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혜숙의 여행스케치] 무흘구곡 제1곡-성주 대가천 봉비암

  • 입력   |  수정 2012-05-04  |  발행일 2012-05-04 제면
꽃나무 한 그루 머리에 인…희끗거리는 큰 바위 ‘화관’을 썼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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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강 정구의 무흘구곡 중 일곡인 봉비암. 회연서원의 뒤편에 있다.

물은 푸르고 돌은 희다. 돌 밟고 미끄러지는 물소리에 귀 맑게 연다. 은백의 수풀과 연분홍의 꽃 환하게 흐드러진 물가, 발꿈치 들어올린 작은 나무들이 연한 이파리들을 쏟아내고, 기지개 켠 늘 푸른 소나무들은 하늘가를 어른다. 가만, 저기, 희끗거리는 큰 바위, 머리에 화관을 썼구나, 누구를 기다리는 봄 치장인가, 소소한 이의 마음 헤집어 놓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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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비암과 거울처럼 맑고 깊은 소. 콘크리트 옹벽이 있는 둔덕이 회연서원의 솔숲 방향이다.

◆ 무흘구곡의 제1곡, 봉비암

주자는 중국 남송시대의 성리학자다. 그는 중국 동남쪽 푸젠성 북쪽에 위치한 무이산에 무이정사를 짓고 은거하였는데, 그곳에서 후학을 양성하고 성리학을 집대성하였으며 또한 무이산이 품은 빼어난 아홉 개 골짜기를 노래했다. 주자의 노래, 그것이 유명한 ‘무이구곡’이며 그 첫 곡은 이러하다.


일곡의 물가에서 낚싯배에 오르니 / 만정봉이 물 가운데 거꾸로 잠겨있네 / 무지개 다리는 끊어진 후 소식이 없고 / 골골마다 암봉에는 비취 안개 자욱하네.


16세기부터 20세기 초엽 즈음 조선시대의 성리학이 만개했을 때, 우리나라의 성리학자들은 주자의 삶과 학문을 흠모하고 추앙했다. 그들은 무이정사에서 서원의 모범을 찾았고 무이구곡과 같은 원림을 경영하며 구곡시를 지었는데 율곡의 고산구곡, 우암 송시열의 화양구곡, 퇴계의 도산구곡, 소요당 박하담의 운문구곡 등 수편에 이른다.


성주 수륜 신정리의 대가천변에 자리한 한강 정구 선생의 회연서원, 선생이 퇴계선생으로부터 성리학을 배웠다는 걸 떠올린다면 이쯤에서 배시시 웃을 수 있을 것이다. 한강선생은 대가천의 아홉 계곡을 경영하며 노래했는데, 그것이 무흘구곡이다. 회연서원의 뒤편에는 아담하고 수려한 절벽 하나 있다. 봉황이 비상하는 바위, 봉비암, 바로 무흘구곡의 첫 곡이다.


일곡 여울 어귀에 고깃배 띄우니 / 석양 부서지는 냇가에 실 같은 바람 감도네 / 뉘 알리오 인간사 다 버리고 / 박달나무 삿대 잡고 저문 연기 휘저을 줄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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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비암 둑길 곁에는 나무두릅이 자란다.

서원 앞에는 대가천을 가로지르는 양정교가 있다. 양정교 옆에는 대가천 생태 하천 공원이 조성되어 있는데 얼마 되지 않았는지 조금 휑하다. 양정교와 봉비암 일대는 여름이면 사람들로 북적인다. 다슬기의 시즌인 게다. 알 굵은 반드르르한 다슬기와 함께 민물조개도 잡힌다 한다. 다리를 건너면 왼쪽에 둑길이 있다. 시멘트가 부어지지 않은 길은, 풋풋한 흙내 풀내로 가득하다. 길의 사면에는 나무 두릅이 자라고, 한 아주머니가 비탈을 기어기어 땅을 돌보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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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가천변의 봉비암 전망대 둑길.

봉비암 전망대는 풍경을 깨지 않으려 조그맣고 슬그머니 자리를 잡았다. 풀과 꽃과 나무가 보드랍게 무성해 냇물은 뵈지 않고, 그 보드라운 것들을 뚫고 불쑥 솟은 듯 봉비암이 눈앞이다. 석벽에는 봉비암이라는 각자와 회연우음 이라는 칠언 절구 1수가 암각 되어 있었다고 하는데, 몇 해 전 태풍으로 암벽이 갈라져 일부 소실되었다고 한다. 화관을 쓴 듯 꽃나무 한 그루 머리에 인 바위, 인간사 다 버리고 고깃배 띄운 마음에 소소한 이의 마음도 동한다.


은백의 수풀과 연분홍 꽃무리 늘 푸른 소나무는 하늘가를 어른거리고…
인간사 다 버린 고깃배 띄운 마음 소소한 이의 마음도 이내 동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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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태 하천 공원 앞의 대가천.

◆ 대가천, 구곡 백리

대가천의 시작은 김천 증산면의 단지봉으로 청암사와 수도암이 있는 계곡이다. 냇물은 흘러 성주의 수륜을 지나고 고령의 회천으로 흘러든다. 구곡의 시작점인 봉비암, 물은 여기서 아래로 흐르지만 구곡은 여기서부터 물길을 거슬러 올라간다. 김천 수도리의 용소폭포에 가 닿는 계곡 백리길이다.


구곡 중 일곡 봉비암, 이곡 한강대, 삼곡 배바위, 사곡 선바위, 오곡 사인암까지는 성주다. 그리고 육곡 옥류동, 칠곡 만월담, 팔곡 와룡암, 구곡 용추는 김천이다. 이 구곡의 대가천을 따라 30번 국도가 이어지는데, 이 도로는 어느 계절이든 감탄을 내지르게 하는 이기적인 환상특급 길이다. 무흘 구곡이 공무적인 소유에 있어 반으로 갈라져 있긴 하지만 30번 길은 개의치 않는다.


옛 사람들의 구곡은 도학의 근원을 찾기 위한 하나의 실천 과정이었다고 한다. 우주의 원리를 이해하고 도학적 이상을 실현하는 수신의 과정이요, 이를 얻으면 경세제민하겠다는 정치 사회적 맥락으로 이어졌다. 이 길을 달릴 때마다 머릿속을 후려치는 종소리에 멀미가 날 지경인데, 옛 사람의 정신은 얼마나 강했던 것일까. 학문하고 실천하여 경세제민을 이루었는가. 어질어질한 나로선 ‘수신’이 백리보다 먼 불가능에 가까우니 ‘평천하’는 어림도 없겠다.

여행칼럼니스트 archigoom@naver.com


☞찾아가는 길

성서방향 성주로 가든, 화원 방향에서 고령을 관통하든 33번국도 타고 수륜으로 간다. 회연서원 앞에서 양정교를 건너면 봉비암 전망대 가는 둑길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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