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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문태의 제3의 눈] 대통령의 부인 '시민의 멍에'…우리 국민은 어떤 모습을 바랄까
"한국 영부인의 표절 의혹 재차 제기"〈뉴 스트레이츠 타임스〉, "한국 영부인, '오드리 햅번 흉내' 사진의 '빈곤 포르노' (주장자) 고발"〈텔레그래프〉, "한국 영부인, 위조 자격증 혐의로 기소당하지 않을 수도"〈네이션〉, "한국 영부인 조사 : 더불어민주당 특검법 추진"〈아시아 뉴스 네트워크〉, "일곱 가지 한국 영부인 스캔들: 보석에서 위조까지"〈시엔비시〉, "한국 영부인 베트남 방문 중 멋진 스타일 유지"〈브이엔익스프레스〉, "한국 영부인 김건희 아부 다비에 패셔너블한 첫발"〈내셔널〉….구글 외신판에 대한민국 대통령 부인 '김건희'의 영문 이름을 치면 뜨는 제목들이다. 주로 스캔들 아니면 패션, 두 가지다. 대한민국 대통령 부인의 국제적 위상이 이렇다는 말이다. 좀 잠잠해질 때도 됐는데 어째 끝이 없다. 남편 윤석열의 대통령 후보 시절부터 불어 닥친 김건희발 바람은 자격증 위조와 논문 표절에다 사문서 위조·행사(어머니와 공범) 혐의, 주가 조작 혐의 같은 불법으로 시작해서 김건희 녹취록, 비선 의혹, 보석 미신고 의혹, 무속인 개입 의혹 따위로 줄줄이 논란을 낳았다. 좋은 말로 논란이지 사실은 모조리 위법성을 따져야 할 사건들이다. 찍소리 못하는 검찰이 뭉개고 있을 뿐.그러더니 또 터졌다. "한국 영부인, 쉰 살의 스타일 아이콘 : 빌뉴스에서 유명 매장 방문하다" 리투아니아 언론 〈주모네스〉의 지난 12일자 제목이다. 〈주모네스〉는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정상회의에 참석한 윤석열 대통령 부인 김건희의 11일 명품 쇼핑 사실을 전했다.저지레도 이런 저지레가 없다. 명품 구입 따위를 나무라는 게 아니다. 그런 것쯤이야 사든 말든 개인사일 뿐이다. 다만 명품 쇼핑에도 때와 장소란 게 있다. 국제 외교판에 나선 대통령을 수행한 그 부인의 동선은 공적 영역이다. 다른 말로 시민이 뼈 빠지게 일하고 바친 혈세가 투입된다는 뜻이다. 한마디로 대한민국 시민은 대통령 부인이 명품이나 사라고 북대서양조약기구 정상회담에 보낸 게 아니다. 게다가 가뜩이나 대통령 부인 일가가 지닌 땅 쪽으로 방향 튼 양평고속도로 수정안을 놓고 온 나라가 뒤숭숭한 가운데 물난리까지 겹쳐 숱한 시민이 죽어 나가는 판이다. 대통령 부인이라면 명품을 잠깐 잊고 안타까운 시늉이나마 해야 할 시국이다. 그마저 맘에 없다면 물덤벙술덤벙이나 말든지. 보라. 동네 영천댁에 물만 들어도 이웃이 모두 걱정하며 낯빛과 몸가짐을 조심하는 게 우리 정서 아니던가. 정상적인 사람이라면 이 판국에 명품 쇼핑 따위는 생각도 못 할 일이다. 하물며 대통령 부인이란 자가! 간이 커도 이만저만 아니다. 지난 5월 대통령 윤석열의 미국 국빈 방문 때 〈워싱턴 포스트〉가 옷의 유행만 좇는 사람을 일컫는 속어인 'clotheshorse(빨래걸이)'로 김건희를 묘사했을 때만 해도 너무 나갔나 싶었던 게 이번에 보니 딱 그 짝이다. 정신머리 없는 대통령실이란 것도 가관이다. "명품 가게 호객 행위에 어쩔 수 없이 들렀지만 물건을 사지는 않았다." 이걸 말이라고! 명품 가게 두 부롤리아이의 지배인이 "(대통령 부인이) 예고 없이 들러 물건을 구입했고, 이튿날 한국 대표단 몇이 다시 와서 추가로 구입해 갔다"고 이미 밝혔다. 가게 지배인이 한 나라 대통령 부인의 쇼핑을 놓고 거짓말시킬 만큼 용감하리라 믿는 이는 아무도 없다. 더구나 경호원, 수행원 16명이 둘러싼 대통령 부인 행차에 감히 누가 다가가 호객 행위를 한단 말인가? 농담치곤 지나치다. 아니면 대한민국 대통령실이 대통령 부인의 동선을 팽개칠 만큼 엉망진창이든지. 30년 넘도록 외신판에서 숱한 대통령과 총리를 취재해온 내 경험에 비춰보면 상상할 수 없는 일이다. 대통령 부인의 동선이 호객 행위로 바뀌는 건 본 적도 들은 적도 없다. 대통령의 외국 방문이란 건 경호와 의전 탓에 분 단위로 끊어 철저한 동선 관리 아래 비밀스레 이뤄진다. 방문국 정부와 사전 협의를 거치는 대통령 부인의 동선도 말할 나위 없다. 대통령 부인이 두 정부의 동선 관리 없이 길 가다 호객 행위로 명품 가게에, 그것도 다섯 군데나 들릴 수 없다는 말이다. 대통령실은 말부터 배워야. 으레 대통령 부인들이 외국 방문 때면 쇼핑도 한다. 개인의 입맛도 있겠지만 주로 현지의 문화 상품이나 예술품 같은 것들이 바구니에 담긴다. 이런 걸 '부드러운 외교(soft diplomacy)'의 일환으로 보기도 한다. 예컨대, 윤석열 정부가 이른바 가치외교의 교범으로 삼는 미국을 보자. 1997년 대통령 클린턴의 부인 힐러리는 인디아 방문 때 전통 공예품을, 2013년 대통령 오바마의 부인 미셸은 중국 방문 때 전통 시장에서 일용품을, 2021년 대통령 바이든의 부인 질은 일본 방문 때 장난감을 몫몫이 사 들고 갔다. 이런 게 백악관 여인들의 공식적인 외교여행 쇼핑 목록이다. 그 대통령 부인들은 저마다 문화 교류와 지역경제 지원을 내세웠다. 그러고도 미국 안에서는 공식 외교를 벗어난 사적 행위라며 보수 원칙주의자들 입길에 올랐다. 세금이 들어가는 대통령 부인의 동선 하나하나가 그만큼 신중해야 한다는 뜻이다. 백악관 여인들과 견줘보면 대한민국 대통령 부인 김건희의 명품 쇼핑은 이도 저도 아니었다. 거긴 문화 교류도 지역경제 지원도 외교적 가치도 없었다. 오로지 개인의 사치뿐이었다. 공적 외교의 사유화로 세금을 낭비한 대통령 부인의 욕망을 반드시 따져야 하는 까닭이다. 대한민국 헌법은 대통령 부인한테 어떤 권능도 준 적 없고 사적 용도로 세금을 쓰도록 허용한 적도 없다. 돌이켜 보면 이 모든 일은 대통령 후보 윤석열의 공약에서 비롯되었다. 윤석열 후보가 대통령 부인을 보좌하는 제2부속실 폐지로 말썽을 일으킬 때부터 예견된 일이었다. 현재 대한민국엔 대통령 부인을 관리할 만한 조직이나 기구가 없다. 시민은 대통령 부인을 누가 거들고 누가 일정을 짜고 누가 따라다니는지조차 모른다. 거긴 세금이 어떻게 쓰이는지도 알 길이 없다. 대통령 부인이 모든 걸 맘대로 할 만한 조건이 갖춰진 셈이다. 견제도 감시도 없는, 아무도 건드릴 수 없는 성역에 들었다는 뜻이다. 제왕적 권력에서나 가능한 일이다. 이 대통령 부인의 일을 누가 책임질 것인가? 마땅히 그 남편 몫이다. 한 가정의 장을 말하는 게 아니다. 대통령 부인은 아무 직책도 없지만 의전과 경호에 세금이 투입된다. 그리고 대통령과 함께 공적 영역을 공유한다. 헌법상 개인이 아닌 조직인 대통령에 그 부인이 포함된다는 뜻이다. 그 조직의 최고 책임자는 마땅히 대통령이다. 싫든 좋든 대통령 부인의 관리는 대통령 몫이다. 한데, 대한민국 대통령은 입이 없다. 그 부인도 마찬가지다. 애초 용산이란 동네엔 책임도 사과도 없다. 무슨 일이든 뭉개고 지나가면 그만이다. 이 부부 맘속엔 시민이 없다는 증거다. 권력, 영원하지 않다! 길어야 4년이다. 필리핀 전 대통령 페르디난드 마르코스의 부인이자 세기적 사치꾼으로 이름난 이멜다도, 2천700만달러짜리 핑크 다이아몬드를 낀 사치의 여신으로 불린 말레이시아 전 총리 라지브 라작의 부인 로스마 만수르도 다 겪은 일이다. 이쯤에서 대한민국 대통령 부인도 두려운 마음으로 역사를 공부하기 바란다. 시민에 대한 예의이고 자신을 지키는 일이다. 〈방콕특파원·국제분쟁 전문기자〉윤석열 대통령 부인 김건희 여사가 지난 13일(현지시각) 폴란드 바르샤바의 영빈관인 벨베데르궁에서 안제이 두다 폴란드 대통령의 부인 아가타 코른하우저 두다 여사에게 바이바이 플라스틱 에코백과 부산엑스포 키링을 선물하고 있다. 연합뉴스리투아니아 매체 '주모네스'는 지난 12일 윤석열 대통령의 배우자 김건희 여사가 리투아니아 수도 빌뉴스의 한 옷가게를 방문했다고 보도했다. 〈주모네스 홈페이지 캡처〉
2023.07.19
[대구의 뿌리, 문화 예술 중심지 달성 .10·<끝>] 최재훈 달성군수 인터뷰
대구 달성군이 문화예술 도시로 변모해 가는 과정을 담은 '대구의 뿌리, 문화예술 중심지 달성' 시리즈가 대단원의 막을 내린다. 이번 시리즈는 달성이 지닌 역사·문화 유산의 가치를 재조명하고, 지역 문화예술의 독창성 등에 대해 상세히 다뤘다. 또 여러 문화예술 공간을 직접 둘러보고, 나아가 달성이 꿈꾸는 미래 도시 모습도 소개했다. 연재를 마무리하며 최재훈 달성군수를 직접 만나 문화예술 도시 달성의 현주소와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해 들어봤다.달성, 대구의 문화·예술·사상 관문천혜자원·문화자산 충분히 활용해달성만의 도시 브랜드 만들어갈 것법정 문화도시는 주민 노력 결과물권역별 발전·세대간 소통 이뤄지면인구유입 늘고 문화향유 기회 확대국립근대미술관 최적 입지 공감대지역 정치권과 협력해 반드시 유치▶이번 시리즈를 간략하게 평가한다면."달성은 낙동강 물줄기를 따라 예부터 새로운 문물의 통로이자 문화예술의 중심지 역할을 수행해왔다. 이런 역사적 사실을 비중 있게 다루고, 권역별 문화예술자원과 연결지어 연재한 점이 인상 깊었다. 이번 시리즈는 지역의 문화·예술 자산을 널리 알리고, 달성이 문화예술 도시로 부각하는 데 큰 역할을 했다고 본다. 아울러 군민에게도 자긍심을 심어주는 계기가 되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대구 기초단체 중 유일하게 법정 문화도시로 지정된 배경은."앞서 말했듯이 달성은 수운 교통의 요지이자 대구로 통하는 관문 역할을 해왔다. 때문에 고려·조선 시대부터 영남권 문화·사상·예술의 중심지로 오랫동안 기능했다. 근대에 들어서도 사과나무, 피아노 등 서양 문물과 사상의 통로 역할을 했고, 6·25전쟁 직후에는 전국 팔도에서 모여든 피란민이 정착하며 다양한 문화·예술 교류가 이뤄졌다. 이 같은 역사적 배경에 더해 달성대구현대미술제·100대 피아노 콘서트 등 지역만의 독특한 문화를 계승·발전시키는 작업이 이뤄지고 있으며, 무엇보다 문화도시를 갈망하는 주민들의 노력이 뒷받침됐기에 (법정 문화도시) 지정이 가능했다. 주민들은 그동안 다양한 커뮤니티를 통해 문화·교육 공유 활동을 벌이며 문화도시 선정에 기여했고 마을과 마을, 사람과 사람을 연결하기 위한 다양한 노력을 해오고 있다."▶달성군이 지향하는 문화도시란 구체적으로 어떤 것인가."달성은 다양한 계층이 함께할 수 있는 '누구에게나 호혜로운 도시'가 되기 위한 발전 방안을 마련하고 있다. 이를 통해 '지방 소멸'이라는 시대적 문제를 문화의 힘으로 극복하는 도시로 성장해 나갈 것이다. 보다 구체적으론 낙동강과 습지, 비슬산 등 천혜의 자연환경은 물론 산업·인구적 특성, 각종 문화자원을 충분히 활용해 달성만의 도시 브랜드를 구축할 계획이다. 또 △지형·생활권의 특성을 반영한 권역별 활동 지원 △시민활동 전문가 양성 △예술가 정주 환경 확대를 위한 환경 조성 △시민의제 발굴 및 반영을 위한 공모사업 등도 추진하고 있다." ▶문화도시 사업을 통해 기대하는 효과가 있다면."우선 주민자치의 강화를 들 수 있다. 문화도시 조성 사업을 통해 주민 스스로 지역 문제 등에 대해 진단하고 보완책을 찾는 행위 자체가 지방자치의 주체로 거듭나는 과정이다. 지역 주민과 외부 노동자, 구도심과 신도심, 젊은 세대와 기성 세대 등이 서로 소통하며 자연스레 융화가 이뤄질 것으로 기대한다. 더불어 지역 유·무형 문화재, 지리적·환경적 자산을 토대로 한 문화적 가치를 재발견함으로써 인구 유입이 늘어나고, 주민들의 문화 향유 기회도 확대될 것으로 보인다. 또 지역 내 4개 권역의 균형 발전과 생활권·권역별 특화 문화에 기반을 둔 다양한 문화 플랫폼·프로그램을 통해 지역 문화 공동체도 크게 활성화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기존 역사·문화·관광 자산과 문화도시 사업의 연계 방안은."옛 화원운전면허시험장을 2027년까지 달성문화도시 플랫폼 '들락날락'으로 만들어 문화도시 조성을 위한 거점시설로 활용할 계획이다. 또 선사시대부터 근대까지 달성의 도시 발현을 확인할 수 있는 광범위한 자료를 발굴·연구·보존해 도시 정체성을 재정립하는 사업도 추진한다. 확보한 데이터는 도시연구, 문화콘텐츠 제작, 관광자원화 등에 활용할 생각이다. 달성 100대 피아노 콘서트를 한 단계 발전시켜 문화적으로 소외된 지역을 찾아가는 형태의 예술 산책 피아노 콘서트도 계획하고 있다. 또 지역 어린이와 청소년의 문화 현장 탐사활동을 장려하는 '쫑긋탐사대', 한강 정구 선생의 학문적 발자취를 따라 여행하는 '한강로드 탐방프로그램' 등도 계획하고 있다."▶도시의 비전을 문화·예술 분야에서 찾게 된 계기가 있나."그 어느 때보다 문화예술의 중요성이 강조되고 있는 지금이다. 달성은 문화·예술·관광 분야에서 뛰어난 강점과 차별성을 갖고 있다. 금호강과 낙동강, 달성습지 등 아름다운 생태 환경을 비롯해 도동서원, 녹동서원, 육신사 등 다양한 역사 문화 자원을 보유하고 있는 데다 달성대구현대미술제, 달성 100대 피아노와 같은 고유한 문화 콘텐츠까지 갖추고 있다. 이 같은 자원들을 바탕으로 달성이 세계 속 문화예술도시로 성장한다면 지역 경제 활성화는 물론 살기 좋은 도시, 지속 가능한 성장도 현실화될 수 있다. 이번 법정 문화도시 지정을 발판 삼아 앞으로도 주민들이 편안히 즐길 수 있는 복합문화공간, 문화쉼터 조성 등을 지속 추진해 군정 목표인 '예술의 향기가 흐르는 문화관광도시'에 한 걸음 더 가까워질 수 있는 기회로 삼고자 한다."▶국립근대미술관 건립도 가시화되고 있는데."민선 8기 선거공약으로 달성군 국립근대미술관 유치를 처음으로 제시했다. 이후 지난 1년간 노력으로 대구시의 국립근대미술관 건립 부지 변경(옛 경북도청→대구교도소)이라는 성과를 얻었고, 대구교도소 후적지가 미술관 건립의 최적지라는 지역 사회 공감대도 이뤄냈다. 문화·예술계, 학계·언론 등 지역의 많은 기관과 단체들이 국립근대미술관 유치의 절박함에 공감하고, 대구교도소 후적지 개발에 많은 기대와 관심으로 힘을 모았기에 부지 변경이 가능했다고 생각한다."▶국립문화시설 최종 유치 성사를 위해 남은 과제와 앞으로 계획은."올해 하반기 건축 심포지엄을 개최해 다양한 전문가, 이해 관계자들과 공공건축의 방향성과 도시재생의 비전을 공유하고 논의하는 시간을 가질 예정이다. 또 국립근대미술관 유치와 더불어 대구교도소 후적지의 본격적 개발 전까지 활용가능한 관광 콘텐츠 방안 마련을 위해 관련 용역을 시행 중에 있다. 그중 하나가 (가칭)달성국제미술제다. 국제미술제가 국립근대미술관의 유치 기념행사가 될 수 있도록 준비하겠다. 대구교도소 후적지 개발을 위한 선제적 대응은 지역 슬럼화를 예방하는 동시에 공간의 매력을 대내외적으로 홍보하기 위해서다. 앞으로 국립근대미술관 건립 부지가 달성군으로 최종 결정되도록 지역 정치권과 협력·연대를 강화해 군민과의 약속을 반드시 이뤄내겠다. 또 유치가 확정된다면 국립문화시설(국립근대미술관·국립뮤지컬콤플렉스)이 달성군의 성장을 견인하는 초석이 될 수 있도록 온 힘을 다할 것이다. 달성이 대구는 물론 대한민국 대표 도시에서 한 발 더 나아가 세계적 문화예술도시가 될 수 있다는 확신을 갖고 나아가겠다." 대담=박종진〈영남일보 부설 한국스토리텔링연구원장〉 정리=김일우〈영남일보 부설 한국스토리텔링연구 연구위원〉 사진=박관영기자 zone5@yeongnam.com영남일보가 지난 4월18일부터 연재한 '대구의 뿌리, 문화예술 중심지 달성' 시리즈의 주요 지면들.
2023.07.18
[주말&여행] 경북 구미 금오산, 복고풍 맵시의 빨간 캐빈…요새 같은 산세 속 기립한 절벽과 마주
장난감처럼 예쁜 케이블카가 운무로 희미해진 산정으로부터 녹음을 헤치며 능청스러울 만큼 유유히 다가온다. 복고적인 맵시의 빨간 캐빈은 오래된 모던보이 같은 모습이다. 그는 덜컹 소리를 내며 몸을 가볍게 두어 번 흔들더니 폼 나게 선다. 구미 금오산의 케이블카는 1974년 9월에 운행을 시작했다는데 서글픈 쇳기 하나 드러난 곳 없이 반짝이는 얼굴이다. 캐빈은 다시 한번 덜컹 소리를 내며 하늘로 오르기 시작한다. 자유로우면서도 고립적이고 정복당하면서도 의기양양하고 의연하면서도 두려움에 몸을 떤다. 케이블카서 내리면 해운사 천왕문큰 은혜의 골짜기 대혜골 대혜폭포해발 400m 선녀가 목욕하고 간 욕담낭떠러지 암벽 쇠줄 잡고 간 도선굴차가운 대기가 싸~악 하고 몸 스쳐해운사 약사여래불 곁에 작은 석상유래는 알 수 없지만 등신불 떠올라 ◆케이블카 타고 설렁설렁계곡이 내려다보인다. 금오산의 정상부 분지에서 산 아래로 이어지는 저 계곡을 금오동천이라 부른다. 동천이란 산속의 골짜기가 크고 깊다는 뜻이다. 크고 깊은 금오동천은 곧 숲에 가려진다. 금오산성 외성의 대혜문 위를 날아간다. 내성은 정상부 분지를 둘러싸고 있었다. 고려 때부터 있었다고 전해지는데 임진왜란 때 급하게 보수해 임란 후반기와 정유재란 때 지대한 역할을 했다고 한다. 외성은 이후 인조 때 쌓았다. 대혜문 벽체가 갓 지은 듯 깨끗해 보인다. 성문의 홍예 속으로 사라지는 까만 점들은 등산객들이다. 그들은 성안의 축축한 산길을 걸으며 난쟁이 바위손이나 고사리로 뒤덮인 오래된 돌들을 볼 수 있을 것이다. 숲의 우듬지 위를 날아간다. 그들은 이 신기루와 같은 매혹의 찰나를 가지지 못한다. 안개 너머로 푸르스름하게 기립한 절벽이 보인다. 금오산은 높이가 977m인데 해발 700m 부근부터 급경사와 절벽으로 솟구쳤다가 꼭대기에서 평탄해진다. 산세가 아예 요새다. 고려 때는 산세의 아름다움이 중국의 오악 가운데 하나인 '숭산'에 비겨 손색이 없다 하여 '남숭산'이라 불렀다고 한다. 소림사가 있는 그 '숭산'이다. 금오산이 된 데에는 여러 전설이 있다. 황금빛 까마귀가 날았다고도 하고 빛을 내는 새를 따라가 보니 이 산에서 자취를 감추었다고도 한다. 금오(金烏)는 태양 속에 사는 세 발 달린 상상의 새 삼족조(三足鳥)로 그 자체로 태양이나 해의 정기를 상징한다. 그만큼 이 산이 명산이라는 뜻일 게다. 금오산의 절벽을 태벽(苔壁)이라고 부른다. 이끼 벽. 그래서 여름에는 한기가 찬다. 도처의 이 희부윰한 공기는 태벽의 숨일지도 모르겠다. 절벽과 가까워졌다는 것은 도착이 멀지 않았다는 뜻이다. 케이블카의 길이는 805m 정도다. 소요시간은 6분30초. ◆금오산 대혜폭포케이블카에서 내리면 가장 먼저 해운사의 천왕문이 보인다. 바로 눈앞에 버티고 서 있어서 마치 일주문을 금방 통과한 기분이 든다. 그러나 그보다 먼저 물소리가 들린다. 맑고 의로운 빗소리처럼 들려오는 계류의 소리다. 해운사를 앞에 두고 옆길로 샌다. 두 노신사가 두런두런 환담을 나누며 계곡을 오른다. 등이 젖은 외로운 등산객이 재빨리 앞질러 나간다. 슬리퍼를 아무렇게나 신은 소년들이 조잘대며 떼 지어 내려간다. 약 10분쯤 올랐을까, 하늘이 동그랗게 열리면서 물소리가 커진다. 뇌가 광광 울린다. 폭포다. 이 폭포는 금오동천의 가운데 얼굴이다. 물은 금오산 정상 부근의 분지에서 시작되어 계곡을 따라 흐르다 해발 400m 지점에서 27m 수직으로 떨어져 폭포를 이룬다. 다시 아래로 흘러 남통천이 되고 금오산저수지에 모였다가 다시 금오천으로 흘러 낙동강과 합류한다. 이 긴 물줄기가 구미의 유일한 수자원이라 한다. 그래서 금오동천의 다른 이름은 큰 은혜의 골짜기, 대혜골이고 폭포는 대혜폭포다. 외성문의 이름이 대혜문인 것도 여기에서 비롯된다. 치솟은 벼랑 끝에서 물은 포물선을 그리며 떨어진다. 수량이 많을 땐 그 위력이 대단하다는 폭포는 그 물소리가 금오산을 울린다 하여 명금폭포라 불리기도 한다. 폭포 옆 암벽에 욕담이라는 글자가 새겨져 있다. 폭포 아래에 형성된 연못의 이름이다. 하늘에서 선녀가 내려와 목욕하는 곳이라 해서 욕담 또는 선녀탕이다. 사람들은 저마다 폭포 주변의 바위 하나씩을 차지하고 앉았다. 조선 인조 때의 학자 여헌 장현광과 그의 문도들이 연중행사처럼 폭포를 찾아 목욕을 하고 시를 지으며 즐겼다는데 지금의 모습도 그에 못지않다 장담할 수 있다. ◆벼랑의 도선굴, 벼랑 아래 해운사폭포에서 오른쪽으로 산길을 조금 오르면 산의 옆구리를 아슬아슬하게 붙잡고 오르는 벼랑길이 시작된다. 쇳덩어리처럼 카랑한 암벽의 길, 한사람이 겨우 지나갈 수 있는 좁고 험한 길, 시야가 거침없이 트이고 발밑이 천 길 낭떠러지인 길이 도선굴로 향한다. 신라 말 풍수의 대가인 도선이 참선하여 득도한 곳이라 하여 도선굴인데 고려시대에는 큰 구멍이라는 뜻의 대혈로 불렸다 전해진다. 굴이 가까워지면 기온이 변한다. 차가운 대기가 싸악 하고 몸을 스치면 도선굴이다. 그리 깊지 않다. 임진왜란 때 수백 명이 이곳으로 피란을 왔다고 한다. 칡이나 등 넝쿨을 부여잡고 기어올랐다고 한다. 도선굴 벽 위에 명문이 새겨진 판석이 붙어 있다. 1937년 봄에 암벽의 돌을 깎고 쇠줄을 연결해 길을 만들었다는 내용이다. 내가 오늘 걸은 벼랑길이 일제가 중일전쟁을 일으키고 민족말살정책을 심화시켜 나가던 시대에 만들어진 셈이다. 해운사 지붕이 내려다보인다. 옛날에는 조금 더 아래쪽에 대혈사라는 절이 있었다고 한다. 그곳에서 고려 말 야은 길재가 은거하며 대나무를 심었다는 이야기가 전해온다. 대혈사는 조선시대에 사라졌고 1925년에 철화라는 스님이 지금 자리에 절을 짓고 해운사라 했다 한다. 일제강점기 금오산에서는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대웅전 뒤쪽에 약사여래불이 모셔져 있는데 그 곁에 자그마한 석상 하나가 있다. 웃는 듯, 무표정한 듯, 알 수 없는 표정으로 정면을 바라보며 두 손을 꼭 모은 석상이다. 유래도 알 수 없는데 자꾸만 등신불이 떠오르는 것은 왜일까. 도선굴에서 바라보는 전망이 대단히 장대하다. 해운사의 지붕 선에서부터 깊은 계곡으로 모이는 우람한 산세를 따라 저 멀리 구미 시내까지 거침없이 열린다. 세상을 정면으로 대하고 있다는 이 차갑고 명징한 정신은 또 어디에서 연유하는 것인지. 글·사진=류혜숙 여행칼럼니스트 archigoom@naver.com◇여행 Tip 경부고속도로 구미IC로 나간다. IC네거리에서 좌회전해 직진, 금오산네거리에서 좌회전해 계속 직진하면 된다. 구미 금오산도립공원 매표소를 지나 조금 올라가면 케이블카 승강장이 나온다. 해운사 앞까지 케이블카가 운행되고 있다. 주차료는 승용차 1천500원, 케이블카는 13세 이상 대인 왕복 1만1천원, 편도는 6천원. 소인 왕복 6천원, 편도 4천원이다. 오전 9시부터 15분 단위로 출발한다.구미 금오산의 케이블카는 1974년 9월에 운행을 시작했다. 길이는 805m 정도, 소요시간은 6분30초로 해운사 바로 앞까지 오른다.대혜폭포. 금오산 정상부의 분지에서 시작된 물은 계곡을 따라 흐르다 해발 400m 지점에서 27m 수직으로 떨어져 폭포를 이룬다.도선굴로 가는 벼랑길. 판석의 명문에 따르면 1937년 봄에 암벽의 돌을 깎고 쇠줄을 연결해 만든 길이다.신라 말 도선이 득도한 곳이라 하여 도선굴이라 부르며 고려시대에는 대혈로 불렸다. 임진왜란 때 수백 명이 이곳으로 피란을 왔다고 한다.해운사 대웅전 뒤쪽에 약사여래불이 모셔져 있는데 그 곁에 자그마한 석상 하나가 있다. 그는 알 수 없는 표정으로 정면을 바라보며 두 손을 꼭 모으고 있다.
2023.07.14
[박한우의 웹3.0과 밈코인] <14> 웹3와 블록체인의 기술적 비즈니스 모델과 유형별 사례들
산업동향연구소의 보고서 '웹 3.0 기술·산업 이슈 동향과 관련 블록체인 분야 생태계 동향 및 기술 발전 전망'에 따르면 블록체인과 웹3에 대한 민간 분야의 투자, 개발, 그리고 활동이 점차 확대되고 있다. 예컨대, 글로벌 브랜드들은 제품의 토큰화를 통해 소비자가 대기업의 콘텐츠를 매개로 개인적으로 수익화할 수 있는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을 찾기 위해 노력중이다. 왜냐하면 웹3에서 개인은 공통 관심사와 목표를 공유하는 다른 사람들과 다오(DAO)를 구성하여 과거보다 더 분산적인 비즈니스 경험이 가능해졌기 때문이다. 수요자-공급자로 양분된 전통적 모델에 웹3가 도입되면서, 수요자(소비자)가 사용자(이용자)로 나아가 참여자(소유자)라는 개념이 생겨나고 새로운 디지털 비전이 만들어지고 있다. 웹1에서 사람들은 홈페이지 운영자가 만든 정보와 콘텐츠를 탐색하고 소비하는 존재였다. 소셜 웹 즉 웹2에서 사람들이 데이터의 직간접적 생산자가 되었지만, 결과적으로 빅테크 기업이 만든 알고리즘 기반 서비스에 지배받는 피동적 존재가 되었다. 웹1과 웹2의 단점을 극복하려는 모델이 바로 웹3이다. 이런 맥락에서, 나브딥 야다브가 분류한 블록체인 기반 웹3 기술의 비즈니스 모델을 보면 제반 환경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된다.(https://navdeepyadav.medium.com/6-amazing-blockchain-business-models-you-must-know-with-examples-8eb0eae54db5)기술적 유형이 서로 완전히 배타적으로 구분되지 않고 중첩적 영역이 존재하지만, 그는 (1) 유틸리티 토큰 비즈니스 모델 (2) 네트워크 요금 (3) 서비스형 블록체인 비즈니스 모델(BaaS) (4) P2P 블록체인 비즈니스 모델 (5) 블록체인 노드 기반 애그리게이터 등으로 접근했다. 이 유형을 마르크 샤르벨이 제시하는 웹3로의 패러다임 전환 사례와 연결하여 검토해 보자.(https://blog.startupstash.com/five-shifts-from-web2-to-web3-b29d167dba68) 첫째 토큰 경제 모델은 블록체인이 합의가 필요하기에 채굴자, 검증자, 보유자 등에게 보상하는 간단한 유형이다. 사업 초기에 토큰을 저렴하게 구매하여 시세 차익을 보거나, 장기간 예치하여 이자 소득을 받는 경우도 여기에 속한다. 레이어1 분야의 솔라나와 에이다는 스테이킹(staking) 물량이 약 50~70%, 이더리움은 10% 내외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따라서 시장에서 유통되는 토큰의 총량이 줄어들면, 토큰 보유만으로 이자 수익을 얻을 수 있다.두 번째인 네트워크 요금은 후술할 비즈니스 모델이 원활히 수행되기 위한 근본적 영역이다. 콘텐츠 배포와 디앱(dAPP) 서비스가 운영될 수 있는 블록화된 공간을 제공하는 모델이다. 데이터와 서비스가 스마트계약을 통해서 활성화되는 금전적 대가로 가스비(gas fee)를 청구하는 비즈니스다. 이더리움이 대표 사례이다. 보편적 운영체제로 자리 잡은 마이크로소프트 윈도우와 유사하게, 이더리움은 전 세계인이 안전하게 사용할 수 있는 네트워크 컴퓨터 환경을 꿈꾼다. 유명한 콘서트와 스포츠 경기의 입장권은 첫 구입자가 반드시 관객이 되지 않는다. 유명세에 따라 더 높은 비용을 받고 재판매된다. 그러나 아날로그 시장에서 티켓의 진짜 여부인 투명성과 재판매 횟수를 제한하는 것이 불가능하다. 그렇지만 스마트 계약을 통해서 티켓 2차 판매 가격을 프로그래밍하거나 재판매 횟수를 제한할 수 있다. 이더리움 가스비가 들겠지만, 이벤트 업체는 종이 판매를 중지하고 NFT 티켓으로 추적성과 통제력을 획득할 수 있는 좋은 기회를 갖는 것이다.그림은 마르크 샤르벨이 제시한 것으로 Ticketmaster와 Viagogo 등과 같은 이벤트와 티케팅 분야 글로벌 기업의 현재 비즈니스 모델이, NFT 기반 웹3를 통해서 재판매 티켓의 투명성과 신뢰성을 확보할 수 있는 가능성을 보여준다.실제로, 리버풀과 레알 마드리드 간의 2022 UEFA 챔피언스 리그 결승전에서 가짜 티켓이 꽤 나오면서 문제가 발생했다. 그림은 뉴욕 타임즈의 관련 보도이다.(https://www.nytimes.com/2022/06/01/sports/soccer/champions-league-final-tickets.html )셋째, BaaS는 Blockchain as a Service의 약자이다. 이것은 정보통신의 전통적 영역과 가깝다. 아마존웹서비스(AWS)와 같은 서비스 생태계 구축을 통하여 웹3의 전반적 운영을 지원하는 것이다. 예컨대, 레이어2의 대표적 서비스로서 폴리곤 등이 추진하는 BaaS가 사례이다. 웹3 개발에서 저장, 배포에 이르기까지 블록체인과 관련된 모든 것을 다루는 제품과 서비스를 패키지 형태로 제공하는 모델이다.블록체인 기반 웹3에서 일어날 수 있는 가장 큰 변화 가운데 하나는 상호 운용성이다. 웹2에서 유기적으로 실현하기 힘들었던 부분이 서로 다른 서비스 간의 전송 여부이다. 애플 아이튠즈에서 스포티파이 플레이리스트를 사용하거나 아마존 쇼핑 카트를 이마트로 전송하기 힘들었다. 그렇지만 디지털 지갑을 통하여 NFT 자산을 경계를 넘어 보낼 수 있다. 그리고 BaaS 공급자가 서로 다른 서비스 간의 거래를 가능하게 만든다.넷째, P2P(Peer-to-Peer) 모델은 구성원이 중개자 없이 서로 직접 상호작용할 수 있도록 지원한다. 기존의 서버-클라이언트 및 HTTP가 아닌 IPFS와 같은 방식이 사례이다. IPFS(InterPlanetary File System)는 과거에 크게 유행한 음악 및 영화 공유 서비스인 냅스터와 토렌트 등과 유사하다. HTTP 방식이 원하는 데이터를 특정한 한 개의 주소에서 한꺼번에 가져온다면, IPFS는 암호화된 값을 이용하여 다수의 컴퓨터에 분산된 파일을 불러오는 모델이다. 다섯 번째인 애그리게이터(aggregator)는 앞서 언급한 세 번째, 네 번째 모델을 혼합한 것에 가깝다. 블록체인이 작동하기 위해 필요한 노드(node)를 비롯한 여러 구성요소를 자동으로 호출 가능한 API(Application Programming Interface) 서비스 등을 포함한다. 현재, Alchemy는 다양한 블록체인을 위한 노드 공급자의 역할을 맡으며 웹3 관련 소프트웨어의 모니터링, 분석, 경고, 디버깅 및 로그인 도구를 제공하는 비즈니스를 하고 있다. 그림은 나브딥 야다브가 제시한 Alchemy 사례이다.블록체인 비즈니스 모델은 탈집중화에 있다. 분산된 네트워크이지만 최소 3개 이상의 노드들 사이의 합의를 통해서 신뢰성을 확보하고 보안성을 높이는 것이다. 그리고 웹3 운영자는 사람들에게 데이터 주권을 돌려주고 나아가, 보상체계를 확립하는 것이다.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을 NFT로 만들어서 투명성과 통제성을 동시에 높이자는 것은 블록체인과 웹3 환경에서 덤으로 주어지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따라서 글로벌 기업들이 기존의 아날로그와 레거시(legacy) 웹에 비교해서 여러 전략적 이점이 있는 웹3와 블록체인을 적극적으로 채택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 <영남대 교수·사이버감성연구소 소장, nft-korea.eth>박한우 교수는?박한우 영남대 교수는 대구에서 초중고를 보내고 한국외국어대(학사), 서울대(석사), 미국뉴욕주립대(SUNY-Buffalo)(박사)를 졸업했다. 네덜란드 왕립아카데미(NIWI-KNAW)와 옥스퍼드인터넷연구원(OII) 등 글로벌 연구기관에서 근무했다. 영남대 부임 이후에 WCU웹보메트릭스사업단, 세계트리플헬릭스미래전략학회, 사이버감성연구소 등을 주도했다.물리적 경계 속에 한정되어 있던 인간관계와 시대이슈가 온라인을 통해서 그 경계를 자유롭게 넘나들면서, 기존 법칙에 도전하는 과정을 탐구하는 빅데이터 네트워크 방법의 권위자로 인정받고 있다.데이터 기반 주요 연구방법론인 과학계량학(scientometrics), 하이퍼링크분석(hyperlink network analysis), 웹계량학(webometrics), 대안계량학(altmetrics), 트리플헬릭스(triple helix) 등을 국내에 소개하고 선도해 왔다. 하이퍼링크 연결망은 INSNA(International Network for Social Network Analysis) Connections가 출판한 가장 영향력 있는 연구 목록에 포함되기도 했다.SCImago-EPI Award, ASIST Social Media Award 등 국제 저명 학술상을 공동으로 수상했다. 저명한 국제학술지인 Quality & Quantity, Journal of Contemporary Eastern Asia 편집위원장(EIC)을 현재 맡고 있다. 최근에는 Scienceasset.com의 웹3 국제학술지 ROSA Journal의 초대 편집위원장으로 위촉되었다.사회연결망과 빅데이터를 통해서 데이터와 정보의 흐름 및 지식생산과 혁신체제 관련 이슈를 계량적으로 분석하는 전문가로서 SSCI급 저널에 100편 이상의 논문을 출판했고, 최근 2023년 5월에 국제커뮤니케이션학회(International Communication Association)가 선정하는 석학회원(ICA Fellow)으로 뽑혔다.글로벌 연구성과에 못지않게, 이미 오래 전부터 수도권과 지방간 격차가 심해지면 우리나라가 지속가능하기 어렵다고 지적하는 등 국내외 이슈에 대한 폭넓은 관심과 창의적 지식을 보이고 있다. 디지털 기술과 데이터 활용에 관한 중앙정부 및 지자체 자문위원으로서 이 분야에서 소외계층의 삶의 개선과 지역발전에 노력하고 있다. 특히 빅데이터로 보는 우리 지역 세상을 탐구하자는 방향에서 '빅로컬 빅펄스(Big Local Big Pulse)' 랩을 운영하면서, 데이터 기반한 이슈탐지와 융합학문의 새로운 방향을 제시하고 있다.박한우 영남대 교수
2023.07.13
[별 따라 이야기 따라 영양에 취하다 .2] 문향(文鄕)의 고장 영양…조지훈·오일도·이문열…한국문학의 별 '반짝반짝'
조지훈. 그는 '승무'의 시인이다. 시의 순수성을 지키려 했던 청록파의 한 사람이고, 지식인으로서의 사회적 책임에 주저함이 없는 '지조론'의 선비였다. 오일도. 그는 낭만과 애상, 우수와 비감의 서정 시인이다. 무엇보다도 우리나라 최초의 시 전문지 '시원'을 창간해 조선 문단의 시인들에게 작품 발표의 장을 펼쳐주고 후배들에게는 문학의 길을 열어주었던 영양문학의 맏형이었다. 이문열. 그는 한국 현대소설의 대표적인 작가다. 작품이 발표될 때마다 많은 찬사와 비판을 동시에 받고 있지만, 흔들림 없는 이 시대의 대표 작가 중 한 사람이다. 이들의 고향은 영양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산이 우뚝하고 물이 유장하며 땅이 맑고 공기가 투명한 이 땅을 문향(文鄕)이라 부른다.조지훈1920년 일월 주실마을서 태어나불의와 부정에 맞선 지조의 선비1939년 '승무' 등 발표 시인의 길◆조지훈조지훈은 1920년 12월3일 영양 일월의 주곡리, 주실마을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제헌 및 2대 국회의원이자 한의학자인 해산(海山) 조헌영(趙憲泳)이며 어머니는 전주류씨(全州柳氏) 류노미(柳魯尾)다. 본명은 동탁(東卓), 지훈은 그의 아호다. 지훈은 어린 시절 할아버지로부터 한학과 역사 등을 배웠고 '피터 팬' '행복한 왕자' '파랑새' 등과 같은 동화도 읽었다. 9세 무렵부터 글을 썼으며, 시인이 되고자 했던 형 세림(世林)의 영향으로 자연스럽게 시를 접했다. 11세 때에는 형과 함께 마을 소년들의 모임인 '꽃탑회'를 조직해 동인지 '꽃탑'을 펴내기도 했다. 1937년 17세가 된 지훈은 형과 함께 상경해 아버지가 인사동에 설립한 동양의약사 겸 일월서방에서 지냈다. 이곳에서 아버지의 친구인 시인 오일도를 만났다고 한다. 그가 당시 서대문감옥에서 옥사한 일송 김동삼의 장례식에 참석하기 위해 한용운을 찾아간 것도 이때다. 한용운이 김동삼의 유해를 한강에 뿌리며 서럽게 울 때, 홍안의 문학청년 바로 조지훈이 그 옆에 나란히 서서 울었다.그해에 형 세림이 세상을 떠났다. 지훈은 원산에서 평양까지 걸어서 여행했다. 그 긴 길의 걸음걸음은 감당할 수 없는 슬픔을 떨구어 내는 길이었다. 그리고 이듬해 시인 오일도와 함께 형의 유고시집인 '세림시집(世林詩集)'을 펴냈다. 조지훈은 형을 위해 더욱 습작에 열중했다. 1939년에는 혜화전문학교(동국대)에 입학했으며 오일도가 창간한 '시원'의 동인으로 활동했다. 그리고 같은 해 봄 순수문예지 '문장(文章)'에 '고풍의상(古風衣裳)'이 추천, 이어 12월에 '승무(僧舞)', 1940년에 '봉황수(鳳凰愁)'를 발표하면서 시인의 길에 들어섰다. 1942년에는 조선어학회 사건에 연루돼 신문을 받고 풀려난 뒤 오대산 월정사에 은거하기도 했다. 그는 일제강점기 동안 친일 문학과 사상 전환의 강요에 한 번도 몸을 굽힌 적 없었다.광복이 되자 그는 우리 손으로 만든 최초의 국어교과서와 국사교과서를 편찬했다. 1948년부터 고려대 교수로 재직한 그는 6·25전쟁 동안에는 종군작가로도 활동했다. 자유당 정권 말기에는 독재에 항거하는 민간단체에서 활동했다. '지조란 것은 순일한 정신을 지키기 위한 불타는 신념이요, 눈물겨운 정성이요, 냉철한 확집이기도 하다. 지조가 없는 지도자는 믿을 수 없고 믿을 수 없는 지도자는 따를 수 없다.' '변절자를 위하여'라는 부제가 붙은 이 글은 1960년 '새벽' 3월호에 실린 그의 '지조론'이다. 어느 정권하에서든 불의와 부정에 맞서는 그의 비평은 추상(秋霜)과 같았다. 그는 항상 사직서를 지니고 다녔다. 그는 지식인으로서의 사회적 책임을 다하는 시대적 양심이었고 이러한 그를 세상은 '마지막 선비' 또는 '지사문인(志士文人)'이라 불렀다. 그는 1968년 5월17일 고혈압으로 토혈한 후 입원했으나 19일 세상을 떠났다. 48세였다. 오일도낭만과 애상·우수의 서정시인1925년 시 '한가람…'으로 등단국내 최초 시 전문지 '시원' 창간◆오일도'빈 가지에 바구니 걸어놓고/ 내 소녀 어디 갔느뇨./… … … … …/ 박사(薄紗)의 아지랑이/ 오늘도 가지 앞에 아른거린다.' 단 5행의 시가 오래 가슴속을 저회한다. 말 줄임표가 흐르는 가운데에 서서 또 얼마나 망연하고 저릿했던지. 오일도가 1935년 8월에 발표한 시 '내 소녀'다. '꿈속같이 아득한 옛날, 오! 나의 사랑아/ 너의 유방(乳房)에서 추방된 지 내 이미 오래라./ 거친 비바람 먼 사막의 길을/ 숨 가쁘게 허덕이며 내 심장은 찢어졌다.' 오일도가 1935년 2월에 발표한 시 '노변(爐邊)의 애가(哀歌)'다. 1930년대는 일제의 민족말살 정책과 식민지 수탈 정책이 강화된 시기다. 1935년에는 한국어 사용 금지가 시작됐다. 바로 이러한 때에 오일도의 애가와 '내 소녀'가 세상에 나왔다.오일도는 1901년 영양읍의 남쪽 반변천 변의 감천마을에서 태어났다. 본명은 희병(熙秉), 일도(一島)는 아호다. 아버지는 오익휴(吳益休), 어머니는 의흥박씨(義興朴氏)로 집안은 아주 넉넉했다고 한다. 그는 8세부터 14세까지 마을의 서당에서 한문을 배웠고 1915년 뒤늦게 영양공립보통학교에 입학해 이른 1918년에 졸업했다. 그리고 전국의 수재들이 모여드는 경성제일고등보통학교에 합격했지만 졸업은 하지 않았다고 한다. 1922년에는 일본 도쿄로 건너가 이듬해 릿쿄대학 철학부에 입학했다. 그는 학업 중인 1925년 '조선문단' 4호에 시 '한가람 백사장에서'로 등단했다. 1929년 대학을 졸업하고 귀국한 그는 덕성여자중고등학교의 전신인 근화학교에서 무보수로 학생들을 가르쳤고 문예동인지 '시문학'과 종합문예지인 '문예월간' 등에 서정시를 발표했다. 1935년 2월, 오일도는 사재를 들여 우리나라 최초의 시 전문지 '시원(詩苑)'을 창간했다. 그는 시원 창간호 편집후기에 이렇게 썼다. "문학은 그 시대의 반영이라면, 문학의 골수(骨髓)인 시는 그 시대의 대표적 울음일 것이다. 그러면 현재 조선의 시인이 무엇을 노래하는가? 이것을 우리는 우리 여러 독자에게 그대로 전하여 주고자 한다." 그는 '시원'을 통해 많은 작품을 세상에 알렸다. '시원'은 1935년 12월, 5호를 끝으로 발행이 중단되었지만 그는 1936년 '을해명시선집' 발행, 1938년에는 '세림시집'을 발간하는 등 시대의 울음을 전하는 일을 멈추지 않았다. 태평양 전쟁의 막바지 즈음 일제의 통제가 더욱 강화되자 그는 낙향해 칩거의 시간을 보냈다. 광복 후 그는 '시원'의 복간을 위해 노력했지만 뜻을 이루지 못했고 우울로 인한 폭음으로 나날을 보내다 1946년 세상을 떠났다. 45세였다. 당대의 문학평론가 김문집이 쓴 오일도에 대한 인상은 언제나 '내 소녀'의 말 줄임표와 동시에 떠오른다. '이 친구는 눈물이 너무 많아서 시를 못 쓴다. 미제라블한 오일도.'이문열한국의 현대소설 대표하는 작가고향 두들마을은 작품·삶의 뿌리소설 발표때마다 찬사·비판 동시에◆이문열이문열은 1948년 5월18일 서울 종로구 청운동에서 태어났다. 본명은 이열(李烈)로 아버지 이원철(李元喆)이 지어준 이름이다. 대학교수이자 공산주의자였던 아버지는 6·25전쟁이 발발하자 월북했다. 그해 그의 어머니는 세 살 갓난아기였던 그를 데리고 고향으로 왔다. 영양 석보면의 두들마을이다. 두들에서의 시간은 길지 않았다. 그의 가족에게는 늘 '빨갱이'라는 딱지가 따라다녔다. 이사와 이사가 거듭됐고 그는 유년시절 전국을 떠돌았다. 이문열의 두 번째 귀향은 열세 살 때다. 밀양중학교를 중퇴한 그는 가족 모두와 함께 고향으로 돌아와 야산을 개간했다. 그리고 시간이 날 때마다 두들을 오르내리며 어머니의 회상 속에 존재하던 고향을 직접 보았다. 이문열은 '그때 처음으로 문중이란 것을 알았고, 자연과의 친화를 경험했으며, 노동과 생산을 이해하게 되었다.'(이우는 세월의 바람소리를 들으며, 1994)고 한다. 그는 1964년 안동고등학교에 진학하면서 다시 고향을 떠났다. 그러나 1년 만에 중퇴하고 한동안 주먹질로 세월을 축내며 떠돌았다. 1968년에는 서울대 사범대학 국어교육과에 입학했지만 2년 만에 그만두고 사법시험에 도전했다. 그의 세 번째 귀향은 이때로 여겨진다. 이문열이 고향을 세심한 눈길로 관찰하게 된 것이 이 시기이며 소설 '그대 다시는 고향에 가지 못하리(1980)'의 소재 대부분을 이때 얻었다고 한다. 그는 시험에 세 번 실패하고, 결혼을 하고, 군대를 다녀온 뒤 1976년 대구로 이사했다. 그리고 1977년 대구 매일신문 신춘문예에 단편 '나자레를 아십니까'로 입선, 1979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중편 '새하곡'이 당선되어 중앙 문단에 들어섰다. 그리고 잇따라 '사람의 아들(1979)' '사라진 것들을 위하여(1979)' '그해 겨울(1979)' '황제를 위하여(1980~1982)' '영웅시대(1982~1984),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1987)' '추락하는 것은 날개가 있다(1988)' 등을 발표했다. 그의 왕성한 작품 활동은 1990년대와 2000년대에도 변함없이 이어졌다. 이문열의 작업실 겸 주거공간은 경기도 이천의 '부악문원(負岳文院)'이다. 2001년 그는 고향 두들에 사택이자 문학 사랑방인 '광산문학연구소'를 짓고 장서 2만여 권을 내려보냈다. '나의 뿌리는 고향으로 상징되는 전통적인 집단의식에 자리 잡고 있었고, 의식도 강한 전통 지향성을 유지했던 것으로 보인다. 내 삶이 외견상 뿌리 없이 보이고 때로는 극단의 일탈을 보일 때도 나는 그것들을 언제나 한시적이고 예외적인 상황으로만 받아들여 왔다.'(이우는 세월의 바람소리를 들으며) 고향 두들은 그의 뿌리였다. 귀향을 꿈꾸며 지은 '광산문학연구소'는 지난해 7월 원인을 알 수 없는 화재로 불탔다. 전소된 고향집 앞에 선 그의 마음은 상상도 할 수 없다. 그는 요즘 '영웅시대'의 개정판 출간을 위해 작업 중이라 한다. 작품이 발표될 때마다 많은 찬사와 비판을 동시에 받고 있지만, 이문열은 가장 많은 독자층을 가지고 있는 이 시대의 대표 작가 중 한 사람이다. 그는 오늘의 작가상, 동인문학상, 이상문학상, 현대문학상, 호암예술상 등을 수상했으며, 2015년 은관문화훈장을 수상했다. 그의 작품은 현재 미국, 프랑스 등 전 세계 20여 개국 15개 언어로 번역, 출간되고 있다. 글=류혜숙<작가·영남일보 부설 한국스토리텔링연구원 연구위원>사진=박관영기자 zone5@yeongnam.com▨참고=영양군.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현대시연구, 국문학연구총서, 정음사, 1981. 김종균 외, 조지훈연구, 고려대학교출판부, 1978. 김용성, 한국현대문학사탐방, 국민서관, 1973. 한국잡지백년.영양 일월면 주실마을에는 조지훈을 기리기 위한 지훈문학관이 조성돼 있다.지훈문학관 뒤쪽 산책길 길목에 위치한 지훈 시(詩)공원의 모습.오일도가 생활했던 생가. 대문간을 중심으로 왼쪽에 글방, 오른쪽에 사랑채가 위치한다.오일도 시공원 입구에 들어서면 책을 펼쳐 들고 앉아있는 시인과 마주한다.이문열이 유년 시절을 보낸 석간고택. 두들마을 동쪽에 자리 잡고 있다.영양 두들마을 북카페인 '두들 책사랑'에 이문열의 작품이 가지런히 정리돼 있다.
'장기화 된 법정다툼' 대구미술관장 공석 해넘길 수도
올해 상반기 대구 미술계는 유난히 잡음이 끊이지 않았다. 대구미술관은 관장 장기 공석과 소장작품 위작 논란으로 운영에 차질을 빚을 우려가 있고, 대구미술협회는 신임 회장 자리를 두고 구성원 간 법적 다툼을 벌이면서 내홍이 깊어지고 있다.◆대구미술관장 공석 장기화 및 소장품 위작 논란대구미술관장 장기 공석으로 지역민 문화 향유권 침해가 우려된다. 미술 전문가들은 "미술관의 컨트롤 타워인 관장 부재가 장기화 되면서 향후 전시의 질적 하락으로 이어지고 결국 그 피해는 고스란히 시민의 몫으로 돌아갈 것"이라고 지적한다. 대구미술관장 자리는 지난 3월 최은주 전 관장의 사직 이후 현재까지 공석이다. 최 전 관장은 지난해 대구문화예술진흥원(이하 진흥원)이 공모한 8명의 본부장·관장 중 유일하게 연임에 성공했지만, 연임 3개월여 만에 대구를 떠나 서울시립미술관장으로 자리를 옮겼다. 대구미술관장 임용 주체인 진흥원은 지난 3월 대구미술관장 공모에 나섰지만 신임 관장을 임용하지 못했다. 지난 4월 안규식 전 클레이아크 김해미술관장을 신임 관장에 내정했지만 결격사유 조회 과정에서 부적절한 징계기록이 발견됐다며 갑작스럽게 임용을 취소했다.이후 안씨는 "징계이력 소명기회를 주지 않은 진흥원 측의 조치가 부당하다"며 소송에 나섰다. 여기에다 지난달 12일 "안씨를 대구미술관장으로 내정했다 취소한 진흥원의 결정이 무효로 볼 여지가 크다"라는 법원의 결정까지 나오면서 진흥원의 대구미술관장 재공모도 사실상 어려워졌다. 양 측의 소송이 민사소송으로 진행되면서 대구미술관장 공석 사태가 올해를 넘길 것이란 전망까지 나온다.대구미술관 소장품 위작 논란은 현재진행형이다. 위작 의혹은 지난 2월8일 열린 진흥원의 대구시의회 문화복지위원회 업무보고에서 처음 제기됐다. 이에 대구시는 대구미술관 특정감사를 진행했다. 지난 5월15일 '대구미술관 특정감사 중간발표회'에서 김진만의 '매화' 등 3개의 대구미술관 소장작품이 위작이라고 발표했고, 그 여파로 대구미술관의 올해 소장품 수집 일정도 연기됐다. 현재 대구미술관 소장작품 중 140점에 대한 재검증이 진행 중으로 조만간 특정감사 최종 결과가 나올 예정이다. 이러한 가운데 대구미술관 특정감사 결과에 이의를 제기하는 주장이 나오기도 했다. 국립현대미술관 학예실장을 역임한 정준모 미술평론가는 "대구미술관 소장품 중 위작으로 판명 난 긍석(肯石) 김진만(金鎭萬)의 '매화'가 위작이 아니라 같은 아호를 사용하는 조봉진의 진품"이라고 주장했다. 정 평론가는 "인문학적으로 판단하면 될 일을 사법적 관점에서만 바라보는 것 같아 안타깝다"며 대구시의 특정감사 방식에 의문을 표했다.한편, 진흥원 측은 "대구미술관 운영에 신경 쓰고 있어 관장 공석 장기화에 따른 업무 차질은 빚어지지 않을 것"이라는 입장을 밝혔다. ◆대구미술협회장 보궐선거 갈등대구미술협회(이하 대구미협)는 회장 보궐선거 적법성 여부를 두고 구성원 간 법적공방을 벌이고 있다. 대구미협 집행부는 올해초 고(故) 김정기 대구미협 회장의 별세로 지난 3월31일 임원만 참여하는 이사회를 통해 보궐선거를 치렀다. 하지만 일부 대구미협 회원으로 구성된 대구미협정상화추진위원회(이하 대정위)가 보궐선거 방식의 부당함을 지적하며 '이사회 결의 무효소송'을 제기한 상황이다.여기에다 대정위 측이 법원에 제기한 '(대구미협 회장)직무집행정지 및 직무대행자선임 가처분'이 받아들여지면서 보궐선거로 당선된 노인식 회장의 직무집행이 정지됐다. 법원은 한국미술협회가 대구미협에 '총회를 통한 선거를 하라'는 내용의 공문을 보냈지만 이사회를 통한 선거로 회장을 선출했고, 아직 노 회장이 한국미술협회 이사회 인준을 받지 못한 점 등을 이유로 이 같은 결정을 내렸다.이후 법원에 의해 대구미협 회장 직무대행으로 선임된 도병재 부회장이 대구미협을 이끌고 있지만, 지역 미술계 전반의 우려는 가시지 않고 있다. 지역 미술계 인사들은 "대구미협과 지역 미술인들이 참여하는 행사들이 차질을 빚지는 않을까 걱정된다. 하루빨리 보궐선거와 관련한 갈등이 마무리 됐으면 한다"고 입을 모았다. 대구미협 집행부와 대정위 간 갈등은 보궐선거 전부터 불거졌다. 집행부는 선거관리세칙 7조 4항 '임원 중 결원이 생길 경우 이사회에서 보선한다'는 규정에 따라 임원만 참여하는 보궐선거가 합법적이라고 주장했고, 대정위는 "회원 전체가 투표권을 가지는 총회를 통해 선거를 치르는 것이 합법적"이라며 맞서 왔다. 현재로선 법원의 '이사회 결의 무효소송' 판결 내용에 따라 양측의 희비가 엇갈릴 것이란 전망이다. 대행체제의 현 집행부는 '이사회 결의 무효소송' 본안판결 확정 후 보궐선거 일정을 검토하고 진행하는 것이 순리라는 입장을 고수 중이다. 반면, 대정위 측은 총회로 보궐선거를 조속히 치르는 것이 상처를 봉합하는 빠른 길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임훈기자 hoony@yeongnam.com대구미술관 전경.대구문화예술진흥원 제공지난 5월15일 이유실 대구시 감사위원장이 대구미술관 특정감사 중간발표를 진행하고 있다.영남일보 DB
2023.07.12
[경산 뉴 파노라마 .2] 내륙 첨단산업 도시로 성장하는 경산
지금까지 경산의 경제를 이끈 것은 자동차 부품과 전자기기·기계·섬유 산업이었다. 유니콘이나 대기업은 없지만 이들 업종이 지역 경제를 지탱해주면서 도시가 성장할 수 있었다. 앞으로는 그린부품소재, 첨단의료기기 및 메디컬 신소재, 차세대 융복합 기계부품 등이 기존 업종의 자리를 대신할 전망이다. 4차 산업 시대를 맞아 경산시가 산업 체질 개선에 나섰기 때문이다. 경산시는 시민이 행복한 도시로 거듭나기 위한 방안으로 첨단산업 육성을 택했다. 고부가 가치 산업 없이는 지속 가능한 성장이 어려운 데다 도시 경쟁력도 떨어질 수밖에 없다는 판단에서다. 물론 전통 산업을 버리는 것은 아니다. 자동차부품의 고도화 등 오히려 기존 산업과의 연계를 통해 시너지를 극대화할 방침이다. '경산 뉴 파노라마' 2편에서는 경산의 산업 생태계 변화상에 대해 다룬다. 일반산단 꾸준히 확충 성장 밑거름일자리·인구 늘고 정주여건도 개선차부품·기계·섬유가 지역경제 지탱경산시, 첨단업종 확충에도 팔걷어지식산업지구·특화단지 등 조성 중고부가가치 산업 중심 재편 속도전◆경제 성장 이끈 5개 일반산업단지경산시가 지금의 모습을 갖춘 건 1995년 1월 행정구역 개편으로 경산군과 통합하면서다. 경북에서 가장 늦게 시(市)로 승격한 경산은 전체 면적(411.8㎢)도 10개 시 가운데 가장 작은 지역이다. 반면 통합 당시 주민등록 인구 수는 16만4천632명으로 포항(51만167명), 구미(30만2천413명), 경주(28만3천766명), 안동(19만2천522명)에 이어 경북에서 다섯째로 인구가 많은 도시였다. 광역자치단체인 대구와 인접한 위성도시의 특성이 어느 정도 작용한 수치다.이후에도 경산의 인구는 꾸준히 늘어 매년 인구 그래프가 상승곡선을 그렸고, 2018년에는 26만명을 넘어섰다. 20여 년간 인구가 10만명 이상 늘어난 것이다. 현재 경산(26만7천305명)은 인구 규모로만 따지면 포항(49만6천650명), 구미(40만8천110명)에 이은 경북 3대 도시로 성장했다.특히 경산은 연령별 인구 구성에서 젊은 층이 두꺼워 성장 가능성이 크다. 2021년 기준 경산 주민 평균 연령은 42.3세로 경북 평균(46.3세)은 물론 전국 평균(43.5세)보다 적다.지역 경제 지표도 대체로 긍정적인 편이다. 2020년 기준 경산의 지역 내 총생산(GRDP)은 7조9천975억원을 기록했다. 구미(27조9천840억원), 포항(18조6천205억원), 경주(9조9천215억원)에 이어 경북에서 넷째로 높다.이 같은 경산의 성장 배경에는 산업단지의 꾸준한 확충이 있다. 양질의 일자리가 늘어나면서 인구가 증가하고, 정주여건도 차츰 개선되는 선순환 구조가 실현되고 있는 셈이다.경산의 첫 산업단지는 1994년 4월 준공된 경산1일반산업단지(면적 157만㎡)다. 진량읍 신상리 일대에 들어선 경산1일반산단은 지역 산업 발전의 밑거름이 됐다. 이후 1999년 10월 자인면 북사리와 교촌리 일대에 경산2일반산업단지(48만㎡)가 들어섰고, 2009년 11월에는 진량읍 대원·신제리 일대에 경산3일반산업단지(149만㎡)가 조성됐다. 최근에도 경산의 산업단지는 계속 늘어나고 있다. 2021년 10월 진량읍 신상·황제리 일대에 경산1-1일반산업단지(7만㎡)가 들어선 데 이어 지난해 9월에는 진량읍 신제·다문리 일대에 경산4일반산업단지(239만㎡)가 둥지를 틀었다.지난해 기준 5개 산업단지 내 입주업체는 565곳·고용인원은 1만7천800여 명에 달한다. 이들 산업단지가 경산 경제의 엔진 역할을 하고 있는 셈이다. 산업단지 외에도 경산에는 많은 제조업체가 활발히 사업을 꾸려가고 있다. 2021년 기준 경산지역 제조업체는 4천383곳, 종사자는 3만5천여 명에 이른다. 업종별로는 기계금속이 26.9%로 가장 많고, 섬유의복이 15.1%로 뒤를 잇고 있다. 그다음으로는 식품(10.8%), 자동차운송장비(7.7%), 고무플라스틱(7.2%), 전기전자(5.2%), 석유화학(5.2%) 순이다. 지난해 경산 전체 제조업체 수출액은 15억4천300만달러에 달했다. 코로나19 확산으로 2020년 12억1천700만달러까지 뚝 떨어졌다가 2021년부터 회복세로 전환했다. 수출 품목별로는 차량부속품, 전기기기 및 부품, 기계 및 부품, 섬유제품 순으로 많다. 국가별로는 미국, 중국, 베트남 순이다. ◆첨단 업종 중심으로 '산업 생태계' 재편경산시는 첨단업종 위주의 산업단지 확충에도 팔을 걷어붙이고 있다. 경산지식산업지구를 비롯해 경산 화장품 특화단지, 경산 상림 재활산업특화단지를 조성 중에 있거나 추진할 계획이다.특히 경산지식산업지구는 경북 최대 경제자유구역으로 주목받고 있다. 면적만 380만㎡에 달해 산업지구 조성이 완료되면 경산에서 가장 큰 규모의 산업단지가 된다. 경산시는 경산지식산업지구를 자동차부품, 우주항공, 정보통신 등 그린부품소재산업과 교육연구 및 첨단의료산업이 융합된 첨단산업 단지로 조성 중이다. 기계부품특화단지(138만㎡·36%)를 비롯해 첨단의료기기 및 메디컬신소재 단지(27만㎡·7%) 등을 갖춘 글로벌 지식기반산업 중심의 산업단지로 육성이 목표다. 차세대 건설기계, 자동차, 전자, 전기, 기계, 의료기기, R&D, 철도차량 부품, 첨단 메디컬섬유 융합소재 산업의 기업들이 입주해 있으며, 21만㎡(5%)의 연구시설용지를 비롯해 주택건설·상업시설·업무시설·물류시설 용지도 마련돼 있다.경산지식산업지구는 위치적으로 장점이 많다. 대구~경산~영천~경주~포항~울산을 잇는 '자동차산업벨트' 요충지에 자리하고 있다. 청통와촌IC에서 5㎞ 거리로 5분 이내 대구~포항고속도로 진입이 가능하고, 대구도시철도 1호선 연장으로 접근성이 뛰어나다. 또 지역에 있는 12개 대학, 12만명의 풍부한 인재를 활용할 수 있는 데다 경북테크노파크 등도 가까워 산·학·연 연계가 용이하다.경산지식산업지구가 본궤도에 오르면 자동차부품·기계·섬유산업 등 기존 업종과 첨단산업의 융합을 통해 미래 성장 동력을 확보할 수 있을 것으로 예측된다. 전기차 차세대 무선충전 특구로 지정된 점도 고무적이다. 차세대 무선충전 신기술 분야 산업까지 아우를 수 있어서다.여천동 일대에 14만㎡ 규모로 조성되는 경산 화장품 특화단지는 2020년 5월 착공에 들어가 올해 준공을 목표로 공사가 진행 중이다. 특화단지 인근에는 대구한의대학교, 경북테크노파크, 한국한의약진흥원, 경북IT융합산업기술원, 대구경북디자인진흥원이 위치해 '뷰티산업 클러스터화'가 가능하다. 더욱이 경산을 중심으로 대구, 경주, 영천, 포항, 구미, 김천, 칠곡에는 화장품 제조업체 250여 곳이 모여 있어 시너지 효과가 기대된다.이외에도 경산시는 재활산업 특화단지 조성사업도 계획하고 있다. 의료치료기기, 재활훈련기기, 의료정보시스템 등 재활 관련 산업에 특화된 단지를 공영개발방식으로 개발하는 것이 골자다. 진량읍 상림리와 내리리 일대에 특화단지를 만들어 영남권 재활산업의 혁신 클러스터로 키운다는 목표다. 경부고속도로 경산IC와 대구·경산을 잇는 국도 4호선과 인접해 있고, 대구도시철도 1호선 하양 연장으로 접근성도 뛰어나다. 인근 대학과의 상호 교류와 협력도 가능해 재활의료 관련 잠재인력 및 인프라를 최대한 활용할 수 있다. 조현일 경산시장은 "경산지식산업지구를 글로벌 지식기반 산업의 중심지로 조기 정착시켜 새로운 먹거리를 창출하고 지역의 지속 가능한 발전을 이뤄 나갈 것"이라며 "더불어 지역 산업 생태계를 고부가가치 산업 중심으로 재편하는 작업도 조속히 진행해 나갈 계획"이라고 말했다. 글=김일우〈영남일보 부설 한국스토리텔링연구원 연구위원〉 사진=김수일기자 maya1333@yeongnam.com하늘에서 내려다 본 경산1일반산업단지 전경. 경산시 진량읍 일원에 위치한 경산1일반산단은 경산의 첫 산업단지로 기계·금속·섬유·의복·전기·전자·자동차부품 업체 등이 주로 입주해 있으며 생산 규모는 내수 2조7천897억원, 수출 13억3천288만달러 수준이다.경산지식산업지구 조감도 〈경산시 제공〉경산 화장품 특화단지 조감도 〈경북도개발공사 제공〉경산 하양읍 일원에 조성 중인 경산지식산업지구. 이곳은 앞으로 자동차부품, 우주항공, 정보통신, 바이오산업 등이 융합된 첨단산업단지로 육성된다.
2023.07.11
농약에서 로봇투자까지…대구 산업성장과 함께한 57개국 804개사
대구에 굵직한 '외국투자기업'(이하 외투기업)이 많지 않지만 면면을 살펴보면 경쟁력있는 기업이 곳곳에 숨어 있다. 향후 군위에 신공항시대가 열리고 공항첨단산단이 조성되면 외투기업의 관심은 배가될 것으로 기대된다. 55년간의 대구 외투기업사(史)를 반추해 보면 기술 및 연구개발 역량 강화 , 사내복지 개선, 건전한 노사관계 정립 등의 효과는 보다 선명해진다. ◆각국 투자액 최근 영남일보와 대구시는 외국인 기업이 처음으로 투자를 신고한 1968월 2월부터 올해 4월 말까지 대구지역 외투기업 현황을 파악했다. 그 결과 대구에 투자를 한 외국기업은 57개국 805개사로 나타났다. 투자규모는 1천264건에 미화 33억500만달러(한화 4조3천361억원)였다. 국가별 대구 투자액은 중국이 6억1천900만달러로 가장 많았고, 이어 일본(4억6천700만달러), 미국·네덜란드(각 4억600만달러), 홍콩(3억300만달러), 싱가포르(1억9천200만달러) 등 순이다. 반면 투자 건수에서는 일본(216건)이 중국(170건)보다 많았다. 지난해 7월 민선 8기 출범 후에도 외국기업의 투자는 이어졌고, 제법 굵직한 건도 있었다. 평화발레오·카펙발레오 등 합작투자를 통해 대구에 각별한 애정을 쏟아온 글로벌 차부품기업 '발레오'가 눈에띈다. 발레오는 지난해 7월26일 대구시와 '발레오 모빌리티 코리아(프랑스·728억원) 투자유치' 협약을 맺었다. 민선 8기 대구 1호 외투다. 당초 다른 지역에 투자하려 했지만 노사관계가 비교적 안정적인 데다 모터밸리 조성 계획이 추진되는 점을 고려해 대구로 방향을 틀었다. 같은 해 이케아코리아(네덜란드·1천800억원 ), 보그워너DTC(미국·620억원 ) 등도 대구 투자를 결정했다. 올해는 미국 서비스 로봇기업인 베어로보틱스(683억원)와 인연을 맺었다. 대구에 '국가로봇테스트필드 조성사업'이 진행된다는 점에 끌렸다고 한다. 6월 말 현재 대구의 외투기업 수는 폐업 등으로 줄면서 367개 정도로 파악됐다. ◆역사적 투자 대구 외투기업 1호는 농업용 약제 제조사인 한미합자제일화학<주>으로, 경북도 관할 하에 있던 1968년 2월 초 투자액 5만달러를 신고했다. 규모는 작아졌지만 동구 대림동에서 여전히 자리를 지키고 있다. 직할시 승격(1981년 7월) 후 첫 외투기업은 대중사우스밴드<주>다. 미국 공작기계업체 '사우스밴드'와 '대구중공업'이 합작했다. 1981년 8월10일 북구 노원동에 뿌리를 내렸고 초기 투자액은 23만3천달러다. 하지만 설립 10년만인 1991년 폐업했다. 1995년 1월 '광역시'로 개칭된 뒤엔 니카코리아(일본·화학제품)가 첫 외투기업으로 이름을 올렸다.1995년 4월 306만3천달러 투자를 신고했으며, 달서구 대천동에 주력 사업장이 있다. 외투 규모가 가장 큰 곳은 '대구텍(달성 가창면)'으로 이스라엘계 글로벌 절삭공구 기업인 IMC그룹(본사 소재지 네덜란드)의 자회사다. 지금까지 3억1천400만달러를 투자했으며, 연매출액은 8천억원 이상이다. IMC그룹은 대한중석 인수 후 1998년 대구텍으로 명칭을 바꾸고 첫 투자금으로 7천170만달러를 내놨다. '투자의 귀재' 워런 버핏(93·버크셔 해서웨이 CEO)이 IMC그룹의 지분 전량을 갖고 있다. 워런 버핏은 현재 대구텍 옆 부지(5만8천여㎡)에 7천만달러를 투입해 항공기부품 제조용 공구생산기업인 'IMC엔드밀'을 건립 중이다. ◆업종 다양화 대구 투자를 결정한 외국계 기업의 업종과 기술력은 계속 다양화 ·고도화하고 있다. 대구상공회의소에 확인한 결과, 최근 대구의 '매출천억클럽'에도 외투기업이 적잖다. 지역사회와 소통하며 뿌리를 확실히 내린 해외기업이 늘었다는 방증이다. 에스트라오토모티브시스템(달성1차산단)은 국내 기업에서 외투기업으로 분류된 케이스다. 한국델파이가 2015년 이래CS그룹에 인수된 뒤 이래오토모티브(공조장치)와 이래AMS(전장부품)로 분리되고, 이후 2018년 '중국상하이항천자동차기전' 자금이 유입되면서 이래오토모티브도 외투기업 목록에 올랐다. 대구국가산단 한국알스트롬(핀란드)은 생산품목(자동차용 여과지)이 특화돼 있다. 2차전지 핵심소재인 분리막 제조사인 SSLM(다사읍 세천리)은 삼성LED와 일본 스미토모화학의 합작사로 지금까지 3천600억원을 투자했고, 직원은 355명이다. 지금은 스미토모화학이 지분 100%를 보유하고 있다. 케이비와이퍼시스템(대구국가산단)은 경창산업과 보쉬(독일)가 합작했지만 지금은 보쉬가 지분을 모두 갖고 있다. 의약품 유통기업인 '경동사'도 스위스의 의약품유통 글로벌 기업인 '쥴릭파마 홀딩스'의 자본이 들어가 있다. 최수경기자 justone@yeongnam.com대구의 대표 외투기업인 대구텍 본사 전경.
2023.07.10
[외투史 아픈 손가락 '한국게이츠'] 현대자동차도 쩔쩔 맨 기술력…'흑자 폐업' 논란
대구 외투기업사를 보면 좋은 일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큰 기대를 가졌지만 사업을 철수한 기업도 있다. 대표적인 기업이 대구 달성1차산업단지(논공읍)에 소재했던 한국게이츠<주>다. 미·일 자본이 투입된 이 기업은 자동차 구동에 필요한 타이밍 벨트와 팬 벨트, 연료호스 등을 생산해 국내 완성차 업체에 공급했다. 1995년 1월 대구에서 공장등록 신고를 한 뒤 한동안 승승장구했다. 지역 차부품업계에 따르면 한국게이츠는 국내 완성차 업체들이 납품단가를 함부로 못 깍을 정도로 뛰어난 기술력을 보유하고 있었다. 하지만 2020년 6월26일 가동을 중단하고 그해 8월 초 공장을 폐쇄했다. 직원 150명은 뿔뿔히 흩어졌다. 폐쇄 전인 2019년 한국게이츠의 연 매출액은 1천100억원, 연 수출액은 240만달러였다. 당시 공장폐쇄와 관련해 한국게이츠 측은 "2019년부터 본사가 추진하는 사업 구조조정 일환으로 대구공장 폐쇄를 추진해 왔다"며 "글로벌 시장에서 경쟁이 치열하고, 코로나19 확산으로 그 시기를 앞당기게 됐다"고 말했다. 매년 흑자를 내면서도 공장을 폐쇄하자 한동안 대구에선 '먹튀' 논란이 일었다. 차부품업계에선 잦은 파업과 불안전한 노사관계가 공장폐쇄의 결정적 요인으로 본다. 한국게이츠의 공식 폐쇄 신고일은 2021년 12월1일이다. 대성산업<주>이 게이츠 공장부지(1만3천200여㎡)와 건물(1만800여㎡)을 37억원에 인수했다. 입주계약은 완료한 상태이고 조만간 가동할 것으로 알려졌다. 최수경기자 justone@yeongnam.com불안전한 노사관계로 대구사업장을 철수한 옛 한국게이츠 건물 전경.
[지역 대표 외투기업 도약 '대구텍'] 탄탄한 직원복지…지역대생 입사 선호 1위
대구를 대표하는 외투기업으로 누구나 첫 손가락에 꼽는 곳이 바로 대구텍(달성 가창면)이다. 지역 대학생이 가장 입사를 선호하는 기업으로, '워런 버핏이 투자한 기업'을 가장 먼저 떠올리지만 매력적 요소가 수두룩하다. 무엇보다 직원복지를 최우선시한다는 점에 방점이 찍혀 있다. 근무시간은 안정적으로 고정돼 있다. 오전 8시부터 오후 5시다. 외국계 기업이다 보니 업무상 외국인을 만날 기회가 많다. 자연스레 이 회사에 근무하면 영어실력도 향상된다. 이채로운 점은 전 직원이 사내식당에서 아침을 먹는다는 것이다. 점심도 마찬가지다. 셔틀버스 등 출퇴근 교통편의도 제공한다. 자가용 출근족을 배려해 600면의 주차공간도 확보해 두고 있다. 전체 직원 1천300명이 본연의 업무에만 집중할 수 있는 근무 여건이 조성된 셈이다. 사회공헌활동도 눈에 띈다. 2006년부터 매년 취약계층(200가구)의 건강보험료를 지원한다. 한현준 대구텍 대표는 올 초에도 보험료 지원을 위해 1천200만원을 내놨다. 대구텍의 모기업은 이스라엘 테펜에 있는 IMC그룹으로 1952년 설립된 세계 2위 절삭공구 생산기업이다. 이스카(이스라엘)·대구텍(한국)·탕갈로이(일본)·잉가솔(미국) 등 전 세계에 13개 대표 계열사와 130여개의 자회사를 거느리고 있다. IMC그룹은 1998년 대한중석을 인수해 대구텍을 설립했다. IMC그룹은 대구텍 바로 옆 부지에 7천만달러를 투자해 항공기부품제조용 절삭공구를 생산하는 'IMC엔드밀' 공장을 짓고 있다. 내년 완공되면 '형제기업'이 탄생하게 되는 셈이다. 최수경기자 justone@yeongnam.com대구의 대표 외투기업인 대구텍 본사 전경.
[상권 다변화시대 북성로] 근대건축물 허물고 아파트…살아나던 상권의 맥이 끊겼다
대구 도심 한복판에 위치한 '북성로'는 근대와 현대의 시간이 공존하는 곳이다. 세월의 흔적이 켜켜이 쌓인 모습을 그대로 간직한 건물과 현대적 감각을 입힌 건물이 뒤섞여 있어서다. 표현상으론 그럴 듯하지만 근대건축물이 점점 사라지고 있는 탓에 이도 몇 년 뒤에는 옛말이 될지 모른다. 2019년 시작된 일부지역 재건축 여파다. 일제강점기 근대 목조 건축물의 원형을 살린 카페나 식당 등이 대거 철거되고 있는 것. 버려진 공장이나 창고를 개조한 상인들은 터전의 변화를 실감한 지 이미 오래다. ◆재개발, 과거·현재 공존을 허물다 북성로 시작점은 대구읍성이다. 대구읍성은 조선시대 경상감영을 둘러싸고 있던 성곽이었지만 1906년 일제에 의해 강제 철거됐다. 2012년부터 중구청에서 옛 대구읍성의 일부를 관광자원으로 복원하면서 2017년엔 중구 북성로1가 대우빌딩 인근에 옛 대구읍성 성벽 형태의 미디어 조형물이 세워졌다. 이 조형물을 따라가면 공구골목이 나온다. 1.5㎞ 남짓한 도로에 북성로 공구골목이 형성돼 있다. 이 골목은 일제강점기 대구읍성 북쪽 성곽을 허물고 길을 내면서 생겼다. 아이러니하게 대구 첫 근대상권의 탄생으로 이어졌다. 광복과 한국전쟁을 거치면서는 구상·이중섭 등 문인과 예술가들의 주 활동무대가 됐다. 이후 공구와 군수물자 등이 몰리면서 '도면만 있으면 탱크도 만든다'는 소문이 나돌 정도로 '산업용 기계거리'로 명성을 쌓았다. 통상 북성로는 이 도로를 중심으로 밀집한 상업지역을 의미한다. 1990년대 들어 점포가 외곽으로 속속 빠져나가면서 상권이 위축되기 시작했다. 중구청이 근대건축물 보호를 위해 2014년부터 총 14억원이 넘는 예산을 들여 보존 가치가 높은 1960년대 이전 건축물의 외부 경관 개·보수 사업을 추진했다. 그러자 청년들의 발길이 잦아졌다. 일제강점기부터 광복을 거쳐 산업화시기를 버텨낸 오랜 건물이 특색 있는 상점으로 재탄생했다. 하지만 얼마지 않아 위기는 또다시 찾아왔다. 2019년부터 800가구 규모의 주상복합아파트 공사가 시작되면서 재정비를 거친 근대건축물 4채가 자취를 감췄다. 이 중 '백조다방'은 시인 구상이 글을 쓰고 화가 이중섭이 그림을 그렸다고 알려진 곳이다. 한국 근대사에서 중요한 건축물로 꼽혔지만 재개발에 사라졌다. ◆재개발, 상권 형성도 망가뜨리다 재개발 열풍은 북성로를 비롯한 주변 상권을 기형적 형태로 만들었다. 지속적 소비와 수요를 이끌어낼 상권 형성이 이뤄지지 않은 가운데 이름만 유명해져 땅값이 크게 올랐기 때문이다. 지난 3일 북성로 일대 건물 10곳의 공시지가(한국부동산원 부동산 공시가격 알리미)를 살펴본 결과, 10곳 모두 2019~2023년 공시지가가 재건축 전인 2014~2018년보다 큰 폭으로 상승했다. 또 재건축 공사 부지에서 멀수록 증가율이 가파른 상승곡선을 그렸다. 하지만 북성로에 젊은 관광객들이 카메라를 들고 몰려들어 줄을 서거나 불야성(不夜城)을 이룰 정도로 밤늦게까지 손님들이 찾는 상가는 거의 없다. 땅거미가 지면 거리를 채우던 공구상마저 사라졌다. 오가는 사람이 드물어지면서 골목은 한산해진다. 대구읍성의 북쪽 성을 허물고 낸 북성로와 이어진 수제화골목에서 6년간 식당을 운영해 온 김모(41)씨는 "상권이 제대로 형성되기도 전에 부동산 가격이 치솟았다. 여기에다 코로나19 팬데믹을 겪으면서 크게 위축된 경향이 크다"면서 "2년 전에 새로운 상점이 생긴 뒤로는 조용하다. 상권이라고 말하기도 애매한 곳에 누가 큰돈을 들여 사업을 하겠느냐"고 했다. 김씨와 마찬가지로 6년 전 디저트 가게를 연 최모(38)씨는 "지자체에서 적산가옥 정비사업을 한 뒤로 북성로라는 공간에 매력을 느낀 젊은 고객, 상인, 예술가가 많이 들어오는 추세였다. 하지만 재개발이 일어나면서 분위기가 확 바뀌었다"며 "근대와 현대가 뒤섞인 풍경이 북성로의 매력 포인트인데 주상복합아파트가 들어서면서 소비자의 n차 방문을 이끌 '콘텐츠'가 사라져 버렸다. 토지 거래만 활발하고, 임대료만 높아졌다"고 쓴소리를 했다. 최시웅기자 jet123@yeongnam.com 이남영기자 Iny0104@yeongnam.com◆북성로 일대 ㎡(평)당 공시지가 현황 <한국부동산원 부동산 공시가격 알리미 제공>주소/2014년/2018년(2014년 대비 증감율)/2023년(2018년 대비 증감율)/2014~2023년 증감율북성로1가 76-1/179만6천원/203만2천원(13.1%)/256만7천원(26.3%)/43%↑북성로1가 75-3/166만4천원/188만2천원(13.1%)/237만7천원(26.3%)/42.8%↑북성로1가 63/174만6천원/180만4천원(3.3%)/222만원(23%)/27.1%↑북성로1가 40-6/158만4천원/164만1천원(3.6%)/207만1천원(26.2%)/30.7%↑대안동 1-1/110만1천원/129만6천원(17.7%)/214만5천원(65.5%)/94.8%↑대안동 1-2/106만7천원/125만6천원(17.7%)/208만원(65.6%)/94.9%↑대안동 10-5/146만원/175만원(19.8%)/229만2천원(30.9%)/56.9%↑대안동 14-3/101만원/122만원(20.7%)/196만원(60.6%)/94%↑대안동 65-7/84만원/101만8천원(21.1%)/153만3천원(50.5%)/82.5%↑대안동 21-1/69만6천200원/99만5천300원(42.9%)/179만1천원(79.9%)/157.2%↑지난 8일 옛 정취가 살아 있는 대구 중구 향촌동 수제화 골목을 시민들이 지나가고 있다. 북성로 상권의 위축은 인근의 수제화 골목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이현덕기자 / 그래픽=장수현기자
2023.07.09
[상권 다변화시대 북성로] 최신유행에 살짝 비껴나간 근대식 레트로
지난 3일 대구 중구 서문로1가 '넌테이블'. 평일 낮이지만 이 곳은 젊은 손님들로 북적였다. 카페 내부에는 빈 자리가 없었고 앞 도로에선 인증사진을 남기는 이들로 북적였다. 이들은 가게에서 대각선 방향에 있는 '대구근대역사관(일제강점기 조선식산은행 대구지점)'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었다. 요즘 대구근대역사관은 MZ세대에게 '사진맛집'으로 통한다. 실제 사진 공유 SNS 인스타그램에 들어가 보면 '넌테이블'이라는 해시태그(#)가 붙은 게시물 1만1천개 중 대부분은 대구근대역사관을 배경으로 찍은 사진이다. '힙(hip)'한 건물들 사이에 근대식으로 지어진 건축물이 '레트로(복고풍)' 감성과 연계된 덕분이다. 넌테이블 사장 유경호(36)씨는 "대구근대역사관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길 바란 의도가 잘 먹혔다. 처음 가게를 열 때는 MZ세대가 올 만한 가게가 없었는데, 지금은 근대건축물 주변에 식당과 카페가 많이 생겼다. '근대화'가 문화 콘텐츠로 되면서 관광요소로 작용한 것 같다"고 말했다. 북성로 상권을 이해하기 위해선 향촌동·대안동·수창동 등 이 일대 상가의 특징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넌테이블에서 북성로 공구골목까지 새롭게 생겨난 카페들은 최근 상업공간을 압도하는 '인더스트리얼 디자인' 흐름이나 레트로 열풍과 맞닿아 있다. 알루미늄과 철 등 금속재료를 사용한 깔끔한 디자인, 공연 무대처럼 연출적 요소가 두드러지는 디자인들이 대거 가미된 흔적이 엿보인다. 반면 수제화골목과 북성로 공구골목 안쪽으로 들어가면 매끈한 레트로 디자인과는 동떨어진 상가가 즐비하다. 적산가옥 특징을 그대로 담아 공간을 설계한 탓이다. 의자와 테이블을 비롯해 벽면도 가구처럼 근대건축물과 유기적으로 연결했다. 인테리어 소품은 과거의 틀을 하나씩 짜맞췄다. 일제강점기 도시 풍경을 떠오르게 하는 고전적인 디자인을 연상케한다. 그러나 근대와 현재의 유행은 동거하지 못한다. 넌테이블을 비롯한 레트로 디자인으로 무장한 상가는 '소비 콘텐츠'로서의 매력이 있다. 하지만 수제화골목과 북성공구골목의 상가는 MZ세대들이 눈도장을 찍고 가는 수준에 그친다. 최신 유행에서 살짝 비껴 선 탓에 소비자에게 확실한 눈도장을 받기에는 어느 정도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다. 최시웅기자 jet123@yeongnam.com 이남영기자 Iny0104@yeongnam.com
[상권 다변화시대] 재개발에 밀려 독특한 정취 사라지는 북성로
대구 중구 북성로일대는 한때 국내 도시재생의 모범 선례로 주목받았다. 퇴락한 근대건축물 외관을 원형에 가깝게 개·보수하는 사업이 펼쳐지면서다. 도시재생은 낡은 건물을 허물고 다시 짓는 재개발·재건축과는 달리 역사성에다 미래 가치까지 고려해야 하기에 쉽지 않은 사업이다. 역사적 가치를 띠지만 금전적 가치가 낮은 건물을 신축 비용보다 웃돈을 주고 리노베이션(Renovation)해야 해서다. 근대골목을 둘러보는 여행가들이 알음알음 들르던 북성로 일대가 전국적으로 유명해진 것은 2014년쯤이다. 당시 대구 중구청은 근대건축물 보호를 위해 보존 가치가 높은 1960년대 이전 건축물의 외부경관 개·보수 사업을 의욕적으로 추진했다. 공사비용 범위 80%에서 4천만원까지 지원해 북성로 일대의 근대건축물 35채를 재정비했다. 현재 건축에선 적용하지 않는 아치형 창문, 1930년대 아르데코 양식 외관, 1920~1960년대 주거구조 변천사를 한눈에 엿볼 수 있는 개량형 한옥이 현대적 감성으로 새롭게 단장됐다. 근대와 현대의 풍경이 어우려져 독특한 정취를 자아낸 덕분에 '전국구 관광지'로 유명세를 치렀다. 이같은 변화는 청년 상인을 하나 둘씩 북성로 일대로 끌어들였다. 이들은 옛 정취를 남긴 건물을 그대로 살려, 카페와 식당 등을 운영했다. 북성로는 좁은 대지 면적과 적산가옥 등으로 신축 대형 매장이 아닌 소규모 매장에 적합했다. 기존 건물을 살린 인테리어는 '빈티지 감성'과 맞아떨어졌다. 당시 국내 가입자 수를 늘려가던 소셜미디어 '인스타그램' 감성과도 부합했다. 북성로의 인기몰이도 오래가지 못했다. 근대 건축물 4채의 부지에 주상복합아파트가 들어서면서 독특한 정취를 자아내던 골목 분위기도 시나브로 없어지게 됐다. 뒤늦게 밀어닥친 '도심 재개발 광풍'에 북성로 일대의 땅값만 치솟았다. 덩달아 임대료도 들썩이자 젊고 창의적인 상인들은 하나 둘씩 다른 곳으로 떠났다. 소비자들의 n차 방문을 이끌 콘텐츠 역시 사라졌다. 결국, 북성로는 주상복합견물 개발에 밀려 기형적 형태의 상권으로 바뀌고 있다는 게 주변 상인들의 견해다. 대신 교동·대봉1동·삼덕동이 새로운 핫플레이스로 떠올랐다. 북성로에서 만난 한 상인은 "단순히 먹고 마시는 소비 지향적인 마케팅으론 소비자의 n차 방문을 이끌어낼 수 없다"면서 "문화, 감성적으로 풍부한 경험이 뒷받침될 때 소비자는 다시 그 골목을 찾게 된다"고 했다. 손선우·최시웅·이남영기자 Iny0104@yeongnam.com8일 대구 중구 북성로의 곳곳에 재개발이 진행되면서 근대와 현대가 어우러져 독특한 정취를 자아내던 골목 모습이 점점 사라지고 있다. 이현덕기자 lhd@yeongnam.com
[노벨문학상 산책] 가와바타 야스나리의'설국'…허무주의가 그려낸 선명한 아름다움
1968년 노벨문학상 수상자는 일본의 가와바타 야스나리(川端康成)로 선정됐다. 스웨덴 한림원에서는 선정이유로 "일본인의 마음 정수를 뛰어난 감수성으로 표현하는 그 서술의 능숙함"을 꼽았다. 이러한 선정이유는 당시 69세였던 가와바타 문학 전체를 통괄하는 평가였기에 상당히 의미 있다고 하겠다. 이 평가에 부합하는 작품은 여럿 있을 터인데, '설국'은 첫 번째로 꼽히는 작품이라 하겠다. 가와바타 자신도 '설국'에 대해 "해외에서 읽으면 회향의 마음을 가지게 한다"('독영자명')고 평하고 있어 일본적 분위기, 전통성을 인정하고 있었다. 그렇다고 가와바타의 모든 작품이 '일본적'으로 평가해도 좋은가 하면 그렇지는 않다. 초기에 가와바타는 신감각파 작가로 활동했다. 신감각파의 목표는 표현의 혁신이었는데, 그 방법으로 서구문예에 의지하는 바가 컸다. 또한 당시 유행하고 있었던 영화에도 깊은 관심을 보여 시각이미지의 활자표현에도 다양한 관심이 많았고, 영화작업에 참여하기도 했다. 1921년에 문단에 등단한 가와바타는 1926년에는 '이즈의 무희'로 대중적인 인기도 얻었다. 1931년에는 신심리주의 작가로도 활동했다. 이러한 다양한 시도와 모색을 거친 후 1935년부터 발표하게 된 것이 '설국'이고, 완성은 1947년에 가서야 이루어진다. '설국'은 그때까지의 가와바타의 문학적 경험의 축적을 자양분으로 삼아 독자적 세계를 구축하게 되는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시마무라의 허무, 비현실적인 미 '설국' '국경의 긴 터널을 빠져나가자 설국이었다'라는 일본 문학사상 가장 유명한 '설국'의 서두 문구로, 현재에도 끊임없이 패러디되어 재생산되고 있다. 여기에서 터널은 이쪽 세계와 저쪽 세계인 설국의 경계를 가르는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그 경계는 시마무라(島村)의 생활의 공간 도쿄와 설국을 나누는 것이며 일상과 비현실의 세계, 도시화와 전통의 세계를 구분한다. '설국'은 시마무라가 '설국'을 세 번 방문하며, 게이샤 고마코(駒子)와의 사랑, 신비로운 소녀 요코(葉子) 등과의 관계가 그려진 소설이다. 설국을 들어서며 묘사되는 차창에 그려지는 신비로운 소녀의 모습은 이 소설이 그려낼 미적세계를 상징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어두운 차창에 비치는 환영 같은 비현실적 상징 미를 찾아 떠나는 것이 설국으로의 여행임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시마무라는 부모의 재산으로 무위도식하며 살아가고 있다. 그의 일은 서양무용에 대한 평론을 쓰는 것이었는데, 직접 무용을 보는 것이 아닌 사진, 그림을 보며 글을 썼다. 그는 원래는 일본무용계에서 활동하였는데, 무용계의 혁신을 위해 행동해야 하는 상황이 되자 서양 무용계로 터를 옮겼다. 즉, 시마무라는 현실적인 움직임, 타인에 영향을 끼쳐야 하는 무게를 거부하며 생활하는 환영을 좇는 허무주의자인 것이다. 그의 생에 대한 그러한 태도는 '설국'에서 고마코를 대한 자세에도 드러난다. 고마코를 만나러 설국을 방문하였음에도 정작 그녀의 열정이 그를 향해 달려옴을 느끼면 설국을 떠나고 만다. 현실의 일상을 떠나 비현실의 세계를 찾아온 시마무라였지만, 설국에서의 관계에 충족하고 그것이 넘쳐 또 하나의 자신을 얽어맬 일상이 될 여지가 있으면 떠나버리는 것이다. ◆'헛수고'이기에 아름답다작품 첫 부분에서 시마무라가 '설국'을 향하는 목적은 '손가락이 기억하는 여자'를 만나기 위함이었다. 그 여인은 고마코였다. 고마코가 그를 처음 만났을 때는 게이샤가 아니었다. 두 번째 방문하니 그녀는 게이샤가 되어 있었다. 시마무라와의 관계는 첫 번째 방문부터였는데, 방문횟수를 거듭할수록 그녀는 시마무라에게 열정적으로 다가온다. 고마코는 정혼자인 유키오(行男)를 위해 게이샤로 나섰다고 한다. 우연히 들른 그녀의 집에서 고마코의 담담한 삶의 이야기를 들으며, 그녀의 일기장을 본다. 관심 있는 공연, 하루하루의 일상들을 꼼꼼히 적어 내려 간 것인데 그것을 보며 시마무라는 '헛수고'임을 느낀다. 자신의 헌신적인 행위, 삶과 사랑에 열정적인 모든 것이 헛수고임을 알았을 터인 고마코를 보며 그녀의 삶이 헛수고이기에 아름답다고 감동하고 만다. 그녀의 시마무라에 대한 사랑 또한 '헛수고'인 것은 말할 것도 없다. 그럼에도 자신을 향해 뜨겁게 달려오는 그녀의 마음을 느낄 때 시마무라는 설국을 떠나버린다.◆'은폐'의 세상 '설국''설국'은 철저하게 시마무라의 시점으로 그려진다. 시마무라가 보고, 듣고, 느낀 것, 그가 알고 있는 것만이 그려진다. 예를 들어 시마무라가 설국을 떠나있을 때 설국의 상황은 독자들에게는 전혀 정보가 제공되지 않는다. 전지적 입장을 거부당하며, 독자들은 시마무라의 눈과 심리를 따라갈 수밖에 없다. 고마코가 어떻게 지내고 있는지 그리고 고마코와 요코, 유키오의 관계는 사실은 어떠한지 알 수가 없고 추측에 의존하게 만든다. 작품 속에 그려지는 것은 시마무라가 설국에 와서 본 고마코, 요코 그리고 설국의 자연과 풍속이 그려져 있을 뿐이다. 이렇게 함으로써 이 '설국'이라는 이야기는 반쪽이 숨겨진 모습으로 완성되어 있는 것이다.그런데 이 '숨김'의 방법은 서술 시점에 그치는 것은 아니다. 이 소설의 창작 시기는 1935년부터 1947년에 걸쳐져 있는데, 그 시기는 일본의 전쟁 확장기 그리고 패전의 시기를 거치고 있다. 그러나 이 작품에서는 시대상이라는 일상이 제거되어 있고, 지명조차도 명시되어 있지 않다. 소설 창작에 관해 가와바타는 소설의 창작지와 배경이 니가타현의 '에치고 유자와(越後湯澤 )'임을 밝히고 있고, 작품에 그 지역의 자연과 풍속을 세세하게 그려냈다. 그러면서도 지명이 아닌 '설국'이라는 일반명사로 일관하고 있다. 이것은 시마무라의 일상제거와 같은 선상에서 생각할 수 있는 것으로서, 당시 질곡의 시간을 거쳤던 사회상을 '은폐'하는 것에도 유효하게 작용했다고 할 수 있다. 이렇게 본다면 '설국'은 현실 세계의 에치고유자와 온천이면 안 되는 것이었다. 눈이 많이 쌓인 '설국'이라면 어디나 괜찮은 것이었고, 반드시 그래야만 했던 것이다. 그 눈 속에 시마무라와 고마코의 삶도 사랑도 시대도 모든 것이 뒤덮여 흰 눈의 세계로만 보일 수 있기 때문이다. 그 뒤덮인 눈 속에서 시마무라의 눈과 심리를 통해 고마코의 사랑도, 요코의 신비스러움도 그리고 설국의 아름다운 자연과 풍속도 선명하게 그려낸 것이 '설국'인 것이다. 정향재 교수 (한남대) 공동기획: 경북대학교 인문학술원 HK+사업단현재 한남대 일어일문학과 교수로 일본 근현대문학을 전공했다. 세부전공은 가와바타 야스나리이다. 가와바타를 전공으로 삼은 것은 가와바타의 서정적이면서도 처연한 슬픔이 느껴지는 문장, 죽음을 다루는 독특한 시선에 매력을 느꼈기 때문이다. 연구분야는 가와바타 문학과 주변예술, 특히 영화와 무용을 중심으로 하였으며, 그 외 일본 패전기의 문학자들의 인식, 원폭문학에 대해 힘을 기울이고 있다. 문학연구, 교육 이외에 좋은 일본문학을 한국에 소개하는 번역자로서의 역할도 충실히 할 희망을 가지고 있다.대표논문으로 '1930년대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단상-영화와의 관련성을 중심으로' '설국과 그 시대 -은폐된 배경으로서의 공간과 시대성' '일본 현대문학에 있어서의 패전' 등이 있다. 번역으로는 가와바타 야스나리 원작 '잠자는 미녀'(현대문학), 하라 다미키의 '하라 다미키 단편집' 외 다수가 있다.
2023.07.07
[경북, 원자력 르네상스 시대를 열다 .8]지속 가능한 원자력을 위한 노력
원자력 발전 산업은 단순히 원자력발전소(원전) 건설과 운영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넓게 보면 방사성폐기물(방폐물)의 안전한 처리, 수명이 다한 노후 원전의 해체 등도 원전 산업의 한 분야로 볼 수 있다. 원전을 만들어 전기 에너지를 생산하고, 발생한 폐기물은 물론 운전 수명이 종료된 원전까지 안전하게 처리·처분하는 모든 과정이 산업에 포함되는 셈이다. 특히 원전의 경우 사고 발생 시 다른 발전에 비해 피해가 클 가능성이 높은 만큼 안전 관리는 더욱 중요하다. 결국 원자력 발전이 지속 가능한 성장을 하기 위해선 관리의 안정성 확보는 물론 사용후 안전한 처리가 동반돼야 한다. 이를 위해 경북도는 원자력 안전 관리시설과 시스템 확충에 힘을 쏟고 있다. '경북, 원자력 르네상스 시대를 열다' 8편에서는 지속 가능한 원자력을 위한 노력에 대해 다룬다.방사성폐기물분석센터 2025년 준공2단계 표층처분시설 내년 12월 완공전세계 해체시장 규모 2050년 500조경주 양남면에 원전해체기술원 설립원전 全주기 기술력 구축 토대 마련한울권 방사능방재지휘센터도 추진원전사고 등 비상사태시 총괄 역할◆방사성폐기물 안전관리 시스템 강화2019년 6월, 경주시 문무대왕면에 위치한 '중·저준위 방사성폐기물 처리시설'(경주 방폐장)에서 한바탕 난리가 났다. 그동안 한국원자력연구원이 경주 방폐장에 보낸 방폐물 드럼 중 일부에서 핵종(Nuclide) 농도가 잘못 표기된 사실이 드러났기 때문이다. 다행히 원자력안전위원회에서 오류 값을 정정한 결과 방폐물의 핵종 농도는 경주 방폐장의 처분 농도 제한치 이내로 나타났다. 하지만 경주 시민과 국민들의 불안감은 쉽사리 사그라들지 않았다. 방사성폐기물 반입이 중단됐고, 민·관 합동조사단이 수차례 현장 조사를 벌였다. 이후 경주 방폐장은 1년여 만에 재가동에 들어갈 수 있었다.경북도는 이를 계기로 '방사성폐기물 분석센터' 설립을 추진했다. 경주 방폐장에 반입되는 방폐물을 체계적으로 교차 분석할 전문기관을 만들고, 이를 통해 방폐물 안전관리 시스템도 한층 강화할 필요가 있다는 판단에서다. 국회와 산업통상자원부도 경북도의 이 같은 주장을 받아들이면서 사업 추진에 가속도가 붙었다.2021년 6~12월 기본 및 실시설계 용역을 마치고, 올해부터는 127억원을 들여 분석센터 연구시험 및 분석장비를 구축하고 있다. 방사성폐기물 분석센터는 대지면적 4천㎡에 지상 4층 규모로 지어진다. 준공은 2025년 예정이다.특히 경주 방폐장이 확장을 앞두고 있어 방사성폐기물 분석센터의 중요성은 더욱 높아질 전망이다. 현재 경주 방폐장은 2단계 표층처분시설(6만7천490㎡)을 추가로 만들고 있다. 2021년 1월부터 올해 12월까지 2천600억원을 들여 공사가 진행 중이다. 2단계 표층처분시설은 내년 12월 준공을 목표로 하고 있다. 이 시설이 완공되면 한국은 동굴처분 기술과 표층처분 기술을 모두 확보한 세계 여섯 번째 국가가 된다. 앞서 한국원자력환경공단은 동굴처분시설(206만㎡)을 갖춘 경주 방폐장을 건설해 2015년부터 운영 중에 있다.◆원전 해체 산업 육성에도 팔 걷어원자력 발전 산업에서 해체 분야도 하나의 큰 시장으로 떠오르고 있다. 전 세계 600여 기의 원전 가운데 영구정지 원전만 200여 기에 달하지만 현재까지 해체된 원전은 단 21기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미국 컨설팅 업체 베이츠화이트에 따르면 전 세계 원전 해체시장 규모는 2050년을 전후로 500조원대로 커질 전망이다.국내에서도 2017년 6월 부산 기장 고리 1호기, 2019년 12월 경주 월성 1호기가 원전 노후화로 잇따라 영구정지되며 원전 해체 산업이 주목받기 시작했다. 정부는 고리 1호기 해체를 계기로 원전해체 기술 고도화를 통해 원전 전(全) 주기 기술력을 구축하고 글로벌 경쟁력을 확보한다는 구상이다. 이를 위해 부산과 울산의 경계지점과 경주 양남면 등 두 곳에 원전 해체 전문기관이 들어선다. 부산과 울산 경계에 들어서는 '원전해체연구소'(2022년 10월 착공·2026년 준공 예정)는 주로 경수로 노형 해체를 위한 전문기관이다. 반면 경주에 들어서는 '중수로 해체기술원'은 중수로 노형 해체를 맡는다. 산업통상자원부, 경북도, 경주시, 한국수력원자력(한수원)과 한전 KPS 등이 재단법인 '원전해체연구소'를 설립해 '해체기술원' 사업을 추진 중에 있다. 해체기술원 위치는 경주 양남면 일대다. 경북도는 해체기술원 설립을 계기로 경주에 원전 해체 산업생태계 기반이 구축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경북도와 경주시, 한수원은 2019년 4월 해체기술원 설립을 위한 MOU를 체결한 데 이어 2021년 5월 설계를 마쳤다. 지난해 6월에는 예비타당성조사 대상사업에 선정되며 국비도 확보됐다. 현재는 양남면 나산리를 사업부지로 확정하고, 부지 매입 절차를 진행 중에 있다. 착공은 올해 12월, 준공은 2026년 12월이 목표다. 기후위기와 원자력에 대한 이해를 돕기 위한 '국립 탄소중립 에너지 미래관' 설립도 추진되고 있다. 경북도는 2020년 9월, 대구경북연구원에 의뢰해 미래관 설립 기본구상 정책연구과제를 발표했다. 이미 미래관 설립 타당성 용역을 마쳤고, 설립에 필요한 국비를 확보하기 위해 노력 중이다. 전시, 체험, 교육, 연수 등의 시설을 갖춘 미래관은 탄소중립 시대 원자력이 왜 꼭 필요한 에너지원인지에 대한 교육과 홍보 등 소통을 전담하는 역할을 수행하게 된다.◆방재 지휘센터부터 실시간 방사선 감시망까지1979년 3월 미국 펜실베이니아주(州) 스리마일섬, 1986년 4월 소련 체르노빌, 2011년 3월 일본 후쿠시마 등 그동안 세계 각국에서 수차례 끔찍한 원전 사고가 있었다. 원전 사고는 한 번 발생하면 인적, 물적 피해는 상상을 초월한다. 사고 가능성이 아무리 낮더라도 평상시 각종 원전 사고에 대비해야 하는 이유다. 한국은 부산 기장군의 고리 1호기가 상업 운전을 시작한 1978년 4월 이래 45년 동안 단 한 번의 사고도 없었다.경북도는 유비무환의 정신으로 정부와 각종 원자력 안전관리시스템을 더욱 강화하고 있다. 대표적인 것이 울진군 평해읍 일원에 들어서는 '한울권 현장방사능방재지휘센터'다. 원자력안전위원회(원안위)가 130억원을 들여 지하 1층~지상 3층 규모로 건립 중이다. 현장방사능방재지휘센터는 앞으로 원전 사고 등 비상사태 발생 시 이를 총괄하는 역할을 하게 된다. 원안위는 올해 안에 착공에 들어가 2025년 1월쯤에는 완공할 수 있을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경북도는 2021년부터 원안위와 함께 '경북 원자력안전 감시시스템'도 확충하고 있다. 이는 원전 주변 지역의 환경방사선 감시망을 경북 전역으로 확대하는 사업이다. 경북도는 2026년까지 경북 23개 시·군 전역에 방사선 감시시스템 53곳을 구축할 계획이다. 사업이 마무리되면 경북 전역에는 실시간 방사선량 모티터링이 가능한 환경방사선 감시망이 구축된다. 이와 더불어 경북도는 방사능방재훈련도 정기적으로 실시하고 있다. 경북도 주관으로 2년에 한 번 합동훈련이, 각 시·군 주관으로 매년 한 차례씩 주민보호훈련이 진행된다. 지난달 29일에도 경북 울진에서 방사능방재 합동훈련과 주민보호훈련이 동시에 열렸다. 당시 주민 대피와 사고 수습, 관계기관 대응 등 체계적인 훈련이 이뤄졌다. 장상길 경북도 환동해지역본부 동해안전략산업국장은 "원자력이 에너지 안보와 탄소중립을 위한 꼭 필요한 에너지원이지만 안전에 대한 주민공감대가 먼저 형성돼야 한다"며 "원자력의 지속가능성을 유지하기 위해 대주민 홍보, 비상시를 대비한 다양한 훈련, 관련 안전 장비의 확충 등 촘촘한 종합대책을 마련하고 있다"고 말했다. 김일우 영남일보 부설 한국스토리텔링연구원 연구위원한국원자력환경공단이 운영 중인 경주 중·저준위 방사성폐기물 처리시설 전경. 206만㎡ 규모의 동굴처분시설을 갖추고 있다. 경주 방폐장 내 하역동굴 내부 모습. 국립 탄소중립 에너지 미래관 조감도. 〈경북도 제공〉경주 방폐장과 2단계 표층처분시설(오른쪽) 조감도. 표층처분은 지표면 가까이에 인공 구조물을 설치해 방폐물을 처분하는 방식이다. 〈한국원자력환경공단 제공〉경주 양남면 일대에 들어서는 해체기술원 조감도. 〈경북도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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