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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어가기엔 너무 좁고 위험하다…아슬아슬 하중도 보행통로 넓이 고작 50cm
"차가 바로 옆에서 지나가면 부딪힐까 봐 겁이나 뒤를 돌아보게 돼요."지난 4일 오후 2시쯤 신천대로 하부에 있는 대구 북구 금호강 하중도 통로 박스. 한 시민이 아슬아슬하게 좁은 통로를 지나고 있었다. 갑자기 내린 소나기로 우산이 없는 이 시민은 지하 보행로로 급하게 진입했다. 지하차도 안에는 보행자용 50~80㎝ 가량의 좁은 통로는 한눈에 봐도 불안해 보인다. 덩치가 큰 차량이나 적재물건이 튀어나와 있으면 보행자 안전을 장담할 수 없을 듯 했다. 반대편에서 보행자가 마주 온다면 비켜서기도 힘든 공간이었다. 별도의 안전 펜스도 마련돼 있지 않았다.대구 북구 하중도 통로 박스는 신천대로 하단부 노원로의 3공단(노원동)~노곡교(노곡동) 사이에 있다. 높이 3.3m, 왕복 2차로로 도로 폭은 7~8m로 좁다. 통로 길이는 약 50m이다. 걸어서 1~2분이다. 근처에는 대구 북구 8경 중 하나인 하중도(금호꽃섬)와 노원체육공원, 공원 주차장이 있으며, 3공단과도 가깝다. 보행자가 적지 않다는 의미다. 노원체육공원 주차장 서편에는 차량 50여 대가 주차돼 있었는데, 이곳에 주차하고 지하 통로를 이용해 3공단으로 오가는 시민도 볼 수 있었다.하중도 지하 통로를 두고는 주민 민원도 적지 않다. 인근 주민 박모(여·58·대구 북구 노원동)씨는 지난 2018년 하중도에서 운동하던 중 지하차도의 위험한 보행환경을 발견하고 주민센터에 민원을 제기했다. 하지만 북구청은 당시 A씨에게 "해당 지하차도는 원칙적으로 보행자가 다닐 수 없는 통로"라며 "통행로가 있지만 내부 조명시설 공사 시 필요한 공간이다. 도보로 하중도로 갈 경우 원칙적으로는 팔달교 쪽으로 가야 한다"고 했다. 박씨는 당시 북구청의 안내에 대해 이해할 수 없다는 입장을 보였다. 그는 "지하차도 통로로 사람들이 지나 다니고 금호강 자전거 도로로 곧장 이용하는 시민들도 많은데, 걸어서 20분이 넘는 곳까지 가서 강을 건너라는 것은 말이 안되는 소리"라고 말했다. 특히 박씨는 "대구시나 북구청에서 하중도를 관광지로 본격 추진한 지도 꽤 됐다. 사람들이 많이 몰리는 곳이라 보행 환경이 근본적으로 개선돼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취재가 시작되자, 대구 북구청은 이 곳이 통행 금지가 고시된 곳은 아니라고 해명했다. 하중도 지하 통로에 인도 설치가 제대로 되지 않았던 것은 신천대로 개통 당시 법규 탓으로 보인다. 11일 대구시에 따르면, 신천대로는 1994년 상동교~팔달교 부분이 먼저 개통됐는데, 해당 지하차도도 신천대로 개통 당시 생긴 것으로 파악되지만 관련 법규엔 인도 설치에 관한 규정이 미흡했다. 보도 설치의 기준은 1999년이 돼서야 '도로의 구조·시설 기준에 관한 규칙' 제정으로 마련됐다. 북구청 관계자는 "규정상 도로 폭이 10m 이상이 되면 인도를 2m로 설치할 수 있는데, 해당 통로 박스는 도로 폭이 좁아 차 2대가 간신히 교행할 수 있어 보행로 확장이 힘들었을 것"이라며 "조사를 통해 인도 설치가 가능한 곳인지 여부를 파악해보겠다"고 해명했다.비슷한 조건의 조야교 통로 박스도 참고 사례가 될 수 있다. 이곳은 2015년 주민제안 사업으로 환경개선사업이 진행된 곳으로, 2016년 9~10월 대구시 주민참여예산위원회가 예산을 투입해 조명등을 정비하고 보행 안전시설을 설치하는 등 환경을 개선했다. 현재 이 지하 통로에는 인도와 안전 펜스가 설치돼 있다. 전문가들은 이런 상황에서 근본적으로 도로 구조를 뜯어고치는 방법이 있지만 예산 소요가 막대하고 공사도 어렵다는 등의 현실적 어려움을 지적한다. 윤대식 영남대 도시공학과 교수는 "지하차도에 시내버스도 다니고 통행량이 많다면 양방향 통행이 필요한 경우라고 보인다"며 "보도를 양쪽에 설치하지 않고 한쪽으로 1m 이상 넓게 설치하는 것도 대안이 될 것이다"고 말했다.신진기 계명대 교통공학과 교수도 "박스 자체가 이미 물리적 공간을 제한하고 있기 때문에 새방로처럼 도로 선형을 변경하는 방법 외에는 획기적인 공간 개선책이 없을 것"이라면서도 "기존 보행통로에 펜스를 설치해 보행자를 보호하는 것이 차선책으로 보인다"고 했다.도로 관리 주체인 대구 북구청 관계자는 "도로 구조를 변경하는 것은 옹벽 손상 위험이 있기 때문에 어렵고, 안전 펜스의 경우도 일정 폭의 공간이 필요하다. 70~80㎝ 남짓한 공간이라 펜스를 설치하면 폭이 더욱 좁아질 수 있다"며 "보행자 안전 문제가 생기지 않도록 빠르게 검토해보겠다"라고 말했다.서민지기자 mjs858@yeongnam.com이동현 수습기자 shineast@yeongnam.com지난 4일 오후 2시쯤 한 시민이 대구 북구 신천대로 하부 하중도 통로박스의 보행로를 지나고 있다. 보행로 폭은 성인 여성 한 명이 겨우 지나갈 정도로 좁다. 이동현 수습기자대구 북구 신천대로 하부 하중도 통로박스의 보행로 지하도 내부 모습. 이동현 수습기자
2022.07.11
[김천 상공업의 어제와 오늘 .10] 드론산업...드론 공역에 시험장까지 갖춰 기본경쟁력 '탄탄'
김천시가 공을 들여온 드론산업이 서서히 뿌리를 내리고 있다. 어렵사리 드론 공역을 확보하고 지역거점 드론 실기시험장을 구축하는가 하면 2022년 드론실증도시 지원사업과 디지털 물류서비스 실증 지원사업 등의 공모사업을 통해 착실히 기반을 다지는 중이다. 경북도와 함께 펼친 융복합 드론 플랫폼 구축사업에서는 페인팅 드론과 검사 드론 등 특수목적 산업용 드론을 개발해 시장 진출을 앞두고 있다.◆드론산업의 현주소2023년 김천시 개령면 덕촌리 일대에 완공될 '지역거점 드론 실기시험장(6만5천㎡)'은 국내 최초로 비가시권 비행 시험장 기능까지 한다. 드론 실기시험장(90×90m) 4면, 고정익 드론 이·착륙 활주로(200×20m) 1면, 헬리패드, 정비동, 운영센터, 통제센터 등을 갖추고 있다. 한국교통안전공단은 실기시험장과 드론교육원을 함께 운영한다. 김천시 관계자는 "드론 조종 자격을 취득한 사람은 2018년 1만5천678명, 2019년 3만402명, 2020년 3만5천489명 등으로 급증하는 추세이며, 관련 시장도 급격한 성장세를 보인다"며 "현재 전국에 있는 10곳의 드론 실기시험장은 모두 가시권 비행 자격 검증만 하며, 비가시권 비행 시험장은 김천 드론 실기시험장이 유일하다"고 설명했다. 그는 "연간 1만3천 여명의 응시자가 찾을 것"으로 예상했다. 김천시는 지난 3월 국토부의 '2022년 드론실증도시 지원사업' 에 선정됐다. 이 사업은 '드론 운행플랫폼 고도화를 통한 드론 물류 및 응용서비스 사업화' 를 목표로 한다. 드론 특별 자유화 구역(18㎢)에서 SK플랫닛, SK텔레콤, 니나노컴퍼니 등의 기업이 △드론 운행 인프라 솔루션 실증(모바일 기반 멀티디바이스 관제 시스템 구축, 최적 안전 비행경로 알고리즘 개발, 멀티통신망 실증) △드론 물류 상용화 및 사업화 실증(무인화·자동화를 통한 도심형 드론 물류 서비스 실증) △재난 감시 및 농작물 식생정보 실증 등을 과제로 수행하고 있다. 시는 이 사업을 통해 △도심지 장거리 및 도시 간 물류 운송 실증을 통한 UAM(도심항공교통)·UTM(무인항공교통관리) 연계 사업화 △시계열(時系列·관측치 또는 통계량의 변화를 시간에 따라 계열화) 농작물 식생 분석 및 농업용 빅데이터 서비스 사업 실증을 통한 기관(지자체 농업기술센터, 농업진흥청, 농협 등) 상용화 추진 등의 기반을 마련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지난 6월 종료된 '디지털 물류 서비스 실증 지원사업'은 국토교통부 공모사업으로, 김천시는 이 사업을 통해 드론, 로봇 등을 활용한 라스트마일(Last Mile· 광역대 전송망이 가정이나 회사로 통하는 마지막 1마일) 배송을 실증했다. 산간지대 주민들의 물류 여건 개선과 폭증하는 물동량에 시달리는 택배 근로자들의 작업 환경 개선 등을 위한 이 사업에서 시는 드론과 자율배송 로봇을 통해 물품을 최종 목적지까지 운송하는 시스템을 구축했다. 시는 앞으로 라스트마일 배송 지역을 확대하는 한편 내년에 완공되는 한국도로공사 스마트물류센터와 연계하는 등 운용 범위를 넓혀갈 계획이다. 경북도, 김천시, 경북테크노파크는 공동으로 '경북 김천혁신도시 융복합드론 플랫폼 구축'사업을 추진, 고난도 페인팅 드론과 검사용 드론을 개발했다. 김천혁신도시 공기업 한전기술과 경운대, 김천대, 민간 업체 등에 의해 개발된 드론은 고층 구조물이나 원자로 등 극한의 환경에서도 자율비행하며 6축 관절을 활용해 도장을 하고, 표면 검사와 도막(도료를 도포해 형성되는 피막) 두께까지 측정할 수 있다. ◆탄력받은 드론산업, 그러나2018년 3월, 김천시가 발주한 '드론산업 지역특화 방안 연구' 용역을 마무리한 한서대 산학협력단은 결과 보고서에서 김천의 드론산업은 김천시의 미래 먹거리 창출을 위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보고서는 시가 지역 내 공공기관과 연계해 드론의 지역 특화산업화 및 경제발전에 기여할 전략을 도출하고, 사업화 방향 및 방안도 제시했다. 이를 위해 (김천)혁신도시 한국도로공사 및 한국교통안전공단 등 공공기관의 특성과 역량을 최대한 활용해 공공수요 기반의 드론을 개발하고 시장 육성 등의 방안을 마련할 것을 제안했다. 드론산업 활성화를 위한 각 기관의 역할도 담았다. 도로공사는 도로교통용 드론 개발의 주체적 역할을 해야 하며, 교통안전공단은 기능적으로 김천시의 드론산업을 지원해야 한다는게 핵심이다. 김천시는 김천혁신도시 공공기관의 특성과 장점을 바탕으로 드론산업 활성화를 추진하고 있다. 이와관련해 보고서는 "도로교통용 드론으로 산업을 일으키는 일은 도로공사 등 연관 기업들의 협력 없이는 불가능하다"며 "도로공사의 도로교통용 드론은 김천시 드론산업을 연구하게 된 배경이고 필수 전제조건으로, 도로교통용 드론 개발에 관한 양측의 명시적인 협약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하는 등 김천의 드론산업에 있어 양 기관의 중요성, 특히 도로공사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시가 이 용역을 발주할 시점(2017년)에는 도로공사도 TF를 운용하며 사옥 부근에 드론 아카데미를 설립해 드론 기술을 개발할 계획을 세우는 등 드론산업에 적극적인 모습을 보였다. 경부고속도로 추풍령휴게소에 드론 비행연습장 건립을 검토할 정도였다고 한다. 그 당시 정황을 잘 알고 있는 관계자는 "당시 드론산업은 도로공사에서 (김천시보다) 먼저 추진했다. 시가 발주한 용역도 도로공사의 요청에 따른 것으로 볼 수 있다. 용역의 가이드 라인까지 제시할 정도로 의욕적이었다"며 "김천시가 드론산업에 관심을 가지게 된 동기도 도로공사가 제공했다고 봐야 한다. 도로공사는 도로유지 기능을 가진 드론을 개발해 해외로 진출하는 등 드론을 신수종사업으로 키우려 했다 "고 설명했다. 이렇듯 의욕적이던 도로공사의 드론산업 계획은 문재인 정부에서 임용한 사장이 부임하면서 전면 백지화된 것으로 알려졌다. 시 관계자는 "당시 시장이 드론과 관련해 도로공사 사장을 만나려 했으나 여의치 않았다"고 했다. 반면 교통안전공단은 김천시 드론산업의 파트너로서의 역할에 비교적 충실하다는 평가다. ◆드론산업 미래는전문가들에 따르면 드론산업의 효과는 유동인구 증가와 관련 기업 유치 등으로 볼 수 있지만, 그 효과가 당장은 크게 나타나지는 않는다. 드론 제작사들 가운데 상당수가 스타트업 기업으로, 드론을 만들어도 날리며 실험할 곳이 없는 실정이다. 이런 점에서 김천은 경쟁력이 있다. 이미 드론 공역이 확보돼 있는 데다, 시험장까지 있어 이들 기업 유치에 상당히 유리하다. 특히 비가시권 드론 제작 업체는 유일한 시험장이 있는 김천을 더욱 선호할 것으로 전망된다. 장거리를 운항하는 드론 택시의 경우 배터리 용량 문제로 운항 중에도 중간중간에 내려 충전해야 하는 만큼 입지적 조건이 좋은 김천은 중간 기착지로 널리 활용될 수도 있다. 박현주기자 hjpark@yeongnam.com실증을 앞두고 있는 농업용 드론. 김천시 제공김충섭 김천시장이 한국교통안전공단의 '첨단 드론 전시회'에 참석해 드론을 살펴보고 있다. 김천시 제공지역거점 드론 실기시험장 조감도.
[골목부터 바닷길까지, 포항 힐링로드 .2] 상생의 길, 철길 숲…수십만 그루 나무 벗삼아 아이들 웃음소리가 철길 위를 달린다
기차가 달리지 않는 기찻길이다. 그 길에 사람이 걷고 자전거가 달린다. 꽃들이 피어나고 나무들이 그늘을 넓힌다. 분수가 시원하게 대기를 적시고 멋진 조형물들이 성큼 다가온다. 그리 오래지 않은 옛날 이 길은 동해남부선이었다. 경주 부조역을 떠난 기차가 포항 남부 효자역을 거쳐 포항역까지, 포항 시내를 가르며 달렸다. 그 시간이 100여 년이다. 2015년 4월, 도심에 있던 포항역이 고속철도(KTX) 신설과 함께 외곽지인 북구로 이전했다. 역들은 문을 닫았고 기찻길은 할 일을 잃었다. 가로등도 없고 인적도 없었다. 그런 철길이 2018년 숲길로 변신했다. 16만4천 그루의 나무를 심었다. 산책로를 만들고 편의시설과 휴식 공간·놀이 공간도 조성했다. 철길 숲이다. 이제 기차가 달리지 않는 기찻길에 평온한 활력과 청량한 호흡이 가득하다. 효자역서 옛 포항역 인근 서산터널까지 폐철길 이용해 만든 총 4.3㎞ 도시숲 동아시아 최초로 英 그린플래그 인증'불의 정원' 용광로처럼 안 꺼지는 불꽃 하늘 향해 곧 발차할 듯한 증기기관차 기찻길옆 나즈막이 줄지은 지붕 등 눈길◆철길 숲, 어울누리길 철길 숲의 영문 명칭은 '포레일(Forail)'이다. 숲을 뜻하는 'Forest'와 기찻길을 뜻하는 'Rail'을 합해 만들었다. 총 길이는 4.3㎞로 어울누리길·활력의 길·여유가 있는 띠앗길·추억의 길 등 4개 구간으로 이어진다. '어울누리길'의 시작은 효자역이다. 효자역 앞에는 두 개의 선로가 있다. 하나는 끊어져 철길 숲이 되었지만 옆의 철길에는 여전히 열차가 오간다. 동해선의 지선인 괴동선으로 포스코로 향하는 화물열차들이다. 괴동선은 효자역에서 분기해 잠시 어울누리길과 나란히 달린다. 그래서 본격적인 '어울누리길'의 출발점은 효자교회 앞 효자동 당산목인 팽나무다. 당산목 앞에 '철길 숲'이라 새겨진 커다란 표석이 있다. 화물열차가 지나간다. 괴동선과 철길 숲은 안전담장을 설치하고 구릉을 조성해 분리해 놓았다. 위풍당당한 팽나무 당산목을 에둘러 산책로가 나아간다. 금세 말간 얼굴의 비석 하나를 만난다. '학생 전희 효자비(學生 田喜 孝子碑)'다. 전희는 근세 조선 시대 연일면 임강촌(臨江村)에 살았다는 효자다. 효자동이라는 마을 이름이 그로부터 비롯되었다. 효행으로 칭송이 자자했던 그는 학문과 덕망도 높아 효공거사라 불렸고, 부모님의 시묘(侍墓)살이를 할 적에는 호랑이가 그의 곁을 지켰다고 전한다. 전희의 효행은 조선왕조실록과 지역의 역사지에 기록되어 있는데 그의 효성이 조정에까지 알려져 효자각이 내려지고 이 마을을 효자동이라고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세월이 흐르는 동안 효자각은 허물어지고 비석만 남았지만 높다란 비신은 저릿하게 맑다. 당산목에서 조금만 나아가면 철길이 보인다. 아이가 아장아장 철길을 걷는다. 철길은 산책로와 나란히 놓여 있기도 하고 산책로와 하나 되기도 하고 꽃밭을 가로지르기도 한다. 곳곳에는 옛 동해남부선 선로에 사용되었던 신호기와 건널목 차단기·철도 제어 관련 박스 등이 남아 있다. 산책로 옆으로 물결 모양의 '댄싱 프로미너드'가 리드미컬하게 흐른다. 자전거나 인라인을 위한 길이고 아이들에게는 재미난 놀이동산이다. 레일을 따라 효자교 아래를 지난다. 다리 아래는 거대한 거울이다. 해가 지면 조명이 더해져 화려한 모습으로 변신한다. 효자교 위에 오르면 철길 숲을 내려다볼 수도 있다. '어울누리 숲'을 지난다. 기존의 양호한 수림대를 활용한 숲이다. 자매원 건널목을 건넌다. 역무원이 근무하던 건널목 신호장은 포레일 이용자들을 위한 안내센터와 화장실이 되었다.◆불의 정원과 활력의 길건널목을 건너면 '기억의 숲'이 시작된다. 불꽃이 보인다. 환영이 아니라 진짜 불이다. 이 불은 2017년 숲 조성 공사 중 천연가스가 분출하면서 생겨났다. 도심 한복판에서 천연가스라니! 하늘로 치솟은 불길에 시민들은 크게 놀랐다. 불은 진화작업에도 꺼질 줄 몰랐다. 비가 오는 날에도 활활 타올랐다. 일주일, 한 달, 그렇게 불은 꺼지지 않았다. 계획은 수정되어 '불의 정원'이 만들어졌다. 불이 타오른 지 벌써 5년이 넘었다. 제철소의 용광로처럼 꺼지지 않는 불꽃은 철강도시 포항의 이미지와 합쳐져 명물이 되었다. 불의 정원을 지나면 폭포와 분수대가 있는 암벽 위에 머리를 치켜든 증기기관차가 보인다. 일제강점기 때부터 운행되었던 미카 3형 129호 모형이다. 하늘을 향해 곧 출발할 것만 같은 검은 미카는 이곳에 기차가 다녔던 시절을 떠올리게 한다. 대잠고가차도에 다다른다. 차도 아래는 '한터마당'이다. 널찍한 공간에 시원한 그늘이 드리워져 있다. 보드를 타는 청년들이 묘기를 부리고 아이들이 술래잡기를 한다. 여기서부터 '활력의 길'이다. 철길 숲을 중앙에 두고 한쪽은 급경사의 산지, 또 한쪽은 복잡한 도심지다. 그래서 길은 조금 좁아지지만 큰 조형물들이 공간감을 만들어낸다. 커다란 사람이 열심히 걸어간다. '내일로'라는 작품이다. 그가 향하는 길이 광장으로 열리면서 '만남'이라는 작품과 마주한다. 이용덕 작가와 포스코 근로자들이 협업해 만든 작품으로 철판 200장을 쌓아 올려 조각했다. '만남' 뒤에는 음악과 함께 바닥 분수가 뿜어져 나온다. 분수에 폭 젖은 아이들이 물방울처럼 뛰어다닌다. 음악분수 뒤로 오벨리스크 모양의 거대한 조형물이 햇살을 가르고 있다. '신 철기 시대'라는 작품으로 철에 문명을 덧대어 새로운 철강의 시대로 나아가려는 바람을 담았다. 오벨리스크의 가슴에 포항에 있는 철강기업들의 마크가 새겨져 있다. 음악분수를 지나면 본격적으로 길이 좁아진다. 꽃에 물을 주는 소녀 천사와 피노키오 등 숲속의 조형물들이 동화처럼 펼쳐진다. 숲에는 아이들의 놀이터도 있다. 갑자기 차가운 안개가 쏟아진다. '쿨링 포그시스템'이다. 폭염과 미세먼지에 대응하는 '쿨링 포그시스템'은 음악분수대에서 어린이공원까지 100여m와 놀이터 2곳에서 자동으로 작동된다. 초록 숲에 퍼지는 안개는 환상적이다. 가파른 산이 약간 느슨해진다. 산자락에 그린웨이 생태텃밭이 조성되어 있다. 길가에 과거 이 지역을 다스렸던 현감과 관찰사들의 공덕을 기리는 선정비와 영세불망비가 늘어서 있고 그 너머로 이동고가차도가 보인다.◆더 멀리, 푸르게 자라나는 철길 숲'여유가 있는 띠앗길'은 이동고가차도에서 용흥고가차도까지 1.2㎞ 길이다. 평균 너비 5m 이내의 협소한 공간으로 주민과 직장인을 위한 산책공간으로 계획되었다고 한다. 슬레이트 지붕의 낮은 집들이 기찻길 옆으로 이어진다. 커뮤니티 공간인 쌈지마당도 군데군데 자리한다. 오래된 풍경 속에 철길 숲은 서정적으로 자리해 있다. '추억의 길'은 용흥고가차도에서 구 포항역을 거쳐 서산터널까지 1.4㎞ 이어져 있다. 구옥과 새로운 건물들이 낯설지 않게 공존하고 좁고 아늑한 길에 키 큰 나무들이 인상적인 길이다. 여기까지가 철길 숲 4.3㎞다. 끝이 아니다. 철길 숲은 2011년에 완공된 서산터널에서 우현동 유성여고까지 구간의 도시 숲과 연결되어 있다. 최근에는 효자역에서 연일읍 유강리 상생인도교까지 이어지는 2.7㎞ 구간에 철길을 따라 숲과 산책로를 만들었다. 유강리에서 우현동까지 전체 철길 숲은 9.3㎞에 이른다. 포항시는 유성여고에서 장성·환여·두호동까지 숲길을 확장할 계획이다. 그러면 남으로는 형산강에, 북으로는 영일대해수욕장과 맞닿게 된다. 포항 철길 숲은 포항의 도심·해양·산림이라는 3대 축을 녹색 네트워크로 연결해 산업화시대에 형성된 도시구조를 지속 가능한 녹색 생태도시로 변화시키기 위한 '그린웨이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추진된 사업이다. 그 핵심에 철길 숲이 있다. 특히 철길 숲은 '환원'을 기본개념으로 설정하고 시간과 문화·생태·인프라의 환원이라는 4가지 세부개념에 맞춰 설계되었다. 그 결과 철도 100년이라는 역사가 녹아 있는 문화공간이자 도시의 동맥이자 허파로 기능하는 녹지공간으로 완성됐다. '포항 철길숲'은 지난 4월 영국정부 산하 환경단체인 KBT(Keep Britain Tidy)에서 시행하는 그린 플래그(Green flag) 인증을 받았다. 환경을 지키기 위한 공원 및 녹지관리의 모범사례로 세계적인 인정을 받은 것이다. 동아시아 최초다. 지금도 수십만 그루 나무들이 푹푹 숨을 쉰다. 나무들의 깊은 호흡 속에서 아이들은 훨훨 달리고 철길 숲은 쑥쑥 자란다.글=류혜숙<작가·영남일보 부설 한국스토리텔링연구원 연구위원>사진=박관영기자 zone5@yeongnam.com▨ 참고=포항시. 철도통계연보, 한국철도공사, 2009공동기획 : 포항시'철길 숲(Forail)'은 숲을 뜻하는 'Forest'와 기찻길을 뜻하는 'Rail'을 합해 만들었다. 총 길이는 4.3㎞로 어울누리길·활력의 길·여유가 있는 띠앗길·추억의 길 등 4개 구간으로 이어진다.하늘을 향해 날아갈 것처럼 머리를 치켜든 증기기관차. 일제강점기 때부터 운행되었던 미카 3형 129호 모형이다.2017년 철길 숲 조성 공사 중 천연가스가 분출하면서 생겨난 '불의 정원'. 포항제철소의 용광로처럼 꺼지지 않는 불꽃은 철강도시 포항의 이미지와 합쳐져 명물이 되었다.음악과 함께 바닥 분수가 뿜어져 나오는 음악분수는 한여름 더위를 잊게 해준다. 분수에서는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끊이지 않는다.
[대구 주택시장 비전 톺아보기] (5)달성군...대구테크노폴리스, 첨단 주거지 변신 ...도심 외곽 농촌지역은 옛말
대구 달성군은 1995년 경북도에서 대구시로 편입된 후 '상전벽해(桑田碧海)'급의 변화를 보인다. 최근 수십 년 간 도심 외곽의 농촌 지역이라는 인식을 깨고 주거·산업·교통 부문에서 획기적 변화를 일궈내고 있다.◆1995년 대구시 편입 이후 급격한 성장 달성군은 산업의 급격한 성장과 더불어 주거지로 관심을 받고 있다. 과거 대구 산업의 주축은 '성서산업단지'와 '제3산업단지', '서대구공단'과 '비산염색산단'이었다. 여기에 테크노폴리스(이하 텍폴)와 대구국가산업단지가 조성되면서 유입 인구는 급증했다. 특히 1995년 달성군의 대구시 편입은 인구 증가의 매개체가 됐다. 이후 달성군 유가·현풍읍의 텍폴과 구지면 대구국가산단에는 로봇과 물 산업 관련 기업은 물론 미래 모빌리티 관련 연구기관 등 첨단기업 및 연구시설이 줄줄이 들어섰다. 산업부문 성장이 두드러지자 텍폴 등 신도시에 아파트가 대거 들어섰고 인구 유입에 속도가 붙었다. 다사·화원·옥포읍 등 달성군 내 거의 모든 지역에서 꾸준하게 주택건설 사업이 진행됐다. 2012년 18만7천668명이었던 달성군의 인구는 지난 6월말 현재 26만3천297명까지 늘었다. 대구시와 국가통계포털에 따르면 달성군 내 가구 수는 2011년 6만4천851세대였지만 지난해 11만1천334가구까지 증가했다. 10년 새 4만6천483세대나 늘었다. 이 기간 달성군의 인구 및 가구 수 증가 폭은 대구 8개 구·군 중 가장 크다. 최근 10여 년 동안 대구 전체 인구가 250만명대에서 230만명대로 추락한 것과 비교하면 괄목할 만한 변화다. 특히 달성군은 신축 아파트가 많고 도심에 비해 가격도 저렴한 편이어서 신혼부부 등 젊은 층의 유입이 많았다. 2012년 3.3㎡당 621만원이었던 달성군 아파트 분양가는 지난해 3.3㎡당 1천365만원까지 치솟았다. 10년 남짓한 기간에 분양가가 두 배 이상 올랐지만, 대구지역 평균 아파트 분양가(지난해 기준·1천682만원) 보다 저렴하다. ◆자연환경 및 교통여건 개선 강점 비슬산과 낙동강 등 수려한 자연환경은 달성군의 강점이다. 대구 1호 관광지로 지정된 비슬산은 관광객으로 북적인다. 수상 레저공간으로 활용 중인 낙동강은 사문진나루 등을 통해 신문물이 대구로 유입되는 창구 역할을 담당했다. 교통여건 개선도 정주 여건 개선에 힘을 보탰다. 2014년 개통한 테크노폴리스 진입도로는 대구 도심과 달성군 남부를 직접 연결해 달성군에 대한 대구시민의 물리·심리적 거리를 단축시켰다. 올해 3월 개통한 4차순환도로도 달성군에 대한 도심 접근성을 높였다. 특히 서대구역과 대구국가산단을 연결하는 대구산업선철도가 2027년 완공 예정이어서 철도교통 부문의 변화도 기대된다. 대구산업선철도는 서대구역과 서재·세천, 계명대, 설화·명곡, 달성군청, 달성산단, 텍폴, 대구국가산단을 잇는다. 부동산업계는 달성군의 주요 주거지를 인구가 집중된 다사·화원·텍폴·가창권으로 구분한다. 다사·화원권은 각각 대구도시철도 1·2호선을 통해 대구 도심과 다름없는 생활권을 형성한다. 다사읍은 성서5차산업단지 조성으로 발전의 토대를 마련했다. 심인고까지 이전하면서 교육여건도 개선됐다. 화원읍 역시 도시철도 1호선 설화·명곡역 개통으로 정주 여건을 좋아졌고, 대구교도소 이전에 따른 후적지 활용도 기대된다. 대규모 아파트 단지가 조성된 텍폴은 첨단 주거도시로 변신했다. 인근에 DGIST(대구경북과학기술원)이 자리해 있으며 2013년 문을 연 국립대구과학관은 학생과 방문객들로 문전성시를 이룬다. 가창면은 수성구와 인접한 자연 속 주거지로 각광받는다. 신천대로 및 4차순환도로를 통한 접근성 덕분에 대구시민의 힐링 쉼터로 각광받고 있다. 하빈면은 대구교도소 이전을 계기로 발전을 꾀하고 있고, 옥포면은 옥포보금자리주택지구 조성으로 도시화 물결에 동참했다. 논공읍은 달성군 청사가 자리해 지역 행정의 중심으로, 구지면은 국가산단 조성에 따른 인구 유입으로 변화의 전기를 마련했다. 임훈기자 hoony@yeongnam.com신 주거입지로 변신한 대구 달성군 테크노폴리스 전경.오는 2027년 완공 예정인 대구산업선철도 노선도.영남일보 DB
2022.07.10
[경북지역문제해결 플랫폼] 1.주민주도 경북지역활성화 리빙랩
내가 사는 지역에서 '이 점은 개선되었으면 좋겠는데'라는 생각을 해본 적 있는가. 경북지역의 다양하고 복잡한 사회문제를 주민들이 직접 참여하여 발굴하고 해결할 수 있는 시스템이 있다면 어떨까. 지역문제해결플랫폼 사업은 지역의 다양한 문제를 발굴하고 해결하기 위해 민간·지자체·공공기관 등이 참여해 지역단위의 협업체계를 구성하고 운영하는 협업플랫폼이다. 지역문제해결플랫폼은 지역주민의 자발적이고 자율적인 참여를 통해 지역의 복잡한 사회문제를 새로운 관점에서 이해하고 해결방안을 모색하여 지역의 다양한 구성원이 가지는 여러 자원을 연계하고 협업을 통해 주민체감도가 높은 문제해결을 해나가는 방식이다. 2018년 행정안전부가 대구·강원지역의 시범사업을 추진했고 2022년에는 경북, 전북, 제주 신규지역을 포함해 전국 13개 시·도에서 사업이 추진되고 있다. 올해 신규지역인 경북지역문제해결플랫폼은 경북도 개발공사와 함께 지역의 정주여건에 관해 관심을 가지고 해결을 시도하는 두 워킹그룹과 리빙랩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1> 주민주도 경북지역활성화 리빙랩◆ 내가 나고 자란 동네, 기억하고 기록하는 '갈전리 이야기'갈전리는 2016년에 이 곳으로 경북도 청사가 이전해와 큰 변화를 맞고 있다. 신청사 주변으로 행정구역명 '갈전4리' 신도시가 들어섰으며 공동주택, 오피스텔이 신축되고 교통과 편의 시설이 늘어나며 입주하는 사람이 날로 증가하지만, 특성상 잠시 거처하는 사람이 많아 지역에 대한 관심도가 높지 않다. 갈전리 이야기는 주민의 내 고장 가꾸기에 대한 애정과 관심을 유도하고 지역에 대한 자긍심을 고취하기 위한 프로젝트로 갈전리의 과거와 현재, 미래의 이야기를 조사, 발굴, 기록하여 갈전리의 정체성을 새롭게 확립하고 원도심과 신도시가 문화적으로 교류할 수 있도록 자원을 만들고 있다. ◆ 주민 행복 동네 첫 걸음 사회적기업 '행복공간'주택단지를 지나다 발견한 쓰레기더미. 주변 악취와 벌레로 눈살을 찌푸린 경험이 한번은 있을 테다. 사회적기업 행복공간에서는 이 클린하우스에 UV램프와 무인 자동화 방역, 소독 시스템을 도입해 주민이 유해충과 악취, 바이러스 같은 유해환경으로부터 안전하게 생활할 수 있도록 도움이 되면 좋겠다는 아이디어를 제시하였고 이를 비즈니스 모델로 만들어가고 있다.이처럼 경북지역 주민 혹은 사회적 기업 등 시민이 직접 지역의 다양한 문제를 제안하고 이를 해결할 수 있도록 지역의 민간, 지자체, 공공기관 등이 가지고 있는 인력, 기술, 재정 등 여러 자원을 연계하여 지역의 문제를 협업해 주체적으로 해결해 나가는 새로운 사회문제 해결 방식이 지역문제해결플랫폼이다. 다양한 주체들과 공공기관, 행정기관 등이 지역 단위의 거버넌스를 형성해 경북의 다양한 의제에 대해 창의적이고 지속가능한 문제해결의 경험을 만들어가고 협업을 통한 지역 문제해결의 출발을 기대한다.박종문기자 kpjm@yeongnam.com지난 5월 경북도 개발공사 회의실에서 경북도개발공사, 경북시민재단, 경북지역문제해결플랫폼 관계자들이 주민참여 리빙랩 협약식을 갖고 단체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경북지역문제해결플랫폼 제공
[노벨문학상 산책] 세이머스 히니의 첫 시집…'어느 자연주의자의 죽음'
1972년 1월30일 데리의 보그사이드 지역에서 '피의 일요일(Bloody Sunday)'이라 불리는 역사적 사건이 발발한다. 북아일랜드 시민권 협회가 재판없는 구금에 반대하기 위해 조직했던 행진에서 영국군의 낙하산병들이 비무장 시민운동가 13명을 살해하고 12명에게 부상을 입혔다. 모두 가톨릭 신자였다. 이 사건의 문맥은 아일랜드 독립전쟁 기간인 1920년 11월21일에 일어났던 원조 '피의 일요일'과 관련해 소위 IRA가 더블린에서 더블린성의 정보부 소속 무장 영국장교 11명을 살해했을 때, 그 보복으로 영국군은 더블린의 크로크 파크에서 축구 경기를 관람하는 관중 21명을 사살한 역사적 사건과 맞물린다. 북아일랜드 분쟁(The Troubles)이라 불린 이러한 극심한 정치적 사회적 동요의 상황 속에서, 벨파스트에 거주하던 세이머스 히니는 마침내 퀸즈대학의 강사직을 사임하고, 1972년 11월 가족과 함께 북아일랜드를 떠나 남쪽 아일랜드 공화국의 위클로 카운티의 글랜모어 카티지로 이주한다. 북아일랜드 '피의 일요일' 사건 후 남아일랜드공화국으로 떠난 히니총과 폭력에 대한 공포 극복하며 자연 속 서정적 아름다움 그려내23년 뒤 '일상의 기적과 살아있는 과거를…'으로 노벨문학상 수상진심·희망 주는 밝은 어조 눈길…작품속에서 숭고한 삶의 비전 제시23년 뒤 히니는 '일상의 기적과 살아있는 과거를 찬양하는 서정적 아름다움과 윤리적 깊이의 작품'으로 1995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한다. 아일랜드 출신 노벨문학상 수상작가 판테온에 W. B. 예이츠, 조지 버나드 쇼, 사무엘 베켓과 함께 나란히 자신의 이름이 기록된 것에 대한 소감을 묻자, 히니는 "산맥 아래 작은 산기슭에 있는 것과 같다"라고 겸손히 대답한다. 조그마한 나라 아일랜드 문학의 산맥에 노벨문학상 수상자가 4명이나 있다는 사실은 남북의 문제가 공통분모인 한국에서 숙고해보아야 할 문제인 것 같다. 최초의 시집인 '어느 자연주의자의 죽음'에 처음 등장하고 히니의 시 가운데 가장 많이 알려진 시 '땅파기'에서 시인인 화자는 펜으로, 아버지와 할아버지는 삽으로 작업한다. 시인은 탐구가이자 고고학자로서 자신의 땅의 도면을 그리고 전통을 발굴하며 다시 써내려 간다. '내 검지와 엄지손가락 사이에펜촉 만년필이 놓여있다. 총의 방아쇠를 쥔 듯 가지런히.창문 아래에서는 자갈밭에 꽂히는깔끔하면서도 거친 삽질 소리가 들린다.아버지가 땅을 파고 계신다. 나는 내려다본다. (DN 3)'감자 이랑과 늪지의 어두운 땅속을 파내려 가는 아버지와 할아버지의 현실적 작업에서, 히니는 고고학적 상상력으로 북아일랜드 정신적·역사적·문화적·영성적 공동체의 현실적 토착 토양을 펜으로 파내려 가고자 하는 욕망과 의지를 보이고 있다. 여전히 펜과 총의 이미지가 독자의 뇌리에 남는다. 펜과 총의 이미지로 시작하는 히니의 의식 속에는 총의 비유가 전하는 폭력적인 위험이 잠재해있다. 이러한 이미지는 지뢰와도 같이 단편적으로 폭발적인 이미지로 시집 '어느 자연주의자의 죽음'에 여기저기 심어져 있다. '어느 자연주의자의 죽음'에서는 어린 시절의 자연현상은, 더 이상 목가적이고 낭만주의적인 시선으로 보이지 않는다. '땅파기'에서 언급된 총은 방아쇠가 당겨지면 폭력적인 위험을 상징하여 공포와 두려움을 자아내기 때문이다. 초기의 시인 히니는 폭력의 이미지가 지배하는 북아일랜드 데리에 살면서 자신도 모르는 공포와 두려움에 사로잡히고, 자연은 현실적인 체험에서 생경하고도 낯설게 위협과 공포의 대상으로 다가온다. 이제 낭만주의적 자연주의를 벗어나 새로운 형태의 '자연주의의 종말' '현실의 비전'을 가져다준다. 습지에서 개구리를 보는 시각뿐 아니라 곡식 창고에서, 강둑에서, 우물에서, 개울에서, 그리고 모스반의 사람들에 대해서도 공포가 다가온다. 목가적이라고 생각했던 데리의 모스반의 곳곳의 공간에서 의식의 전환이 일어나는 것이다. 다른 한편으로 어린 시절의 경험은 시인에게 여러 형태의 관찰을 통해 무의식적인 공포증의 원인을 엿보게 해준다. 공포에서 벗어나면 사물을 보는 눈이 달라진다. 공포의 대상을 보는 시각이 달라진 것은, '배움의 진전'에서 제시한 쥐 공포증을 극복하는 과정에서 체득한 것이다. "신중하고도 소름이 돋는 주의를 기울이며" "뚫어지게 바라보는" 새로운 응시의 현실감각을 초기 시에서 구현한 것이다. '블랙베리 따기'와 '버터 만드는 날'에서도 시인은 사물을 바라보는 새로운 응시의 현실감각을 체득한다. 이제 독자들도 시인 히니가 익숙하게 연단 시킨 동식물에 대한 집중력으로 사물을 응시할 수 있다. 사실적인 묘사를 통해 연단된 응시로 독자의 상상력을 일깨워 자연현상과 인간, 물고기, 폭포에 대해서 바라볼 수 있게 된다. 응시와 연단을 통한 예술적 재현의 사례를 '아란섬의 싱' '성 프란체스코와 새들' '조그마한 마을에서' 3편의 시에서 찾아본다. '아란섬의 싱'에는 아란 섬의 사방의 바람이 소금으로 그 날카로움이 더해지고, 땅을 깎아 내려가며, 절벽을 깎기도 한다. 아일랜드의 극작가 존 밀링톤 싱(John Millington Synge·1871~1909)은 아란 섬의 '영감'의 바람과 함께하며 항상 머릿속에는 작품을 구상하며 '소금 바람으로 다듬어지고' 연마되고 감정의 격동 속에서 '통곡하는 바다에 담긴 펜촉'으로 글을 써 내려가는 천재적이고 날카로운 비평적 시각을 지닌 작가가 된다. '성 프란체스코와 새들'에서는 1209년 가톨릭 프란시스칸 수도회의 설립자인 아시시의 성 프란시스(St. Francis of Assisi·1191~1226)가 새들에게 사랑을 전파하는 언어는 새로운 신비로운 의사소통의 선물로 재창조되어, '날개로 춤을 추고, / 투명한 기쁨을 위해 놀며 노래하는' 날개 달린 단어가 되어 새와 함께 춤을 춘다. 사랑의 믿음을 가진 이들의 진심과 희망을 주는 빛나는 밝은 어조가 바로 독자의 마음을 사로잡을 것이라는 비전을 제시한다. '조그마한 마을에서'에서 반 고흐(Van Gogh)와 살바도르 달리(Salvador Dali)풍의 독특한 스타일로 풍경화를 그리는 초현실주의 화가 콜린 미들톤(Colin Middleton·1910~1983)은 총처럼 장전된 돼지털 쐐기로 큰 브러시 윤곽선과 세척을 사용하여 바위 안의 수정이 나타날 때까지 화강암과 점토를 구별하여 쪼개어, 석재의 그라운드가 더 선명하게 정의되고 배경이 고정될 때까지 가장자리를 연마한다. 마지막에 위치한 프레임 시 '나만의 헬리콘산'에서 우물은 화자에게 시적 영감의 원천을 제시한다. V자 모양으로 두 갈래로 갈라진 개암나무 막대로, 목표장소를 빙빙 돌다가 가야금 줄을 퉁기듯 개암나무 가지의 떨림으로 물소리의 튕김을 감지하는 '수맥 탐지자(The Diviner)'처럼, 안나 스위르(Anna Swir)의 '세상의 목소리를 포착하는 안테나'처럼, 시인 히니는 자신의 잠재의식과 집단적 잠재의식 사이(in-between)의 안테나가 되어 영감의 물줄기를 찾아낸다. 이제 히니의 시는 우물이라는 제한된 공간의 증폭된 소리와 같이 자신의 시적 목소리로 '어둠을 메아리치는' 시적 소명을 결단한다. 이후 수십 년 동안 북아일랜드의 사회적, 정치적인 동요와 소용돌이를 목격하고 시적인 현실의 비전을 재현하여 아일랜드 전역 그리고 전 세계적으로 숭고한 어둠을 파헤쳐 메아리쳐 울려 퍼지게 할 것이다. 김영민 (동국대 명예교수)공동기획 : KNU경북대학교 인문학술원 HK+사업단 김영민 교수는 동국대 영어영문학부에서 '현대영미시' '아일랜드 문학' '캐나다 문학' '정신분석학' '비평이론' '포스트모더니즘' '초국가주의' '비교문학' '세계문학' '디지털 인문학' 등을 강의해왔으며, 1998년에는 미국 코넬대 강의 교수로 한국학을, 2011~2014년에는 버지니아대학 객원교수로 동아시아 관련 연구를 했다. 2016년에는 동국대 연구 우수 교수, 2019년부터는 동국대 명예교수로서, 2019년부터 현재까지(2022) 중국 항주사범대의 Jack Ma Chair Professor로 영문학, 비교문학과 세계문학, 트랜스 미디어와 디지털 인문학의 융합과 통섭의 문맥에서 미래인문학에 관한 강의와 연구를 해오고 있다. 동국대 국제교육원장, 인문대학장, 한국사립대인문대학장협의회 회장을 역임하면서 트랜스미디어세계문학연구소와 디지털인문학 LAB을 설립해 교육부와 한국연구재단의 '초국가주의와 문화번역'(2009~2011), '트랜스미디어, 디지털인문학, 세계문학의 융합의 미학'(2017~2020), '기술과 인문학의 융합의 미학과 통섭의 윤리'(2020~2022) 등 미래인문학에 관한 과제를 수행하고 있다. 또 교육부·한국연구재단에서 세계인문학포럼 추진위원 및 운영위원, 인문학대중화사업 운영위원, 학술지발전위원회 발전위원 등을 수행하였고, 대산문화재단 자문위원, 부산영화제(BIFF)콘퍼런스조직위원장 등을 역임했다. 한국영어영문학회, 한국라깡과 현대정신분석학회, 한국예이츠학회의 회장, 한국영어영문학회 저널 편집위원장(2013~2021), 한국동서비교학회 편집위원장(2022~)을 역임했다. 국제윤리비평문학협회(IAELC), 국제아일랜드문학협회(IASIL) 부회장, 국제비교문학협회(ICLA), 국제번역과문화간연구협회(IATIS), 국제W.B.예이츠학회, 국제에즈라파운드학회의 집행이사직을 수행 중이다. 주요 저서로는 '에즈라 파운드: 포스트모던 오디세이아', '예이츠, 아일랜드, 그리고 문학'(공저)등이 있다.2009년 예이츠 서머스쿨에서 아일랜드 노벨문학상 수상자 세이머스 히니(오른쪽)와 함께.김영민 (동국대 명예교수)
2022.07.08
[인구절벽시대 우리 지역 우리가 지키자 .2] 인구팽창 상징 달서구 주춤…달서구 핵심산업 제조업 위축…대구 순유출 인구 70%나 차지
대구 달서구는 1988년 출범한 대구시 8개 구·군 중 가장 늦둥이 지자체이지만, 단기간에 비(非)수도권 자치구 중 인구가 가장 많은 자치구로 성장했다. 지금도 대구시민 4명 중 1명은 달서구에 거주할 만큼 대형 지자체다. 하지만 최근 10년 새 '인구 문제'는 달서구의 근심이 되고 있다. 2013년 최고 61만여 명에 달하며 정점을 찍었던 인구가 속절없는 하강 곡선을 그리고 있는 것. 행정안전부 주민등록인구통계에 따르면 지난해 12월 기준 달서구 인구는 54만4천926명이다.◆달서구 인구 감소 왜?출범 당시 인구 28만여 명이던 달서구는 월성지구와 상인·성서·대곡·용산·장기지구 등에 대단지 아파트가 들어서면서 주거타운으로 급부상했다. 하지만 시간이 흘러 초창기 건립된 공동주택이 노후화되면서 인근 달성군 신도시 신축 아파트로 대거 이주하는 현상이 빚어졌다. 반사효과를 톡톡히 누리게 된 달성군은 2013년 이후 인구가 매년 증가하고 있다. 2013년 12월 18만4천358명이었던 달성군 인구는 2015년 19만명대가 됐고, 이후 가파르게 상승하면서 지난해 26만2천451명을 기록했다. 달서구 인구정책위원회는 달성군으로 7만여 명이 빠져나간 것으로 보고 있다.달서구를 이끄는 거대한 동력인 성서산업단지 입주 업체와 근로자들도 이런저런 연유로 다른 지역으로 이주하고 있다. 성서산업단지관리공단에 따르면 달성군에 위치한 5차 성서산단을 제외한 달서구 소재 1~4차 성서산단의 2019년 1분기 총 고용인원은 4만8천443명이었다. 그러나 2020년 4만6천81명, 지난해 4만4천326명, 올 1분기 4만3천872명으로 줄어들었다. 공단 관계자는 "규모가 있는 기업들이 달성군 테크노폴리스와 국가산단 등 추후 신설된 인근 산단으로 나가면서 덩달아 근로자 유출이 있었다"고 전했다.대구를 아예 이탈하는 사례도 적지 않다. 동북지방통계청에 따르면 올 1분기 대구지역 인구는 전입 인구보다 전출 인구가 많아 3천91명이 순유출됐는데, 이 중 2천186명(70.7%)이 달서구 주민이었다. 전년 같은 기간에도 대구의 전체 순유출(7천518명) 중 절반(51%)인 3천841명이 달서구에서 빠져나갔다.떠나는 주민들은 고향을 등지는 가장 큰 이유로 '일자리'를 꼽는다. 달서구 출신 박모(29·부산 부산진구)씨는 "취업 때문에 고향을 떠나 타지에 자리를 잡았다. 취업 관련 사이트만 봐도 서울·경기에 일자리가 편중돼 있다. 최근 부산도 일자리 문제가 심각하지만, 대구는 부산보다 더 심각하지 않나"라고 했다. 그는 일자리 문제로 인해 다시 돌아오기 힘들 것 같다고 했다. 박씨는 "대구보다 팍팍한 삶이고, 가족·친구들과 떨어져 지내니 외로움도 크다"면서도 "하지만 대구에서는 원하는 직장이 보이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경제적 여건이 충족되지 않는데 어떻게 돌아가나. 수도권뿐만 아니라 부산만 해도 대구보다 경제·문화 인프라가 잘 갖추어져 있다. 특히 달서구는 제조업 관련 회사가 많아 일자리가 한정적이다. 일자리 모델이 조금은 다양했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대구시 청년정책조정위원회 위원인 박준우(31) 청년정책연구플랫폼 대표는 "결국 청년들은 일자리 다양성이 떨어진다는 이유로 고향을 떠나가게 된다"며 "달서구의 핵심산업은 제조업인데 경기가 위축되면서 감소하고 있고 상대적으로 집값은 오르고 있다. 청년의 고용 불안정도 심화되고 있다"고 지적했다.타지行 가장 큰 이유는 일자리"대구에선 원하는 직장 안보여"달서구 5개년 계획 효과 미흡정주 인프라에 예산투입 지적◆달서구 인구 유출을 막아라인구 유출이 가속화되자 위기에 내몰린 달서구청은 대책 마련에 팔을 걷어붙였다. 달서구청은 2019년 5월20일 대구시 8개 구·군 중 최초로 '인구정책위원회'를 구성했다. 지역 내 인구문제에 대한 근본적 해결책을 모색하기 위한 위원회다.'인구정책 5개년 종합계획'(2019~2023년)도 발표됐다. 핵심과제는 △일자리 △결혼 △출산(육아) △정주 여건 △고령화 정책이다. 즉 지속 가능한 일자리를 창출하고, 결혼 친화 정책과 출산·육아대책을 통해 가족공동체를 회복하면서 주민을 정착시키겠다는 것에 방점을 찍었다.위원회는 '일자리 문제'를 핵심으로 보고 있다. 지은구 달서구 인구정책위원장(계명대 사회복지학과 교수)은 "데이터를 통해 보면 '일자리'가 어떤 사안보다도 취약하다. 성서산단 가동률도 문제이고, 제조업 선호도가 높지 않은 청년들을 위한 맞춤형 일자리 정책도 필요하다. 아울러 LH(한국토지주택공사)와 협업해 청년이 살 수 있는 주거단지를 조성하는 것도 필요해 보인다"고 조언했다.달서구청이 현재 추진 중인 일자리 정책으론 △청년 일자리 강화책 △지역 특화 맞춤형 상생일자리 창출(디지털, 보건서비스직 여성인력 직무향상 및 취업지원, 제조산업의 스마트 공장 전환을 통한 생태계 개선사업, 스마트 제조산업의 기반이 되는 전문인력 양성 사업 등) △창업 활성화 지원 등이 꼽힌다.관·학 협력을 통한 상호발전도 강화되고 있다. 달서구청 관계자는 "평생 직업교육 활성화를 바탕으로 지역 내 전문대학(계명문화대) 교육이 취업과 정주로 이어지는 선순환 구조를 유도하려는 목적으로 '고등직업교육거점지구'사업을 추진하고 있다"고 했다.이태훈 달서구청장의 경우, '결혼장려정책'을 인구 유출 방지를 위한 핵심 정책으로 꼽았다. 이 구청장은 "근원적인 대책을 강구해야 한다"며 "청년이 직업을 구하는 문제와 결혼하고 가정을 이루는 문제가 시급한데, 특히 결혼과 가정의 가치에 대해 다시금 생각해 봐야 한다. 그래서 결혼장려 정책을 적극 추진하고 있다"고 했다.이 같은 노력에도 달서구 인구 5개년 계획의 종료 시점마저 다가오지만 효과가 크지 않았다는 분석도 나온다. 지 위원장은 "선도적으로 계획을 짠 것이지만, 실질적으로 인구 유입에 영향을 미친 것 같지 않다"면서 "출산장려금 등 복지혜택이 타 지역에 비해 높지 않은 점도 있다. 이벤트성 사업은 없애고 실질적 인프라를 구축하는 곳에 예산을 투입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서민지기자 mjs858@yeongnam.com이동현 수습기자 shineast@yeongnam.com
2022.07.07
[인구절벽시대 우리 지역 우리가 지키자 .2] 포항·상주·영주·영천, 일자리·귀농귀촌 '인구회복' 출산·보육지원 '인구사수' 사활
저출산, 고령화, 청년인구 역외유출 등으로 인한 인구 감소 위기 상황에 직면한 경북 각 시·군이 초비상 상태다. 지속적인 인구 감소는 결국 지역 소멸로 이어질 수밖에 없기 때문에 각 지자체는 '회복'과 '사수'에 중점을 둔 다양한 인구 정책에 사활을 걸고 있다.포항 현금 지원 단기정책서 미래 먹거리 개발 '중장기'선회상주 귀촌인 늘리기·농촌 살아보기 프로젝트 지방소멸 대응 영주 베어링산단 첨단산업 육성 동력 마련·저출산 극복사업 영천 둘째기준 출산양육 장려금 1300만원·난임 시술비 지원◆돌아가자, 50만!·10만!한때 53만명으로 정점을 찍은 포항 인구는 2015년 11월 52만160명을 기록한 뒤, 매달 수십 명에서 최대 수백 명씩 줄어드는 감소세가 지속되고 있다. 위기 상황에서 포항시는 지난해 1월부터 전입자에게 30만원을 지원하고, 파견 기관장 주소 이전 등 대대적인 인구 늘리기 운동에 나섰다. 하지만 인구 늘리기 운동의 효과는 기대치를 밑돌았다. 지난해 말 기준 인구는 50만3천852명으로 사업 시행 전과 비교했을 때 고작 936명이 증가하는 데 그쳤다. 올해 들어 다시 인구는 감소세로 돌아섰고 끝내 50만명이 붕괴됐다.이에 포항시는 현금 지원과 같은 단기적 정책 대신 일자리 창출에 초점을 맞추는 중·장기적 인구 유입정책을 추진하기로 방향을 선회했다. 가장 우선시되는 분야는 일자리 창출을 위한 기업 투자유치와 기업 지원 활성화다. '철강 도시' 명성에 걸맞게 철강산업 기술 개발 프로젝트를 추진한다. 또 새로운 먹거리로 주목을 받는 이차전지산업 선점을 위한 재활용 배터리 생태계 조성 등에도 나선다. 수소연료 전지발전 클러스터 조성, 바이오·헬스 산업 집중 육성 등 양질의 일자리를 만들어 청년 유입을 이끌어 내겠다는 복안이다.이외에도 청년 일자리 육성을 위한 사회적경제 청년일자리, 청년 디지털 일경험 드림사업 등도 추진한다.정주 여건 개선과 보육 지원 확대 등도 병행한다. 복지 파트에서는 출산과 보육·교육 지원, 어르신 일자리 지원 등의 정책을 통해 인구 감소 위기를 극복할 방침이다. 행복주택 건립과 도시재생, 생태하천 복구, 귀농·귀어 지원 등 주민이 머물고 싶은 도시를 만드는 데도 전력을 다한다.포항시 관계자는 "산업구조 다변화 등을 통한 일자리 창출과 교통·의료·교육·문화 등 다양한 분야의 생활 인프라 개선을 통해 인구 유입을 꾀하는 중·장기적인 인구정책으로 전환했다"고 말했다.10만 인구 붕괴 후 2년간 회복하지 못한 상주는 농촌지역의 특성을 고려한 귀농·귀촌에 집중한다. 낙동면 승곡체험마을과 은척면 은자골마을 등 농촌체험마을을 활용, 귀농·귀촌인의 증가를 꾀할 방침이다. 지난 3월부터 5개월간 운영한 승곡체험마을 프로그램을 통해 참가자 3가구 중 2가구(3명)가 정착을 결심했다. 은자골마을에도 참가자 3가구 중 2가구(2명)가 지난 5월 상주에 터를 잡았다. 상주시는 두 곳 외에 모동면 정양마을 등에서도 '농촌에서 살아보기' 프로젝트를 추진 중이다.단기간 인구 회복을 이끌 수 있는 지원도 이뤄진다. 상주시는 인구감소·지방소멸 대응을 위한 실무추진위원회를 구성하고 인구증가를 위한 구체적 청사진을 제시하는 데 시정 역량을 집중하고 있다. 올해부터는 전입지원금의 지원대상을 확대하는 한편 결혼 이주자·이주노동자 등 신규 국적취득자에 대한 지원도 시행한다. 또 결혼장려금과 작은결혼식·입학지원금 지원 등 다양한 인센티브를 통해 인구 유입을 이끌 계획이다.◆반드시 지키자, 10만!10만 인구에 겨우 '턱걸이'하고 있는 영주시는 다양한 민·관 협력 출산장려 정책을 펼치고 있다. 하지만 가파른 인구 감소세를 막기에는 다소 버거운 상황이다.영주시는 지난해 말과 비교해 6개월 동안 인구가 572명이 줄었다. 지난달 말 기준 영주시 인구는 10만1천370명이다. 지금의 감소추세가 이어진다면 내년 하반기쯤에는 상주처럼 10만 인구 붕괴가 현실화할 것이라는 비관적인 전망도 나온다.영주시가 기대하는 것은 SK 스페셜T(옛 SK머티리얼즈), KT&G, 노벨리스코리아, 영주 국가베어링산단 등 대규모 기업 투자유치다. 특히 베어링산단에 대한 기대가 크다. 베어링산단은 내년 상반기 국가산단 지정 고시를 목표로 사업이 순항 중이다. 2027년 산단이 준공되면 영주를 중심으로 한 베어링 국산화 등 첨단산업 육성 동력이 마련돼 직·간접고용 5천명 등 1만1천여 명의 인구 증가와 연간 835억원의 경제유발 효과가 기대된다.출산·보육 지원도 이뤄진다. 지난해부터는 임신부에게만 제공한 엽산·철분제를 지역 가임기 여성 전체로 확대해 지원하고 있다. 또 도내 최초로 산모 건강관리비를 지원, 출산 후 산모가 경제적 부담 없이 마음 편히 산후조리를 받을 수 있는 환경 조성에 힘쓰고 있다.이에 앞서 시는 지역사회가 참여하는 저출산 극복사업에도 공을 들이고 있다. 기업참여 출생아 유아의자 지원 사업(노벨리스코리아), 출생가정 구급함 지원 사업(영주시약사회), 출생아 육아용품 지원 사업 및 유모차 소독기 설치 사업(KT&G) 등 지역 사회와 함께 출산장려 사업을 추진 중이다.영주시와 비슷한 처지인 영천시는 올해부터 출산·양육 장려금을 대폭 확대했다. 올해부터 영천시는 둘째아 기준 출산·양육 장려금으로 1천300만원, 셋째아는 1천600만원까지 지급한다. 또 난임부부 시술비 지원 규모를 최고 150만원까지 확대한다.다만 이 같은 출산 장려 정책에도 불구하고 인구 감소가 지속되면서 일각에서는 출산 정책의 전반적인 패러다임 전환 필요성도 제기된다. 수혜적인 현금 지원에 초점을 맞추는 것보다 일자리 창출 등 머물 수 있는 도시 기반을 조성하는 게 우선이라는 것.지역 청년단체 관계자는 "인구 소멸지역 어디에서나 하는 출산 정책으로는 실질적인 인구 증대 효과를 기대하기가 쉽지 않다"며 "당장 생계가 어려운 상황에서 결혼과 출산을 꿈꿀 여유조차 없다. 젊은이들이 지역을 떠나지 않고 머물기 위해선 양질의 일자리와 상대적으로 저렴한 가격의 아파트 공급 등 사회 구조적 문제부터 해결해야 한다"고 지적했다.이하수기자 songam@yeongnam.com 유시용기자 ysy@yeongnam.com 김기태기자 kkt@yeongnam.com 손병현기자 why@yeongnam.com10만 인구가 붕괴한 상주는 농촌지역 특성을 고려한 다양한 귀농귀촌 프로그램 마련에 나서고 있다. 농촌체험마을 등 '농촌에서 살아보기' 프로젝트를 통해 귀농귀촌 인구 증가를 꾀하고 있다. 승곡마을, 은자골마을 체험 행사를 통해 올해만 4가구가 상주에 정착했다. 농촌에서 살아보기 프로젝트 참가자들이 포도 재배법에 대해 교육받고 있다. 〈상주시 제공〉
[인구절벽시대 우리 지역 우리가 지키자 .2] 상주·영주·영천, 시청 행정조직·교부세 '마지노선' 인구 10만명 붕괴 위기
경북 중소도시 3곳이 존폐의 기로에 놓였다. 시청 행정조직·교부세 등을 결정하는 '마지노선'인 인구 10만 명 붕괴 위기로 내몰린 것이다. 고령화·저출산, 경기침체, 청년인구 유출이란 악순환의 고리 때문이다. 각 지자체마다 온갖 출산 장려책과 인구 유입 방안을 마련하고 있지만, 신통치 못해 소멸 위기가 가속화하고 있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 6월말 기준 상주·영주·영천의 인구는 각각 9만5천490명, 10만1천370명, 10만1천285명이다. 2019년 2월 기준 9만9천844명으로 인구 10만 명이 붕괴된 상주는 2년 간 연속 내리막길이다. 영주·영천 또한 작금의 감소 추세를 감안하면, 내년 하반기쯤에는 10만 명 선이 붕괴될 것이라는 비관적 전망이 나온다. 지방 중소도시에게 '10만 인구'가 갖는 의미는 매우 크다. 2년 내 10만 인구를 회복하지 못하면, 지자체의 조직 규모를 축소해야 하고 , 고위직 직급도 하향 조정된다. 또 중앙정부가 푸는 지방교부세도 줄어든다. 당장 상주의 경우 올해 안에 10만 인구를 회복하지 못하면 현재 3급(부이사관)인 부시장 직급이 4급(서기관)으로 내려간다. 인구 감소로 골머리를 앓는 건 이들 도시만이 아니다. 1995년 도·농 통합 이후 인구 50만명을 유지해 온 포항시는 지난달 말 기준 49만9천854명으로 40만명대로 떨어졌다. 인구 50만 명의 의미도 크다. 자치권의 상당부분이 주어지는 특례시의 지위를 유지할 수 있다. 포항으로서는 발등에 불이 떨어진 상황이다. 2년의 유예기간 내에 인구 회복을 이끌지 못하면 복수 행정구(區) 설치와 행정구별 경찰서·소방서·보건소 설치, 주택 건설·도시계획 권한 일부 위임 등의 특례가 사라진다. 도 관계자는 "사망·유출 대비 출산·유입 수가 적은 악순환의 연결 고리를 끊어야 한다. 각 지자체별로 획기적인 신산업·투자 유치, 출산장려 지원, 보육정책을 통해 소멸 위기를 극복해야 할 절박한 순간이다"고 밝혔다. 양승진기자 promotion7@yeongnam.com상주시청 전경 영남일보 DB지난해 7월 대구 달서구청 대강당에서 열린 '제10회 인구의 날(7월11일) 기념, 인구위기 인식개선 직원 특강' 참석자들이 ‘인구, 결혼, 가족, 미래’ 손피켓을 들고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영남일보DB
2022.07.06
[골목부터 바닷길까지, 포항 힐링로드 .1] 창업가의 길...鐵의 문명·문화·미래…무한한 상상이 현실이 되다
시리즈를 시작하며 = 눈에 띄지 않던 동해안 작은 어촌 마을이 세계적인 철강 도시로 변했다. 그사이 포항은 철강 도시라는 틀에 박혀, 그 안에 내재된 명소와 사람들의 이야기를 잊어버렸다. 다행히 얼마 전부터 포항이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고 있다. 언제부터인가 사람들이 걸어왔던 해안길에 사람이 몰리고, 우리네 눈물겨운 이야기가 잠겨 있는 장기읍성과 죽도시장·구룡포 일본인 가옥 거리가 주목을 받는다. 포항의 역사를 안고 있는 효자동과 중앙동은 도시재생을 통해 낡은 옷을 벗어 버리고 새로운 숨을 쉬고 있다. 낡고 초라했던 골목은 포항시의 새로운 발전을 대변하는 장소가 됐다. 사람들은 그곳에 숨겨진 이야기를 알고 싶어 신발끈을 조여 매고 찾아 구석구석을 누빈다. 영남일보는 새로운 걷기 명소로 떠오르는 포항의 골목과 새로운 핫플레이스에 스토리를 입힌 기획시리즈 '골목부터 바닷길까지, 포항 힐링로드'를 12차례에 걸쳐 연재한다. 박태준 초대회장의 '영일만 철의 꿈'1973년 포항제철소 1고로 최초 쇳물46년후 철의 역사 기록 'Park 1538'철강 불모지서 글로벌 산업체 성장스타트업 요람 '체인지업 그라운드'창업가·청소년 창의력 빚는 용광로형산강이 바다가 되는 영일만에 4기의 고로가 서 있다. 회색빛의 단단한 얼굴로 대양을 향해 선 저 고로들은 대한민국 제철 산업의 신화를 만들어낸 포스코의 얼굴이다. 한국 철강 산업 발전의 꿈은 1960년대 종합제철 건설 계획 수립으로 구체화되었다. 1967년 7월, 포항 영일만이 제철소 부지로 결정되었고 1968년 4월1일, 포항종합제철주식회사의 창업식이 서울 명동 유네스코 회관에서 개최되었다. 초대 회장에 청암 박태준, 최초자본금 4억원, 창업 요원은 39명이었다. 자본도 기술도 경험도 없었다. 게다가 세계은행은 한국의 철강생산에 대해 부정적이었다. 외국의 지원을 전혀 받을 수 없는 어려움 속에서 박태준은 대일청구권 자금을 유용하는 아이디어를 낸다. 마침내 1970년 4월1일 포항제철 1호기 공사가 시작됐다. 박태준은 공사가 진행되는 동안 직원들에게 자주 말했다. "식민지 배상금은 조상의 피의 대가이므로, 제철소가 실패하면 오른쪽으로 돌아 나아가 영일만에 빠져 죽자." 그리고 1973년 6월9일 오전 7시30분, 포항제철소의 제1고로가 이 땅에 최초의 쇳물을 토해냈다.◆포스코의 과거와 현재와 미래, Park 1538그로부터 46년이 지난 2019년, 포스코를 바라보는 자리에 'Park1538'이 착공됐다. 약 1년6개월에 걸쳐 역사박물관·홍보관·명예의 전당이 들어섰다. 건축에는 포스코 강건재 총 807t을 사용하여 철강회사로서의 자부심과 정체성을 세웠다. 동시에 연못을 조성하고, 꽃과 나무를 심었다. 그리고 모든 공간은 푸르른 산책로로 이어졌다. 'Park1538'은 테마파크 형태의 복합문화공간으로 포스코의 과거와 현재·미래를 담은 공간이다. 'Park'는 열린 공간을 의미한다. '1538'은 철이 녹는 온도다. 그 순간 철은 무엇이든 될 수 있다. 이는 철의 무한한 가능성과 포스코인의 열정을 의미한다. 입구에 들어서면 'Park1538' 입체 사인과 함께 연못이 펼쳐진다. 풀꽃들과 수양버들이 연못을 둘러싸고 있고 강원도의 낙락장송부터 제주도에서 온 팽나무까지, 전국에서 온 48종의 다양한 수목들이 수변을 풍요롭게 채색하고 있다. 연못 너머에서 반짝이는 건물은 포스코 역사박물관이다. 철강 불모지에서 글로벌 산업체로 성장한 포스코의 역사를 체계적으로 만날 수 있는 곳이다. 착공식에 관련된 영상도 볼 수 있는데 오늘날의 포스코가 완성되기까지 굉장히 험난했던 과정들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특히 초창기 건설사무소였던 '롬멜하우스'도 재현되어 있다. 당시 사무소는 모래바람 부는 건설 현장에 덩그러니 지어진 목조건물이었다. 낮에는 공사를 지휘하는 사령탑이었고, 밤에는 10명이 채 되지 않는 직원들이 책상을 침대 삼아 담요 몇 장으로 새우잠을 잤다. 건설요원들은 마치 사막전을 치르는 병사들처럼 고된 작업을 이어갔다. 박태준은 공사 부지를 마련하기 위해 열정적으로 뛰어다녔다. 사람들은 그를 보고 "이 흙강아지 같은 분이 사장님이냐"며 놀라워했다. 창업가의 길은 험난했다. 그렇게 탄생한 포항제철은 조업 첫해인 1973년 세계 철강 역사에서 제철소를 가동한 첫해부터 이익을 낸 유일한 기업이 됐다.역사박물관에서 산책로를 따라 나지막한 언덕을 오르면 유려한 곡선이 돋보이는 홍보관이 나타난다. 건물 앞에 무한을 상징하는 조형물이 서 있다. 세계적인 디자이너 론 아라드(Ron Arad)의 작품 '인피니턴(Infiniturn)'으로 '철과 인간의 상상력이 만나 인류 문명을 무한하게 발전시킨다'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 이는 곧 홍보관의 건립 테마이기도 하다. 로비에 들어서면 눈부신 빛의 공간이 열린다. 유리벽에 둘러싸인 중정에는 현대미술의 거장 아니쉬 카푸어(Anish Kapoor)의 작품 '논 오브젝트 폴(Non-object, Pole)'이 전시돼 있다. 모래시계 형태의 매끈한 표면이 주변 환경을 입체적으로 반사하면서 무한히 확장되는 공간감을 느끼게 한다. 갑자기 대리석으로 보이는 벽면에 웰컴 메시지가 뜨더니 홍해가 갈라지듯 벽이 열린다. '철의 문명'존이다. 높이 11m의 360도 원통형 공간은 마치 우주처럼 느껴진다. 그리고 철의 기원부터 인류가 철을 만나며 이룩한 위대한 문명의 이야기가 전신을 에워싸며 흐른다. 철을 만드는 데 있어 반드시 필요한 4가지 자연 요소인 쇠와 물과 불과 바람이 우리의 움직임에 즉각적으로 반응하며 변화한다. 사람의 움직임에 반응하는 인터랙티브 영상 기법이다. 용광로 쇳물이 눈앞에서 흘러내리는 듯 온몸이 뜨거워진다. 압도되어 멍한 채로 '철의 문명'존을 나오면 고요하고 환한 빛의 공간 속에서 은은한 소리가 들린다. '철의 감성'존이다. 천장에 열두 달을 상징하는 둥근 오브제가 매달려 있다. 박제성 작가의 키네틱아트 '해와 달의 시간'이다. 우리가 움직일 때마다 오브제는 자연의 소리를 내며 유영하듯 움직인다. 자연과 인간 그리고 철의 교감이다. 이어지는 '철의 현재'존에서는 365일 24시간 끊임없이 무에서 유를 창조해내는 포스코의 제철 공정을 체험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철의 미래'존에서는 우리 앞에 펼쳐질 미래 도시의 모습을 대형 스크린을 통해 감상할 수 있다. 인간의 상상력을 현실로 만드는 철의 무한한 가능성을 보여준다.홍보관을 나와 구름다리를 건넌다. 키 큰 소나무들의 목덜미를 스치며 곡선으로 달리는 234m 길이의 하이라인 산책로다. 용광로에 불을 지피기 위해 공기를 주입하는 바람의 통로를 형상화했다고 한다. 다리 끝에는 '명예의 전당'이 자리한다. 포스코 창립요원과 역대 CEO·명장(名匠) 등 포스코인의 업적과 정신을 기억하는 공간이다. 구름다리에서 제철소가 내다보인다. 우뚝 선 굴뚝에서 하얀 연기가 솟아오른다. 2019년은 포스코가 누적 조강(쇳물) 생산량 10억t을 달성한 해다. 2022년 현재의 조강생산량은 10.5억t에 달한다. 두께 2.5㎜에 폭 1천219㎜인 열연코일을 만들면 지구와 달을 56번 왕복할 수 있는 길이다. 포스코는 2010년부터 12년 연속 '세계에서 가장 경쟁력 있는 철강사' 1위 자리를 지켜왔으며 전 세계를 누비는 자동차 10대 중 1대는 포스코의 철을 사용한다. 지금 이 순간에도 포스코의 고로는 쇳물을 토해내고 있다. ◆미래를 꿈꾸는 이들의 길구 형산교를 건넌다. 1968년 포항제철의 인프라로 건설된 형산교는 이제 사람과 자전거의 길이다. 무엇보다 포스코를 조망하는 훌륭한 전망대이기도 하다. 새천년대로를 따라 강을 거슬러 오르다 청암로로 들어선다. 청암은 박태준의 호다. 청암로를 중심으로 과학 분야에서 최고의 대학으로 꼽히는 포스텍(포항공대), 국내 유일의 정부산하 로봇전문생산연구소인 한국로봇융합연구원, 국내에 상용화 된 다양한 로봇들을 관람하고 체험할 수 있는 로보라이프뮤지엄 등이 넓게 포진해 있다. 미래를 선도하고 꿈을 향해 나아가는 인재들의 공간이다. 포항공대의 설립자이자 초대 이사장이었던 박태준은 평소 "제철소에서 고된 일을 하는 직원의 자녀 중에 나라를 구할 큰 인물이 나올지 어떻게 아냐"며 직원들의 자녀교육을 매우 중시했다. 그리고 학교를 지을 때는 "강진에도 끄떡없는 1천년 갈 학교를 만들어라"고 지시했다. 내진설계 기준도 없던 시절에 그는 미래의 천년을 생각했다. 포스텍의 도서관 이름은 '박태준학술정보관'이다. 그와 마주보며 '체인지업 그라운드'가 자리한다. 2020년 국내 벤처 스타트업 생태계의 요람을 만들겠다는 포부를 갖고 포스코가 마련한 공간이다. 포스코는 유니콘 기업(기업가치 10억달러 이상 창업 10년 이하 비상장 스타트업)을 꿈꾸는 예비 창업가는 물론 청소년들이 벤처 창업정신에 대한 동기를 부여할 수 있도록 체인지업그라운드를 일반 시민에게도 공개하고 있다. 건물은 건축가 장윤규가 설계했다. 총면적이 2만8천㎡이며 건물 중앙의 2층 로비부터 7층 천장까지 32m를 뻥 뚫어 만든 중앙 홀에 박스형 회의실이 돌출해 있다. 장윤규는 이 공간을 '소통과 영감을 녹여 창의력을 빚는 용광로'라고 했다. 이 새로운 용광로에서 미래의 창업가들이 자유롭게 토론하는 모습을 본다. 밝고 젊은 에너지가 창업의 길을 열고 있다. 글=류혜숙<작가·영남일보 부설 한국스토리텔링연구원 연구위원>사진=박관영기자 zone5@yeongnam.com▨ 참고 포스코 50년사. Park1538 홈페이지공동기획 : 포항시Park1538 홍보관에서 만나는 '철의 문명' 존. 높이 11m의 360도 원통형 공간에서 철을 만드는 데 있어 반드시 필요한 4가지 자연 요소인 쇠와 물과 불과 바람을 주제로 인터랙티브 영상이 화려하게 펼쳐진다.한국로봇융합연구원 내 로보라이프뮤지엄에서는 국내에 상용화된 다양한 로봇들을 관람하고 체험할 수 있다.Park1538은 테마파크 형태의 복합문화공간으로 포스코의 과거와 현재·미래를 담은 공간이다. 수변공원에서 본 역사박물관(왼쪽)과 홍보관.
2022.07.04
[홍준표 시장 시대 '대구 백년대계 설계하자'] (5) 대구시와 지역대학이 지역혁신 이끌어야
중앙정부가 대학에 대한 관할권을 지방정부로 이전키로 하면서 새로 출범한 ‘홍준표 호(號) 대구시’는 지역대학과의 협력 체계 구축이란 새로운 도전에 직면하고 있다. 지방정부와 지방대학간의 협업이 시대적 과제가 된 것이다. 윤석열 정부는 국정과제의 하나로 '이제는 지방대학시대'를 표방했다. 이어 지역대학에 대한 행·재정 권한을 중앙정부에서 지방자치단체(지방정부)로 위임하고 지자체, 지역대학, 지역 산업계가 참여하는 ‘(가칭)지역고등교육위원회’를 설치키로 한 바 있다. 지방정부와 지역대학에 확고한 자율권을 부여해 지역혁신을 스스로 도모하라는 의미다. 지역 전문가들은 차제에 대구시의 풍부한 정책수립 및 집행기능에다 지역대학이 보유한 인적·물적 자원을 결합해 대구가 수도권에 대항할 '글로컬한 도시'로 변모시켜야 한다고 주문하고 있다. 대구를 대표하는 두 혁신기관인 대구시와 지역대학이 손잡고 지역혁신을 이끌어야 4차 산업을 선도하는 국제도시로의 성장이 가능하다는 것. 당장 대응책으로 대구시에 고등교육(대학)전담부서 설치가 불가피하다. 현재 대구시의 대학관련 업무는 업무성격에 따라 여러 부서에 흩어져 있어 정책발굴 기능이 약하고 정책 시너지도 기대하기 어렵다는 평가를 받아왔다. 특히 대구경북은 올해 '지자체-대학 협력기반 지역혁신사업'(RIS)에 선정됐다. 지방정부와 대학이 지역혁신플랫폼을 스스로 구축해야 한다. 대구경북혁신플랫폼은 5년간 최대 3천316억원을 투입해 지역내 23개 대학, 214개의 지역혁신기관이 참여해 지역 주력산업의 디지털 전환과 고도화를 도모하고 전자정보기기, 미래차전환부품을 중심으로 교육체계 개편과 지역혁신기관과의 협업과제를 추진한다.홍준표 대구시장체제에서 당장 고등교육 및 관련정책을 전담하고 컨트롤할 최소한 국(局)급 기구가 필요하다는 의미다. 김영철 계명대 교수는 "그동안 대구시가 추진한 산학협력 체계가 성공하지 못한 것은 그것을 도시의 소프트파워와 연결시키지 못했기 때문이다. 홍준표 시장은 특유의 강력한 리더십을 발휘해 단편적 산학협력 체계를 뛰어넘어 도시와 사람, 그리고 지역대학을 함께 아우르는 이른바 '대구형 신산학협력체계' 구축을 선언할 필요가 있다"며 "이를 위해 대구시에 지역대학 정책을 포함한 도시의 소프트 파워 문제를 책임지는 전담부서가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박종문기자 kpjm@yeongnam.com홍준표 대구시장이 1일 오전 대구 중구 국채보상운동기념공원 화합의 광장에서 열린 취임식에서 취임선서를 하고 있다. 윤관식기자 yks@yeongnam.com
2022.07.03
[김대욱 큐레이터와 함께 '考古 go! go!'] 고대 대구의 중심, 달성고분군
지난 글에서 살펴보았듯이 대구지역의 고고학적 연구 성과로 볼 때 대구의 중심은 달성고분군을 축조한 집단이었을 것으로 추측할 수 있다. 달성고분군은 1923년 강흥주(姜興周)라는 인물이 현재의 서문시장 부지에 택지를 조성하기 위해 토사를 채취하는 과정에서 다수의 고분 봉분이 파괴되었다. 이를 계기로 1923년 일본인 고이즈미아키오(小泉顯夫), 노모리켄(野守健), 순이치(澤俊一) 등에 의해 봉토가 남아있던 34호·37호·50호·51호·55호·59호·62호분 등이 발굴되었다. 발굴 당시 총 87기의 봉토분이 확인되었는데 이에 대한 측량을 실시하였고 그 자료가 남아있어 봉분의 규모나 위치를 대략적으로 파악할 수 있었다. 달성고분군은 일제강점기 조사 당시에는 '달서면고분군'으로 명명되었다가 행정구역 변경에 따라 대구부(大邱府)에 편입되자 '비산동·내당동고분군'으로 불려졌다. 하지만 '비산동·내당동고분군'이라는 명칭으로는 이 고분군의 전체 범위를 포괄하지 못한다는 문제점을 보완하고 '달성(達城) 유적'과의 관계를 고려하여 최근에는 '달성고분군'으로 부르고 있다. 달성고분군의 봉분은 대개 원형 또는 타원형이며 일부 표형분도 보인다. 봉분의 크기를 보면 대형(직경 16m 이상)이 18기, 중형(8.5~15m 정도)이 41기, 소형(8.5m 이하)이 17기 확인된다. 묘의 형태는 주곽과 부곽으로 구성된 경우 주부곽을 '丁'자형으로 배치하였으며 주곽을 단독으로 축조하기도 하였다. 묘의 구조는 수혈식 또는 횡구식이며 돌로 곽을 짠 석곽묘가 대부분인데 크기가 아주 큰 판석을 많이 사용하였다. 주피장자를 위한 부장품으로는 금동제 '出'자형 관과 관모, 조익형 관식, 이식과 경식, 대장식구, 식리, 삼엽환두대도 등이 확인되는데 이러한 유물은 주피장자가 신라의 지방에서 최고 지배자의 지위에 있었음을 보여준다. 이 달성고분군은 5세기 중반에서 후엽에 집중적으로 축조된 것으로 판단된다. 일제강점기에 조사된 달성고분군의 고분 배치를 보면 총 7개소의 무리(群)로 나누었는데 이를 현재의 모습과 비교해 보면 다음과 같다. 먼저 달성 성벽의 남쪽에 위치하는 대구 대성초등 서쪽 일대에 6∼11호분(Ⅳ군)이 위치하였다. 대성초등의 남쪽 큰장네거리 방향으로는 43∼49호분(Ⅴ군)이 축조됐다. 큰장네거리에서 새길시장 방향으로 난 능선을 따라 길게 큰 고분이 줄지어 있었는데 여기에는 34∼42호분과 50∼70호분(Ⅱ군)이 확인됐다. 새길시장에서 반고개로 넘어가는 언덕, 현재 내당천주교회 부근에는 71∼82호분(Ⅵ군)이, 구 대영학원(현 세종마트)에서 대구 서도초등으로 넘어가는 언덕에는 83∼87호분(Ⅶ군)이 확인됐다. 대구 제일고의 남쪽 비산4동 행정복지센터 부근의 구릉에는 12∼33호분(Ⅰ군)이 축조됐으며 대구 서부초등과 달성의 서벽 사이에는 1∼5호분(Ⅲ군)이 확인됐다. 이처럼 달성고분군은 달성(공원) 정문 복개도로에서 큰장네거리를 지나 새길시장, 반고개 언덕 일부, 구 대영학원(현 세종마트)에서 비산네거리 일대, 대구서부초등을 포함한 달성 서벽 부근까지 총 7개 군집으로 축조되었던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달성고분군은 분포와 규모 등에서 몇 가지 특징이 있다. 우선 달성고분군의 규모가 대구의 다른 고분군에 비해 아주 크다는 것이다. 당시 남아있던 봉분 직경이 평균 10여m에 이르고 가장 큰 것은 30여m에 달했다. 이 대형분들은 4~5개의 무리로 나누어지는데 이는 지배자 집단의 내부구조와 관련되는 것으로 보인다. 달성고분군에서는 많은 양의 토기를 비롯해 금동관, 금제귀걸이, 은제과대 등 장신구류, 환두대도 등 무구류, 운주, 재갈 등 마구류를 포함한 다양한 유물이 출토됐다. 특히 금동관은 경주에서 출토되는 것들과 그 형태가 동일한데 이는 대구지역이 신라의 정치적·문화적 영향을 강하게 받고 있었음을 나타낸다. 안타까운 일이지만 달성고분군은 6·25 한국전쟁과 도시화를 겪으면서 짧은 시간에 그 모습을 완전히 잃어버리게 된다. 일제강점기 사진을 보면 고분군 주변으로 일부의 민가만 확인되고 있지만 1954년 항공사진에는 Ⅱ~Ⅴ군 주변으로 민가가 집중적으로 들어서고 있다. 이는 1950년 6·25 한국전쟁을 기점으로 피란민이 기존 민가를 피해 능선 위 고분군 인근에 많은 집터가 새롭게 개발되었던 것으로 추정되는 일이다. 이후 대구가 대도시로 성장하면서 많은 인구가 이 고분군 주변에서 터를 잡게 되고 1960~70년대를 거치면서 달성고분군은 민가 속에 뒤덮여 버리게 되었다. 1999년 늦은 가을, 나는 이 달성고분군 내에 작은 규모의 발굴조사에 참여한 적이 있다. 당시 비산4동 일대에 소방도로가 개설되고 이 도로에 접하는 23평 정도의 작은 1층 한옥 목조 집터 아래에서 유물이 확인되어 발굴을 진행하였다. 이 발굴에서는 4세기대 목곽묘 2기와 5~6세기 석곽묘 3기가 조사되어 달성고분군이 삼국시대 이른 시기부터 최상위 계층의 집단 묘역임이 밝혀졌고 당시 한옥 목조건물 하부에 유물이나 유구가 잔존할 가능성이 확인되었다.이후 몇 차례의 발굴조사가 있었으나 달성고분군이 육안으로 확인되지 않는다는 이유로 아무런 보존조치 없이 속수무책으로 이 모든 고분군이 대부분 훼손되고 말았다. 앞으로도 어느 누구도 이 역사를 영원히 회복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러 버린 것이다. 하지만 달성고분군 내에는 아직 재건축이 이루어지지 않은 오래된 단층 건물이나 공지(空地) 등이 일부 확인되고 있다. 우리는 지금이라도 아직 남아있을지 모를 달성고분군의 흔적을 찾는 일에 최선을 다해야 한다. 왜냐하면 그 한 조각의 문화유산이 영원히 사라져버린 달성의 역사를 조금이라도 밝혀낼 수 있는 유일한 단서이기 때문이다. 영남대박물관 학예연구원달성고분군 51호분 전경. 달성고분군 37호분 1곽 출토 금동관. 달성고분군 55호분 출토 금동안교. 달성고분군 55호분 출토 장식대도.
2022.07.01
걷다보니 '길이 없다' 설계부터 잘못 된 신천동로…보행공간 없는 기형道
지난 29일 오전 10시30분쯤 대구 동구 신천동 국채보상로 155길. 신천교에서 동신교로 이어지는 신천동로 변엔 약 500m 구간 인도가 끊겨 있었다. '인도'로 구분한 황색 실선은 그냥 선에 불과할 뿐, 실제 인도는 없었다. 70대로 보이는 한 보행자가 갓길에 딱 붙어 보행했고, 전신주에 의해 공간이 좁아지자 차도로 나와야 했다. 대구 동구 신천1·2동행정복지센터에 따르면, 신천동로 옆엔 아파트 단지가 모여 있어 주민들이 대로변으로 가기 위해 이 도로를 이용한다. 해당 도로 대신 아파트 단지를 관통하는 이면도로도 있지만, 인도가 없는 것은 마찬가지다. 주민 이모(63)씨는 "도로가 협소한 데다 전신주까지 있어 차가 오면 정말 위험하다"며 "지난해 아파트 주민이 차량에 치이는 사고가 나는 등 내가 알고 있는 사고만 2~3건이나 된다. 특히 학생이나 어르신들은 도로가 위험해도 지름길이니 자주 이용하는데, 저녁엔 검은 옷을 입으면 운전자들이 사람 식별이 잘 되지 않아 사고 우려가 높다"고 말했다. 이 같은 신천동로 보행 환경 문제는 지난 2020년 보도(영남일보 20년 11월 26일자 보도)를 통해서도 한차례 지적된 바 있다. 이후 대구 동구청이 인도 확보 방안을 고민했지만 주민과 합의 등이 이뤄지지 않으면서 아직까지 뾰족한 대안을 찾지 못하고 있다. 위험한 보행 환경이 그대로 노출되는 상황이다.◆신천동로엔 왜 인도가 없을까문제가 되고 있는 신천동로 해당 구간에 인도가 확보되지 않은 이유는 무엇일까. 1996년 12월 착공해 1998년 준공된 신천동로의 설계 당시로 돌아가 보자. 신천동로는 대구 수성구 파동에서 동구를 지나 북구 산격동으로 이어지는 10.6㎞의 왕복 4차선 간선도로이다. 도시계획도로로 설계된 신천동로는 1998년 '도시계획법'과 '도시계획시설 기준에 관한 규칙'에 따라 건설됐다. 하지만 당시 관련 법규엔 인도 설치에 관한 의무나 구체적인 규정이 미흡했다. '일반도로엔 보행자의 통행을 위한 충분한 폭의 보도(인도)를 확보해야 하며 새로운 기술 발전에 따른 개선요구에 대처하기 위한 장래 변경이 가능하도록 결정해야 한다'라고만 명시하고 있었다. 도로 내 인도 설치에 관한 구체적인 기준은 '도로의 구조시설 기준에 관한 규칙'이 신설되며 간선도로 기준 인도 3m가 보장돼야 한다고 명시하고 있는데, 이 규칙 신천동로가 완공된 이후인 1999년 신설됐다. 신천동로가 건설된 뒤 1년 뒤부터 적용된 것이다. 구체적인 기준이 없었을 뿐 아니라 인도에 대한 관심이 덜했던 배경엔 신천동로 자체의 현실적인 한계도 있었다. 신천동로는 본래 신천대로의 보조 간선도로로 기능하도록 계획돼, 자동차전용도로의 성격을 띄고 있다. 하지만 현재 북구에서 수성구 방향은 주택가와 분리돼 하천 측으로 도로가 나 있는 반면, 수성구에서 북구 방향의 2차로 도로는 주택가 쪽으로 붙어 있다. 즉, 한쪽 도로는 자동차전용도로 역할을 하지만 주택가와 붙은 반대편 도로는 보행자 겸용 도로로 이용되는 불규칙한 시스템이다. 당시 설계 과정에 참여한 김기혁 계명대 교통공학과 교수는 "신천동로를 설계하며 양측 방향의 도로를 모두 하천 측으로 내서 자동차 전용도로로 만들었다면 이런 문제가 없었겠지만, 현재도 유효한 하천 침수 문제 등을 우려해 도로를 주택 쪽으로 붙인 것으로 보인다"며 "그러다 보니 보행자 겸용 도로로 이용되고 있는 차도 폭이 좁으니 인도를 불가피하게 만들지 못한 구역이 생긴 것 같다"고 했다. ◆'일방통행' 대안이지만 주민 '불편함' 난제지난해 하반기 대구 동구청은 해당 구역에 보도를 내기 위해 관련 용역을 진행했다. 동구청이 제시한 방안은 2차로 차도를 '일방통행'으로 바꿔, 인도 폭을 확보하는 것이었다. 실제 일방통행은 안전성을 증대하고 보행공간을 확보하기 위해 가장 적극적으로 운영되는 교통안전 체계 방법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용역을 진행했을 당시부터 현재까지 '일방통행'에 대한 주민들의 반대가 적지 않았다. 주민 김모(53·대구 동구)씨는 "동신교에서 신천교로 향하는 사람들이 굉장히 많다. 아파트 단지만 해도 몇 개인데 출입구가 막히게 되면 빙빙 돌아 다녀야 하는데, 불편함이 가중될 것으로 보인다"고 우려했다. 박무혁 도로교통공단 교수는 "보행자 입장에선 효과가 있을 수 있다. 하지만 '교통소통'이라는 측면에선 충분히 불편할 수 있다. 이는 일방통행이 대로보다는 주로 이면도로에서 적용되기 때문에 주민들로 하여금 혼란함을 불러올 수 있기 때문"이라며 "절대적으로 좋다, 나쁘다의 관점을 떠나 어떤 가치가 우선되느냐의 문제인 것 같다"고 했다. 주민들은 일방통행을 통한 인도 확보 대신, 도로블록 포장, 보호도색 등 교통안전 시설 설치를 제안하고 있다. 정모(여·44·대구 동구)씨는 "최소한 운전자가 조심할 수 있도록 지그재그 차선이나 눈에 잘 띄는 보호색을 통해 인위적 조치를 하는 건 어떨까 싶다"라고 했다. 동구청 교통과 관계자는 "해당 방안 또한 검토해본 적 있다. 주민들의 보행 안전 환경 개선을 위해 적극적으로 논의해 보겠다"라고 했다. 이자인기자 jainlee@yeongnam.com별도 인도가 없는 대구 동구 신천동로 구간에서 할머니가 차량을 피해 수레를 끌며 아슬아슬하게 보행하고 있다. 윤관식기자 yks@yeongnam.com인도가 없는 신천동로 구간에서 오토바이와 보행자, 차량이 뒤엉켜 지나고 있다. 윤관식기자 yks@yeongnam.com
2022.06.30
[대구의 미래 청년기업 .4] 구강용품 구독 서비스 기업 '클린디'…27세 여성 CEO, 구강용품 창업 10개월, 정기구독 500명 돌파
구독경제의 영역이 넓어지고 있다. 구독경제는 정액제를 통해 원하는 상품이나 서비스를 주기적으로 제공받는 소비 형태를 의미한다. 온라인 영상 콘텐츠부터 식음료, 화장품, 의류, 자동차까지 생활 전 영역으로 구독경제가 확대되는 추세다. KT경제경영연구소에 따르면 국내 구독경제 시장 규모는 2016년 26조9천억원에서 2020년 기준 40조1천억원으로 54.8% 커졌다. 2025년에는 100조원대 규모로 급성장할 것으로 전망된다. 대구지역 청년 스타트업(신생 창업기업)인 '클린디'는 맞춤형 구강용품 구독 서비스로 승부를 걸고 있다.◆진단을 통한 구독 시스템김소진 클린디 대표는 치주질환 예방에 대한 고민을 하다 사업을 시작했다. 치료를 받기 위해 치과를 찾았을 때 이미 질환이 어느 정도 진행된 경우가 대부분이고 비용도 만만치 않았다. 평소 건강한 치아를 유지할 수 있도록 좋은 습관을 형성하도록 돕는 서비스가 필요하다고 여겼다. 특히 구강용품을 알맞게 사용하는 것이 중요하다. 하지만 일반적으로 칫솔, 치약을 구매할 때 내 치아 상태를 고려하는 이들은 드물다. 대다수의 소비자들은 저렴한 가격의 제품을 선호하는 성향이 짙다. 국민건강보험공단 데이터를 보면 2020년 기준 국내 치주질환 환자는 약 1천298만명에 이르는 것으로 추정된다. 클린디는 진단을 통해 개개인의 특성을 면밀히 파악한다. 양치습관, 생활습관, 구강·치아 상태를 확인하고 맞춤형 제품을 추천한다. 간단한 문진을 통해 구강진단 프로그램과 맞춤형 구강용품은 경북대 치과병원을 비롯한 치의학 전문가들의 자문을 받아 개발해 신뢰도를 높였다.한 달 체험을 한 뒤 정기구독 여부를 선택할 수 있고 3개월 단위 정기구독을 신청하면 자택으로 배송이 이뤄진다. 배송비는 무료이고 가격은 한 달에 5천~6천원 선이다. 구독자에게는 칫솔 교체 주기가 되면 알림 문자를 발송된다.◆개개인 특성을 반영한 제품클린디는 맞춤형 구강용품을 자체 개발하는 데 주력하고 있다. 구강구조에 따라 칫솔의 크기를 다르게 만든다. 좁은 구강구조를 가진 경우 칫솔모 줄 수가 4개인 칫솔을 권한다. 반대로 넓은 구강구조를 가졌다면 칫솔모 줄 수가 6개인 제품을 추천한다. 치아 상태를 고려해 칫솔 모질을 선택할 수 있다. 모질은 총 4가지로 구분된다. △치석 제거 혹은 식사, 흡연 후 입 냄새 고민을 덜어주는 '탄력모' △잇몸이 약해 피가 나거나 치아 마모가 심한 구강을 위한 '미세모' △임플란트, 충치 및 치주질환으로 치료를 받고 있는 환자가 사용하기 좋은 '초극세모' △복잡한 구강구조를 위해 설계된 '기능모'가 있다.치약의 경우 충치 예방, 미백, 잇몸보호, 시린이 완화 등 기능에 따라 다른 제품으로 구성돼 있다. 팬을 탑재해 건조 기능을 더한 살균기 '윈디'도 인기다. 칫솔에 남은 물기를 제거해 세균 번식을 억제하는 기능이 탁월하다. 윈디는 국가공인기관인 한국건설생활환경시험연구원( KCL)에서 성능을 인정받았고 산업통상자원부 지정 우수 디자인 제품으로도 선정됐다.클린디의 칫솔, 치약은 오는 7월1일부터 3일까지 대구 엑스코에서 개최되는 '2022 메디엑스포 코리아'의 기념품으로 선정됐다.◆더 큰 도약을 꿈꾸는 청년기업클린디는 대표와 구성원 모두 20~30대인 젊은층으로 구성됐다. 유연한 사고와 빠른 실행력이 강점이다. 김소진 클린디 대표는 "일을 진행하면서 피드백을 최대한 빠르게 받아들이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시행착오가 있어도 이를 바탕으로 삼아야 저희가 성장할 수 있다. 직원들은 각자 분야에서 뛰어난 역량은 물론 전략적인 사고도 갖추고 있어 도움을 많이 받고 있다"고 말했다.지난해 8월 창업해 아직 1주년을 맞지 않은 신생 기업이지만 높은 잠재력을 보여준다. 정기구독자 수는 500명이 넘었고 홈페이지를 방문해 구강상태 점검을 받은 인원은 7천명 이상이다. 진단 프로그램은 현재 자가진단으로 진행되고 있으나 향후 구강 사진, 영상 등을 통해 분석하는 시스템을 갖출 계획이다. 데이터를 축적해서 인공지능(AI)을 활용하면 정밀한 진단이 가능해질 것으로 기대된다. 치과 병원과 협업도 눈에 띈다. 치과 치료를 받으면서 맞춤형 구강용품 구독을 통한 사후관리를 할 수 있도록 O2O(Online to Offline) 서비스를 출시해 호응을 얻었다. 송근배 경북대 치과대학 학과장을 사외이사로 선임하는 등 치의학 전문가들의 참여도 계속 이끌어내고 있다. 정우태기자 wtae@yeongnam.com 이재상 청년기자 twotkd753@naver.com지난달 서울 코엑스에서 열린 '서울국제치과기자재전시회'에 참가한 김소진(왼쪽) 클린디 대표가 바이어에게 제품 설명을 하고 있다.구강용품 구독 서비스를 제공하는 '클린디' 제품. 경북대 치과병원 등의 자문을 토대로 자체 개발한 제품을 진단 프로그램을 통해 추천한다.
[인구절벽시대 우리 지역 우리가 지키자 .1] 지방소멸 방치하면 수도권 유지 시스템도 무너진다
가속화되는 '지방 인구 유출'과 '지방 소멸'이 종국엔 서울과 수도권, 대한민국 소멸로까지 이어질 수 있다는 위기감이 높아지고 있다. 250만 명을 유지하던 대구 인구가 240만 명마저 무너졌다. 특히 청년층의 인구 순유출은 심각한 수준이다. 29일 대구시에 따르면 대구의 인구는 올해 5월 말 기준 237만6천676명이다. 2010년을 정점으로 하강곡선이다. 2009년 250만9천187명이었던 인구는 2010년 253만2천77명으로 늘어났지만, 그 이듬해부터 하락했다. 2018년(248만9천802명)엔 '250만' 선(線), 올해는 '240만' 선도 무너졌다. 영남일보는 '우리 지역 우리가 지키자' 연재를 통해 대구 각 지역과 분야별로 지방소멸·인구유출에 대응할 수 있는 '해법'과 대구시민으로서의 자존감을 높일 방법을 찾아 보는 기획시리즈를 연재한다.청년인구 유출은 이미 대구의 우환(憂患)이 됐다. 동북지방통계청에 따르면 올해 1분기(1∼3월) 대구의 순유출 인구는 3천91명이었는데, 이 중 20대가 1천85명으로 가장 많았다. 지난해 대구의 순유출 인구는 2만4천319명이었으며, 이 중 37.1%인 9천24명이 20대였다. 한국은행 대구경북본부가 지난 28일 개최한 '2022 대구경북 지역경제세미나' 자료에 따르면, 대구에서 대학을 졸업한 MZ세대의 33.7%가 수도권 등 타 지역에서 첫 직장을 잡는 것으로 나타났다. 반면 타 지역에서 대학을 졸업하고 대구로 유입된 MZ세대는 7.6%였다. 지역 청년을 대구 일자리로 흡수하지 못하고 타 지역으로 유출되는 비율이 높은 상황이다. 대구에서 스타트업을 운영하는 청년 A씨는 "기업에서 사람을 뽑고 싶어도 사람이 잘 안 구해진다"며 "대구에 남아 기업을 하고 싶어도 서울에 갈 수밖에 없는 상황에 부닥치게 되는 동료도 적지 않다"고 전했다. 다른 비(非)수도권 지역도 대구와 사정이 크게 다르지 않다. 문제는 이 같은 '지방 인구 유출' 및 '지방 소멸'이 장기적으로 미칠 파장이 단지 지역에 국한되지 않을 것이라는 점이다. 하혜수 경북대 행정학부 교수는 "'지방에서 살기 어렵다'는 심리적 공황으로 단기적으로 인구가 수도권으로 몰려가면 수도권의 일자리 문제, 부동산 대란은 더욱 심해진다"며 "고(高) 경쟁 사회에서 빈부 격차는 점점 심화되고 청년은 결혼과 출산을 포기하게 된다. 종국에는 지방에서 수도권으로 유입되는 인구마저 줄어들면서 수도권이 유지해 온 시스템도 점차 허물어지게 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통일신라도 작은 수도 5개...지방권역별 '경제수도' 건설을 신산업 일으킬 전략투자로 기업 유치하고 일자리 창출 "열등감-서울 사대주의 팽배" 지역민 스스로 정체성 찾고 자신감 얻는 방법도 모색해야 비슷한 지적은 이웃 나라에서도 있었다. 일본 총무대신을 지낸 마스다 히로야는 2014년 펴낸 저서 '인구소멸'에서 현재의 인구감소 추세대로라면 일본의 절반과 896개 지자체가 소멸한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해 일본 열도(列島)에 충격을 안겼다. 그는 책을 통해 "지방은 공동화(空洞化)하고 도쿄(東京)는 초고령화 하면서 도쿄는 지방의 인구만 빨아들이고 재생산은 못 하는 '인구의 블랙홀'로 전락할 것이며, 지방에서 유입되는 인구마저 감소하면 '도쿄 축소'와 '일본 파멸'의 연쇄효과가 나타날 것"이라고 경고했다. 현재 일본 전체 인구의 35% 정도가 수도권에 몰려 살고 있다. 인구의 절반이 수도권에 집중돼 있고, 출산율조차 세계 최하위인 우리나라도 지방과 수도권의 '연쇄 붕괴' 우려가 나오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다. 지금껏 수도권 지역과 중앙정부의 '지방 소멸'에 대한 관심은 크지 않았지만, 이젠 더는 지방만이 오롯이 감당해야 할 문제가 아니라는 의미다. 하 교수는 "지방에서 태어나 여기서 학교에 다니고 일자리를 갖고 자녀를 키우는 데 큰 불편이 없는 구조가 돼야 한다"며 "지방에 살면서 결핍을 견뎌야 하고 불이익과 불공정을 감내해야 해선 안된다. 그 격차가 발생하지 않도록 해주는 게 국가의 역할이며 지역 균형발전의 큰 방향"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이어 "'언 발에 오줌 누기'식 대처를 하고 생색내는 것으로는 장기적인 해답이 안 된다"며 "통일신라는 5개의 작은 수도 '5소경'을 두고 나라를 다스렸다. 정치수도인 서울과 행정수도를 지향하는 세종 외에 대구·경북권, 광주·전남권, 부산·울산·경남권 등에 경제수도를 건설한다는 생각으로 신산업을 일으킬 수 있게 전략적인 투자를 해줘야 한다. 그래야만 지방에 일자리가 만들어지고 기업이 투자 활동을 한다"고 주장했다. 하 교수는 지난해 10월 열린 대구경북연구원과 광주전남연구원의 차기 정부 지역발전정책 방향에 관한 심포지엄에서 '신산업 특화수도와 분권형 시도통합 대안'이라는 주제로 의견을 내놓았다. 좁아져만 가는 지역의 입지에 대응해 지역민 스스로 할 수 있는 역할을 찾아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예컨대 지역민의 정체성을 찾고, 자신감을 얻을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하는 것이다. 대구에서도 스스로 지방 출신이라는 이유로 일종의 열등감을 느끼거나 오히려 역차별을 받는다는 사례가 적지 않다. '서울 사대주의'도 팽배하다. 대구에서 지방직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는 김모(여·25)씨는 "대구에서 태어나 여기서 대학을 졸업하고 형편과 여건상 이곳에 정착하려고 하지만, 솔직히 마음 한편에는 '패배주의'가 있다는 걸 느낀다"며 "요즘은 서울에서 태어나는 것만으로도 '스펙'이라고 하지 않나. '인(In)서울'대학 진학했던 고등학교 동기의 소식을 들을 때마다 상대적 박탈감이 느껴지기도 한다"고 했다. 지역의 한 기업 대표는 "입찰 심사를 할 때 후보 중에 서울 업체가 있으면, 이 업체가 뛰어나지 않더라도 심사위원들은 서울 업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더 좋게 보는 경향이 있다. '대구까지 와서 해줄 수 있냐'라는 식으로 물으면서 대접해주기도 한다"며 "사실 그런 업체는 경쟁에서 밀려서 대구까지 일을 따러 내려온 것이거나, 대구를 거쳐 서울로 다시 올라가는 경우가 부지기수이다. '서울 사대주의'로 대구 청년이 기회를 뺏길 때가 종종 있다"고 푸념했다. 그러면서 "지방이 죽어서는 안 된다고 역설하는 전문가들조차도 자신들의 자녀는 모두 서울로 보낸다"며 "지역에서 더 잘하는 사람을 발굴하고 여기서 살아도 괜찮다는 인식이 자리 잡혀야 하는데, 모순적인 이야기를 하고 있다는 게 안타깝다"고 덧붙였다.서민지기자 mjs858@yeongnam.com대구 동성로(영남일보 DB)
2022.06.29
기획
[친환경차 시대의 그늘] (하) 충전 인프라 확충으로 운행제약 해소, 화재 원인 배터리 안전 문제 개선 시급
[로봇 선도도시 꿈꾸는 대구](상)대구의 로봇산업, 비수도권 최고 수준 로봇도시 성장
[인구절벽시대 우리 지역 우리가 지키자 .7] 대구 초·중마저 폐교 내몰려…주민 학습·보육센터 역할 맡아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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