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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도시대구복원
[신년기획 역사도시대구복원] 고려 역사 이야기 찾기…왕건길에 첨복단지·대통령생가·염색박물관 포함돼 취지 무색
만약 대구가 아니었다면 대한민국이 세계에서 '코리아(KOREA)'로 불리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대구는 바로 코리아의 어원인 고려를 건국한 태조 왕건을 살린 곳이기 때문이다. 실제 대구 곳곳에는 왕건과 관련한 숱한 얘깃거리와 관광자원이 있다. 하지만 이를 제대로 고증하려는 노력은 부족한 것이 현실이어서 이와 관련한 역사적 재조명이 필요하다.◆지명에 담긴 태조 왕건의 흔적 태조 왕건은 팔공산 일대에서 후백제 견훤과 후삼국 통일을 건 운명의 한판 승부를 펼쳤다. 이른바 '동수대전(桐藪大戰)'이 치러지면서 대구에 무수한 역사적 지명을 남겼다. 고려사에 따르면 태조 10년(서기 927년) 음력 9월 왕건은 신라를 유린한 후백제 견훤을 응징하기 위해 이들이 돌아가는 길목인 공산(公山) 동수에 군대를 주둔하고 공격을 감행했다. 하지만 후백제의 역공에 대패했다. 이 과정에서 왕건은 대장 신숭겸(申崇謙)과 좌상 김낙(金樂)을 잃고 간신히 몸만 빠져나왔다. 대구 동구 평광동 시량이(실왕리)에서 나무꾼을 만나 주먹밥을 얻어먹고, 겨우 목숨을 유지해 앞산으로 피신한 뒤 후일을 도모하기 위해 개성으로 도주했던 것. 당시 왕건이 절체절명의 위기에서 벗어나는 과정을 담은 설화와 지명은 지금도 대구 곳곳에 남아 있다. 견훤이 이끄는 후백제 군사들의 포위망을 탈출한 왕건이 잠시 앉아 쉬었다고 전해지는 '독좌암', 왕건의 군대가 견훤에게 무참히 패배함에 따라 붙여진 '파군재', 왕건으로 변장한 신숭겸 장군이 어가를 타고 적으로 돌진하다 전사했다는 '지묘(智妙)'가 대표적이다. 이외에도 팔공산 일대에는 대왕재, 무태, 연경동, 왕산, 불로동, 초례봉, 안심, 반야월 등 왕건과 관련한 지명이 즐비하다. 또 앞산에는 왕굴·은적사·안일사·임휴사, 달성에는 왕선재 등 왕건 관련 지명이 아직도 남아 있다. 태조 왕건에게 대구는 '은혜의 땅'이라 할 수 있다. ◆왕건길·신숭겸유적지 부실 복원이런 역사적 얘깃거리들을 바탕으로 대구에서는 왕건을 소재로 한 관광·문화 사업이 속속 생겨나고 있으나 이를 체계적으로 복원하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 잇따른다. 대구시는 2012년 고려 태조 왕건과 후백제 견훤의 동수전투 설화를 모티브로 팔공산 테마길을 조성했다. 용호상박길·열린하늘길·묵연체험길 등 8개로 총 35㎞ 구간에 조성하고, 길마다 왕건의 행적과 관련된 소재를 담아냈다. 하지만 왕건길만의 특색을 살리지 못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등산객 황모씨는 "왕건을 특색으로 한 테마길임에도 불구하고 등산로 주변에 노태우 대통령 생가, 자연염색박물관, 첨단의료복합단지 등이 포함돼 있어 본래의 왕건길 조성 취지를 무색하게 만들었다"며 "많은 이들이 왕건길을 걸으며 당시의 상황을 공감할 수 있도록 등산로 주변을 개선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대구 동구 지묘동에 조성된 신숭겸 장군 유적지의 관리에도 공백이 발생하고 있다. 평산신씨 종친회에서 건립한 신숭겸 사당 충렬사와 파군재삼거리에 세워진 신숭겸 장군 동상 등 시설에 대한 직접적인 관리를 대구시가 아닌 평산신씨 종친회에서 맡고 있어서다. 더욱이 신숭겸 장군 유적은 1982년 대구시 기념물 제1호로 지정됐다가 2021년 11월 문화재청 고시에 따라 문화재 지정번호가 폐지되면서 현재는 대구시 기념물로만 남아 있다. 종친회에선 신숭겸 장군 유적의 국가 기념물 승격을 바라고 있지만 역사 고증 부족 문제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 평산신씨 종친회 신윤철 사무국장은 "대구시 기념물이라 일부 보수정비 예산과 계절별 공공근로 인력 등을 제외하곤 별다른 지원을 받지 못하고 있다. 국가 기념물 승격을 위해 노력하고 있지만, 역사적으로 고증할 만한 자료가 부족한 실정"이라며 "고려에서 조선으로 넘어가면서 진행된 흔적 지우기가 일정 부분 영향을 끼쳤다"고 아쉬워했다. ◆고증 통한 단계적 개선 필요 일각에선 공산전투와 왕건 관련 유적지에 대한 체계화한 정비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신숭겸 장군 유적지와 유적지 일대 상가 명칭 역시 타 지자체의 사례를 참고해 순차적으로 바꿔 나가야 한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예컨대 신숭겸 장군 출생지로 알려진 전남 곡성군은 생가 복원을 비롯해 용산재 건립 등을 통한 '신숭겸 마케팅'에 적극 나서 효과를 톡톡히 보고 있다. 김성수 대구팔공문화원장은 "이순신 장군을 연상케 하는 지금의 신숭겸 장군 동상이 아니라 왕의 어의를 입고 공산전투에 나선 신 장군의 모습을 입체적으로 표현할 새로운 조형물이 필요하다"며 "주변 상가 역시 왕건 짬뽕, 공산 비빔밥 등과 같이 왕건을 떠올릴 수 있는 쪽으로 명칭을 통일한다면 지역경제 활성화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무분별하게 차용되고 있는 '팔공산 왕건길'에 대한 개선도 촉구했다. 현재 대구에선 팔공산 왕건길을 비롯해 도시재생사업의 하나로 불로동 일대에 왕건길 조성사업이 진행 중이다. 김 원장은 "왕건과 관련 없는 길에도 모두 왕건길이라는 명칭을 사용하는데, 이는 시민이 역사를 잘못 받아들일 수 있는 요소로 작용할 수 있다"며 "왕건과 관련 없는 길은 지금이라도 과감하게 배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팔공산 곳곳에 남아 있는 '지명유산'과 관련해선 이야기 소재를 제대로 가공해 다양한 문화사업을 펼칠 것을 주문했다. 지명으로 스토리텔링하고 있는 곳은 세계에서도 유례를 찾아보기 어려운 만큼 927년 공산전투 현장들을 잘 보존해 미래 먹거리로 발전시켜야 한다는 것. 김 원장은 "공산전투에서 새 왕조를 열었던 역사 기록은 향후 남북이 통일됐을 때 개성과 연계한 문화 교류에도 도움이 될 수 있다"며 "팔공산이 향후 국립공원으로 지정될 때 이러한 역사적 배경을 어떻게 알리고 보존할지를 지역사회가 다 함께 고민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오주석기자 farbrother@yeongnam.com대구 동구 지묘동 신숭겸 장군 유적지 뒤편으로 왕산(王山)이 우뚝 서 있다. 왕산은 견훤에게 대패한 왕건이 도망치며 넘은 산이라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영남일보 DB〉신숭겸 장군 유적지에는 말을 탄 채 활 시위를 당기고 있는 '신숭겸 장군상'이 건립돼 있다. 동수전투에서 죽음을 불사하고 왕건의 목숨을 구한 장군의 모습을 형상화했다. 〈영남일보 DB〉김성수 대구팔공문화원장이 왕건 유적지에 대한 고증을 강조하고 있다. 〈대구팔공문화원 제공〉
2023.02.07
[우대현 독립운동정신계승사업회 상임대표 인터뷰] "국권 침탈 되풀이 않도록 후세 교육하는 게 먼저 아닌가…대구독립운동기념관 건립은 의병대장 후손 마지막 소원"
"죽기 전에 대구독립운동기념관과 대구형무소역사관이 건립되는 걸 봐야 할 텐데 사업 진척이 제대로 안 돼 답답합니다. 지난 정부 때 매듭을 지었으면 좋았을 텐데 아쉬움이 많아요. 이번 정부에도 기대를 많이 걸었어요. 윤석열 대통령이 후보 시절 대구에 왔을 때 대구독립운동기념관 건립 당위성을 설명하자 고개를 끄덕이며 약속했거든요." 구한말 대한광복회 지휘장 백산 우재룡 지사의 맏아들인 우대현(79·사진) 독립운동정신계승사업회 상임대표는 긴 한숨을 내쉬었다. 3년 전 대구독립운동기념관 건립 발기인 대회(2020년 7월20일)를 앞두고 어머니 김소전 여사가 106세를 일기로 작고한 데다 지난 17일에는 하나뿐인 동생(우상현)마저 별세해 심신이 쇠약한 상태였다. 우 대표는 대구독립운동기념관 건립 추진 발기인 대회를 계기로 대구형무소 순국 자료 발굴과 언론홍보에 적극 나섰다. 정인열 대구가톨릭대 교수가 쓴 '묻힌 순국의 터, 대구형무소'발간을 지원한 데 이어 2021년부터 대구형무소 순국선열 진혼제를 개최했다. 오래전 대구 망우공원 내 항일독립운동기념탑 건립에 5천400만원을 희사했고, 대구 용수동 사유지 1만여 평(4만7천520㎡)을 대구독립운동기념관 부지로 기증할 만큼 적극적이다."대구시가 부채를 갚고자 하는 데 딴지를 걸 생각은 추호도 없습니다. 그런데 나랏빚을 갚고자 국채보상운동 같은 걸 하는 게 먼저입니까. 아니면 온전히 나라를 지켜 빚을 안 지는 게 먼저입니까. 난 후자라고 봐요. 독립운동기념관 건립은 후세에게 다시는 나라도 빼앗기지 않고 빚도 안 지기 위해 교육하자는 겁니다. 제 마지막 소원이 꼭 이뤄질 수 있도록 시민 여러분께서 도와주십시오." 글·사진=박진관기자 pajika@yeongnam.com
2023.01.30
[신년기획 역사도시대구복원] 대구형무소·독립운동기념관…항일투사 206명 순국 '대구감옥' 무대책에 흔적도 없이 사라져
대구는 '독립운동의 성지'이자 삼남(三南, 영남·호남·충청)지역 '독립운동가의 집합소'다. 400여 년 경상도의 수부였던 대구는 독립운동의 산실이면서 주요 활동무대였다. 제6차 교육과정 국정 고교국사에 '1910년대 가장 활발하게 활동한 독립운동단체는 대한광복회'라고 언급돼 있다. 문재인 전 대통령도 2019년 10월1일 국군의날 기념사 중 "대구는 대한광복회가 창립된 자랑스러운 역사를 가진 곳"이라고 했다. ◆독립운동의 산실 대구대한광복회와 조선국권회복단, 의열단, 국채보상운동 등은 대구에서 배태됐다. 구한말 최초 의병 문석봉, 국채보상운동 주창자 김광제·서상돈, 대한광복회 지휘장 우재룡, 조선국권회복단 통령 윤상태, 조양회관 건립자 서상일, 의열단 부단장 이종암, 3대에 걸친 독립운동가 김진만, 4가족 독립운동가 이두산, 임정요인 현정건과 그의 동생인 일장기 말살 의거 주역 소설가 현진건, 중국 정규군 장군 이상정과 동생인 민족시인 이상화 등 수많은 독립운동가가 대구에서 배출됐다. 대구에는 또한 전국에서 유일한 독립운동가 묘원인 국립신암선열공원이 있다. 이처럼 대구만으로 대구독립운동기념관이 건립될 명분은 차고도 넘친다. 대구독립운동기념관 내에 대구형무소 역사관을 따로 두자는 주장도 설득력을 얻고 있다. 대구독립운동기념관의 콘텐츠가 그만큼 확대되고 풍부해지기 때문이다.1910년 일제에 의해 대한제국이 강제 병탄된 뒤 대구감옥(형무소)은 서울 서대문감옥(서대문형무소), 평양감옥(평양형무소)과 함께 3대 감옥의 하나로 전국의 숱한 독립운동가의 순국 현장이 됐다. 대구감옥 수형자 중 순국 독립운동가 수는 영남 98명(48%), 호남 76명(37%), 강원 15명(7%), 충청 13명(6%), 제주도 3명(1.5%) 순이다. 이 중 58%가 의병 활동이 죄목이며 나이는 19세부터 74세까지 다양했다. 대구형무소에서 순국한 독립유공자는 2021년 6월 기준 206명(서훈 202명, 미서훈 4명)으로 서대문형무소 순국 독립유공자 195명(서훈 175명, 미서훈 20명)보다 11명 많다. 1925년 인구 비례로 볼 때 서울의 1.6배, 부산의 3배, 인천의 5배다.◆대구감옥 역사와 복원대구감옥은 1601년 경상감영 설치 후 감영 내 좌옥과 우옥을 뒀다. 좌옥은 서문로교회 터(대구 중구 서내동 8-1)이며, 우옥은 대안성당(대구 중구 대안동 31-11) 자리로 추정된다. 일제는 1909년 9월 대구 중구 삼덕동에 대구감옥을 신축하고 이듬해 4월17일 이전한다. 1923년 5월 대구감옥이 대구형무소로 개칭되고 광복 이후 그대로 사용되다 1961년 대구교도소로 명칭을 변경한다. 1971년 6월1일 60년간의 '삼덕동 대구교도소 시대'를 마감하고 달성 화원으로 이전해 50여 년간 유지하다 올 하반기 달성 하빈면으로 다시 이전할 계획이다. 1908년 건립된 서울 서대문감옥은 형무소~교도소~구치소를 거쳐 경기도 의왕으로 이전했다. 기존 서대문구치소는 1988년 2월 '사적'으로 지정됐다. 1992년 8월15일에는 인근 독립문을 포함한 3만여 평이 서대문독립공원으로 조성됐다. 서대문구치소가 서대문형무소역사관으로 1998년 개관한 것과 달리 대구 삼덕동 교도소 터는 당국의 무관심과 무대책 속에 주거 및 상업용지로 변경돼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그나마 3년 전부터 삼덕교회가 옛 감옥 터를 알리는 안내판을 만들고, 수형생활을 했던 이육사 시인의 기념공간을 마련했다. 이후 중구청에서 대구형무소 순국 206위의 명단을 모두 새긴 안내판을 추가로 설치해 '추모의 벽'을 만들었다. 삼덕교회는 2021년 7월 중구청과 교회 창립 60주년 기념관 2층 일부를 대구형무소 이육사기념관(예산 12억원)으로 조성하는 업무협약을 체결했다. 하지만 중구의회에서 예산 편성이 부결돼 공사가 중단된 상태다. 현재 이육사 관련 기념관으로는 경북 안동 생가터에 조성된 문학관이 있고, 대구에는 이육사기념관(중구 남산동), 이육사작은문학관(중구 북성로) 등이 있다. ◆다크투어리즘과 교육적 효과역사적 의미가 깊은 형무소를 보존 또는 복원해 다크투어리즘(역사적 아픔의 장소나 현장을 돌아보는 여행)으로 활용한 예는 많다. 안중근 의사, 신채호·이회영 선생 등이 순국한 중국 다롄의 뤼순감옥은 한국 관광객의 주요 코스다. 프랑스의 식민지배를 받았던 베트남 하노이 호아로감옥, 미국 샌프란시스코 알카트라즈감옥, 일본 홋카이도 아바시리감옥, 태국 푸꾸옥감옥, 호주 퍼스의 프리맨틀감옥, 이탈리아 로마 마메르티노감옥 등도 인기 관광지다. 서대문형무소역사관 방문객은 매년 70만명이 넘고, 전북 익산교도소는 지난해 한국관광공사 주관 '대한민국 안심관광지'에 뽑혔다. 이 밖에 프랑스 바스티유감옥, 대전 형무소 터는 광장 또는 평화공원 등으로 조성됐으며 역사교육 및 추모 공간으로 관광자원화하고 있다.지난해 9월14일 광주전남지역 지자체와 보훈청 관계자가 삼덕동 대구형무소 터를 방문해 호남 출신 의병(장)과 독립운동가를 기리고 추모했다. 9월22일엔 이정선 광주시교육감이 직접 이곳을 찾아 헌화하고 추모했다. 앞서 2018년부터 매년 10월 제주4·3희생자유족회원 등이 이곳을 찾아 추념하고 있다. 대구시장 재직 시 독립운동기념관을 건립하지 못한 걸 후회한다고 언급한 적 있는 문희갑 전 대구시장은 "팔공산 자락이나 대구 도심 적당한 터에 대구독립운동기념관이 우뚝 서고 대구형무소역사관이 재현돼 후세에 올바른 역사교육이 이뤄질 날을 기대한다"고 말했다. 박진관기자 pajika@yeongnam.com일제가 이른바 '남한폭도대토벌작전'이란 미명으로 체포한 호남 의병장들(1909년 광주감옥)과 옛 대구형무소(중구 삼덕동) 모습을 합성한 사진. (출처=묻힌 순국의 터, 대구형무소) 〈독립운동정신계승사업회 제공〉독립운동정신계승사업회가 자체적으로 제작한 (가칭)대구독립운동기념관 조감도. 〈독립운동정신계승사업회 제공〉
[신년기획 역사도시대구복원] 기념관 하나 없는 '독립운동 성지'
대구형무소 복원 및 대구독립운동기념관(가칭) 건립사업이 지지부진하다. 지난해 말 우원식(민주당), 윤주경(국민의힘) 의원 등 4명의 국회의원이 공동 발의한 대구독립운동기념관 신규 건립에 필요한 기본계획수립 연구용역비 5억원이 기획재정부에 의해 전액 삭감됐다. 지난 28일 김능진 대구독립운동기념관 추진위원장에 따르면 대구독립운동기념관 건립은 윤석열 정부 인수위의 100대 정책과제 중 98번째로 포함됐다. 하지만 대구시가 시의 부채탕감에 우선순위를 두고 (대구독립운동기념관) 건립에 난색을 표해 국비로만 진행돼 왔다. 지난해 4월 대구시가 계명대 산·학협력단에 의뢰한 대구독립운동기념관 건립 타당성 조사에 따르면 '건립 필요성을 느낀다'는 대구시민이 75.9%에 이를 정도로 당위성을 인정받았다. 대구시의회 역시 재작년 '독립운동정신 진흥' 조례를 제정하면서 독립운동정신 현창 사업을 지원할 수 있는 법적 근거를 마련했음에도 정부와 대구시의 미온적 대응으로 진척이 되지 않고 있다. 현재 전국의 독립운동 관련 기념관 72개소 가운데 특정 인물 및 민간소유를 제외하고 지자체 등이 운영하는 독립운동 관련 기념관은 서울(1), 부산(1), 인천(1), 광주(1), 경기(3), 강원(1), 충북(1), 충남(1), 경북(3), 경남(2), 전북(1), 제주(1) 등 총 17개소다. 인구 200만명 이상 광역자치단체 가운데 독립운동 관련 기념관이 없는 곳은 대구가 유일하다. 대구보다 인구가 훨씬 적은 제천, 안성, 청송, 밀양, 군산 등지에도 독립운동 관련 기념관이 여럿 있다. 김능진 위원장은 "한 독립운동가의 후손이 사유지 1만여 평(4만7천520㎡)을 대구독립운동기념관 부지로 기증할 만큼 열의가 뜨거운 곳이 대구다. 올해부터는 좀 더 적극적, 공개적으로 나서 대구독립운동기념관 건립에 최선을 다할 생각"이라고 말했다. 박진관기자 pajika@yeongnam.com
[신년기획 역사도시대구복원] '대구 뿌리' 달성토성 복원 탄력받나
대구의 역사성은 그 원천이 깊다. 사실 2천년 역사도시라 할 만하다. 고대 도시가 형성되는 확실한 유물이라면 성곽이다. 대구에는 달성토성이 있다. '달성토성'은 대구의 모태(母胎)다. 달벌(達伐), 달불성(達弗城), 달구화(達句火), 달구벌(達句伐)이란 대구의 옛 지명들이 시작된 뿌리다.삼국사기에는 '신라 첨해이사금 15년(261년)에 달벌성(城)을 쌓고 나마극종을 성주로 삼았다'고 기록돼 있다. 달성에 대한 최초의 문자 기록이다. 달성 일대는 삼한시대 부족국가를 형성했던 달구벌국의 성터였다고 전해진다. 달성은 삼국통일을 완성한 문무왕의 아들 신문왕이 689년 경주에서 달성으로 천도계획을 세웠을 만큼 융성했다. 달구화현으로도 불리던 달성은 통일신라 경덕왕 때에 이르러 대구현으로 개명했고, 이는 오늘날 대구 지명의 시초가 됐다.달성토성은 건축사적 의미가 크다. 길이 약 1.3㎞, 면적 10만5천238.5㎡ 규모에 이르는 성곽은 국내 현존 성곽 중 가장 이른 시기에 축성돼 역사적·학술적 가치가 높다. 고대 토성 가운데 원형이 가장 잘 보존돼 있다고 평가받는다. 신라~고려~조선시대를 관통하며 대구 민(民)과 함께하면서 그 자리를 지켜왔다. 근현대사를 거치면서 우울한 날들을 맞기도 했지만, 그렇다고 그 유구한 역사가 훼손되는 것은 아니다.김세기 대구한의대 명예교수(고고학)는 "달성은 쌓는 방법과 크기로 미뤄볼 때 토성 중에서도 가장 전형적이고 확실한 토성"이라며 "소국이 형성되는 중심지였으며, 통일신라가 장기 발전을 위해 경주에서 달성으로 천도 계획까지 세웠을 정도로 중요한 지역이었다"고 평가했다.대구의 본류인 달성토성이지만, 그 복원 과정은 난관의 연속이었다. 대구시는 지난 20여 년간 달성토성 복원 의지를 수차 공언했지만, 여전히 미완이다. 10년 이상 논란만 가중됐다. 달성토성은 1970년 동물이 사는 '달성공원'으로 변질됐다. 토성복원은 이곳 동물들이 옮겨가야만 가능한 상황이다. 2017년 대구시는 대구대공원 사업을 추진하겠다고 밝히면서 동물원 이전을 공식화했다. 2026년 대구대공원 사업이 마무리 단계에 접어들 때쯤이면 달성공원 동물들도 새 보금자리로 옮길 수 있을 전망이다. 달성토성은 이미 지표조사와 물리탐사작업은 이뤄졌다. 내년쯤에는 토성 발굴조사도 진행될 예정이다. 대구시 문화예술정책과 관계자는 "문화재 복원사업이라는 것이 개발사업이나 건물 신축처럼 단기간 내 이뤄질 수 있는 사안이 아니다"며 "발굴과 함께 여러 판단이 필요하다. 깊게 숨을 고르고 가고 있다"고 말했다. 서민지기자 mjs858@yeongnam.com대구시 서구 달성토성 탐방로(영남일보 DB)
2023.01.16
[신년기획 역사도시대구복원] 경상감영 복원사업 현주소...경상감영 복원 '보호구역 매입-대구우체국 이전' 난제 풀어야
조선시대 '8도' 체제가 도입되면서 지방 행정제도가 개편됐다. 각 도에는 지방 통치의 책임을 맡아 행정·사법·군사를 총괄하는 관찰사가 파견됐다. 이 관찰사가 거주하며 업무를 보던 곳이 바로 '감영(監營)'이다. 경상감영은 1601년(선조 34년) 현재 위치인 대구 중구 포정동에 설치됐다. 이를 계기로 대구는 경상권 중심지로 자리매김하게 된다. 400년이 넘은 경상감영은 대구가 한성(서울), 평양과 함께 조선 3대 도시였음을 여실히 보여준다. 하지만 일제의 난도질과 후대의 무관심 등으로 오랫동안 방치되었다. 최근 복원사업에 나서고 있으나 발목을 잡는 문제들이 속 시원히 해결되지 않고 있다. 토지 매입 등에 329억원 들어가협의보상 탓 예산 확정도 못해경북우정청과 우체국 이전협의이견 못좁혀 장기간 진척 없어전문가 "대규모 프로젝트 필요"강원·전라감영 복원 대표사례역사성 살리고 정체성도 확립 ◆'대구의 자부심' 복원 더딘 이유일제 침략이 본격화하면서 경상감영의 뼈아픈 수난이 시작됐다. 일제강점기 대구는 다른 도시와 달리 경상감영을 통째로 일제에 내주게 됐고, 결국 침탈기지로 변했다. 경상감영 진입로에 있던 관풍루는 현 달성공원 부지로 옮겨졌고, 부속 건물이 있던 자리에는 일본군 헌병대 건물과 병무청 등이 들어섰다. 현재 경상감영에는 선화당(宣化堂)과 징청각(澄淸閣) 등 일부 시설만 본래 터에 남은 상황이다. 대구시는 2013년부터 경상감영 복원을 본격적으로 추진하고 있다. 자체 조사를 통해 경상감영 주요 건물 배치도 등을 발굴하고 복원·정비 용역연구를 완료했다. 이후 옛 병무청 터를 매입해 달성공원에 있는 관풍루를 본래 위치로 돌려놓을 수 있는 초석도 다졌다. 2017년 경상감영이 사적 제538호로 지정된 데 이어 지난해 3월 옛 경상감영 정문이었던 관풍루와 중문인 중삼문이 있던 부지 일대가 사적 및 보호구역으로 추가 지정됐다. 1단계 복원사업을 국비 지원으로 본격 추진할 수 있게 되면서 포정문(관풍루)~중삼문~선화당으로 이어지는 경상감영의 중심축과 함께 감영 고유의 기능과 문화를 복원할 수 있게 됐다. 현재 경상감영 복원 사업의 주요 쟁점은 '옛 병무청 인근 보호구역 필지 확보'와 '우체국 이전'이다. 대구시는 2019년 확보한 옛 병무청 부지(3천42㎡)에 관풍루 이전과 중삼문 복원을 실행할 계획이다. 하지만 관풍루와 중삼문을 지나 선화당을 진입할 공간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병무청 부지 외에도 보호구역 7필지(943.5㎡)의 추가 매입이 필요하다. 우체국 이전은 제자리걸음이다. 관풍루와 중삼문으로 이어지는 진입공간 복원에 대한 기틀은 마련했으나, 인근의 대구우체국이 가까이 있어 본래 모습을 되찾기가 힘들다는 우려가 계속 나오고 있다. 이에 대구시는 대구우체국 이전 문제를 놓고 2016년부터 경북지방우정청과 논의하고 있으나 부지에 대한 이견을 좁히지 못하면서 장기간 진척이 없는 상황이다.대구시 관계자는 "경상감영 복원에는 토지 매입비를 포함해 약 329억원이 예상되나, 토지 매입이 '협의 보상' 방식이라 예산을 확정할 수 없다"며 "다만 지난해 3월 사적 추가 지정 등으로 1단계 복원사업 과정의 절반 정도에 도달했다고 볼 수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도 "현재 경상감영 복원을 위한 토지 매입과 우체국 이전을 위한 협의를 진행 중이다. 가시적인 일정을 밝히기 어려운 점을 양해해 달라"고 했다.◆다른 지역의 감영 복원 사례강원감영(원주)과 전라감영(전주)은 대규모 복원사업을 통해 감영의 역사성을 살리고 도시의 정체성을 확립하고 있는 대표적인 사례다. 전국에서 복원사업이 가장 잘된 곳은 강원감영이다. 1995년 복원정비계획 돌입 당시 강원감영에는 선화당·포정루가 남아 있어 보수 작업을 시행했다. 이어 발굴조사 과정에서 관찰사의 숙소로 청운당 터와 행각 등이 발견돼 1998년부터 본격 공사가 시작됐다. 1단계 복원 사업은 청운당·행각 등을 중심으로 진행해 2008년 완료했다. 관찰사 휴식공간인 후원과 연못 등을 복원하는 2단계 복원사업은 2011~2018년 진행됐다. 현재 복원된 강원감영에서는 전시회·체험프로그램 등 다양한 공연과 행사가 열리고 있다. 강원감영은 2단계 복원사업 당시 현재의 경상감영과 비슷한 어려움을 겪었다. 강원감영 터에도 원주우체국(2천700㎡)이 자리하고 있어 복원사업의 걸림돌로 작용했던 것. 하지만 원주시는 원주우체국 이전 논의에 적극 나선 끝에 강원지방우정청을 설득하는 데 성공했다. 부지 교환 합의를 이끌어 내고 감영 2단계 복원사업을 순조롭게 완료했다. 박광식 원주시역사박물관 문화재팀장은 "문화재 복원사업이 돈 낭비라고 생각하는 분도 있지만 우리 도시의 정체성에 대해 말로 설명하는 것보다 강원감영의 모습을 한 번 보여주는 것이 훨씬 효과적"이라며 "대구 역시 경상감영이 있었던, 경상도에서 가장 중심이 되는 도시로 문화재 복원사업을 잘 마무리하는 것이 도시의 정체성을 나타낼 수 있는 최고의 방법이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이에 반해 전라감영은 경상감영과 달리 기존 터에 남아 있던 건물이 단 하나도 없었다. 이 때문에 조선시대 지도 등 자료 발굴과 함께 전국의 감영을 방문하고 선화당·측우기 등을 참고했다. 전라감영은 2020년 1단계 복원사업을 완료했다. '전라감영 복원백서'를 만드는 동시에 관찰사의 통치 영역인 선화당과 인근 동편 부지의 7개 건물을 복원했다. 현재는 2단계 복원사업을 위한 부지를 확보해 복원사업에 더욱 박차를 가하고 있다. 특히 종이로 유명했던 전라도의 특성을 반영해 지소(한지를 만드는 곳), 인방(책을 만드는 곳) 등 종이와 관련된 기관 복원도 진행할 예정이다. 전문가들은 제대로 된 경상감영 복원이 이뤄지려면 감영의 특성에 맞춘 시설 복원과 함께 대규모 프로젝트의 진행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조영화 전 대경대 교수(전통건축 전공)는 "경상감영은 다른 감영과 기능은 비슷하지만 색다른 기관이 여럿 있다. 본청인 선화당과 처소인 징청각을 이어주는 복도인 여수각, 기생문화를 나타내는 교방 등 경상감영만의 독특한 시설과 기능들을 역사적 사건과 연관해 복원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대구는 '근대' 역사에 상당히 치우쳐 있지만 그 이전에 달성토성·경상감영·대구읍성 등 전통적인 문화재가 많다. 비교적 조명받지 못한 역사도 적극 발굴했으면 한다"고 했다. 이남영기자 lny0104@yeongnam.com1910~1965년 경북도청사가 있던 현 경상감영공원. 1970년 공원으로 조성돼 1997년 경상감영공원으로 명칭이 바뀌었다. 이현덕기자 lhd@yeongnam.com복원된 강원감영 전경. 〈원주시 역사박물관 제공〉전라감영이 복원을 통해 옛 모습을 일부 되찾았다. 〈전주시 제공〉
2023.01.10
대구 자부심 경상감영 10년째 복원 지지부진
우리는 언제부터인가 대구가 고도(古都)란 점을 잊고 살았다. 거주지를 만들고 제대로 모여살기 시작한 흔적인 달성토성을 감안하면 무려 2천년 도시의 저력을 대구는 보유하고 있다. 대구 곳곳의 '공간'들은 조용히 그 자리에서 대구의 역사를 시민들에게 손짓하고 있다. 멀게는 달성토성, 가깝게는 경상감영(慶尙監營)이 대표적이다. 근현대 이전의 대구역사를 우리가 다시금 조명하지 않을 수 없는 이유다. 강원·전라 등 타지역 속도 '경상도 首府' 입증 문화재 원래 건물·기능·유적 배치 정밀한 파악부터 선행돼야 2023년도 문화재청 예산안은 지난해보다 12.4% 늘어난 1조3천508억 원으로 확정됐다. 특히 국회 예산 심의 과정에서 문화재 보존관리 정책 강화, 고도(古都) 보존 및 육성, 문화재 재난 예방 등이 증액됐다. 빠듯한 나라살림에도 불구하고 그만큼 역사복원과 보존은 현세대에 중요한 가치 중 하나로 손꼽힌다는 의미다. 고도 복원 측면에서 보면 대구의 경상감영은 늦은 감이 있다. 8도 관찰사, 그중에서도 가장 넓은 영토를 관할했던 '영남의 수도, 대구 복원'은 현대적 관점의 역사세우기 작업에서는 뒤처져 있다는 평가다. 대구 중구, 그것도 도심 한복판에 위치한 경상감영은 대구가 조선시대 경상도의 수부(首府)였다는 사실을 입증하는 유적이다. 원삼국시대 대구인들이 축성한 달성공원이 일제강점기 신사가 들어서면서 훼손된 후 동물공원으로 변질됐다면, 경상감영은 우리의 역사적 소양 부족을 보여주는 또다른 흔적이다. 오늘날의 대구는 경상감영을 통해 성장하고 뻗어났다. 일제의 침탈로 감영의 본래 모습은 1차적으로 크게 훼손됐다. 설상가상 근대화-개발시대를 거치며 대구의 규모와 뼈대는 점점 커졌지만 잃어버린 감영의 역사현장은 오히려 기억속에서 사라졌다. 대구시는 뒤늦게 경상감영 주요시설 복원 사업을 10년째 추진하고 있지만 여전히 미완이다. 예산도 의지도 박약하다. 그 사이 다른 지역 감영들은 속속 복원되고 있다. 강원감영은 관찰사의 업무 공간과 휴식 공간 복원 사업을 완료했으며, 전라감영은 2단계 복원 사업을 위한 부지를 이미 확보했다. 감영을 복원한 타 지자체는 이미 역사축제를 가미하며 도시의 정체성 확립에 열을 올리고 있다. '역사 길러내기' 경쟁이다. 대구가 경상감영의 우수한 역사성을 제대로 복원하려면 먼저 원래 감영 전체의 건물과 기능, 유적 배치를 보다 정밀히 파악하는 작업부터 선행돼야 한다. 대구시는 물론 관계기관의 대대적인 조사와 발굴, 범시민적 참여가 필요한 시점이다. 조영화 대경대 전 교수(전통건축 전공)는 "'대구'라는 지명은 1300년도 쯤부터 쓰였다. 그만큼 대구는 역사적인 도시지만 근대 이전의 모습이 제대로 조명받지 못해 아쉬운 마음이 크다" 며 "우리의 뿌리와 역사를 알고 후대에 이를 알려주기 위해서는 문화재 복원 사업이 필수적이다. 제대로 된 대구의 문화 '공간' 복원으로 문화강국의 길을 열 수 있길 바란다"고 말했다.이남영기자 lny0104@yeongnam.com1909년 당시 경상감영의 정문 관풍루(영남포정사).
[신년기획 역사도시대구복원] 역사는 공간이 말해준다
서울·평양과 함께 '조선 3대도시'경상감영 정문은 엉뚱한 자리에달성토성·고려 왕건 관련 유적 등대구 바로 알리기 위해 복원 시급# 한국 최초의 민주화 운동으로 대구에서 일어난 '2·28민주운동'에 대해 제대로 알고 있는 대구시민은 10명 중 7명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 <사>2·28민주운동기념사업회가 최근 실시한 인식조사에서 나머지 3명 중 1명은 2·28민주운동 자체를 처음 들어봤다고 했다.# 조선시대 경상도의 수부(首府)로서 400년 이상 '경상감영(慶尙監營)'이 있던 대구는 한성(서울), 평양과 함께 조선 3대 도시였다. 지금은 부산과 인천의 인구가 대구보다 더 많지만, 당시 두 도시는 동래부(府)와 인천부만 존재했을 뿐이다. 대구는 한마디로 영남의 수도였다. 하지만 대구에는 경상감영임을 알 수 있는 유적이 경상감영공원 내 선화당(宣化堂), 징청각(澄淸閣)과 달성공원에 있는 관풍루(觀風樓) 정도뿐이다. 그마저도 경상감영의 정문인 관풍루는 원래 자리(옛 대구병무청)로 돌아오지도 못하고 있다. 경상감영보다 규모나 역할 면에서 비교도 되지 않았던 강원감영(원주), 충청감영(공주), 전라감영(전주)은 대규모 복원사업을 통해 재조명되며 역사성을 살려 대조적이다.# 지난해 10월12일 대구 남구 캠프워커 반환부지 내 관제탑이 논란 끝에 철거됐다. 문화재 관계자와 역사학자들은 대구의 근현대사를 나타낼 수 있는 상징적인 건축물이라는 이유로 존치를 강력하게 주장했지만, 관제탑 아래 토양 오염 등이 우려된다는 주장에 따라 사라지게 됐다. 대구의 상징물이라기보단 미군의 상징물이고, 환경적 측면을 고려해야 한다는 반론이 더 강했다. 관제탑 철거와 동시에 개발될 부지 내에 관제탑 상징물이 설치될 가능성도 있다. 하지만 이는 상징물일 뿐이다. 차라리 이전을 통한 보존이 아쉬웠다는 평가도 나왔다.# 과거 육안으로 화재를 가장 먼저 확인했던 대구 동부소방서 '소방망루'도 철거 위기에 놓였다. 2024년 신서혁신도시로 이전이 예정돼 있다. 1977년 설치된 동부소방서 소방망루는 상징적인 시설로, 대구뿐 아니라 전국적으로 '대구의 명물'로 인식돼 있다. 동부소방서와 함께 소방망루로 명성이 높은 경기 안양소방서의 소방망루는 어린이들의 체험장 등 교육 시설로 활용되고 있다. 계묘년 새해를 맞아 영남일보는 '역사 도시 대구 복원'을 주제로 한 신년 기획시리즈를 마련했다. 대구의 역사는 대구시민들의 자부심이다. 과거와 오늘이 대화하는 제대로 된 역사는 글과 말을 넘어 물리적 공간과 흔적도 병행해야 한다. 역사를 길러낼 책임은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 있다.3·1운동 당시 5천여 명이나 수감돼 서울 서대문형무소보다 더 많은 독립유공자가 옥고를 치른 것으로 알려진 대구형무소의 위치를 아는 대구시민은 몇 되지 않는다. 지금의 삼덕교회가 들어선 일대가 대구형무소 터다. 교회 한쪽 조그만 공간에 마련된 연혁판과 배치도, 몇 장의 사진만이 과거 이곳이 대구형무소임을 알리고 있다.대구 중구청은 이곳에 '대구형무소 이육사기념관'(가칭)을 건립하기 위해 2021년부터 노력한 끝에 삼덕교회 측과 합의점을 찾아 삼덕교회 60주년 기념관 2층 일부를 대구형무소 이육사기념관으로 조성키로 했다. 하지만 2021년에 이어 지난해에도 해를 넘겼고, 올해까지 관련 예산이 중구의회 문턱을 넘지 못하면서 3년째 빈 공간으로 방치되게 됐다.'경상감영'도 마찬가지다. 영남의 행정·군사 수도였던 대구의 위상에 걸맞은 대대적인 역사 복원이 이뤄져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하지만 달성공원의 관풍루를 원래 자리로 옮기는 복원 작업조차 어렵게 됐다. 이미 다른 이질적 건물이 들어서 있기 때문이다. 대구시가 이런저런 이유로 차일피일 경상감영 복원을 미루는 사이, 다른 지역의 감영은 대부분 대규모 복원사업을 마치거나 마무리 중이다. 유적 하나둘 옮기는 방식으로는 경상감영을 제대로 복원할 수 없다. 경주의 왕릉 복원과 같은 조(兆) 단위 복원 프로젝트가 필요하다.말만 있을 뿐 실현되지 않고 있는 달성토성 복원 작업은 대구역사 길러내기의 첫 과제다. 달구벌의 모태 달성토성 복원은 '대구 역사 복원'의 시작점이라 할 정도로 중요하고 중대한 사업이다. 원삼국시대 대구인(人)들이 축성했던 달성토성은 일제강점기 일본 신사가 들어서면서 훼손된 뒤 1970년 동물공원으로 변질됐다. 대구대공원 조성 사업이 표류하면서 동물원 이전 작업마저 하세월이다.고려 태조 왕건을 살린 대구에 대한 재조명도 반드시 필요하다. '대구가 없었다면 고려도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왕건과 관련된 숱한 얘깃거리는 관광자원으로 충분한 소재다. 평산 신씨 종친회에서 세운 동구 지묘동의 신숭겸 사당 충렬사와 파군재삼거리의 신숭겸 장군 동상 등이 있지만 이들 시설에 대한 관리 등은 모두 대구시가 아닌 평산 신씨 종친회에서 맡고 있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신숭겸 장군 출생지로 알려진 전남 곡성군은 생가 복원을 비롯해 용산재 건립 등을 통한 '신숭겸 마케팅'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주민들의 반대에 부딪혀 진척이 더딘 대구 중구의 한옥마을과 옛 골목길 또한 대구의 역사다. 가수 김광석 길이 전국적으로 명성을 얻고 있듯, 대구의 한옥마을과 골목길도 보다 과감한 투자와 대승적 차원의 주민 설득 등을 통해 지금부터라도 '대구 바로 알리기' 차원에서 재조명에 나서야 한다.대구의 역사는 이뿐만이 아니다. 일제강점기 당시 축조된 건물 또한 대구의 역사로 봐야 한다는 주장도 적지 않다. 과거를 알아야 미래가 있듯, 남아 있는 대구의 일제 잔재는 역사에 근거해 제대로 알려야 하고, 건축물과 시설물은 그 자체로의 역사성을 인정하며 보존해야 한다는 것이다.대표적인 건물이 1913년 준공된 대구역사(驛舍)다. 르네상스 양식으로 당시 돋보이는 형식의 아름다운 건물이었지만, 1978년 지하차도와 대구시민회관이 들어서면서 역사 면적이 반 토막 난 뒤 1999년 민자역사 공사에 들어가며 철거됐다. 현재 대구역사는 현대식 롯데백화점 건물로 바뀌어 있다.1923년 붉은 벽돌조 3층 박공지붕에 기와를 얹어 지어진 대구복심(고등)법원 건물은 광복 후 대구고등법원으로 사용되면서, 법원이 있는 자리라고 해서 '법 앞에 평등하고 공평한 일 처리'에 대한 바람을 담아 동네 이름까지도 공평동이 됐다. 이후 1975년 전국 최대 규모의 대구시립도서관, 1986년 대구백화점 별관으로 사용됐다. 하지만 1999년 결국 뜻없이 철거되고 만다. 50대 이상이라면 학창시절 시립도서관으로 사용되던 이 건물을 모르는 대구사람은 없다. 하지만 당시 이 건물이 대구복심법원 건물이었음을 아는 이 또한 거의 없다. 임성수기자 s018@yeongnam.com원삼국시대 대구인(人)들이 축성했던 달성토성은 일제강점기 일본 신사가 들어서면서 훼손된 뒤 1970년 동물공원으로 변질됐다. 대구대공원 조성 사업이 표류하면서 동물원 이전 작업마저 하세월이다. 이현덕기자 lhd@yeongnam.com
2023.0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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