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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춘호 기자의 푸드 블로그] 오너셰프를 찾아서 (30) 대구시 수성구 숯불갈비 한정식 전문 ‘안압정’의 김옥순
분명 ‘웰빙’보다 ‘힐링’의 시대가 된 것 같다. 식당도 그렇다. 그냥 제철음식만으로는 뭔가 부족하다. 그게 건강에 어떻게 좋은지를 알고 싶어한다. 대구에 많은 숯불갈비 전문 한정식 전문점이 있다지만 다들 왠지 무미건조해 보인다. 메뉴라인이 너무 천편일률적이고 정성보다는 ‘설정적’이다. 우리가 휘둘리고 있다는 기분이다. 다양한 반찬이 아무리 푸짐하게 나온다 해도 나올 때 차라리 집 근처 보리밥, 아니 돼지국밥 한 그릇이 그립다면 그 한정식은 ‘작전세력’이다. 둘러보면 그런 한정식 투성이다. 그런데 수성구청 맞은편 대구도시철도 2호선 수성구청역 4번 출구 입구에 있는 안압정은 ‘진검승부사’ 같다. 한때 한강 이남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식당 1순위였다. 서울서 내려온 상당수 대기업 이사들도 여길 ‘묻지마 회식장소’로 만족해한다. 청도 청매실·제주 해초·삼천포 멍게… 전국 각지 돌며 친환경 식재료 확보 78년 구미에 시집 와 떠맡은 갈빗집 대기업 품질관리제도 도입해 대혁신 10여가지 재료 넣어 특허 낸 물김치 송이국·겨울냉이 등 계절요리 일품 ◆ 비원에서 안압정으로… 갈빗살 신드롬 진앙지 사장보다 CEO 같다. 예순을 갓 넘긴 김옥순씨. 외식업계에선 ‘여걸’로 통한다. 개인적으로는 ‘식품계의 유관순’으로 부르고 싶다. 방금 수술을 해도 손님한테 절대 피곤한 기색을 보이지 않을 것 같다. 임팩트 강한 빨간색 립스틱, 원색의 의상… 푸드스타일은 물론 디자이너 유전자도 갖고 있다. 그래서 밥상이 더 육감적이고 원색적이고 탄력적이다. 김씨는 세상이 ‘웰빙’에서 ‘힐링’으로 넘어간다는 사실을 간파했다. 그래서 친환경 유기농 식재료 확보를 위해 전국을 다 뒤지고 있다. 전남 구례와 청도의 청매실·쇠비름·참비름·가지·머위·도토리·민물새우, 제주도산 붉은 해초와 콜라비, 거제도산 산양산삼, 삼천포산 소라·멍게, 무주와 문경산 오미자, 전남 영암산 무화과, 전남 고흥산 유자와 갓, 경기도산 쌈채, 전남 청산도산 톳, 영주산 청국장, 전남 화순산 죽염, 대구시 동구 반야월산 연근 등을 구해온다. 산지별 식재료 현황판도 자신 있게 입구 정면에 부착해 놓았다. 완벽한 오픈 주방이다. 방역 소독필증서·영업 OJT교육·보건증·위생교육 대장을 카운터 뒤에 항상 비치한다. 행정관청 위생과 직원이 오면 즉시 보여주기 위해서다. 그녀는 요리를 하나의 구원이자 천직으로 여긴다. 서빙하는 여직원도 식구란다. 그들을 부를 때 ‘아가야’란 호칭을 사용한다. “직원을 기쁘고 행복하게 해 주어야 그 기운이 손님한테 고스란히 전달된다. 마음이 음식에서 멀어지면 아무리 좋은 식재료가 있어도 무용지물이다. 그래서 항상 직원 교육에 매진한다.” 몸이 피곤하면 요리도 피곤하다. 그래서 매주 일요일은 휴무. 현재 모두 23명의 홀서빙 멤버가 있고 다들 ‘알프스 소녀’ 같다. 이들이 모두 38개의 테이블을 종횡무진하면서 미소를 날린다. 서빙을 할 때 손님들에게 각 식재료의 원산지가 어디고, 효능이 어떻고, 어떻게 먹는 게 가장 좋은가를 알려준다. 그걸 좀 피곤해하는 이도 있지만 이젠 다들 고마워한다. 남자 화장실 언저리도 패션잡지에 나올 것 같다. 장미꽃, 고흐의 카페 테라스 그림이 있는 액자, 크림과 로션, 치약과 칫솔, 가글용품까지 항상 비치돼 있다. 본채와 별채 연결 공간 인테리어도 고궁박물관의 쉼터 같다. 곳곳에 화초가 놓여 있다. 꽃동산 같다. 이번 겨울에는 어른 주먹만한 석류와 모과를 옹기에 수북하게 넣어놓았다. 안압정은 지금 전국 갈비업자들이 제일 부러워하면서도 겁을 낸다. ‘오감(五感) 감동전략’ 때문이다. ‘마음사냥’에 성공한 것이다. 특히 시각(視覺)을 중시한다. 보기 좋아야 먹기 좋다. 손님은 모두 룸으로 안내된다. 방마다 맷돌분수 등을 오브제로 한 ‘미니 정원’이 감실처럼 설치돼 있다. ◆ 독보적인 품질관리 시스템 안압정에는 아줌마, 아저씨란 호칭이 없다. 선생님, 주임님 등으로 바뀌었다. 여기서는 영업보다는 ‘경영’이란 말이 더 어울린다. 항상 남보다 ‘반 보’ 앞서간다. 안목 덕분이다. 구미 해운대 갈비와 금오산맥, 수성구 비원 모두 그녀의 작품이다. 1978년 시집 온 구미시 원평동 해운대 갈빗집에서 일을 낸다. 그녀의 나이 26세. 그 식당은 원래 시댁 식구가 꾸려가던 곳이었다. 오픈한 지 한 달 만에 그녀가 떠맡게 된다. 하지만 자신이 생각하는 식당이 아니었다. 대대적인 수술을 해야만 했다. 맨 먼저 ‘조명 혁신’에 돌입했다. 형광등 불빛이 식당 분위기를 창백하게 만든다고 보고 즉각 햇빛에 가까운 백열등으로 교체했다. 다음은 경직된 식당 조직을 타파했다. 주방장 1인 천하 식당 시스템에 제동을 걸었다. 식당 정보 공유화를 개선한다. 매주 토요일 밤엔 어김없이 팀장이 모여 분임조 회의를 하고 월 2회 총회를 연다. 한국표준협회 관계자들의 노하우도 빌렸다. 그 노하우가 안압정 식단 표준화를 완성시킨다. 삼성반도체, LG 등 국내 굴지 기업 혁신 프로그램의 하나인 품질관리(QC)기법을 활용한 것이다. 조직도 육부, 영업, 경리, 관리, 교육, 식사, 세척, 조경 등 팀제로 나눴다. 종업원이 곧 사장임을 주지시켰다. 식당도 오픈형으로 개조하고 식기도 도자기로 교체했다. ◆ 밥상에 계절을 담다 안압정 메뉴라인은 계절이 항상 담겨있다. 음식 중 가장 눈에 띄는 것은 항암쌈채에다 10여가지의 재료를 넣어 6시간 달인 맛국물로 만든 특허 낸 물김치다. 토마토 청국장은 토마토 속을 파내고 그 속에 청국장을 담은 건강 음식이다. 최근엔 석류를 이용해 떡을 만들었다. 후식으로 나온 녹차주먹밥과 송이를 듬뿍 넣은 송이국은 향기가 야물다. 사계절 메뉴가 서로 자기 영역을 지키고 있다. 그건 그녀가 직접 식재료를 동시에 장악할 줄 알기 때문에 가능하다. 요즘 별미는 겨울냉이와 메뚜기. 튀긴 메뚜기는 선산 해평들에서 잡아둔 걸 그녀가 직접 요리해서 낸다. 하절기엔 민물새우도 볶아 낸다. 천연수제 요거트도 별미. 안압정 비장의 무기인 한우 안창살. 수십 년간의 그녀만의 노하우가 묻어 있다. 맛소금에 살짝 찍어 먹도록 한다. 참기름, 소스 등이 가미되면 본연의 맛이 사라진다. 87년엔 계절별 사이드 메뉴 개발에 나선다. 그걸 위해 계절별 해조류 현황 분석에 들어간다. 1주일 두 번 밤 새워가며 삼천포 해안을 뒤진다. 꽃게 사러 군산 가고, 좋은 갓김치는 순천 등지서 공수해왔다. 달성군 가창면 정대 골짜기에서 무공해 채소, 대구 인근 전통시장에서 전통 먹거리를 구해 온다. 식단이 확 달라졌다. 일식집에서도 제대로 갖추기 힘든 돌미역, 고시래기, 돌가사리, 젓갈, 훈제 연어, 홍어, 해삼 내장, 멍게, 해파리 등이 기본 찬으로 얹히는 ‘안압정 해조종합세트’가 탄생된다. 대구에선 처음 시도한 차림이다. 그 반향은 86·87년 한국표준협회 주최 전국 서비스 부문 대상, 88년엔 세계품질관리 대회 금상 수상으로 드러났다. 이후 주차난 때문에 88년 11월15일 구미시청 근처에서 초대형 구미 금오산맥 시대를 열지만 운이 받쳐주지 않아 구미시대를 접는다. 대구로 들어와 90년 수성못 옆에 레스토랑 ‘상류사회’를 열지만 자기 일이 아니었다. 재차 92년 3월 수성구 만촌동에서 ‘비원 시대’를 열었다. 룸은 사랑방형으로 개조하고 해조류에 이어 무공해 채소 버전을 소개했다. 하지만 건강이 악화돼 95년 12월 조카 김명희씨한테 물려주고 잠시 침잠기를 거쳤다가 99년 9월 안압정을 오픈한다. 전국을 돌아다녀 봤지만 맛과 멋이 안압정처럼 조화롭게 뭉친 곳은 참으로 드물다. 푸드에 패션과 디자인을 수놓았기 때문이다. 한정식은 1인분에 수코스 3만원, 희코스 5만원. 갈비안창살(100g) 4만5천원, 생갈빗살(100g) 4만2천원. 매주 일요일 휴무. (053)743-3369 이춘호기자 leekh@yeongnam.com
2014.01.10
[이춘호 기자의 푸드 블로그] 2014년 지역 푸드업계 전망
이 무렵 많은 식당주가 기자에게 전화를 한다. 새해 지역 식당가 동향이 궁금해서다. 2만6천여개에 달하는 대구 식당의 속사정을 실시간으로 체크할 수는 없다. 대충 흐름을 잡을 수밖에 없다. 일단 지난해 가장 타격이 심했고 맘고생을 많이 한 업소는 단연 횟집과 해물탕집이다. 영남일보 근처 기자들이 애용하던 한 횟집도 얼마 전 추어탕집이 돼버렸다. 일본 후쿠시마 원전 사태로 어패류에 대한 소비자의 불안감이 악영향을 미친 것이다. 들안길 ‘수복초밥’은 문을 닫았고, 들안길에서 마니아를 적잖게 확보하고 있던 일식집 ‘센도리’도 결국 백기를 들고 최근 복어집으로 선회했다. 상당수 관련 업소가 주메뉴라인을 바꾸거나 전업을 심각하게 고려하고 있다. 특히 기자가 가장 애용했던 해물탕집이었던 북구 칠성동 ‘용궁’도 전업했다. 올해부터 유기농 식단에 대한 소비자의 욕구가 더욱 분출할 전망이다. 정부는 이미 우리나라가 ‘당뇨병 1천만명 시대’라고 선언했다. 식재료에 대한 원산지 확인 문화가 더욱 공고해질 것이다. 예전에는 완성된 음식만 보고 식당을 평가했는데 이제는 식재료의 출처를 철저하게 따질 것이다. 얄팍하고 위선적인 식재료를 갖고 장사하기가 더더욱 어려워질 것이다. 더치커피 인기 지속 브런치·디저트 카페도 주택가 연착륙할 듯 당뇨병 1천만명 시대 식재료 출처에 민감 유기농식단 욕구 분출 ◆ 더치커피 신드롬은 계속된다 요즘 즐거운 비명을 지르는 업소는 단연 커피숍. 괜찮은 상권 네거리, 유원지 근처에 생겼다 하면 거의 커피숍이다. 다빈치, 커피명가, 시애틀의 잠 못 이루는 밤, 엔제리너스, 카페베네, 파스쿠치, 스타벅스 등 브랜드 커피숍은 틈만 있으면 가맹점을 설립한다. 수성못 동쪽, 남구 대명9동 카페거리, 팔공산 파계사 가는 길, 수성구 만촌동 교수촌 카페거리 등이 ‘대구 4인방 커피거리’로 등극했다. 하지만 마니아들은 비슷한 분위기, 비슷한 맛 때문에 브랜드 커피에 대한 무력감도 점차 느끼고 있다. 이런 흐름을 파고든 게 바로 ‘더치커피’. 더치커피는 1기압에서 상온의 물로 장시간(7~12시간) 추출한 커피로 종주국은 인도네시아와 네덜란드. 하지만 정작 본국에선 더치커피를 찾기 쉽지 않다. 2010년 어름에 대구에 더치커피 신드롬이 생겼다. 물론 대구발 커피 브랜드들도 이 특수를 잡기 위해 스페셜 마케팅을 구사했다. 하지만 더치커피만 특화한 숍은 별로 없었다. 다들 더치커피는 역시 ‘오타쿠급 마니아’가 유리관 버전으로 직접 추출하는 걸 더 먹고 싶어 한다. 이 분위기를 탄 몇 명의 바리스타가 보인다. 북구 대현동 경북대 기숙사 남쪽에 있는 ‘피터스 커피’의 강병호, 중구 삼덕동2가 삼덕소방서 건너편 ‘엘모’의 장성길, 수성구 지산동 커피인, ‘재인스 커피’의 전경원씨 등이다. 올해 이들이 선방할 것으로 보인다. 강병호씨는 자신이 운영하는 PC방 바로 옆에 실험실 같은 검은 방에서 종일 더치커피를 추출한다. 그에겐 그게 꿈이다. 대구보다 서울경기권에 더 알려져 있고 온라인 등을 통해 산타클로스처럼 더치커피를 배송한다. 장성길씨는 1998년 140만원만 갖고 시내 봉산동 지하상가에서 카페를 시작했고, 현재 엘모 9호점까지 개척했다. 재인스커피는 수성동의 본점, 효목점, 중동점 등 세 곳의 매장을 운영 중이다. 당분간 커피 붐은 지속될 전망이다. 커피붐과 함께 브런치 카페, 디저트 전문 카페, 베이글, 케이크, 바게트 같은 전문 제빵제과점이 주택가를 타고 연착륙할 것으로 보인다. 김광석 벽화길이 있는 방천시장 중심부에 지역에선 처음으로 마카롱 전문 카페를 연 화가 이동원씨. 그는 이미 ‘라캉뗑’이란 커피숍을 거점으로 방천시장 입주작가로 활동했다. 최근 지역에서 가장 돌풍을 일으킨 빵집은 달서구 월광수변공원 옆 ‘뺑드깜빠뉴’, 상인동 ‘오월의 정원’, 동성로 ‘삼송빵집’ 등이다. 삼송빵집은 뉴버전 고로케 같은 ‘마약빵’으로 유명하다. ◆ 유기농 레스토랑 1번지 ‘신라’ 올해 가장 각광받을 것으로 보이는 중구 대봉동 ‘신라 레스토랑’의 식재료를 찾아가 본다. 11년 전 지역의 한 유명 연주자가 느닷없이 오너셰프로 변신했다. 대구시립교향악단 플루트 수석인 박수진씨였다. 남편 이광호씨는 현대미술 전문 갤러리 ‘신라’를 꾸려가고 있고, 바로 옆에 레스토랑을 차렸다. 박씨의 좋은 식재료에 대한 집착은 거의 병적이다. 일단 돈 생각은 가장 나중에 한다. 적자를 보면 남편에게 달려간다. 맛있는 식단이 아니라 믿을 수 있고 안심할 수 있는 천사표 식재료를 단골에게 안기고 싶단다. 서울의 한 1급 오너셰프는 여기 유기농 식재료 목록을 보곤 “모르긴 해도 대한민국에서 이런 식당은 여기밖에 없을 것 같다”고 극찬했다. 별로 큰 규모도 아닌데 모두 9명이 움직인다. 지난해 12월2일에는 제과제빵 전문 셰프를 또 채용했다. 처음 들어온 조리사는 웬만한 메뉴를 직접 다듬고 장만해야 되기 때문에 무척 힘들어한다. 그릇도 신생아 목욕시키듯 세척한다. 직원도 업자도 믿으면 끝까지 간다. 한우 중개인, 가리비 공급하는 강원도 속초 아줌마, 생수·우유·가스 업자 모두 11년째 동고동락하고 있다. 가장 감동한 대목이 있다. 토마토 소스를 직접 만든다는 사실. 그동안 이탈리아 유명 유기농 회사인 알체네로(Alce nero) 토마토홀 캔을 사용했다. 작년 여름부터 국내산 유기농 토마토(팔공산 근처 청호농장)와 강원도 고랭지 토마토, 군위의 장군이 친환경토마토 등을 받아서 1주일에 40㎏, 세 번씩 6시간 달여 냉동보관했다가 사용한다. 소스용은 2~3시간 진하게 달여 파스타·피자·수프용으로 사용한다. 식초도 알체네로 사과식초와 직접 짠 레몬식초를 사용한다. 피클은 유기농 감식초를 사용해서 만든다. 감식초 한 병의 경우 환만식초보다 10배 비싸다. 계란도 한 개 1천원짜리 무항생제다. 전남 곡성 키다리 농장에서 공급한다. 샐러드용 채소에도 그녀만의 철학이 들어가 있다. 양배추도 멀리한다. 식감이 없단다. 그래서 ‘살아 있는 땅’이란 농장을 꾸려가는 오영숙 사장이 재배한 유기농 루꼴라만 고집한다. 대백프라자 유기농 채소의 경우 비싸야 100g에 1천300원인데 루꼴라는 2천원 이상이다. 샐러드에는 치커리와 루꼴라만 사용한다. 올리브오일도 슈퍼급. 2011년 이탈리아 미식가협회로부터 1등을 받았고 2000년부터 올해까지 100여차례 크고 작은 상을 받은 명품 올리브오일인 ‘프란토이 커트레라(Frantoi Cutrera·1906년)’를 사용한다. 한 점 먹어봤다. 지중해의 풀향기가 묻어난다. 워낙 고가라서 샐러드용에만 사용한다. 2004년부터 ‘천연 빵 만들기’에 돌입한다. 이스트 없이 빵을 만들 수 없는가? 연구에 들어갔다. 건포도로 만든 ‘천연발효종’ 효모를 만들었다. ‘무이스트 빵’이 탄생하는 순간이다. 밀가루는 독일 바우크사 제품이다. 양송이 크림수프에도 절대 버터를 섞지 않는다. 100% 양송이에 불린 쌀가루를 넣고, 채소 스톡(샐러리 당근 양파 표고버섯 양배추 등으로 추출)을 섞는다. 우리의 젓갈 같은 ‘엔초비’도 포항의 가을멸치로 직접 담근다. 리코타 치즈도 시중 우유보다 2배 비싼 제주도산 다이아 앤 골드 우유를 갖고 만들었다. 가게 앞 화단에 로즈마리, 민트, 세이지, 바질 등을 심어놓았다. 소금은 안데스산 암염. 무농약 포항초와 리코타 치즈로 속을 채우고 포도 크림 소스로 만든 라비올리도 수제다. 생면 파스타 반죽 만들 때 글루텐이나 소다를 넣지 않고 죽으라고 치대야 한다. 거의 4년간 시행착오를 거쳐 ‘신라표 생면’이 탄생됐다. 여긴 95%가 예약이다. 정말 어느 식당주가 시종일관 유기농 버전을 고집할 수 있을까 싶다. 풀코스 정찬의 경우 6만~8만원대. 단품 스파게티는 2만~2만8천원. 런치코스 스테이크는 2만9천원(수프, 빵, 커피, 슬라이스한 채끝 등심과 구운 버섯). 휴무는 매주 월요일. 중구 대봉1동 130-5번지. (053)421-1628 이춘호기자 leekh@yeongnam.com
2014.01.03
[이춘호 기자의 푸드 블로그] 모두가 조선음식을 말할 때 신라음식에 몰입하다, 차은정 한국역사문화음식학교장
아직 한국전통음식의 콘텐츠는 거의 조선궁중요리에서 발원한다. 조선궁중요리는 인간문화재가 된 황혜성과 그의 딸 한복녀에게 이어진다. 그 손맛은 조선궁중요리 전문 한식당인 ‘지화자’에서 갈무리되고 있다. 이곳의 매뉴얼은 1990년대에서 2000년대로 넘어오면서 전국 각처의 풀코스 한정식 메뉴라인에 큰 기여를 했다. 전채 흑임자죽을 비롯해 삼색전과 표고탕수, 두부선, 구절판, 탕평채 등 평소 여느 한식당에서 자주 만났던 메뉴라인은 거의 황혜성 문중의 영향을 받은 것이라 보면 틀림이 없다. 이 흐름에 도전장을 낸 전통요리연구가가 있다. 바로 윤숙자 전통요리연구소장이다. 윤 소장은 노무현 대통령이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북한에서 남북정상회담을 할 때 정상회담밥상을 주도했으며, 이때 그녀가 선택한 강원도 횡성한우는 국내 최고의 한우로 등극했다. 이 와중에 색다른 길을 간 요리 연구가가 있다. 바로 경주 보문단지 육부촌 옆에 자리한 한국역사문화음식학교 차은정 교장(47·사진)이다. 차 교장은 조선음식에서 벗어나 신라음식에 심취했다. 서울로 갔으면 출세가 더욱 빨랐을 수도 있었다. 그러나 신라의 대장금이 되려면 역시 경주를 선택할 수밖에 없었다. 그녀는 약선을 제대로 하기 위해선 동서양 음식학에 정통해야만 된다고 믿었다. 경희대 식품영양학과에서 단체급식 전공으로 석사학위를 받고 동아대 식품영양학과에서 조리학 박사가 된 뒤 여기에 머물지 않고 약선을 개척하기 위해 달렸다. 바로 동아대 한의학과 박사과정에 입학했으며, 곧 학위를 취득하게 된다. 지난해는 한국예술문화 명인(신라전통음식 부문), 경북도문화재자료 제256호 신라임금제례진설위원에 선정된다. 현재는 신라음식 체험장 구실을 하는 ‘라선재(羅膳齋)’, 음식학교 졸업생이 만든 ‘신라음식포럼’을 이끌고 있다. 식물성-동물성 식품을 조화시키고 몸에 이롭도록 궁합 맞추는 게 중요 요즘 한방약선에 너무 매몰된 느낌 신라왕족 제상엔 닭·쇠고기 안 올려 라선재 오면 신라약선 맛볼 수 있어 골동반·이사금밥상 등 개발해 선봬 - 차 교장이 생각하는 약선이란 뭔가. “‘약식동원(藥食同原·약과 음식은 한 뿌리)’이라는 한의학적 기본 이론을 바탕으로 음식 속에는 약의 기능과 효과가 있다고 보고 있다. 좀 더 상세히 표현하자면 약은 식물이요, 선은 동물이라는 것이다. 즉, 식물성 식품과 동물성 식품을 조화롭게 궁합을 맞춰 몸을 이롭게 하는 음식을 약선이라 정의한다.” -요즘 약선을 너무 형식적으로 해석하는 사람이 많다. 영양학 등에 대한 기본기가 부족한 가운데 약선만 강조하는 것 같은데. “대학에서 조리학(발효식품)과 한의학을 박사과정에서 공부하면서 약선학적 의미를 다각도로 볼 수 있었다. 한 예로 고등어는 영양학적으로는 DPA 와 EHA가 다량 함유되어 있고 필수지방산이 있어서 뇌를 많이 사용하는 현대인이나 한창 자라나는 청소년에게 특히 좋다. 혈압강하나 치매예방 등에 아주 좋은 식품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한의학에서는 ‘비늘이 없는 고등어와 같은 생선을 멀리하라’고 말한다. 이는 비늘이 없는 생선은 대부분 비린내가 심하고, 비린내는 차가운 성질을 갖고 있어 소화가 잘 되지 않고 식중독도 우려되기 때문이다. 우리 조상들은 지혜롭게도 고등어를 쌀뜨물에 담가 해독하고 소화제 역할을 하는 무를 고등어 밑에 깔아 된장 푼 물을 끼얹어 중화를 시켰다. 결국 약선이란 우리가 살아오면서 생활 속에 자리 잡았던 문화의 힘이라 생각한다.” - 한국역사문화음식학교와 일반 요리학원은 좀 차이가 있는 것 같다. “2009년 경주 교육청으로부터 평생교육원으로 인가를 받은 뒤 출발했다. 그동안 20기를 운영했으며, 900여명이 졸업했다. 들어오면 약선학개론, 방제(처방), 사상체질과 인체생리, 신라학, 약선조리학, 명상 등을 2년 정도 배운다. 내년부터는 약선음식, 김치, 발효음식 등 교육부로부터 학점으로 인정받게 되는 정식교육기관이 된다.” -라선재는 어떤 공간이죠. “사람들이 자꾸 신라약선요리가 어떤 건지 궁금해한다. 백문이 불여일견이다. 그래서 직접 음식을 먹을 수 있는 공간을 마련했는데 그게 ‘라선재’다. 일종의 ‘신라전통음식관’이라 보면 된다. 그동안 3만명이 넘는 관광객 중에는 UNWTO 대표단, APEC 장관, 아시아소사이어티 글로벌 집행 이사단, 주한 대사 등을 위한 오·만찬을 주관했다. 가장 인상적이었던 사람은 프랑스 알자스주 주지사인데 그는 식사 중에 일절 비즈니스 얘기를 하지 않았다. 오직 음식에만 집중했다. ‘보통 한국 된장은 냄새가 지독한데 라선재 된장은 냄새도 별로 없고 맛도 아주 순하다. 그 레시피가 뭔가’, 뭐 대충 그런 질문이 이어졌다. 국내 VIP는 아직 식사를 하면서 음식에만 집중하지 못하는 것 같다.” -신라골동반도 개발했다고 하더라. “일단 보리·멥쌀·찹쌀·율무·조를 약초물에 담근 뒤 오곡밥을 만들고, 그 옆에 쑥국에 찹쌀과 된장을 푼 쑥애탕, 그 밖에 감자김치와 갖은 약재가 들어간 약고추장 등을 축으로 개발해 본 것이다. 새로운 사료가 나오면 계속 변형시켜나갈 것이다.” - 신라약선요리 전문가라고 하면 관련 자료를 많이 확보하고 있어야 하는데…. “처음 경주에 왔을 때는 앞이 캄캄했다. 자료가 너무 없었다. 삼국사기나 삼국유사 등에 나타난 단편적 사료를 연결해 원형을 복원해나갔다. 알에서 태어난 김수로왕은 황후 허황옥에게 결혼 예물로 대추와 복숭아를 줬고, 선덕여왕은 산수유를 즐겼으며 사모하던 청년이 죽자 팥죽을 문가에 뿌렸다는 것도 알게 됐다. 그 덕분에 경주 엑스포 때 꿩요리, 보리빵, 무궁화 국과 전, 쇠비름 물김치, 양고기, 술찌끼로 만든 김치, 당귀 정과, 약밥 등을 축으로 신라이사금밥상을 선보일 수 있었다.” - 그 이후 고조리서도 좀 확보했는가. “1100년대에 출간된 ‘제민요술’을 비롯해 ‘식료찬요’, 일본 나라시 박물관에 소장된 ‘경창원문서’, 또한 신라사 연구를 하는 학예연구사를 통해 우리 민요에 숨겨진 신라음식의 단서, 각 문중에 전승되는 가가례 통과의례식도 좋은 공부거리다. 흥미로운 사실은 신라 왕족의 제사상에는 닭고기와 쇠고기가 올라가지 않는다는 점이다.” - 극성스러운 제자들도 많을 것 같다. “단기과정과 정규과정(약선대학과정)을 이수한 졸업생들이 전국으로 분포되어 있어 참으로 행복하다. 졸업생들의 재개발 차원에서 ‘신라약선포럼’을 발족했다. 지난 4월 ‘제1회 신라음식문화 학술심포지엄’을 개최해서 식품영양, 조리, 한의학계는 물론 관광, 여행, 문화재 , 인문학 관련 전문인이 400여명 모이는 성과를 거뒀다.” - 이제 약선의 전체 윤곽이 조금씩 보일 것도 같은데 약선 지망생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면. “뭐든 정말로 한 방에 모든 걸 끝내려고 한다. 약선을 알려고 하면 최소 10년은 죽었다 하고 영양학, 조리학, 한의학, 동서양 음식문화사, 고조리서 등을 파고들어야 한다. 모두 마음이 급하다 보니, 뭐가 몸에 좋다고 하면 이 재료와 저 재료의 궁합의 이론에 대해서는 탐구하지 않고 그냥 형식적으로 ‘이것 먹으면 몸에 좋다’는 수준으로 떠들고 있다. 또 너무 한방약재에 치우친 한방약선에만 매몰되고 있다. 음식문화를 알고 음식을 대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한 것 같다. 중국의 병원에선 약선전문가들이 환자의 식사를 도와주고 있는데 우린 영양사의 몫으로 돼 있다. 공감대를 형성해야 한다. 식품 전문가들이 너무 분열돼 있는 것도 문제다. 향후에 일반 의사와 한의사, 영양사, 임상영양사, 약선전문가, 대체의학전문가, 자연치유전문가, 약초연구가, 제철 식재료 유통전문가, 유기농 전문가 등이 학제 간 연구를 통해 교집합을 찾아야 한다.” 경주시 신평동 375-3. (054)771-6040 이춘호기자 leekh@yeongnam.com 한국 약선의 역사 약선(藥膳)은 영어로 ‘Medicine Cuisino’. 80년대만 해도 국내에 약선이란 용어는 없었다. 맨 먼저 약선문화에 불을 댕긴 건 한의사인 안문생씨. 91년 5월 일본 어혈학회 오사카학회에서 약선을 처음 접하고 같은 해 12월 베이징에 체류하면서 본격적인 자료 수집을 시작했다. 94년에 1개월씩 세 차례에 걸쳐 촬영 팀과 함께 양쯔강 유역, 황허강 유역, 그리고 실크로드를 따라가면서 각 지역 약선문화를 방송용 카메라에 담아 SBS를 통해 1년간 방영했다. 그해 5월 무주리조트에서 제1회 국제양생학회가 열린다. 그 자리에 참석한 양생학자들에게 ‘한국형 약선 요리’를 선보인다. 안씨는 2005년 9월부터 명지대 산업대학원에 약선학 석사과정을 도입한다. 이에 앞서 98년 전국에서는 처음으로 경남 양산시 상북면 대석리 홍룡사 아랫마을에 ‘죽림산방’이란 약선 전문 식당이 생긴다. 2004년 영산대에 약선학과가 신설됐다. 차 교장도 그 학과장을 역임한다. 국내 첫 대학 내 약선학과다. 학과가 생긴 그해 11월 부산 해운대 벡스코 3층에서 아주 흥미로운 학술대회가 개최됐다. 바로 국내 첫 약선 관련 학술 심포지엄이었다. 영산대 약선학과장 자리에서 나온 차 교장은 경주에 베이스캠프를 차린다.
2013.12.27
[이춘호 기자의 푸드 블로그] 오너셰프를 찾아서 (29) 대구시 북구 대현1동 ‘피터스 커피’의 강병희호
강병호, 그의 아지트는 어두컴컴하다. 1970년대 애송이 바이어의 사무실 같다. 현실보다 미래에 대한 꿈과 희망의 파워가 9할 이상 점령한 그런 분위기랄까. 경북대 기숙사 바로 북쪽 담장 근처 대현1동 자율방범대와 붙어있는 건물 2층 PC방 옆 8평 규모의 ‘피터스 커피’. 종일 거기서 커피향 가득한 놀이를 한다. 여느 커피숍처럼 접근할 수 있는 코너는 아니다. 정말 커피 마니아만 알음알음 찾아온다. 대구에서는 인지도가 거의 없다. 수면 아래 바리스타로 활동했으며, 대구보다 서울·경기권에서 더 알려져 있다. 이젠 땅 위로 올라와 매미처럼 울고 싶단다. 문을 열고 들어갔다. 처음엔 실험실에 들어온 것 같았다. 정면 진열장에 더치커피 추출기가 한약방 약재장에서처럼 놓여 있다. 구석으로 돌아가며 메조로버일렉(스위스산), 말코닉(스위스) 등 4종의 그라인더, 로스팅 기기 등이 세팅돼 있다. 생두는 케냐, AA, 만델링, 콜롬비아, 브라질, 예가체프, 시다모, 과테말라, 인도, 볼리비아, 부룬디, 탄자니아, 코스타리카 등 20여종이다. ◆ 첫키스와 같은 커피와의 만남 대구에서 태어났다. 생애 첫 커피와의 만남은 2008년 7월. 38세였다. 정말 늦깎이 바리스타다. 연조로 보면 애송이급. 하지만 집중한 시간을 보면 절대 밀리지 않는다. 부산 엘리스커피(광안리해수욕장 근처)가 그를 유혹했다. 첫키스와 같았다. 그 전의 커피는 쓰고, 담배 냄새도 나고, 좀 플랫된(가버린) 커피였다. 그냥 멋으로 먹는 수준이었다. 내밀한 역사, 문화 질감 등은 전혀 느낄 수가 없는 처지에서 만난 그날의 커피. 충분히 그의 삶을 바꿔놓는다. 그해 9월부터 매주 토요일 부산에 가서 6시간 수업을 듣고 마지막 완행 열차를 타고 침산동 자택으로 돌아왔다. 행복했다. 바리스타 자격증을 취득하면서 전 세계 커피의 문화와 역사 그리고 기본기를 터득한다. 커피숍은 꿈도 꾸지 않았다. 그냥 다양한 경험을 하기 위해서 매주 10만원 정도의 원두를 구입해 왔다. 가정용 그라인더와 드리퍼 등은 집에 확보해 놓은 상태였다. 나중에는 커피 값을 감당할 수가 없었다. 나름 다른 커피가 그리워서 로스팅까지 배운다. 부산시 장전동의 커피숍 ‘커피가 사랑하는 남자’의 오너가 친한 동생이었다. 거기서 커피 볶는 걸 배웠다. 한 400㎏(한 자루가 60㎏) 정도 태워먹었다. “쓴맛인지 잘 탄 맛인지 잘 굽힌 건지 그 미묘한 차이를 처음에는 알 도리가 없었습니다.” 굽히면서 생두에 균열이 가는 미묘한 소리의 본질도 터득해야만 했다. 1분이 아니라 1초 상간에 맛이 살 수도 죽을 수도 있었다. 속으로 ‘이건 예술의 영역’이라고 탄성을 내질렀다. “불이 있고 생두가 있습니다. 태우는 것과 굽는 것의 차이는 뭔지 몰랐어요. 속까지 익혀야 하는데 그럼 전도열과 대류열을 적절히 사용해야 하는데 그걸 하루아침에 알 수가 없죠.” 사실 비싼 로스팅 기계 매뉴얼대로 하면 얼추 평균적 맛은 나온다. 기계만 좋으면 해결되는 것인가. 거기서 만족하면 절대 프로가 될 수 없다고 믿었다. 분 단위로 원두의 단면적을 분석했단다. 그러면 1분마다 2만원 정도가 날아간다. “커피 로스팅은 12~15분 사이에서 승부가 결판납니다. 적당한 온도는 기계마다 특성이 다르니 일일이 시행착오를 겪을 수밖에 없습니다.” ◆ 좋은 로스팅 기계를 위해 애장 승용차 처분 에스프레소 머신을 구입하기 위해 애지중지하던 승용차를 처분했다. 만족할 수 없었다. 자기 혼자 음미하기 위해 1천만원짜리 로스팅 기계를 사고 싶다고 했다. 아내가 미쳤다고 쏴붙였다. 6개월간 아내와 논쟁을 했다. 통장에는 잔고가 바닥권. 지인한테 무조건 돈을 달라고 했다. 그렇게 해서 6명으로부터 200만원을 얻었다. 자신이 40대 생일선물로 받을 돈을 아내한테 다 주겠다면서 아내와 지인으로부터 목돈을 확보할 수 있었다. 지성이면 감천이었다. 누가 커피 샘플을 달라고 했다. 그게 판매로 이어졌다. 6개월 만에 빚을 다 갚았다. 고마운 지인들한테 평생 커피는 공짜. 36세에 결혼하고 41세에 첫딸을 봤다. 지금은 43세다. 자기 커피로 처음 돈을 번 건 41세부터다. “커피 맛은 건강과 연관이 있는 것 같아요. 건강하지 않으면 혀도 제대로 설 수 없기 때문에 절대 미묘한 차이를 구분하지 못합니다. 결국 좋은 커피 맛을 위해서는 제 몸을 건강하게 만들 수밖에 없었습니다. 커피를 통해서 저를 발견한 것이죠.” 그는 커피가 맛있으려면 생두가 첫째란다. 다음은 로스팅, 다음은 그라인딩이란다. ◆ 생두와의 전쟁 생두와의 전쟁. 이게 바리스타의 처음이자 마지막 싸움이다. 이건 돈과의 싸움이기도 하다. 나름 엄선한 생두 수t을 냉장보관하고 있다. 그는 대구 바리스타와 공감대 형성이 너무 어려웠단다. “다들 매우 보수적이더군요. 자기 정보를 남과 절대로 공유하지 않으려고 해요. 고수가 있다고 하면 자꾸 누구보다 더 나은지 테스트하려고만 해요. 자기 건 안 보여주고 남의 것만 참견하려고 합니다. 몇 가지 재주로 조금은 버틸 수 있어도 결국 살아남지 못한다고 봅니다. 왜냐하면 이 바닥에서는 모두 고수이면서 모두 아마추어이기 때문이죠. 자신의 부족함이 보여야 더 넓은 세상으로 나아갈 수 있고, 자신의 장점만 부각하고 싶다면 결국 고사되고 맙니다.” 그는 노하우라는 것도 비밀도 없다고 본다. “모든 원천 기술을 알려줘도 절대 흉내를 내지 못합니다. 제가 가르쳐주지 않아도 결국 마인드가 있는 사람은 본질의 노하우에 다가갈 수밖에 없어요.” 그는 생두를 구하기 위해 직접 커피 산지를 찾지 않았다. 차선책으로 맘 맞는 바리스타끼리 모여 좋은 원두를 서로 확보해주고 교환도 하고 상호 논평도 해준다. 자기만 부지런하면 인터넷에 공개된 올해 최고의 생두와 원두 정보를 알 수 있다. 현재 그의 생두 수준은 스스로 10점 만점에 7~9점 급으로 평가한다. 일반 정체불명 고속도로 휴게소 커피를 3~4점 정도, 일반 업소는 5.5점으로 보면 될 것 같단다. 원두 가격의 경우 1㎏ 기준 1만8천~6만원선. 보통 1년이 유통기한이라지만 그가 생각하기에는 로스팅 한 날로부터 2주를 넘겨선 안 된다고 강조한다. 산소와의 접촉으로 인해 산패되기 때문이다. ◆ 더치커피에 올인 더치커피에 올인하게 된 계기는 뭘까. 어느 날 친한 동생이 더치커피 추출하는 기구를 선물했다. 그는 더치커피의 간편성을 발견하게 됐다. “더치커피 문화는 자못 호기심적이라고 봅니다. 옛날 왕이나 접할 수 있었고 그래서 더 먹어 보려고 야단인 것 같습니다. 물론 아메리카노보다 더치커피를 먹으면 좀 더 세련돼 보이고 패셔너블하게 보인다는 문화풍속도가 더치커피 붐을 선도하는 것 같습니다.” 올해 더치커피가 빵 터졌다. 서울은 더욱 폭발적이었다. 2008년에는 바리스타 자격증 따기가 유행이었다. 2010년까지 학원이 폭발적으로 늘어난다. 자기 집에서 에스프레소를 먹으려는 움직임이 나타나고 결국 가정용 로스팅 문화가 정착된다. 더치커피는 그 대미를 장식하고 있다. . 그가 자신만의 더치커피 레시피를 알려준다. 장치는 3단 구조로 돼 있다. 제일 위 칸에는 2천㏄ 용기, 중간에는 300g용 그라인드된 원두용기, 추출액을 받는 3ℓ짜리 컨테이너. “수돗물에는 염소가 있어 세균번식을 막아주지만 고유의 맛이 덜합니다. 염소제거 필터가 달린 정수기 물을 사용하고 그걸 점적인 형태로 10~12시간 떨어뜨립니다.” 원두 200g에 물 2천㏄를 넣으면 추출액은 1.8ℓ가 나온다. 묵을 쑬 때처럼 계속 지켜봐야 한다. 물이 일정하게 떨어지게 하기 위해서다. 물이 위에 고여있으면 맛이 없어진다. 추출이 아니라 침출되기 때문이다. 추출 후 2일간 냉장 보관을 한다. 배송 받은 뒤 냉장 보관하면 한 달 정도는 먹을 수 있다. 더치커피는 상온에 두면 자칫 상할 수 있다. 아메리카노의 경우 신맛이 인상적이다. 현재 과테말라·인도·만델링·예가체프, 4대 2대 2대 2로 혼합한다. 이 비율로 더치커피를 뺀다. “커피 초보자는 처음에는 모두 마일드하게 먹으려고 합니다. 이때 남미계열(콜롬비아, 과테말라)을 접하죠. 그 다음에는 케냐와 예가체프(에티오피아), 고수급으로 가면 쓴맛과 초콜릿 맛이 지배적인 만델링(인도네시아)에서 만나는 것 같아요. 커피맛은 신맛·단맛·쓴맛의 절충선에서 결정나는 것 같아요. 신맛은 2~3, 단맛은 6~7, 쓴맛이 1 정도 영향을 주는 것 같습니다. 맛과 관련해 영원히 답은 안 나오겠죠. 그 답을 향해 가는 것, 그 속에서 연륜과 깊이가 한계적으로 오겠죠. 고수는 이 괴로움을 운명이라면서 즐길 겁니다. 어느 수준을 넘으면 누가 더 고수냐를 절대 묻지 말아야죠. 서로의 차이, 그래요. 스타일만 확인하면 끝입니다.” 요즘 그는 원하는 이에게 더치커피를 배달해주고 있다. 피터스 커피 쇼핑몰(www.peterscoffee.co.kr)을 통하면 된다. 틈틈이 중학생 커피반, 교도소 등을 찾아서 커피를 알리고 있다. ‘좋은 아버지는 빨리 죽는 아버지’란 쇼펜하워 어록을 던진 그가 “정말 자식한테 부끄럽지 않은 아버지가 되고 싶다”는 멘트를 끝으로 인터뷰를 끝냈다. 그의 커피에는 왠지 ‘유목민’ 냄새가 어른거린다. 010-8856-9433 이춘호기자 leekh@yeongnam.com
2013.12.20
[이춘호 기자의 푸드 블로그] 오너셰프를 찾아서 (28) 대구시 중구 선어무침회 정식 전문 ‘약전’의 백설희
대구시 중구에 있는 옛 중앙시네마 서편 진골목 안. 아직 일제강점기의 기운이 도사리고 있다. 대구의 첫 양옥이었지만 지금은 폐업된 정필수 소아과 옆에 예스러운 ‘ㄷ자한옥’이 한 채 있다. 선어무침회 정식 전문식당 ‘약전’이다. 족히 80여년은 됐을 법한 적벽돌 담장이 꽤나 운치 있어 보인다. 한옥 툇마루에 겨울 햇살이 흥건하게 고여 있다. 고풍스러운 장지문 앞에 무말랭이가 고드름처럼 매달려 있다. 아직 대구 도심 안에서 이런 향취를 느낄 수 있다는 게 무척 고맙다. 약전은 묘하게 ‘시간’이 멈춘 것 같다. 신라의 여인 같은 자태의 오너셰프 백설희. 기질이 질그릇 같으면서도 내면은 십자수처럼 섬세하고 치밀하다. 그녀의 일상은 담담하면서도 해학적이며 파격적이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쪽찐머리였는데 갑자기 머리카락을 빡빡 밀어버렸다. 집 입구 간판이 작품 같다. 일본 전통 가이세키 요리점처럼 자그마한데 주인의 안목이 담겨있다. 십여 개의 솟대가 해바라기처럼 손님을 맞는다. 마당은 각종 수목으로 빼곡하다. 대문을 휘감은 등나무, 14개의 옹기, 7개의 다듬잇돌 등이 단골에겐 잠시 ‘휴(休)테크’ 구실을 한다. 1970년대 톤의 손톱만한 타일도 인상적이다. 물엿·방부제 안 써 시중의 달고 텁텁한 초장과는 비교 안돼 무채처럼 썰어 나온 동치미는 깊은 울림 새콤달콤하지 않아 토장국 대신 추어탕…멍게비빔밥의 맛도 거제식과 사뭇 달라 간고등어는 제주産 마리당 5천원에 사 7일정도 염장·냉동 ◆ 구색갖추기 반찬은 절대사절 뜨내기 손님은 좀처럼 찾아보기 어렵다. 거의 단골이다. 메뉴가 요란스럽지 않다. 전라도 한상차림 톤은 아니다. 심산유곡 용소의 시퍼런 계곡수처럼 메뉴 하나마다 진기가 가득하다. 다른 메뉴와 상생상극적 기운을 주고받고 있다. 마지못해 구색갖추기로 조리한 메뉴는 단 하나도 없다. 구석구석 죄다 젓가락이 스쳐지나간다. 그녀도 어찌어찌해서 오너셰프의 길로 들었다. 요리 사부는 어머니. 어머니는 딸의 운명을 미리 내다본 듯 혹시 어려운 시절을 만나 밥 굶지 않게 하려고 자신의 요리 테크닉과 안목을 어릴 때 전수했다. 그 콘텐츠를 요즘 요리학원에서 절대 배울 수 없다. 그녀는 한시에도 관심이 깊다. 상당히 긴 백거이의 ‘비파행(琵琶行)’을 다 외워 단골을 놀라게 만든다. 요즘은 중국어와 기타까지 익히고 있다. 포항시 장성동에서 태어났다. 어릴 때 대구로 왔다. 초등학교 시절부터 요리를 가까이 했다. 모친이 추어탕을 끓이기 위해 대바구니에 미꾸라지를 넣고 왕소금을 뿌려놓으면 세척은 그녀 담당. 모친은 추어탕과 콩국수를 정말 잘 만들었다. 콩국수도 요즘과 달리 아주 말갛다. 삶은 콩을 멧돌에 간 뒤 뻑뻑한 두유 같은 걸 체에 걸러 아주 맑게 만든다. “요즘 콩국수는 너무 너무 뻑뻑해요. 지금도 콩국수를 주문만 받으면 정말 맛있게 요리할 수 있죠.” 모친은 대구 종로에서 조그마한 식당을 꾸려갔다. ‘선어무침회 전문점’이었다. 빙어와 전어, 병어 등 잡어를 주로 취급했다. 활어보다 주로 선어였다. 집이 너무 좁아 모친이 벽에 우스갯소리를 적어놨다. ‘장소가 너무 협소하오니 회를 잡수신 후 여담은 다방에서!’ 당시 포마이카 상이 3~4개 있었으며, 손님이 각자 알아서 펴고 접었다. 횟집이었지만 요즘 흔한 분말 고추냉이조차 없었다. 양념은 ‘초장’이었다. 갖은 채소를 채썰어 수북하게 내놓으면 손님은 알아서 앞접시에 가져가서 비벼 먹는다. 모친이 2000년까지 하다가 그만두자 그녀가 이어받았다. 시댁이 청도여서 처음엔 옥호가 ‘청도식당’이었다. 33세 때 약전골목 현재 청도보신탕 자리에서 ‘약전’으로 재출발했다. ◆ 약전의 요리 레시피 포항 죽도시장 등을 통해 전어, 밀치, 도다리, 광어, 우럭 등을 하루 전날 갈무리해서 냉장고에 보관한다. 모친은 딸에게 툭하면 ‘생물은 욕심을 내면 안 된다’고 당부했다. 예약 들어온 만큼만 준비한다. 무침회의 승부처는 역시 초장이다. 우선 고추장을 잘 담가야 한다. 시장에서 사온 건 텁텁하고 너무 달아서 못 쓴다. 영양고추를 방앗간에서 아주 곱게 500근 정도 간다. 1년 먹을 것이다. 찹쌀가루, 메줏가루, 간수 뺀 왕소금, 엿질금 등이 섞여야 하는데 엿질금은 하룻밤 잘 삭혀야 된다. 엿질금 대신 물엿을 사용하면 질척거려서 절대 사용하지 않는단다. 고춧가루 5근·엿질금 5되·왕소금 반되·메줏가루 반되를 혼합한다. 고추장은 항아리에 넣어 숙성시키는데 1주일에 한 번 정도는 계속 저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꽃가지(곰팡이)’가 핀다. 그런데 방부제 탓인지 공장 고추장은 절대 꽃가지가 피지 않는다. 5개월 정도 묵히면 먹을 수 있다. 겨울에는 물미역, 깻잎, 양배추, 무, 쑥갓, 대파, 여름에는 미역 대신에 오이를 사용해 무쳐 먹을 채소류를 낸다. 4색나물(무, 콩나물, 고사리, 시금치)은 연중무휴로 올라간다. 그 곁에 호박전과 생선(명태)전 두 가지를 올린다. 겨울에는 마재기 무침이 특별한 울림을 준다. 동치미 맛도 의젓하다. 별 재료가 동원되지 않는다. 왕소금·동치미 무·배, 삭힌 고추·끓여 식힌 물이 주재료. 소금에 절인 무에 반드시 끓여 식힌 물을 한가득 붓고 서늘한 뒤란에서 보름 정도 묵히면 먹을 수 있다. 예전 반가음식에선 동치미 국물 맛을 보면 그 집 종부가 내공이 어느 정도인지 단번에 알 수 있다고 했다. 그런데 요즘 젊은이를 겨냥한 동치미는 너무 새콤달콤하다. 예전 어른들은 한 입도 먹을 수 없다. 여기 동치미는 석간수 같은 깊은 울림이 있다. 이래야만 동지 팥죽 옆에서도 실력을 발휘할 수 있다. 여기는 특이하게 무채처럼 동치미 무를 썰어 내온다. 약간 군둥네가 풍긴다. “피크를 며칠 넘긴 것 같다”고 하니 그녀가 시인을 한다. 된장이나 참기름에 밥 비벼 먹으면 입맛 찾는 데 일조할 것 같다. ◆ 별미로 인정받은 멍게비빔밥 지역에선 처음으로 ‘멍게비빔밥’을 냈다. 요즘 유행하기 시작한 거제도발 멍게비빔밥과는 맛이 사뭇 다르다. 멍게비빔밥은 고향인 포항에서 자주 해먹었단다. 멍게를 잘게 썬 뒤 미역줄기에 김가루를 넣고, 참기름(진짜 국산 기름을 사용)으로 볶고 그 위에 돌솥밥(보리쌀, 흑미, 쌀)을 올려 비벼 먹는다. 간고등어도 경북 내륙 간고등어 대신 제주도산만 고집한다. 마리당 5천원선이다. 여느 식당에선 한 마리에 1천원 정도짜리를 사용한다. 그러니 맛은 더 이상 물어볼 필요가 없다. 제주서 공수받은 100마리를 염장해 냉동고에 보관한다. 7일 정도 지나면 맛이 들기 시작한다. 간고등어는 물에 씻지 않고 참기름을 양쪽 면에 발라 오븐에서 10분 정도 구워낸다. 토장국 대신 추어탕을 낸다. 하루 전날 미꾸라지를 사와서 해감시킨다. 이어 마른 토란을 삶고 우거지·배추 등에 으깬 미꾸라지 육즙을 된장과 함께 풀고 3시간 정도 끓이면 된다. 된장도 직접 만들지만 대다수 추어탕 용으로 사용한다. 김장은 200포기 정도 한다. 멸치젓갈과 육젓을 반반 정도 섞은 뒤 고추, 청각, 갓, 굴 등을 넣는 경상도식이다. 매일 새벽장을 찾아 필요한 걸 사온다. 전체 메뉴의 20%는 철마다 바뀐다. 상차림을 보면 뒷짐 지고 선비가 걸어가는 형용이지만 실제는 엄청난 고수가 아니면 일을 감당할 수 없다. 경험없는 사람이 실시간으로 이런 메뉴를 관리하려고 하면 코피를 쏟으며 쓰러질 정도로 일 강도가 세다. “제일 힘든 건 음식 장만하는 게 아닙니다. 손님 캐릭터가 워낙 다양해서 모두의 욕구를 다 충족시키지 못하는 게 제일 버겁지요. 가령 다른 집에서는 고스톱도 칠 수 있는데 여긴 왜 안되느냐는 질문을 해 올 때 참 난감합니다.” 단골 연령은 평균 50~70대. 한때 방 한편에 1천여권의 책을 진열해 뒀는데 장소가 협소해 다른 곳으로 옮겼다. 오후 4시쯤이면 벌써 햇살은 보이지 않는다. 월동 중인 시래기와 무말랭이가 두런두런 대화를 나눈다. 그녀는 이날 오후 6시30분 단체 손님 25명의 식사를 준비해야 된다면서 자리에서 일어난다. 언제 노느냐고 하니, 경찰서가 놀 때 논단다. 헷갈린다. 연중무휴란 소리다. 그런데 점심과 저녁 사이 1~2시간 그녀는 ‘딱따구리 부리’처럼 부리나케 망중한(忙中閑)을 즐긴단다. 중구 남일동 132번지. (053)252-9684 이춘호기자 leekh@yeongnam.com
2013.12.13
[이춘호 기자의 푸드 블로그] 누가 대구 대표음식이 없다고 하는가
“과장님, 어쩌다가 대구로 발령을 받았습니까.” “서울로 올라올 때까지 라면으로 버티지 뭐.” 30여년 전만 해도 대구로 전근 온 사람들은 대구음식 때문에 모두 ‘절망’했다. 그때만 해도 대한민국 최악의 음식도시가 바로 대구로 낙인찍혀 있었다. 대구 사람들도 이구동성으로 ‘그래, 나도 대구 살지만 정말 먹을 게 없다’고 맞장구를 쳤다. 그 어떤 기막힌 식당이 있어도 공감대를 얻을 수가 없었다. 나쁜 음식도시란 누명은 그 누구도 벗겨주지 않았다. 그런데 지금도 대구가 그럴까. 지금부터 독자 제현은 기자가 제공하는 정보를 꼭 기억했다가 타 도시 사람이 대구음식 흉을 보거나 할 때 요긴하게 활용하길 바란다. 지난달 18일 대구음식문화포럼(회장 하영수) 주최하에 ‘대구음식관광 내일을 연다’란 주제로 ‘2013 대구음식문화 발전전략 세미나’를 개최했다. 200여명의 음식 관계자가 참여했다. 기자도 이날 토론자로 참석, 대구음식 인식 개선방향에 대해 개인적 견해를 개진한 바 있다. ◆ 대구음식, 이젠 간단하지 않다 솔직히 1990년대까지만 해도 대구음식은 전국에서 가장 영향력이 낮았다. 저승사자도 하도 음식 맛이 없어 대구에 오는 걸 꺼렸다는 말이 있을 정도였다. 과연 지금도 그럴까. 그렇지 않다. 대구음식을 최악으로 평가했던 전라도의 위상은 상대적으로 추락하고 있다. 현지 사람들도 예전 전라도 음식이 아니라고 걱정한다. 유명 식당은 거의 ‘관광식당버전’으로 변질되고 있다. 심지어 전라도 음식연구가들은 욱일승천하고 있는 대구의 음식 인프라에 대해 조목조목 연구하기 시작했다. 특히 국내 첫 한글 고조리서인 ‘음식디미방’의 종주권을 갖고 있는 안동과 영양을 비롯해 영주, 예천 등 안동북부 반가음식이 새로운 흐름을 타면서 전라도에서도 경상도 음식 콘텐츠 벤치마킹에 나서고 있다 . 대구시 남구 대명동 앞산 안지랑시장 양념곱창 골목은 무려 100m가 넘는 거리에 70여개의 곱창집이 밀집해 있어 전국적인 진풍경을 이루고 있다. 이 거리가 워낙 재밌게 보여 KBS 다큐 3일팀이 다녀갔다. 동구 평화시장 닭똥집 거리도 상당한 유명세를 타고 있다. 현풍곰탕은 서울의 하동관, 전남 나주의 하얀집과 함께 전국 3대 곰탕집에 등극했다. 남구를 보자. 이천동 복개도로 상에 있는 ‘진흥반점’은 선정 과정이 객관적이 아니라서 문제가 있긴 하지만 아무튼 전국 5대 짬뽕집으로 매일 장사진을 이루고 있다. 또한 조선일보 김성윤 음식전문기자는 전국 푸드거리 기획시리즈 1탄으로 서문시장 칼국수를 소개했다. 더 놀라운 사실은 채널A 먹거리 X파일(이영돈 PD 진행)에서 전국 최고의 착한 칼국수 식당을 대구에서 발견했다는 점이다. 바로 달성군 가창면 우록리 ‘가창할매밀칼국수’다. 현재 대구는 전국에서 국수 소비량이 가장 높고, 북구 노원동 풍국면은 전국에서 가장 오래된 국수공장이다. 호암 이병철이 오늘의 삼성그룹을 이룰 수 있었던 전기가 그가 중구 인교동에서 시작한 별표국수였다는 분석도 있다. 특히 대구권은 약선요리에 강하다. 대구한의대 약선요리 전문 김미림 교수는 대구 약령시 인프라와 영천 한약재 유통 인프라를 잘 활용해 중국과 일본의 약선요리와 맞물린 한국형 약선요리 문화의 신지평을 열어 가고 있다. 경주 보문단지에서 신라음식문화연구소와 약선요리 전문식당인 라선재를 열고 신라 이사금 요리는 물론 약선요리 메뉴 개발에 발 벗고 나서고 있는 차은정씨도 지역의 대표적 약선문화 전도사로 활동 중이다. 약선요리와 메디시티 대구가 손을 잡으면 시너지효과는 배가 될 것이다. 대구는 전국에서 가장 많은 전통차 사범이 있고, 향토 커피 브랜드(커피명가, 시애틀의 잠 못 이루는 밤, 다빈치, 핸즈커피, 더 브릿지 등)는 전국적 반향을 일으키고, 바리스타 수도 전국 최고다. 대구에서 처음 발생한 대구십미(大邱十味·따로국밥과 동인동찜갈비, 납작만두, 국수, 막곱창, 뭉티기, 무침회, 야키우동, 복불고기, 논메기매운탕)도 점차 전국적 인지도를 얻고 있다. 다른 도시에는 이런 다양한 향토음식이 존재하지 않는다. 대구십미 하나하나에 해묵은 이야기가 묻어 있다. 육사시미인 ‘뭉티기’는 전국 최강의 술안주로 손색이 없다. 뭉티기-동인동찜갈비-막곱창-무침회-평화시장 닭똥집을 하나로 묶을 경우 대한민국 최고의 술안주벨트(취해도)로 발돋움할 수도 있다. 특히 대구는 대한민국에서 가장 다양한 쇠고기국(육개장)을 가진 고장이다. 육개장의 발상지도 대구다. 6·25전쟁을 거치면서 따로국밥이 파생됐다. 너무나 다양한 쇠고기국이 존재하는 걸 대구사람도 잘 모른다. 이를 알려야 한다. 이참에 ‘국(육개장) 박물관’을 만들어 따로국밥은 물론 설렁탕-곰탕-갈비탕-쇠고기국밥-육개장-육사시미(뭉티기)-육회-불고기-동인동찜갈비-막곱창을 원스톱으로 연결해 쇠고기 요리의 모든 걸 보여줘도 좋을 듯싶다. 대구는 치킨이 강하다. 멕시카나와 페리카나, 교촌치킨, 호식이 두 마리, 종국이 두 마리, 땅땅치킨 등을 띄운 명실상부 대한민국 프라이드치킨의 메카다. 사정이 이런 데도 지역민은 등잔 밑이 어두워 여전히 대구는 먹을 게 없는 고장이라고 투덜댄다. 이런 어리석음이 있을까. 이제 관계자들이 이런 대구음식 콘텐츠를 들고 전국으로 홍보하러 다녀야 한다. 발이 부르트도록 말이다. ◆ 그럼 우리는 어떻게 해야 되나. 일단 알려야 한다. 대구대표음식 투어상품부터 만들어야 한다. 이걸 전국에 깔아 줄 SNS 홍보 전문 관계자들도 서울에서 불러 내릴 필요가 없다. 주위를 살펴보면 수두룩하다. 모모짱과 준팔근팔, 바람돌이 등 전국적 파워 푸드블로거가 대구에 적잖이 산재한다. 그들의 도움을 받아 테마별 투어 코스를 만들어 보자. 전국 주당들을 겨냥해 ‘술안주 투어 상품’도 띄워라. 평화시장의 닭똥집 골목과 안지랑시장의 양념곱창 골목, 반고개 무침회 골목, 남문시장 보쌈 골목, 동인동 찜갈비 골목, 서성로 돼지수육 골목, 뭉티기 전문식당(너구리, 묵돌이, 송학, 녹양, 극동구이, 백합구이), 북성로 돼지불고기우동 등을 하나로 묶어 보자. 대구음식은 간이 세다. 그리고 맵다. 그런데 매운 걸 역이용하면 어떤가. 지구상에서 가장 매운 음식, 바로 멕시코 음식보다 더 매운 음식이 대구에 있다면서 순례 코스를 만들자. 치명적으로 매운 음식을 먹으며 괴로운 표정 짓는 걸 유튜브에 퍼뜨리자. 신천시장 매운 떡볶이는 이미 전국구로 날아다닌다. 대구십미를 위한 팸투어 마케팅도 계속 돌려라. 전국의 파워 블로거와 음식 관련 방송 PD 등을 초청해 대구십미 명가를 팸투어 시키자. 10개 음식 이미지를 갖고 티셔츠와 열쇠고리 등 각종 액세서리와 팬시용품 판매장을 관광센터 등에 비치해도 좋을 것 같다. 대구 출신 유명 인사도 왜 홍보맨으로 기용하지 못하는가. 영화배우 신성일과 프로야구선수인 이승엽과 양준혁, 방송인 김제동, 영화감독 이창동, 빅마마 이혜정(요즘 서울 종합편성채널의 최고 인기 방송인으로 그의 남편은 현재 영남대병원 산부인과 과장을 맡고 있는 고민환 교수) 등의 입을 통하면 대구음식 모양새가 단번에 확 달라진다. 모르긴 해도 위에 열거한 정도의 강력한 음식 관련 콘텐츠를 가진 도시는 대한민국에 단연 대구밖에 없다고 자신한다. 이제 모두 대구음식 광복을 위한 독립운동가로 변신할 때다. 위에 열거한 분들이 화를 내신다면 이해를 바란다. Ready, GO! 이춘호기자 leekh@yeongnam.com
2013.12.06
[이춘호 기자의 푸드 블로그] 오너셰프를 찾아서 (27) 대구 대명9동 ‘12-키친&바’의 윤경수
오너셰프에겐 ‘묘한’ 냄새가 풍긴다. 물론 먹음직스럽다. 이스트 발효의 접점을 찾은 갓 구워낸 식빵의 질감이다. 한눈에 ‘아, 이 사람은 운명적으로 셰프가 될 수밖에 없어’란 반응을 이끌어내는 셰프가 있다. 피곤할 텐데 한번씩 웃으면 그 피곤기가 증발해버리는. 그렇다면 그는 운명적으로 무당같은 셰프가 되어야 한다. 대구시 남구 대명9동 앞산네거리에서 카페거리로 올라가다 보면 오른편 사각지대에 이탈리안 레스토랑 ‘12-키친 & 바’가 보인다. 실내로 들어가면 조금은 뉴욕 키친의 색채가 짙다. 그 집의 오너셰프 윤경수씨(29)를 처음 봤을 때도 타고난 셰프란 직감이 작동했다. 아니나 다를까, 그의 일거수일투족이 열정적이다. 레시피와 조리라인은 오가닉(Organic)하고 친환경적이다. 전국을 통틀어 자신의 메뉴에 들어가는 식재료를 자신이 직접 핸들링하는 셰프는 손으로 꼽을 정도다. 伊 오너셰프의 요리철학까지 배워 식재료 본연의 맛 살리는 데 주력 지역선 드물게 저온진공 조리… 삼겹살 샐러드 부드러워 채소·허브는 고향 농장서 조달 복사시미 같은 수제햄도 제조 ◆ 이탈리아에서 사부를 만나다 군위군 소보면 송원리에서 태어났다. 체육교사가 되기 위해 체육대학에 응시한다. 여의치 않았다. 곰곰히 생각한다. 뭘 먹고 살까. 어머니는 북구 검단동에서 손맛 있다는 소문을 듣는 한식당을 운영한다. 순간 자신이 요리에 재능이 있다는 걸 파악한다. 친구들에게 적잖게 요리를 대접했다. 다들 맛있다고 야단이었다. 그래, 요리 쪽으로 가자. 일단 시내 동성로 ‘리틀 이탈리아’에서 일을 시작한다. 그런데 어느 날 음식 마니아가 자신의 음식을 지적하며 이건 이탈리아 현지 버전과 상당히 다르다고 했다. 순간 식은땀이 흘렀다. 고수의 한 마디가 그를 주눅들게, 그리고 철들게 한다. 이탈리아 현지를 모르고 오직 대구만 고집한다고 될까. 그건 딜레마였다. 이탈리아 요리를 하려면 이탈리아의 문화와 생활을 알아야 한다. 2010년 이탈리아로 갔다. 피렌체, 알프스 산맥 경계 지역 알토아디제에서 머물렀다. 일단 파르마에 있는 요리학교 ‘알마(Alma)’에 입학했다. “모든 게 다 새로웠어요. 제가 머무른 식당은 미슐랭가이드 별 두 개짜리였죠. 피렌체의 ‘아르놀포’, 알토아디제의 ‘로자알피노’.” 아르놀포의 오너셰프인 자이타노는 그의 사부였다. 셰프의 철학과 느낌, 조리방법 등에 대해 배웠다. “진정한 셰프는 식재료 본연의 맛을 다치게 하지 않고 멋지게 살리는 사람입니다. 그게 가장 중요한 대목이라고 봐요. 그런데 우리는 식재료 본연의 맛을 양념과 조미료, 육수와 소스 등이 다 죽이고 있으니 말입니다. 너무 덧칠하는 것 같아요. 음식이 너무 지쳐있다고나 할까요.” 그는 이탈리아에 있을 때 비둘기 요리를 한 게 가장 인상에 남는다. ◆ 수비드 조리법을 선뵈다 리틀 이탈리아에서 4년, 이탈리아에서 2년여 세월. 국내에서 알았던 이탈리아 요리 상식의 허와 실을 확인했다. 자신이 생겼다. 사부는 자기와 이탈리아에서 함께 일을 하자고 부탁했다. 하지만 비자 문제 때문에 귀국을 한다. 서울 이태원 오키친(오너셰프·스스무 요나구니)에서 메인요리와 에피타이저를 맡았다. 다들 만족해했다. 그의 호기심과 창작욕은 더 이상 남 밑에 있을 수준을 넘어선다. 지난 5월 대구로 온다. 선배인 김충현 셰프와 손을 잡는다. “경상도 음식은 상당히 자극적인데, 이탈리아에서는 식재료 본연의 맛을 부각시키기 때문에 그렇게 자극적이지 않습니다. 하지만 마지막엔 인상적인 맛이 따라오죠. 에스프레소와 달디단 디저트로 대미를 장식합니다. 이탈리아에선 식재료 장만에서 요리까지 모두 자작입니다. 그게 부러웠어요.” 현재 업소 자리를 찜해 놓고 식기와 식재료 등을 구하기 위해 현지로 날아간다. 아이스크림 기계, 생면 뽑는 기계, 저울, 라비올리 만드는 소품 등 10여종을 사갖고 왔다. 일부 온라인 아마존을 통해 씨앗을 구입하기도 했다. 그는 지역의 셰프들이 거의 손대지 않고 있는 ‘수비드(Sous-vide)’조리법을 도입했다. 맛과 질감을 최상의 상태로 유지하고 영양소 파괴를 없애는 수비드 조리법은 71년 퀴진 솔루션(슬로푸드를 위한 수비드 조리법을 발명한 연구기관)의 수석 연구자 부르노 코소 박사가 탄생시킨다. 저온 진공 분자 조리법을 통해 영양소, 질감, 맛 등을 최상으로 유지하는 혁신적인 조리법이다. “서울의 웬만한 오너셰프는 다 이 조리법을 애용합니다. 일반적인 조리법으로 닭가슴을 요리하면 보통 퍽퍽한 상태가 되곤 하는데, 이 조리법을 통해 천천히 조리하면 열을 골고루 전달하고 수분 증발이 없어 쫄깃한 맛을 구현할 수 있어요.” 그가 창고에서 200여만원 하는 이탈리아제 수비드 기계를 보여준다. 일단 고기를 소금물에 염장한다. 1~3일간 묵혀둔다. 그다음 진공기 안에 들어가는데 1~2일간 50~ 90℃ 사이에서 숙성시킨다. 그가 수비드 조리법으로 만든 삼겹살 샐러드를 내온다. 수비드 숙성이 끝난 삼겹살은 불판에서 껍질 부분만 구워 낸다. 한 점 먹었다. 바비큐보다 더 부드러웠다. 마치 일본 고베 와규(和牛) 같다. ◆ 복사시미 같은 수제햄 직접 만들다 주방은 초밥집 다찌의 오픈 주방을 닮았다. 한 쪽에 돼지고기 몇 부위가 육포처럼 걸려 있다. 그가 직접 만들고 있는 수제햄이다. 그는 유럽의 하몽과 프로슈트에 관심이 있어 혼자 독학으로 햄에 관해 연구와 실험을 했다. 현재 돼지고기 5부위를 갖고 7종의 햄을 만든다. 처음에는 염장을 하고 그 다음에 14~16℃에서 2~4개월 숙성시킨다. 그걸 갖고 ‘모둠 햄 치즈 플레이트’(2만6천원)를 낸다. 식감을 위해 멜론 대신 사과와 올리브를 곁들인다. 미식가라면 한번 먹어보라고 권하고 싶다. 삼겹살햄인 ‘판체따’, 등심햄인 ‘코파’, 볼살햄인 ‘관찰레’, 안심햄인 ‘론짜’ 등이 복사시미처럼 얇게 저며 나온다. 론짜는 우리의 육포 같은 질감. 주방 한 켠에 의성 마늘 한 축이 걸려 있다. 참 믿음이 간다. 그가 이 집의 명물인 1㎏짜리 티본스테이크를 내온다. ◆ 1㎏짜리 티본스테이크를 내다 여느 티본스테이크를 받아보면 식용본드로 접착한 게 많은데 그는 이탈리아 오리지널 스타일을 보여준다. “피렌체에서 1㎏짜리 티본스테이크를 잊지 못하겠더라고요. 너무나 감동을 받았어요.” 고기는 서울 마장동에서 가져온다. 저온 숙성고에서 한달간 ‘드라이에이징(Dryaging)’해서 낸다. 온도는 0~1℃. 그렇게 말리면 겉이 딱딱해지고 지방이 수축하면서 안으로 스며들어간다. 고기가 훨씬 부드러워진다. 2단계로 굽는다. 일차로 그릴 자극만 내서 손님에게 덩어리를 보여준다. 손님에게 믿음을 주기 위해서다. 2차 때는 굽기 정도를 알아 5~10분 굽는다. “우리 집 티본스테이크 맛은 이탈리아 현지와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이탈리아 현지에서 이 정도 크기라면 15만~18만원 합니다.” 스테이크 옆에는 농장 감자와 의성 통마늘, 홀그레인(겨자씨)을 담아낸다. 감자 구울 때 로즈마리 향이 스며들도록 한다. 향후 겨자씨를 구입해 홀그레인까지 직접 만들 예정이다. 티본스테이크 재료 손실률은 20~30%. 이문만 밝힌다면 시도하기 버겁다. ◆ 고향 군위에 허브 농장을 갖다 그는 자기가 사용하는 채소 및 허브를 직접 고향의 농장에서 조달한다. 현재 미니당근, 비트, 로즈마리, 로메인, 펜넬, 박하, 가지, 타임, 바질, 돼지감자, 고구마, 사과, 루콜라, 시금치, 세이지, 치커리, 마조람, 딜 등을 재배한다. 1주일에 한번 정도 가져온다. 식재료 구입비가 상당히 절약이 된다. 그래서 손님에게 음식을 더 싸게 줄 수 있다. ◆ TIP 그는 독신이다. 24시간 요리 생각뿐이다. 디저트는 세 종류가 나온다. 아몬드 크럼블을 바닥에 깔고 그 위에 요거트 무스를 올리고 블루베리를 올린다. 그 옆에 새콤달콤한 블루베리 소스를 깐다. 판나코타(생크림과 우유가 베이스)와 바닐라아이스크림. 여기선 직접 바닐라 씨를 갈아 만들었다. 설탕도 가급적이면 자제한다. 이탈리아 탄산수도 2종류 있다. 산펠레그리노, 아란치아타. 모두 5천원. 파스타 면은 주문받은 뒤 7분 정도 삶아낸다. 1만2천~1만6천원선. 스테이크 코스는 4만1천원(1㎏ 티본스테이크는 9만1천원). 파스타 코스는 2만4천원. (053)652-8007 이춘호기자 leekh@yeongnam.com
2013.11.22
[이춘호 기자의 푸드 블로그] 테너와 닥터가 만나 클래식공연이 있는 이탈리안 레스토랑을 열다
테너 임제진씨와 의학박사 신이철씨(21세기내과 원장). 올해 44세 동갑인 둘은 대구 오성고 동기간. 둘 다 ‘아웃사이더’ 유전자가 짙다. 신 박사는 클래식은 물론 온갖 음악에 심취해 있다. 클래식에서 제3세계 뮤직까지 웬만한 장르의 음악을 파일로 간직할 정도다. 다른 의사보다 ‘모험심’을 하나 더 갖고 있다. 아내의 반대를 무릅쓰고 클래식 공연이 있는 레스토랑을 꿈꿨다. 이탈리아 푸드에 나름의 안목이 있는 셰프를 찾아다녔다. 그렇게 해서 만나게 된 게 임 테너. 임 테너도 참 불꽃같은 사내다. 계명대 성악과를 나와 이탈리아 유학을 다녀왔다. 2002년 귀국, 2005년까지 국립오페라단 객원단원 자격으로 오페라 투란도트, 사랑의 묘약, 카르멘, 라트라비아타 등 100회 이상 출연 경력을 갖고 있다. 그는 유학 시절 이미 이탈리아 음식에 대한 감을 많이 익혔다. 식재료궁합에 눈을 뜬 것이다. 하지만 오너셰프가 되겠다는 생각은 전혀 없었다. 그런데 클래식 무대가 아직 특수층의 전유물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현실이 안타까웠다. 그래서 일반인들도 식사를 하면서 편하게 클래식 공연을 감상할 수 있는 교두보 같은 레스토랑이 절실하다고 믿었다. 올해 ‘오티모’로 오기까지 여러 레스토랑을 거쳤다. 2007년 대구시 북구 복현동 한 건물 4층에 ‘오 솔레’라는 레스토랑을 차린다. 지역의 첫 클래식 공연 전문 이탈리안 레스토랑이다. 무대가 협소했다. 그래서 2008년에는 계명대 성서 캠퍼스 근처로 이전한다. 요리 과정에 생겨난 주방의 매캐한 기름 냄새 등이 그의 기관지를 탁하게 만든다. 피곤한 목을 안고 초청 공연 무대에도 달려가야 했다. 요리와 공연을 병행할 수밖에 없었다. ‘천근만근의 세월’이라고 여겼다. 지난 10월12일 둘은 가슴이 벅찼다. 지역의 클래식 동호인들도 깜짝 놀란다. 국내 메이저급 테너로 인기가 높은 김남두씨의 살롱 음악회는 60석 모두 예약됐다. 자리가 없어 돌아가는 손님도 생겼다. 공연 감상하며 식사하는 가격은 1인당 7만원. 초청받은 김 테너도 처음엔 조금 당황한다. 하지만 국립오페라단 시절 같이 노래한 후배의 간청을 거절하기 뭣해서 허락했다. 하지만 이날 김 테너는 예상외의 열광적 반응에 무척 고무된다. 임제진·신이철씨 운영 ‘오티모’ 잔잔한 화제 10월 김남두 살롱음악회 1인분 7만원 전석 매진 중년 위한 웰빙에 초점 채소크림스파게티 개발 ◆ 오티모 음식을 맛보다 수성못 동편 뉴욕뉴욕 레스토랑 북쪽 맞은편 건물 2층에 이탈리안 레스토랑 ‘오티모(OTTIMO·이탈리아어로 ‘최고’란 뜻)’가 있다. 다크 브라운 계열의 조금은 바(Bar) 같은 분위기였다. 안쪽에 그랜드 피아노가 놓여 있다. 여기서 내는 파스타 종류는 베지테리언 크림 스파게티 , 풍기포르치니(포르치니 버섯과 올리브유로 맛을 냄) 등 19가지. 기회만 주면 수백 가지도 만들 수 있단다. 전반적으로 요즘 젊은이 취향의 반들거리는 메뉴와는 차이를 둔다. 식재료 특유의 무게감이 느껴진다. 잔재주를 덜 부린 것 같다. 그는 중년을 위한 ‘웰빙 스파게티’ 개발에 주력한다. 어렵사리 채소와 과일 등이 축을 이룬 블루베리가 들어간 ‘베지테리언 크림 스파게티’도 개발했다. 주방 화덕에서 만든‘피자이올라 피자’의 중심부는 성난 복어처럼 배가 부르다. 반죽 숙성이 잘 된 덕이다. 이춘호기자 leekh@yeongnam.com ◆ TIP 평일 점심 때 파스타 1만원 균일 16일 정상급 베이스 함석헌 무대 솔직히 메뉴에서‘옥에 티’도 보였다. 하지만 둘의 열정이 그 티를 다 지워준다. 자기 음식에 대한 단골의 지적을 다음 음식에 반영하려는 그 배려심에 밑줄을 긋는다. 식재료도 전반적으로 착하다. 무엇보다 매월 한 차례 괜찮은 성악가를 눈앞에서 볼 수 있으니 일거양득. 월~금요일 점심 대다수 파스타를 1만원 균일가로 파는 ‘만원의 행복 타임’도 재밌다. 16일 오후 7시에는 국내 정상급 베이스인 함석헌이 오티모 11월 무대에 선다. 개그토크에 능한 함석헌은 이날 정훈희의 ‘꽃밭에서’, 이미자의 ‘동백아가씨’ 등을, 함께 서는 임 테너는 더 클래식의 ‘마법의 성’ 등 귀에 익은 대중가요를 성악적으로 풀어낸다. 1인분 5만원. (053)767-7808
2013.11.15
[이춘호기자의 푸드블로그] 자영업계 폐업률 1위 외식업…식당주인들이 뿔났다
식당주인들이 단단히 화가 났다. 다들 식당 못 해먹겠다고 야단이다. 현재 전체 자영업계 중 외식업이 폐업률 1위를 차지하고 있다. 기자는 그 속내를 청취할 수 있는 기회가 있었다. 지난달 24일 대구경북연구원 경제교육센터의 ‘미래전략아카데미’ 사업의 일환으로 지역 프랜차이즈 CEO의 애로사항을 청취할 수 있었다. 그들이 지금 얼마나 절벽으로 내몰리고 있는가를 절감할 수 있었다. 정부 관계자도 이 사실을 알 필요가 있다 싶어서 그들의 불만을 정리하기로 했다. 반드시 정책에 반영될 사안인 듯했다. 이 자리에서는 거대기업이 장악한 지역 병원, 장례식장, 예식장, 공기관 등의 입찰 시 지역업체도 참여할 수 있도록 하고 대구시 시장개척단이 해외로 나갈 때 제조업뿐만 아니라 프랜차이즈도 나갈 수 있도록 지원해 주고, 상표·상권 등록 시 변리사에게 가면 비싸지니 이를 지원해주고 지도해 주는 지원센터를 만들어야 한다. 현재 대구시엔 소상공인 담당자가 없다. 우선 소상공인 담당 부서와 담당자가 있으면 좋겠다. 내년부터는 최저임금이 오르는데 음식값은 올릴 수 없는 실정이다. 게다가 음식업은 대부분 야간근무라서 야간수당을 지급해야 한다. 따라서 업종별로 최저임금을 정리해 줄 수 있다면 좋겠다는 지적이 나왔다. 최근 중소기업중앙회가 전국 359개 대상 경영상황을 조사한 결과 소상공인은 판매 부진·과당경쟁·카드수수료 등으로 경영에 애를 먹고 있었다. 소상공인의 86.9%가 현재의 체감경기를 ‘어렵다’고 느끼고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최근 1년간 경영수지를 묻는 질문에는 불과 7.8%만이 ‘흑자 상태’라고 대답했다. 소상공인의 81.7%는 경영을 위해 부채를 안고 있으며, 이 중 35.5%는 기한 내 상환이 불가능하다고 응답해 심각한 상태였다. 특히 외식업자의 불만은 이만저만이 아니다. 제갈창균 한국외식업중앙회 중앙회장은 기관지 성격의 잡지 ‘음식과 사람’ 11월호를 통해 골목상권을 살려야 하는 이유를 적시했다. 국회 기획재정위 소속의 민주당 이낙연 의원도 자영업자 문제를 제기하면서 자영업자 56%가 월수입이 100만원도 안 된다는 국세청 자료를 제시했다. ◆의제매입 세액 공제의 허와 실 의제매입세액공제란 음식점의 식재료 구입비에 대한 부가가치세를 감면해 주는 제도다. 대다수 자영업자는 매출의 40~50%를 차지하는 식재료 구입비에 대해 세액을 공제받았다. 그런데 정부는 음식점이 재료비를 부풀리는 방식으로 과도하게 세액을 공제받았다고 판단하고 내년부터는 매출액의 30%까지만 공제해 주겠단다. 기획재정부의 세법개정안에 따르면 음식점의 농수산물 식재료 구입비가 연 매출의 30% 이하일 경우에는 의제매입세액공제를 전부 인정해 부가가치세를 부과하지 않지만, 넘을 경우 부가세를 부과한다는 것이다. 한도를 매출액의 30%로 설정했다. 이는 현실과 부합되지 못한 규제로 보인다. 가령 횟집에서는 수산물과 채소가 주재료이고 공산품인 간장과 고추장, 된장 등은 전체 식재료비의 1% 미만이다. 고깃집의 경우에는 축산물과 채소가 주재료이고 공산품은 미미하다. 그런데 문제는 최근의 환경과 물가의 변화다. 기후환경에 밀접한 영향을 받는 농산물 가격은 과거와 비교가 무색해질 정도로 폭등해 있다. 이 때문에 현실적으로 식자재비 구성 비율이 최종 소비자가의 45~50%에 달하고 있다. 기재부가 주장하는 음식점들의 의제매입세액공제 신청금액 과다청구는 실제 물가를 반영하지 않은 탁상공론에 의한 억측에 지나지 않는다는 게 식당주의 지적이다. 또한 현실적으로 부가세 신고와 관련해 모두가 아는 비밀(?)이 하나 있다. 이것이 또 외식업을 어렵게 한다. 바로 ‘농축산물 거래자료 확보문제’다. 식당에서 구매하는 농수축산물은 일반적으로 전통시장과 유통상인, 농어민들로부터 구매한다. 그런데 이 경우 거래자료를 확보하기가 쉽지 않다. 농산물 판매자의 경우 면세품인 농산물에 대해서는 부가세를 납부하지 않는다. 그러나 소득세는 납부해야 된다. 그 때문에 소득세를 납부하지 않으려는 의도로 외식업 경영자에게 자료를 건네주지 않는 것이 관례처럼 돼 있다. 반면에 식당주는 어떤가. 고객에게 최종적으로 음식값을 받을 때 신용카드 결제 및 현금영수증 부가세뿐 아니라 정부 차원의 세원 확보를 위해서는 농수축산물 원자재 판매 및 납품 거래의 투명성 확보가 더 절실한 상황이다. 세수 확보 차원에서 의제매입세액공제에 한도를 설정했지만 그것이 초래하는 결과를 ‘경우의 수’에 미처 넣지 못한 것이다. 한도를 설정할 경우 상대적으로 가격이 높은 국내 농산물에 대한 구입 메리트가 상실된다는 점이다. 이로 인해 수입농산물에 대한 의존이 높아질 수밖에 없다. 설상가상 출처도 모르는 재료를 대충 사용하라는 말밖에 되지 않는다. 이 대목에서 국민의 건강은 더욱 위협받을 수밖에 없다. 이렇게 되면 우리 농가의 피해도 클 수밖에 없다. 또한 면세품인 농산물을 소비하는 주요 업종인 음식점, 휴게음식점, 유흥음식점은 물론 농산물을 매입하는 중소기업 및 개인사업자들의 조세 부담 증가로 이어지며 수익성 만회를 위해 가격인상이 불가피하다. 악순환이 일어나게 된다. ◆음식점 신고제 재검토 필요하다는 지적 1998년 김대중정부 시절 식품업체에 대한 진출입 규제를 완화하면서 음식점은 허가제에서 신고제로 바뀌었다. 반면 미국과 일본, 유럽연합, 뉴질랜드, 호주 등은 허가제 개념을 도입했다. 현재 한국은 인구 1천명당 음식점 수는 미국의 6배, 일본의 2배가 넘는다. 가장 만만한 게 치킨집. 실제 국내에선 매년 7천400개의 치킨집이 생겨나고 그중 5천개가 문을 닫는다. 절반 정도가 개업 3년안에 실패하고 80%는 10년 안에 문을 닫는다. ◆카드 수수료 줄여라 카드수수료도 덫이다. 현재 연매출 2억원 이하는 신용카드는 1.5%, 체크카드는 1%의 수수료를 내고 있다. 매출 2억원 이상이면 신용카드는 2.3%, 체크카드는 1.7%를 내고 있다. 그런데 대선 때 신용카드를 1.5%로 내려주겠다고 약속해놓고 지켜지지 않고 있다. 자기 계좌를 갖고 있는 체크카드에 대해서 1.7%를 받는 건 사리에 맞지 않는다는 불만이다. 현재 외국의 경우 수수료는 0.1~0.5% 수준. 요즘 결제는 거의 카드로 이뤄지고 있다. 현금으로 내는 사람은 5%도 안된다. 그런데 현금 매출의 경우 현금영수증을 가져가는데 부가세 신고 때는 현금 비중이 낮다는 지적 때문에 없는 매출을 일부러 넣어 신고하는 불합리한 일이 벌어지고 있다. 또한 복잡한 유통구조에 따른 높은 식재료 구입비, 치솟는 인건비, 홀 직원 확보 어려움, 음식물종량제 추진, 식당 내 금연법 시행, 매장 내 음악저작권 사용료 부과 등이 식당주를 절망의 나락으로 몰고 있다. 이춘호기자 leekh@yeongnam.com
2013.11.08
[이춘호 기자의 푸드 블로그] 오너셰프를 찾아서 (26)대구 앞산 고산골 초입 ‘안동묵촌’의 권경희씨 부부
요리 테크닉보다 좋은 식재료가 한 수 위다. 좋은 물은 그 자체로 완벽한 음식이다. 양념이나 별도의 조리과정도 필요 없다. 그래서 무미한 것 같으면서도 가장 맛있는 음식의 반열에 든다. 묵도 그렇다. 묵은 ‘단순무미(單純無味)’다. 하지만 만드는 과정은 너무나 힘겹다. 예전에 며느리들이 시집살이가 고추보다 더 맵다고 한 것은 바로 묵 쑤는 게 힘들기 때문에 나온 말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제 시중의 묵은 무늬만 전통묵일 뿐, 대다수가 초점을 잃은 그야말로 ‘짝퉁’이다. 일단 국내산 통메밀을 확보하기도 어렵다. 또한 직접 묵을 만들기가 여간 번거로운 게 아니다. 그래서 다들 다른 곳에서 묵을 받아서 사용하는 게 더 효율적이란 계산이다. 지역에도 몇몇 묵 명가가 있다. 대구시 달서구 도원동 ‘할매묵집’, 달성군 가창면 우록리 ‘원조할매메밀묵’과 옥분리의 ‘묵 처묵고 가는 집’, 달서구 도원동 대구수목원 근처 ‘풍성메밀묵집’, 남구 앞산 고산골 등산로 초입에 있는 ‘안동묵촌’ 등이다. 이번주엔 ‘안동묵촌’을 찾았다. 주인 내외는 물론, 장남까지 묵에 매달리고 있다. 요즘 잘나가는 식당에 비하면 그야말로 볼품없는 공간이다. 솔직히 길 가는 젊은이의 관심을 끌기에 충분한 특별한 인테리어가 있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점입가경이다. 음식에 대한 관심과 열정만은 특출하다. 직접 국내산 통메밀을 갖고 와 수작업으로 메밀묵도 만들고, 모묵만 별도로 팔기도 한다. 요즘 대구 도심에서는 거의 맛보기 힘든 안동식혜와 태평초까지도 먹을 수 있다. 태평초는 지역에서는 맛보기 어렵다. 다들 이 음식이 있는 줄 알지도 못한다. 강원도 봉평에선 태평초를 자기 고장 음식인 줄 안다. 실은 안동과 예천, 영주, 영양 등 경북 북부의 대표적 향토음식 중 하나인데 강원도권으로 흘러들었다. 영주·봉화서 재배한 통메밀 사용 맛·향기 위해 껍질은 벗기지 않아 앙금추출은 엄청난 노동력 필요 끓일 때도 200번 정도는 저어야 제대로 완성된 건 물기 없고 단단 대구 도심서는 거의 맛보기 힘든 안동식혜·태평초 등도 직접 요리 ◆ 모든 식재료 직접 챙긴다 안동 출신 여주인 권경희씨(64)는 안동 반가의 제대로 된 손맛을 보유하고 있다. 안동시 북후면 도계촌에서 태어났다. 거기는 안동권씨 복야공파 집성촌이다. 권씨는 요리를 모친으로부터 배웠다. 모친은 안동 내앞마을 학봉(김성일) 집안이다. 그래서 안동국시는 물론, 각종 제사음식에 안목이 생길 수밖에 없었다. 나중에 영주에 있는 야성송씨 집안에 시집을 갔다가 영주 시내로 살림 나온다. 부군 송승익씨는 범양식품에 다녔다. 1980년 수성구 만촌동으로 이사를 온다. 부군 근무처가 대구로 바뀐 것이다. 15년 전 현재 자리에서 묵 전문집을 오픈했다. 남편의 사업이 여의치 않았기 때문이다. 메밀 묵조밥과 쟁반묵(골패묵), 안동식혜, 감주 등을 팔았다. ◆ 메밀묵이 탄생하기까지 국내산 통메밀은 돈 있다고 맘대로 사지 못한다. 가격도 수입품과는 두 배 이상 차이가 난다. 통메밀은 영주나 봉화 등지서 갖고 온다. 올해는 봉화군 소천면 임기리에 한 메밀작목반에 미리 연락을 해 뒀다. 오는 10일쯤 수확된 것을 1t가량 매입할 예정이다. 지난해는 영주시내 남영상회(우리농산물 전문점)에 부탁해 1t 정도 확보했다. 비쌀 경우 1㎏에 7천원 정도인데, 작년에는 6천원 선에 샀다. 중국산은 알이 굵고 아주 거칠다. 색깔도 흑갈색에 가깝다. 국내산은 갈색이며 대체적으로 자잘하다. 보통 거피를 해서 사용하는데, 여기는 거피를 하지 않는다. “메밀 껍질을 벗기면 더 좋을 것 같은데 사실은 그렇지 않아요. 벗기면 묵이 맛이 없어지고 메밀 향도 덜해지며 진기까지 없어지죠.” 메밀이 오면 잘 세척해야 된다. 보기보다 이물질이 많이 들어가 있다. 돌을 선별한 뒤 뜨거운 물에 데쳐야 한다. 물이 펄펄 끓을 때 한 말 정도를 넣는다. 찬물에 담가 놓으면 일이 안 된다. 펄펄 끓는 물에 5~6시간 넣어 둔다. 독소도 빠지면서 붇기 때문이다. 이후 찬물에 4~5번 씻은 뒤 제분기에 넣고 간다. “예전처럼 디딜방아로 빻으면 좋겠지만, 이젠 그렇게 해선 일을 다 쳐 낼 수가 없어요.” 모두 두 번 빻는다. 첫 번째는 10여분, 두 번째는 30여분이 걸린다. 그 가루를 코에 대 봤다. 특유의 차가운 메밀냄새가 풍긴다. 양질의 석간수 냄새가 연상된다. 빻은 걸 천에 넣고 앙금을 추출해 내야 한다. 이때부터 전신 근육이 다 동원된다. 힘센 장정들도 너무 고생스러운 나머지 퍽퍽 나가떨어진다. 이때 사용하는 피륙은 간극이 성근 삼베천은 안 된다. 예전에는 눈이 가는 체에 넣고 전분을 빼냈는데, 요즘은 두 종류의 천을 사용해 전분을 추출한다. 찌꺼기는 다 버린다. 1시간 이상 일해야만 회색 앙금이 거의 추출된다. 3년 전 아버지가 큰 병에 걸리는 바람에 가업을 잇기 위해 서울에서 내려온 장남 송정택씨(36)가 일을 거든다. “보기는 너무 쉬운데 허리가 끊어질 정도로 힘이 들더라고요. 묵은 먹기는 정말 쉬운데 작업 과정은 너무 어렵습니다. 저는 한 시간 만에 추출하지 못합니다. 거의 3시간 이상 걸려요.” 이제 앙금을 솥에 넣고 끓인다. 자동기계로 할 수도 있는데 아직까지는 팔로 직접 젓는다. 처음에는 강한 불에서 시작한다. 이때부터 불과 인내의 싸움이 지속된다. 걸쭉하게 되고, 김이 나고 기포가 생겨나는 그 형태를 보면서 얼마만 한 물을 추가해야 하는지 알 수 있다. 그것에 따라 묵의 강도와 부드럽기가 결정된다. 습기가 너무 증발해 버리면 묵이 마른 건빵처럼 푸석해지고, 습기가 너무 많으면 물러진다. 2~3시간 끓이고, 물은 2~3번 정도 추간한다. 3분의 1 바가지 정도의 물을 넣어야 묵이 매끄러워진다. 주걱을 보통 세워서 완성 여부를 판단한다. 권씨 남편은 “젓다 보면 되고 걸쭉하다가 어느 순간 부드러워지면 다 된 것”이라고 말한다. 쉬운 것처럼 보여도 그 타이밍은 혼자 터득해야지 알려줘도 정확하게 모른다는 의미다. 뜸은 20~30분 들인다. 조금만 눌어도 화근내가 나서 못 먹게 된다. 여름의 경우 묵은 정말 잘 간수해야 된다. 밖에 두고 잠시 한눈을 팔면 금세 맛이 간다. 식힌 즉시 냉장고에 보관한다. 묵 요리는 운명적으로 남편이 도와줘야 한다. 현재 묵 만드는 과정은 남편이 주도한다. 남편은 장남에게 항상 “200번 저어라”고 당부한다. 완성된 묵을 보여준다. 덜 익은 묵에서는 갱물이 흘러나오는데, 잘 되면 식혀도 절대 물기가 생기지 않는다. 갓난아이 엉덩이 살처럼 탱글탱글거린다. 실패도 많았다. 칼로 메밀묵을 썰 때 메밀 입자가 묻어나야만 진짜다. 좋은 묵은 던져도 부서지지 않는다. 정말 단단하다. 너무 회백색으로 가는 것보다 연갈색이 감돌고 먼지 같은 메밀 입자가 보여야 좋다. ◆ 안동식혜 한국 음청료의 대명사 격이다. 안동반가 양반들의 식후 디저트로 마시던 숭늉 같다. 찹쌀을 5시간 정도 불린다. 쪄낸 뜨거운 찹쌀을 채썬 무 위에 그대로 들이붓는다. 엿기름을 찬물에 짜서 앉히고, 밑물은 버리고 상층부에 형성되는 맑은 물만 끓여서 붓는다. 곱게 빻은 고춧가루(영주산)를 간 생강과 함께 망에 넣고 즙을 빼낸다. 그다음 큰 스테인리스스틸 통에 붓고 방에 이불을 덮고 10~15시간 발효를 하면 숙성이 끝난다. 나중에 설탕을 조금 가미한다. 보관은 김치냉장고에 한다. 잣과 밤 등이 들어가면 더 풍성해질 것 같은데 실은 맛이 텁텁해지고 빛깔도 변해 버려 맑은 동치미처럼 다른 식재료를 첨가하지 않는 게 정석이다. 이 집에선 단맛이 감도는 국물을 별도로 보관하고, 건더기를 덜어 낼 때 그 국물에 섞어 각자 기호에 맞는 새콤달콤한 맛을 찾아가게 한다. 여름에는 무 맛이 별로이고 겨울로 들면서 제맛이 나기 때문에 안동식혜도 겨울이 제철이다. 참고로 감주(단술)는 끓이고 안동식혜는 삭히는 게 특징이다. 안동식혜의 무채는 집집마다 모양이 다르다. 어떤 집에선 무를 꽃모양으로 찍어 내기도 한다. ◆태평초 일명 ‘돼지묵전골’로 불린다. 다시마와 디포리(밴댕이), 일반 멸치, 북어대가리, 마른새우, 대파, 무, 우엉, 양파 등을 넣고 1시간 정도 끓인다. 비린내를 제거하기 위해 멸치는 약불에 30분 볶는다. 다시마도 물에 헹군 뒤 사용한다. 이 밖에 묵은지, 파, 버섯, 묵채 등을 신선로처럼 보글보글 끓여 먹는다. 이 음식은 영주 시댁에서 자주 해 먹었다. 물론 안동식혜와 함께 동절기에 한 맛이 더 풍긴다. ◆ 기타 식재료 이야기 김치용 멸치젓갈도 직접 담근다. 대구시 동구 신암동 수산시장에서 생멸치를 갖고 와서 소금을 넣고 5월 초순에 담근다. 5~6개월 숙성시켜 액을 추출한다. 김치 할 때는 찹쌀풀을 사용하는데, 멸치 다시에 찹쌀죽을 끓여 거기에 갖은 양념을 넣고 김치를 버무린다. 통배추를 소금에 절여 씻은 뒤 생강, 양파, 마늘 등을 물과 함께 옹기에 넣고 공기와 접촉하는 것을 피하기 위해 배춧잎을 위에 5㎝ 이상 덮어 3개월 이상 숙성시키면 백김치가 완성된다. 가게 입구에 메밀묵 작업장이 있다. 이곳에서 엿기름과 기장쌀, 통메밀, 모묵, 식혜, 감주 등도 판다. 일반 김치와 백김치 맛이 예사롭지 않다. 어르신이 좋아할 버전임에 틀림없다. 묵채조밥 가격은 6천원. (053)472-2326 대구시 남구 봉덕2동 1222-12 이춘호기자 leekh@yeongnam.com
2013.11.01
[이춘호 기자의 푸드 블로그] 자녀교육으로 한 번 가르쳐 볼 만한 ‘양반들의 식사법’
돌아가신 조부는 수저를 들기 전 반드시 헛기침을 몇번 했다. 훗날 그 헛기침이 무슨 의미를 갖고 있는지 알게 됐다. 한학자였던 조부의 밥상은 차려질 때나 식사가 끝났을 때나 그 정갈함은 별반 차이가 없었다. 밥그릇 안은 정갈하기 이를 데 없었다. 항상 밥을 남겼고, 대다수 내 차지였다. 그 밥에는 된장 국물, 고춧가루 등이 전혀 보이지 않았다. 조부는 밥 한번 떠먹고 국 한번 떠먹었다. 평생 ‘국 따로 밥 따로’의 원칙을 고수했다. 조선 양반(사대부)만의 ‘양반 식사법’이 1960년대까지 엄존했다. 행세깨나 하는 반가 어른들의 평생 숙업은 오직 ‘접빈객 봉제사(接賓客 奉祭祀)’였다. 행신범절에 대한 치밀한 매뉴얼북까지 개발된다. 그 주 저서가 주자가 집필한 ‘주자가례(朱子家禮)’다. 그것이 조선에 들어와 현실에 맞게 고쳐졌는데, 바로 1599년(선조 32) 사계 김장생이 펴낸 ‘가례집람(家禮輯覽)’이다. 권10에 홍동백서(紅東白西), 좌포우혜(左脯右醯), 어동육서(魚東肉西) 등 제례음식 진설법이 잘 정리돼 있다. 반가의 밥상은 궁중 수라상과 소통됐다. 수라상은 임금의 밥상이기 때문에 식기 놓는 자리까지 정해진다. 나주에서 올라온 나주반에 차린 12첩 반상, 수라상도 원반, 곁반, 책상반 등 3개가 들어왔다. 반드시 왕과 왕비가 같은 온돌방에서 받고 동편에는 왕, 서편에 왕비가 좌정한다. 겸상은 없다. 시중드는 수라 상궁도 3명씩 대령한다. 1719년부터 1910년까지 임금이 먹을 수 있는 국의 종류만 64가지였다. 궁중식은 ‘봉송(封送) 문화’ 덕분에 양반가와 맞물려 돌아간다. 임금이 음식을 다 들고 ‘퇴선(退膳)’하면 여러 신하에게 골고루 나눠준다. 서울의 반가음식이 궁중음식과 닮은 것도 이 같은 이유다. 하지만 궁중음식은 일반 음식과 격이 다르다. 양반이라도 차릴 수 있는 상을 9첩 이하로 제한하고, 12첩 반상은 궁중에서만 가능했다. 하지만 절대로 푸짐하지 않다. 요즘 2만원짜리 한정식 한상차림보다 덜 풍성했다. ◇감사와 여유 밥 먼저 떠먹으면 ‘흉’ 감사 뜻으로 헛기침 세번 지렁·동치미국물 순 맛보고 본격 식사 돌입 ◆ 야윌 대로 야윈 양반밥상 ‘양반은 대추 하나만 있어도 충분히 요기한다’고 했다. 수하를 위해 조금이라도 밥을 남겨 ‘밥상물림’을 한다. 양반가 식문화에 있어 가장 독특한 점이 바로 밥상물림인데, 그걸 존수하다 보면 몸이 많이 축나게 된다. 이걸 ‘양상수척(讓床瘦瘠)’이라 해서 양반문화의 한 상징으로 여겼다. 안동과 영주, 영양 등 경북 북부지방 양반가에선 어른이 밥을 남기는 걸 ‘체면한다’고 했다. 자연 종부는 주발에 넉넉하게 남을 정도의 고봉밥을 퍼 담을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렇지 않은 문중도 있다. 도산면 퇴계 종가에서는 먹을 만큼만 밥을 담는다. 워낙 접빈객이 많아서 살림도 축나고 해서 밥을 적게 담은 것이다. ◆ 7시 방향에서 1시 방향으로 숟가락질 밥상 법도도 아주 엄하다. ‘상전무언(床前無言)’. 양반은 밥을 먹을 때 절대 소리내면 안 된다. 또한 식사할 때 처음부터 밥을 떠먹어도 흉이 된다. 처음에는 ‘삼고례(三告禮)’부터 봉행한다. 천지인에 대한 감사함을 피력하기 위해 세번 헛기침한다. 어떤 경우에는 젓가락으로 밥상을 세번 두드리기도 한다. ‘그다음에 뭘 먹을까.’ 반드시 종지에 담긴 지렁(조선간장)부터 떠먹은 뒤 본식을 개시했다. 그것도 전채라면 전채다. 3년 이상 간수를 뺀 천일염은 달면서도 짜고, 짜면서도 달다. 완전하게 간수가 빠진 간장에 빻은 깨를 띄워 놓는다. 지렁이 미뢰(Taste bud)에 올라가면 침샘이 활성화된다. 프랑스 요리 전채는 바게트. 밀가루에 섞인 단백질 성분인 글루텐이 역시 침샘을 확장시킨다. 목 안이 건조할 때 식빵을 씹으면 물을 먹을 때보다 침이 더 많이 나온다. 지렁 다음에는 동치미 국물을 먹는다. 동치미는 한식 메뉴 가운데 가장 정갈하고 심플한 맛을 자랑한다. 좋은 물과 소금, 그리고 어른 주먹보다 조금 더 큰 동치미 무만 갖고 만든다. 양반에겐 밥 떠먹는 방향도 정해져 있다. 자전축 방향을 따라간다. 자전축은 지구 중심에서 23.5도 정도 기울어져 있는데, 숟가락질은 보통 7시 방향에서 1시 방향으로 이동한다.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퍼 내려가고 삽시각(揷匙角)은 45도. 반드시 오른쪽 모서리에 밥을 조금 남긴다. 그건 아랫사람을 위한 하나의 ‘정(情)’. 남은 밥은 늘 깨끗하다. 요즘처럼 국에 된장과 나물을 넣고 비벼 먹는다거나 밥에 국을 만 국밥은 ‘짐승이나 먹는다’면서 거부했다. 밥그릇 모서리에 남은 밥은 모양이 꼭 초승달 같다. 그래서 ‘초승밥’이라고 했다. 초승밥은 저승사자를 위한 ‘사자밥’, 날짐승 등을 위한 ‘까치밥’과 함께 한국에서 가장 배려심 깊은 3대밥에 속한다. ◆ 규합총서의 사대부 식사예법 규합총서에 사대부가 지켜야 할 다섯가지 식사예법이 적시돼 있다. 일단 어른이 먼저 수저를 들면 그때서야 수하의 사람도 먹을 수 있었다. 어른이 아직 식사를 마치지 못했으면 아랫사람은 수저를 놓고 기다려야 했다. 양반들은 절대 점심때 남의 집을 방문하지 않는다. 너나없이 가난하던 때였기 때문이다. 때가 되면 먼저 자리를 뜨는 게 예의였다. 붙잡는다고 해서 바로 식사에 응해서도 안 된다. 양반은 절대 겸상하지 않고 독상을 받는다. leekh@yeongnam.com ■ 경상도 반가음식 엿보기 퇴계 이황의 불천제위 음식 보니 ‘炙(적)은 군자혈식’이라 하여 모두 날것 사용 경상도 반가음식의 본체는 수운잡방과 음식디미방 등에 잘 나타나 있다. 절대다수가 전통주에 대한 대목이었으며, 그 밖에 각종 장과 면요리, 김치류에 대한 언급이 많다. 반가음식의 본령은 일상식이 아니라 제사음식이었다. 특히 제사 중에서도 차사(茶祀)보다 기제사(忌祭祀)가 중시됐다. 기제사보다 ‘불천위(不遷位) 제사’를 더 중시했다. 불천위란 나라나 지역 향교에서 망자의 덕망을 기리기 위해 사당에서 영구히 제사를 봉행하는 것으로, 나라에서 정한 것을 ‘국불천위’라고 한다. 안동 종가의 국불천위 제사음식 전문 연구가는 전 안동대 식품영양학과 교수인 윤숙경씨. 윤씨가 관련 논문을 많이 남겼다. 퇴계 이황의 불천제위 음식을 엿보자. 특히 적(炙)은 ‘군자혈식(君子血食)’이라 해서 모두 날것으로 올린다. 탕도 기제사에는 통상 3가지만 올려도 되지만 여기선 5가지, 즉 쇠고기, 명태, 전복, 조개, 상어다. 적으로는 닭고기, 쇠고기, 쇠머리, 소 껍질 수육, 문어, 청어, 홍어, 상어, 방어 등이 들어가지만 안동의 명물 안동 간고등어는 올리지 않았다. 탕과 적에는 ‘우모린(羽毛鱗)’이란 룰이 적용된다. 깃이 달린 닭, 털이 있는 고기, 비늘이 있는 생선을 포함시켜야 된다. 적을 괼 때 생선류는 밑에, 고기류는 그다음, 맨 위에는 닭을 괸다. 채는 고사리, 시금치, 토란, 도라지, 무, 박나물 등 제철채소면 되고 전부 한그릇에 담아야 한다. 퇴계는 유언으로 ‘만들기 번거로운 유과와 약과 같은 사치스러운 음식은 올리지 말라’고 했다. 김치는 백김치, 건포는 대구포, 예전에는 청주를 담갔는데 이젠 정종으로 대신한다. 된장양념도 정말 중요하다. 구한말만 해도 요즘같이 개량된장이 섞인 쌈장 같은 게 없었다. 그때는 멥쌀과 엿기름, 고춧가루, 다시마, 무, 말린 가지와 말린 고춧잎 등을 넣고 숙성시킨 ‘집장’이 반가의 최고 양념장이었다. 일명 ‘거름장’이라고도 했는데, 삭힐 때 퇴비의 열에 삭힌다 해서 ‘거름장’으로 불렸다. 입맛 없을 때는 그것만으로도 식사를 해도 좋을 정도로 영양도 풍부했다. 현대는 퇴비가 귀해 끓는 물속에 용기를 넣고 중탕해 삭힌다. 이 집장이 대구로 와선 ‘시금장’ 혹은 ‘등겨장’이 된다. 최근 안동종가음식산업화사업단이 안동 종가에서 전승되는 반가음식을 현대적 취향에 맞게 조율한 ‘예미정(禮味亭)’ 한창차림을 제시해 주목을 받았다. 그런데 안동 종부한테 그렇게 어필되지 못하고 있는 듯하다. 종부의 손맛과 안목이 상업적이기 이를 데 없는 현대적 손맛과 퓨전적으로 쉬 섞일 수 있다는 마케팅 감각은 더욱 신중하게 살펴 봐야 될 것이다. 더 전통적인 게 더욱 현실적일 수도 있다. 예미정 밥상 한편에 예전 방식의 동치미와 놋종지에 담긴 지렁도 곁들였으면 한결 좋겠다. 이춘호기자 leekh@yeongnam.com
2013.10.25
[이춘호 기자의 푸드 블로그] 오너셰프를 찾아서 (25) 대구 달서구 상인동 ‘소담이야기’의 윤희숙
다 그런 건 아니지만 요리학원보다 독학으로 터득한 요리술이 한 수 위다. 대구시 달서구 상인동 톳밥 전문점 ‘소담이야기’. 어둑한 골목 안에서 4년여를 보냈다. 그런데 근처 보훈병원은 물론 달서구청, 인근 의원의 의사들까지 집밥처럼 애용하는 숨은 명소가 됐다. 식당은 장소가 그렇게 중요하지 않다는 걸 몸소 증명해 보였다. 톳밥은 대구에선 처음 선보이는 것이다. 홍합밥을 한 단계 버전업시켰다. 오너셰프 윤희숙씨(57)는 돈과 상관없이 정말 자기밖에 다루지 못하는 음식을 팔고 싶었다. 식당은 자기만의 ‘놀이터’다. 남편 몰래 식당 오픈 준비를 했다. 조그마한 가게를 얻어놓고 두달간 인테리어를 했다. 개업 하루 전에 남편한테 얘기했다. 화가 난 남편이 개업날은 물론 보름 동안 말을 안 했다. 남편 지인들한테 알려도 가게가 충분히 돌아갈 것 같은데 그렇게 하지 않았다. 모르는 사람에게 인정받고 싶었기 때문이다. 원래 요리에 관심이 많았다. 친정 엄마가 요리에 일가견이 있었다. 호박볶음을 특히 잘했다. 이 메뉴는 불조절을 잘 해야 된다. 대체로 너무 푹 익혀서 죽처럼 물러진다. 센불에서 시작해 중불에서 불을 끄면 아삭한 느낌이 그대로 살고, 참기름보다 들기름을 넣어야 고소한 맛이 더 난다. 충북 옥천이 고향. 친정집에서는 제사가 아주 많았다. 요리할 때 딸을 불러 시범을 보여주었다. 단무지도 직접 숙성시켜 사용했다. 새우젓 독에 쌀겨를 넣고 그 속에 단무지 무를 박아 사용한다. 공장용과는 비교할 수가 없다. 약간 노른 빛깔이 감도는데 그 맛을 아직 잊을 수가 없다. 초등 5년 때 서울로 간다. 대학을 졸업한 뒤 경상도 남자를 만나 결혼하고 1980년 대구로 온다. 24세였다. “경상도 음식은 충청도 음식과 너무 달랐습니다. 제일 힘들었던 건 종업원의 불친절함이었어요. 또한 간이 너무 자극적이고 강했어요. 짜고 맵고…. 솔직히 좀 충격이었습니다. 동인동 찜갈비도 마늘과 고춧가루 범벅이 돼 위가 화끈거려 냉수를 엄청 마셔댔죠.” 100% 몽고 양조간장에 직접 짠 참기름 사용한 양념장이 톳밥 맛 ‘결정’ 톳숭늉엔 갯내음 물씬 밑반찬도 3일마다 변신 ◆ 주부에서 오너셰프로 변신 평소 자신이 즐기는 충북의 음식을 대구 사람들에게 한번 선보이고 싶었다. 남편 회사 직원들이 집들이를 오면 충청도 요리를 선보였다. 가지무침에 입을 많이 댔다. “충북은 가지를 채반에서 쪄서 칼로 썰지 않고 식은 다음 손으로 째고 식초와 조선간장, 파와 마늘을 다져 넣고 깨소금, 참기름을 넣고 버무립니다.” 처음에는 ‘충북식 잔치국수’를 생각했다. “잔치국수도 대구 버전은 너무 간단했어요. 부추 넣고 휙 끓여주는 식이었습니다. 충북에서는 일단 육수부터 짙게 뺍니다.” 명태대가리, 디포리, 멸치, 대파, 무, 다시마 등을 넣고 만든다. 곰탕 같은 육수다. 거기에 고명으로 애호박볶음, 황백지단, 김가루, 쇠고기볶음 등을 얹는다. 그녀는 아직 자기 스타일의 잔치국수를 대구에서 먹어보지 못했다. 그래서 자기 버전의 잔치국수점을 하고 싶었는데 마침 일본 여행을 갔다가 생각이 달라진다. 일본에서 톳요리 전문점을 만난다. ‘건강염려세상’에 톳밥이 딱이라고 믿는다. 그때만 해도 해초 지식이 별로였다. 매생이는 알아도 톳은 몰랐다. 그 뒤로 톳을 파고들었다. “톳과 마재기는 다르죠. 같은 과인데 동그란 공기 주머니가 있으면 마재기이고, 길쭉한 모양의 공기주머니가 있으면 톳입니다.” 전남 해남에서 많이 나오는데 매년 2~4월이 제철이다. “안 좋은 톳은 톳이 거칠고 아주 큽니다. 좋은 톳은 미역 색깔이 나죠. 또한 모양도 거칠지 않고 부드럽습니다. 좋은 것은 1㎏에 1만5천원 선, 안 좋은 건 3천원 선에 팔려요. 안 좋은 걸 넣어 톳밥을 하면 밥 따로 톳 따로 놀아 제맛을 느끼기 어렵습니다.” ◆ 톳요리 엿보기 일단 염장한 톳을 갖고 와서 물에 담근다. 먹어봐서 안 짤 때까지 헹궈야 한다. 데치지는 않고 불린 쌀과 4㎝ 길이로 자른 톳을 1대 1 비율로 솥에 앉친다. 자연산 울릉도 홍합은 구하기 어려워 일반 냉동 홍합을 갈무리해서 사용한다. 당근 채를 썰어넣고 밥을 하면 된다. 그런데 압력솥에 하면 밥이 말이 아니다. 떡처럼 변해 잘 비벼지지가 않는다. 초창기엔 압력솥에도 해봤는데 결국 실패했다. 가장 맛있는 건 솥밥이다. 물은 일반 밥을 할 때보다 약간 덜 붓는다. 강불에 6분, 나머지는 불조절해서 1~2분 뜸을 들인 뒤 퍼낸다. 사람이 반드시 옆에 있어야 한다. 밥물이 올라오면 톳 국물을 갈무리하기 위해 불을 줄여준다. 왜 당근만 사용할까? 무는 콩나물밥에 어울렸다. 처음에는 쇠고기도 갈아서 넣었다. 콩나물과 버섯 등도 넣어봤다. 맛이 서로 따로 놀았다. 시행착오 끝에 당근이라는 결론을 내린다. 톳밥의 맛은 양념장이 좌우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여러 재료가 들어가는데, 그중에서 왜간장이 중요하다. 100% 몽고 양조간장을 사용한다. 수입간장을 빼고는 가장 비싸다. 3.8ℓ에 2만5천원선. 가장 싼 게 가장 비싼 꼴이 된다. 자칫 비싼 톳밥을 다 버릴 수가 있기 때문이다. 양념장은 간장, 고춧가루, 다진마늘, 청양고추, 참기름, 깨소금 등으로 만든다. 참기름도 직접 짜 갖고 온다. ‘최고의 재료를 사용했을 때 비로소 최고의 음식’이 탄생한다고 믿는다. 밥을 하고 나면 누룽지가 남는다. 거기에 물을 조금 넣고 톳숭늉을 끓여 낸다. 톳이 씹혀 갯내음이 물씬 풍겨나온다. 밑반찬은 참나물, 방풍나물, 호박볶음, 다시마와 연근 장아찌, 울릉도 고비나물, 가자미, 오이무침 등이다. 3일마다 반찬이 바뀐다. 일단 집에 가면 내일 나갈 반찬부터 정리하고 집안일을 한다. “사실 저는 식당주가 될 사람이 못 됩니다. 나 따라 하면 다 망하게 될 겁니다. 식당주는 분명 세상 물정 모르는 여자라고 뭐랄 것입니다. 절정의 음식에 관심 있지, 이것 팔면 얼마 남는지엔 솔직히 별로 맘이 안 갑니다.” 톳전 만들 때도 부침가루를 사용하지 않는다. 부침가루를 사용하면 좀 부풀어 올라 질척거리고, 마치 호떡 먹는 질감이다. 그래서 순수 우리 밀가루를 사용한다. 거기에 톳, 홍합, 당근, 청양고추, 소금을 섞어 구워낸다. 톳 양도 잘 조절해야 하는데, 부칠 때 중불에 노릇하게 부쳐낸다. 톳불고기도 개발했다. 고기를 채소에 싸서 먹는 이도 있는데 그녀는 톳을 넣어서 굳이 채소를 먹지 않아도 되도록 했다. 꼭 ‘힐링불고기’같다. 녹차홍합밥은 새작 잎을 쌀과 함께 적당히 섞는다. 요리과정은 톳밥 때와 같다. 표고버섯밥도 똑같다. 된장에는 극미량의 화학조미료도 사용하지 않는다. “된장 육수의 경우 멸치·명태대가리·게딱지 등을 30분 정도 삶으면 완성인데 워낙 맛이 강해 굳이 화학조미료 넣을 필요가 없습니다.” ◆식당이 아니라 쉼터에 온 것 같다 그녀는 참 푸근하다. 종부 같은 넉넉한 웃음. 손님을 황제처럼 모시겠다는 서비스 정신. 토란잎에 물방울같이 정갈하고 맑은 음식. 음식 재활용은 절대 용납하지 못한단다. 무심결에 손가락이 안쪽으로 들어간 채 식기를 내는 경우가 있는데 이를 땐 서빙 이모에게 엄청 화를 낸다. 손가락 지문이 식기에 그대로 남는데 이건 ‘손님에 대한 테러’라고 믿는다. 반드시 양손으로 가장자리를 감싸서 조용하게 놓으라고 가르친다. 식기도 절대 소리 나게 밀지 않는다. 항상 손님의 눈과 입을 주시한다. 손님이 뭘 갖다 달라고 하기 전에 먼저 챙긴다. 식사가 끝나면 반드시 오늘 맛있게 드셨는지 묻는다. 밥을 남겼을 경우는 왜 그런지 확인한다. “제가 너무 친절하니깐 일부 손님은 그게 오히려 더 부담스럽다고 해요. 대구에선 친절한 식당주도 찾기 어렵고, 그걸 곰삭게 받아주는 손님도 턱없이 부족한 것 같습니다.” 돈에 목숨을 안 걸기 때문에 매주 토·일요일은 쉰다. 이때 현풍·영천장 등에서 식재료 현장 탐색을 한다. 주변에는 게장 잘 담그는 집으로도 통한다. 연평도 게를 주문해 사용한다. 주문판매를 한다. 톳밥은 주문받은 뒤부터 요리한다. 소담이야기는 정말 약삭빠른 식당과는 거리가 멀다. 음식의 생기와 영양을 생각한다. 7천원짜리 톳밥이지만 나올 때는 7만원짜리 포만감을 갖고 간다. 상인동 1572-4 (011-825-2050) 이춘호기자 leekh@yeongnam.com
2013.10.18
[이춘호 기자의 푸드 블로그] 오너셰프를 찾아서 (24)대구 두산동 ‘인사동’ 의 이경애
도무지 개념이 없는 오너셰프가 있다. 가령 전북 전주의 전설의 콩나물국밥집 ‘삼백집’의 욕쟁이 할매 같은 경우다. 음식전문기자가 전화해도 절대 오지 말라 하고, 그렇다고 곰삭은 매너가 있는 것도 아니다. 그냥 종일 음식 만드는 데만 최면이 걸려 있다. 좀 더 싸고 맛있고 푸짐하게 주고 싶어 한다. 이런 버전의 식당주는 중년의 여성셰프 가운데 많다, 무개념이지만 식단은 무한한 희망을 갖고 있다. 이번 주엔 우연찮게 발견한 대구시 수성구 두산동 트럼프월드 서편 모텔촌 중간에 있는 가정식백반 같은 한정식집 ‘인사동’의 여주인 이경애씨를 찾아갔다. 정말 퉁명스럽다. 왜 그렇게 퉁명스럽냐고 하니 꼭 취재를 해야 되냐고 되묻는다. 자기는 점심과 저녁 두 차례 음식과 전쟁을 치러야 하는데 이렇게 호사스럽게 인터뷰나 하고 있을 팔자가 못 된다나. 오후 5시 무조건 찾아갔다. 한 시간 뒤 들이닥칠 손님을 맞기 위해 주방은 벌써 야전사령부로 변해 있다. 그런데 여느 식당에서 잘 이용하는 냉장 반찬통이 여기에는 없다. “주문과 동시에 10여가지 사이드 메뉴를 요리해서 냅니다. 편하자고 미리 만들어 놓을 것 같으면 식당 접어야지. 안 그래요?” 음식에 대해선 감히 넘볼 수 없는 확고한 자세를 견지하고 있었다. ◆ 김해의 유명한 정육점 여사장 출신 그녀는 경남 김해 출신이다. 어쩌다 보니 흘러흘러 대구로 와서 산다고 했다. 내림맛 전통 있는 집 여성은 요리학원 안 다녀도 요리를 기똥차게 잘 한다. 그녀의 외할머니와 친정엄마가 솜씨가 좋단다. 외할머니는 전남 영광 출신이고, 어머니는 부산 서면 부전시장에서 나름대로 입지를 가진 ‘대구식육점’을 꾸려 갔다. 대구시 남구 대명동 안지랑이 시장 근처로 시집을 온다. 부부가 함께 식육점을 경영한다. 소와 돼지에 대해 공부를 하게 된다. 주로 도매를 많이 했다. 오빠가 중매인이었다. 오누이가 잘 맞았다. 지금은 불법이지만 당시만 해도 개인 도축장에 도축비 주고 잡아서 팔고 했다. 10년간 돈을 적잖게 벌었다. 영천 완산동으로 가서 식육식당을 열었다. 한 등급 발전을 한다. 식육점으로 허가를 받았지만 불판 갖다 놓고 숯불고기 장사를 한다. 예상외로 장사가 안 됐다고 한다. 식당이 처음인 탓이다. 주방장한테 휘둘렸다. 첫째도 경험 부족, 둘째도 경험 부족이다. 1년도 못 가서 접는다. 다시 김해로 간다. 삼보한우농장을 경영했다. 수백명이 동시에 이용할 수 있고, 별채 격인 방갈로도 있었다. 모둠(등심 갈비살 치맛살 낙엽살 차돌박이 등)을 냈다. 장사가 제법 됐다. “김해 쪽은 대구와 달리 숯불갈비집에 곁반찬이 엄청 많은 게 특징입니다. 이때 요리 솜씨가 많아 향상됐죠.” 10년 정도 하다가 10년 전 다시 대구로 온다. 남동생이 현재 자리 근처에서 주점을 했고, 그녀는 거기서 함바아줌마 역할을 해주었다. 현재 집도 동생 집이다. 고기 장사는 한계에 달했다고 생각했다. 고기는 안 하고 밥맛 좋은 소박한 한정식을 꿈꾼다. 여러 집을 다니면서 가격을 분석했다. 메뉴도 분석했다. 처음에는 주방장을 데리고 해 봤다. 주방장이 맛을 제대로 잡지 못했다. 시작과 동시에 가격은 1만2천원으로 정했다. “아직 서민에겐 1만원이 비싼 것과 싼 것의 경계 가격이라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대로변도 아니고 골목 안이라서 싸고 푸짐하게 가고 싶었죠.” 먹어 보면 알겠지만 ‘남는 게 있을까’ 의구심이 들 정도다. 미리 요리해 놓은 메뉴는 거의 없다. 요리를 아니깐 일을 감당할 수 있다. 그녀는 계량컵을 별로 믿지 않는다. 그냥 식재료 양만 보면 어느 정도 간을 해야 하는지 단번에 감이 온단다. 타고난 감각이다. ◆ 음식 구성 열 가지 메뉴가 나온다. 순서도 없다. 마지막엔 갈치와 심심한 토장국, 검은찹쌀밥, 나물 세 가지로 식사를 한다. 가격 구성이 재미있다. 2명이 오면 1만2천원, 3명 이상이면 1만1천원이다. 1천원 차이를 낸 이유는 3~4명이 와야 서로 좋지만 2명 정도면 1천원 정도 손님이 양보해야 ‘인사동’도 먹고 살 수 있기 때문이란다. 오전 5시30분 기상. 곧바로 칠성시장에 간다. 한 시간가량 돌아다니면서 내일 구매할 물량을 상인한테 알려준다. 채소·생선가게 등 모두 단골상인이다. 골목을 옮겨다니는 채소장수에게 매달리면 절대 이런 가격을 유지하지 못한단다. 봄이 되면 머위나 방풍나물을 비롯한 제철나물을 챙긴다. 하지만 요즘 나물은 겨울철도 없다. 온상재배 탓이다. 아무래도 맛이 연할 수밖에 없다. 머위도 온실에서 나온 건 줄기가 허연데 야생은 붉은기운이 감돈다. 이 집 명물은 디저트 구실을 하는 연근찜. 전국 최대산지인 동구 반야월 연근을 사용하는데, 사철 중 지금이 가장 맛이 있을 때란다. 8월 말~9월 초는 연근이 무르다. 봄이 되면 연근에 수분이 상당히 줄어든다. 그래서 하절기 한 달은 쉰다. 이때는 진이 없어지고 맛이 별로다. 3.75㎏에 2만원짜리도 있지만 여기선 3만5천원짜리를 고른다. ◆ 무조건 즉석요리 더덕무침·고사리들깨찜·참나물·코다리찜·잡채·돼지수육·고추전·호박전·오징어회무침·연근찜, 마지막엔 검정찹쌀로 만든 잡곡밥에 갈치가 붙는다. “여기서 무슨 제주갈치 타령입니까. 이 가격엔 당연히 냉동이죠.” 칠성시장에서 냉동갈치를 한 박스 갖고 와서 알맞게 자르고, 소금물에 담가 세 시간 정도 해동한 뒤 잘 다듬어서 냉장고에 넣어 둔다. 차릴 때마다 프라이팬에서 구워 낸다. 그런데 생갈치구이 같다. 더덕도 씻고 물을 완전히 빼야 한다. 안 그러면 물이 나와 맛이 없어진다. 좋은 더덕을 보면 단박에 안단다. 제주도 더덕은 물이 좀 많아서 강원도산을 사용한다. 고추장도 솔직히 담을 시간이 없다. 그런데 최고를 사용한다. 태양초 고추장 3㎏에 1만9천500원. 싼 건 9천원짜리도 있다. 참기름과 고춧가루, 된장, 고추장, 물엿 등을 적당량 넣고 버무린 뒤 그 위에 더덕을 놓고 버무려야 제대로 양념이 묻는다. 더덕 위에 양념을 번갈아 넣고 버무리면 제대로 뭉쳐지지 않는다. 그렇게 되면 짠지 아닌지 분간을 하기 힘들다. 한꺼번에 100인분 분량을 담는다. 더덕은 손님이 들어오면 그때 무친다. 안 그러면 물이 생긴다. 고사리들깨찜용 고사리는 북한산이다. 국내산은 1㎏에 1만원 선. 북한산 최고급은 7천원 정도. 들깨는 국산이다. 고사리는 30분 이상 삶는다. 물에 헹군 뒤 물기를 뺀다. 썰어서 용기에 담고, 들깨는 믹서에 갈아 체에 거른다. 안 그러면 껍질이 있어 식감을 해친다. 강불로 했다가 20분 이상 끓여야 된다. 중간에 한 번 교반해 줘야 화근내가 안 달라붙는다. 도토리묵채는 육수가 가장 중요하단다. 다시마와 새우, 북어대가리, 무, 양파, 파, 표고버섯 꼭지 등을 넣고 한 시간 정도 끓인다. 매일 두 번 이렇게 끓여준다. 찜용 코다리는 칠성시장에서 사오는데 36마리에 5만5천원 선. 이 요리는 양념맛이다. 일단 튀김가루 묻혀서 튀긴다. 접시에 담아 양념을 올린다. ”쉽게 보여도 아무나 못하죠. 이미자 노래 아무나 못 배우는 것하고 같은 이치예요. 허허.” 잡채도 일단 당면부터 잘 불려야 한다. 저녁에 내일 낮에 사용할 걸 담가 놓는다. 밤새 1㎜ 이상으로 붇는다. 잡채는 정말 즉석에서 해야 된다. 일반 뷔페 등에서는 해 놓은 걸 다시 식용유로 덥혀주기 때문에 기름만 번지르르할 뿐 속맛은 전혀 느껴지지 않는다. 도토리묵도 7천원 선은 외면하고 1만원 선을 산다. 그래서 탱클탱글하고 전분도 덜 들어가 있다. 친구들도 맛있다면서 한 판씩 사 간다. 돼지수육도 그 질감이 장난이 아니다. 여느 집은 살점 부위가 꾸덕해지는데, 여긴 갓 쪄낸 찐빵 못지않다. 수육은 45분가량 끓여야 한다. 칼집을 넣어 봐서 붉은 기운이 없으면 들어낸다. 솔직히 그녀는 이미 고기에 이골이 난 사람이라서 수육은 단연 주종목. 수육 옆에 오이고추를 된장에 무쳐 놓고 양파와 부추를 새콤달콤하게 무쳐 낸다. 호박전도 원재료 100%라서 밀가루 흔적을 찾기 힘들다. 고추장과 달리 된장은 직접 담근다. 지난해 4말을 담았다. 콩은 계약 재배한 국산을 산다. 된장은 탕국처럼 연하고 부드럽다. 호박, 양파, 청양고추, 파 정도만 넣는다. “멀쩡한 것 같아도 속골병 다 들었어요. 그런데 외동아들이 도와줘서 그나마 숨통을 틔우죠. 자식이 이걸 받아 잘 할까요? 내 선에서 끝내고 싶죠. 음식장사, 저승사자도 겁나 도망갈 것 같습니다.” 밤 9시에 문을 닫는다.(053)761-2012 이춘호기자 leekh@yeongnam.com
2013.10.11
[이춘호 기자의 푸드 블로그] 오너셰프를 찾아서 (23) 대구 수성구 범어동 ‘꽃떡남’의 김은영
‘분식바’. 요즘 핫트렌드로 급부상한 ‘퓨전분식점’이다. 우중충한 골목형 분식집을 카페 같고 커피숍 같은 ‘에지 있는’ 분식코너로 탈바꿈시킨다. 커피를 입에 달고 있고, 우아하고 나름대로 개성 있는 공간에서 음식을 먹으려는 젊은 층의 욕구를 마케팅적으로 역이용한다. 일단 3박자가 맞아야 한다. 맛·분위기·건강을 죄다 챙겨야 된다. 하지만 일반 외식업자가 음식 분야를 벗어나 인테리어와 마케팅 능력까지 겸비한다는 게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자연히 각종 디자이너와 광고기획사를 아웃소싱해야 된다. 모험적 오너셰프가 아니면 이 장르에 잘 도전하지 않는다. 요즘 분식바를 잉태할 수밖에 없는 외식문화의 제약조건을 살펴보자. 일단 주5일제가 정착됐다. 부부는 거의 맞벌이. 자연히 부엌이 개점휴업 상태. 직접 요리하기보다 배달시키거나 외식에 치중한다. 여기에 자전거와 캠핑, 등산 등 캠핑족이 급증하고 있다. 도시락 수요도 자연스레 는다. 오랜 시간 풀코스 양식이나 한식을 즐기기보다 김밥 등 자신이 원하는 간편한 음식을 구입한 뒤 전원에서 ‘포트락 파티’ 형식으로 먹으려는 소비패턴이 정착하고 있다. ‘테이크아웃(Take out)’이 보편화되기 시작했다. 아날로그 분식이 ‘디지털 분식 시대’로 전이하고 있다. 이를테면 각종 떡볶이·김밥·튀김·순대·어묵·만두집 등은 오래 단골을 독점하고 있었다. 하지만 2000년대로 접어들면서 슬로·힐링·웰빙푸드가 분식을 위협한다. 분식의 사각지대가 바로 위생분야다. 그 식재료를 해부해 보면 착한 식재료보다 나쁜 식재료 비중이 더 크다. 한 줄에 ‘1천원짜리 김밥’이니 그럴 수밖에 없단다. 떡볶이의 경우 저급한 중국제가 혼합된 조미료를 사용한 고추양념 베이스, 청양고추 대용의 캡사이신 액을 사용한다. 단무지와 어묵, 업소용 소스도 원가 때문에 좋은 것을 사용하기 어렵다. 이런 대목이 항상 ‘옥에 티’로 지적된다. 대구시 수성구 범어동 아파트촌 중심부에 도사린 ‘꽃떡남’. 기자는 이 브랜드의 개화 과정을 보면서 ‘분식도 이렇게 착하고 고급스러워질 수 있다’는 것을 느꼈다. 맛은 차치하고라도 분식점 인테리어로는 동성로 커피숍 뺨칠 정도다. 메뉴 구성도 독창적이고, 무엇보다 식재료 구성이 상당히 친환경적이란 점에 밑줄을 긋는다. 상호도 감각적이고 이목을 끈다. ‘꽃보다 떡볶이를 더 사랑한 남자’의 줄임말이란다. 하지만 아직 인력수급 문제 때문에 꽃미남 매니저는 찾지 못했다. 꽃떡남? 최근 신드롬을 불러일으킨 프로, ‘꽃보다 할배’를 연상시킨다. 오렌지색 계열의 실내디자인 마치 동성로 커피숍 온 느낌 30여 메뉴 중 김밥만 15종류 스테이크김밥 등 독창적 구성 수출용 김 등 식재료 질 높여 밥 지을 땐 찹쌀·다시마 사용 떡볶이엔 식용유 사용 안 해 튀김도 주문 후 조리 들어가 ◆ 인테리어 해부 처음엔 아무도 여기가 분식점이라는 걸 눈치채지 못한다. 그런데 들어와서 분식점이라는 걸 알고 다들 놀란다. 영업적으로는 그게 바로 ‘승부처’. 처음에는 커피숍이나 카페인 줄 안다. 오렌지와 와인색이 주조색. 거기에 회색을 포갠다. 의자와 식탁도 같은 계열로 가지 않는다. 손님의 성향이 다르듯이 색깔도 각기 다르다. 주방도 여느 레스토랑 스타일이고 음식을 먹는 코너는 커피숍처럼 아늑하다. 벤치형 소파 뒷벽에는 ‘마음 한 그릇 스토리’란 제목의 글이 적혀 있다. 이 공간이 단지 김밥 한 줄을 파는 데가 아니고 엄마의 마음을 팔고, 더 나아가 외국인과 다문화 가정에 한식의 정체성이 뭔가를 알려주는 ‘한식지킴이’ 구실을 하겠다는 다짐이 녹아들어가 있다. 흡사 ‘분식 갤러리’ 같다. 한 벽면에는 클로즈업된 김밥 사진이 모자이크형으로 처리돼 강조된다. 전반적으로 매우 밝고 화려하면서도 심플한 인테리어다. 레스토랑처럼 끊임없이 젊은 취향의 음악이 흐른다. 근처 아이들은 학원으로 오갈 때 거길 거점으로 정한다. 아이를 기다리면서 미시 학부모는 원두커피를 빼 먹는다. 여기는 공짜를 멀리한다. ‘공짜가 결국 주인을 속이고 단골을 도망가게 하는 첩경’이라고 분석한다. 받을 건 받고 줄 건 주겠단다. 그래서 커피 한 잔에 1천500원. 공짜 믹스커피에 익숙한 사람에겐 부담일지 모르겠다. 그렇게 받지 않으면 원가가 또 200~300원 올라간단다. 학원차가 가게 바로 앞에 선다. 40~50명 생일파티도 가능하다. ◆ 메뉴 분석 주 단골은 도시 감각을 가진 주부다. 다들 입맛이 매우 까다롭다. 좋은 식재료는 단번에 알고 입소문도 부리나케 낸다. 식재료를 속여선 이 바닥에선 절대로 버틸 수 없다. 가급적 국내산 양질의 식재료만 사용하자고 다짐한다. 메뉴는 총 30여가지. 이 중 김밥은 모두 15종류. 스테이크김밥과 하와이김밥, 와사비김밥, 새우가츠김밥, 돈가스김밥, 어린이김밥 등이 눈길을 끈다. 김도 허투루 다루지 않는다. 충남 보령에서 수출하는 김을 사용한다. 100장에 1만여원. 추후에는 산나물김밥·찹쌀김밥도 내놓을 작정이다. 분식답지 않게 밥에도 무척 애정을 갖는다. 밥 지을 때 다시마를 사용한다. 흡사 전주비빔밥이 사골 육수를 갖고 밥을 짓는 것과 비슷한 정성이다. 경남 기장산 다시마 한 줄기를 밥 지을 때 넣기만 해도 밥맛이 달라진다. 밥의 간에도 설탕을 사용하지 않는다. 식어도 쫄깃한 밥맛을 위해서 찹쌀을 넣는다. 밥과 속재료의 혼합비율에도 주목한다. 탄수화물 섭취를 꺼리는 현대인의 식생활 패턴에 맞춰 속재료를 가능한 한 많이 사용하고 밥의 양은 최소화한다. 상당수 분식집에선 여건상 이런 열정을 쏟기 어렵다. 그래서 밥 간을 할 때 무심결에 조미료를 많이 사용하거나 맛소금까지 넣는다. 손수 밑간하는 수고를 거부하는 것이다. 육수도 매일 빼낸다. 그 육수를 이용해 우엉, 어묵, 계란 등을 요리한다. 떡볶이 만들 때도 빛을 좋게 보이기 위해 식용유를 일절 사용하지 않는다. 맛소금과 화학조미료 통도 안 보인다. 파스타와 분식을 절충한 메뉴가 있다. 바로 네 가지 맛 햄치즈떡볶이. 토마토 페이스트를 베이스로 모짜렐라 등 4가지 치즈와 삶은 계란 등을 넣는다. 튀김도 주문 후 만든다. ◆ 오너셰프 김은영 스토리 영 식당 할 사람으로 보이지 않았다. 전형적인 현모양처 스타일. 손에 물을 안 묻히고 살아도 될 것 같은데 ‘대구 분식바의 기대주’로 꽃떡남을 키우기 위해 ‘전사’로 나섰다. 바로 30대 후반의 김은영씨다. 나름대로 살 만한 주부다. 그런데 고생공간으로 뛰어들었다. “분식집이라고 하니 모두 놀라죠. ‘은영아, 먹고살기 어렵니’라고 안쓰러운 표정도 지어요. 와서는 분위기 보고 또 놀라죠. 아이 꿈도 중요하지만 제 꿈도 소중합니다. 제가 밖으로 나오니 아이가 더 밝아지는 것 같더라고요.” 한때 경산시 백천동에서 ‘다물’이란 카페를 열었다. 카페의 제약조건을 배운다. 이때 장사가 뭔지 조금 눈치챈다. 새로운 식당인 분식바. 롤모델 식당이 있으면 배울 수 있는데 지역에선 처음 선보인 콘셉트라서 인테리어·메뉴구성·마케팅까지 새로 배워야 했다. ‘꽃떡남 프로젝트’를 구상한 파워블로거 겸 푸드트렌드 분석 및 외식창업 플래너로 활동 중인 전문양씨와 의기투합해 이 공간을 탄생시켰다. 초등학교 여학생부터 80세 노신사가 끄덕일 만한 그런 인테리어를 구축했다. 그녀는 집에서 아이에게 김밥을 말아 주면서 ‘분식의 원형’을 발견했고, 카페에서 ‘분식바의 단초’를 간접적으로나마 경험했다. “단골 아이, 학부모를 보면 절대 식재료 갖고 장난칠 수 없어요. 늘 그 생각뿐입니다.” 매일 오전 9시에 도착한다. 제일 먼저 다시마와 멸치, 무, 대파, 양파 등으로 1시간30분가량 육수를 뺀다. “분식이 간단한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닙디다. 김밥의 경우, 밥의 질감 잡는 게 정말 어려워요. 모두 1천원짜리 김밥 운운하는데, 나는 당당하게 2천500~4천원 김밥을 냈어요.” 여기에만 있는 스테이크김밥도 자랑거리다. 김밥용 소스도 직접 만들었다. 한식과 양식을 절충한 김밥 같다. (053)754-3118 이춘호기자 leekh@yeongnam.com
2013.10.04
[이춘호 기자의 푸드 블로그] ‘한식 첫 미슐랭 스타’ 후니 킴은 어떻게 죽장연에 매료됐을까
최근 기자는 한 통의 e메일을 받았다. ‘한식 최초 미슐랭 스타 레스토랑 오너셰프’로 유명해진 1.5세대 한국인 후니 킴(한국명 김훈)이었다. 포항시 죽장면 상사리 산속에 깊게 자리 잡은 재래식 빈티지 장류 제조업체인 ‘죽장연(竹長然)’을 방문해 현지 장류 상태 점검 및 음식이라는 주제로 기자와 식사를 겸한 대화의 자리를 갖고 싶다는 취지였다. 그는 현재 뉴욕 맨해튼에 ‘단지’와 ‘한잔’이라는 한식 레스토랑을 경영하고 있으며, 자기 식당을 찾는 뉴요커에게 퀴퀴한 냄새가 나는 한국 된장의 실체를 알리면서 해물된장찌개 등을 소개하고 있다. 그는 ‘뉴욕의 된장전도사’였다. 흥미로운 사실은 그가 매달 수입해 사용할 간장·된장·고추장 각 150~200㎏도 죽장연 제품이며, 실제 가게 메뉴판에도 죽장연 된장을 명기했다는 것이다. 죽장연 장원(醬園)에는 후니 킴 전용 옹기도 있다. 세계적 셰프를 어떻게 한국에 올 수 있게 한 걸까. 죽장연이 로비를 한 걸까. 산파역은 해외유학파이자 ‘블루오션 마케팅’에 능한 정연태 죽장연 사장이었다. 직접 후니 킴이 미슐랭이 인정한 스타셰프가 됐다는 관련 신문기사를 읽고 죽장연 제품을 사용해 보라는 내용의 메시지를 후니 킴 e메일로 보내며 된장도 우송했다. 시큰둥한 반응을 보이던 후니 킴이 돌연 지난해 포항 현지를 찾아왔고, 올해 두 번째 방문한 것이다. 솔직히 죽장연 장류가 다른 곳보다 더 맛있다는 스토리에는 별로 관심이 없다. 그보다는 죽장연의 치밀하고 ‘기승전결’이 있는 세련된 마케팅 전략이 더욱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장류업체로선 애숭이급인 죽장연. 이들의 남다른 마케팅전략을 엿봤다. ◆ 오지마을 주민과 윈윈전략 죽장면은 포항시의 오지 중 오지다. 포항에 이런 심산유곡이 있나 싶을 정도였다. 포항시에서 차로 1시간 정도 달려 옻재를 넘어가야만 도착한다. 백두대간 끝자락 해발 450m에 있다. 동에서 서쪽으로 난 골짜기는 기온차가 크고 구룡포발 해풍이 사철 흘러든다. 깊은 산골이지만 종일 햇볕이 든다. 죽장연으로 가려면 다리 3개를 건너야 된다. 상사1교와 상사2교, 마지막은 죽장연교다. 상사교가 아니고 왜 죽장연교일까. 원래는 ‘상사6교’였다. 교량 이름 속에 미담이 숨어 있다. 작정하고 공장부터 지은 게 아니다. 힘만 믿고 막무가내 식으로 밀어붙였다면 주민으로부터 온갖 민원이 제기됐을 것이다. 시간을 두고 순리대로 갔다. 죽장연의 모기업은 영일기업. 포스코의 구내 운송을 담당하는 포항지역의 중소기업이다. 99년 ‘1사1촌 운동’의 일환으로 정봉화 회장은 포항에서 최고 오지 중의 오지인 죽장면 상사리와 자매결연을 했다. 이후 이 마을에 ‘정(情)’을 많이 준다. 농기계 무상수리와 태풍피해 복구, 미용봉사, 농산물 팔아주기 등등. 주민의 마음도 움직었다. 죽장에서 생산된 콩으로 담근 된장과 고추장은 물론, 죽장특산물인 고로쇠수액 등으로 보답했다. 매년 겨울엔 직원과 주민이 김치잔치도 벌였다. 그중 손맛이 남다른 여덟 집에서 해마다 장을 담가 영일기업의 직원들이 먹을 1년 양식으로 제공했다. 급기야 2009년 명품빈티지 장류회사가 상사리에 자연스럽게 설립될 수 있었다. 매년 10월 말~이듬해 4월 ‘장번기(농번기)’에는 상사리 주민 총동원령이 내려진다. 죽장면은 물론 기계면의 콩까지 평균 500원 더 주고 매입한다. 50여명의 주민은 돌연 비정규직 직원이 된다. 마을 주민 남녀 한 명씩 뽑아 작업반장을 시켰다. 주민들 솜씨도 숙성과 물 관리, 소금간, 세척, 성형 등으로 전문화시켰다. ‘우리 죽장연이 잘 되고 전통장이 잘 익어야 우리가 산다’. 주민들은 그렇게 생각했다. 훈훈한 흐름을 지켜본 포항 북구청이 마을 주민의 뜻을 담아 2010년 죽장연교를 만든다. 된장·간장에 와이너리 같은 빈티지 개념 도입 생산연도 외에 원료의 산지·건조·발효·항아리숙성 등 그해 특징 기록 3천개의 옹기와 70㎏들이의16개 가마솥‘장관’ 현지 주민들이 직접 제조 참여 ◆ 2단계 전통맛과 현대맛의 조화 죽장연 명물은 단연 장원이다. 전국 옹기는 여기로 다 몰려온 것 같다. 무려 3천개의 옹기가 모여 있다. 향후 5천개로 늘릴 계획이다. 전국 최대 규모가 된다. 그것 자체가 관광상품이다. 장 담그는 과정은 공업용 바늘 움직이듯 일사불란하게 돌아간다. 전 공정을 매뉴얼화하고 표준화해서 남지도 모자라지도 않게 했다. 다시 말해 전통만 강조한 게 아니라 시대와 호흡하는 현대적 공정을 가미한 것이 특징이다. 장 만드는 방식은 ‘전통적’, 그 장의 관리는 ‘현대적’이었다. 사진작가가 군침을 흘리는 공간이 죽장연에 숨어 있다. 콩을 삶는 70㎏들이 가마솥 16개의 범상치 않은 진용이다. 콩을 삶을 때 허연 김이 무럭무럭 피어나면 장관이 연출된다. 가스불이 아니고 참나무 장작불이다. 콩 삶는 작업이 정말 중요하다. 이게 잘못되면 한 해 농사도 끝이다. 연신 가마솥 표면에 찬물을 붓는다. 넘치는 콩물은 젖은 수건으로 닦아 낸다. 자칫 콩물이 흘러 눌어붙으면 탄내가 콩에 밴다. 콩 ‘화근내’는 치명적이다. 삶는 시간은 모두 5시간. 40분쯤 삶고 나머지 4시간은 뜸을 들인다. 그래야 콩이 누렇게 잘 뜨고, 물렁물렁 잘 물러진다. 불 조절도 여간 힘든 게 아니다. 콩 삶을 때는 센 불을 쓴다. 너무 세면 콩이 탄다. 뜸 들이기를 시작할 때는 센 불은 다 빼고 가는 나뭇가지로 화력을 갈무리한다. 너무 세면 눋고, 약하면 덜 삶긴다. 이 대목은 자동화가 어려울 듯싶다. 여느 장류 공장과 달리 품질관리가 여간 까다롭지 않다. 온도와 습도의 변화를 매일 체크해서 기록해 둔다. 매뉴얼해서 다른 사람이 와도 핸들링할 수 있게 했다. 들쭉날쭉한 손맛을 일정하게 다림질한 것이다. 그게 회사 자산이다. 메주는 가로·세로·높이가 각각 21·14·11㎝. 말리는 데 30~40일. 구룡포 과메기 실내 덕장처럼 날씨를 보면서 창문을 여닫는다. 온도는 5~10℃, 습도는 30~40%가 가장 이상적인 조건이란다. 메주의 겉은 단단하지만 속은 말랑한 상태가 가장 좋단다. 단단한 부분을 2㎝ 정도로 유지한다. 메주가 굳으면 황토발열실로 옮겨 3~4단으로 쌓는다. 발효실 온도는 25℃, 습도는 60%. 3일마다 메주 위치를 바꾼다. 15~20일 지나면 하얀 곰팡이가 핀다. 잘 갈무리된 메주는 소금물을 만나 된장과 간장으로 분리된다. 이 대목에서도 고수의 손길이 필요하다. 죽장연 나름의 ‘권장 염도’가 있다. 평균 18보메(Baume)로 맞춘다. 1보메는 소금이 1%라는 의미. 전통 된장은 18~25보메. 더 춥고 덜 춥고에 따라 염도도 달라져야 한다. 이게 감인데 초보자는 잘 맞출 수가 없다. 남북권 기온에 따라 보메도 달라진다. 기온이 높지 않은 북쪽 지방일수록 염도가 낮고, 남쪽으로 갈수록 높아진다. 경남지역은 25보메, 강원도는 18보메, 비교적 고지대인 죽장연은 강원도권에 맞춘다. 50~60일 지나면 된장을 푼다. 된장을 독에서 퍼내면 간장이 남게 된다. 옹기에 담긴 된장은 이제 ‘세월’이란 발효제를 먹고 자란다. 장마가 지나가면 뚜껑을 열어 제습한다. 2~3년 지나야 제맛이라지만 젊은 층은 6개월~1년 된 된장을 선호한다. ◆ 장류에 빈티지 개념 도입 와이너리처럼 된장과 간장에 ‘빈티지(vintage)’ 개념을 도입하기로 했다. 이게 죽장연의 남다른 ‘스토리텔링마케팅 감각’이다. 빈티지란 ‘생산 연도’라는 뜻. 여느 공장에선 2년산·3년산이라지만 여기선 2009년산·2010년산으로 표기한다. 국제시장을 겨냥하려면 그렇게 해야 될 것 같다. 빈티지 기준일은 ‘정월 장 담그는 날’. 와인과 된장의 대비가 흥미롭다. 포도즙 내기 vs 콩 삶아 메주 만들기, 숨 쉬는 오크통 vs 숨 쉬는 항아리. 1년 이상 숙성 후 병입되어 제품이 나온다. 죽장연은 원료의 산지, 수확과정, 그리고 건조·발효·항아리숙성과정을 전부 기록하여 매년 그 특징을 잡아내 ‘명품 빈티지 된장’을 낸다. 프랑스 와이너리처럼 갓 출시된 햇된장을 ‘죽장연 보졸레누보 된장’으로 론칭해도 먹힐 것 같다. 이춘호기자 leekh@yeongnam.com
2013.09.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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