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에는 임진왜란 때 조선에 귀화한 일본장수 김충선과 명나라 장수 두사충의 흔적이 오롯이 남아 있다.
두 장군 모두 이순신 장군과 인연이 깊다. 김충선은 가토 기요마사의 부하 장수로 경상좌병사 박진에게 귀순했다.
그의 저서 모하당문집에는 이순신 장군과 조총제작, 화약제조에 관한 의견을 나눈 서신이 있다. 이순신은 김충선에게 조총과 화포, 화약제조법을 조선군에 전수할 것과 그의 부하였던 김계수를 자신의 진영으로 보내 달라고 했다.
일본 이름으로‘사야가’였던 그는 임진왜란 때 종군해 큰 공을 세워 김충선이란 이름을 하사받았다. 그는 이괄의 난과 병자호란 때도 활약했다. 말년에 현재의 대구시 달성군 가창면 우록리에 머물렀는데 녹동서원에 그의 위패가 봉안돼 있다.
두사충은 1592년 12월 이여송의 수륙지획주사(水陸地劃主事)라는 직책으로 조선에 왔다.
일종의 군사지리참모였던 그는 1597년 정유재란이 발발하자 명나라 제독 진린을 따라 다시 조선에 왔다 귀화했다. 이순신은 그와 깊게 교류했다. 이순신이 그에게 써 준 시가 대구시 수성구 만촌동 모명재 주련에 걸려 있다.
“북쪽 명나라로 돌아갈 때까지는 고락을 함께했고(北去同甘苦)
동방 조선으로 다시 와서는 생사를 함께했네(東來共死生)
성 남쪽 타국의 달빛 아래서(城南他夜月)
오늘 한 잔의 술로 정을 나누세(今日一盃情)”
-구본욱 위클리포유 대구지오(GEO) 자문위원 번역
박진관기자 pajika@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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