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원식의 산] 고려 공민왕의 어머니가 홍건적의 난 때 피란간 그곳 왕모산 (안동시 도산면 ·해발648m)

  • 입력   |  수정 2013-04-05  |  발행일 2013-04-05 제면
서릿발 칼날진 갈선대 위에서 詩人의 ‘비극적 황홀’을 보다
[최원식의 산] 고려 공민왕의 어머니가 홍건적의 난 때 피란간 그곳    왕모산 (안동시 도산면 ·해발648m)
주차장-(20분)-왕모당-(10분)-갈선대-(30분)-너럭바위봉우리-(15분)-무덤-(20분)-왕모산 정상-(30분)-한골 갈림길-(20분)첫 계곡-(20분)-갈림길-(5분)-갈선대-(25분)-주차장//왕모산 중 최고의 조망처인 갈선대. 이곳에 서면 낙동강이 태극모양으로 굽이치는 원천리 일대가 한눈에 들어온다. 이육사 시인도 이곳에서 대표시 ‘절정’의 시상을 떠올렸다고 한다.
[최원식의 산] 고려 공민왕의 어머니가 홍건적의 난 때 피란간 그곳    왕모산 (안동시 도산면 ·해발648m)
갈선대에서 바라본 원천리 일대. 안동호로 흘러드는 낙동강이 태극모양으로 휘돌아나간다.

왕모산(王母山·해발 648m)은 전통과 문화의 고장인 안동에서도 가장 중심이 되는 도산면에 있다.

40여 곳이 넘는 서원과 서당, 수많은 고택 등 퇴계 이황의 꼿꼿한 선비정신을 느낄 수 있는 흔적들이 곳곳에 남아있다. 안동의 유교문화는 퇴계와 그의 제자들의 문화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도산면 온혜리에는 퇴계가 태어난 퇴계태실이 있고, 토계리에는 퇴계가 머물렀던 퇴계종택이 있다. 원천리에는 항일 운동가이자, 시인인 이육사문학관이 있다. 이육사는 퇴계의 14세손이며 강직한 저항성으로 잘 알려진 그의 문학적 기질도 퇴계학통에서 나온 것이다.

이육사문학관을 지나 낙동강을 가로지르는 원천교를 건너 한굽이를 돌아 올라서면 원천리 내살미마을 입구에 왕모산성 이정표가 하나 서있다. 왼쪽으로 최근에 정비를 마친 주차장 끝에 팔각정과 나란히 안내도가 있다.

왕모산은 1361년 고려 공민왕이 홍건적의 난을 피해 안동으로 왔을 때 왕의 어머니가 이 산으로 피란했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안내도를 지나 5분가량 오르면 왕모산성 안내도가 있다. 산성이라고는 하나 자연석으로 보이는 바위 덩어리 몇 개를 보았을 뿐 산성의 형태는 보이질 않는다. 곧 가파른 계단길이 이어지지만 단숨에 오를 수 있는 거리라 그렇게 힘들지는 않다.

작은 봉우리를 하나 넘어 내려서면 금줄이 둘려 쳐진 왕모당을 만난다. 왕모당은 공민왕의 어머니를 신으로 모신 성황당이다. 매년 정월 보름이면 마을 주민들이 동신제를 올린다. 동신제를 올릴 때 사용한 듯한 금줄이 아직 둘러져있다.

왕모당을 지나 10분을 걸으면 왼쪽으로 깎아지른 절벽을 이룬 갈선대에 닿는다. 갈선대에 올라서면 안동호로 흘러드는 낙동강 물줄기가 산허리를 감고 휘돌아 나가는 모습이 조망되는데, 딱 태극모양이다. 최고의 풍광이 아닐 수 없다. 이육사의 대표작인 ‘절정’은 왕모산 중에서도 최고의 조망처인 이곳 갈선대에서 시상을 떠올렸다고 한다.

한쪽에 이육사의 ‘절정’을 적은 안내판이 세워져있다.

매운 계절의 채찍에 갈겨/ 마침내 북방으로 휩쓸려오다 // 하늘도 그만 지쳐 끝난 고원 / 서릿발 칼날진 그 위에 서다 // 어데다 무릎을 꿇어야 하나 / 한 발 재겨 디딜 곳조차 없다 // 이러매 눈 감아 생각해 볼밖에 / 겨울은 강철로 된 무지갠가 보다.

시 한 수 읊조리고 절벽을 살피다 눈을 의심할 정도로 많은 개체의 회양목이 자생하고 있는 군락과 마주친다. 산행 중에 더러 본 적이 있지만 이렇게 군락을 이룬 것은 처음이다. 마치 천연기념물 1호인 도동 측백수림을 연상케 한다. 풍광이 발목을 잡아 길을 쉽게 재촉할 수 없다.

한참 후 아쉬운 마음을 갈선대에 남겨두고 5분 정도 진행하니 왼쪽으로 왕모산 2.5㎞, 직진 방향으로 왕모산 1.7㎞로 표시된 이정표가 나온다. 왼쪽은 산을 한 바퀴 돌아 날머리가 되는 길이고, 직진 방향은 12봉우리를 넘어 왕모산 정상으로 향하는 길이다.

작은 봉우리를 30분간 반복해서 오르내리면 너럭바위가 쉬어가기 적당한 크기로 놓인 봉우리에 닿는다. 잠시 휴식하다가 일어선다. 너럭바위를 피해 돌아가기도 하고, 징검다리처럼 뛰어넘기도 하는, 지루함을 달래기 좋은 구간이 이어진다.

이곳 안동의 대표적인 민속놀이 중 놋다리밟기가 있다. 홍건적의 난을 피해 공민왕의 딸 노국공주가 안동으로 들어올 때다. 예천을 지나 안동 땅으로 들어설 즈음 공주는 송야천을 건너야 하는데, 다리가 없어(지금은 송야교가 있다) 당황한다. 안타깝게 여긴 마을 부녀자들은 허리를 굽혀 ‘인간다리’가 되었고, 공주는 무사히 건널 수 있었다고 한다. 놋다리밟기는 이에 유래된 것으로 지금도 안동의 민속놀이로 남아있다. 당시의 노국공주를 생각하며 너럭바위를 놋다리 삼아 건너보는 재미있는 구간이다.

너럭바위를 지나 10분을 더 오르면 무덤 한 기가 나온다. 무덤을 지나 정상까지는 경사가 조금 가파르지만 군데군데 바위 사이로 낙동강을 볼 수 있어 지루함은 없다. 왕모산 정상에는 헬기장이 잘 관리되고 있으며, 삼각점과 스테인레스로된 정상 표지판이 있다. 북서쪽으로는 건지산과 토계마을이 내려다보인다. 북동쪽으로 청량산(870m)이 손에 잡힐 듯 가깝게 보인다.

[최원식의 산] 고려 공민왕의 어머니가 홍건적의 난 때 피란간 그곳    왕모산 (안동시 도산면 ·해발648m)
정상에서 낙동강이 바라다 보이는 곳에 전망대를 만들어두었다.


정상 서쪽 낙동강이 내려다보이는 절벽 위에 아름드리 소나무 두 그루가 전망대 역할을 한다. 높지 않은 산들이 낙동강 줄기를 따라 도열한 모습이 흡사 용트림을 하는 듯하다.

하산은 정상 표지판이 있는 서북쪽 방향이다. 억새풀과 떡갈나무 사이로 표식리본이 주렁주렁 걸린 숲 사이로 길이 나있다. 정상으로 올랐던 길 보다 찾는 이가 적어서인지 바닥엔 낙엽이 덮여있고, 북사면의 내리막길에 군데군데 로프를 매 둔 가파른 길이다. 디딤발이 무척 신경 쓰인다.

경사가 급한 내리막길을 30분쯤 내려서면 무덤 2기가 연이어 나타난다. 두 번째 무덤을 지나면 경사는 완만해지고, 길은 산허리를 감으며 왼쪽으로 이어진다. 곧 한골 갈림길을 지나 계곡을 만난다. 수량은 적지만 흐르는 계곡물이 이렇게 반가울 수 없다.

계곡 주변으로 막 피어난 샛노란 생강나무 꽃이 쌉싸름한 향기를 뿜어댄다. 겨우내 낙엽 속에서 숨어지내던 노루발풀과 바위 틈의 일엽초가 싱그럽게 청록색 잎을 내밀고 있다.

작은 계곡을 서너 번 가로질러 20분을 돌아 오르면 아침에 가쁜 숨 몰아쉬며 오르던 갈림길이다. 갈림길에서 갈선대를 지나 내살미마을 주차장까지는 25분이면 닿는다. 주차장 옆 수로에 산개구리 울음소리 요란하다. 인기척에 일제히 숨을 죽였다가 멀어지자 다시 목청껏 울어댄다. 왕모산은 봄이 ‘절정’이더라.

대구시산악연맹 이사·대구등산학교 강사 apeloil@hanmail.net

왕모산

◇…왕모산은 많이 알려지지 않은 산이지만 탐방로 정비를 잘 해뒀다. 산을 에워싸듯 낙동강 물줄기가 휘감아 흐르고, 곳곳에 단애를 이룬 절경이 시원한 조망을 선사한다. 또한 공민왕의 흔적을 더듬어보며 여유 있는 산행을 즐기기에 좋은 산이다. 총 산행 거리는 약 6.9㎞ 정도이며, 원점 회귀산행이 가능하다. 식수는 미리 준비해야 되며 3시간30분~4시간이면 충분하다.


가는길

◇…중앙고속도로 남안동IC에서 안동시내로 들어와서 35번국도 봉화, 도산서원 방향으로 약 25㎞를 가면 도산서원이 나온다. 여기서 계속 직진해 청량산 방향으로 2㎞를 더 가면 도산면사무소다. 도산면사무소에서 오른쪽으로 토계리, 이육사문학관 이정표를 따라 좁은 길로 접어들면 이내 왕복 2차로로 다시 넓어진다. 2.5㎞ 남짓한 거리에 있는 퇴계종택을 지나고 약 3㎞ 거리 왼쪽으로 이육사문학관을 지난다. 계속 직진방향으로 2㎞를 더 가면 왕모산성 휴게소라 적힌 매점이 나오는데, 여기서 우회전해 안동영화예술학교를 지나 원천교를 건너 올라서면 왼쪽으로 왕모산성 이정표와 주차장이 보인다.


볼거리

△도산서원= 안동시 도산면 토계리 사적 제170호. 1574년(선조7) 지방유림의 발의로 도산서당의 뒤편에 창건하여 이황의 위패를 모셨다. 1575년 선조로부터 한석봉이 쓴 ‘도산(陶山)’의 사액을 받았다. 영남유림의 정신적 지주 역할을 했으며, 흥선대원군의 서원철폐 당시에도 훼철되지 않고 존속한 47개 서원 중의 하나다. 1969~70년 정부의 고적보존정책에 따라 성역화 대상으로 지정돼 대대적인 보수를 했다.

[최원식의 산] 고려 공민왕의 어머니가 홍건적의 난 때 피란간 그곳    왕모산 (안동시 도산면 ·해발648m)
퇴계종택


△퇴계종택= 도산면 소재지에서 왕모산으로 향하는 길목에 이육사문학관 못미처 퇴계종택이 있다. 조선 중기 문신이며 대학자인 퇴계 이황 선생(1501∼1570)의 종가다. 원래 있던 집은 없어지고 이 건물은 1926∼29년 사이에 선생의 13세손 하정공이 옛 가옥의 규모를 따라 새로 지었다. 앞면 6칸·옆면 5칸 규모의 ㅁ자형 집으로 총 34칸으로 이뤄졌다. 높은 석축 위에 둥근 기둥과 네모난 기둥을 사용하여 지었으며, 전면에 솟을대문을 갖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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