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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영철 칼럼] 묵묵히 생업에 종사하는 운동권 출신을 생각한다면…
돌아가신 우리 어머니들은 아무리 나라가 잘못돼 가도 제 자식이 나라를 위해 나서는 걸 극구 말렸다. 일제시대, 해방을 겪으면서 불의에 항거하고 정의를 위해 앞장섰다가는 자기 몸 망치고 집안마저 말아먹는 꼴을 많이 봐왔기 때문이다. 일제 때 독립운동하며 쫓겨 다니다 해방 후 사상범으로 몰리는 것도 봐왔었다. 반면 그런 데에 나서지 않고 귀 막고 공부만 한 자식들은 (다 그런 건 아니지만) 고시도 되고 부귀를 누리며 떵떵거리는 걸 봐왔기 때문이다. 일제 때 일제에 아부해 출세하고 해방 후 미군정과 결탁하고 독재정권의 주구가 되어 승승장구하는 것도 봐왔었다. 우리 어머니들은 배운 게 없지만 그렇다는 걸 체득했기에 남들은 어떻든 제 자식은 부모 걱정 안 시키고 공부만 해서 배부른 삶을 살기를 신신당부했었다. 그래서 그런 건 아니지만 나는 운동권은 아니었다. 1970년대 초 대학을 다닌 나는 캠퍼스 내에서 스크럼을 짜고 유신반대를 외치는 시위대에 합류하는 정도였다. 유신말기 졸업 후 신문기자를 하게 됐고, 초년기자 때 사회부 경찰출입을 하면서 시위현장에 가곤 했다. 일부 시위학생들은 "보도도 하지 못하면서 왜 왔어요?"라며 비아냥거리기도 했지만, "언젠가 보도할 날 안 있겠나!" 하며 취재수첩에 기록하곤 했다. 간혹 학생들은 기사화도 하지 못하면서 따라다니는 기자를 측은지심으로 보기도 했다. 독재정권과 싸우다 제적되고 구속돼 '장래를 망친' 그들이 운동권이었다. 나는 대학·고교 선후배로 운동권과 인연이 닿기도 했다. 내 주위 운동권 후배들은 (운동권이 다 그렇지는 않겠지만) 한결 착하고 바르고 순박했다. 대학 서클후배 하나는 이틀에 한 번 격일제로 용역회사 경비직에 근무한다. 이번 달은 쉬는 날이 홀수인지 짝수인지 헷갈려서 작년부터는 달력에다 그달 그 후배 쉬는 날을 홀짝으로 표시하곤 한다. 82학번인 그 후배는 84년 총장실 점거농성으로 제적되고 징역 2년을 살고 나왔고 10년 뒤쯤 시대가 바뀌어 복교할 수도 있었지만 생업 때문에 중퇴로 남게 됐다. 제적되고 몇 년간 징역을 산 그들과, 시국에 눈감고 고시공부에 매달려 수년 만에 합격한 이들과는 엄청난 차이가 날 것이다(물론 의식있고 올바른 합격생도 많았을 것이다). 그 후배가 그때 만약 공부만 팠다면 패스 못 할 분야가 어디 있겠나 싶다. 그랬다면 장(長)급의 뭐가 됐을 것이다. 그래도 그들 후배들은 조금도 그런 이들을 부러워하지 않는다. 큰 수입 없이 거의가 가난하나 꿋꿋하게 정겹게 살면서 민주화 이전으로 후퇴하는 것 같은 나라를 걱정한다. "운동권 청산!"이라고. "시대적 요청!"이라고. 격일제 경비직의 운동권 그 후배는 어떻게 운동권을 청산해야 하나? 국민의힘이 내세운 야당 정치 운동권을 겨냥한 프레임이겠지만 그런 말 할 자격이 있는지 모르겠다. 민주화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한다면 그들에게 미안한 감을 먼저 가져야 할 게 아닌가. 운동권 중 일부는 정치권에 들어가서 의원도 하고 장관도 하고 했으나 그 자체만으로 욕먹을 일은 아니지 않는가. 나는 민주화운동을 한 그들 한 사람 한 사람이 진정성 차원에서 그런 모면적인 선거전략을 들고나온 속 보이는 사람 수백 명보다 낫다고 본다. 나라의 민주화를 위해 몸을 던졌다가 묵묵히 생업에 종사하는 그들을 생각한다면 운동권 청산이라는 정치적인 레토릭은 더 이상 구사하지 말아야 한다.유영철 언론학 박사언론학 박사
[시시각각(時時刻刻)] 시스템 公薦(공천) vs 私薦(사천), 국민의 선택은?
제22대 총선을 40여 일 앞둔 시점에 여(與)·야(野) 양당의 총성 없는 공천경쟁이 막바지에 이르고 있다. 국민의힘은 시스템 공천을 통해 잡음 없는 공천을 하고 있다고 자평하고 있는 데 반해, 이재명 대표의 더불어민주당은 연일 공천을 둘러싼 갈등으로 시끄럽기 그지없다. 이재명 대표를 향한 사천(私薦) 논란이 그 중심에 있다.내부 상황이 좀 더 혼란스럽게 돌아가고 있는 민주당을 먼저 들여다보자. 현역의원 평가 하위 20% 명단에 대거 포함된 비명계 의원들은 이재명 대표의 사천, 저격공천이라며 당 대표를 향한 성토를 쏟아내고 있다. 당의 평가시스템 불공정성을 지적하면서 탈당도 불사하겠다는 입장이다.여기에 더불어 김부겸, 정세균 등 전직 국무총리들까지 나서서 이재명 대표의 공천과정에 대해 "시스템 공천, 민주적 원칙과 객관성이 훼손되고 있다"며 우려를 표명하고 있는 실정이다.사천 논란의 파열음은 이재명 대표의 리더십을 흔들고 있을 뿐만 아니라 이 대표의 총선 불출마, 2선 후퇴 주장까지 나오는 등 민주당의 내홍은 심각한 위기상황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얼마 전까지만 하더라도 민주당의 총선 승리는 따놓은 당상이라는 판세분석이 무색해지리만큼 민주당은 혼돈을 거듭하고 있다. 이재명 대표는 이 난관을 어떻게 헤쳐나갈지 좀 더 두고봐야 할 관전 포인트이다. 이제 국민의힘으로 눈을 돌려보자. 한동훈 비대위 체제가 들어선 후 확연히 달라진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 여당의 공천은 지금까지 무난한 시스템 공천의 기틀을 마련했다는 평가가 주를 이루고 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감동 없는 공천, 인적 쇄신 없는 무책임한 공천이라는 비난을 받고 있는 것도 현실이다. 하지만 국민의힘의 공천 과정은 민주당에 비해 잡음이 그리 크지 않은 건 사실이다. 이번 국민의힘 시스템 공천의 최대 수혜자는 바로 현역의원들이다. 지역구 조직을 장악한 상황에서 정치신인들이 현역의원들의 인지도 및 조직력을 상대하기에는 버거울 수밖에 없다. 그러다 보니 아직까지 국민의힘에서는 지역구 현역의원의 컷오프는 단 한 명도 없는 상황이다. 그저께 발표된 제1차 경선결과에서도 현역의원 불패는 이어졌다.여기에 현역의원 돌려막기가 도를 넘어섰다는 지적도 잇따른다. 당초 권역별 하위 10%에 해당하는 의원은 컷오프하기로 했지만 지역구를 옮기는 당의 재배치 요청을 수용하면 10%에 포함돼도 공천을 받을 수 있는 상황이 되어 버린 것이다. 국민의힘은 이기는 공천을 위한 결정이라고는 하지만 무언가 석연치 않은 명분임에는 틀림없다. 공천을 앞둔 시점에서 혹여나 모를 정치상황을 방어하기 위한 현역의원 달래기로 보일 공산이 크기 때문이다.국민들은 현재 대한민국의 정치질서에 대해 많은 우려와 문제점을 지적하고 있다. 새로운 관점에서 다양한 접근과 시도가 이루어지길 기대하고 있다. 구태와 관행을 벗어 던진 참신한 새 인물의 등용을 통해 정치혁신이 이루어지길 바라고 있다. 구태의연한 당 대표 1인 중심의 사천 논란은 당연히 정치권에서 퇴출되어야 할 구습인 것은 더 이상 논할 가치가 없을 것이다. 한편으로는 혁신과 변화를 두려워하는 기득권 정치 역시 국민들로부터 환영받지 못한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유권자들은 누가 더 국민을 위하고 대한민국을 잘 이끌어 나갈 후보를 공천하는지 지켜보고 있음을 여야가 잘 헤아려야 할 것이다. 이주엽 (엘엔피파트너스<주> 대표)이주엽 (엘엔피파트너스 대표)
[3040칼럼] 왕의 남자
좋은 약은 입에 쓰나 병에 이롭고 충성된 말은 귀에 거슬리지만 행하는데 이롭다고 공자가어(孔子家語)는 기록하고 있다. 중국 역사에서 탕왕(은나라 시조)과 무왕(주나라 시조)은 곧은 말을 하는 사람들로 나라가 번창했고 걸왕(하나라 마지막 왕)과 주왕(은나라 마지막 왕)은 순종하는 사람들로 나라가 망했다고 한다. 직언(直言)하는 신하와 이를 열린 마음으로 들을 수 있는 왕의 지혜는 국운의 흥망성쇠를 가름할 만큼 그 영향력이 크다.그러나 역사를 반추해 볼 때 "아니 되옵니다"라는 직언은 사약(死藥)으로, "지당한 말씀입니다"라는 간언은 사전(賜田)으로 돌아오는 사례가 있음을 확인한다.수군을 폐지하라는 선조에게 '신에게는 아직 열두 척의 배가 있습니다'라며 나라를 지켜냈던 이순신 장군은 '조정을 기망하여 임금을 무시한 죄, 방자하고 거리낌이 없는 죄'로 하옥됐고, 죄를 인정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고문을 당했다. 임경업은 북방 지역 군사력 강화를 위해 백마산성, 용골산성, 능한산성 등을 수축했고 병자호란 때 뛰어난 지략으로 청의 침략을 미리 인지했던 조선의 명장이다. 그러나 조정 대신들은 외적보다 정적이 강해지는 것을 더 두려워하여 임경업이 심기원의 모반사건에 연루되었다고 주장하며 임경업을 고문했고 임경업은 53세에 목숨을 잃는다. 김종서는 세종 때 북변에서 6진을 개척하여 국경선을 두만강까지 확장하였고 요동 지방을 외세로부터 지켜냈으며 세종실록 편찬의 책임을 맡는 등 문무(文武) 영역에서 나라를 위해 열정적으로 일했다. 김종서 또한 계유정난 때 역모를 꾸몄다는 음모를 받으며 수양대군에 암살당한다. 소현세자는 청에서 서양의 새로운 문물을 익히고 들어와 조선에 소개하였는데 당시 정권을 잡고 있던 서인 세력의 이간질과 자신을 폐하고 세자가 즉위할까 전전긍긍했던 인조의 의심, 후궁 조씨의 베갯머리 송사로 33세에 독살당했다. 청이 조선과의 외교 관계를 개선하고자 소현세자를 조선에 돌려보낸 국제 정세에는 관심이 없고 내부 권력 싸움에만 열중했던 자들이 소현세자를 청에 귀의한 배신자로 몰았다.왕조시대가 아닌 21세기 민주주의 사회에서도 이러한 왕의 남자 프레임을 곳곳에서 보고 겪는다. 왕의 남자는 한 사람에게만 충성하면 나머지 사람은 자기 발 아래 두고 호가호위하며 권력을 누릴 수 있기에 본인이 최고 권력자가 되지 않으면서도 권력을 휘두를 수 있는 방법을 본능적으로 안다. 이들은 항상 왕의 심기를 살피는 한편으로 정적을 끊임없이 견제하고 기회를 잡아 도태시키는 기술이 뛰어나다. 언론의 조명이나 세간의 관심을 받을 일이 드물어 음지에서 이권 카르텔을 형성하여 조직 깊숙이 뿌리 내리기가 편리하다. 지난 1일 개봉한 영화 '건국전쟁'에 의하면 이승만 대통령이 80세 무렵 그의 측근들은 이승만의 눈과 귀를 멀게 하고 자신들의 이해관계를 관철시켰다고도 한다.머리 좋은 자는 노력하는 자를 이길 수 없고 노력하는 자는 즐기는 자를 이길 수 없다고 한다. 그러나 이 또한 운(運) 앞에서는 소용이 없으며 이 모든 것이 따라줘도 복(福) 있는 사람에겐 당할 수 없다. 복 중에서도 최고의 복은 '인복(人福)'이란다. 리더들이 본인의 심기에 거슬리더라도 직언하는 사람(人)을 가까이 두어 조직 발전에 기여하기를 기도한다. 표리부동한 예스맨과 우직한 충신을 구별하는 지혜로 리더와 구성원들의 건강한 비전이 실현되는 조직, 더 나아가 사회가 되기를 기대한다.곽현지 곽병원 홍보계장곽현지 곽병원 홍보계장
[강준만의 易地思之] 나는 증오한다 고로 행복하다
프랑스 작가 에밀 졸라는 "증오란 신성한 것"이라고 했다. 억울하게 간첩 누명을 쓴 드레퓌스라는 사람을 옹호하면서 한 말이다. 아닌 게 아니라 사회정의를 실현하기 위한 '신성한 증오'엔 저절로 머리가 수그러진다. 그러나 요즘엔 이런 증오를 보는 게 영 쉽지 않다. 물론 증오를 발산하는 이들은 사회정의를 내세우겠지만, 특정 진영논리에 사로잡히는 순간 그 사회정의는 내로남불의 하위 개념으로 전락하고 만다. 지금 우리가 목격하고 있는 증오는 대부분 이런 내로남불형 증오다. 혹 주변에 증오를 자주 발산하는 사람들이 있다면 잘 관찰해 보시라. 그들은 대부분 옳은 말을 한다. 그게 그렇게까지 욕해야 할 것인지에 대해선 선뜻 동의하기 어려울망정 비난받아 마땅한 일에 대해 비난하는 것에 대해선 일단 긍정할 수 있다. 그런데 그런 증오를 자주 접하다 보면 그 어떤 일관된 패턴이 있다는 걸 알게 된다. 증오의 대상이 진영 중심으로 어느 한쪽에만 집중돼 있다는 점이다. 사적인 자리에선 정치 이야기를 한사코 피하는 사람일지라도 누군가가 불쑥 꺼내는 정치 이야기까지 틀어 막을 수는 없는지라 그냥 들어야 할 때가 있을 게다. 잠자코 들으면서도 속으로는 홀로 이런저런 반론을 제기하고 싶을 게다. "그런 특성은 당신이 추앙하는 사람이 훨씬 더 심한 것 같은데, 왜 이 사람만 비난하지?" 이런 생각을 발설했다간 싸움 나기 십상인지라 그냥 자기 머릿속에서만 반론을 제기해야 한다. 사실관계가 다른 과장과 왜곡이 섞여 있는 주장일지라도 그걸 지적하는 것조차 위험하다. "음, 선동 전문 유튜브를 많이 보는구나"라고 생각하면서 넘어가는 게 좋다.사회과학자로서의 직업병인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평소 공사(公私) 영역에서 그런 증오를 발산하는 사람들을 볼 때마다 유형을 분류하곤 한다. 아무리 대화를 해봐야 내로남불을 내장하고 있는 진영논리라는 방탄벽을 뚫는 건 불가능하다는 걸 절감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냥 분석이나 해보자는 자세로 돌아서서 하게 된 게 유형 분류다. 증오의 이유 중심으로 볼 때에 생존투쟁, 쾌락투쟁, 인정투쟁, 이익투쟁의 네 가지로 나눌 수 있었다. 첫째, 생존투쟁은 자신이 살기 위해서 하는 증오다. 미국 작가 에릭 호퍼는 "열정적인 증오는 공허한 삶에 의미와 목적을 줄 수 있다"고 했는데, 특정 정당이나 정치인의 강성 지지자들 중에 이런 유형의 사람들이 많다. 삶의 공허함은 견디기 어려운 고통이 아닌가. 그런데 국가와 민족이라는 거대한 차원에서 격렬하게 증오할 대상을 찾아 증오의 발산을 위해 최선을 다하는 건 자신의 사회적 쓸모와 중요성을 확인하면서 행복감을 느낄 수 있는 의로운 일이 된다. 어느 정당에서건 강성 지지자들의 진정성과 열정이 감동을 자아내게 할 정도로 강할지라도 그들의 주장대로만 가면 당은 망할 수밖에 없는 역설이 바로 여기에 있다. 그들에게 우선적인 건 자기 삶의 의미와 목적이지, 그마저 희생해가면서 당의 성공을 바라는 건 아니기 때문이다. 둘째, 쾌락투쟁은 자신의 즐거운 쾌감을 위해 하는 증오다. "증오와 사랑은 같은 호르몬을 유발하는 것 같다." 영국 소설가 그레이엄 그린의 말이다. 이 주장을 입증하겠다는 듯 미국 정신분석학자 오토 케른베르크는 '즐거움으로서의 증오'라는 제목의 논문에서 이렇게 말한다. "격노에서 파생된 증오는 매우 유쾌한 공격적 행동을 낳을 수 있다. 다른 이에게 고통, 수치심, 아픔을 유발함으로써 느끼는 가학적 쾌감, 다른 이의 가치를 깎아내림으로써 얻어지는 환희가 그것이다." 공적 영역에서건 사적 영역에서건 진정성과 열정을 갖고 증오의 언어를 내뿜는 사람들의 얼굴을 본 적이 있는가? 그런 얼굴들만 모아 그림으로 보여줄 수 없는 게 안타깝다. 그들은 개인적으론 쾌감을 느끼며 행복해하는 엑스터시(ecstasy)의 경지에 이르렀겠지만, 문제는 그런 엑스터시를 모르는 사람들과의 소통은 불가능하다는 점일 것이다.셋째, 인정투쟁은 자신의 소속 집단에서 인정을 받기 위해 하는 증오다. 그 집단이 비공식 집단이며 느슨하게 구성돼 있을지라도 한 개인의 일상적 삶에서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는 것이라면 위계질서가 엄격한 공식 집단 이상의 영향력과 규제력을 행사할 수 있다. 그 집단의 구성원들이 이구동성으로 증오하는 대상에 대해 다른 생각을 갖고 있으면 외로워질 뿐만 아니라 정도가 심해지면 왕따를 당할 수도 있다. 테레사 수녀는 "가장 나쁜 병은 나병도 결핵도 아니다. 아무도 존경하지 않고 아무도 사랑해주지 않고, 배척받고 있다는 느낌이 가장 나쁜 것"이라고 했다. 사실 배척받고 있다는 느낌은 공포다. 그런 공포를 피하는 건 물론이고 무난한 인간관계를 위해서라도 증오 발산의 대열에 동참해야 한다.넷째, 이익투쟁은 자신의 현실적인 이익을 위해 하는 증오다. 이는 증오를 팔아 돈을 버는 일부 언론과 유튜브 등 이른바 '정치군수업자들'의 선전·선동을 생각하면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이들은 자신들의 선전·선동을 사회정의로 포장하는 '증오 마케팅' 능력이 워낙 탁월해 정의에 목마른 신도들로부터 적잖은 헌금을 거둬들인다. 특정 정당이 막강한 지배력을 행사하는 지역으로 내려가면 반대 정당이나 진영에 대해 "누가 더 강한 증오와 혐오의 언어로 공격하나?"를 겨루는 경쟁이 벌어진다. 그런 풍토에선 개인이나 자영업자에게도 증오를 표현하는 건 먹고사는 문제와 무관할 수 없는 일이 된다. 모두가 다 증오의 방향으로 뛰면 그 증오의 심정과 언어를 공유하면서 따라 뛰어야만 무난하게 살아갈 수 있다.이렇듯 우리 사회에선 자기 진영의 이익과 그 진영에 소속된 사람들의 여러 개인적인 이유로 인해 증오를 표현하는 경우가 많다. 이는 "나는 증오한다. 고로 행복하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걸 시사하는 것이어서 울어야 할지 웃어야 할지 잘 모르겠다. 사람이 어렴풋한 수준일지라도 소속 진영 없이 살아가기는 어려운 일인 데다 팔은 안으로 굽기 마련이라는 걸 부정할 수는 없는 일이다. 그럼에도 정치권의 고질병인 내로남불이 일반 시민들의 일상적 삶에까지 파고들어 생활화되는 걸 당연하다고 여길 수는 없는 일이다. 우리 모두 그 누구도 증오하지 않음으로써 행복해지는 길을 찾아야 하지 않을까?강준만 전북대 신문방송학과 명예교수강준만 전북대 신문방송학과 명예교수
[단체장의 생각:長考] 도서관이 Cafe보다 더 많아지면?
"도서관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고, 큰 뜻을 품은 자에게 보물을 안겨준다."철강왕으로 유명한 앤드루 카네기의 명언으로 그가 남긴 것은 제철소가 아니라 도서관이었다. 가난한 이민자의 아들로 태어나 미국에서 '철강 제국'을 이룩한 그는 66세 때 평생 이룬 카네기 스틸을 J.P. 모건에 매각하고 미국 전역에 2천500여 개의 공공도서관을 건립하였다.마이크로소프트의 창업주 빌 게이츠는 "지금의 나를 있게 한 것은 우리 마을의 도서관이고, 하버드 졸업장보다 중요한 것은 독서하는 습관"이라면서 도서관의 가치를 강조했다.과거나 지금이나 도서관은 누구나 지식문화를 향유할 수 있는 문화 기반 시설로 그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집과 가까운 곳에 쉽게 이용할 수 있는 도서관의 유무는 문화생활의 질을 좌우하는 중요한 요소다. 접근성이 좋은 도서관은 독서를 습관화하여 젊은이들은 미래의 꿈을 만들어가고, 지역주민은 다양한 문화공간으로 활용하여 삶의 질을 높여갈 수 있다. 특히 현란한 영상과 짧은 글에 익숙한 요즘 세대에겐 창의력과 집중력을 높여주는 꾸준한 독서 습관이 그 어느 때보다도 중요하다. 어릴 때부터 도서관을 다닌 아이들은 책과 쉽게 친해지고 커서도 독서 습관을 유지할 수 있어 글을 읽고 이해하는 힘이 커진다. 이러한 문해력은 자연스레 새로운 학습의 기회로 연결되며, 책을 통해 많은 것을 경험해 보고 자신의 미래를 성장시킬 수 있다.서구는 넉넉하지 않은 재정이지만, 주민들의 미래 가치를 창조할 수 있는 도서관 건립을 구정의 최우선에 두고 '걸어서 10분 거리 도서관 건립'을 꾸준히 추진해 오고 있다. 2014년 취임 당시 서구에는 시립 도서관과 구립 어린이 도서관밖에 없었지만 이후 비산, 비원, 원고개, 영어도서관을 건립하며 인구 대비 대구에서 가장 많은 도서관을 보유하게 되었다.비산도서관은 주택가에 위치해 가족 단위로 많이 이용하고, 영어도서관은 원어민 수업과 영어 학습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비원도서관과 원고개도서관은 재능기부자와 함께 공부하고 독서하는 공간으로 활용되고 있다. 이들 도서관은 지역 특성에 맞는 공간과 프로그램을 운영하며 주민에게 필요한 문화공간으로 자리 잡고 있다.최근 행정안전부 발표에 따르면 서구 인구가 전년 대비 4천261명이 늘며 전국의 인구감소 지역 89곳 중 가장 많이 인구가 증가하였다. 특히 30대 및 10세 미만의 젊은 인구가 증가한 것은 의미 있는 변화이다. 이에 맞춰 올 2월에 개관한 뉴평리도서관에는 이웃과 소통하며 함께 자녀를 돌볼 수 있는 공동육아나눔터를 조성해 양육 부담을 덜어주고 안전하고 질 높은 돌봄을 제공한다. 또한 대구 최초로 교육청과 협약을 통해 초등학교 내에 건립 중인 내당권역 도서관은 주민과 학생을 위한 복합문화공간으로 조성할 예정이다. 올 하반기 완공될 평리5동 공공복합청사에는 평생학습관과 영어도서관을 조성하여 세분화하는 교육수요에 부응하고 교육을 넘어 소통의 거점으로 만들고자 한다.이처럼 생활 속에 들어온 도서관은 교육, 문화, 소통의 장이 된다. 특별한 날을 잡아서 구경하는 도서관이 아니라 주민 누구나 생활 속에서 편리하게 도서관을 이용할 수 있도록 서구는 수준 높은 교육·문화환경을 조성하여 생각과 마음이 물질문화를 이끌어가는 참된 삶의 질 향상을 궁극적 목표로 한다. 교육수도 대구에 걸맞게 지역에 도서관이 더 많아지길 기대하며, 서구의 도서관에서 책 읽는 또 다른 어린 빌 게이츠가 반드시 나오리라 확신한다. 류한국 (대구 서구청장)류한국 대구 서구청장
[단상지대] 저출산의 본질은 자녀양육 문제다
출산율이 세계 최저인 0.6명대로 떨어진 만큼 정부와 지방자치단체가 특단의 대책 마련에 나서고 있다. 주형환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 부위원장은 "혼인을 안 하고 첫 아이를 안 낳는 것을 해결하는 게 핵심"이라며 '출산율 반등' 대책을 발굴하겠다고 밝혔다. 경북도는 지난 20일 저출생 극복 전략을 발표하고 돌봄과 주거 모델을 제시하며 저출생과의 전쟁을 선포했다.그러나 필자는 정부와 경북도의 정책들이 기대만큼 효과를 거두리라 기대하지 않는다. '결혼과 출산을 하지 않으니 결혼 많이 시키고 출산 많이 시키면 된다'는 기존의 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또 전투에서 고지를 점령하듯 단기전으로 해결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다. 무엇보다 저출산이란 복잡한 실타래가 어디서부터 꼬였는지 살펴보아야 하는데 이에 대한 검토가 부족하다. 필자는 자녀양육 문제에서 비롯되었다고 본다. 결국 아이를 누가 맡아서 키우느냐의 문제이다.먼저 결혼→출산→양육으로 이어지는 프로세스를 보면, 결혼과 출산에 집중하는 것은 저출산고령사회기본계획의 재판(再版)이다. 혼인율을 높이려면 높은 아파트 가격, 일자리 부족 등을 해결해야 하고, 설사 해결했다고 가정하더라도 남녀 간의 화학반응이 있어야 한다. 결혼 장려에 초점을 두면 헛심을 쓰기 쉽다. 반대로 양육에 집중하다 보면 정책 초점이 명확하다. 대신 출산한 자녀에 집중하면 효과가 없지 않느냐고 비판할 수 있지만, 자녀가 잘 자랄 수 있는 환경이 확인되면 주변 사람들이 자녀를 더 출산하려고 할 것이다.20년간 결혼과 출산 중심으로 저출산 정책이 펼쳐져 왔고, 양육정책은 양육에 대한 무지(無知)로 인해 뒤틀린 채 실시돼 왔다. 특히 생후 36개월간의 영유아에 대한 양육의 중요성이 간과되어왔다. 공자는 논어 양화장(陽貨章)에서, 석가모니는 부모은중경(父母恩重經)에서 생후 3년간 부모의 돌봄에 대한 은혜를 설명하고 그에 대한 보답을 강조했다. 현대정신분석학의 하나인 대상관계이론과 애착이론 등은 생후 36개월간 부모의 충분한 돌봄의 중요성을 분석해냈다.1990년대 자녀를 누가 키우느냐의 문제가 제기되었을 때 이상한 방향으로 꼬였다. 여성의 대학진학률이 남성을 앞지르기 시작했고 젊은 여성일수록 결혼보다 취업을 선택했다. 정부는 보육시설을 대폭 늘렸고 보육시설을 이용하는 모든 아동에 대해 무상보육을 실시했다. 이로써 여성들은 육아를 국가에 떠넘기고, 정부는 여성의 노동력을 확보하는 방식으로 일시적인 봉합이 이루어졌다.그러나 양육 문제는 여전히 해결되지 않았고 더 꼬였을 뿐이었다. 첫째, 생후 3년간 부모의 불충분한 돌봄으로 인해 애착장애아동이 늘어났다는 점이다. 무상보육 10년이 다가오는 지금, '마음의 병'을 앓고 있는 아동청소년들의 급증이 우려된다. 둘째, 자녀양육의 민주화가 이뤄지지 않았다는 점이다. 아빠들은 아이 돌봄은 자신이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하지 않고, 엄마들은 '외돌봄' '독박육아'에 치인다. 사회적으로도 환영받지 못하는 일이다. 같은 부서에 근무하는 직장인이 육아휴직을 한다고 했을 때 부서의 성과가 떨어지지 않을까, 자신의 업무가 늘어나지 않을까 전전긍긍한다. 셋째, 자녀 1명을 양육한 부부가 1명 더 낳아 기를 이유가 없다는 점이다. 성경 창세기 1장에 '생육하고 번성하라'는 하나님의 명령이라 할지라도 현실에선 자녀양육이 고달프고 힘들고, 돈과 시간이 많이 드는 일이다. 이제상 (행복한가족만들기 연구소 출산양육 萬人포럼 대표)이제상 (행복한가족만들기 연구소 출산양육 萬人포럼 대표)
[박재열의 외신 톺아보기] 나발니 사후
러시아의 반정부 운동가 알렉세이 나발니(47)가 타계했다. 그는 러시아의 반정부 성향의 국민들에게는 하나의 희망이었다. 그는 전국의 운동가, 소셜미디어 채널, 국제연맹 조직망을 통괄해 왔다. 2021년에 투옥되자 그의 본부를 리투아니아 빌뉴스로 옮겼다. 그의 유튜브는 구독자가 600만명이고, 뉴스 채널은 작년부터 주 30시간 방송하고 있으며 그 방송 직원도 130명에 달한다.그의 죽음이 꼭 절망만 가져다준 것이 아니다. 지금까지 나발니가 이끄는 러시아의 반정부 및 반전 운동은 여러 요인으로 해서 고립되어 있었다. 나발니는 연합전선을 펴는 것을 원치 않았고 약간 국수적인 경향도 보였다. 어떤 연합체를 만들기보다 푸틴 대통령을 직접 공격하는 것이 더 빠르다고 했다. 이제는 새 전략을 세우고 연합전선을 만들어 공동대처하자는 의견이 대세다.러시아의 많은 반정부 운동가들은 해외에 망명 중이다. 러시아 국민들은 정부가 입맛에 맞게 손질한 정보만 접하고 있다. 운동가들은 주로 유튜브, 텔레그램, 팟캐스트 등을 통해 러시아 국민들에게 정확한 정보를 제공하여 그들을 깨워내려 한다. 이런 독립 미디어를 보는 러시아 성인은 현재 대략 6~9%에 달한다고 한다. 반정부 운동가 중에는 현재 런던에서 투쟁하는 미하일 호도르콥스키(60), 이스라엘에서 유튜버로 활동하는 막심 카츠(40), 러시아군의 잔학행위를 보도하여 8년형을 받고 복역 중인 일리야 야신(40) 등이 있다. 보리스 나데즈딘(60)은 이번 대통령 선거에 반전 후보로 나섰으나 후보등록을 저지당했고, 막심 레즈닉(49)은 대선 선거일에 모두 투표장에 나가 '황제가 발가벗었음'을 플래시몹으로 보여주자고 호소하고 있다. 경북대 명예교수·시인박재열 (경북대 명예교수·시인)
[성현 생각] 나눔 없는 자린 고비를 맞는다
자리가 사람을 만든다는 말이 있다. 어떤 사람에게 새로운 자리를 맡겼을 때 다소 부족해 보이던 사람도 그 자리에 부여된 사회적 책임감으로 그 역할에 맞게 변화될 때가 많다. 우리는 많은 권한을 행사할 수 있는 높은 자리에 오르기도 하고 부(富)를 쌓아 많은 사람들이 부러워하는 부자가 될 수도 있다. 자신의 피나는 노력으로 그러한 자리를 차지했다 하더라도 사회 고위층에게 요구되는 '노블레스 오블리주'와 같은 의무가 뒤따른다. 세상일은 돌고 돈다. 자신에게 주어진 자리에서 오로지 자신의 유익만을 추구한다면 그 말로는 좋지 못할 것이다. 나눔 없는 자린고비를 맞기 마련이다. 도성현〈blog.naver.com/superdos〉
[아침을 열며] 어려움에 처한 이웃의 눈길을 외면하지 마라
관운이 좋다는 말을 간혹 듣는다. 지난 22일 국내 최대 청소년단체인 한국스카우트연맹의 총재가 되었다. 변호사로서 대한변협회장이 되고 보이스카우트 대원이었던 소년이 총재가 되었으니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겠으나 잘 모르고 하는 말이다. 절박하게 요청하는 것을 거절 못하는 성격 때문이다.몇 년 전만 해도 변호사 단체는 사법시험 존폐를 놓고 갈등을 겪고 있었다. 사시 출신 젊은 변호사 일부가 "로스쿨 출신은 바퀴벌레"를 줄여 "로퀴"라고 비난하였다. 힘도 숫자도 절대적으로 부족한 로스쿨 출신 변호사들의 요청을 외면할 수 없었다. '로스쿨의 아버지'라고 불릴 정도로 힘껏 도왔다.그러다가 예정에 없던 서울지방변호사회장에 출마하게 되었다. 당시 로스쿨 출신이 사시 출신의 4분의 1 정도에 불과했지만 이변을 일으키며 압승하였다. 절박했던 로스쿨 출신의 결집력과 사시 출신 변호사들까지 대거 지지해준 덕분이다. 주변의 적극적인 권유로 대한변협회장까지 직행하게 되었다. 유사 직역이 변호사 업무를 잠식하려는 절체절명의 위기 상황에서 나서주어야 한다는 긴박한 요청 때문이다.변협회장선거는 단독 후보였다. 직선제 도입 이후 전무후무한 일이었다. 회원 수가 가장 많은 서울회장 출신이고 전국적으로 골고루 지지를 받고 있었기에 기탁금 1억원을 날리면서 출마할 후보가 없었다. 당연히 무투표로 당선되었을 것이라고 생각하겠지만 고생길의 시작이었다.공직선거법상 단독후보인 경우, 국회의원은 당연히 무투표 당선이지만 대통령은 전 국민의 3분의 1 이상 득표해야 한다. 변호사들의 자존심 때문인지 변협회장 단독후보도 대통령처럼 전 회원의 3분의 1 이상 찬성을 얻어야 한다. 대통령 선거야 단독후보일 경우도 없고 투표율도 높지만 변협 선거는 정반대이다. 다행히 선거가 무산되면 안 된다는 회원들의 적극적인 협조로 80%에 이르는 찬성으로 당선되었다.마냥 웃지 못할 일도 있었다. 단독후보니까 지지자만 투표할 테니 100% 찬성일 텐데 뜻밖에 20%의 반대표가 있었다. 당시 집행부가 투표율을 높이기 위해 기념품을 제공하겠다고 했더니 투표하지 말고 선거를 무산시켜 곤란하게 하자던 반대파들 중 상당수가 투표장에 나온 것이다.스카우트연맹 총재 역시 후보추천위원회에서 경선을 거쳤지만 총회에 단독으로 추천되고 만장일치로 선출되었다. 절박함의 정도가 더욱 컸기 때문이다. 스카우트는 전 세계 172개국에서 1억명의 청소년들이 가입해서 활동하고 있지만, 현재 한국의 스카우트 활동은 위기이다. 방과 후 학원으로 직행하는 입시지옥에서 스카우트 활동은 꿈꾸기 어렵다. 인구 절벽 속에서 잠재적 회원인 청소년 인구의 급격한 감소도 심각한 문제이다.난국을 타개해 보려고 야심 차게 준비한 '새만금세계잼버리'는 책임이 누구에게 있느냐를 따지기도 전에 뭇매를 맞았다. 이런 상황에서 총재로 추대하겠다니 계속 고사하였다. 그러나 절박한 요청을 거절하지 못하는 성격은 오직 스카우트라는 명예와 자부심을 가지고 무보수로 봉사하는 지도자들의 열정과 헌신을 외면할 수 없었다.또한 대한민국의 미래를 이끌어갈 청소년들이 입시학원의 콘크리트 강의실이 아닌 대자연 속에서 도전과 개척의 스카우트 활동을 통해 건강한 신체와 정신을 가지고 성장할 수 있도록 만들어 주는 것이 어른 된 도리라고 생각했다. 권하건대 어려움에 처한 이웃의 도와달라는 눈길을 외면하지 마라. 관운이 열리는 행운의 열쇠를 필자처럼 그들이 건네줄지 모른다.이찬희 법무법인 율촌 고문 전 대한변호사협회장이찬희 법무법인 율촌 고문 전 대한변호사협회장
[경제와 세상] 지방소멸 막기 위해선 이제 역발상이 필요
1960년대 이후 급격하게 서울·수도권으로 몰려드는 사람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수도권에서는 끊임없이 주택을 건설하고, 도로와 지하철을 만들었다. 하지만 교통정체는 계속되고 주택가격 상승으로 어려움을 겪으면서도 집중화는 가속화되고 있다. 반대로 지방에서는 젊은이들이 떠나 점점 쇠퇴해 지방소멸이 목전에 닥쳐 있다. 1970년대 이래 여러 차례의 정권교체에도 불구하고 정부에서는 일관되게 수도권 억제정책과 함께 지방을 대상으로 주택, 고속도로, 철도, 다리, 산단 등 다양한 대규모 사회간접자본시설(SOC) 투자가 이루어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별다른 효과가 없자 '좋은 일자리' 때문이라 판단하고 수도권의 공공기관들을 지방으로 이전, 분산시켜 혁신도시를 건설하였다. 이 역시 기대했던 효과가 나타나지 않자 윤석열 정부에서는 핵심 지방정책으로 기회발전특구, 교육발전특구 등으로 '대한민국 어디서나 살기 좋은 지방시대'를 열고자 노력하고 있다. 과연 이렇게 하면 수도권 집중화를 막고 지방을 살리는 데 성공할 수 있을까? 답은 회의적이다. 도대체 무엇이 문제일까? 원인과 결과를 혼동하여 해법을 잘못 찾는 것은 아닐까? 수도권이 제공하는 더 많은 일자리, 더 좋은 학교, 더 나은 주택, 더 좋은 기회 등과 같은 요소 때문에 사람이 몰리는 것이 아니라 사람이 몰리기 때문에, 즉 시장기능이 작동하기 때문에 수요를 충족시키기 위하여 결과적으로 일자리, 주택 등이 만들어지는 것이 아닐까? 단순히 일부 좋은 직장의 이전이나 정주환경 등 하드웨어성 인프라를 개선한다고 지방을 살릴 수 없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수도권으로 몰려드는 이유는 단순한 하드웨어성 물리적 조건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물리적 조건으로만 설명할 수 없는 소프트웨어성 문화 때문이다. 서울은 세계 어느 유수 도시에 못지않게 글로벌화되고 개방적이어서 지방은 물론 해외로부터도 수많은 사람들이 몰려와 시장기능이 작동한다. 특히 지방에 비해 익명성(匿名性)이 보장되어 보다 공정할 것이라는 기대감을 준다. 이에 반해 지방, 특히 대구경북과 같이 보수적인 지역은 덜 개방적이어서 외부 사람들을 흡인하는 힘이 부족하다. 또 혈연, 학연 및 지연 등과 같은 연고주의가 작동하다 보니 익명성이 보장되지 않아 공정성이 떨어진다. 따라서 사업을 하거나 구직을 해야 하는 사람들, 특히 네트워크가 없는 사람들 입장에서 보면 '대수(大數)의 법칙(law of large number)'이 작용하여 공정성이 보장되는 개방적 문화의 서울이 매력적이다. 또한 서울이 복잡하지만 다양한 네트워크 형성이 가능하여 많은 정보 습득과 경험을 쉽게 할 수 있어 새로운 혁신이 가능하게 해주는 장점도 있다.결론적으로 수도권 집중을 막고 지역이 발전하기 위해서는 이제 소프트웨어성 문화와 운영시스템 개선 등 근본적인 변화가 필요하다. 그간 지방을 살리기 위해 인프라에 투자해온 자원과 기간, 노력의 반만 투입해도 문화를 바꿀 수 있다. 물론 정보획득을 용이하게 하고 병원 등에 보다 쉽게 편리하게 접근할 수 있는 경북의 '수요응답형 교통체계'와 같은 효과적 운영시스템의 개선도 필요하다. 수도권에 비해 지방이 가진 가장 큰 장점은 천혜의 자연환경과 물가가 저렴하여 가처분소득이 높고, 교통 체증이 적어 가처분 시간이 많다. 이를 최대한 활용하여 지방소멸 추세를 되돌리기 위해서는 중앙정부와 하드웨어 중심의 발전전략이 아니라 지역의 주인인 지역민이 중심이 되어 소프트웨어 중심의 발전전략, 즉 폐쇄성·수구성을 버리고 개방적·진취적으로 외지인들과 젊은이의 다름을 인정하고 이들을 과감하게 수용하여 지역에 어우러지게 하는 개방형 문화가 필요하다. 이재훈 에코프로 파트너스 대표이재훈 에코프로 파트너스 대표
[더 나은 세상] 기후변화 대응은 경제발전에 약인가 독인가?
지구가 따뜻해지고 있다고 하지만 겨울철 날씨 중 유례없이 추운 날도 있었기에 사람들이 과연 얼마나 지구 온도가 올라가고 있는지를 체감하기는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지구의 온도를 과학적으로 측정하는 방법이 고안되어 비교적 정확히 측정되고 있다. 지구 온도의 기록은 1850년부터 세계 많은 표준 지점에서의 체계적 온도계에 의한 온도 측정이 있었고, 연도별 지구 온도의 평균값을 비교할 수 있었다. 1950년대 이후부터는 기상 관측기구인 라디오존데를 통해 다양한 고도에서의 대기 온도를 측정하여 지구 평균온도를 추정하였으며, 1978년부터는 인공위성의 마이크로음향 장치를 통해 대류권의 측정온도 데이터를 바탕으로 지구 온도를 추정하고 있다. 또 이 온도의 정확성을 담보하기 위해 많은 국가의 전문과학자들이 협업하여 검증 작업을 거치게 된다.이러한 온도 측정에 의하면 지난 1월의 지구 평균 기온이 역대 1월 가운데 가장 높았던 것으로 기록되었고 온도가 측정된 이후 가장 따뜻한 달이 모두 2023년 6월부터 2024년 1월까지 8개월째 이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2015년 파리 기후 협정에서 정한 '산업혁명 이전보다 1.5℃ 상승'을 마지노선으로 둔 목표는 2023년 6월 이후 지금까지 평균 1.66℃가 상승한 것으로 나타나고 있어 이미 마지노선을 넘어서 버렸고 또 지난달 북유럽의 한파가 영하 40℃를 기록하는 동안 남유럽은 영상 30℃의 이상 고온 현상도 나타나 같은 대륙에서의 온도 차가 역대 최고로 나타나기도 하였다.이러하다 보니 세계 여러 나라가 산업의 구조를 친환경 녹색으로 전환하고자 나서고 있다. RE-100의 선언기업이 자신의 이미지 제고를 위해 줄을 잇고 있고, 미국은 IRA법으로 녹색 산업을 육성하고 있으며 유럽연합(EU)은 '탄소 중립 산업법(NZIA)'을 지난 6일 통과시켰다. 이제 유럽연합 내의 여러 나라들은 태양광, 배터리, 탄소 포집 및 저장 등 친환경 산업과 관련된 주요 분야 산업이 '전략적 탄소 중립 기술'로 지정되어 패스트트랙 허가, 보조금 지급요건 완화 등 각종 혜택을 받게 될 것이다. 여기에서 원자력 발전을 포함한 몇몇 산업도 혜택을 받을 수 있는 사업군으로 집중 논의가 되었으나 그 범위와 전제조건은 아직 알려지지 않고 있다.하지만 일각에서는 유럽 각국의 극우파 정당이 활성화하면서 기후변화 대응과 환경정책을 공격하고 있다. 실제로 유럽 각지에서 기후 정책이 멈춰서는 일이 발생하고 있다. 기후 대응을 위해 자국이 감당해야 할 재정지원이 부당하다는 명분으로 사실상 자국의 이익만을 고려한다면 기후 대응 정책을 철회하는 것이 옳은 방향이라고 판단하는 것이다. 미국 역시 지난 트럼프 대통령 시절, 기후변화 대응협약에서 탈퇴하여 자국의 이익만을 고수한 적이 있다. 이러한 움직임은 여론의 반대에 부딪혀 지속되지 못했고 세계적 질타의 대상이 되었던 것을 우리는 이미 경험한 바 있다. 우리나라도 이러한 선택의 기로에 서 있는 것으로 보인다. 당장의 현실적 경제침체 위기를 벗어나기 위해 재정적 투입이 과도한 신재생에너지를 축소하는 것이 옳은 일인지, 미래의 세계 속 우리나라 산업의 위치 선점을 위해 재정적 투입을 해서라도 기후 위기 대응 녹색 산업을 육성해야 할 것인지는 정부의 의지에 달려 있다. 현 정부는 어느 쪽을 선택한 것인지에 대한 뚜렷한 정책과 세부 계획이 보이지 않아 안타까울 따름이다.정재학 영남대 교수정재학 영남대 교수
[김요한의 도시를 바꾸는 시간] 도시의 정체성과 '시민의 날'
정체성(identity)은 개인과 조직, 도시와 국가의 정체성까지 여러 측면에서 중요하게 다루어진다. 이는 모든 일의 출발점에서 정체성을 확보해야 하고, 목적지에서 정체성을 잃어버리면 안 되기 때문이다. 하버드대학교 정신분석학 교수였던 에릭 에릭슨은 '아이덴티티(identity)'를 자기 자신에 대한 연속성, 일관성, 독자성, 불변성으로 정의했다. 그리고 '아이덴티티'는 자기 언급이나 믿음으로 절대 이루어질 수 없으며 사람, 사회 등 타자와의 관계 속에서 타인으로부터 인정되는 것으로 보았다. 요즘 일과 관계 속에서 잃어버린 '자기다움'을 찾아 나서는 사람들이 많은 이유다. 도시의 정체성은 그 도시만의 지역적 특성이며, 특정 도시에 대한 총체적인 도시 이미지다. 도시 이미지는 특정 도시가 보여 주고 느끼게 하는 정체성을 통해 구축된다. 따라서 도시의 정체성은 도시의 브랜드와 연관되며, 도시정체성을 확보하는 것이 도시마케팅의 출발점이다. 도시의 정체성은 시민에게는 자부심과 자긍심을 높이고 방문자에게는 매력 있는 장소와 공간으로 인식된다. 따라서 도시의 정체성은 '살고 싶은 도시'로서의 도시 만들기와도 연관된다.도시의 브랜드는 한 도시의 정체성과 가치를 포함한 가장 상위적인 개념이다. 따라서 도시브랜드를 바꾼다는 것은 도시의 정체성을 어떻게 해석하고, 어떤 도시를 만들겠다는 의지의 표상이다. 하지만 '아이덴티티'에 대한 에릭슨의 말을 곱씹어보면, 도시의 정체성도 개인적인 주장과 신념으로 이루어질 수 없음을 알 수 있다. 요즘 스스로 생각하는 자아와 타인이 인정하는 자아 사이의 불일치로 정체성 혼란을 겪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다. 이런 경우 자신에 대해서 잘못 알고 있거나 타인과의 소통에 문제가 있는 경우가 많다. 도시도 타자와의 관계 속에서 정체성을 확립하지 않으면, 마찬가지로 정체성의 혼란을 겪고, '살고 싶은 도시'로서의 도시 만들기는 길을 잃을 수도 있다.도시는 저마다 지역의 역사와 정체성을 상징하는 날을 '시민의 날'로 정하고 있다. 대구는 2020년에 기존 10월8일을 38년 만에 국채보상운동 기념일인 2월21일로 변경하였고, 2·28민주운동 기념일까지를 '대구시민주간'으로 정해 각종 행사로 기념하고 있다. 조례상의 취지를 살펴보면, 시민정신을 계승하고 발전시키기 위해 시민정체성을 확립하고 시민정신을 확산하는 구체적인 일들이 매우 필요하다. 결국 시민들이 소통을 통해 '우리다움'을 확립할 수 있을 때, 비로소 시민의, 시민에 의한, 시민을 위한 '살고 싶은 도시'를 만들어 나갈 수 있다. 김요한 지역과 인재 대표김요한 지역과 인재 대표
[시선과 창] 기부, 공동체를 지키는 작은 나눔
기부금 모금 목표액의 1%를 달성하면 온도가 1도씩 올라가는 나눔 상징탑이 '사랑의 온도탑'이다. 연말 대구 온도탑은 100.8도를 가리켰다. 지역 기업의 참여가 결정적 역할을 했다. 1억원 이상 기부한 대구기업은 17곳이다. 외국인 유학생, 군위 군민, 사회복지사, 익명의 기부자 등 시민들도 적극 참여했다. '사랑의 온도'를 계기로 기부 문화에 대해 다시 살펴보자. 기부는 사회적 연대를 강화하여 공동체의 통합에 이바지한다. 사회·경제적 불평등을 완화한다. 긍정적이고 안정적인 사회를 만든다. 사람을 살리기도 한다. 나눔 정신의 확산이 필요한 이유다.배고픈 이웃이 없어지길 바라며 전 재산 4억원을 기부한 80세 할머니가 계신다. 이 할머니는 맹물만 먹고 한 달을 버틴 적도 있을 만큼 어렵고 힘든 시절을 거쳤다. 살면서 늘 배고팠고 공부하지 못한 한이 컸음에도 이웃의 고통을 외면하지 않았다. 폐지를 팔아 모은 돈을 16년째 기부하는 쪽방촌 주민도 있다. 2008년부터 누적 기부액이 2천500만원이 넘는다. 넉넉하지 않은 사람들의 기부라 의미가 더 크다. 광주에서도 80대 할머니가 폐지를 팔아 모은 돈 32만원을 기부했다. 모두 나보다 어려운 이웃을 위한다고 하면서.경주 지역 634개 경로당 어르신 1만2천명이 '이웃 돕는 노인 되자'라고 쌈짓돈을 모아 9천335만원을 경주시에 쾌척했다. 가족과 함께 백혈병 환아를 위한 정기적 기부 활동을 해 오던 해양 경찰이 구조 영웅으로 선정되어 받은 상금 전액을 백혈병소아암협회에 냈다. 인천의 한 기업에서는 따뜻한 겨울나기 릴레이 기부로 쌀 3t을 지역아동센터 등에 기부했다. 육군 한 경비여단은 혈액 5만200ℓ를 대한적십자사에 기부했다.사회 곳곳에서 이렇게 많은 기관, 단체, 개인이 어려운 이웃을 위해 기부에 나서고 있다. 그럼에도 아쉽고 부족한 느낌이 든다. 경제적 양극화의 심화, 계층 이동성의 약화, 이민자 증가 등으로 사회적 취약 계층은 줄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저소득자, 고령자, 장애인, 북한 이탈 주민, 가정폭력 피해자, 한부모가족지원법에 따른 보호 대상자, 결혼이민자, 갱생 보호 대상자, 범죄 구조 피해자, 노숙인 등 사회적 취약 계층은 오늘도 힘겹게 살아가고 있다. 이들에게는 사회적 보호나 지원이 절실히 필요하다. '사방 백 리 안에 굶어 죽는 사람이 없게 하라'는 경주 최부자댁 가훈은 이웃을 향한 복지 실천의 오랜 역사를 보여준다. 성주 한개마을과 경주 양동마을 양반집에서는 지붕 위 높은 굴뚝 대신 뜨락에 낮은 굴뚝을 만들었다. 높은 굴뚝에서 밥 짓는 연기가 나면 평민들의 상실감이 커질까 염려하였기 때문이다. 끼니마다 밥을 끓이기도 어려운 이웃을 향한 눈길이 이보다 더 따뜻할 수 있을까? 나눔의 대상이 물질만 아니다. 재능, 시간, 노력을 나누는 것도 의미가 크다. 지식 공유, 강연, 멘토, 일손 돕기, 헌혈, 교통 봉사 등 생활 속에서 나눔의 방법은 다양하다. '내 집 앞 내가 쓸기'처럼 드러내지 않는 기부도 있다. 소액 기부처도 다양하다. 이웃을 위한 관심과 사랑을 표현하고 실천하자. 기부 문화 확산을 위해 모금 기관, 단체들의 투명한 운영은 기본이다. 기부자에 대한 세제 혜택 등 제도적 뒷받침도 더 필요하다.노블레스 오블리주를 들먹이지 않더라도 나눔 정신이 더 필요한 시대다. 이웃이 무너지면 우리도 위험하다. 공동체가 안정되어야 나도 편안한 삶을 살 수 있다. 어려운 이들에게 따뜻한 눈길을 보내자. 공동체를 지키는 작은 나눔, 나부터 실천하자. 이웃이 있어 내가 있다.박정곤 대구행복한미래재단 상임이사박정곤 대구행복한미래재단 상임이사
[시시각각(時時刻刻)] 의대 입학정원 확대, 공익성에 주목해야
프랑스에서 ENA(국립행정학교)라는 그랑제콜 동문들인 '에나르끄(Enarque)'는 엘리트 과정을 밟고 정부의 간부급 관료로 채용된다. 이들이 그랑제콜에 입학하기 위해서는 재수와 삼수를 하는 학생들도 많다. 우리나라 대학입시에서 수재들은 의과대학 진학을 위해 N수를 한다. 세계적으로 의과대학이 선망의 대상이기는 하지만, 우리나라의 의과대학처럼 심각하게 인재들을 빨아들이는 블랙홀이 되는 경우는 없다. 첨단과학기술 경쟁의 시대를 맞아, 국가 미래를 위해서 수재들이 의과대학으로만 몰리는 것은 결코 바람직하게 보이지 않는다. 그렇다면 우리나라에서는 왜 우수한 인재들 다수가 의사가 되려고 할까? 의사는 사회적으로 인정받으며, 의사면허라는 직업적 안정성을 가지고 경제적으로 일반 근로자와 비교해 월등히 높은 임금을 받기 때문이다. 정부가 발표한 통계에 따르면, 우리나라 의사 수입은 OECD 가입국 중 독일, 프랑스, 이탈리아, 영국 같은 유럽 선진국의 의사보다 고수입자에 해당한다. 근로자 평균소득 대비 의사 수입에서도 우리나라 의사 수입은 4.5~7.0배로 OECD 가입국 평균의 2배 수준이다. 그런데 의사 수를 보면 2021년 기준 OECD 가입국의 평균 의사 수는 1천명당 3.7명임에 반해, 국내 임상 의사 수는 1천명당 2.6명으로 30개 OECD 국가 중 둘째로 적다. 이 중 한의사를 제외하면 1천명당 2.2명으로 가장 적다.의사들의 고수입과 직업적 안정성 이면에는 분명 의사 부족으로 의료서비스를 제대로 받지 못하는 농어촌지역을 포함 '의료사막지대'가 늘어나고 있다. 최근 지방 병원에서는 연봉 4억원에도 응급의학과 전문의를 구하지 못하는 사태도 있었다. 그러나 의대 정원은 20년 가까이 3058명에서 조금도 움직이지 않았다.이러한 문제점을 해결하고자 정부는 의대 정원을 2025학년부터 2천명 증원하는 계획을 발표하였다. 의대 정원은 지금 2천명씩 확대해도 OECD 가입국 평균 의사 수에 접근하려면 산술적으로만 30년이 지나야 한다. 이러한 현실에도 불구하고 의사단체는 집단행동에 나섰다. 국가가 의사들에게 행한 업무개시 명령에 대해서 '의사란 직업은 사적 영역이 지배하고 시장경제의 원리가 작동하는 순수 민간영역이고, 자신들의 주체적 판단으로 수련 과정 이수 여부를 결정할 수 있는 독립된 인격의 주체'라고 항변하고 있다. 의료인에게 국가가 면허를 주고, 면허가 없는 사람의 의료행위를 막는 것을 의료법이 규정하고 있다는 것에서 의료인이라는 직업은 분명 공익성을 가진다. 그러므로 의과대학 개설을 국가가 통제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의료인이라는 직업은 결코 순수 민간영역에 속한다고 보기 어렵다. 또한, 의료인들이 수련 과정을 집단이탈하는 것은 파업의 다른 형태이며, 이를 막는 것은 의료인의 자유권 침해에 해당하지 않는다. 설령 자유권 제한이라 하더라도, 헌법 제37조에 의하면 공공복리를 위해서는 자유권을 제한할 수 있다.법적 논리를 떠나서도 시민들의 눈에 과연 의사들의 집단행동이 어떤 모습으로 비칠까? 의사들의 집단행동이 히포크라테스 선서 '나는 병자의 이익을 위해 그들에게 갈 것'이라는 말을 무색하게 하는 것은 아닐까? 내과, 외과, 산부인과, 소아청소년과 등 필수 의료진 부족 해결과 '의료사막지대'의 해소는 우리 사회가 당장 해결해야 할 시대적 과제이다.권세훈 <주>비즈데이터 이사·파리1대학 법학박사권세훈 비즈데이터 이사·파리1대학 법학박사
[이하석의 발견과 되새김] 자연에 대한 받듦과 존중의 태도
#기상 이변기후 변화의 징후인가. 올겨울도 그리 춥지 않다. 내가 매일 걷는 신천은 올해 거의 얼지 않았다. 그런 가운데 남녘의 곳곳에서 벌써 홍매화가 피고, 영춘화가 피었다는 소식들이 카톡에 뜬다. 신천 상류의 산책길에 꽤 큰 매화나무가 몇 그루 있는데, 하마 꽃봉오리들이 탱탱해져 있고, 몇 송이는 이미 피었다. 며칠 전 들린 울산 바닷가에는 매화가 만발했다. 정월대보름이 아직 지나지도 않았는데도 봄기운이 완연한 것이다. 우리네 봄소식만 그렇듯 비정상적인 게 아니다. 최근 뉴스에서 접하는 기상 이변 소식들은 한결같이 놀라운 것들이다. 지난해 파키스탄의 홍수는 과거에 유례가 없던 일이다. 연전의 중국의 가뭄으로 양쯔강의 바닥이 드러난 것도 아주 이례적인 일이었다. 이런 이변이 지금도 전 지구적인 현상으로 빈발하고 있다. 기상 이변에 의한 재난 우려가 현실화해 간다. 그런 가운데 2015년 파리기후협약 이후 각국의 온실가스 감축에 대한 관리가 그 절박함에 비해 느리다는 비판이 쏟아진다. 지구의 평균 기온이 오르고 있는 것에 대한 공포가 점점 더 고조된다. 기후에 대한 우려는 지구의 평균 기온이 산업화 이전 대비 2℃를 넘지 않아야 함을 마지노선으로 삼는다. 그 이상으로 올라가면 엄청난 재난이 예상되는 만큼 이를 인류가 막아내야 할 한계점으로 꼽는 것이다. 지금은 글로벌 시대다. 한 지역의 일이 각 지역에 영향을 미친다. 기후 변화에 의한 영향은 더욱 그러하다. 이상 기후로 인한 지구 온도의 상승을 억제하기 위한 각국의 관리와 연대가 요구된다. 탄소 중립이 시급히 이루어져야 한다. 온실가스 배출량의 감축이 시급한 것이다. 늘어나는 전 세계 인구는 2050년이면 100억명에 이른다고 예상되는 만큼 이들이 뿜어낼 이산화탄소 배출에 대한 억제와 관리 대책이 강구되고 그 실천책이 가동되어야 한다. #받듦기후 위기의 근본 원인은 인간들의 활동과 관계되어 있다. 자연에 대한 인간들의 오만이 빚은 결과다. 지구의 미래를 위해 사회와 경제 및 과학의 적절한 대응이 시급하지만, 그에 앞서 우리 지구인들의 겸손한 자연관이 요구된다. 그 대안으로 꼽히는 발언과 책들도 많이 나온다. 그 책들을 읽으며 우리는 자신을 성찰하고, 지금의 생활 방식과 태도를 반성한다. '향모를 땋으며'는 아메리카 원주민의 후예로 생태학자이며 작가인 로빈 월 키머러(1953년~)의 책이다. 아이들의 어머니이기도 한 키머러는 아득한 시간을 이어온 아메리카 인디언들의 삶과 지혜를 통해서 식물이 우리에게 가르쳐주는 것들에 대한 애정 어린 시선을 보여준다. 이를 통해 현대 과학에 대한 성찰을 요구한다. '세 자매인 옥수수와 콩, 호박. 옥수수는 콩이 타고 올라올 지지대가 되어주고, 콩은 질소고정으로 토양을 비옥하게 하고, 호박은 낮고 넓게 자라면서 잡초가 자라지 못하게 한다. 세 자매는 높이가 들쭉날쭉한 덕에 해의 선물인 빛을 버리는 것 없이 알차게 쓴다'라면서, '서로가 서로에게 도움을 주고받는 호혜적 관계'를 강조하는 그녀의 말은 감동적이다. 식물들의 관계가 그러할진데, 거기에 인간을 포함하면 얼마나 지극한 생태의 구조가 이루어질까?그래, '서로가 서로에게 도움을 주고받는 관계'만이 상한 지구를 치유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녀가 속했던 포타와토미족을 비롯한 북아메리카 원주민들의 경우, 한 생명이 다른 생명을 취할 때 생기는 긴장을 해소하는 방식이 있단다. 그러한 행위를 '받드는 거둠'(Honorable Harvest)이란 말로 표현하는 것이다. 우리는 단백질을 취하기 위해 동물들을 죽인다. 음식을 위해 식물들을 마구 채취한다. 그 점에서 '자연'과 인간 사이에 긴장이 생긴다. 그 점을 해소하는 것으로 서로 감사하고 떠받드는 마음이 우선되어야 하는 것이다. 그녀는 "자신을 보살피는 이들의 방식을 알라. 그러면 그들을 보살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한다. 우리가 기대고 취하는 자연에 대한 그러한 경건한 받듦의 태도야말로 지구를 재앙에서 구할 확실한 실천의 마음가짐이라는 것이다. #이천식천자연과 인간 간의 '받드는 마음'에 대한 관심은 남의 얘기가 아니다. 우리에게도 그러한 사상이 이어져 왔다. 한국사에서 최장기 지명수배자로 꼽히는 해월 최시형의 사상이 그것이다. 해월은 스승 수운 최제우의 사상을 구체화하고 실천하는 데 평생을 바친 천재적인 실천 사상가이다. 반상의 구별이 확실했던 조선조 말의 상황에서 인간의 평등과 자유를 줄기차게 주창했다. 남녀 차별을 철폐하고, 어린이를 대하는 태도도 평등과 자유로움으로 바뀌어야 한다고 했다. 특히 어린이에 대한 그의 생각은 나중에 '어린이날'을 정하는 결정적인 단초가 되기도 했다. 그의 자연관은 우리를 더욱 놀랍게 한다. 그의 사상의 한 극점인 '한울로서 한울을 먹는다(以天食天)'는 '한울이 한울을 먹여 살린다'라고도 하는 등 다양하게 해석된다. 간단히 말하면 우리가 먹는 행위에 대한 태도의 문제를 제기한 것이다. 그 행위가 일어나는 과정은 지극해야 한다. 먹는 우리는 한울의 존재이며, 먹히는 것들도 다 한울의 존재이므로 서로 존중하여야 한다. 먹는 이는 그 먹이를 제공하는 쪽의 허락을 받아야 하는 등 아주 조심스럽게 그 과정이 이루어져야 한다. 인간이 자연을 지배하는 서구적인 관념에서는 수긍하기 힘든 사상이 아닐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키머러를 비롯한 자연에 대한 이런 지극한 관점들이 서구의 독서계를 풍미하는 등 전 지구적 대안으로 떠오르고 있는 게 아이러니하다. 오늘날 지구의 기후 위기 등 재앙의 조짐들은 이처럼 자연을 향한 받듦과 존중의 태도가 결여된 데서 심화된 것이라는 관점에서 시작하자. 첨단을 달리는 과학에게도 이런 관점에서 말하고 싶다. 부디 자연에 대한 받듦과 존중에 기반을 둔 가운데, 인간을 살리고 지구를 살리는 과학을 해달라고 말이다.시인이하석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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