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후기] 詩碑, 세우지 말고 세운 건 자진철거를

  • 이춘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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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3-06-14   |  발행일 2013-06-14 제35면   |  수정 2013-06-14

대한민국에는 두 부류의 시인이 있다.

유명시인과 무명시인. 시비를 가진 시인과 없는 시인. 시인 세상에도 빈익빈 부익부가 존재하는 것인가. 참으로 슬픈 분류법이다. 하늘을 유명한 것과 무명한 것으로 나누는 것과 같은 처사다. 시인은 ‘바람’과 같은 존재. 소유의 편이 아니고 존재의 편이다. 누구의 편이 아니고 모두의 편이다. 그래서 존경을 받는 것이다.

시인을 위한 시비?

모순이다. 시인 자체가 이미 ‘숨쉬는 시비’다. 그를 위해 시비를 세워준다는 건 ‘사족’이자 ‘사치’다. 그런데 우린 그걸 외면해 왔다. 힘있는 자들이 비에 관한 일들을 주물렀기 때문이다. 그것도 ‘반민주’다.

다른 사람은 다 비(碑)를 흠모해도 시인만은 그래선 안 된다. 시인이 ‘숙명적 존재’이기 때문이다.

시인 자체가 시비다. 그렇기 때문에 그냥 좋은 시인으로 살면 되는 것이다. 그의 시가 감명과 카타르시스를 주었다면 그것으로 족한 것이다. 그걸 기념하기 위해 굳이 돌에 시를 새길 필요는 없다. 이미 사람의 가슴에 시를 새겼기 때문이다.

시비(詩碑)는 ‘시비(是非)거리’가 된다. 시비가 있으면 성공한 시인이고 없으면 못난 시인이란 말인가. 대단하고 유명한 시인은 시비에 매달릴지 모른다. 하지만 훌륭한 시인한테는 시비가 오히려 ‘옥에 티’가 될 수 있다.

부디 근대시비의 발상지인 대구 시인들이 앞장서 ‘시비 안 세우기 운동’을 벌였으면 좋겠다. 그게 시혼을 살리는 ‘제2의 국채보상운동’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시비 권하는 세상’에 시인들이 앞장서 시비를 거부한다면? 소식을 접한 시민들은 의기로운 시인의 시집을 사 읽기 시작할 것이다. 이미 시비를 세운 시인도 힘들고 곤혹스럽겠지만 시의 미래를 위해 자진철거했으면 좋겠다. 그건 보통 용기로는 할 수 없다. 스스로 철거를 한다면 ‘시적 쾌거’로 기억할 것이다.

죽은 뒤라도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추모시비를 세우지 말자. 시비가 없으면 더 위대한 시인이 나올 수 있다. 이젠 시인만의 세상이 아니다. 지옥 같은 일터에서 치열하게 살고 있는 소시민도 어쩜 ‘위대한 시인’이다. 자식도 얼마든지 부모를 위해 비를 세울 수 있다. 스포츠 스타도 가수도 자선봉사가도 시민운동가도 비를 세울 수 있다. 전 국민이 다 비를 세울 수 있다. 그러니 다 세우지 않아도 되는 것이다.

문인이 문인의 문학비를 세워주는 건 ‘자화자찬’이다. 국민이 원하고 모든 지역민이 원해서 세운다면 그건 무리가 없다.

부디 이런 대시인이 나왔으면 좋겠다.

전체 문인은 물론, 전 국민이 시비를 세워야 한다고 우겨도 정작 본인은 ‘자연이란 거대한 비가 이미 세워져 있는데 거기에 누가 흠집을 낼 수 있단 말인가. 나를 위해선 절대 비를 세우지 말라’라고 말하는 그런 대시인 말이다.
이춘호기자 leekh@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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