화제가 되었다. 탕웨이는 아이유가 최근 발표한 미니앨범 'The Winning'에 수록된 곡 'Shh…'의 뮤직비디오에 아이유의 어머니 역할로 출연했다. "초현실적이고 아름다운 촬영을 이어가던 순간 내게로 어떤 장면이 홀연히 떠올랐다. 한 번도 상상해본 적 없는, 젊은 시절의 엄마가 바로 내 옆에 있다는 느낌." 이런 아름다운 기억을 가지게 해줘서 고맙다고, 맞춤법도 틀리고 지운 흔적도 군데군데 있는 그런 손편지를 보낸 것이다. 그 편지에 감동한 아이유가 탕웨이의 양해를 구하고 그 편지를 공개했다. 그 편지의 시작이 "지은, 그거 알아요"였다. 우리 모두는 같이 일하는 사람들의 인정과 감사에 목마르다. 그게 누구든. 전창록 (대구대 초빙교수)전창록 (대구대 초빙교수)
[단상지대] 나무와 음악인문학
아도르노의 말처럼 예술이 그 시대의 산물이며 개인과 사회의 역사를 기록하는 것이라면, 사가 서거정이 노래한 대구의 십경(영)은 조선 중기의 절경이다. 그중 '북벽향림-도동측백나무숲'은 여섯 번째에 해당한다. 대구시 동구 도동 180. 심하게 깎이고 경사진 바위틈에 밀집해 있는 측백나무군은 애처롭기도 하지만 하늘에 가닿으려는 의지는 가히 놀랍다. 나무는 인간의 기원이다. 아담과 이브는 에덴동산에 있는 두 나무(생명나무, 선악의 나무)를 통해 생명과 죽음을 경험하고 선악의 선택에 따른 책임을 배운다. 예수는 나무로 만들어진 말구유에서 태어나 스스로를 포도나무라고 부르며, 33년의 짧은 생애를 살다 십자가 나무 형틀에서 죽고 또 부활한다. 단군신화는 또 어떤가? 환인의 아들 환웅이 신단수라는 나무에서 내려와 나라를 세웠다. 수많은 이들은 지금도 오래된 나무 아래에서 탄생과 마을의 안녕을 기원하며, 마침내 수목장으로 생을 마감한다. 한편, 바로크 시대 작곡가 헨델은 부드럽고 아름다운 플라타너스 나무 아래에서 휴식하길 좋아했다(오페라 '세르세'). 청력 문제로 극심한 고통에 시달렸던 고전파 음악가 베토벤은 숲속에서 산책을 하며 나무들이 건네는 그윽한 말 '너는 거룩하구나, 거룩하구나'를 들으며 큰 위안을 얻는다. 자연에서 영감을 얻은 그의 음악적 상상력은 비로소 '전원교향곡'으로 탄생한다. 오랜 방랑 생활과 병마에 시달렸던 낭만주의 작곡가 슈베르트는 보리수나무를 그의 고향이자 언제든 달려갈 수 있는 친구로 여겼고(연가곡 '겨울나그네'), 슈베르트보다 더 오래전 석가모니는 보리수나무 아래에서 수행하며 깨달음을 얻는다. 음악의 '음'도 기실은 나무에서 출발한다. 바이올린을 만들기 위해 고산지대에 있는 가문비나무는 먼저 베어지고 죽어야 하는 운명을 가지고 태어난다. 베어진 나무는 속을 다 비우고 나서야 공명을 만들며 깊고 아름다운 울림으로 부활한다. 나무는 살아있는 생명, 쉼터이자 아름다움이다. 인간의 출발점이자 귀향지인 나무는 세상의 근원이다. 나무, 즉 자연은 도시 문명에 익숙해진 문화인들의 생활을 위해 일방적으로 희생된다. 그로 인해 그린의 상실과 고독한 도시인이라는 후유증이 생겨난다. 그 속에서 빠르게 증가하는 환경 위기는 또 어떤가? 참나무 한 그루가 베어지면 한 계절 동안 100t이 넘는 물의 양을 잃게 된다고 한다. 그렇다면 우리는 자연 생태의 보전과 유지에 저간 얼마나 많은 관심을 가졌는지 생각해 볼 일이다. 꽃과 나무가 있는 정원과 푸른 숲은 우리에게 맑은 공기를 무상으로 선사하고 그늘이 되어줄 것이며, 미기후 개선과 미세 먼지 및 도시 열섬의 개선에 크게 기여할 것이다. 이제는 문명과 문화가 자연을 위해 나설 차례다. 도시의 녹색 인프라 구축에 힘을 보태고자 자연의 숲과 인문학의 숲이 만난다. 21세기 학제적이고 융합적인 형태로 전개되는 학문의 흐름에 맞추어 오는 22일 <사>대구그린트러스트와 대구챔버페스트는 자연과 음악을 주제로 인문 강의와 음악 공연을 함께 진행하는 '그린-뮤직 콘서트 사이프러스(측백나무)'를 개최한다. 서거정의 '북벽향림' 시에다 현대 작곡가가 음악을 만들고, 대구 도동측백나무와 빈센트 반 고흐의 그림 사이프러스의 역사와 가치를 이야기한다. 이는 과거와 현재를 연결하고, 여기(here)와 거기(there)를 연결하는 새로운 형태의 '음악인문공연'이다. 오늘 아침은 수잔 잭스의 '에버그린'을 들으며 그린 티를 마셔야겠다. 임진형 (음악인문학자·대구챔버페스트 대표)임진형 (음악인문학자·대구챔버페스트 대표)
[단체장의 생각:長考] 의성군, 지방소멸 극복에 死活을 걸다
우리나라는 저출생과 고령화로 지방소멸 위기에 직면했다. 농업을 주력 산업으로 하는 의성군 역시 이 문제에서 자유롭지 않다. 인구 통계가 시작된 이래 23만명을 기록했던 1966년을 정점으로, 전체 군민 수는 매년 하향 곡선을 그렸다. 특히 지난해 말에는 마지노선으로 삼았던 '인구 5만명 유지'라는 상징적 목표가 무너질 뻔도 했다.더 심각한 문제는 숫자 뒤에 가려진 고령화 비율이다. 의성은 인구 분포에서 44.9%를 차지하는 고령층으로 인해 지방소멸지수가 전국 지자체 중 상위권을 차지하는 고위험 지역에 속한다.그렇다고 이런 현실에 순응하거나 중앙정부 차원의 해결책을 기다릴 여유는 없었다. 이는 의성군이 추진한 지방소멸 문제 극복을 위한 다양한 정책과 사례에서 알 수 있다. 대표적으로 극단적인 고령화 현상 해소 등 인구구조 개선을 목적으로 한 적극적인 청년 인구 유입정책을 꼽을 수 있다. 이와 함께 행정안전부가 실시한 지방소멸대응기금 투자계획 평가에서 전국 지자체 중 유일하게 2년 연속 최고등급에 선정돼 3년 동안 총 354억원(2022년 90억·2023년 120억·2024년 144억)의 국비를 확보했다.이 같은 성과의 배경에는 '인구감소 문제는 지방소멸과 직결되는 것으로, 농촌 소규모 지자체에만 해당하는 난제가 아니다'라는 데 공감대를 형성한 공직사회 분위기가 자리하고 있다. 실제 의성군 공직자들은 인구감소와 지방소멸을 말 그대로 국가의 존립 기반을 위협하는 중차대한 문제로 보고 있다. 이런 관점에서 인구 문제를 바라보고 투자의 방향과 전략을 모색하는 한편, 사업을 발굴하기 위한 노력을 게을리하지 않았기에 의성은 다른 지자체에 비해 돋보이는 정책을 추진할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청년에게는 더 많은 기회를 주고, 지역에는 활력을 불어넣기 위해 실시한 이웃사촌시범마을사업이 좋은 예다. 이 사업은 농촌인구 구조의 건전화와 지방소멸 극복을 위해 경북도와 의성군이 2019년부터 함께 추진했다. 사업 초기 청년 정책 위주로 추진하다가 점진적으로 일자리, 주거, 의료, 교육, 보육, 문화, 여가 등 종합적인 정주 여건 개선으로 방향을 전환하면서 기대 이상의 성과를 거둔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하지만 의성군과 공직자들은 눈앞의 성과에 안주하지 않고 있다. 지방소멸에 대응하기 위한 지난 4년간의 사업 경험을 토대로 재도약을 모색하는 등 그동안 추진해온 단편적이고 단기적인 관점의 정책에서 벗어나 보다 종합적이고 장기적인 관점에서의 접근을 시도하고 있다. 밑 빠진 독에 물 붓기와 같은 보여주기식 정책으로는 '지방 회생'이라는 숙제를 해결하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그 중심에는 TK신공항 건설과 함께 미래신성장 산업인 세포배양산업이 있다. 이를 필두로 주거, 의료, 복지, 문화 등 종합적인 정책을 통해 정주기반 고급화와 연계사업 발굴에 역점을 두는 등 새로운 미래 먹거리 산업의 확대와 지속 가능한 체계 구축에 나서고 있다.또 지방소멸에 대응하기 위해 공항도시 건설과 항공특화산업기반을 마련하고, 세포배양산업과 드론을 활용한 미래 모빌리티산업 그리고 반려동물산업 등에 투자를 확대할 방침이다.자화자찬으로 들릴 법한 이야기를 길게 서술한 이유는 지방소멸에 대한 위기감을 함께 인식하고, 또 함께 극복하자는 취지에서 비롯됐다. 이제야 조금씩 성과를 거두고 있는 우리 의성군의 사례에 용기를 얻어 각 지자체가 가진 강점을 최대한으로 살린 대안과 묘책들이 줄을 이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김주수 의성군수김주수 의성군수
[박재열의 외신 톺아보기] 참치와 수은
수은에 오염된 어패류가 있다. 대표적인 것이 참치다. 수은으로 오염된 어패류를 먹은 주민 수천 명이 여러 가지 질병에 걸렸음이 밝혀진 것은 1956년 일본 미나마타에서였다. 인근 화학공장에서 흘려보낸 수은이 원인이었다. 1960년대, 70년대에 수은중독의 공포가 전 세계로 확산되었다. 수은은 소량이라도 태아의 뇌에, 또 성인의 신경, 소화, 면역체계에 심각한 손상을 입힌다. 임산부, 태아, 유아가 특히 수은에 취약하다. 미 환경보호청은 미국에서 7만5천명의 신생아가 자궁에서 수은에 노출되어 학습 불능의 위험성이 있다고 경고했다. 각국은 석탄연소나 광산의 수은사용을 줄여 그 방출을 줄여왔다. 2013년에 체결된 '수은에 관한 미나마타협약'은 각국의 수은사용을 통제하려는 것이었다. 작년에 미국 환경보호청은 화력발전소에서의 수은 등 유독오염물질 방출에 대한 규제를 한층 더 강화하였다. 그러나 환경론자들은 미나마타 협약은 소규모 금광에서의 수은사용을 허용하는 허점이 있다고 주장한다. 많은 나라에서 앞으론 금광의 수은사용도 금하기로 하였다. 한 최근 연구에 따르면 이 지구 전체가 천천히 자정하고 있다 한다.그러면 이제 참치를 마음 놓고 먹어도 될까? 프랑스 과학자들은 1971년부터 2022년까지 수천 마리의 참치 샘플을 통한 연구의 결과를 발표하였다. 결론은 1970년대부터 해온 수은방출 감축에도 불구하고 참치에 축적된 수은의 양은 변하지 않았다는 것. 그 이유는 바다 깊숙이 수십 년 축적되어 온 수은이 얕은 바다에까지 휩쓸려와 참치를 오염시킨다는 것. 연구진은 통상적인 활동으로는 오염된 참치가 다음 세기까지 갈 것이라 한다. 경북대 명예교수·시인박재열 (경북대 명예교수·시인)
[송재학의 시와 함께] 진은영 '서른 살'
어두운 복도 끝에서 괘종시계 치는 소리1시와 2시 사이에도11시와 12시 사이에도똑같이 한 번만 울리는 것그것은 뜻하지 않은 환기 소득 없는 각성몇 시와 몇 시의 중간 지대를 지나고 있는지알려주지 않는다단지 무언가의 절반만큼 네가 왔다는 것돌아가든 나아가든 모든 것은 너의 결정에 달렸다는 듯지금부터 저지른 악덕은죽을 때까지 기억난다 진은영 '서른 살'서른 살 무렵은 이념보다 정념에 더 몰두하는 나이, 정념은 넘치고 서툴지만 이념은 손쉽게 앞장서려고 한다. 하지만 시인은 정념에게 시선을 주지 않고 "지금부터 저지른 악덕은 죽을 때까지 기억난다"는 말을 건넨다. 악덕이 악몽이 될 수 있다는 충고 때문에 서른이 지난 사람은 생의 어떤 후회를 짚어보거나, 서른에 도달 못한 사람은 악몽이 낯설기만 하다. 모든 사람에게 똑같이 한 번만 지나가기에 소중하다는 서른 살이다. 서른은 인생의 터닝 포인트. 두려운 것은 '똑같이 한 번'만 울리고, '뜻하지 않은 환기와 소득 없는 각성'을 지니고 있으며 더 두려운 것은 '몇 시와 몇 시의 중간 지대를 지나고 있는지 알려주지 않는다'는 것이다. 생은 돌이켜보면 공감할 수 있지만 앞날은 짐작하고 예단하기 어려운 신비이기도 하다.시인
[아침을 열며] 청년 일자리 창출로 지역소멸 위기에 적극 대응해야
저출산과 맞물려 청년인구 감소현상은 전국적인 추세이나 대구경북은 더욱 심각하다. 지난해 말 동북지방통계청에서 발표한 '대구·경북 계속 거주 청년과 수도권 전출 청년 비교분석' 자료에 따르면, 2021년 기준 대구의 청년인구는 46만5천명으로 2016년 대비 7.1%가 감소했고 청년 인구비중은 19.8%로 8개 특·광역시 평균(21.8%)보다 낮게 나타났다. 동 기간 경북의 청년인구는 42만5천명으로 2016년 대비 12.8% 감소한 것으로 조사되었으며, 청년인구 비중은 16.6%로 전국 평균(18.8%)보다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 2021년 한 해 동안 우리 지역을 떠난 청년인구는 대구경북을 합쳐 약 4만명이며, 타 지역에서 유입된 청년 2만명을 감안하였을 시, 약 2만명의 청년이 순유출되었다고 한다. 순유출된 청년 중 약 80%가 서울·경기·인천 등 수도권으로 이동했으며, 이들의 전출 사유는 일자리(경북 60.3%, 대구 56.9%)로 교육(15~17%), 가족(10~14%) 등 다른 사유보다 월등히 높게 나타났다. 즉 대구경북 청년인구의 유출은 절대적으로 취업 여건과 상관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그렇다면 우리 지역의 청년 취업여건은 어떠한가? 2021년 기준 대구경북의 사업체 수는 약 61만개로 전국 총사업체의 10%가 소재하고 있지만 매출액 500억원 이상 사업체 수는 749개로 전국 대비 7%에 불과하여 고용흡수력이 높은 기업의 비율이 매우 낮을 뿐만 아니라, 2021년 한 해 동안 '5천만원 이상'의 임금을 받은 청년비율만 보더라도 대구 계속 거주자(11.4%)보다 수도권 전출자(24.8%) 비율이 2배 이상 높게 나타나 일자리와 임금 측면에서 대구경북지역의 청년 인구 유인요인이 매우 낮아 보인다.지방소멸 위기에 직면한 우리 지역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기 위해선 민관이 힘을 합쳐 적극적인 청년인구 유입정책을 펼쳐나가야 할 때다. 그리고 유입정책의 핵심은 청년 일자리 창출과 정주여건 개선이 가장 중심이 되어야 할 것으로 생각한다.이를 위해 먼저 'IT, 전문과학 및 기술서비스' 등 첨단산업으로 대구경북지역의 산업 구조를 빠르게 재편하여 청년들의 수요에 부응하는 미래지향적 일자리를 창출하고, 청년 선호도가 높은 외국계 기업 및 중견기업 이상 규모의 역외기업을 우리 지역에 적극적으로 유치함으로써 양질의 청년 일자리를 확대해 나가는 노력이 필요하다. 뿐만 아니라 청년이 다양한 아이디어로 자유롭게 창업에 도전할 수 있는 창업환경 구축과 지원정책이 병행되어야 한다.둘째, 대학교육과 직업교육의 혁신도 필요하다. 지역의 대학 및 직업 교육은 지역의 인구, 산업구조 변화에 맞춰 변화해야만 한다. 예를 들어 고령화 사회의 지역인구 구조에 대응하는 실버 헬스케어 관련 대학교육과정 신설 확대 및 직업훈련 확대도 수요대응형 청년 일자리 창출에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이다.마지막으로 새롭고 다양한 경험을 추구하는 청년층을 유인할 수 있는 다양한 문화인프라, 레포츠 시설이 확대되어야 한다. MZ로 대표되는 청년층은 문화트렌드에 민감하여 거주지역 선택 시, 일자리 못지않게 중요한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대구경북이 가진 문화적 자산을 활용하여 볼거리, 즐길 거리, 놀 거리를 다양하게 만듦으로써 청년인구 유입을 자극할 필요성이 있다.저출산과 함께 청년인구 유출의 문제는 지역생존의 문제와 직결된다. 적극적인 일자리 창출, 정주여건 개선 노력을 통해 청년들이 다시 돌아오는 대구경북을 함께 만들어나가길 기대해 본다.황병우 DGB대구은행장
[광장에서] 트윈터보로 비상하는 대한민국
대한민국은 서울을 글로벌 톱 10 도시로 만들었다. 서울은 현재 연 3천만명의 관광객 유치를 목표로 하고 있다. K컬처의 힘이 지금처럼 지속되고 동행 매력 서울특별시의 청사진이 그대로 실현된다면 연 3천만명 관광객 시대도 머지않아 달성될 것으로 보인다. 서울은 국내 여타 도시와 경쟁하는 도시가 아니다. 런던, 뉴욕, 도쿄와 같은 글로벌 대도시와 경쟁하는 세계시민의 국제도시이다. 필자는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이 사실이 뿌듯하고 자랑스럽다.요즘 이런 질문들을 되뇐다. 서울을 만들어낸 역량과 노하우로 대한민국이 제2의, 제3의 글로벌 도시를 국토 곳곳에 구축할 수 있다면 어떨까? 서울, 경기를 중심으로 하는 수도권과 남부권역을 중심으로 한 트윈 터보로 세계와 경쟁하는 대한민국은 어떤 모습일까? 도시는 끊임없이 새로운 인구가 유입, 순환되고 살아있는 생물처럼 역동적으로 움직여야 한다. 소멸 위기 지역의 도시들은 유입보다 유출이 높고 특히 청년 인구 유출이 심각하다. 도시를 하나의 기업에 비유해 보면 왜 많은 청년들이 그리고 인구가 수도권에 몰리는지 알게 된다. 기업이 지속되기 위해서 반드시 자사의 제품과 서비스를 고객에게 반복 판매해야 한다. 즉 고객을 만족시켜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반복 구매는 일어나지 않는다. 고객의 반복 구매는 기업의 혈액인 자금의 확보로 이어진다. 피가 돌지 않고 막히면 결국 생을 마감하는 동물처럼 자금 흐름이 경색된 기업도 결국 폐업하게 된다. 한 기업의 창업과 폐업을 결정짓는 이 원칙은 도시에는 소멸과 활력으로 나타난다. 도시민들에게 사회적, 문화적, 경제적, 복지적 매력을 가진 도시는 끊임없이 인구가 유입되어 순환하지만 그렇지 않으면 소멸한다. 사람이 몰리는 도시와 지역에는 거주민들이 느끼는 가치가 집약되어있다. 북적이는 사람들로 불편해도 그곳은 자발적으로 사람이 모인다. 사회적, 경제적, 문화적, 융합적으로 누릴 수 있는 편익이 있고 가치가 있기 때문이다. 소멸 위기 지역으로 청년 인구를 유입해 지역의 활력을 되찾기 위해서는 청년이 올 만한 내재적 가치와 외연적 보상이 지역에 존재해야 한다. 수도권은 이미 하나의 거대한 플랫폼이다. 플랫폼은 네트워크가 과밀해 있고 그 속에서 빈번한 정보 교류가 일어난다. 이는 창의와 혁신 그리고 성장의 밑바탕이 된다. 청년들이 선호하는 환경이다. 2000년대 이후 지방의 20대 중 100만명이 넘는 청년들이 수도권으로 이동해갔다. 그 주된 이유는 청년들이 가장 선망하는 일자리와 양질의 교육, 문화의 향유, 자아실현의 기회가 그곳에 집약되어 있기 때문이다. 나고 자란 지역을 떠나는 두려움이 있지만 설렘을 한 아름 안고 기꺼이 이동하는 이유다.수도권에 거주하는 시민들에게 지역 소멸 위기, 지역 청년 유출이라는 주제를 꺼내면 다소 공감대가 떨어지는 반응을 접할 때가 있다. 늘 인구 과밀 환경 속에 있기에 지방이 처한 소멸 위기를 온몸으로 체감하기가 쉽지 않다. 도의적으로 지방 소멸을 막아야 한다고 끄덕일 순 있다. 하지만 소멸 위기에 대해 발 벗고 나서서 해결해야 한다는 긴급성과 갈급함은 당장 공감하긴 힘들 수 있다. 지역 소멸의 결과는 지역민들뿐만이 아니라 대한민국 전체에 부정적인 영향으로 다가올 것이다. 지역 소멸로 파생되는 경제적, 사회적, 문화적 폐해는 정량적 지표와 정성적 지표 모든 측면에서 우려스럽다. 지역 소멸 대응에 대한 전 국민적 관심이 그 어느 때보다 필요한 때이다. 국정과제인 지방시대의 실현을 간절히 바라본다.추현호〈주〉콰타드림랩 대표추현호〈주〉콰타드림랩 대표
[메디컬 창] 2024년 의료 대란에 대한 단상
필수 의료 부족, 지방의 의료 공백, 의대생 2천명 증원, 전공의 사직, 의대생 휴학 등 문자 그대로 의료 대란이다. 책임공방, 원색적 비난과 괴소문이 난무하여 뒤숭숭한 가운데 마땅한 해결책은 보이지 않고 안타까운 시간만 흘러간다. 일개 범부에게 속 시원한 쾌도난마의 지혜가 있으랴마는 답답한 심정으로 아는 바 몇 가지를 정리해 보고자 한다.첫째, 정부가 의사 부족의 가장 중요한 근거로 내세우는 국민 1천명당 의사 수 2.6명, OECD 국가 중 최하위권이라는 통계, 이것은 팩트가 맞다. 그러나 이건 단순한 숫자에 불과하다. 국민 1천명당 의사 수가 6.3명으로 우리의 두 배가 넘는 그리스는 우리보다 두 배로 의료가 편할까? 현실은 정 반대다. 그리스의 지방 도시와 공공병원, 의료취약지에는 의사가 부족해서 난리다. 지표상 최하위권인 우리나라는 당일 의사 진료가 상식일 정도로 진료가 쉬운 반면, 최상위권인 그리스의 의료가 엉망인 이유는 무엇일까. 우리나라는 의사 1명당 진료 건수가 아주 높다. 의사는 일을 많이 하고 의료비는 저렴하니 국민이 부담 없이 병원을 쉽게 방문할 수 있다. 1인당 연간 외래 진료횟수는 15.7회로 OECD 평균 5.9회보다 2.6배 많다. 종합적으로 한국의 의료서비스는 평균 다른 나라에 비해 2.6배 잘 공급되고 있다. 국민 1천명당 의사 숫자는 그 나라의 의료가 편하고 좋다는 것을 반영하는 최종 결과지가 아니며, 별 큰 의미 없는 통계상의 숫자에 불과할 뿐이다. 둘째, 필수 의료 대란과 지방 의료 공백의 원인이 의사 부족 때문이라는 정부의 진단은 오진이다. 이것은 의료자원의 총량 부족이 아니라 배분의 문제다. 물통에 구멍이 뚫려 물이 새면 구멍을 막는 것이 우선이지 물을 붓는 게 먼저가 아니다. 구멍을 막고, 물의 양을 확인한 후 부족하면 그때 물을 부어야 한다. 물이 충분한데도 확인하지 않고 성급하게 물도 같이 붓게 되면 오히려 물이 넘쳐 흘러 엉망이 되는 낭패를 보게 될 것이다. 의료자원이 넘치는 곳(대도시, 피부·비만·미용과)은 넘치고 모자란 곳(지방 소도시, 필수 의료과)은 모자라니 먼저 의료시스템의 구멍을 막아 의료자원의 배분을 제대로 한 후에 의료자원의 부족을 평가하는 것이 올바른 순서가 아닐까. 셋째, 2025년 의대 신입생 2천명 증원? 현재 3천명에서 갑자기 66% 뻥튀기가 가능할까? 교수진과 실습 기자재, 실습 병상이 하늘에서 뚝 떨어질 리가 없는데, 실습 위주의 의과대학 교육 환경을 1~2년 사이에 2배 가까이 늘린다는 것이 쉬울까. 지난 2월29일 전국의대 학장 협의회에서도 '2천명 증원은 의대 교육 여건상 불가능하고 350명 증원이 적절하다'라고 발표한 바 있다. 뜬금없이 튀어나온 2천명 증원은 근거도 빈약하지만, 교육적인 측면에서 보아도 현실을 도외시한 무리수이다.정부가 강조하는 국민 1천명당 의사 숫자가 최하위권이라는 통계는 의미 없는 숫자 놀음에 불과하다. 의대증원 문제는 우리의 미래 의료를 결정하는 중차대한 문제다. 포퓰리즘과 탁상공론의 강행은 결국 큰 재앙으로 돌아온다. 정부와 의료계의 열린 대화와 국민의 현명한 판단으로 이 의료 대란이 빨리 끝나길 바랄 뿐이다. 김경호 (대구시의사회 부회장·대경영상의학과 원장)김경호 (대구시의사회 부회장·대경영상의학과 원장)
[더 나은 세상] 안녕, 나의 모자여!
지난주 토요일, 애착인형처럼 아끼던 모자와 헤어졌다. 20여 년 전, 이마트 만촌점 골프매장에서 구입했던 검은색 나이키 에어로빌 모자. 이월 특가상품이라 가격이 채 2만원도 하지 않았지만 그 당시만 해도 골프인들 사이에서 꽤나 인기 있던 제품이었다.골프를 특별히 좋아한다거나 나이키란 메이커를 선호해서 그 모자를 선택한 것은 아니었다. 그것은 이마트에 진열된 무수한 제품 중 유일하게 내 머리 크기에 맞는 모자였기 때문이다. 사실 난 두상이 유별나게 커서 모자는 '쓴다'라는 표현보다는 '걸친다'라는 표현이 더 잘 어울릴 정도였다. 모자가게만 발견하면 항상 희망을 품고 들어서 보지만 "아저씨 머리에 맞는 모자는 우리 가게엔 없는 것 같네요…"라는 절망적인 답변만이 되풀이될 뿐이었다. 이 나이키 모자는 그런 난관을 극복하고 나에게로 찾아온 몇 안 되는 보물이었던 셈이다. 그런 소중한 보물과 헤어져야만 했다니….그날은 아내랑 기차여행을 약속한 날이었다. 배낭을 둘러메고 운동화를 신으려 할 때쯤, "당신 모자 이제 버려야 할 것 같은데. 색이 많이 바랜 것 같아"라고 아내가 말했다. 물론 난 몇 달 전부터 그 사실을 인지하고 있었다. 하지만 난 그 낡고 빛바램을 애써 외면하고 있었던 것이다. 내가 무표정한 얼굴로 "이 정도면 아직 쓸 만해"라고 답하자 아내는 예상외로 단호했다. "여보, 이런 모자 쓰고 다니면 사람이 허름해 보여. 나이가 들수록 깔끔하게 갖춰 입어야 어디 가도 대접받을 수 있다고. 당신이 못 버리겠으면 내가 도와줄게"라며 내가 들고 있던 모자를 빼앗아 쓰레기통 속에 넣어 버리는 것이었다. 그것은 타살도 자살도 아닌, 소멸의 순간이었다. 아내의 매정함에 난 눈물이 핑 돌았다.안녕, 나의 모자여!사실, 모자는 나에게 교사와 소설가, 질서와 무질서, 현실과 이상, 구속과 해방을 경계 짓는 상징과도 같은 물건이었다. 난 문학과 관련된 모임이나 행사에 참석할 때면 항상 모자를 썼다. 포털사이트에서 검색되는 문학 관련 프로필 사진 역시 모자 쓴 모습이 대부분이다. 이렇듯 모자는 소심하고 내성적인 나를 능동적이고 외향적으로 변화시켜주는 묘한 힘이 있었다. 영화 '마스크(The Mask, 1994)'에 등장하는 스탠리 입키스(짐 캐리 扮)의 가면처럼 말이다.강에서 우연히 발견한 가면을 통해 그동안 억눌러왔던 자신의 어두운 본성을 거침없이 발산하는 스탠리의 모습은 현대인들의 위선과 나약함을 날카롭게 풍자하고 있다. 광장에서의 삶은 인간 내면에 실재하는 욕망과 광기 그리고 폭력성을 은폐하고, 따라 우린 밀실 같은 은밀한 곳에서만 추악한 마성의 기운들을 한껏 토해내며 그 배설의 흔적들을 서정 어린 눈빛으로 위무한다. 최인훈의 소설 '광장'에 나오는 표현처럼 온전한 인간의 삶은 공적영역과 사적영역을 반드시 포함하며, 따라 푸른 광장과 어두운 밀실의 조화로운 공존 없이는 그 누구도 평화롭게 살아갈 수 없기 때문이다.나의 모자 역시 마찬가지가 아니었을까? 모자를 쓰는 순간, 난 낯선 공간에 들어선 여행자마냥 한껏 들뜬 표정으로 새로운 모험을 강행한다. 아무런 망설임도 두려움도 없이, 마치 메피스토펠레스의 유혹과 마주한 파우스트 박사처럼 말이다. 그렇게 현실의 지옥에서 벗어나 가슴 벅찬 신세계와 조우하는 순간 나는 살아있음을 느낀다. 획일적이고 윤리적이며 수동적인 나가 아니라, 창의적이고 불온하며 능동적인 나를. 갇힌 공간이 아니라 해방된 공간 속에서 자유로이 노니는 나를, 나는 나의 모자와 함께 꿈꾸고 있었던 것이다.우광훈 소설가우광훈 소설가
[노윤구의 관광산업] 대구·경북도 크루즈 산업 육성할 때
크루즈 관광은 배를 타고 특정 코스를 일주하는 관광상품이며, 선내에서 다양한 공연과 뷔페식을 경험하고 기항지마다 색다른 관광지를 둘러볼 수 있어 '여행의 꽃'이라고 불린다. 어디서 무엇을 먹을지, 어떻게 이동을 할지, 무엇을 구경해야 할지 등을 생각하지 않아도 되는 것이 크루즈 관광이다. 크루즈 관광은 우리가 살면서 꼭 해야 할 버킷리스트 중의 하나이기도 하다. 기성세대의 전유물 또는 슈퍼리치(super-rich)만이 누리는 특권이라고 인식되어온 크루즈 관광은 크루즈에서 뷔페 등 숙식이 모두 해결되는 가심비와 짠테크가 공존하고 있는 여행으로 '크캉스'를 즐기는 MZ세대도 선호하는 여행상품으로 변모되고 있다. 승객이 자는 사이 다음 여행지로 이동해서 시간과 비용을 절약해주고, 도시를 옮길 때마다 승객이 짐을 들고 다닐 필요도 없다. 배 위에서는 승객을 위해 다양한 프로그램이 쉴 틈 없이 제공되며, 쇼와 레크리에이션 등 승객의 라이프스타일에 맞춰 참여하면 된다.크루즈 산업은 일자리 창출 및 경제적인 효과가 큰 관광산업 중 하나로서 크루즈 관광객과 승무원, 크루즈 선사들이 세계 각 지역에서 소비하는 총지출액은 720억달러(약 84조원)에 이른다. 2019년에 크루즈 산업에서 발생하는 총산물액은 1천545억달러(약 180조원)이며, 세계 크루즈 산업에서 창출하는 정규직 일자리(Full-time Equivalent)는 117만 개에 달하고, 이들의 총임금은 505억달러(59조원)에 이른다고 조사됐다.2018년부터 2020년까지 크루즈 시장 점유율은 북미(51%)와 유럽(21%) 지역의 점유율이 높으며, 아시아(12%) 등 3개 지역에서 80% 이상을 점유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아시아에서 크루즈는 경제적 부담이 있다고 느끼는 한국보다는 일본 및 중국, 싱가포르, 말레이시아 등이 활성화되어 있다.국내외 대규모 관광객 유치를 위한 크루즈 관광산업은 대구경북의 새로운 관광분야로서 절대적으로 필요하고 추진되어야 할 것이다. 특히 경북 포항 영일만항이 모항 또는 기항지로서의 역할을 수행할 수 있도록 항만 인프라 구축 및 지원이 필요하다. 또 대규모 국제관광객 유치를 위한 관광 인프라 구축 및 연계관광상품 마케팅 지원, 크루즈 전문인력 양성지원 등을 통하여 지역경제 활성화 및 일자리 창출에 나서길 바란다. 경북대 RIS 전담교수노윤구 (경북대 RIS 전담교수)
의료대란으로 번진 의대 증원
경북대, 내년도 의대 입학정원 '155명' 조정에 대구경북 타 대학 결정도 관심
대구 수련병원 전임의 계약 늘어…'번아웃' 병원에 단비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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