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문학공화국의 낯부끄러운 詩碑 是非

  • 입력 2013-06-14   |  발행일 2013-06-14 제35면   |  수정 2013-06-14
[기고] 문학공화국의 낯부끄러운 詩碑 是非

문인들이 아무리 배고프다 아우성이더라도 대한민국은 세계 유일의 ‘문학공화국’이다. 연말이면 온 국민에게 문학병을 앓게 하고, 당선되면 과거에 장원급제한 양 대우하는 신춘문예 제도는 우리나라밖에 없다. 각종 문예지와 문학상이 수백 수천에 이르고, 대형서점 가장 좋은 코너에 시집이 꽂혀 독자의 눈길을 끌며 팔리는 나라도 우리밖에 없다. 무엇보다 우리 민족은 ‘시인’ 하면 어느 직함보다도 높이 떠받든다.

문화현장 취재차 보름간 중국을 둘러본 적이 있다. 그때 가장 인상에 남은 것이 시안(西安)에 있는 비림(碑林)박물관이다. 왕희지, 구양순 등 유명 서예가들의 필체를 그대로 새긴 비석들이 숲을 이룬 듯 빽빽이 들어서 있었다. 고래로 중국은 물론 주변국에서도 이 비석들의 서체를 텍스트 삼아 서예를 보전, 환골탈태(換骨奪胎)해 나갔다 하니 중화민족으로서의 자부심이 대단했으리라.

그때 그런 고전, 정전(正典)으로서의 비석문화가 참 많이도 부러웠는데…. 지금은 전국 각지에 우후죽순처럼 세워지고 있는 시비(詩碑) 숲을 보며 이제는 부러움이나 자부심보다 민망함과 우려가 앞선다. 저 중 몇이나 고전으로 남을까, 혹여 시인을 존숭해 온 민족의 전통적 심성을 허물어뜨리지나 않을까 하고.

국민들을 널리 감동시키고 타계한 시인을 기리기 위해 국민적 공감대를 바탕으로 세워지던 시비들이 지방자치제를 계기로 앞다퉈 세워지고 있다. 그 지역 출신이나 풍물과 유관한 시인들의 시비를 세워 문화적 자부심을 세우고 알리기 위해서일 것이다. 아울러 관광이라는 상업적 잇속까지 계산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런 목적과는 달리 되레 지역 문화의 변두리성과 후진성만 알리는 시비가 대부분이니 이를 어쩌랴. 지역의 잇속이 아니라 중앙에선 명함도 못 내밀 시인들의 낯간지러운 잇속만 보이니 이를 어쩌랴. 문학공화국의 명성에 먹칠하다 못해 시를 공멸시키고 있으니 이를 어찌할 것인가.

후손, 문학단체, 정부나 지자체나 학교나 공공단체 등에서 나서 각기의 명분과 기준에 맞는 시비를 세우는 것은 문학공화국으로서 아주 바람직한 일이다. 문제는 명분과 기준에 어긋나게, 특히 시인 스스로 앞으로 뒤로 나서 세우는 생존 시인의 시비다. 생전은 물론 사후에도 자신의 이름을 딴 어떤 비석도 세우지 않고, 말라는 게 우리네 올곧은 선비전통이다.

그런데도 평판이나 인기 좀 끌었다고 연고만 있으면 시비를 세우고 있는 스스로가 부끄럽지 않은가. 비석에 새기기보다 아직 원고를 붙잡고 각고의 노력을 기울였어야 할 시들이 부끄럽지 않은가. 그런 염치없는 시인들이 문학공화국의 염치를 깎아내리고 있으니 이를 어찌할 것인가.
이경철 <문학평론가·전 중 앙일보 문화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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