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원길의 촌장 스타일] 안동과 도연명

  • 입력   |  수정 2013-11-12  |  발행일 2013-05-24 제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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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우연히 안동지역의 서원 명칭이나 건물 이름, 명승지 그리고 시문이 유난히 중국의 도연명(陶淵明)과 관련이 많은 것을 발견하고 놀랐다. 16세기에 건립된 고성이씨의 정자인 귀래정(歸來亭)이란 이름은 도연명이 지은 귀거래사(歸去來辭)에서 따온 것 같고, 임청각이란 당호도 귀거래사의 ‘임청류이부시(臨淸流而賦詩)’에서 따온 것이다. 퇴계의 도산서당(陶山書堂)도 도연명의 도(陶)자가 있고 낙동강의 지류인 반변천에는 도연(陶淵)폭포가 있었다. 도연에서 조금 더 올라 가서 지례란 마을에는 도연명이 좋아했던 국화와 버들을 따서 국탄댁(菊灘宅)이니 오류헌(五柳軒)이니하는 집들도 있었다. 호계서원(虎溪書院)이란 명칭도 호계삼소(虎溪三笑)의 고사와 관련이 있을 것 같다.

또 안동사람의 유원지 ‘무릉(武陵)’이란 지명은 어떤가. 도연명은 무릉도원 이야기가 있는 ‘도화원기(桃花源記)’를 지었다. 한 어부가 배를 저어 복사꽃이 흘러오는 상류로 거슬러 가보니 아득한 옛날 진나라 사람들이 아름다운 평화촌을 이루고 살고 있는데 며칠간 대접을 잘 받고 돌아와 무릉고을의 태수에게 보고하여 다시 찾아갔으나 입구를 끝내 찾지 못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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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퇴계도 청량산을 무릉도원인 양 읊은 시를 남겼다.

‘청량산 육뉵봉을 아는 이 나와 백구, 백구야 헌사하랴 못 미들 손 도화로다. 도화야 떠나지 마로렴, 어주자(漁舟子) 알까 하노라’

도연명은 중국 동진 때 사람으로 41세 때 팽택현의 지사로 있던 어느날 상부기관의 감독관이 내방한다고 관복을 갖춰 입고 출영하라하니 ‘내 오두미(五斗米) 때문에 허리를 굽혀 향리의 소인배를 맞이해야 한단 말이냐’ 한탄하고는 누이의 상사를 구실로 사임하고 곧장 귀향길에 올랐다. 귀거래사는 바로 이때 쓰인 작품이다. 이후 다시는 관직에 나아가지 않고 고향마을에서 유유자적한 생활을 하다가 63세로 생을 마쳤다. 그의 인생에 대한 사랑과 조화로운 삶의 태도를 지지하고 따르는 사람은 고금에 통하고 성현과 필부에 걸쳐 있다. 내 선조 지촌의 시 중 ‘聲名非我期/ 寂寞固所欲(명성은 내 기대하는 바 아니요, 적막이 진실로 소원이로다)’은 귀거래사 중 ‘富貴非吾願 / 帝鄕不可期(부귀는 내 원하는 바 아니요, 신선이 되는 것도 바라지 않네)’를 연상케 한다.

퇴계가 손수 쓴 자기의 묘비명 마지막 줄 ‘乘化歸盡(승화귀진) / 復何求兮(복하구혜)’는 귀거래사 맨 끝 줄의 聊乘化而歸盡 / 樂夫天命復奚疑(오로지 자연의 조화를 따라 돌아가면 그뿐, 하늘이 주신 이 목숨을 즐기면 그만이지 다시 더 무엇을 의심하리오)와 글도 뜻도 비슷하다. 이처럼 안동 선비의 정신세계는 도연명으로 가득 차있었던 것 같다. 그럼에도 지금 ‘한국정신문화의 수도’ 안동은 우리 정신에 아무런 영향도 끼치지 않은 중국의 관운장, 고려의 공민왕, 영국의 여왕은 기념하면서도 정작 도연명을 떠올리는 어떠한 행사도 없다. 일찍이 농암 이현보가 늦게나마 벼슬을 그만두고 안동으로 내려올 때 ‘귀거래 귀거래 말뿐이오 간 이 없네’라고 꼬집었듯이 돈과 권력과 환락에 눈이 멀어버린 사람들에겐 ‘도연명’은 거추장스럽고 생뚱맞은 이름일 테니 말이다. 안동지례예술촌장·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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