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말연시 선물 준비에 도움주는 사연들

  • 김수영
  • |
  • 입력 2012-12-13   |  발행일 2012-12-13 제18면   |  수정 2012-12-13
“내가 받은 건 감동”

크리스마스, 졸업과 입학, 설 등 기념일이 많은 연말연시는 선물을 많이 주고받는 때이기도 하다. 선물은 준비할 때마다 고민하게 만든다. 주는 사람의 정성이 받는 사람에게 그대로 느껴질 수 있도록 기억에 남을 선물을 하고 싶지만 쉽지가 않다.

사람들은 과연 어떤 선물을 받았을 때 감동을 느낄까. 자신을 가장 감동시킨 선물에 얽힌 이야기를 들어봤다. 이들의 이야기가 연말연시 선물 준비에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지 않을까 한다.


“어린 애 키우기 힘드시죠”

교육관 간사가 건넨 인삼꿀

20121213

◆수필가 이숙희씨

이숙희씨는 두 가지 선물 이야기를 고이 간직하고 있다. 첫 번째는 1988년 한 여성교육관에서 어머니대학 수업을 들을 때 받았던 선물이었다. 수업을 들은지 두세 달쯤 됐을 때 그 교육관 간사로 있던 분이 자신을 살짝 부르더니 인삼을 곱게 저며 꿀에 절여놓은 큰 병을 주었다.

“그 분이 다른 수강생들 몰래 선물을 주셨어요. 그 분과 그리 친분이 두터운 것도 아니었습니다. 그 당시 아이들이 어린 데다, 시동생 셋을 데리고 있으면서 연거푸 결혼시키는 등 육체적 정신적으로 많이 힘들었습니다. 그 분의 어머니가 일하느라 힘든 딸에게 먹일 보양식으로 보내신 것이었습니다. 그 분이 ‘어린 애들을 키우느라 힘드니 절대 남 주지 말고 챙겨먹으라’고 하시더군요.”

시부모가 없는 집안에서 함께 사는 시동생들을 보살피기만 했지, 자신을 챙겨주는 사람이 없었는데 친하다고 생각하지도 않았던 분이 이런 선물을 해준 것이 너무 고마웠다고 한다.

두 번째는 한 교도소의 무기수가 성경을 필사해 보낸 선물이었다. 5년 전 우연한 인연으로 이 분과 계속 편지를 주고 받는데, 선물로 성경 필사본을 보내주셨다. 큰 상자에 필사한 성경이 가득하게 들어있었다. 얼마나 오랫동안, 얼마나 정성을 들였을까 생각하니 저절로 눈물이 핑 돌았다고 한다.

“성경을 깨끗한 필체로 흐트러짐없이 한 자 한 자 써내려가면서 저를 위해 기도했다는 말을 듣고는 정말 이런 선물이 세상에서 가장 값지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살아가면서 만나는 사람마다 스승이 아닌 분이 없다고 합니다. 이 분이 또 다른 저의 스승이더군요.”


“아버지 그리워하며 만든 것”

라이따이한 가이드가 준 모자

20121213

◆패션디자이너 최복호씨

최복호씨는 모자를 좋아한다. 그래서 옷장 안에 모자가 가득하다. 이 가운데 3년 전 베트남 여행에서 만난 라이따이한(베트남전에 참전했던 한국군과 베트남인 사이에서 태어난 혼혈아) 2세 가이드가 준 모자가 가장 소중하다고 한다. 천으로 된 평범한 모자인데, 최씨를 감동시킨 이유는 이 모자에 가슴 아픈 사연이 있기 때문이다.

“그 모자는 라이따이한 가이드가 어린 시절에 헤어진 한국인 아버지가 쓰던 모자와 같은 디자인으로 만든 것이었습니다. 아버지를 그리워하면서 만들었고, 그 모자를 보면서 아버지를 늘 생각한다고 했습니다. 모자의 디자인도 마음에 들었지만, 이런 사연이 그 모자를 더욱 매력적으로 보이게 했지요. 그래서 이 모자를 자주 씁니다. 모자를 쓸 때마다 그 가이드를 떠올립니다.”


독일 유학 시절 지도교수

"감기 조심" 멀티비타민 선물

20121213

◆북구문화예술회관 홍보담당 서상화씨

서상화씨는 1998년 독일에 유학을 갔을 때 받았던 선물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학교에 입학한지 얼마되지 않아 모든 것이 낯설었는데, 그 해 크리스마스 선물로 지도교수님이 멀티비타민 한 통과 현금 100마르크(한화 약 5만원)를 주셨다.

“얼굴이 무섭고 차가워 보이는 지도교수님이었지요. 크리스마스 저녁에 한 성당에서 연주를 마친 뒤 저를 부르더니 이 선물을 주시면서 ‘감기 조심하고, 맛난거 사먹고, 크리스마스를 잘 보내라’고 하시더군요. 여러가지로 어려운 시절이었는데, 이 선물을 받고는 눈물이 쏟아질 지경이었습니다.”

그 후 그 교수님은 수시로 아버지처럼 자상하게 격려해 주고, 보살펴 주기도 했다. 귀국한 뒤에는 생활에 쫓겨 마음만 있을 뿐 연락을 주고받지 못했다. 그런데 며칠 전 그 분이 또 다른 선물을 보내주셨다.

“아이가 독일에서 전화가 왔다고 하길래 받았더니 그 교수님이었습니다. 아직까지 제 생일을 기억하고, 축하전화를 주신 것이었지요. 일흔여덟의 노구에 휴대전화와 e메일도 사용할 줄 모르는 분이 10여년 전 종이에 적어드린 전화번호를 보고 전화하신 것이었습니다. 아직 저를 잊지 않고 전화해 주신 것이 미안할 정도로 제 가슴을 따뜻하게 만들어 주었습니다.”


첫 월급 받은 중학교 동창

편지와 함께 목걸이 보내

20121213

◆화가 권유미씨

권유미씨에게는 대학을 졸업한 뒤 조그만 회사의 비서실에서 근무할 때 중학교 동창생이 선물해준 목걸이가 잊지 못할 선물이다. 지금도 즐겨 사용하는 이 목걸이는 그 동창생이 첫 월급을 받은 기념으로 사준 것이었다.

“어른들 선물을 챙기기도 바쁠 텐데 저에게 그런 선물을 주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그 선물을 더욱 값지게 해준 것은 선물과 함께 전해준 편지였지요. 편지지 2장에 중학교 때 둘 사이의 재미있었던 일과 학교에서 일어났던 여러가지 추억거리는 물론, 앞으로 좋은 직장인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까지 적힌 편지였습니다.”

그 편지에는 권씨가 앞으로 화가로 대성하기를 바라는 글도 적혀 있었다. 당시 권씨는 대학에서 미술을 전공했지만, 일반 회사에 근무하게 돼 심적 갈등이 컸다. 이런 마음을 안 동창생이 화가로서 큰 소질이 있으니까 여건이 되면 화가의 길을 가라는 격려의 글을 보낸 것이었다.

“말보다는 글이 감동이 크다는 것을 그때 깨달았습니다. 이 친구의 조언이 직장인에서 다시 화가로 인생의 길을 바꾸게 하는데 큰 힘이 됐습니다.”


연애시절 낭만이 그리울 때

남편이 가죽장갑 선물


20121213

◆대구문화 편집장 임언미씨

결혼을 하고 몇 해만 흐르면 부부 사이에 연애시절의 기분은 추억이 돼 버리고 만다. 크리스마스가 되어도 애들 선물을 고르느라 바쁘고, 남편이나 아내 선물에는 관심을 가질 겨를도 없다. 그런데 대구문화 편집장 임언미씨는 지난해 크리스마스 아침에 귀한 선물을 받았다.

“아이들이 그 날 아침 자신의 선물 옆에 엄마 선물이 있는 것을 보고는 ‘올해는 산타할아버지가 엄마에게도 선물을 했네’라고 하더군요. 가죽장갑이었는데, 남편이 선물한 것이었습니다.”

어린 아이를 둔 데다가 직장까지 가진 여성에게 연애시절의 낭만은 점점 남의 이야기가 되어버린다. 육아와 직장일에 시달려 꿈과 낭만을 잊고 사는 것이다.

“그날 아침 작지만 따뜻한 선물을 받고, 하루종일 남편과 연애하던 시절의 기분을 느꼈습니다. 사랑해서 결혼했는데, 살다보면 사랑이란 감정 자체를 잊어버리기 쉽잖아요. 하지만 이런 선물이 가끔 잊어버렸던, 때로는 가슴에 묻어두었던 따뜻한 사랑의 감정을 되살려줍니다.”

김수영기자 sykim@yeongnam.com

영남일보(www.yeongnam.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연예인기뉴스

영남일보TV

많이 본 뉴스

  • 최신
  • 주간
  • 월간

영남일보TV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