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미있는 수학이야기] 큰 수와 작은 수

  • 입력 2007-09-17 07:51  |  수정 2007-09-17 07:51  |  발행일 2007-09-17 제32면
[재미있는 수학이야기] 큰 수와 작은 수

초등학교 1학년에 입학하면 처음에는 9까지의 수를 배우다가 점점 수가 커지면서 4학년이 되면 만, 억, 조까지의 수를 배우게 됩니다. 조를 수로 나타내면 1,000,000,000,000이므로 자그마치 0이 12개나 됩니다. 보통 우리나라 국내총생산(GDP) 액수를 이야기할 때 조 단위를 씁니다. 그렇다면 조보다 큰 수는 어떤 것이 있을까요?

일, 이, 삼이나 십, 백, 천, 만 등은 중국에서 건너온 한자말입니다. 옛날부터 우리나라에서 수를 가리킬 때 사용되는 순 우리말은 하나, 둘, 셋, 넷, 다섯, 여섯, 일곱, 여덟, 아홉, 열, 스물, 서른, 마흔, 쉰, 예순, 일흔, 여든, 아흔 등입니다. 그런데 백, 천, 만 이상의 수를 가리키는 순 우리말이 있었습니다. 온(백), 즈믄(천), 드먼(만), 골(경) 등은 예전에 사용했으나 지금은 사용하지 않지만 '온 몸이 아프다'의 '온'과 만 가지 지류를 가졌다는 두만강이 '드먼'에서 변한 것이나 '골백 번 죽는다'에서의 '골' 등에서 아직 흔적이 남아있습니다. 이렇게 우리말이 각각 있었지만 한자말에 밀려 쓰지 않게 되었지요. 지금 남아있는 우리말도 한자말에 밀려 없어질 위기에 있습니다. 가령 65개를 읽을 때 '예순다섯개'라고 읽지 않고 '육십다섯개'라고 읽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이러다가 순 우리말이 다 사라지는 건 아닌지 모르겠군요.

미국과 영국은 1,000이 'thousand', 1,000,000이 'million', 1,000,000,000이 'billion'과 같이 0이 3개일 때마다 새로운 단위가 생깁니다. 그런데 한국과 중국은 10,000이 만, 100,000,000이 억과 같이 0이 4개일 때마다 새로운 단위가 생깁니다. 이것을 수학적으로 천진법, 만진법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만진법의 우리나라에선 507,308,940과 같이 표시된 수를 읽기가 매우 어렵습니다. 이것을 5,0730,8940으로 기록하면 '오억 칠백삼십만 팔천구백사십'으로 쉽게 읽을 수 있습니다. 너무 세계화에 앞서가니 불편한 점도 있군요.

그리하여 0이 4개일 때마다 생기는 조보다 큰 단위는 경(京), 해(垓), 자(), 양(穰), 구(溝), 간(澗), 정(正), 재(載), 극(極), 항하사(恒河沙), 아승기(阿僧祇), 나유타(那由他), 불가사의(不可思議), 무량대수(無量大數)가 있습니다. 항하사, 아승기, 나유타, 불가사의, 무량대수 등은 불교의 금강경과 법화경에서 유래되었습니다. 항하사의 항하는 인도 갠지스강을 말하는 것으로 강의 모래만큼 많다는 뜻이고, 무량대수는 헤아릴 수 없이 큰 수라는 의미입니다. 무량대수는 0이 자그마치 68개나 있습니다.

이와 반대로 작은 수는 1/10을 나타내는 분(分), 1/100인 리(釐), 1/1000인 호(豪)가 있고 그 뒤로 사(絲), 홀(忽), 미(微), 섬(纖), 사(沙), 진(塵), 애(埃), 묘(渺), 막(漠), 모호(模糊), 준순(逡巡), 수유(須臾), 순식(瞬息), 탄지(彈指), 찰나(刹那), 육덕(六德), 허공(虛空), 청정(淸淨)이 있습니다. 그런데 초등학교 6학년 교과서에는 0.1을 할, 0.01을 푼, 0.001을 리로 배웁니다. 원래 '할(割)'이 없지만 일본에서는 이것을 상당히 오래 전부터 이율의 단위로 사용해 왔다고 하는군요. 에도(江戶) 시대 때 할(割)이 분(分) 앞에 끼어들게 되면서 할의 1/10인 0.01이 분(푼으로 바꿔부름)이 되고, 할의 1/100인 0.001이 리(한자가 간소해짐)가 되었습니다. 이 할푼리는 야구의 타율에 주로 사용되는데 1878년에 최초로 발족되어 130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일본의 야구 역사 속에서 우리나라에 일제 강점기를 거쳐 분(分)리(釐)호(毫)가 할(割)푼(分)리(厘)모(毛)로 바뀌게 된 것입니다.

이렇게 옛날에는 무량대수와 청정이 가장 큰 수와 작은 수로 여겼지만 과연 수의 끝은 있는 것일까요?

박재우(대구도남초등 교사)

영남일보(www.yeongnam.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인기뉴스

영남일보TV





영남일보TV

더보기




많이 본 뉴스

  • 최신
  • 주간
  •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